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5 14:32
2023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등록된 사람들의 숫자는 전체 인구의 5퍼센트를 넘어선다. 다시 말해, 통계적으로 한국 국민 스무 명 중 한 사람은 이런저런 신체적 불편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인데, 막상 거리를 걸으면서 이 통계적 빈도에 걸맞을 정도로 장애인을 자주 마주치게 되지는 않는다. 물론 장애의 범주와 정도가 워낙 다양하기에, 스쳐 지나가며 타인의 장애 여부를 알아차릴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며 중증 장애인들은 바깥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장애인들이 우리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이 장애인들에게 결코 편안하게 개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안한 거리, 위험한 건물들 사이를 오가는 것은 아직도 많은 장애인에게 몸과 마음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의 도전이 되고 있다.
게다가,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심리적, 사회적 인식의 벽 역시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세상으로 나오기를 망설이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예전에 비하면 많은 부분에서 개선되기는 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맞닥뜨리는 편견과 고정관념은 아직도 무시하기 어려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장애인들의 인권이 훨씬 더 존중된다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선입견을 재생산해 왔다. 장애인을 불완전하고 열등한 존재로 사고한다거나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규정하는 일방적 관점은 장애인들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건강한 교류를 가로막는다.
청각 장애와 시각 장애를 동시에 지닌(데프블라인드) 시인인 존 리 클라크(John Lee Clark)의 2022년 시집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How to Communicate)는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나타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들추어내고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시집의 곳곳에 스며 있는 시인의 유머 감각과 상상력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피어나는 강렬한 예술적 힘을 전해 준다. 특히, 클라크는 촉각을 통한 바깥세상과의 관계 맺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비장애인에게 익숙한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소통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를 열정적으로 펼쳐 보인다.
존 리 클라크 - 내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번역: 조희정)
내 팔을 놓아 주시오. 이건 엘리트
단골 탑승객의 팔이오. 난 기다리지 않을 거요,
내가 비행기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 될 때까지.
저리 가시오. 나는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소.
뭐라고요? 나는 그 휠체어가 필요하지 않소.
괜찮아요. 걷게 두시오.
내 머리에 기록돼 있는 물들 사이의
벽들로부터 내 섬유 유리 지팡이가
튀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해 주시오.
뭐라고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을 거요.
나를 그냥 두시오. 나는 내 가방이
무슨 색인지 모르지만 상관없소.
아니, 그걸 찾는 데 엄청나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저리 가시오. 나는 화물 운반대 근처
여기에 무릎꿇고 앉아 있어도 괜찮소. 아니. 아니.
맞아요. 알겠소? 알겠소? 내가 당신한테
엄청나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말했잖아요.
이제 부디 저리 가겠소?
뭐라고요? 나는 당신의 도움을 원치 않아요.
공항 셔틀이 공기를 뒤로 밀기 직전에
공기가 빨려들어 멀리 가는 것을 느끼게 두시오.
저리 가시오. 내 팔을 놓아 주시오.
나는 당신의 지지대가 되지 않을 거요.
필요 없소, 필요 없소. 나는 혼자
내려갈 수 있소. 내가 가게 두시오. 내가 집에 가게 두시오.
저리 가시오. 내가 햇살 속에서
내 뒤로 가방을 굴리면서 걷게 두시오.
내가 여기서 약간 방향을 바꾸어 잔디 위로
걸어가게 두시오. 아니, 나는 길을 잃지 않았소.
저리 가시오. 내가 내 방식으로 봄이라는 것을
알아내게 그냥 두시오.
(시집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가 2023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라 시인이 발표를 하는 모습. 촉수화 통역가 다섯 명이 돕고 있다.)
시는 처음부터 "내 팔을 놓아 주시오"라는 시인의 외침으로 시작된다.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시인은 비행기와 공항의 물리적 환경에 너무나 익숙한 "엘리트 단골 탑승객"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도움이 필요한 약자로 제멋대로 규정하면서 청하지 않은 손길을 불쑥 내민다. 시인의 팔을 붙잡아 끄는 오지랖은 나름의 선의에서 나온 것일지 모르지만, 스스로 충분히 비행기에서 내려가 공항에서의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시인에게 그런 오지랖은 귀찮고 불편할 뿐이다. "나는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소"라는 시인의 말은 이 상황이 감각적인 답답함을 넘어서서 그의 능력과 성취를 인정받지 못하는 듯한 불쾌감까지 가져온다는 의미를 담아낸다.
