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4 11:58
50여 년 전, 윌리엄 F 버클리 2세1는 자신의 어머니가 리버럴리즘2에 대한 책을 쓰기 전까지 더는 리버럴리즘 관련 책은 읽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당시 리버럴리즘은 큰 인기를 얻고 있었고 버클리는 아마도 리버럴리즘 옹호자들의 승리에 도취한 어조가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40년새 상황이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리버럴리즘에 대한 비판을 피해서는 겨우 한 블록 거니는 것도 힘겹다. 과격한 랜드주의자3, 자유지상주의자4, 신고전주의 경제학자, 신(新)버크주의5 보수주의자, 가톨릭 통합주의자, 비판적인종이론가, 포스트모더니스트, 그리고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까지 리버럴리즘을 비판하고 있으니.
그중 돋보이는 인물이 몇몇 있다. 마이클 샌델은 1982년 출간된 저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에서 존 롤스에 대한 학술적 비평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이후 '민주주의의 불만: 공공철학을 찾아가는 미국'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통해 미국의 공동체주의를 선도하는 대중적인 지식인으로 거듭났다. 로버트 노직의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6는 노직도 훗날 인정한 바 있는 명백한 오류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전 연령대의 아마추어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바이블이 되었다. '성적 계약'에서 캐롤 페이트만은 성과 젠더에 관련해 리버럴리즘의 맹점을 비판했다. 또한 '인종 계약'에서 찰스 밀스는 인종에 관련해 리버럴리즘에 비판을 가했다. 크리스토퍼 래시는 좌파와 우파 양쪽 관점에서 리버럴리즘을 비판했는데, 그는 정치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자, 문화적으로는 보수주의자였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91년, 래시는 야심찬 사상적 종합인 '진실한 단 하나의 천국: 진보와 그 비판가들'을 출간했는데 여기서 그는 리버럴리즘과 보수주의 모두를 초월하려 시도했다.
아마도 이런 비판의 홍수 속에서 가장 예상치 못하게 인기를 끌었던 책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7일 것이다. 이 책에는 리버럴리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비판과 근대성의 폐해에 대한 포괄적인 진단이 결합되어 있다. 매킨타이어 본인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이토록 어렵고 추상적인 책이 그렇게까지 큰 영향력을 갖게 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평소엔 그렇게 분열되어 있던 보수주의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이 책을 떠받들었으며, 심지어 대부분의 리버럴과 좌파들(적어도 철학에 관심이 있던 이들)도 마지못해 존경을 표했다. 미국 가톨릭 지식인 계층에서―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점점 더 영향력을 키워가는 중이었던―매킨타이어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노트르담대학8의 명예 교수인 그는 93세인 지금까지 저명한 철학자이자 리버럴리즘의 강력한 비판가다.
물론 리버럴리즘을 옹호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철학계의 이단아 리처드 로티가 그 중 하나다.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해체하고 영미권 독자들에게 하이데거, 하버마스, 데리다를 소개하며, 그는 리버럴리즘이 결코 구제불능이 아니고 오히려 좌파와 리버럴이 협력해 공동투쟁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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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간된 두 권의 책이 리버럴리즘에 대한 로티와 매킨타이어의 논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첫째는 철학자 에밀 페로-소신(?mile Perreau-Saussine)이 쓴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지적 전기'인데 이것은 학문적 연구라기보다는 매킨타이어의 여러 논점을 주제로 쓴 에세이에 가깝다. 비록 몇몇 부분은 새로울 것 없고 약간 헤매는 듯 하기도 하지만, 접근하기 쉽고 재미있다. 매킨타이어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주었다면 더 흥미로웠겠지만―약간의 가십은 전기를 더 맛깔나게 해주니까―어쨌든 페로-소신은 난해할 수 있는 매킨타이어의 논의를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두 번째 책은 로티의 다양한 정치적 에세이를 엮은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이다. 사후 출간된 이 책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로티의 인간적인 열정이다. 책의 제목은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라는 칸트의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데 철학의 존재이유가 되는 필수적인 질문 중 하나이리라. '나'가 '우리'로 바뀐 것은 특히 중요한데 사람과 사람의 연대야말로 로티 정치 철학의 알파요 오메가이기 때문이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런던에서 자라 맨체스터 대학에 진학했고 이후 옥스퍼드 대학을 다녔다. 