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9 12:26
2009년 제임스 노먼 매티스 대장1은 '창의적 상상력'을 미국의 군사적 사고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계속되던 시기였다. 중동 지역에서 미군의 고전이 보여주듯, 미국의 기존 군사 개념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기존의 군사 개념인 EBO2(효과 기반 작전), ONA3(작전적 실체평가), SoSA4(복합체계분석)은 모두 예측 가능성이 높은 비교적 안정적인 세계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매티스 장군은 21세기의 전쟁이 불확실성·변동성·혼란·혼돈으로 가득 차 있어, 더이상 이러한 개념이 전쟁의 미래를 다루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미 1년 전에 이 개념을 폐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시 그는 이렇게 썼다. "EBO, ONA, SoSA와 관련된 기본 원칙은 근본적 결함을 갖고 있다. 때문에 우리의 어휘와 훈련, 작전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군을 괴롭혀온 문제의 해법도 찾아냈다. 그는 '디자인'과 '창의성', 그리고 실제로 '창의적 상상력'을 미군 교리의 주도적 개념으로 제시했다. 예술과 미학의 세계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로 무장한다면 장교와 병사들이 현대전의 복잡성을 극복할 능력을 보다 수월하게 갖출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보통 전쟁을 창의적 상상력과 연관짓지 않는다. 전쟁은 정치와 법, 군사 전략의 문제다. 폭력의 잔혹한 현실은 창의적인 미적 상상력이라는 세련된 세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21세기 서구의 군사 기관이 예술과 미학에서 나타나던 창의적인 세계만들기(worldmaking)를 전쟁의 파괴적 힘과 결합시키며, 미학의 군사화가 곳곳으로 확산됐다.
문학과 영화, 게임은 지난 20년간 전례가 없을 정도로 그 활용 분야를 넓혔다. 요즘에는 군사 훈련 및 군사 작전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과 국방부 연구 협력 기관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 연구소'(ICT)가 이 분야를 주도한다. 연구소는 자신들의 사명이 "영화 및 게임 업계 아티스트와 컴퓨터 및 사회 과학자가 함께 군사 훈련과 헬스 테라피, 교육 등을 위한 몰입형 매체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창의적 상상과 첨단 군사 기술의 독특한 조합을 통해 ICT는 미군이 후원하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성장 산업 최전선에 섰다. 한편 매티스 장군의 창의성 강조는 예술성과 기교, 심지어 천재성 같은 낭만주의적인 관념이 가득한 '밀리터리 디자인5' 이론의 성장에 기여했다. 밀리터리 디자인 워크샵에 참가하면 전차나 전술 이야기 보다 렘브란트나 모차르트 이야기를 더 많이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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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미학의 결합은 흥미로운 현상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낳는다. 군사 기관이 언제부터 미학적 상상을 전쟁에서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도구로 만든 걸까? 오로지 상상으로 빚어낸 개연성 있는 세계가 어떻게 전쟁의 주된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전쟁은 창의적 노력이며 심지어 그 자체로 미학적 예술 형식이라는 생각은 누가 한 걸까?
나는 나의 새로운 책 '전쟁의 미학: 전쟁은 어떻게 예술 형식이 되었나'에서 21세기 미학의 군사화가 가진 역사적 기원을 추적해 이에 답하려 했다. 이 책은 점성술사와 철학자, 발명가, 문학 작가, 군사 이론가는 물론 천궁도6, 워게임7, 합성훈련환경8과 가상 군사 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 기술을 망라하는 매혹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역사를 다룬다. 이를 통해 어떻게 창의적 상상력과 미학적 개념이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필수 요소가 되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군사 훈련 및 군사 이론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것보다 더 음산한 미학에 관한 이야기를 발굴해, 군사 기관이 어떻게 창의적 상상력의 힘을 빌려 여러 가지 폭력적인 미래를 발명하고 구성하고 관리해왔는지를 살펴본다.
2000년이 넘도록, 전쟁의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점성술사의 몫이었다. 아스트롤라베9와 성좌지도, 천궁도로 미래를 가늠하는 점성술사는 행성의 위치 변화를 측정해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에 적절한 시점을 왕이나 지휘관에게 알려줬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제국의 군주 사르곤 2세(BC 721~BC705년 재위)부터 30년 전쟁(1618~1648) 당시 합스부르크군의 불운한 총사령관이었던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점성술은 물리학이나 수학과 동등한 과학으로 인정받았고 군사적 의사 결정의 핵심이었다. 물론 점성술이 미래를 어느 정도까지 예측할 수 있는지를 두고 종종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발렌슈타인은 유명한 천문학자이자 점성술사인 요하네스 케플러와 오랜 기간 논쟁을 벌였다. 1608년 케플러는 발렌슈타인의 천궁도를 만들어줬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발렌슈타인은 천궁도의 예측이 자신의 삶과 점점 불일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케플러에게 천궁도를 다시 그려달라면서 기존의 천궁도가 보여주는 일반적 경향보다 더 상세한 예언을 요구했다. 케플러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불편한 심경을 토로한 편지를 발렌슈타인에게 보내, 점성학의 한계를 설명했다. "그런 아키덴티아10는 주로 인간의 의지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이것이 구체적이고 계산된 천체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며 예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환상입니다." 그럼에도 케플러는 발렌슈타인에게 발생할 일련의 구체적인 사건을 예측해줬다. 케플러의 마지막 예측은 1634년에 발렌슈타인에게 "끔찍한 무질서"가 발생하리라는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발렌슈타인은 그 해 암살당했다.
