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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가 '망 중립성'으로 경쟁을 약화시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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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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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망 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구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KT, SK브로드밴드 같은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 사이의 분쟁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해외 기업 vs 국내 기업'의 구도이다 보니 논의는 한국 기업에 대한 '차별' 등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망 중립성이라는 명분 자체가 공정한 시장 경쟁 질서를 흐리고 있다면 어떨까요? 연성(soft) 자율규제를 도입했던 덴마크와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경성(hard) 규제를 도입했던 네덜란드를 비교해봤더니 덴마크에서 개발한 앱들이 보다 혁신적이었음을 시사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덴마크 올보르대학의 로슬린 레이턴이 2023년 5월 18일 기고한 글을 소개합니다.


그간 망 중립성(net neutrality), 또는 '오픈 인터넷1' 규칙의 핵심 근거는 '혁신'이었다. 공식적 또는 법적 정의가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팀 우2는 오픈 인터넷을 혁신을 위한 "중립 플랫폼"이 된 광대역 네트워크3로 제시했다. 오픈 인터넷 규칙은 인터넷 트래픽 관리를 위한 일련의 가격 및 트래픽 통제 규칙이다.


망 중립성을 지지하는 단체 '세이브 디 인터넷'은 이렇게 주장했다. "망 중립성이 없다면, 제2의 구글은 절대 나오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수십여 국가가 망 중립성과 관련된 인터넷 규제를 10년 넘게 시행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없는 국가들도 있다. 올보르 대학의 커뮤니케이션·미디어·정보기술센터는 바로 이러한 불일치를 글로벌 규모의 자연실험4 주제로 삼았다. 실험은 53개 국가의 모바일 네트워크에서 운용되고 있는 모바일 앱을 5년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통념대로라면 망 중립성 규제가 엄격한 국가에서 더 많은 인터넷 혁신이 나왔을 것이다.

망 중립성이 인터넷 혁신을 보장한다는 전제는 타당한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2015년 '오픈 인터넷 규칙'(Open Internet Order)은 이 규칙을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와 혁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러한 규칙이 "인터넷을 혁신을 위한 플랫폼으로 존속하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같은 해 유럽의회는 "인터넷 생태계의 지속적인 혁신 동력을 보장"하고자(강조는 필자) "인터넷에 대한 개방적 접근을 규정"한 법안을 공표했다.



이와 같은 주장을 시험하기 위해 우리는 연구 대상 국가들의 망 중립성 규제를 '연성', '경성', '없음'의 3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연성 규칙은 가이드라인 제시, 다자간 협의 모델5, 핵심 성과 지표를 가진 자율 규제 등을 말한다. 입법과 행정 명령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성 규칙은 광대역 네트워크의 가격과 트래픽에 대한 통제까지 포함한다. 광대역 제공업체와의 파트너십 및 우선권 제공 금지, 위반 시 징벌적 벌금 부과 등이 이에 속한다. 호주와 뉴질랜드와 같이 망 중립성 규제를 시행하지 않는 국가들은 망 중립성에 대해 사후경쟁법6을 선호한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FCC의 오픈 인터넷 규칙이 시행된 2015~2017년을 제외하고는, 경쟁법을 통해 광대역 네트워크 시장을 감독해 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수많은 소송이 수년간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은 망 중립성 규칙이 더 높은 수준의 혁신을 만들어 낸다는 전제를 시험하고자 우리는 망 중립성 규칙 도입이 각 국가별로 모바일 앱의 혁신을 얼마나 촉진했는지를 집계할 수 있는 데이터 사이언스7 모델을 구축했다. 망 중립성 규칙 도입 전후인 2010~2016년 사이 앱 사용빈도와 다운로드 수, 앱 순위, 매출 데이터는 기업용 모바일 앱 스토어 측정 도구 2종에서 가져왔다.


분석 결과, 통계적 측면에서 연성 망 중립성 규칙은 혁신을 촉진한 것으로 나타났다(대한민국, 일본, 스위스 등). 하지만 경성 망 중립성 규칙을 가진 국가(칠레, 캐나다, 브라질 등)에서는 혁신과 관련된 이점이 통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다.