그는 맨체스터 대학과 리즈대학, 옥스퍼드뿐 아니라 미국의 저명한 대학들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많은 학문적 영예를 얻었다. 그는 처음에는 좌파였다. 1950년대 말, 그는 E.P. 톰슨9의 전설적인 저널 '더 뉴 리즈너'에 합류하였다. 이 저널은 훗날 '유니버시티 앤드 레프트 리뷰'와 합쳐져 1960년 '뉴 레프트 리뷰'가 된다. 그는 톰슨이 편집한 책으로 영향력 있는 선언서이기도 한 '무관심에서 벗어나기'에 기고했고, 스탈린주의와 영국 노동당에 대한 톰슨의 불만을 공유했다. 그러나 톰슨이 자신의 새로운 입장으로 '사회주의 휴머니즘'을 주창한 반면, 매킨타이어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회주의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휴머니즘10을 버린 것이다. 도버해협 너머 파리에서도 알튀세르11를 선두로 한 새로운 세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휴머니즘에 거리를 두고 인간의 '주체성'을 배제하는 구조주의로 나아가고 있었다. 매킨타이어는 인간의 주체성을 긍정하기는 했으나 이를 전통, 공동체의 규범, 신의 뜻 아래에 두었다.
1960년대 내내, 매킨타이어는 마르크스주의의 윤리학과 역사 철학에 매료되어 있었다. 스탈린주의가 끔찍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까지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보르자 교황12의 삶이 기독교의 도덕적 본질과 무관한 것처럼 모스크바에서 자행되고 있는 집단 황제정13의 야만스러운 폭정은 마르크스주의의 도덕적 본질과는 무관하게 여겨져야 한다." 매킨타이어는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들면서 결국에는 마르크스주의를 떠났지만 마르크스의 도덕적, 지적 진지함에 대한 깊은 존경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아래의 품격있는 헌사와 함께 뉴레프트에 작별을 고하는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1968)를 끝맺는다.
"리버럴과 기독교인은 마르크스주의가 사람들이 한때 품었지만 종교적인 술어를 빌려서만 표현할 수 있었던 희망을 적어도 의미있는 정도로 세속적 기획으로 번역해낼 수 있는 근대의 유일한 체계적 교리였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기획은 사회를 이해하고 인간의 잠재력과 역사를 현재를 과거의 짐에서 해방시키며 미래를 건설하는 수단으로 표현해내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리버럴리즘은 희망이라는 미덕을 간과한다. 리버럴들에게 미래란 단지 현재의 확장일 뿐이다."
리버럴리즘은 정의하기 까다롭기로 잘 알려져 있다. 정치적으로 급진적이었을 때의 매킨타이어에게 리버럴들은 불우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에게 훨씬 강력한 사회적 권력을 허용하려는 의도가 없는 이들로 여겨졌다. 매킨타이어의 평등주의에 대한 공감은 그가 우파로 전향한 후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는 그의 후기 저작에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1966년 마르크스주의 시절부터 계속 유지해오고 있는 가치에 대한 질문을 받자, 매킨타이어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전히 모든 부자들이 가까운 가로등 기둥에 목매달린 걸 보고싶네요." 전근대 철학에 대한 그의 몰입과 전념이 깊어짐에 따라 그에게 자유주의는 점점 더 합리주의, 세속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물질주의와 같은 근대 사회의 모든 잘못된 것들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그의 폭넓은 정치적, 철학적 관심사가 모여 작성된 '덕의 상실'은 근대 문명 전체에 대한 비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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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타이어에게 리버럴리즘의 부상(浮上)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도덕적 사유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명확하고 불길한 모습을 띠고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고전적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아퀴나스의 신학으로부터 파생된 우주적이거나 사회적인 질서의 개념을 굳건히 공유하고 있다. 수백 년 전에 살았던 대부분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두 사상가는 인과(因果)와 권능의 위계질서를 믿었으며, 이 위계의 궁극에는 '최고 존재', 즉 신이 있다고 믿었다. 16세기와 17세기의 과학 혁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무너뜨렸으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새롭고 비정통적인 신학을 도입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흄, 아담 스미스, 디드로, 칸트, 벤담, 밀과 같은 18세기와 19세기의 도덕 철학자들은 도덕성에 합리적이지만 비형이상학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시도했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실패했다.
