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양성을 넘어서: 킴 드 로리존의 『블루트부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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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드 로리존의 소설 '블루트부흐' 표지. /사진제공=Dumont

2025.03.1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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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일, 독일에서는 성별 자기 결정법이 시행되었다. 의료 소견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며, 성인이라면 부모 동의 없이 성별을 변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 스페인 등 여러 국가들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 법안은 독일 내에서도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분명한 시대적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외쳤던 68혁명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가부장제, 일부일처제 등 기존 사회의 가족제도를 재구성하고자 하였으며 이분법적인 양성(兩性) 제도에 억눌린 성의 해방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는 파시즘으로부터의 저항과도 연결 지어 이해될 수 있었다. 둘째, 1990년대의 3차 페미니즘 물결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특징일 뿐이며, 젠더는 결코 고정적이지도, 심지어 이분법적이지도 않다는 의견이 두드러졌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성 정체성 및 지향성도 함께 주목되었는데, 여기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논 바이너리(남성,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음), 젠더 플루이드(유동적 전환) 등이 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는 인터섹스를 제3의 성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카테고리 "divers."가 생겼다. 인터섹스란 유전, 해부학적으로 전형적이지 않아 남성/여성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모호한 신체적 성 발달의 유형이다. 이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의료계에서 이를 기형으로 인식하여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집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인터섹스를 또 다른 하나의 개체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으며, 이를 제3의 성으로 명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24년 11월, 앞서 언급하였듯이 자신의 성별을 여성, 남성, 제3의 성, 공란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남성 / 여성 - 이분법적 파시즘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주목을 받은 소설이 있다. 바로 2022년 출간된 킴 드 로리존Kim de l'Horizons의 『블루트부흐Blutbuch』이다. 소설은 주인공 킴Kim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게 전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며, 미처 말하지 못했던 논 바이너리 정체성 및 그의 여러 혼란과 경험이 상세하게 서술된다. 이 소설이 2022년 독일, 스위스 문학상을 수상하자, 작가 로리존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증오에 반대하고, 사랑 그리고 몸 때문에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의 투쟁을 위해"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외쳤던 68혁명이 다시금 떠오르는 이 문장은 논 바이너리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소설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아이는 묻는다. 언제 결정해야 할까? 남자가 될지 여자가 될지? [...] 사람들은 묻는다. 넌 뭐야? 남자야 여자야? 그는 다른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 아이는 묻는다. 이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1


여기서 화자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성별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결정되는가? 독자들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단연 생물학적 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XX / XY 염색체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여기에는 호르몬 및 1, 2차 성징의 변화도 포함된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성별은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질 법한 성별 구분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내가 만약 인간 없이 동물들과 함께 섬에서 자랐다면 어떻게 움직였을까? 아마 동물처럼 움직였을 거다. 소처럼, 뱀처럼, 쥐처럼 또는 여러 동물처럼 움직였을 거다."2


화자는 자신이 동물들의 세계에서 존재하였다면 그들과 비슷한 몸짓을 취하고, 그에 걸맞은 규범에 맞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인간은 어떠한 사회인지에 따라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사비네 쉐플러Sabine Scheffler는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요소로 사회적 규범 및 억압과도 같은 개념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즉, 인간 존재에 있어서 사회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섬이 아닌 곳에서, 항상 신체 언어의 이분법적 파시즘 중간에 있는 나의 팔과 다리는 횡설수설한다."3


그러므로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존재하는 화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를테면, 남성/여성, 즉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자신을 규정하고, 그에 따른 행동 양식에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를 '이분법적 파시즘'이라고 표현하며 저항한다. 남성과 여성, 단 두 가지로 차이를 두는 것은 차별의 근거를 생성하기 위함이며 이는 또 하나의 권력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에 대한 억압은 인간을 불안하고 복종적이게 만든다는,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의 전언처럼, 복종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길을 잃고 헤맨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를 횡설수설하는 팔과 다리로 묘사한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몸이 억압받고 있음을, 온전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채 겪게 되는 혼란을 문학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퀴어 정체성이 아닌, 인간의 정체성

