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지정학

서방 기업들의 새로운 전략 'ABC'(애니씽 벗 차이나)

미중 긴장이 고조되면서 더 많은 테크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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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뉴스1

2025.02.21 16:07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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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경제가 '디커플링'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라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가 중국산 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이 제3국으로 우회해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것도 막겠다고 합니다. 중국이 전 세계의 제조업 중심이 되었던 것을 해체해나가겠다는 것이고, 중국의 제조업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가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임금이 높고 생산 여건이 다른 미국으로 모든 공장이 옮겨갈 수 없습니다. 미국으로 되가져가는 '리쇼어링'(reshoring)이 어려운 공장들은 인건비가 좀 더 낮은 동맹국들로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벌써 중국의 미국기업 공장을 다시 한국에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중국과 서방의 경제권이 어느 정도 '디커플링' 된다면(물론 완전한 디커플링은 없습니다.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도 영국과 독일 경제는 엉켜 있었습니다), 한국 경제가 그 수혜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한국경제가 영리하게 움직인다면 중국이 빠진 서방경제권에서 제조업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함정 갭'을 신속히 채워넣어야 할 미국 정부와 미 해군은 한국과 일본의 조선소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짧은 기간 안에 그 함정 갭을 메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미국이 맡기 어려운 제조업 부문을 한국이 맡게 된다면 한국경제에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 2월 17일자 기사는 ABC(Anything But Chia)라고 표현했는데, 이 'ABC'에 따라 공장들이 로우 테크쪽은 베트남 등으로 이전할 수 있겠지만, 좀 더 높은 기술을 요하는 부문은 한국, 일본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ABC 파도를 한국 경제가 올라탈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들의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점점 더 많은 서방 테크 기업들에게 '애니씽 벗 차이나Anything But China'가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근래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졌다고 판단하여, 중국 기반 공급업체를 다른 국가의 공급업체로 보완하는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추구했다.


이제 미중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많은 테크 기업들이 중국에서의 생산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다른 지역의 공급업체를 물색하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글로벌 테크 업계가 점점 더 양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기업이 중국을 대체할 곳을 찾고 있어요." 중국을 떠나는 많은 테크 기업들이 찾는 말레이시아의 반도체산업협회장 웡시우하이가 말했다. "기업들은 사업 전략을 재설계하고 있어요. 이젠 (재고를 최소화하는) '적시 생산just-in-time' 전략의 시대는 갔어요. 일각에선 새로운 전략을 '만일을 대비한just in case' 전략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추세는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가치 사슬value chain을 올라갈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많은 중국 공급업체들이 서방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국경을 넘어 공장을 설립하면서 더 빠른 속도로 해외 진출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중국의 가혹한 코로나19 봉쇄로 인해 아이폰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제품 생산에 차질을 겪자 서방 기업들은 베트남과 인도 같은 곳으로 대거 생산 기지를 이전하기 시작했다.


그 이래로 미래의 가장 중요한 기술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미중 간의 경쟁으로 이러한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테크 기업 임원들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로 중국으로부터의 다각화 압박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트럼프는 최근 모든 중국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했으며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애니씽 벗 차이나' 트렌드는 미중 기술 마찰의 핵심인 반도체 관련 제품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 2년간 미국은 중국이 최첨단 반도체와 장비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해왔으며 한편으로 중국 반도체 국산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중국은 이전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서버 생산 허브였다. 하지만 2022년 10월 미국이 인공지능 칩의 중국 수출을 제한한 이후, 멕시코와 말레이시아 같은 곳에서 조립되는 AI 서버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


미국에서 칩 생산에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풍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530억 달러(77조 원) 규모의 미국 칩스CHIPS법 자금 지원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제조를 확장하는 게 금지된다.



칩 장비 제조업체들과 그 공급업체들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24년 11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와 램리서치Lam Research가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직접 공급망에서 중국 기업들을 제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전력 시스템과 기타 부품을 제조하는 어드밴스드에너지인더스트리즈Advanced Energy Industries는 2025년 7월까지 자사의 세 번째 공장이자 중국의 마지막 공장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덴버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지난 2년간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필리핀과 멕시코로 옮겨왔다고 CEO 스티븐 켈리가 말했다.