매킨타이어는 20세기에 들어서 도덕성이 객관적 합리성과 분리되었다고 주장한다. 도덕 이론의 지배적 형식은 '이모티비즘14'이 되었는데, 이것은 세상에 매기는 가치 평가적 진술들이 사실은 주관적 선호(先好)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사상이다. 즉 'X는 좋은 것이다'는 단순히 '나는 X를 좋아한다'는 의미이지만 듣는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하기 위해 객관적 사실에 기반을 둔 진술인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물론 이모티비스트들은 문제를 다르게 본다15. 그들에게 "나는 X를 좋아한다"는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나는 X를 좋아한다. 이것은 X가 얼마나 나의 전반적 입장에 잘 부합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면, 당신도 X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킨타이어는 이런 접근을 거부한다. 그에게는 상상 속의 (주관적) 화해가 아니라―인간의 텔로스(telos: 目的因)로부터 엄밀한 연역을 통해 도달하는―'합리에 기반한 정당성 부여'가 도덕 관련 논의를 수행하는 유일하게 정직한 방법이다. 매킨타이어가 보기에 이모티비즘은 정직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오로지 서로를 교묘하게 꾀어들일 수 있을 뿐이다.
'덕의 상실'의 앞 장들은 이러한 철학적 교착상태가 낳은 문화적 결과에서 출발한다. 우주적 질서의 부재, 그리고 그 우주적 질서와 연관된 텔로스(혹은 목적)의 부재는 현대 사회에 무질서, 피상성, 그리고 나르시시즘이 만연하게 된 요인이다. 매킨타이어는 현대 문명이 몇 가지의 대표적인 인물 유형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눈에 띄는 유형으로는 관리자, 치료사, 그리고 심미가가 있다. 이들은 모두 사람이나 상황을 조종하는 데 지극히 능하다. 관리자, 치료사는 가상의 전문성을 동원하는데, 직원이나 환자를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목표로 이끌기 위해서다. 심미가는 타인을 소비해야 할 흥미로운 감각대상으로 취급한다. 현대의 도덕적 삶은 의지의 미묘한 충돌, 끝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공인된 도덕적 권위의 부재로 인해 이 충돌과 싸움은 결코 해소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텔로스란 과연 무엇일까? '텔로스'는 '존재'나 '변증법'처럼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고약한 용어 중 하나다. 이것은 대략적으로 말하면 '근원적 본성', '궁극적 목표', '목적', '도착지점', '궁극적인 것의 실현(또는 도달)'을 의미한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도덕 철학은 텔로스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이해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 우리의 진정한 목적(텔로스)을 파악해야만, 우리에게 어떤 의무가 있으며 어떤 덕목으로 그 의무를 충족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인간의 텔로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합리적 행복"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고 심지어 진부하게 들리는 이야기다. 그러나 왜 이성(理性)이, 이를테면 사랑이나 아름다움보다 인간에게 더 본질적인가? 왜 그것은 고통보다 보편적이며 동정심이나 용기보다 더 고귀한가? 무엇보다 '근원적 본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종의 모든 구성원이 가진 것일까?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 이성을 상실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매킨타이어 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텔로스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그는 인간 삶의 목적이나 의지, 목표를 객관화하여 발견할 수 있으며 '호모 사피엔스'의 전 구성원에게서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목적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우리 삶의 목표를 과학적, 철학적 연구의 결과에서 찾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상상력과 정서적 노력을 통해 성취한다. 인간 본성은 무수히 많은 텔로스와 양립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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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텔로스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쟁보다 더 나은―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방법이 있다. 두 사람이 무엇인가가 좋은지 나쁜지 논쟁할 때 상대방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엔 사실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고, 그런 경우가 아니면 상대방 논리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만약 그런 후에도 합의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해당 논쟁과 와 관련된 원칙과 가치에 대해 모두 검토할 수 있다. 