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2 12:22
오늘날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 게임 매커니즘을 지식전달이나 행동, 관심유도 등 엔터테인먼트 영역 너머에도 적용하는 것)'은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워치는 디지털 트로피를 보상으로 내세워, 1000걸음 더 걸어보라고 유혹한다. 교실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점수에 따라 상을 주고 처벌하는 앱을 사용한다. 일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버의 드라이버와 콜센터 직원은 업무 중에 미션을 받는다. 미션을 달성하면 50달러 보너스. 실패하면, 누구나 상상하는 대가를 치른다.
(This article was produced by and originally published in Noema Magazine.)
사람들이 보통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하는 이유는 일상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듀오링고'로 외국어를 배우거나 '좀비런'을 켜고 달리는 식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선택권을 갖지 못한 영역도 게임화될 것이다. 직장의 직원 감독, 금융, 보험, 여행, 의료 등에도 게이미피케이션이 은밀히 확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 '누군가 당신을 게임처럼 플레이하고 있다'에서 정부가 노동자들의 사생활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게이미피케이션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디오 게임 및 게임화된 금융 앱이 이용자들로 하여금 능력보다 더 많은 돈을 쓰게 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교육 분야의 게이미피케이션은 현장 적용에 앞서 충분한 연구와 공개 논의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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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게이미피케이션은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도 있다. 참여를 확대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 설계 아이디어들(적응형 난이도, 반응형 인터페이스, 진행률 알림, 협력을 유도하는 다자 참여 시스템 등) 덕에 비디오 게임은 21세기 엔터테인먼트의 주류가 됐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들은 민주주의 및 시민 사회를 위해서도 활용될 수 있다.
'마리오 카트'와 '마인크래프트', '젤다'와 같은 게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최대한 많은 이용자들이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이들 게임이 쉽다는 말이 아니다. 초보자도 게임을 즐기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 및 도움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배우는 과정은 지루한 튜토리얼 대신 단순화된 버전으로 진행되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그리고 이용자가 뭔가를 성취하면 상을 준다. 다른 사용자와 함께 즐길 준비가 끝났을 때는 스포츠맨십을 강조한다. 이들은 모두 이윤을 얻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지만, 이용자들의 참여 유도에 대한 교훈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오늘날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투표뿐만 아니라 지역 계획 및 예산 프로세스에 참여하거나 지식을 구축하고 공유하는 것)하려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때문에 민주주의 시스템은 접근성을 높이고 이용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민주주의가 게임화됐다는 말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을 가볍게 여기거나 기술만능주의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디지털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디지털 민주주의에선 대중의 토론이 소셜 미디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셜 미디어는 클릭이 가장 많거나 가장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에 높은 점수를 준다. 이는 '리얼리티 게임'처럼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왜곡시킬 수 있다. 또한 '레딧' 등에서 볼 수 있는 인기 경쟁을 통해 특정 집단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민주주의가 이미 게임화됐다면, 우리는 이를 제대로 이끌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 방향에 참고가 될 만한 사례가 있다. '브이타이완'(vTaiwan)과 '디시전 마드리드'(Decision Madrid)는 시민들의 저조한 정치 참여를 해결하기 위한 온라인 숙의 플랫폼이다. '코로나 추적 프로젝트'와 '오픈소스 첩보'(OSINT) 커뮤니티는 신뢰가 사라진 시대에 대중의 참여와 과감한 투명성으로 믿을만한 정보를 신속하게 모아냈다. 시민 과학 프로젝트 역시 게임 매커니즘을 활용해, 고대 문자 전사나 우주 이미지 분류에 참여하는 수천 명의 자원 봉사자를 모았다.
물론 이들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은 무분별하게 포인트나 배지를 주고 순위를 따지던 과거의 '게이미피케이션'과는 다르다. 민주주의의 기반 가치(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잠재적 시스템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선 참여 저조를 이용자의 게으름이나 무관심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민주주의 제도는 보편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투표를 위해 시민들이 일을 멈추고 몇 시간씩 대기해야 한다면 투표권은 유명무실할 것이다. 웹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사용법이 너무 어렵거나 의견이 전해진다는 확신이 없다면 예산 편성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는 무용지물이 된다.
게임 설계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면 여러 차례 실패했던 디지털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제로 구현시킬 수 있다.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숙의의 촉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에든버러에서 '에어비앤비'가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 에든버러는 인구 50만 명의 도시였지만, 옆집 사정을 알 정도로 주민들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도시였다. 그러던 2021년, 시 의회가 에어비앤비에 단기 임대와 관련된 법 적용 검토에 들어갔다. 이 사안은 당시 언론과 소셜 미디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막상 의회가 여론 조사를 벌였을 때는 주민의 1%도 안되는 3000여 명밖에 참여하지 않았다.