심지어, 시인은 시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내 팔을 놓아 주시오"라는 말을 반복한 후에 "나는 당신의 지지대가 되지 않을 거요"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를 통쾌하게 역전시킨다. 시인은 혼자서도 견고하고 든든하게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존재이며, 그런 그에게 요청하지 않은 손을 함부로 얹는 것은 오히려 시인에게 의지하려는 몸짓으로 해석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장애인 역시 길을 걸으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이 무턱대고 팔을 잡아끌고 가는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필요 없는 도움은 그저 짐으로 느껴질 뿐이며, 자유로운 보행의 권리와 그에 따르는 자존감을 묵살해 버리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사실, 상대방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능력치를 마음대로 판단하고 원하지 않는 도움을 억지로 주는 것은 일종의 '미세 공격'(microaggression) 혹은 '먼지 차별'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미세 공격'이란 대놓고 이루어지는 노골적인 차별적 언사나 행위가 아니라 일상에 만연한 사소하고 은근한 편견과 차별을 뜻하는 용어다. 클라크는 이 시 전체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자주 '미세 공격'에 노출되는지를 한탄과 유머가 섞인 어조로 전달하면서 이런 미시적인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발한다. 그래도 도움을 주는 것이 무관심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한 개인의 정체성을 제멋대로 규정한 상태에서 내미는 도움의 손길은 상대방의 정신세계에 반복적으로 상처를 내는 일종의 폭력으로 변질되기 일쑤이다.
이 시는 장애를 지닌 시인이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그가 예민한 촉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지팡이"는 시인에게 몸과 세상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가 되며, 시인은 이 "지팡이"로 주변을 두드려 앞길을 헤쳐 나갈 뿐 아니라 그가 가진 고유의 상상력으로 세계를 재구성한다. 넘나들어서는 안 되는 "벽들"의 위치를 "지팡이"가 "튀어 오르는 것"을 통해 파악하면서, 시인은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시인은 "계단"을 맞닥뜨려도 당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주위의 쓸데없는 조언을 뿌리친 채 아래쪽을 향해 발을 디딘다. "화물 운반대"에서도 시인의 섬세한 촉각은 위력을 발휘하여 수많은 여행 가방 사이에서 자신이 찾는 가방을 정확하게 집어들 수 있게 해 준다.
"공항 셔틀"이 출발하는 순간을 "공기가 빨려들어 멀리 가는" 움직임을 통해 포착하는 시인의 모습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렇게 비장애인이 이입하기 어려운 섬세한 감각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이 시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결코 다수의 사람들이 익숙한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운다. 그러니, 시의 마지막에서 도로를 벗어나 "잔디 위"로 걸어가는 시인이 길을 잃었다고 단정짓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얼마나 오만한 것일까? 따스한 "햇살 속에서" 지팡이와 발, 그리고 굴러가는 여행 가방의 감각으로 땅과 풀을 한껏 느끼며 "봄"의 도래를 자신의 방식으로 알아내는 시인. 그가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너무나 충만하며 아름답다.
원문: ON MY RETURN FROM A BUSINESS TRIP
Let go of my arm. This is the arm
of an Elite Frequent Flyer. I will not wait
until I'm the last person on the plane.
Go away. I never asked for assistance.
What? I don't want that wheelchair.
I'm fine. Let me walk.
Let me feel the spring
of my fiberglass cane off the walls
between my mind's charted waters.
What? I don't want the elevator.
Leave me alone. I don't know what color
my bag is and I don't care.
No, it won't take me forever to find it.
Go away. I'm fine kneeling here
near the luggage conveyor. No. No.
Yes. See? See? I told you
it wouldn't take forever.
Now will you please go away?
What? I don't want your help.
Let me feel the air sucked away
just before the shuttle pushes it back.
Go away. Let go of my arm.
I'm not going to be your pole.
No need, no need. I can step off
by myself. Let me go. Let me go home.
Go away. Let me walk
with my bag rolling behind me in the sun.
Let me veer off a bit here and step
onto the grass. No, I'm not lost.
Go away. Let me find out that it's spring
in my own way.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