만약 그 결과, 하나 이상의 원칙이나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의견 불일치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동의할 수 있다면, 둘은 합의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가장 까다로운 사례들은 대부분 사실확인과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런 경우 논쟁의 당사자들은 각자의 입장이 근거하고 있는 믿음, 경험, 희망의 기반 전체를 솔직히 드러내야 한다. 이를 통해 각자가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려 노력해야 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확장된 도덕적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합리에 기반한 정당성 부여'보다 우리의 도덕적 삶을 묘사하는 더 나은 방법이다.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러한 논쟁에 대해 매킨타이어는 통탄했으나, 우리는 이러한 논쟁을 '대화'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지속된 논쟁은 때때로 (노예제 문제와 같은 경우)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종종 합의에 이르기도 하며 도덕적 진보로 나아가기도 한다. 1960년대에 짐크로우 법(흑백 분리 강제 법률)과 인종간 혼인에 대한 미국의 국가적 논쟁은 결실을 맺었다. 여성의 완전한 인권에 대한 논쟁은 1980년대와 90년대에 종결되었던 것 같았지만 공화당과 성서 복음주의자들이 논쟁을 재개하려는 듯 보인다. 동성애에 관한 논쟁은 행복하게 종결되었다. 대마 합법화에 대한―그리고 아마 다른 향정신성 약물에 대한―논쟁도 유망해보인다. 경제적 불평등과 뉴딜 정책 부활에 대한 우리의 논쟁은 불행히도 제자리걸음 하고 있지만 최소한 뉴딜이 실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대화는 걸음마 상태이다. 현대의 다원주의가 도덕과 정치의 진보를 불가능하게 저지하고 있다는 매킨타이어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어긋나 보인다. 때때로 우리는 다원주의의 과오로부터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다.
매킨타이어의 주장과 반대로, 도덕적 판단은 이성과 감성을 모두 포함한다. 흄은 이 진실을 도발적으로 진술한 바 있는데, 이성은 언제나 감성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임스와 듀이 같은 실용주의자들이 상상력을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능력으로 규정한 이유이다. 또 우리가 철학보다는 소설가, 저널리스트, 문화연구자 등 구체적인 것들에 대해 '두텁게 기술(記術)하는16' 사람들의 작업에서 도덕적 진보를 기대해야 한다고 로티가 말한 까닭이기도 하다.
매킨타이어가 개탄한 것은 조작성, 피상성, 무목적성, 파편성 등의 혐의를 지닌 현대 사회의 이면 뿐만이 아니다. 그는 리버럴리즘의 가장 훌륭한 공헌도 공허하다고 경멸한다. 그는 자연권과 인권은 마녀나 유니콘만큼이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권리장전이나 미국의 독립 선언문뿐만 아니라 인권선언문과 같은 문헌은 객관적, 합리적 정당화가 불가능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문헌들은 철학적 논쟁이 아니며 그러한 논쟁에 의존하고 있지도 않다. 예를 들어 권리장전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 문서가 권한을 가지는 범위에서는 그 누구도 투표하거나 공직에 출마하거나 신문을 창간하거나 기타 정치적 행동을 하고자 할 때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금지당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형이상학의 모호한 영토에 권리라는 이름의 유령 같은 실체가 존속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우리는 정치를 조직하는 최선의 방법을 연역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심지어 오늘날 우리는 그 유령 같은 실체(권리)에 대한 믿음이 미합중국 헌법을 제정한 이들보다 부족하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진리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합리에 기반해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당화는 단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강제가 아닌) 설득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 정치권력의 근원이라고 믿는다." 더 자세히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다한들 매킨타이어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매킨타이어는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인 권위의 부재를 리버럴리즘의 결정적인 결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에게 리버럴리즘은 단지 권위를 한정짓는다는 순전히 부정적인 의미만 가질 뿐이다 매킨타이어는 리버럴리즘의 원칙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리버럴리즘에 따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목적 따위는 없다. 우리의 정치적 행동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상이나 비전 또한 없다. 리버럴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절대 말해주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만, 리버럴리즘은 근대 이전 그렇게 많은 사람을 짓눌렀던 오래된 위계질서에 우리가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이유를 말해준다. 그 점에는 아무리 감사를 표해도 부족하다.
