2023.12.08 14:06
거의 모든 사람들이 2010년대 중반이 노동자에겐 끔찍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런던정경대학LSE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목적 없는 노동을 두고 '불쉿 잡bullshit job'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그는 이런 무의미한 일자리가 널리 퍼져 있다고 주장했다. 2007~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OECD 국가 노동인구의 약 7%가 실업 상태였다. 임금 상승은 미미했고 소득불평등은 끝없이 악화되는 듯 보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선진국 노동자들은 이제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가 고령화됨에 따라 노동력, 특히 기술로 대체하기 어려운 수작업 노동력은 점차 희소해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보상은 보다 나아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막대한 지출로 경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는 임금 상승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AI)은 노동자, 특히 숙련도가 낮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임금 상승을 유도할 수 있다. 각각의 추세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노동력이 부족한 곳에서는 기술 활용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노동시장의 작동 방식이 변화할 것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암흑기로 돌아가 보자. 노동시장의 암흑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5년 당시 중국의 노동 가능 인구 또한 9억9800만 명으로 정점이었다. 서구 기업들은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중국 경쟁업체의 압력을 거론하면서 임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데이비드 오터David Autor와 동료들은 이것이 20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미국 노동자 임금을 하락시켰다고 추정한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의 타격이 더 컸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중국의 일자리 '도둑질'을 끝내겠다고 공언하며 이를 이용했다.
[PADO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 북콘서트가 11월 30일(토) 광화문에서 열립니다! (안내)]
현재 중국의 노동 가능 인구는 감소하고 있고,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산업 역량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지정학적 불안정으로 인해 아웃소싱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선진국들은 노동자 부족 상황에 놓여있기도 하다(차트 1 참조). 실제로 육체 노동이 가능한 20~54세 인구의 수는 이미 고정되어 버렸다. 인력 공급 업체인 맨파워그룹이 41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7%의 기업이 공석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2015년에 비해 두 배나 증가한 것이다. 폴란드 공업 기업의 60% 이상이 인력 부족이 생산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답했다. 독일에서는 버스와 기차 기사 부족으로 인해 대중교통 서비스가 축소됐다. 한국에서는 노동력 부족을 막기 위해 노년층이 계속 일하는 추세다. 한국의 55~79세 인구의 약 59%가 일하고 있는데 이는 10년 전의 53%에서 늘어난 것이다.
노동력이 너무 귀해져서 심지어 노동력을 사재기하기 시작한 기업들도 있다. 미국의 소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0% 이상이 가능한 한 직원을 고용 유지하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초부터 경기가 침체된 독일의 경우, 직업 센터에 약 73만 개의 일자리가 광고되어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실업률은 3%에 불과하다. 부분적으로는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선진국들에서는 이민이 크게 늘고 있다. 외국 태생의 인구가 기록적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인력 공백은 이 정도 규모의 이민으로도 메울 수 없는 규모다.
그렇다면 정치의 개입 없이도 노동자로 살기에 좋은 시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다. 미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OECD 국가 대부분은 최근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동안 실질 최저임금을 그래도 유지하거나 인상했다. 선진국 곳곳에서 녹색 전환을 가속화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며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수조 달러가 투입되고 있다. 이러한 보조금은 대부분 기업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관세는 소비자에게 부담이 되지만, 보호받는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는 협상력을 부여한다.
오늘날의 정치인과 관료가 선호하는 거시경제 정책 조합은 노동자에게도 적합하다. 2010년대 중반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은 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준이었지만 경기부양책을 택한 나라는 거의 없었다. 경제가 최대치에 도달했다는 분석도 한 가지 원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더 많은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2013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는 장기적으로 실업률이 5.6%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2019년에는 장기 실업률 예상치가 4.1%로 떨어진다. IMF는 2012년 독일이 완전 고용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독일은 이후에도 특별한 임금 인상 없이 일자리 280만 개를 추가했다.