천부적 환경이 다른 국가들을 비교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유사하고 모바일 광대역 네트워크는 발전했지만 규제는 다른 국가 2곳의 데이터를 회귀분석했다. 2011년에 '연성' 자율 규제를 도입한 덴마크와 2012년에 가격 차별 금지 등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를 입법화한 네덜란드다. 연구 대상 기간 중에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앱은 115개, 네덜란드는 102개였다. 앱 출시 이후엔 현저한 차이가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덴마크 앱의 평균 인기 순위는 42위에서 26위로 상승한 반면, 네덜란드 앱의 평균 인기 순위는 31위에서 42위로 하락했다. 또한 덴마크는 히트 앱 '서브웨이 서퍼'(Subway Surfers)를 해외로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앱은 네덜란드의 상위 앱 18개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매출과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5년여 간 두 국가에서 사용된 해외 앱 중에서 경성 규칙을 가진 국가에서 나온 앱은 20개뿐이었다. 연성 규칙 국가에서 만들어진 앱은 150개, 규칙이 없는 국가에서 나온 앱은 130개였다.


하지만 미국산 앱의 전반적 우세로 인해 연구가 복잡해졌다. 주로 구글과 메타(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같은 미국의 거대 플랫폼이 만든 총 302개의 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경성 규칙이 시행되기 몇 년 전에 시장에 출시됐다. 이후 등장한 경성 규칙은 이들의 시장 우위를 확고히 지켜주고, 현상 유지에 기여한 것처럼 보인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 나라 모두 첨단 모바일 네트워크를 4개씩 운영하고 있었고 많은 인터넷 개발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바일 가입과 관련된 상업적 자유도는 덴마크가 더 높았다. 덴마크의 모바일 사업자들은 무료 데이터와 파트너십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해 사용자들에게 차세대 모바일 네트워크 가입을 홍보할 수 있었는데, 이는 네덜란드의 망 중립성 규칙 하에서는 불법이었다. 그 결과 덴마크에선 첨단 스마트폰 보급률과 후불제 가입이 늘어났고, 이를 통해 덴마크 개발자들은 자국 시장 내에서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다.



현재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유럽연합 망 중립성 체제에 속해 있다. 망 중립성 규칙이 시행되기 전에는 상위 20개 인터넷 기업 중 상당수를 유럽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유럽 기업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은 글로벌 인터넷 시장 가치 순위 53위에 올라 있는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8다. 전 세계 인터넷 가치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 미만이며, 이마저도 곧 아프리카에 추월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터넷 시장 가치의 3분의 2는 미국의 몫이다.


미국 빅테크에 필적할 만한 플랫폼을 만들어낸 국가는 중국 뿐이다. 중국은 망 중립성 규정을 시행해 본 적도 없고 '개방적'이라는 정의에도 거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틱톡은 미국 사용자 1억5000만명이 이용하는 등 구글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공간이 되었고, 중국의 모바일 동영상 편집 플랫폼인 캡컷(CapCut)은 사용자 2억명을 확보했다. 쉬인(Shein)과 테무(Temu)같은 중국 쇼핑 앱도 미국에서 아마존과 월마트 앱의 다운로드 수를 넘어섰다.

빅테크가 망 중립성을 사랑하는 이유

빅테크는 망 중립성의 주요 로비스트로, 망 중립성을 지지하는 많은 학계시민단체에 자금을 대고 있다. 직관에 반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망 중립성은 빅테크에게 커다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차단할 수 있다


무료 검색과 SNS에 대항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광고 상품은 무엇이 있을까? 광고를 보면 광대역 네트워크를 무료로 제공하는 건 어떨까. 빅테크 정책 전략의 핵심이었던 2015년 FCC 오픈 인터넷 규칙에는 광대역 네트워크 제공업체의 경쟁 감시 및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FTC의 권한을 무력화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FCC는 이를 통해 광대역 산업에 특화된 새로운 개인정보 보호 규칙을 만들어, 사실상 광대역 제공업체들이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후 FTC의 관할권은 복구되었지만 경쟁을 위한 중요한 기회는 사라졌다.