프랑스의 보수주의 철학자 피에르 마낭(Pierre Manent)은 책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서문에서 매킨타이어가 50여 년 동안 유지해온 "리버럴리즘에 대한 분노라는 변하지 않는 핵심요소"에 동의를 표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음과 같이 비꼬고 있다. "자유주의의 대안들은 모두 신뢰를 잃었다. 인간사회를 조직하는 그 어떤 원리들도 (리버럴리즘만큼)보다] 승리 속에서 비판받거나 욕을 먹으면서 승리를 구가하는 경우는 없었다." 매킨타이어는 이같이 유쾌한 어조는 아닐지라도 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그 역시도 리버럴리즘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리버럴리즘이 회복력이 강하거나 가장 덜 나쁜 대안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리버럴리즘은 우리의 문화적, 정치적 풍경에 영원히 정착한 유독한 안개나 말려죽이는 병충해와 같다. "현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에게 닥친 긴 암흑기에서 시민적 덕성과 지적, 도덕적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지역 단위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이다."
리처드 로티와 매킨타이어는 서로를 좋아하고 존경했다는 단 하나의 공통점을 빼면 모든 면에서 상극이었다. 로티는 반(反)토대주의자였던 반면 매킨타이어는 형이상학적 토대가 없는 철학은 가장 빈약한 허구라고 엄숙하게 주장한다. 로티는 우리에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도덕적, 정치적 의무는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매킨타이어는 우리의 공동체 전통들이 안내하고그 공동체가 인간 삶의 목적 즉 텔로스에 대해 가지는 관점이 가리키는 '덕의 길'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로티는 계몽주의와 그것이 물려준 비판 정신이 역사 속에서 새롭고 유복한 시대를 열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적어도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해방을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반면 매킨타이어는 그러한 해방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은 것이야말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로티는 계몽주의적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적 리버럴리즘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매킨타이어와 마찬가지로 계몽주의적 합리주의―도덕의 기반을 이성에 두려는 시도―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계몽주의적 리버럴리즘의 평등주의, 표현의 자유, 보통투표권, 교회와 국가의 분리 같은 것들이 명예롭게 성취되었으며 이것들이 인류에게 최고의 희망이었다고 여겼다. 매킨타이어는 그가 결국 안착하게 된 가톨릭 제외하면 별다른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로티는 자신의 철학적 명성에는 동시대의 정치적 사안들에 의견을 제시할 의무가 따른다고 느꼈던 것 같다. 반면 매킨타이어는 자신의 철학적 명성에는 그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을 의무를 수반한다고 느낀 것 같다. 결과적으로 로티는 죽기 전 20년 동안 거의 대중적 지식인의 모범과 같은 인물이 되었으나 매킨타이어는 마치 수도원 속에서 글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1931년에 태어난 로티는 지적, 정치적 활동에 열심인 집안에서 자랐다. 그의 부모는 언론인, 교사, 활동가였으며 존 듀이의 친구였다. 존 듀이의 급진 민주주의적 평등주의는 어린 로티에게 일찍부터 영향을 끼쳤다. 시카고 대학과 예일대학에서 교육받은 그는 학계에서 빠르게 성공하여, 30대에 프린스턴대학의 테뉴어를 얻었다. 그러나 학계에서 빛나는 명예를 모두 얻은 그는 파리에서 수입된 이론들에 심취한 후, 철학과를 뒤로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버지니아대학과 스탠포드대학의 자리로 떠났다.
