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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이란 반정부 시위, 정권의 대응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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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로이터=뉴스1) 김성식 기자 = 2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 사망에 분노한 시민들이 그의 생전 사진을 몸에 두르고 '여성 해방'이란 문구를 손에 든 채 이란 정부를 향해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미니는 지난달 13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도덕 경찰에 구속된 뒤 의문사 했다. 이후 이란 각지에선 반정부 시위가 분출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3.04.23 22:09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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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과연 변할 것인가? 이슬람 사제들이 지배하는 '신정정치의 공화국' 이란에서 수개월 동안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만 명이 감옥에 갇히고 시위자들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는 비저항운동을 펼치고 있고, 이슬람정권은 이제는 포기하고 방관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란은 오랫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왔던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정상화에 나섰습니다. 중국이 중재했습니다. 이란이 과연 변할 수 있을지, 변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외교적으로 이란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접근하려 할지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중동의 강자 중 하나인 이란의 변화에 따라 중동정세 역시 크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 PADO가 진행중인 이란 시위사태를 심층조명한 3월 27일자 파이낸셜타임스 기사를 전문 번역해 소개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이 신호를 던지자,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란 전역의 도시들에서 대부분 전통의 검정 차도르로 몸을 감싼 여성들이 수많은 남성들과 함께 행진했다. 그들은 구호가 적힌 깃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대형 초상화, 이란 국기 등을 흔들며 1979년 이란 혁명 44주년을 축하했다.


지난 달에 벌어진 군중집회는 지난 몇 달 동안 전국적으로 전개된 저항으로 이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된 지 최대의 국내적 위협에 시달려온 현 정권 지도부에 한껏 군중의 지지를 과시할 기회가 되었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테헤란의 '자유광장'에서, 반체제 시위가 몇 달 전 휘몰아쳤던 바로 그곳에서, 그는 '공화국의 적들'을 비난하고 국민의 단합을 과시했다.


"오늘 여기 모인 이 수많은 분들은 적들에게 '당신들은 가망이 없다'는 낙심천만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이만큼 많이 모인 숫자야말로 "이슬람 혁명의 승리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러나 반체제의 유령은 한 순간도 멀어진 적이 없다. 반체제 해커들은 국영 TV의 인터넷 생중계에 짧게 끼어들어, 라이시의 연설 중간에 이런 외침을 터뜨렸다. "이슬람 공화국에 죽음을!"


그날 벌어진 사건들은 이 나라가 심각하게 둘로 분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마흐사 아미니1가 경찰에 구금된 상태에서 사망한 뒤 거의 7개월 동안 150개 이상의 도시와 마을들에서 터져나온 시위들, 그에 따라 뒤숭숭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나라를 보여준다.


대외적으로 이 체제는 소요를 잘 관리해 나간다는 믿음을 주려 애쓰고 있다. 반체제 시위는 대체로 감소 추세이며, 체제에 충성하는 사람들은 반발에 대해 독재적이며 가부장적인 방식으로 간단히 설명해버린다. 정치의 거리를 메운 젊은 남녀들은 단지 그들 대부분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혁명의 가치와 이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수천 명의 여성들이 규범을 깨고 가장 엄중히 지켜져 온 공화국의 상징적 관행에 저항한다. 다시 말해서, 히잡을 쓰지 않고 밖에 나다니는 것이다. 테헤란의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에서 빈곤한 남부까지,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가게와 카페에서, 히잡을 벗은 그녀들은 전에는 상상도 못한 시민 불복종을 구현한다.


"일단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최소한 이거라도 해야죠." 수도 테헤란에서 일하는 한 젊은 점원은 말한다. 그녀는 수수하고 거친 티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고 있다. 히잡은 쓰지 않았다.


