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달러의 패권은 유지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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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뉴스1

2025.04.04 15:56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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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는 아주 큰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즉, 달러 패권의 문제점을 해소하면서도 달러 패권은 유지하려 한다는 딜레마입니다. 달러 패권을 통해 미국 정부는 국민에 대한 세금 부과라는 부담 없이 화폐를 발행해 재정적 수단을 손쉽게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이돈인 달러가 국제화폐로 유통된다는 것의 이면에는 무역적자가 있습니다. 즉, 달러패권과 무역적자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무역적자가 이뤄져 미국내 종이돈 '달러'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역적자가 심해지면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를 약화시키고 결국 달러 패권을 훼손합니다. 이것을 '트리핀 딜레마'라고 합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에 임명된 스티븐 미란은 '좁은 길'(narrow path)이기는 하지만 일견 모순된 목표들을 모두 달성하는 방법이 있다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설득력이 강해 보이진 않습니다. '트리핀 딜레마'를 도대체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아직 뾰족한 수가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3월 2일 UC버클리 경제학, 정치학 교수 배리 아이켄그린의 '에세이'를 실었는데, 필자는 단지 경제적 요소뿐만 아니라 '신뢰'라는 정치적 요소도 달러의 패권 지위 유지에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트럼프식의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의 글로벌 무역비중을 낮추면서 달러의 '쓸모'를 줄일 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도 낮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달러 패권 유지에는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요소가 있는데 트럼프가 이 모든 것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비판입니다. 이 에세이는 한 나라의 통화가 어떻게 국제화폐가 되는지 역사적으로 추적하는데, 특히 런던 금융권과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경험을 미국에 적용하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 흥미롭습니다.


달러가 과분하게도 유일한 진정한 글로벌 통화로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하려 할 때, 경제학자들은 흔히 미국의 세계 GDP 비중이나 미국 금융시장의 두터움 및 탄력성과 같은 구조적 요인들을 지목한다. 이러한 접근은 많은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낙관적 관점을 뒷받침한다. 즉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한, 달러는 계속해서 안전자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제2차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숫자가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역사가들이 말해주듯, 국제통화의 부상과 쇠퇴를 결정짓는 것은 추상적인 경제나 시장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의 행동이다. 국제 달러 체제를 만든 것도, 그 기반이 되는 제도를 구축한 것도 결국 사람이었고, 그 제도가 지속될 것인지 무너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다.


국제통화로서 달러를 낳은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마도 폴 워버그(Paul Warburg)일 것이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의 명문 은행가문인 바르부르크(Warburg, 영어식 발음으로 '워버그') 가문 사람으로서 젊은 시절 함부르크, 파리, 런던에서 국제 금융 업무를 익혔고, 1895년에는 혼인을 통해 미국의 쿤 로브(Kuhn Loeb) 은행가문에 연결되어 1902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폭넓은 국제 은행 업무의 경험을 통해 워버그는 전 세계 각지의 상인과 은행가들이 무역 신용과 투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런던을 거점으로 삼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미국도 역시 국제 신용의 대부분을 런던과 파운드화에 의존하고 있었다.


귀화 국민으로서 워버그는 미국에 대한 충성심이 깊었다. 그는 미국 경제가 런던과 파운드화에 의존하고 있어서 직접 통제할 수 없는 해외 변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점을 우려했다. 영국의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은 단순한 민간만의 역량이 아니라, 시장에 유동성과 안정성을 뒷받침해주는 영국 중앙은행, 즉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역할에 기댄 것이었다. 미국이 국제무역에서 달러의 사용을 확대하려면, 중앙은행이 없는 한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06년부터 워버그는 중앙은행 설립을 위한 공개적 논의의 선봉에 섰다. 그는 중앙은행의 핵심 기능 중 하나로, 국제 무역에 활용될 달러 표시 신용상품 시장의 육성을 강조했다. 유럽식 용어를 빌려, 그는 이 신용상품을 '무역 억셉턴스'(trade acceptances)라 불렀는데, 중앙은행이 이를 매입함으로써 '무역 신용'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구조를 구상한 것이다.


