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억압을 피한 '이주민'의 삶: 아파트 '사이'를 떠돌던 시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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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드 라 파즈의 시집 <이주민의 소네트>(2023) 표지. /사진제공=Liveright Press

2024.12.2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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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에서 공간성은 큰 지분을 차지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은 부분부분 떠오르는 집안과 골목, 놀이터 등 구체적인 공간의 모습과 얽혀 있기 마련이기에, 그 공간을 배제하고 추억을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추억을 든든히 지탱해 주는 과거의 공간은 상당 기간 안정성을 가지고 머물렀던 곳인 경우가 많다. 방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의자에서 책을 읽던 기억, 부엌의 식탁에 가족과 둘러앉아 밥을 먹던 기억, 마루에서 TV를 보다 스르르 잠들던 기억,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기억. 이 모든 일상적 기억의 배경에는 삶의 오랜 터전이었던 물리적 공간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올리버 드 라 파즈(Oliver de la Paz)의 2023년 시집인 <이주민의 소네트>(Diaspora Sonnets)는 이런 공간적 경험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모국을 떠난 "이주민"이 되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발을 들일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감정은 아마도 낯선 이질감과 그에 따른 두려움일 것이다. 더구나, 타국으로의 진입이 스스로 원해서 내린 결정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에서 비롯된 경우, 새로운 공간에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삶은 한층 더 심한 불안감을 준다. 드 라 파즈는 이 소네트 연작을 통해 1972년 마르코스(Ferdinando Marcos)의 계엄령 당시에 필리핀을 떠나온 자신의 가족이 미국에서 겪었던 '떠돎'의 경험을 실감 나게 전달한다. 미국의 여러 주를 오가며 안정된 공간에 정착하기 위한 분투를 계속하던 어린 시절의 생생한 기록은 이주민의 삶에 깃든 애환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해 준다.


올리버 드 라 파즈 - 아파트 임대 사이를 떠도는 이주민의 소네트 (번역: 조희정)

무엇이 우리 어린 시절의 문법을 만들었던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집에서 엉성한 집으로


옮기는 것이, 우리 사이에서 만들어진 의미였지, 여기

저기로, 또 어디든 아니면 언제든


우리는 옮겨 다녔다. 창문을 만지면 쓰라렸다.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판자를 밀어서 푹 꺼진 곳이


먼지 속으로 물러나게 했다. 외벽의 어두운 그림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 형태를 통해, 말했다 "여기


내 몸이 있어." 그건 말했다, "여기서 비가 물결치는 숲을

가로질러 움직이지, 말이 평원을 관통하며 다니듯이."


아버지의 말은, 불안정한 토대였다.

주거지는 내 귀를 지나 달려가는 문장들 속의


명사였다. 동사는 가족이었고—

목적어는, 쓸고 닦고 나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시인이 회상하는 어린 시절은 어딘가에 머무른 기억보다는 옮겨 다닌 기억들로 가득하다. 일정한 공간에서의 지속적인 일상이 아니라 수많은 공간들 '사이'의 경험이 삶의 "문법"이 되었고 가족이 공유한 "의미"가 되었다.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옮기기 위해 여러 번 이사를 한 것이라면, 이렇게 자주 거주지를 바꾼 기억조차도 기쁨이나 기대감 등의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가족에게는 이런 행운이 허락되지 않았고, 이들은 집을 떠나 "엉성한" 다른 집으로 향하기를 고단하게 반복하면서 미국 사회의 변두리에서 겉도는 이주민의 삶을 이어나갔다. 제목에 "소네트"라는 단어가 들어 있고 14행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분명히 소네트라고 볼 수 있지만, 보통 14행이 하나의 덩어리로 구성되는 전통적인 소네트와 달리 2행씩 분절된 이 시의 형식은 연속성 없이 계속 단절되는 삶의 경험을 담기에 매우 적합하다.