사회운동가들과 분석가들은 표면 아래에서 이 저항운동을 일으킨 분노가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경고한다. 나이 먹어가는 이란의 신정정치 지도부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젊은이들의 열망 사이의 격차 앞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며 가물어진 이슬람 공화국의 정당성 자원은 점점 더 고갈되고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문제는 2년 전의 선거 이래 이 나라의 모든 면을 통제하고 있는 이념적 강경파가 사회, 문화, 정치적 변화를 허용할 것이냐다. 분석가들은 그렇게 해야만 더 큰 소요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더 보수적이 되고, 더 혹독한 규제를 내걸고, 이 나라의 강력한 공안기구에 반발을 제압할 책임을 맡기며, 그리하여 더 거센 저항과 폭력을 부추기는 일을 불사할 것인가? 분석가들은 만약 그런 선택을 할 경우 공화국의 미래는 매우 불안정해질 것이며 83세가 되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계획하고 있는 순조로운 정권승계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완화의 조짐

이제까지 체제는 몇 가지 양보를 했다. 법 규정은 바꾸지 않았지만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단속하지 않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아미니를 체포해 사달을 낸 도덕규찰대는 거리에서 사라졌다. 테헤란 유일의 규찰대 본부의 대형 녹색 철문은 닫혀 있으며, 감시탑에서 내다보는 규찰대원 한 명과 낡은 흰색 벽에 붙은 '민원 전화 환영'이라는 포스터만 보인다.


하메네이는 또 혁명기념일을 앞두고 수만 명의 수감자들을 사면했다. 이란 법원은 반체제 시위에 참여한 2만 2천 명을 포함한 8만 2천 명이 석방되거나 감형되었다고 밝혔다. 소요 때 테헤란 외곽의 악명 높은 에빈 감옥 앞에 늘어서 있던 면회인들의 긴 줄은 이제 사라졌다.


그러나 많은 이란인들에게는 정부가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반체제 운동가들을 포함한 일부는 이미 뒤늦었다고 본다. 이미 여러 해 동안 개혁지향적 세력에 표를 던졌음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개혁에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함으로써, 독특한 이란식 정치체제 틀 안에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오랜 믿음이 이젠 무너져버렸다는 것이다.


"저항운동으로 얻은 성과는 '이 지배체제가 무너질 거다' 그리고 '권력은 이제 국민의 권력과 지도자들의 권력으로 나뉘어졌다'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죠. 이 소요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이번 회차는 끝났을지 몰라도요." 반체제운동가인 압둘라 모메니는 말한다.


테헤란의 한 고가품 쇼핑매장에서, 패셔너블하게 입은 16세 소녀 두 사람은 여성에게 주어진 보수적인 드레스코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저항을 과시한다.


"이러다가 우리 죽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란 여성은 이제 뭐든 무서운 게 없어요." 친구와 함께 시위에 참가했었다는 로지나는 말한다. "누구나 자기 뜻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강제로 뭘 하도록 하는 것은 안됩니다."

이젠 만성이 되어버린 혼란

이 공화국은 탄생 이래 여러 위기에 직면해 왔다. 1980년대에는 내전이 있었고,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 치열한 8년 동안의 전쟁을 치렀다. 1999년에는 1979년 혁명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학생들이 시위를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2


10년 뒤 수백만 명이 선거 공정성 문제로 몇 주 동안의 시위에 나섰다. 2017년과 2019년에는 경제난 때문에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관공서가 불타고, 공안요원들이 공격받았다.


그러나 최근의 소요 사태는 이와 다르다. 테헤란의 도덕규찰대 본부에서 아미니가 죽음으로써 종파, 연령, 계층을 초월한 분노가 무섭게 폭발했다. 그 22세 여성이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당국의 발표를 불신하며, 많은 이들이 구타로 숨졌을 거라고 믿었다.


처음에는 분노의 표출이 여성 인권에 집중되었다. 여성들과 여대생들, 로지나 같은 여고생들은 대담하게도 공안요원들 앞에서 대놓고 자신들의 히잡을 불태웠다. 그러나 저항의 성격은 빠르게 변해 이 공화국이 지금까지 겪어온 것 중 가장 맹렬하고 끈질긴 요구를 내놓기 시작했다. 정권 당국이 경제침체와 서방과의 고조되는 긴장과 싸우는 와중에 시위대는 세속적인 민주주의로의 체제전환을 요구하시 시작한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위기가 한 점으로 모인 겁니다." 모메니의 말이다. 그는 부정 시비가 있었던 2009년 선거 당시 투쟁 때문에 5년 동안 복역했었다.


조바심이 난 체제는 곤봉, 새총, 최루탄으로 대답했다. 3백 명 이상이 숨졌고,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그 가운데는 어린이들 수십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만 명이 구금되었다. 네 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강경파들은 반체제 시위 참여자들의 다수가 중산층이며, 이 나라의 경제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란 서민들의 참여도는 높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있다.


