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로이터/뉴스1
2025.04.04 15:55
최근 국민 식습관 조사에서 일본 정부는 불안한 사실을 발견했다. 부유하고 건강한 국가인 일본의 성인 채소 섭취량이 2001년 이래 최저치에 달한 것이다.
바로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3월 초, 일본의 전통적인 겨울 음식 나베(일본식 전골)의 세 가지 주재료인 배추, 대파, 당근 가격이 각각 장기 평균보다 227%, 167%, 140% 올랐다. 가계 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측정하는 엥겔 계수는 4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국민이 집단적으로 채소 섭취를 줄이는 현상은 일본이 30년 만에 마주한 가장 큰 경제적 전환을 마주하며 발생했다. 장기간 이어진 물가정체와 저성장 국면을 딛고 일본 경제와 화폐의 관계가 마침내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고 애쓸 때 일본은 오히려 인플레이션의 귀환을 반겼다. 적어도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특히 소비와 성장이 주도하는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을 지지했다. 2024년 3월 일본은행은 17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끝냈으며 이후로 두 차례 금리를 인상했다. 은행은 현재 금리 0.5%에서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1%까지 점진적으로 끌어올릴 것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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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물가와 임금이 동반 상승하는 '선순환'을 통해 수요를 촉진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긍정적인 신호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험난했다.. 지난 7월 금리를 0.25%로 소폭 인상하자 도쿄 증시는 기록적인 폭락을 보였다. 그리고 금리 상승은 주택담보 대출자부터 최고재무책임자에 이르기까지 일본인 모두에게 그간 경험하지 못한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주주들은 기업에 대대적인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에너지와 신선식품을 제외한 부문의 물가 상승은 전반적으로 점진적이나(1월 기준 2.5%) 식품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으면서 전반적인 물가 인상 속도가 빠르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때문에 일본의 경제 정상화 시도가 실제로는 '잘못된'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
기업들도 역사적인 수준으로 임금을 높였지만 소비자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소비자들은 지출을 늘리기보다는 부담을 느끼고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식료품 사러 나오면 모든 게 조금씩 더 비싸졌다는 걸 느껴요. 몇 년 전만 해도 가게와 식품 기업들은 가격을 인상할 때 미안해하며 사과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냥 가격을 올려버립니다." 도쿄 산겐자야 거리에서 채소를 구입하는 이케다 리츠코가 말했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이러한 새로운 현실은 당혹스럽다고 닛코자산운용의 최고 글로벌 전략가 나오미 핑크는 말한다. "과거의 경험이 중요한데 예상은 갑자기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충격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단 2%의 인플레이션일지라도 일본 가계에겐 충격적입니다."
일본의 거대한 변곡점은 여러 압박 아래서 일어나고 있다. 일본이 대량으로 수입하는 에너지뿐 아니라 식품 가격 또한 지정학적 이유로 상승했다. 일본 기업과 기관들의 해외 투자 성향은 엔화의 장기적 약세에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인구는 분당 2명꼴로로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력 공급 그리고 고용 유지에 대한 전통적인 의무에 대해 기업들로 하여금 생각을 바꾸게끔 하고 있다.
더 넓게는 트럼프 대통령이 야기한 세계적 관세 전쟁과 심각한 통화 변동성의 잠재력이 야기한 미국의 경기 침체 위기가 더해져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정녕 일본의 장기간 인플레이션 경험은 정말로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까? 이는 일본에 근본적으로 긍정적일까? 아니면 일본 경제의 운명을 결정할 가계와 기업에 긍정적일까?
일본은행은 곧 통화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이틀간의 회의를 개최한다.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시장, 기업, 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다.
일본은행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기대대로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전직 중앙은행 관계자와 민간 부문 경제학자들은 4월 1일 일본이 새로운 회계연도를 시작하면서 취약성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네, 역사적인 변화죠. 일본 경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일 수 있어요." 일본은행 부총재를 지냈으며 현재 와세다대학교에 있는 와카타베 마사즈미가 말한다. "하지만 저는 불확실성을 더욱 강조하고 싶어요."
일본의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 경제는 이후 지속된 물가 정체, 중앙은행의 초완화적 통화정책, 임금 상승 정체 등으로 정의되었다.