워버그는 신문 칼럼을 쓰고, 강한 독일식 억양으로 인한 말하기에 대한 불안을 이겨내며 공개 포럼에서 연설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1910년에는 조지아주 연안의 제킬섬(Jekyll Island)에서 열린 소수의 전문가 그룹 일원으로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의 초안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고, 1914년에는 초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 이사로 활동했다. 그가 마련한 규정은 연준이 무역 억셉턴스를 매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이를 통해 달러 기반의 무역 신용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1920년대 무렵, 달러 기반 무역 억셉턴스의 총액은 파운드화로 발행된 런던발 무역 신용과 맞먹거나, 일부 연도에는 이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달러가 파운드에 필적하는 국제통화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에는 연준이 억셉턴스 시장에서 철수하고 미국 내에서 금융위기와 은행 파산이 잇따르면서 파운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달러의 국제적 위상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이 서방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달러는 다시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또 다른 핵심 인물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가 등장한다. 그는 달러의 국제적 지위를 확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폴 워버그보다 훨씬 소박한 배경에서 출발했다. 부모 모두 리투아니아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행상으로 일하다 철물점을 열었다. 다소 까칠한 성격으로 알려진 화이트는 초반에는 학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1934년 헨리 모겐소 장관이 이끄는 미 재무부에 합류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이후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모든 국제 경제·금융 문제에서 재무부를 대표하는 핵심 인사로 활약하게 되며, 재무부 차관보까지 오른다. 전쟁 중 화이트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그리고 브레튼우즈 체제로 이어지는 미국판 설계도를 초안했다. 이들 제도는 전후 국제 통화 질서와 달러의 지배적 지위를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1944년 뉴햄프셔의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국제 통화 회의에서는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협상을 거쳐야 했다. 화이트는 이 회의에서 영국 대표였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플랜'의 핵심 요소들은 최종 합의문에 그대로 반영됐다.


화이트는 달러를 새로 만들어진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유일한 완전 태환 국제통화로 지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초기 초안에는 각국 환율이 금 또는 "금 태환 가능 통화"에 고정되어야 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당시 케인스의 동료였던 경제학자 데니스 로버트슨이 별 생각없이 "전후(戰後) 자유롭게 금으로 태환 가능한 통화는 사실상 달러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자, 화이트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팀과 함께 밤새 협상 초안을 수정했고, 원래의 표현인 "금과 태환 가능한 통화들"을 최종 문안에서 다음과 같이 바꿨다. "금...또는 1944년 7월 1일 기준으로 규정된 중량과 순도의 (금의 가치를 지닌) 미국 달러." 이로써 브레튼우즈 합의는 달러를 전후 국제 통화 질서의 중심축으로 명시하게 되었다.



전후 달러 지배의 시대는 물론 화이트의 노력과 브레튼우즈 제도만으로 이뤄진 결과는 아니었다. 마셜플랜을 통해 미국은 유럽에 필요한 달러를 공급했고, 이를 통해 유럽은 국제결제를 재개하고 세계경제로 복귀할 수 있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또 다른 조치를 통해 국제질서를 공고히 했다. 예컨대 의회가 국제무역기구(ITO) 가입을 반대하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결을 통해 이를 우회했다.