블루칼라의 행복
오늘날 상황은 매우 달라졌다(차트 2 참조).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올해 유럽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가 넘는 재정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예상한다. IMF는 미국의 재정 적자가 8.2%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고령화 사회, 기후 변화, 불확실한 지정학은 각국 정부가 당분간 쉽게 허리띠를 졸라매지 못할 것임을 시사한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를 원한다. 하지만 일단 인플레이션이 잡고 나면 2010년대와 같은 수요 부족과 저물가 상황도 피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정책가들은 재닛 옐런Janet Yellen이 미국 재무장관이 되기 전에 말한 '고압경제1high-pressure economy'를 목표로 삼을 것이다. 서구 지도자들은 건실한 고용지표와 임금 상승(특히 저임금 노동자의)을 강조하면서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2010년대에서 교훈을 얻은 듯하다.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노동자들은 이미 이러한 접근법의 결실을 맛보고 있다. 최근 논문에서 (MIT의) 오터와 동료들은 미국에서 구인난으로 노동자들이 더 나은 임금을 위해 직장을 옮기면서 임금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 중에서도 저임금 노동자들이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다(차트 3 참조). 연구진은 2020년 이래 지난 40년간의 임금 불평등 증가분의 약 40%가 상쇄됐다고 본다.
미국 외의 선진국 경제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독일의 고용 관련 부처는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직업을 집계한다. 올해까지 48개의 직업이 기존의 152개 목록에 추가됐다. 대부분 학문적 교육보다는 기술적 교육을 필요로 하는 직업들로, 건설과 보건 분야에서 인력 부족이 가장 시급하다. 일본은 기계 부품 제조업, 조선업 등 12개 분야의 노동자에게 한시적 비자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의 임금은 지난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임금 프리미엄은 이미 줄어들고 있으며 앞으로 그 감소세는 더 빨라질 수 있다.
구인난을 겪는 노동시장은 또한 노조로 하여금 더 많은 자유시간을 요구하도록 부추기며, 이는 이미 일손이 부족한 기업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독일 철강 노동자들은 향후 협상에서 주당 노동 시간을 35시간에서 32시간으로 단축을 요구할 예정이다. 스페인의 새 정부는 주당 40시간의 표준 노동 시간을 2시간 30분 단축하고자 한다. 노동시간에 대한 설문조사와 데이터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인들도 일을 줄이고 싶어 한다.
많은 경영자들은 컴퓨터가 이를 메꿔주길 기대한다. 창의성, 즉흥성, 학습이 필요하고 이전에는 기계가 할 수 없었던 작업을 AI로 수행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AI를 도입할 강력한 동기가 있다. 1990년부터 2018년까지의 미국 특허 데이터를 사용한 카네기멜론대학의 딘 알데루치Dean Alderucci와 동료들의 예비 연구에 따르면, 보다 기초적인 형태의 인공지능으로도 혁신을 이룬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고용 증가율이 25%, 매출 증가율이 40%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로 서비스업 종사자?이를테면 콜센터 상담원?를 도울 수 있다면 생산성은 물론 업무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다. 실제로 스탠포드대학교의 에릭 브린욜프손Erik Brynjolfsson과 MIT 학자들이 최근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콜센터 상담원들이 AI 봇의 도움을 받을 때 시간당 14% 더 많은 상담건수를 해결할 수 있으며, 성과가 가장 낮은 직원이 AI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조사에 따르면, AI를 사용하는 제조업 및 금융 서비스 종사자의 약 80%가 업무 생산성이 향상되었다고 응답했다. 또한 대다수가 노동 환경이 개선되었다고 답했다.
AI, AI
어떤 노동자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는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판단력과 광범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AI는 사람들이 필요한 수준의 전문 지식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AI의 도움을 받는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거나 프로그램 개발자가 더 복잡한 업무 과제를 맡을 수 있게 된다고 상상해 보라. "긍정적인 사례는 AI를 통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고임금 전문직에 종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MIT의 데이비드 오터는 말한다.
