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PADO 신간 소개]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

'글로벌'이 중립을 의미하던 시대는 끝났다
미국과 중국의 '보이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패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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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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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왜 중국산 앱인 틱톡(TikTok)을 금지하려 하는가?

- 일본은 왜 한국 네이버의 라인(LINE) 지분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가?

- 왜 삼성은 TSMC만큼 파운드리 사업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가?

20여년 전만 해도 '글로벌' '인터넷' 등의 단어는 '국가를 초월한', 즉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도 어쩔 수 없는 '초국적' '초국가적'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허상이었고, 9/11 이후엔 그 허상이 공개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 DC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와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는 헨리 패럴과 에이브러햄 뉴먼은 "무기화된 상호의존성"(weaponized interdependence)이라는 개념으로 논문을 써왔고, 이 개념을 구체적인 사실과 엮어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를 출간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학계, 언론계, 정부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패럴과 뉴먼의 "무기화된 상호의존성" 개념은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칩 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에게 영감을 주었고, 크리스 밀러는 "오늘날 경제 및 기술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흥미진진한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책은 우리가 궁금해하고 있던 것에 이해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미국은 왜 중국산 앱인 틱톡(TikTok)을 금지하려 하는지, 중국은 왜 수많은 미국 앱들을 금지했는지, 일본은 왜 한국 네이버가 지분 절반을 가지고 기술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LINE)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지, 미국은 왜 화웨이의 5G 교환설비를 동맹국들에게 사용하지 말라고 강권했는지, 왜 삼성은 TSMC만큼 파운드리 사업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는 설명한다.


정치는 선악을 뛰어넘는다. 정치를 통해 질서를 만들고, 만들어진 질서는 선이 지배하는 세계다. 하지만 질서 밖 또는 질서와 질서의 사이의 틈새에서는 여전히 선악을 뛰어넘는 정치의 공간이 이어지며, 이곳에서는 선(善) 즉 '착함'이라는 시선만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세계정치를 이끌어왔던 역사상 수많은 강대국들은 이러한 정치를 해왔고, 그들은 쉽사리 '착함'에 갇히지 않는다. 필자인 패럴과 뉴먼은 바로 미국, 중국 등 세계정치의 리더십을 놓고 경쟁하는 강대국들이 어떻게 일견 중립적이고 무해하게만 보이는 글로벌 경제의 기술적 장치들을 장악해 자국의 이익에 이용하려 노력하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분산되었지만, 2002년 무렵만 해도, 전 세계 인터넷통신 중 미국을 거치지 않고 세계의 두 지역을 오간 비율은 1% 미만이었다고 한다. 예컨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북부의 어느 도시로 용량이 큰 이메일을 보낸다고 했을 때, 이 이메일은 미국의 마이애미를 경유해서 이동하게 된다. 브라질 내의 느려터진 구리선을 이용하는 것보다 미국을 경유하는 초고속 광섬유 케이블을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가까운 지리적 거리가 아니라 가까운 시간 거리를 선택한다. 0.01초라도 빠른 곳을 선택하는 것이 인터넷이기 때문에 '브라질-브라질' 루트보다 '브라질-미국-브라질' 루트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패럴과 뉴먼은 미국이 이런 초고속통신망을 미국, 특히 미국 정보 및 국방기관들이 밀집해있는 워싱턴 DC 북부 버지니아 지역을 집중적으로 경유하도록 유도했다고 하는데, 여기를 통과하는 광섬유는 프리즘 기술을 통해 두 개의 신호로 분리되어 하나는 원래의 경로로 이동하고 다른 하나는 신호정보를 담당하는 미 국가안보국(NSA)으로 간다. 그리고 국가안보국은 이스라엘 기업이 가진 기술을 이용해 이 광섬유를 따라 흐르는 암호화된 정보를 풀고 해석한다고 한다.


선악 구분에 구애됨 없이 오직 국익만을 챙기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패럴과 뉴먼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화웨이인데, 화웨이는 5G 설비를 싼 가격에 내놓아 세계 시장을 석권하려 했다. 심지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영국도 화웨이 제품을 도입하려 했다. 당시 5G 설비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는 노키아, 에릭슨, 화웨이 세 군데뿐이었다. 화웨이는 가격경쟁력이 월등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친했던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화웨이 도입을 강력히 말렸고, 이 과정에서 존슨 총리가 말을 듣지 않자 "졸도 직전까지" 격분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은 화웨이의 5G 설비를 의심했다. 첨단 5G 설비를 악용하면 세상을 감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패럴과 뉴먼에 따르면, 화웨이는 마오쩌둥식으로 농촌지역을 먼저 장악한 후 도시로 진격한다는 사업전략을 채택해 중국 국내 및 해외시장에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화웨이가 급부상한 계기로 1994년에 있었던 화웨이 회장 런정페이와 장쩌민 공산당 총서기와의 만남을 지적한다. 이 만남 자리에서 런정페이는 "저는 교환기(switch) 설비 기술이 국가안보와 연결되며, 자체 교환기 설비를 갖추지 못한 국가는 군대가 없는 국가와 같다"고 말했고, 장쩌민은 "옳은 말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화웨이는 내부 영업자료에서 자신들의 제품이 "주요 정치 인사"를 효과적으로 추적하는 능력이 있음을 홍보하라고 했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100% 알 수 없지만 미국도 중국도 '역지사지'해보니 상대방이 미심쩍어보이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미국의 최대 권력은 어쩌면 달러패권일 것이다. 전 세계가 미국의 첨단 제품-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을 사기 위해서라도 달러가 필요하며,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끼리 무역을 하기 위해서라도 달러가 필요하다. 그래서 모든 기업들은 달러를 필요로 하고, 모든 나라의 은행들은 달러로 표시된 미국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달러로 해외송금한다는 것은 이름만 '송금'이지 사실은 미국 은행들 사이의 액수 기록 변경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1만 달러를 보내도 결국은 미국 은행시스템 안에서 계좌 사이 액수가 변경되어 기록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즉, 글로벌경제에서 활동을 하려면 우리가 속해있는 나라의 은행들이 온전하게 작동하는 미국내 은행계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바로 이 미국내 은행계좌를 동결시킬 힘이 있고, 이를 통해 전세계 금융권을 통제할 수 있다. 이 은행계좌가 동결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되면 그 은행은 글로벌 경제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뱅크런'을 맞아 파산위험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계좌가 작동하지 않는 국가는 외국과 물물교환만을 해야 한다. 무역흑자라는 것은 어려워지는데, 즉 우리나라가 상대방 국가로부터 명태만 살 수 있다면, 상대방이 팔 수 있는 명태 액수만큼만 우리의 자동차, 핸드폰을를 팔아야 한다. 교역이 제한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현대국가는 감시를 중시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대국가는 '보이지 않게 보고 들리지 않게 듣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비단 현대국가뿐만이 아니라 강대국들이 제국을 만들기 위해 가져야하는 기본적인 능력이며 권력이다.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는 바로 이 '보이지 않게 보는' 힘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경쟁을 조명한다. 경제안보의 필독서인 이 책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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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

352쪽

헨리 패럴 & 에이브러햄 뉴먼 저

박해진 엮음/김동규 감수

PADO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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