친개혁적 이란 분석가들은 반체제 시위에 2백만 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강경파이자 '호메이니 구호위원회'(이란 최대의 자선단체) 고위관리자인 하미드레자 타라기에 따르면, 드론 정찰 결과 그 숫자는 "50만 명 안팎"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들 중 다수는 "SNS에 오도된 젊은이들"이라고 말했다.


이 반체제 시위로 체제가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질문에, 타라기는 단호한 태도로 이런 반문을 던졌다. "우리가 왜 혁명기념일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뜻을 저버리고 인구의 2~3퍼센트에게 굽혀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더 잘 알게 되었죠. 우리의 약점 하나는 SNS를 자유화한 것인데, 그것은 지난 정부(좀 더 중도적이었던) 때 한 일입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 혁명의 대의에 맞게 젊은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해요. 더 이슬람적이고 더 애국적으로 말이죠. 젊은이들은 국기를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주요 보수파 인사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국영 신문으로 강경파의 대변지인 <카이한> 편집장 후세인 샤리아트마다리는 "폭도"는 테러리스트고 시위대는 오도된 젊은이들이라고 되풀이해 말한다.


그는 여성들이 히잡을 안 쓰는 것을 불쾌해한다. "옳지 않아요. 법을 위반하는 일이죠. 차차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겁니다. 하지만 체포가 능사는 아니지요. 그들의 인식을 고쳐주는 조치가 필요하죠. 기자님이 내년에 이란에 오시면 여성들이 히잡을 다시 쓰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샤리아트마다리는 말한다.


"혁명이 퇴조한다면 사람들이 이슬람을 버렸다는 뜻인데,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는 덧붙인다.

'사람들 마음 속의 힘'

다른 이들은 이렇게 비타협적인 공개 발언의 뒤로, 강경파 그룹 안에서는 사태를 개선할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들이 사회적 압력과 경제적 난국을 모두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53퍼센트에까지 이르렀고, 리알화의 달러화 환산 가치는 라이시 대통령이 취임한 2021년 8월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매일 말을 해요. 우리도 그들에게 매일 말해주죠. 서로에게 화가 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욱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고 하죠. 다른 이는 문화 쪽 대책은 더 온건해져야 한다고 해요. 지금 경제 쪽에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친체제적이라 분류되지만 개혁 성향도 얼마간 있는 테헤란 주재 분석가 사이드 라일라즈의 말이다.


지도부에서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공식 발언이나 지역 언론 등에서 조금씩 내비쳐지고 있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약간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강경파인 국회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1월에 이런 발언을 했다. "(체제의) 진짜 힘은 강경하고 절대적인 힘이 아니다. 그것은 제한된 기간 동안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부드러운 힘은 사람들 마음 속에 있다."


그는 그가 체제의 SNS 규제 강화책에 반대한다는 추측에 더욱 힘을 실어줄 만한 이런 발언도 했다. "SNS에서 혁명이 뚜렷한 존재감을 줄 수 없다면, 우리는 조만간 힘을 잃을 것이다."


또 하나의 주요 보수파인 알리 라리자니는 히잡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이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을 때, 갑자기 때아닌 히잡 문제가 엉뚱한 방식으로 불거져 나왔다. 따져 보자. 국가가 모든 일에 일일이 끼어들어야 하는가? 어디까지 그래야 할 것인가?" 그가 한 보수 신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보수파인 관광장관 에자톨라 자르가미는 머리카락을 감추지 않는 여성을 불편해하는 보수파 남성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래서 성적으로 흥분됩니까? 그럼 쳐다보지 마세요!"

앞으로의 전망

카이한의 편집장 샤리아트마다리는 그런 논의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시위자들과 세속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큰 양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에는 선을 긋는다.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면, 우리 이슬람 공화국은 여러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체제 내에서 그 누가 반체제운동에 공감할까요? 아무도 없어요. 한 가족 안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워요. 그러면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원인을 찾으려 하겠죠. 하지만 우리가 원칙을 놓고 타협하는 일은 없습니다."


최고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하메네이가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에 한 연설에서 이 최고지도자는 지도체제와 사회에 뭔가 "약점"이 있으며 이를 따져볼 필요가 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체제에 대한 변화 요구는 공화국을 서방에 넘겨주려는 적들의 음모라고 덧붙였다.