"이는 상당 부분 우리 고객들이 우리가 중국에서 제조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했다. 회사 대변인은 이번 조치가 활용도가 낮은 공장들을 폐쇄하고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탈중국 현상은 스마트폰부터 노트북까지 소비자 기기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의 연례 조사에서 360개 이상의 응답 기업 중 30%가 제조를 위한 대체지로의 이전을 고려하고 있거나 이미 시작했다고 답했다. 기술 및 연구개발 기업의 약 4분의1은 이미 공급망을 중국에서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중국과 비슷한 노동력 비용과 에너지 비용을 가진 동남아시아 지역은 서방 테크 기업들이 자사의 최첨단 반도체, AI 서버, 소비자 기기의 생산과 조립을 이전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동남아시아 정부간 기구인 아세안ASEAN의 데이터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18년 1550억 달러(225조 원)에서 2023년 2300억 달러(334조 원)로 증가했다.


인텔,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같은 칩 제조업체들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제조시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본사를 둔 노트북 제조업체 HP는 지난 3년간 태국에 휴대용 컴퓨터 조립을 위한 생산 시설을 추가했다. 말레이시아 페낭에 위치한 공장에선 이제 최첨단 AI 서버가 생산된다.


이로 인해 2024년 말레이시아의 반도체, 컴퓨터 및 기타 전자제품 수출이 1370억 달러(200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미국으로의 수출이 크게 확대되었다. 2023년 기준으로 중국은 세계 노트북 컴퓨터의 거의 전부를 생산했다. 올해 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중국의 세계 노트북 생산 점유율이 80%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며 베트남과 태국이 점점 더 많은 노트북을 생산하고 있다.


태국의 노트북 수출은 지난 4년간 약 8배 증가했다.


서방 기업의 탈중국 움직임으로 동남아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베트남은 이제 반도체 산업 투자도 유치하려 한다.


최근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반도체 포럼에서는 수백 명의 참석자들과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들의 임원들이 베트남을 가치 있는 파트너로 소개하는 베트남 고위 관리들의 발표를 듣기 위해 컨벤션 센터에 모였다. 정부는 세금 감면을 제안하고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엔지니어 5만 명 양성을 목표로 정했다.


2024년 12월, AI 칩 대기업 엔비디아는 베트남에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본사를 둔, 자동차 및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사용되는 고급 칩을 설계하는 마벨테크놀로지Marvell Technology도 베트남의 엔지니어링 인재풀을 활용하고자 한다고 마벨 베트남 법인 총괄 꽝담 레가 밝혔다. 마벨은 지난 1년간 베트남의 엔지니어 인력을 300명에서 470명으로 늘렸으며 향후 몇 년간 인원을 매년 20%씩 늘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레는 말했다.


반면 마벨은 2022년 10월 글로벌 연구 활동 재조정의 일환으로 중국의 연구개발 인력을 감축했다.


한편 많은 중국 기업들도 서방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중국을 떠나 해외에 자회사와 공장들을 설립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용 광학 송수신기 제조업체인 중국의 이옵토링크테크놀로지Eoptolink Technology는 해외 고객에 대한 공급을 늘리고 악화되는 미중 관계의 여파를 피하기 위해 태국 공장을 확장했다.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메타플랫폼스Meta Platforms와 아마존 같은 주요 기술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이 회사는 고객들이 중국에서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외 생산능력을 확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노트북 컴퓨터, 태양광 패널, 산업용 기계용 납땜 재료를 생산하는 중국 선전 소재의 바이탈뉴머티리얼Vital New Material은 많은 고객사들이 중국을 떠난 후 동남아시아와 멕시코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중국이 보유한 강력한 인프라, 공급업체, 노동력의 생태계에 버금갈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말레이시아 페낭 소재의 반도체 장비 위탁제조업체 케미콘Kemikon의 CEO 마르셀 위스머는 중국을 떠나는 것이 공급업체들에게 최대 15%의 추가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중국 제조업을 이기긴 어려워요." 위스머가 말했다. "비용, 수량, 납기 면에서 중국을 이길 수가 없죠."


IDC 애널리스트 마리오 모랄레스는 장기적으로 볼 때 새로운 생산 라인을 만드는 게 더 많은 비용과 리스크를 수반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크 산업 공급망의 가치는 이미 1조 달러(1450조 원)를 넘어섰어요." 그가 말했다. "그 정교함과 복잡성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 이는 생산기지를 옮기는 기업들에게 더 큰 도전이 될 겁니다."


1889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지. USA투데이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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