시의 중반에 등장하는 아파트에 대한 묘사는 새로이 만난 주거 공간에서 어린 시절의 시인이 느꼈던 불안감을 여실히 보여 준다. '아파트'가 욕망의 아이콘처럼 되어 버린 한국 사회와는 달리, 미국에서 '아파트'는 서민들이나 단기 체류자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맨해튼 같은 도심에 고가의 아파트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보통의 '아파트'는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교외의 단독 주택 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함의를 가진다. 이런 '아파트'에서 또 다른 '아파트'로 옮겨 가서 소년이 만나는 새로운 주거지는 낡고 낙후된 상태로 묘사된다. 아마도 목재로 틀이 만들어져 있을 "창문"은 마감이 말끔하게 되지 않아 만지면 "쓰라리게" 한다. "창틀"이 아니라 "창문"을 "쓰라림"과 연결한 문장을 통해, 이 "쓰라림"이 단지 손으로만 느끼는 감각만이 아니라 집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소년의 마음속에 담긴 실망감, 낯섦, 좌절감 등의 복합적인 정동을 표현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아파트의 내부는 허름하게 낡아 있어서 "판자"가 여기저기 꺼져 있고 "먼지"로 뒤덮여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부실한 집안의 모습을 보면서도, 어린 시절의 시인은 이 공간이 적어도 "비"로부터 자신과 가족들을 지켜낼 수 있는 거대한 "몸"을 가진 존재라고 상상해 본다. 아파트 "외벽의 어두운 그림자"는 소년에게 두렵고 낯설게 다가오지만, 소년은 상상력을 통해 새로 만난 집에 말을 걸면서 친근한 관계를 맺어 보려고 시도한다. 소년의 이런 시도는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한 "토대"인 아버지의 "말"과 연결된다. 새로 이사할 아파트가 낡아서 삐걱거리고 허름하기 짝이 없어도,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가족이 살아갈 공간을 정리하고 내벽을 고르게 만든다. 그다지 오래 그곳에 머물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새로운 집이 가족들에게 보금자리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도 시인은 이런 아버지의 노력, 그리고 그런 노력을 담은 아버지의 "말"이 가족의 삶 속에서 지속적인 의미를 생산해 내기에는 지극히 "불안정"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아챈 것으로 보인다.


시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삶에 대한 언어적 비유로 다시 돌아가 "주거지"라는 단어가 귀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문장에서 "명사"로 사용되었다고 말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주거지"라는 이 명사를 현실에서 얻어내기 위해 가족은 "동사"가 되어 계속 움직였을 것이다. 이런 분투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기억 속에 남은 많은 아파트들은 가족들에게 끝내 온전한 "목적어"가 되어 주지 못한다. 짧은 거주 기간이 지나 이사를 나오면서 "쓸고 닦고 나면", 아파트는 더 이상 "흔적"을 남기지 않고 허무하게 사라져 갈 뿐이다. 이 대목에서, 수많은 아파트와의 헤어짐과 만남 속에서 불안하게 떠돌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허망한 느낌이 강하게 실린다.


과거를 재구성해 보면, 이 고통스러운 이주의 기억들은 시인의 가족이 "이주민"이 되게 한 근원적인 첫 이주인 필리핀으로부터의 도피로까지 이어진다. 모국에서 영위하던 일상의 "흔적"을 지우면서 낯선 미국이라는 나라로 향해야 했던 선택은 결코 이들이 원하거나 갈망했던 것이 아니었다. 1972년 마르코스의 계엄령은 그 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독재와 권력 남용, 부정부패로 이어졌고, 시인의 가족은 이런 억압적 상황을 피하고자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이주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 이후 쉽사리 안착하지 못하고 미국 사회의 변두리를 떠도는 이들의 삶에 서린 고통과 비애를 읽으면서, 정치 체제의 변화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새겨 보게 된다.

원문: Diaspora Sonnet Traveling Between Apartment Rentals

What made the grammar of our early years,

moving from place to place, house to flimsy


house, was the meaning made between us, here

and there, and wherever or whenever


we moved. The windows chafed. Father pushed boards

with his palm to make the concavity


recede into dust. The blight in the siding

spoke loudly. In its shape, it said "Here is


my body." It said, "Here the rain moves across

the rippled wood like a horse through the plains."


My father's words, shaky foundations:

shelter was a noun in sentences racing


past my ears. The verb was family —

the object, swept and scrubbed, leaving no trace.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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