기업과 가계 모두 비용을 절감하고 현금을 비축했으며, 당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물가와 임금이 골고루 상승하는 선순환은 일으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설계자인 당시 총리 아베 신조의 이름을 붙인 2013년부터 2020년까지의 아베노믹스 기간은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재정 및 통화 부양책을 적용했지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물가가 하락할 때는 현금 보유가 단점이 안되기 때문에 일본인의 저축 성향은 완벽하게 이치에 맞았다. 이제는 분명히 단점이 있다. "디플레이션 중일 때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때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행동은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노무라증권 거시경제 전략가 키타오카 토모치카는 말했다. 그는 물가 상승, 임금 상승, 금리 상승의 삼중 효과가 이제 "가장 평범한 시민부터 가장 오래된 회사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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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문가들은 2025년의 일본을 임금과 물가의 역동성이 실물 경제로 확실하게 흘러 들어가는 '고압 경제'로 묘사한다. 4월이 되면 일본은 신선식품을 제외하고 에너지를 포함하는 근원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이 일본은행의 2% 목표치 이상인 상태로 3년을 꽉 채우게 된다.
1월 근원(core) 인플레이션은 3.2%로 1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쌀 평균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기 때문이 크다. 일본은 쌀값 안정을 위해 사상 처음으로 전략 비축미 경매를 시작했지만 슈퍼마켓 업자들은 이것이 도매업자의 비축을 막거나 가격 인하를 강요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큰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동시에 임금도 명목상이기는 하나 상승하고 있다. 이는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2024년 명목 임금 인상률은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테이코쿠데이터뱅크가 1만1000개사 이상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62%가 새 회계연도부터 임금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노동조합 총연합회는 올해 춘투 임금 협상에서 6.09%의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32년 만에 가장 큰 요구이다.
수년간 때를 기다려온 일본은행은 여전히 신중하다. 특히 2024년 실질 임금이 0.2%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정상화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 시장과 많은 경제학자들은 일본은행이 올해 최소 한 차례 더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며 일각에서는 빠르면 7월에 0.25% 추가 인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금리가 1.25~1.5%까지 인상되리라 여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바클레이즈의 수석 일본 이코노미스트 바바 나오히코는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엔화 약세를 대일본 관세 부과의 정당화 근거로 언급한 것은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이제 금리 정상화 속도를 높일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까다로운 균형 잡기가 될 것이라고 모건스탠리MUFG증권의 수석 일본 이코노미스트 야마구치 다케시는 말한다. 그는 다음 금리 인상이 9월에 올 것으로 예상한다. "저의 유일한 큰 걱정은 일본은행의 소통방식이에요. 만약 일본은행이 분기별로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할 경우, 주식 시장은 그런 급격한 인상에 대비되어 있지 않다고 봅니다."
일본 가계에 미치는 영향은 모든 사람, 특히 정부와 중앙은행의 큰 관심사이며 이것도 매우 복잡한 문제라고 핑크는 말한다. "이것은 일방적인 거래가 아니에요. 가계는 투자자이자 저축자이자 소비자이죠."
정상화를 준비하면서 일본은행은 의도적으로 시장의 움직임보다 늦게 대응했다고 핑크는 덧붙인다. 가계가 적응할 시간을 갖기를 바라며 조치를 취하기 전에 전체(headline) 인플레이션과 근원 인플레이션 모두 목표에 접근하도록 2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허용했다.
정책이 효과가 있었다는 몇 가지 징후가 있다. 물가 상승으로 많은 기업이 임금을 인상해야 했는데, 가계가 디플레이션 기간 동안만큼 저축할 수 없는 저축 지연 기간이 생겼다. 소비가 는 것이다. 마침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축에 대한 더 높은 수익률이 필요함을 깨달았을 때, 국내 및 미국 주식을 포함한 자산 가치가 상승하고 있었다.
"돈의 '시간 가치' 개념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핑크는 제로 금리 저축을 보유함으로써 발생하는 구매력 손실뿐만 아니라 플러스 수익률을 활용하지 못하는 기회비용도 강조했다. 온라인 은행들은 기존 은행들의 고객을 빼앗기 위해 0.4% 금리의 예금 계좌 광고를 곳곳에 붙이며 경쟁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작지만 일본인에게는 큰 변화이다.
한편 자산운용 업계는 일본의 약 7조4000억 달러(1경 원)에 달하는 현금 저축 중 적어도 일부가 뮤추얼펀드 및 기타 투자 상품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에 입맛을 다시고 있다. 2024년 1월, 절묘하게 시기를 판단한 일본 정부는 영국의 개인저축계좌(ISA)를 모델로 한 NISA(소액투자비과세제도) 한도를 대폭 확대했다.