[새로운 PADO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카톡으로 알려드립니다 (무료)]
글을 편집하거나 작성하는 프리랜서들의 초기 데이터에 따르면 챗GPT로 인해 월 수입이 5.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는 아직 노동시장이 AI에 적응하기 전에 받는 영향을 보여주기 때문에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적응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경우, AI의 영향을 받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의 수혜를 입을 수도 있다. 작업당 임금을 조금 덜 받더라도 더 많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은 생산성이 높아지면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보다 전화기를 더 잘 만드는 로봇이 나왔다고 상상해 보라. 이를 활용하면 휴대폰 가격이 저렴해지고 수요가 증가하여 생산량이 늘어난다. 이는 곧 휴대폰 디자이너와 앱 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MIT의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를 비롯한 공동 저자들은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네덜란드의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로봇을 도입하면 그로 인해 대체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하며 그 혜택이 로봇을 도입한 기업을 넘어 확산됨을 발견했다.
생산성이 높은 경제는 더 풍요로운 경제이며, 이는 노동력뿐만 아니라 AI의 영향을 덜 받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다. 아세모글루와 보스턴대학교의 파스쿠알 레스트레포Pascual Restrepo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0년까지 고용 증가의 절반 가량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서 비롯됐다. 이 과정은 계속 될 것이며 그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 AI가 노동자를 대체하는 일이 벌어지겠지만 한편으로는 AI 주변으로, 그리고 경제의 다른 부분에서도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에 필요한 능력이 꼭 디지털 관련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AI를 가장 잘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할 것이다. 병원에서는 AI 도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훌륭한 병상 관리 능력을 갖춘 간호사를 찾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기술 발전은 일상적인 업무를 대체했습니다. 처음에 1970년대에는 육체 업무를, 1990년대에는 사무 업무를 대체했죠."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멜라니 아른츠Melanie Arntz는 말한다. "반면 고숙련 노동자들은 기술 발전의 수혜를 받아 임금 상승을 목도했습니다." 반면 AI 혁명으로 인해 혜택을 보는 것은 '스펙'을 덜 갖춘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이 고령화 인구를 돌보고 새로운 친환경 산업에서 일할 직원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면서 이미 임금 상승을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계층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을 변화시키는 힘?인구학적 변화, 정책, AI?은 조건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것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에서는 특히 육체 노동이 필요한 직종에서 일손이 부족할 것이다. 거시경제 정책이 확장 기조를 유지하는 한 임금 상승 압력은 계속될 것이다. 이는 AI의 사용을 촉진할 것이며 이 또한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의료 부문을 비롯해 규제를 받는 업종의 장벽을 허물어야 할 것이다. 경영자들은 민첩하게 기업을 재편해야 할 것이다.
인구학적 압박이 덜한 미국에서는 AI의 영향을 예측하기가 보다 어렵다. 할리우드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임금의 하락의 위협을 느끼고 파업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AI가 가져올 풍요로 인해 경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AI에 반대하는 거리의 시위대를 지지함으로써 친노동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할 것이다. AI가 가져올 전환을 가로막는 것보다는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언제나 미국의 역동성에 돈을 거는 게 좋다.
이코노미스트의 이 커버스토리는 여러 점에서 한국 독자들이 꼭 읽어야 하는 기사입니다. 서방 선진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모두 인구감소의 문제를 갖고 있고, 특히 한국은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인구감소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기에다 글로벌 시장에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해왔던 중국이 이제 인구감소를 막 겪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인구 감소와 함께 AI와 자동화 등이 노동자 개인의 생산성도 높여주게 되어 실질임금도 높아지고 있고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요즘 한국사회도 노동력 감소의 영향을 매일같이 겪고 있습니다. 가까이 편의점만 가도 점원들의 노동강도가 예전같지 않습니다. 노동력이 줄면 점원들의 임금이 뛰거나 아니면 같은 임금에서라면 노동강도를 낮추는 것은 경제학이 예상하는 바입니다. 우리 모두는 앞으로 귀해지고 비싸지는 육체노동의 영향을 매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살아가고 기업을 운영하고 경제정책을 세울 때 육체노동의 부족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아직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인도가 글로벌경제에서 더욱 비중을 높여가게 되면 글로벌 노동력이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중기 전망이고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인구 감소와 함께 육체노동력 부족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OECD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나라입니다. 노동력 부족 문제가 앞으로 한국사회의 최대 난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