케플러와 다른 점성술사들은 전쟁의 미래가 상당 부분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점성술사들은 하늘의 징조를 해석하고 천궁도를 그려 행성들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려고 했지만 천체의 막강한 힘 앞에 인간이 바꿀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았다.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그 미래를 탐색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1800년경 전쟁의 미래 예측에 대한 이해를 바꾼 새로운 도구가 등장했다. '크릭스슈필11', 바로 근대적 워게임이었다. 1770년에서 1824년 사이에 프로이센의 퇴역 장교와 발명가,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쓴 표현을 빌리면) '퇴역 게이머'로 구성된 이들이 점차 복잡해지는 전쟁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1770년에 출시된 첫 번째 게임은 '워게임, 또는 정제된 체스'라고 불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체스를 좀 더 정교하게 만든 것이었지만 프로이센의 발명가들은 이 소박한 게임을 훨씬 사실적인 가상의 전쟁 세계로 발전시켰다. 대규모 작전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게임판을 확장했고 장애물과 위험 요소를 채워넣은 정교한 3차원 지형을 추가했다. 한 발명가는 우연의 요소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게임에 주사위를 넣기도 했다.
그러나 규칙이 늘고 시뮬레이션이 더욱 세밀해지면서 게임의 성격이 달라졌다. 모형 놀이판의 창의적 상상이 구체적인 작전 용도를 가진 군사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입증되자 시뮬레이션은 더 이상 단순한 오락 거리에 그치지 않고 진지한 목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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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1824년 프로이센 군 참모총장 카를 폰 뮈플링 장군 앞에서 진행된 이른바 라이스비츠(Reisswitz) 워게임이다. 게임을 만든 게오르그 폰 라이스비츠는 시연 초반 "다소 냉담한 반응"을 얻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시연을 이어갔다. 그의 친구 에른스트 하인리히 단하우어는 두 명의 장교가 게임을 시작하자 뮈플링 장군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가상 상황에 점차 빠져들었다고 했다. 단하우어는 이렇게 기록한다. "처음에는 냉담하던 어르신은 작전이 전개되자 점점 온화해졌고, 마지막에는 열광적으로 외쳤다. '저건 평범한 게임이 아니라 전쟁을 가르치는 학교일세. 우리 군에 이 게임을 강력히 추천할 것이네.'"
이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가상 전쟁 놀이판이 군사 기관과 직접 손을 맞잡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프로이센 군대는 크릭스슈필을 도입하면서, '실제처럼' 만들어진 세계를 실제 작전과, 가상의 세계를 전술과, 놀이를 진지한 목적과, 창의적 상상력을 전쟁과 결합했다.
이 흥미로운 하이브리드 창작품이 21세기 전쟁에 널리 쓰이는 현대적 합성훈련환경과 VR 시뮬레이션의 토대가 됐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 목적은 전쟁 수행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벌어질 수 있는 전쟁 상황을 가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워게임은 전쟁의 미래를 가상으로 실험하는 실험실이 됐다. 어쩌면 공허할 수 있는 창의적 상상이 폭력적인 군사 작전을 펼칠 장을 열어준 것이다.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파트타임으로 워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다)는 신이 무수히 많은 잠재적 대안 중에서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나올 수 있는 모든 세계의 모습 중에서 최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워게임의 발명으로 군인과 장교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전쟁 중에서 최선의 전쟁 양상을 상상하고 시험하고 선택할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과 관련된 상상 체계는 흥미롭게도 자신이 통제하기 위해 만든 미래인 동시에, 그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대상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2018년 매티스 국방장관이 미군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러한 시뮬레이션으로 "무혈 전투 25회"를 치러야 한다는 화제의 발언을 했을 때 이 점을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의 동료인 스티븐 J 타운센드 대장도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의견을 밝혔다. 그는 ICT가 개발한 몰입형 기술을 홍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장병들은 전투에서 첫 발을 쏘기 전에 이미 무혈 전투를 25차례 치른 가상의 베테랑이 될 것입니다."