참여 저조를 해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주민들이 에어비앤비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에어비앤비가 신경쓰였다면, 주민들은 온라인 설문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처럼 참여 저조의 원인을 시민에게서 찾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참여 설계에서 이유를 찾는 게 더 바람직한 해석이다. 실제로 의회의 설문은 익숙하지 않은 용어로 가득했다. 설계부터 접근성이 낮았던 것이다. 내가 끈기를 갖고 설문을 완료해보니, 내 컴퓨터엔 구글 지도를 포함해 6개의 인터넷 창이 열려 있었다. 이런 설문은 사안을 참여자와 함께 논의하는 것도 아니고 합의 도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의견을 반영해 의사 결정하는 과정마저 느리고 불투명하다면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더욱 손상된다. 실제로 단기 임대를 제한한다는 에든버러의 계획은 2022년 8월이 돼서야 스코틀랜드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시민의 의견 제출 과정을 쉽게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둔 정부는 흔치 않다. '대중의 침묵이 정치를 더 수월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침묵을 선호하는 정치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의 문턱을 높이면 불행한 결과가 뒤따른다. 시민들이 충분한 대표성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악용하려 하거나 악용할 만한 자원을 가진 이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도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뉴햄프셔 주 크로이던의 사례가 있다. 이곳에선 정부에 반감을 가진 '프리 스테이터스(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주민들)'가 빈사 상태였던 지역 민주주의 시스템을 악용해 교육 예산을 50% 삭감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다행히 자원봉사자 그룹(대부분 학생의 어머니들이었다)의 노력으로 뒤늦게 예산은 복구됐다. 이 사례는 참여 저조가 꼭 무관심의 소산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제도 자체의 접근성이 낮다면, 참여는 당연히 저조해 진다.
단순히 절차를 온라인으로 옮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크로이던에서 논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를 통해 우리는 줌 회의가 능사가 아님을 확인했다.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 이상의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
대만의 디지털 숙의 앱, '브이타이완'을 보자. 이 앱의 이용자들은 '오피니언 그룹'을 돌아다니며 댓글을 달거나 반응하는 아바타를 갖는다. 아바타는 상호작용을 많이 할수록, 다른 이용자와 구별되는 특징을 얻는다. 그리고 이 앱은 "좋아요"가 가장 많은 의견뿐 아니라, 모든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보여준다. 토론이 인기 경쟁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브이타이완의 이런 풍경은 성숙한 의회의 모습과 비슷하다. 성숙한 시민 의회에서는 숙의에 참여할수록 자신의 위치가 부각되고, 다수의 지지를 받은 의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함께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브이타이완은 모든 게 디지털화됐다. 적은 비용으로 더 큰 참여를 끌어낼 수 있고,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물론 브이타이완을 한 번 경험하는 것보다 이웃과 직접 이야기할 때의 파급효과가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브이타이완은 양극화된 의견이 주를 이루는 소셜미디어와 달리, 다양한 의견을 골고루 보여준다. 다양한 의견을 이렇게 꾸준히 접하면, 편파성에 갇힐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만약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자발적이고 반복적인 시민 참여를 끌어내고 싶다면, 접근성을 높이고 참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게임 설계가 힘을 발휘한다. '디스코드'나 '디스코스' 같은 플랫폼을 보자. 이곳에선 '키보드 워리어'의 토론 장악을 막기 위해 '슬로우 모드'(한 번에 너무 많이 입력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기능)나 '타임아웃'(서버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이 있을 때 일정 시간동안 채팅, 답장, 반응, 음성 채널 접속을 잠시 제한시키는 기능) 기능을 사용한다. 이러한 기능은 디지털 민주주의 내 숙의에서도 생산적인 대화를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공적 자금 사용처 결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참여 예산도 디지털 숙의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디시전 마드리드'는 1억 유로 상당의 공적 자금 사용처를 시민들의 디지털 숙의에 붙였다. 하지만 공금의 사용처를 정한다는 것만으로는 참여를 끌어내기 어렵다. 카이 매서와 린다 모리는 2018년 이와 관련된 연구를 발표했다. 인구의 3% 미만이 참여한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의 참여 예산과 주민의 10% 이상이 참여한 독일 포츠담의 참여 예산을 비교한 연구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낳았을까? 포츠담에서 참여 과정을 게임화하고, 시민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진 선택지를 준 것이 원인이었다. ('어떤 색깔 페인트를 칠할까?'와 같은 선택이 아니었다.) 참여 과정은 간단했고, 투명하고 공정한 규칙을 갖고 있었다. 초반에는 토론을 했고, 마지막 결정은 다수결로 진행했다.
