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트럼프의 관세는 단지 무역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겨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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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뉴스1

2025.04.11 15:01

New State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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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진보적 정치평론지 뉴스테이츠먼 4월 3일 기사는 관세 너머를 보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보기에 트럼프 정부는 일단 고율 관세로 다른 나라들의 '기강'을 잡은 후 결국엔 미국 기업들이 쉽게 해외시장에 파고들 수 있도록 경제 시스템 자체를 바꿔내려 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번 트럼프의 관세조치는 해석이 분분합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인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은 '약달러'론자로서 최종 목표는 1985년 플라자합의 같은 '약달러'를 통한 미국 제조업 복원입니다. 그는 작년 11월에 발표한 리포트에서 분명히 관세는 제2의 플라자합의인 가칭 '마러라고합의'를 위한 협상카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관세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 백악관 무역제조업 수석고문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비관세 장벽 등 특히 미국에 '불공정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을 바로잡는 관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티븐 미란이 좀 더 긴 시각으로 '달러패권'과 '환율'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보고 있다면 피터 나바로는 불공정 무역관행을 미국의 힘으로 당장 고쳐내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바로의 이러한 드라이브에 자유무역, 특히 중국 시장과 공급망이 중요한 일론 머스크는 발끈했습니다. 하버드 경제학박사인 나바로에 대해 "하버드 경제학박사는 뇌보다 에고(ego)가 더 크다"고 조롱했습니다. 트럼프 '관세전쟁'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아직은 불분명합니다. 이것의 최종 목표가 관세와 무역 너머 다른 나라들의 경제 시스템 자체에 있다는 뉴스테이츠먼의 주장은 상당히 래디컬한 주장입니다만,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면밀히 검토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4월 2일 모든 미국 수입품에 대해 10%의 글로벌 기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며 연단에 섰을 때 그 옆에는 디트로이트 지역의 자동차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모습을 오랜 세월 지켜봐 온 자동차 공장 노동자 브라이언이 함께했다. 브라이언은 트럼프의 관세 조치가 미국 기업과 미국 노동자 계층을 지원하고, 값싼 중국산 수입품을 미국산 제품으로 대체하기 위한 것임을 증언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트럼프는 무역 적자를 "국가 비상사태"라고 규정했다.


트럼프의 경제 참모들은 이번 관세 부과로 28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7580억 달러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최대 50%에 달하는 개별적 상호관세를 부과받게 되며, 유럽연합(EU)은 20%, 중국은 34%의 관세가 매겨진다. 영국은 기본 상호관세율인 10%만 적용되는 몇 나라 중 하나인데, 이는 영국 정부의 협상 노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영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미국 스스로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단순히 내향적인 보호무역주의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물렁한' 외교가 아닌 예측불가능한 공격을 통해 타국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대외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려는 더 큰 의도를 갖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이 이미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에서, 그 권력을 더욱 확장하고 집중시키려는 시도로 보인다.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자국의 법률을 미국식 기준에 맞게 수정하도록 강요하고, 미국의 정치적, 기업적 무책임성을 지금보다 더 관대하게 수용하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경제 참모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펼친다. 즉, 대부분의 국가들이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달러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이는 달러 가치를 상승시킨다. 결과적으로 미국 제품의 가격이 해외 소비자들에게는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월스트리트에는 이득이지만, 제조업체들에게는 타격이 된다. 이러한 상황은 한때 번성했던 러스트벨트 지역의 산업 도시들을 황폐화시켰다.