유럽도 상황이 비슷한데, 스타트업이 빅테크보다 한 발 앞서기 위해 광대역 네트워크의 첨단 기능을 사용하는 게 제한돼 있다. 논문 '(상호간) 망 중립성 역설: 반독점 규제에 대한 사전 연구'의 저자들은 독재자 게임9 이론을 활용해 망 중립성을 연구한 결과, "망 중립성 정책의 비호를 받은 빅테크 기업들은 번창했다. 이들은 이제 사실상 망 중립성 원칙을 무시하고 인터넷 시장에서 소규모 기업과 콘텐츠를 인터넷 시장에서 사실상 배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고 결론내렸다. 반독점 연구자 올레스 안드리추크(Oles Andriychuk)는 유럽연합의 광대역 제공업체는 파괴적 혁신을 이룩할 수 없게 돼 있다고 지적하며, 연성 망 중립성 규칙은 경성 규칙에서 나오는 문제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긍정적 결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빅테크에게 유리한 가격 통제권을 가치 사슬 내 다른 부분까지 확대할 수 있다


망 중립성은 광대역 네트워크에서 광대역 공급자와 최종 사용자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빅테크는 기회주의적으로 이 원칙을 재해석하는데 특히 네트워크 간 데이터 교환의 사례에서 두드러진다. 데이터 교환의 양이 비대칭적일 경우,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넷플릭스는 FCC가 '경성' 망 중립성 규칙을 채택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 넷플릭스는 컴캐스트의 상호 접속 협상을 하고 있던 터라, 여론 조성이 꼭 필요한 시점이었다. 결국 넷플릭스는 네트워크 사용 요금을 3분의 2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 일화가 광대역 서비스 제공업체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무료, 또는 상당히 할인된 가격을 제공하지 않으면 사람을 풀어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분쟁이 벌어졌다. 2021년부터 한국의 광대역 네트워크에서는 넷플릭스 트래픽이 갑자기 24배 정도 증가했다. 때문에 넷플릭스 데이터만을 위한 대대적이고 즉각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해졌다. 하지만 한국의 광대역 가입자 2300만 명 중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인구는 500만 명에 불과했다. 한 가지 해법은 광대역 요금에 넷플릭스 전송 요금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업그레이드 비용을 광대역 사업자가 부담하거나 모든 고객이 분담하기를 원했다. 광대역 사업자가 한국 통신 규제 기관을 통해 비용을 회수하려 했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넷플릭스는 타인의 네트워크 사용 비용을 지불하거나 이에 대해 협상할 의무가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넷플릭스는 패소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또 다른 플랫폼들이 유사한 갈등을 일으켰는데, 특히 메타(페이스북)가 데이터 제공을 거부하거나 요금 지불을 중단한 사례가 있다.


경쟁 전문가들은 이러한 협상에서 시장 지배력을 악용하는 글로벌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에 주목한다. 개별 기업 또는 기업 집단이 경쟁 상황이라면 나올 수 없는 가격이나 조건을 통제하거나 고수하면, 생산량 감소와 경제적 후생 손실로 이어진다.


오늘날 미국 시골 지역 내 광대역 서비스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비디오 스트리밍 플랫폼 단 5곳에서 미국 시골 지역 네트워크 트래픽의 75%가 발생한다. 빅테크의 스트리밍 매출이 1달러 증가할 때마다 광대역 사업자에게는 회수 불가능한 인터넷 전송 비용 0.48달러가 발생한다. 고객이 수천 명에 불과한 소규모 업체들은 빅테크와 협상할 시장 지배력이 없어, 그저 늘어나는 트래픽을 떠안게 될 뿐이다. 빅테크의 무임승차로 인해 적자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제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가 됐다.


FCC는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17%의 미국인과 부족 지역10에 거주하는 미국인 21%가 현재 25/3 mbps 광대역 네트워크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전체적으로 약 2000만 명의 미국인이 초고속 광대역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5G 목표 달성을 위해 추가로 3000억 유로가 필요한 유럽연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데이터는 망 중립성 정책이 정책 입안자들의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망 중립성 정책이 경쟁을 보호하지 않고 빅테크를 위한 현상 유지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시카고대학, 부스경영대학원 또는 시카고대학 교수진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슬린 레이튼은 덴마크 올보르대학에서 비즈니스 경제학 및 인터넷 규제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동대학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및 정보 기술 센터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의 광대역 비용 회수 비즈니스 모델을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시카고대학교 부스경영대학원의 스티글러 센터(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시카고 경제학파의 핵심 인물인 조지 스티글러의 이름을 땄습니다)에서 운영하는 매체로, 특수이익집단의 시장 경쟁 저해를 막기 위한 연구를 전파하는 것이 주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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