전략 게임 '문명'을 설계한 시드 마이어는 좋은 게임이란 "흥미로운 결정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 예산의 성공을 1~2년안에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시민이 참여한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는 특히 더 그렇다.
좋은 게임은 흥미로운 결정을 제시할 뿐 아니라, 무의미한 결정을 제거한다. 주택 신축이 시급한 지역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는 정부가 주민의 목소리를 듣는 척하며 새 아파트를 지을 것인지 물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작더라도 의미 있는 정치적 결정에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게 낫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더 큰 결정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게임화된 숙의 플랫폼이나 참여 예산 플랫폼 상당수가 저조한 참여로 끝나는 것일까? 원인 중 하나는 정부가 만든 플랫폼 설치가 다른 상업용 앱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용자가 적고, 새로운 아이디어 확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다른 원인은 플랫폼의 낮은 수준이다. 정부의 플랫폼 개발팀은 게임 업계 개발팀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고 예산도 적은 경우가 많다. 반세기에 걸쳐 강력한 게임 엔진을 구축하고 개발 방법론을 만들고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를 키운 게임 업계의 관록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정부 개발 플랫폼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끔은 정부가 만든 플랫폼이 "게임" 대상이 되기도 한다. 플랫폼의 결점을 간파한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를 악용하는 것. 디시전 마드리드에서도 어떤 부모들이 결함을 활용해 럭비장 신설을 제안했었다. 브이타이완도 마찬가지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부 이용자들은 "광범위하게 수용될 수 있는 의견"을 앞세워, "지식이 부족한 이용자"들을 대가로 자신의 이익에 추구한다.
오늘날에는 정치 과정에서는 시민들이 거수기로 전락하기도 한다. 특정 엘리트가 플랫폼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참여하게 하려면, 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투자의 주체로는 큰 자선 단체나 비영리 단체가 적합해 보인다. 이들은 선출된 정부보다 위험에 대한 내성도 높고, 긴 호흡의 프로젝트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가 플랫폼에 자원을 투자하든 투자만 이루어진다면 그 혜택은 클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상업적인 소셜 네트워크가 주도하는 양극화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뢰의 회복
민주 시민들은 사회 내 제도나 기관의 정보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극우 음모론 집단 '큐어넌'처럼 음모론에 빠지거나 무관심의 수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도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관들이 대중의 투명성 확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불신을 키우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게임 설계 원칙을 활용해 참여를 이끌어내고 신뢰를 쌓아가는 기관도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속에서 미국의 코로나19 데이터를 집계한 '코로나 추적 프로젝트'가 한 예다. 이 프로젝트에선 자원봉사자들이 모든 주 및 준주에서 나오는 검사, 감염, 입원, 환자 치료 결과를 수시로 집계했다. 그리고 이 자료는 신뢰할 수 있는 정부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유용하게 활용됐다.
이 프로젝트는 투명성 측면에서도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이 수집한 원 자료는 '구글 시트'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코드는 '깃허브'를 통해 확인하고, 질문은 '슬랙'을 통해 답을 구할 수 있었다. 데이터 오류나 모호한 부분은 빠른 공개와 해명으로 대응이 이뤄졌다. 이 프로젝트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수집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했던 점은 단순성과 반복성 측면에서 게임과 비슷하다. 또한 다중 사용자 게임처럼, 자신이 가진 배경이나 기술에 상관 없이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도 게임과 닮아 있다. 이러한 점은 놀랄 만한 성과로 이어졌다.
오픈소스 첩보의 운영도 유사하다. 갈등과 범죄, 인권 유린을 조사하는 연구자와 조사관, 시민 저널리스트의 국제 모임인 '벨링캣'을 보자. 벨링캣 자원봉사자들은 2014년 말레이시아항공 MH 17편이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러시아 미사일에 격추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들은 상세하게 자료를 모은 뒤, 네덜란드가 주도한 국제합동조사단과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오픈소스 첩보 커뮤니티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포토샵과 구글 맵 같은 도구로 사진이나 영상을 판독하는 방법을 교육했다. 이는 대체현실게임1의 이용자 커뮤니티가 이용자들의 협력으로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다.