이와 맞물려 있는 시각 중 하나는, 미국이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을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국방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미국의 부채를 늘리는 요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을 지는 것이 이제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질서를 원하고 있다. 트럼프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은 지난해 11월 이렇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협상에서 유리한 지렛대 역할로 보고 있습니다. 일련의 징벌적 관세 이후, 유럽과 중국 같은 교역 파트너들이 일정한 형태의 통화 협정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미란 외에도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이와 유사한 제안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1985년 주요 경제국들이 달러의 가치를 자국 통화 대비 절하 하기로 합의한 플라자 합의를 계승하는 성격의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가 그것이다. 또한 이코노미스트 졸탄 포자르는 높은 관세를 피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단순히 더 많은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100년 만기"와 같은 초장기 국채를 매입하도록 강요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다른 국가들은 미국이 관리하는 "안전구역" 유지에 직접 돈을 대거나, 그 구역에서 제외되어도 어쨌든 관세를 통해 간접 지원하게 되는 상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 관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자동차 노동자' 창립자 브라이언 팬베커를 연단에 초대했다. /사진=로이터/뉴스1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 관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자동차 노동자' 창립자 브라이언 팬베커를 연단에 초대했다. /사진=로이터/뉴스1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국가들이 자국의 국내 법률을 미국식 기준에 맞게 바꾸도록 요구할 의사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부가가치세(VAT)의 경우, 영국과 미국 간의 협상에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VAT는 협상의 초기부터 주요 쟁점이 되어 왔다. 트럼프는 VAT가 관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분명히 말하자면, VAT는 관세가 아니다. 이는 국내 소비세의 일종이며, 미국 기업들도 영국 자회사를 통해 환급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상품 판매시 VAT를 부과하고 있으며, 미국만이 이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이를 불공정하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은 주(州) 단위로 판매세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VAT를 사실상의 관세라고 보는 것은 틀렸을 뿐만 아니라 위선적이다. 만약 VAT가 관세라면, 영국 내 미국산 제품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업세나 소득세도 관세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말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트럼프 개인의 역량이 어떻든 간에, 그는 매우 똑똑한 참모진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장 가능성 높은 해석은, 백악관이 타국의 국내 세제를 고의적으로 관세로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술에 취한 분노한 사람이 누군가 힐끗 쳐다보는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동기는 동일하다. 어떻게든 싸움을 걸고 내가 더 세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 발표와 함께 발표된 백악관 자료에서 나온 문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다." 최근 미국 관리들은 유럽 기업들에 서한을 보내며 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해당 서한은, 만약 미국 정부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프로그램 금지 행정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서한에는 "이 정책은 공급업체와 서비스 제공자의 국적이나 운영 국가를 불문하고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모든 업체에 적용된다"고 적혀 있었다. 이는 미국이 자국 소비 시장의 힘을 이용해 정치적 입장을 수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방식을 답습하는 모습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행 항공편을 운영하는 항공사라면, 자사 항공기 내 지도에서 그린란드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까지 고려해야 하는 날이 올 수 있다.


이는 마크 저커버그가 트럼프주의로 급히 전향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전향에는 비겁함(트럼프는 한때 이 메타 CEO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도 작용했겠지만, 주된 동기는 실리적 판단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해외 정부들이 미국 기업을 더욱 검열하려는 상황에 제동을 걸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국 정부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영국 아동들의 정신세계를 과도하게 수익화하는 행태를 규제하려 할 경우, 그 대가로 시장 접근성, 관세, 일자리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전략은 과연 성공할까? 트럼프는 당연히 자신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과 인플레이션을 남 탓으로 돌릴 것이다. 그는 실제로 다른 국가들을 협상 테이블에서 굴복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 노동자 브라이언에게 미래는 그리 확실치 않다. 2011년, 스티브 잡스와 버락 오바마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이폰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 아이폰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미국 소비재 제품 중 하나지만, 출시 이후 줄곧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잡스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한밤중에 잠자리에서 불러내 12시간 교대 근무를 시킬 수 있는 나라는 중국 밖에 없고, 그들의 임금은 미국 연방 최저임금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아이폰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자, 잡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일자리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1913년 창간돼 케인스, 버트런드 러셀, 조지 오웰, 버지니아 울프 등이 기고했던 전통 있는 영국 진보 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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