가상 훈련을 통한 숙련도 향상 및 무혈 전투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현대 전쟁 시뮬레이션의 발달이 그 밑바닥에 깔고 있는 전쟁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드러낸다. 케플러는 미래를 예측하는 건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늘날의 전쟁 시뮬레이션은 미래가 정해져서 오는 게 아니라, 고안하고 테스트하고 완벽하게 훈련시킨 후 마침내 실현된다는 급진적인 구성주의 관점을 따른다. 전쟁 시뮬레이션은 기이한 시간적 루프(loop)를 만들어 미지의 미래가 갖는 불확실성을 사전에 완벽히 설계된 미래의 단순한 반복, 즉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여러 번 경험하고 다루어진 사건의 반복으로 바꾸려한다. 창의적 상상과 가상의 경험, 폭력이 결합된 이 전쟁 시뮬레이션은 창의적 세계만들기의 장이 되는데 이는 자연적인 시간 현상으로서의 미래를 철폐하는 것도 가능함12을 시사한다. 뭔가를 꾸며낼 수 있다면 그걸 현실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닉 몽포트13가 "미래만들기(future-making)"라 불렀던 가상의 꿈은 여전히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야심찬 비전은 아마도 미 육군 미래사령부가 후원하는 '원 월드 터레인'(One World Terrain) 프로젝트일 것이다. ICT와 막사테크놀로지, 보헤미아 인터랙티브 시뮬레이션과 협력해 포괄적이고 매우 상세한 3D 디지털 세계 지도(군용 '구글 어스'라 할 수 있다)를 구축하는 게 목표로, 이를 미군의 모든 시뮬레이션 훈련 및 군사 작전 체계와 통합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전쟁 훈련과 전쟁 수행은 완전히 통합돼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원 월드 터레인은 과거 프로이센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던 모든 작전 수행이 가능한 글로벌 전쟁 시뮬레이션을 만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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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전쟁 기술에 창의적인 세계만들기 비전이 깃든 것을 보면, 전쟁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는 이론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매티스가 창의적 상상력을 미군 교리의 핵심 요소로 세우려 했을 때, 그는 오늘날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군사 이론가로 꼽히는 프로이센의 장군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저서 '전쟁론'(1832)에서 몇 가지 개념을 끌어왔다. 이 책은 항상 인용되지만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다. 8부로 구성돼 1000페이지에 달하는 '전쟁론'을 끝까지 읽었다 해도 클라우제비츠가 건축과 회화, 시, 소설(트리스트럼 샌디14를 가장 좋아했다)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기란 어렵다. 전쟁론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클라우제비츠는 '예술과 예술 이론에 관하여'에서 '육체적 아름다움의 개념에 관하여'에 이르기까지 미학에 관한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는 전쟁과 미학이라는 두 분야를 깔끔하게 나누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예술과 미학의 영역에 있던 여러 개념을 군사 분야로 옮겨와 예술과 창의성, 직관, 조형성을 예술가 못지않게 군인과 연관지었다. 예를 들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 세 번째 장인 '군사적 천재성에 관하여'에서 지휘관을 "전쟁 예술가"로 묘사하며 그의 독창성이 기존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식으로 전쟁의 재료를 만드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전쟁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클라우제비츠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적은 분명 조각가가 점토를 빚어 만들 듯 원하는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전략을 세우고 행동하는 또 다른 인간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전쟁에 대한 미학적 프레임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잘못된 것으로, 결국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 대한 미학적 프레임을 군사 이론이 조장해온 수많은 '잘못된 비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요즘의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충격적인 점은 미학적 가치가 전쟁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19세기 이래 낭만주의 예술가의 영예를 얻은 이는 거의 없다. 미학적 용어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잔인함과 고통, 죽음을 지워버리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집단적 폭력을 예술의 고결하고 창의적인 노력으로 변질시킨다. 전쟁을 예술의 형식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적, 윤리적 함정도 전쟁의 미학적 이론이 주기적으로 출현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클라우제비츠와 동시대를 살았던 아우구스트 오토 륄레 폰 릴리엔슈테른은 매우 불미스러운 글 '전쟁의 옹호'에서 전쟁을 "아폴로와 뮤즈의 아름다운 예술이나 헤르메스의 유용한 예술"과 동등한 예술의 전당에 헌액했다. 19세기 후반 프로이센의 또 다른 군사 사상가 막스 얀스는 미학적 비유를 가득 집어넣은 '예술로서의 전쟁 기술'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베를린에서 진행했다. 얀스는 전쟁에는 순수 예술의 양식적 특징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고유의 시대적 '스타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는 도리아 양식 기둥과 스타일적 연관이 있고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용병 부대에까지 이어지며, 나폴레옹의 대규모 전쟁과 앙피르 양식의 풍요로운 미학이 연관이 있다는 식이었다. 얀스에게 폭력이란 "군사적 창조"의 한 가지 형태이며 지휘관은 예술성과 천재성을 상징한다. 륄레 폰 릴리엔슈테른이 전쟁을 예술의 만신전으로 끌어올렸다면, 얀스는 전쟁 예술가에게 아폴로의 월계관을 씌워주며 강연을 끝맺는다.