위키피디아에서도 게임화를 볼 수 있다. 이 사이트의 편집자들은 위키피디아를 이용자들이 기사를 편집하며 경험치를 쌓고, '온라인 트롤'(인터넷 상에서 다른 사용자의 폭력성의 발언 등으로 다른 사용자를 도발하는 사용자)을 제압하고, 특정 주제에 대한 고품질 기사를 완성해 성취감을 얻는 온라인 역할수행 게임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실제로 위키피디아는 명확한 규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황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투명하게 대응한다. 누구든지 기사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30초 안에 수정할 수 있다. 편집자의 이메일 주소를 찾고 정중한 메시지를 작성한 후 그들이 회신하기를 바랄 필요가 없다.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위키피디아가 수백만 종의 신뢰도 높은 최신 정보를 보유하게 된 비결은 이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위키피디아는 다른 미디어보다 정보 출처로서 좀 더 큰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스탠퍼드 인터넷 연구소의 연구원 르네 디레스타는 대중이 다양한 출처로부터 정보를 취합해오는 위키피디아 모델은 "거짓 소문 및 불신과 싸워야 하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및 정부 기관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크라우드소싱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게임화된 민주주의 프로젝트들 중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 비결은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포용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프로세스를 만든 것이다. 정부 기관보다 제약이 적다는 점도 성과에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벨링캣이나 위키피디아를 편집하는 것은, 초보들에겐 쉽지 않다. 이 지점에서 게임 설계 아이디어는 이러한 프로젝트에 또 다른 백만 자원봉사자를 모아줄 수 있을 것이다.
참여가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디지털 민주주의에서 접근성과 포용성을 높이는 방법이 오직 게이미피케이션 뿐일까? 영국에선 잘 만든 정부 웹사이트(GOV.UK)를 통해 시민들이 쉽게 여권을 갱신하고 세금을 신고하며 온라인으로 운전면허 시험을 예약한다. 하지만 이는 민주적 참여가 아니다. 정부가 시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국도 이런 식의 온라인 서비스를 잘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평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숙의와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시스템 설계부터 적극적 참여를 장려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인기있는 디자인 앱 '피그마'(Figma)는 협업 기능을 "멀티플레이어"라고 부른다. 복잡한 디자인도 게임처럼 동료와 함께 하면, 다양한 상황에 쉽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니'(Journey)나 '엘든링'(Elden Ring) 같은 게임이 게임 초보자들의 협력을 장려하거나 새로운 부분에 대해 이용자들이 의견을 남길 수 있게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는 참여가 자랑스러운 디지털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참여가 쉽고 참여에 대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이를 자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간판도 안내판도 직원조차 없는 서고도 도서관이라 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이 이상적인 도서관은 아니다. 머물기 편하고, 모두를 환영하고, 이용자를 도와줄 사서가 있는 곳이 이상적인 도서관이다. 최고의 게이미피케이션이란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기능을 개선하고 우리 사회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담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잘 만든다면, 그만큼 보상도 클 것이다. 여러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사용자 친화적인 온라인 플랫폼이 있으면, 다양한 오프라인 시민 모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다만 만병통치약 같은 시스템이 아니라, 모임별 맞춤 설계가 필요하다. 수백 명이 몇 주씩 모여야 한다면, 그 시스템은 분명 일회적이거나 간헐적 모임과는 달라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개발 단계부터 소스를 공개하고 시민의 피드백을 취합하고 빠른 반복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선 비영리 단체와 자선 단체가 필요하다. 이들은 잠재적 위험이 큰 프로토타입에 자금을 지원하고 개발을 감독해, 게임화된 민주주의가 특정한 정치적 결과로 시민을 "몰아가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는 의견은 의견 대로 수렴하고 의사 결정은 별개로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민주적 참여 확대에 초점을 둬야 한다. 또한 오늘날 사회적 토론 대부분을 장악하고 왜곡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넥스트도어 같은 거대 기업들로부터 숙의의 공간을 지켜내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이를 위해 이윤이 아닌, 민주주의적 요구에 부응하는 플랫폼 구축에 나서야 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은 단순히 민주주의를 위한 디지털 발판을 만드는 게 아니다. 시민의 유대를 구축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에 또 다른 난관이 닥치더라도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드리언 혼은 작가이자 게임 개발사 '식스투스타트'(Six to Start)의 창업자·CEO다. 최근 저서로 '누군가 당신을 게임처럼 플레이하고 있다'(You've Been Played, 2022)가 있다.
(To read the original essay and other similar essays in English, visit noemamag.com.)
요즘 한국의 지자체에서 주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걷기를 유도하는 앱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습니다. 매일 얼마씩 걸으면 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숙의와 함께 참여도 중요합니다. 특히 참여가 중요한 기초단체 등 지자체의 경우 참여도가 낮아지면 지역의 이권세력들이 지자체를 주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지자체들이 메타버스와 게임화를 활용해 주민들의 참여도를 높인다면 지자체의 투명한 운영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노에마 매거진의 2022년 11월 20일자 기사가 매우 상세하게 민주주의의 '게임화' 가능성을 다뤘는데 PADO가 전문 번역으로 소개합니다. 특히 지자체 관계자분들이 이 기사를 꼼꼼히 읽고 참고하신다면 주민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창조적 방안을 찾아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게임화'는 어린 학생들의 교육에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도 교육도 즐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