일본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 가계 자산에서 주식 및 투자신탁의 비중은 현재 20%이다. 미국의 50%, 유럽의 30%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이 수준은 10년 전의 약 두 배이다. 노무라에 따르면 NISA 확대 이후 가계 및 국내 투자신탁의 일본 주식 순매수액은 1조 엔(9조8600억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리스크는 여전히 상당하다고 와카타베는 경고한다. "일본은행은 선순환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그는 말했다. "일본 가계는 여전히 소비하지 않고 있어요. 높은 물가는 그들을 더 절약하게 만들 뿐,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들지 않아요. 주식 등에 투자할 가능성은 있지만 젊은 가구는 주택에 지출하고 있고 실제로는 빚을 진 상태죠. 금리가 오르면 부담이 더 커질 겁니다."
낙관론자들은 일본 기업의 행동도 마침내 전환점을 맞았다는 신호를 본다. 기업이 자신들의 재무제표에 만족하고 기업 부문이 순 저축자였던 아베노믹스 시대 이후, 많은 기업들이 이제 거대한 부동산 포트폴리오, 주요 사업과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사업, 미술관과 같은 허영 프로젝트 등 비핵심 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에 있다. 정부는 자산 정리를 분명히 지지하고 있으며 주주들의 개혁 압박을 방해하지 않고 있다.
잇따른 합병, 상장 폐지, 비공개 전환 이후 2024년은 도쿄 주요 거래소 상장 기업 수가 약간 감소한 첫해였다. 미미한 감소지만 분석가들은 이제 훨씬 빠른 기업 신진대사를 촉발할 것으로 예측한다. 파산이 증가하고 있으며, 좀비 기업들은 이제 붕괴에 더 취약하다. 애널리스트들은 일본의 창조적 파괴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이번엔 정말로 과거의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통화 팽창 기간 동안 생산성은 끔찍했어요. M&A, 파산은 모두 무력화되었습니다. 기업들은 수익성을 개선하지 않아도, 혁신적이지 않아도 그냥 버틸 수 있었죠." 후지쯔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틴 슐츠는 말한다. "시장을 움직이게 하고 유연하게 유지하는 데 플러스 금리가 필요하다고 하죠. 새로운 기업이 들어와 야성적 충동이 없는 기업을 밀어내는 역동적인 경제가 필요해요."
자본을 더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소매업, 접객업, 제조업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에 투자하고 있으며, 특히 오랫동안 지연되었던 IT 업그레이드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투자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일본 외부에 집중되어 있다. "일본 국내 시장 전망에 대한 비관론이 있어요. 기업들은 일본을 성장하는 경제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임금 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와카타베는 말한다. "새로운 인플레이션 환경에 어떻게든 반응해야 하지만 젊은 사람들의 급여는 인상하면서 중년 직원들의 급여는 그리 올리지 않고 있어요. 지금도 총 인건비를 늘리고 싶어하지 않죠."
일부에서는 일본 경제의 변곡점이 실제로 올 것인지, 또는 디플레이션 탈출이 축하할 일처럼 느껴질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노무라총합연구소의 이코노미스트 기우치 다카히데는 일본이 진정으로 정상화되었다고 선언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경고한다.
"소비는 여전히 매우 약해요." 기우치는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주로 비용 상승에 의한 것이고 실질 임금 상승률이 가계를 자신감 있는 소비자로 바꾸기에 아직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만약 엔화가 크게 상승하면 전체 인플레이션은 하락할 것이고 인플레이션 기대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일본은행이 이전처럼 경제 정상화 의지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그것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과정은 전혀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명목상으로는 경제가 변한 것처럼 보이죠." 기우치는 말한다.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낙관해서는 안 됩니다."
30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의 늪. '잃어버린 시대'로 불렸던 일본 경제가 마침내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물가가 오르고, 중앙은행은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하며 돈의 흐름을 바꾸려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현실은 복잡합니다. 채소값이 폭등해 식탁 물가 부담이 커지고, 기업은 임금을 올렸지만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소비자는 오히려 지갑을 닫고 있습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이러한 '거대한 실험'은 현재 비슷한 고민(고령화, 저성장 우려)을 안고 있는 한국 경제에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물가와 임금이 함께 오르는 '선순환'을 목표로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아 보입니다. 과연 일본은 오랜 침체를 벗어나 경제 정상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파이낸셜타임스 3월 12일자 기사가 전해주는 일본의 경험은 한국에게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