전쟁을 예술 형식으로 신격화하는 것은 19세기 프로이센의 군사 이론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는 단지 프로이센만의 일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군사주의의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는 신기한 과거 사례도 아니다. 21세기에 전쟁은 미적 예술이라는 생각이 재등장했기 때문이다. 매티스 장군이 미군 사고에 창의적 상상력을 집어넣으려 한 이후로 장교와 교육자, 군사 이론가들이 낭만주의 예술 관념을 소위 '밀리터리 디자인'이라는 이론에 밀어넣어왔다. 표면적으로 밀리터리 디자인은 문제 해결 및 계획 방법이다. 하지만 예술가와 관련된 직관과 창의성, 상상력, 규칙의 파괴, 천재성을 줄기차게 주창하며 밀리터리 디자이너에게 이 기술을 요구한다. 2011년 합동참모본부에서 발행한 '작전 설계를 위한 기획자 핸드북'은 현대전의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특성에 호응하기 위해 "근원적인 창의적 프로세스의 중요성"과 "창의적 상상력"을 강조했다. 밀리터리 디자인의 초기 옹호론자 중 하나인 크리스 패퍼론은 "인문학 및 순수예술에서 차용한 미적 은유"를 포착하기 위해 "회화와 작곡, 시의 창작 과정"을 연구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그는 군사적 개입을 "예술적으로 제작되고 미학적으로 만족스러운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군사적 개입은 "미적 특성"을 지닌 "예술적 행동"이며, 창의성과 "즉흥적 행동"을 수반하는 것이다. 실제로 밀리터리 디자이너들에겐 해방된 예술가의 모습이 현대 군인들을 위한 가장 훌륭한 모델로 꼽힌다. 경직된 군사 규율과 관료주의, 사고의 획일화라는 제약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군인은 마침내 내면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전쟁 예술가로 승격된다. 밀리터리 디자인의 또 다른 주요 옹호론자인 벤 츠바이벨슨의 말마따나, 장병들이 "자신의 진정한 창의적 잠재력과 접촉"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미국에서 소수 이론가들의 운동으로 시작된 밀리터리 디자인은 오늘날 스웨덴과 호주, 영국과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수 많은 군대에 뿌리를 내렸다. 이 이론은 전쟁과 디자인 사이의 본질적 단절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유로운 자아 실현과 창의적인 군사적 세계만들기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러한 미학적 군사주의는 아무리 그것이 현실의 난해한 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전쟁을 최후의 수단이 아닌 예술적이고 고결하며 심지어 바람직해 보이는 활동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미학적 수사가 전쟁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폭력의 원칙과 논리, 그 효과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낭만적 사고를 전쟁의 암울한 현실과 잠시라도 연결짓는다면, 우리는 피와 뼈, 악몽과 트라우마, 파괴와 상실을 표현한 그야말로 괴물 같은 예술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원 월드 터레인과 '밀리터리 디자인'은 250년 전에 등장한 독특한 보드 게임들과 과도하게 교양이 넘쳤던 전쟁 이론가들에게서 비롯된 트렌드가 오늘날 다다른 지점이다. 최근 전쟁과 창의적 상상력을 결합하려는 시도에서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자주 인용되지만 21세기의 장군들과 밀리터리 디자이너들은 클라우제비츠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전쟁을 예술의 한 형태로 포장하는 것은 기껏해야 범주의 오류일 뿐이라는 그의 경고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안데르스 엥베리-페데르센은 서던덴마크대학교 비교문학 교수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비교문학 박사, 훔볼트대학교에서 현대 독일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전쟁의 미학: 전쟁은 어떻게 예술 형식이 되었나'(스탠퍼드 대학 출판부, 2023)가 있다.
군인들이 워크샵에서 렘브란트나 모차르트를 연구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서구의 군대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21세기의 전쟁이 과거보다 훨씬 불확실하고 혼돈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벌어지게 되자, 예술의 '창의적 상상력'을 자양분 삼아 이를 돌파하려고 한 미국의 군사사상이 최근 들어 서구 군대의 사상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얼핏 보면 '예술경영' 등을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관념은 보기보다 훨씬 음산합니다. 신간 '전쟁의 미학: 전쟁은 어떻게 예술 형식이 되었나'의 저자 안데르스 엥베리-페데르센이 직접 자신의 책 내용을 다룬 LA리뷰오브북스 에세이(5월 6일자)를 전문 번역으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