이 최고 성직자에게 반체제 운동가들의 분노가 집중된다. 많은 이란인들은 지난 10년 동안 라이시가 당선되고 어느 때보다 강경한 정부를 수립하게 된 배후에 그가 있다고 의심한다. 개혁파와 중도파 후보자들은 선거 출마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분석가들은 하메네이의 전략이 이전 정부들을 괴롭혀온 내부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권력 승계를 순조롭게 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이는 체제 내의 최고 강경파 집단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메네이의 피후원자이자 정치적 후계자인 라이시는 당당하게 권좌에 올랐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공화국은 민주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잃어버렸다. 미리 짜인 각본에 따라 진행된 것처럼 보인 그 선거는 체제가 얼마간의 개혁이라도 하리라는 희망을 지워버렸으며, 1979년 대선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48.8%의 투표율은 이 체제가 계속 인기를 잃어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사회학자인 하미드레자 잘라에이푸르는 내년의 총선을 앞두고 지도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앞으로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보여주는 방향계 중 하나가 되리라 본다.


"지난 선거 이전에 그들은 자신들이 뭘 하든 국민은 선택의 여지 없이 따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소리치고 욕하는 걸 보게 되었죠. 집권세력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있어요. 한 쪽은 보다 온건한 쪽인데 유연성을 보여주고 싶어하죠. 다른 한쪽은 과격하고요. 둘 중 누가 우세를 차지할지 지켜봐야 합니다." 잘라에이푸르는 말한다.


회의를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슬람 신정 체제를 지지하고 있는 일부 개혁파 정치인들은 집권세력이 결국 안정 유지를 위해서라도 변화를 허용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렇게 되면 뜻밖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겠죠. 하지만 이제까지 벌어진 일은 사회와 정치체제 내에서의 개혁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성직자이자 앞서 개혁파로서 이란 부통령을 지냈던 모하마드 알리 아브타히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지도부가 약하게 보이는 일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런 입장을 공개하기를 꺼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 양보를 하는 것은 그들이 마지막 샤(이란 혁명으로 강제 퇴위, 축출된 군주인 레자 팔레비-역자주)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뜻이 될겁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개혁을 했고 그럼으로써 더 용기를 얻게 된 반대 세력이 권력을 빼앗아버렸죠." 아브타히는 말한다.


하지만 아직도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믿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브타히는 곤란해했다. "우리는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믿지 않아요 ... 하지만 그렇지 않으리라고도 못 믿죠. 우린 마치 거대한 바위에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모메니는 오래 전에 안으로부터의 개혁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그에 따르면 '개혁'이란 이제 "조용한 다수"가 거리로 뛰쳐나가지 않도록 막는,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 구실에 불과한 듯하다고 말한다.


"체제가 이 반복되는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해야 합니다. 현재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해산하고,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사회적 자유를 허용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그건 자살과도 같은 일이죠. 이슬람 공화국은 온데간데 없어질 거예요. 그러나 그들이 위로부터의 혁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보고야 말 겁니다." 그는 말한다.


다른 이들은 뚜렷하거나 믿을 만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이라크와 시리아 같은 나라들을 집어삼킨 유혈과 혼란을 생각하면서 많은 이란인들은 현재의 불안정보다 더 큰 불안정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저는 아직도 이슬람 공화국의 존폐에 대해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대다수 국민이 존속을 선택할 거라고 믿습니다. 이슬람 공화국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해서입니다." 아브타히는 말한다.


다시 쇼핑몰로 돌아가보자. 로지나와 그 친구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6세의 로지나(여)는 체제 변화를 원한다. 같은 16세의 사예(여)는 "자유"를 선택한다. 한편 18세의 아리안(남)은 단지 격조 있는 라이프스타일만 가능하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인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뭔가 이루려 한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우리가 바라는 건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내 아들을 데리고 다닐 때가 되면 그런 변화가 이뤄질 수 있겠죠." 아리안의 말이다.



역자 함규진은 서울교육대학교 교수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고 저서로 <조약으로 보는 세계사 강의>,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 <세계사 평행이론> 등, 역서로 <공정하다는 착각>, <피에 젖은 땅>, <대통령의 결단> 등이 있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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