그러한 의미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퀴어 정체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 로리존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때때로 어머니들은 "우리 아이도 당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 칼럼에서 퀴어와 젠더는 매우 강조되고요. 하지만 저에게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 중, 나와 같은 모습도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논 바이너리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독자들이 소설에 공감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가 단지 퀴어 정체성 그 자체의 강조가 아닌, 인간에 시선을 두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이들은 그저 인간으로 태어날 뿐이며 성별은 사회를 통해 형성된다는 것, 즉 작가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몸이 존재하므로 인간을 단지 남성/여성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닌,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실제로 이와 연관하여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가지 카테고리가 존재하게 된 데는 번식의 이유가 크다는 연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성별의 근원이 유전적 재조합의 극대화에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생명 정치, 즉 국가가 노동력 및 인구의 재생산을 위하여 '번식'을 장려하며 통제했다고 여겼다. 이와 더불어 도나 해러웨이Donna Jeanne Haraway 또한, 생물학 자체를 사회적인 것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해부학적으로 살펴보았을 때도, 염색체로 인간의 성을 구분하기 시작하였던 19세기 이후, Y 염색체는 X 염색체에서 퇴화한 것, 다시 말해 X, Y는 하나의 염색체였다는 미국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페이지David C Page의 연구도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말한다.


"당신처럼 되면 어때요? 그냥 나입니다. 단순하죠.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만 무언가일 뿐이죠."4


논 바이너리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주인공은 그저 인간일 뿐이며 오로지 사회에서만 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온전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함을 전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그뿐만 아니라 소설 속 인물들이 '인간'으로 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분법적인 성별의 해체라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설과 현실 -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


그렇다면 현실로 돌아와, 최근 독일에서는 이러한 성별 변경 및 변화를 어떻게 적용시키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선 현재 독일 연방 보건교육센터의 성교육 자료에서는 특정한 이념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자기 결정권 및 주도권을 권장하고 있음이 명시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독일어 사용에서도 변화가 있다. 본래 독일어에는, 이를테면 남성 학생der Student / 여성 학생die Studentin / 학생들die Studenten처럼 성별을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생들을 칭하는 die Studenten이 남성 명사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며, die Student*innen으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여기에서 *은 여성, 남성 외의 다양한 성별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아버지, 어머니가 아닌 부모로 통칭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비난과 우려도 함께 뒤따른다. 우선 녹색당에서 여성에게 할당된 의석에 앉힌 트랜스젠더(법적으로는 남성)가 짙은 화장, 화려한 옷으로 자신을 표현하였던 일이 한 간에 주목을 받았다. 이에 따라 여성성과 남성성이 온전히 자리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은 오히려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화두가 되었던 여러 스포츠 분야에서도 남성 혹은 인터섹스인 선수가 여성 스포츠에서 수상을 하는 사례가 증가하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운동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다시금 비난 여론에 불을 집히기도 하였다. 결국 독일 내에서는 스포츠 분야에서도 남성/여성 구분이 아닌, 체급에 따라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호르몬과 운동 경기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여전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일상의 변화와 함께 따라오는 우려 속에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였던 것은 성별을 단지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성(생물학적 성)과 젠더(사회/문화적 성)이라는 두 개념이 명백하게 구분 지어 이야기될 수 없다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의견과도 이어진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지는 성별에 따라 교육을 받고, 이에 따른 여러 가지 사회적 규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므로, 온전한 젠더라는 것은 애초에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인터섹스가 장애로 인식되지 않았더라면, 인구의 재생산을 목표로 하는 국가의 권력이 개입될 수 없었더라면, 과연 이 사회에는 오로지 단 두 가지의 성별만이 존재했을까. 이러한 관점에서도 성별 자기 결정권은 지속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 로리존은 변화하는 흐름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부딪히고, 정체성을 상실한 채 횡설수설하는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인간으로서 그리고 여기 이곳, 인간 사회에서 말이다.



김경민은 보훔대학교에서 반영웅과 산보학을 연결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중앙대학교 독어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일현대문학을 통한 인간의 다양한 정체성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국내외 주요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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