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4 14:45
똑같은 장소에서 주변을 둘러볼 때 우리는 과연 각자 같은 것을 보고 있을까? 다양한 물건들이 즐비한 백화점에 가면 사람들의 눈길은 평소 관심이 있던 서로 다른 상품을 향하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털이 풍성한 겨울 코트에, 누군가는 해상도 높은 TV에, 또 누군가는 신제품 테니스 라켓에, 각각 눈과 마음이 쏠릴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그 어떤 물건에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본다'는 행위는 그래서 늘 선택적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바라볼 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과 느낌 역시 각양각색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또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실 바쁜 일상을 살면서 이런 종류의 물음을 던져 보고 깊은 성찰을 하기는 쉽지 않다. 시, 그리고 문학이 지니는 큰 잠재력 중의 하나는 평소에 무심히 어딘가를 향하던 우리의 시선이 무엇을, 또 어떻게 바라보는지 점검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위에서 들었던 백화점에서의 예처럼 그저 각자의 취향이나 관심 때문에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주변을 관찰하면서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넘겨 버린다면 그런 무심함의 축적은 생각지 못한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집 '성가신 것들'(Vexations)로 2023년 전미도서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애널리즈 젤먼(Annelyse Gelman)이 '기후'(The Climate)라고 제목을 붙인 시는 젤먼이 평소 자주 다루는 주제인 기상 변화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가 강력하게 제기하는 질문은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 있는 어떤 중요한 조짐을 과연 우리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할 때, 혹은 제대로 된 방식으로 보지 않을 때, 머지않아 마주할 미래는 예상치 못했던 매우 두려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들려주고 있다.
애널리즈 젤먼 - 기후 (번역: 조희정)
그건 마치 파도가 한참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 같았어, 너무 거대해서
처음엔 파도가 전혀 아니고,
그저, 정지되고 단일한, 수평선이지,
그래서 누군가는, 아마도, 해변의
다른 것들로 주의를 돌리는 게 가능했을
것이고, 바다를 아예 등질 수
있을 것이고, 쌓여서 굴이 뚫린,
모래 쪽을 대신 향할 수도 있을 거야,
자외선차단제를 바른 손은, 책을
찾아 더듬거리고, 실은, 그 책,
그 문장, 그 구문을, 태양은
그 페이지를 창백하게 하고, 아마도, 땀과,
노동하지 않는다는 끈적한 즐거움으로
물들어서, 그렇지 않으면 노동해야 할
때에, 스스로 허비하는,
퇴폐적인 무용(無用)함의 즐거움,
물론, 항상 어떤 응급 상황에 대해
불안해할 테지만, 말하자면,
해변으로 끌어와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숨을 불어넣어야 하는 저류에 갇힌
아이, 바람 빠진 풍선에
모든 게 달려 있기에, 아마도,
그 작은 몸 위로 굽혀서, 그 아이가
일어나서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자기 크기만 한
그림자를 드리우고는, 볼 수조차 없을 테지,
비록 누군가가 그것이 올 것이라는 경고를
당연히 받았다 하더라도, 저 파도의
그림자는, 마치 새로운 하늘처럼, 이미
머리 위에 있고 심지어 이젠 하강하네.
시의 첫 부분에 나타난 "파도"는 한참 멀리 있기에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이 "파도"는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눈길을 끌지 못한다. 마치 "수평선"처럼 바다의 풍경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파도"의 모습은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바다 쪽을 계속 바라보며 "파도"가 보여주는 조짐에 집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대신, 그는 "해변의 다른 것들로 주의를 돌리거나" 아니면 "바다를 아예 등진" 채 뭍을 향해 서서 모래사장에 시선을 맞춘다.
이렇게 "파도"가 보여주는 거대한 조짐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정체성은 "자외선차단제를 바른" 그의 손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자외선차단제"는 유해한 태양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중요한 문명의 발명품이지만, 이렇게 인간이 만들어낸 안전한 틀 안에 들어가 있는 이들은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식별할 수 있는 자생적인 능력을 많은 부분 잃어버린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파도"를 직시하고 다가오는 큰 변화를 예감해야 할 때에 "누군가"는 "책"을 찾아 더듬거리며 "문장"과 "구문"을 통해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자연 속에 있어도 자연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이런 상황은 현대 사회를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매우 친숙하다. 오감을 통해 자연과 만나기보다는 글로 정리된 내용을 한 번에 읽는 것이 훨씬 편하고 능률적인 방식이 되어 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노동"에서 벗어나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누군가"에게 이 시간은 그저 "퇴폐적인 무용(無用)함의 즐거움"을 한껏 들이킬 수 있는 기회로만 다가온다. 자연에서 감지되는 변화에 무심한 채로 그는 "노동하지 않는다는 끈적한 즐거움"에만 온통 물들어서 해변으로 다가오는 "파도"의 거대한 움직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바다에서 갑작스럽게 사고가 발생하여 "응급 상황"이 닥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변한 어린아이가 구조되는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이 개별적인 사건 자체에 몰입하고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 이런 사건이 앞으로 도래할 훨씬 거대한 문제의 조짐이라는 점을 "누군가"는 결코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시의 첫 부분에 등장했던 커다란 "파도"는 "새로운 하늘"처럼 모두의 머리 위로 올라가 "하강"하기 시작한다. 기후 위기를 다루는 이 시의 맥락에서 본다면, 이 부분은 지구온난화에 따르는 해수면의 상승 현상을 매우 극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파도"는 이제 쓰나미가 되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해변을 덮친다.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 시인은 시 전체에 걸쳐 독자에게 변화와 재앙의 조짐을 감지하라고 호소한다. 이 시는 "누군가"가 될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는 방법을 배우라고 간절히 촉구하며, "파도"의 위협을 인지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주변을 주의 깊게 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을 자각시킨다. 결국, 미래를 향한 모든 실천은 의미 있는 "보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 The Climate
It was like watching a wave approach
from a great distance, so great
that at first it is not a wave at all, but
a mere horizon, static and singular,
so that one, it being possible, presumably,
to avail oneself of the diversions
of the beach, might turn one's back
on the ocean altogether, might turn instead
to the sand, heaped and tunnelled,
the sunscreened hand that fumbles
for a book, indeed, the book,
the sentence, the syntax, the sun
blanching the page, stained, perhaps,
with sweat, the creamy pleasure
of not-laboring, when one would otherwise
labor, the pleasure of wasting
oneself, of decadent uselessness,
though one might, of course, always alarm
to some emergency, a child caught
in the undertow, say, who must be
dragged to shore and breathed into
like an empty balloon, an empty balloon
on which everything depends, might,
bent over the small body, waiting for it
to rise, to float, casting a shadow
the size of oneself, not even see,
though one was, of course, warned
it would come, and soon, the shadow
of that wave, like a new sky, already
overhead and even now descending.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