미국은 전후 유럽 통합과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러한 입장은 유럽 정책 결정자들에게 미국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의 통화에 의존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존재는 유럽 국가들에게 미국이 단순한 경제 파트너를 넘어 지정학적 동맹국임을 보여주었고, 미국의 안보 공약―그리고 통화―모두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여기에 더해 미국 경제의 강력한 성장세는 미국이 국제적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요인 덕분에, 1971년 '달러 고정 환율'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진 이후에도 달러의 국제적 중심 지위는 여전히 유지될 수 있었다. 그 기반에는 폴 워버그, 해리 덱스터 화이트, 그리고 그들의 미국인 동료들이 구축한 제도들이 있었다. 독립적인 연방준비제도(Fed), 미국과 주요 국가들이 함께 참여한 개방적 세계무역체제, 그리고 흔들림 없는 지정학적 동맹 구조가 그것이다. 달러의 계속된 지배력은 분명 수치적인 면—미국의 높은 세계 GDP 비중과 글로벌 금융 거래량—에서도 비롯됐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관계와 상호 신뢰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불과 몇 개월 만에, 그간 미국 달러의 지배력을 떠받쳐온 국제적 관계와 상호 신뢰를 약화시키거나 사실상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는 지난 100년 가까이 달러의 중심적 지위를 뒷받침해온 가치와 제도 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기반이 되는 제도들의 존속 가능성 자체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은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우선, 미국 경제의 예외주의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수년간 미국 경제는 다른 선진국들보다 우수한 성과를 보여왔다. 세계 유수의 테크 기업들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고,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실패를 용인하는 창업에 우호적인 문화와 발달된 벤처캐피털 생태계는 혁신을 뒷받침해 왔으며, 외국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힘도 여전히 강력하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미국의 공공 연구기관과 대학의 연구 역량은 현재 심각하게 축소되고 있으며, 고급 기술 인재들이 앞으로도 여전히 미국을 자신들의 이민처로 선호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정책의 불확실성과 법치주의에 대한 의문은 미국을 좋은 투자처로 바라보는 시선에도 점차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50년대 초반 18%에 달하던 미국의 세계 수출 점유율은 현재 11% 수준으로 크게 감소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그 자체로 건강하지 못한 흐름은 아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 경제재건이 성공을 거뒀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일부 정치인들이 국제 무역을 제로섬 게임으로 간주하고 고율의 보호무역 관세를 도입함으로써 미국의 교역 비중을 더욱 줄인다면, 그 결과는 명백히 해로운 것이 될 것이다. 역사는 해외로의 상업적 연계가 국제통화로서의 자국 통화 사용을 뒷받침해 왔다는 사례로 가득 차 있다. 반대로 이러한 무역 연계망이 훼손될 경우, 해당 통화의 국제적 위상 역시 타격을 입는다는 점도 수없이 입증돼 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세계 최대 교역국의 통화는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수출입 기업들이 사용하는 기본 수단이 된다. 그리고 이들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과 거래하려는 다른 국가의 기업들도 그 통화를 사용하게 되는 유인이 생긴다. 소비자와 공급업체의 편의성 때문이다. 이는 자금을 조달하려는 외국 기업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지배적 국가의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유인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미국의 교역 및 금융 비중이 줄어들면, 달러 사용을 확산시키던 시장 기반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무역을 파괴하는 변태적 '미국 우선(America First)' 관세 정책은 이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또한 제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미국의 행태 역시 달러에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제재 이전에도 미국은 점점 더 금융 제재를 외교적 무기로 활용해 왔다. 미국의 제재 대상은 2000년 912개에서 2021년에는 9400개 이상으로 증가했다. 2022년 러시아에 가해진 강력한 제재는 각국으로 하여금 달러 자산을 줄이고 리스크를 분산시키려는 유인을 강화시켰다. 특히 러시아의 달러 자산이 단순히 동결되는 수준을 넘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자금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는 향후 다른 국가들도 당할 수 있는 전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물론 이 제재는 미국이 동맹국들과 협력하여 부과한 조치였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달러 외에 국제결제에 쓸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이 역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국의 대이란 "최대 압박" 제재 정책에는 유럽 국가들이 동참하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국과 유럽 간의 협력 약화는 앞으로 이와 유사한 갈등이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제재, 기타 경제수단 등 경제적 무기를 사용하는 데 있어 신중함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다. 이러한 조치를 실제로 시행할 때도 동맹국들과의 협력보다는 일방적 접근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미국이 계속해서 국제 공조 없이 독자 행동을 고수한다면, 그 결과는 명확하다. 미국 주도의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들의 통화가 달러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될 것이다.




미국의 재정 및 금융 건전성 악화 역시 달러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중대한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달러는 지금까지 충분한 유동성과 안정된 가치를 동시에 제공해 왔기 때문에, 전 세계 중앙은행은 물론 기업 재무담당자, 국부펀드, 국제 투자자들에게 외환보유고와 결제수단으로 높은 신뢰를 받아왔다. 미국은 세계 경제의 팽창에 걸맞은 규모로 달러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왔으며, 지나친 공급으로 인해 달러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조율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미 의회예산처(CBO)의 장기 전망에 따르면, 미국의 공공 부채는 2024년 GDP의 99%에서 2034년에는 116%, 2044년에는 139%, 2054년에는 16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17년 감세안 연장 등 향후 입법 추진까지 반영하면, 부채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물론 시장 신뢰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정확한 GDP-부채 비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끝없는 감세, 실현 불가능한 지출 삭감 약속,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는 어느 시점에서 외국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달러의 신뢰성과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갖게 만들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는 달러의 매력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 달러가 보유자산 또는 결제 수단으로 매력적인 것은 그 가치가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2월 행정명령을 통해 "광범위한 행정권을 행사하는 관리들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모든 "소위 독립적 규제기관들"이 정책 시행 전 백악관의 사전 검토를 거치도록 지시했다. 또한 그의 법무부장관 대행은 상원에 출석해 대통령이 독립기관장을 해임할 경우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는 법 조항을 더는 방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달러의 매력을 심각히 훼손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실제로 연준의 독립성을 겨냥하거나, 제롬 파월 의장의 지위를 위협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는 최근 독립 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민주당계 위원 2명을 전격 해임한 상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불문가지다.


또 다른 우려는 미국 국채를 보유한 외국 투자자들이 공정하게 대우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는 외국인이 보유한 5년, 10년 만기 재무부채권을 강제로 100년 만기 저금리 채권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대선 캠페인 당시 트럼프의 주요 경제 참모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외국인의 미국 국채 매입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달러 가치를 하락시켜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내정된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 역시 과거 투자 전략가시절, 외국인 국채 보유자에게 '사용 수수료'(user fee)를 부과하자는 아이디어를 지지한 바 있다. 그는 이 '사용료'를 이자 지급액의 일부를 원천징수하는 방식으로 징수하고, 이를 '세금'(withholding tax)이 아닌 수수료(fee)로 규정하면 국제 조세협약 위반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국내외 투자자에게 동등한 대우를 제공한다는 국제금융 시장의 핵심적 기대를 위반하게 된다. 이 기대는 바로 달러의 국제 통화 지위를 떠받치는 초석이기도 하다.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이 바라는 대로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외국인의 미국 국채(재무부채권) 매입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자칫하면 통제 불가능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미국이 동맹국을 저버리는 듯한 인상을 줄 경우, 달러의 국제적 지위는 불가피하게 타격을 입게 된다. 국가들은 외환보유고로, 또는 국제 결제 수단으로 자신들의 동맹국 통화를 보유하고 사용한다. 이는 해당 동맹국이 신뢰할 수 있는 외환자산의 관리자로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맹국의 통화를 보유하는 것이 동맹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표시로 간주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도 삼국동맹(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과 삼국협상(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구성국들은 서로의 통화를 외환보유고로 운용했다. 이외에도 방위 협정을 맺은 나라들 간에는 상대국 통화를 보유하는 관행이 존재했다.


1930년대에는 영연방 및 대영제국뿐 아니라 영국의 다수 동맹국들이 런던에 외환을 예치하고, 파운드화를 기준으로 환율을 고정하는 '파운드 지역(Sterling Area)' 체제가 유지됐다. 1960년대에는 독일과 일본이 미국과의 방위 동맹, 특히 자국 내 주둔한 미군의 존재를 중시하며 달러를 적극 지지했다. 오늘날에도 대만, 한국, 일본 등은 과도할 정도의 비중으로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의존이 배경에 있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의 회담에서 보인 갈등과 러시아에 대한 유화적 태도는, 동맹 관계가 달러의 국제 통화 지위 유지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결국 달러의 미래는 미국 지도자들이 법치주의를 존중하고, 권력 분립을 수호하며, 동맹국과의 약속을 지킬 의지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게 만들 책임은 의회, 사법부, 그리고 국민의 감시와 견제에 달려 있다.


그 모든 것이 이 지경까지 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배리 아이켄그린은 UC버클리 경제학 및 정치학 교수이며, '지나친 특권: 달러의 부상과 쇠퇴'(Exorbitant Privilege: The Rise and Fall of the Dollar)의 저자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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