로티는 다양한 입장을 포용하는 좌파였다. 자신을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혹은 리버럴로 지칭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가 생각하기에 대화를 방해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이름을 취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정체성 정치와 계급 정치 사이의 분열로 괴로워하던 그는 '미국 만들기: 20세기 미국에서의 좌파 사상17'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구좌파와 신좌파, 개혁주의 좌파와 아카데믹 좌파, 더 넓게는 좌파와 리버럴 사이의 연합 전선을 촉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너무나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막아내기 위해 단결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조합의 구성원들과 조직화되지 않은 비숙련 노동자들은, 그들의 정부가 임금 하락을 방지하거나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조차 하지 않음을 조만간 깨달을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도시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그들 자신도 감원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다른 사람들에게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세금을 내려 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깨달을 것이다."
"그때 무언가 잘못되기 시작할 것이다. 부유한 교외지역 밖에 사는 가난한 유권자들은 시스템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표를 던질 강력한 인물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강력한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당선되면 독선적인 관료들, 교활한 법조인들,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돈을 버는 금융권 종사자, 포스트모더니즘 교수들이 더 이상 힘을 휘두를 수 없게 하겠다고 공약할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 상상 속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이 구절은 급속도로 퍼졌고 로티는 사후에도 선지자로 찬사를 받았다.
로티의 다른 정치적 저서인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는 아마도 그의 최고 정치 저작일 것이다. 프루스트, 나보코프, 오웰, 니체, 하이데거, 데리다 등을 받아들이며, 로티는 정치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철학적 의견일치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상상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래그머티스트인 로티에게는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구속력 있는 도덕적, 정치적 진리는 있을 수 없었다. 논쟁을 통해 상대방을 연대나 어떤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할 수는 없다. 도덕성이나 정치적 질서의 토대가 되는 '인간의 본성'이나 '사물의 본질' 따위는 없다. 리버럴리즘 정의론에 대해 로티는 이렇게 썼다. "(리버럴리즘 정의론은) 근대 부르주아 리버럴리즘의 사회제도 등의 보호 없이는 사람들이 그들 각자의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기 힘들고, 각자의 개성을 창조하거나 믿음과 욕망의 그물을 스스로 다시 짜는 것 역시 어렵다는 역사적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연성의 수용에 기반한, 이러한 연대의 강조는 로티 정치학의 골자다. 이보다 매킨타이어의 생각에 반대되는 것은 없다. 신기하게도 매킨타이어는 이 책을 불쾌하지 않은 어조로 논평하면서 다음과 같은 장난스러운 말로 결론을 내렸다. "이 책 속에는 아마도 꺼내주길 바라는 소설이 한 편 숨어있는 듯하다." 나의 추측이지만, 아마도 로티는 이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는 직전 출판된, 더 엄밀하게 철학적인 '반권위주의로서의 프래그머티즘'에 이어 로티의 문서고에서 마지막으로 뽑아낸 주제별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에 수록된 18개의 작품은 각 주제에 맞는 에세이 분량의 글이다. 로티는 예컨대 경제적 불평등('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기', '계급 정치로 돌아가라'), 세계화('미국의 평등주의가 글로벌 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문화 정치('아카데미를 악마화하기'), 국제문제('예측할 수 없는 미국 제국', '50만 개의 파란 헬멧?')와 같은 주제들을 인문적으로 능란하고 우아하게 다룬다.
아마도 가장 인상적인 글은 '2096년의 회고'일 것이다. 이 글은 어느 이름 없는 화자가 21세기를 돌아보며 논평하는 내용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점점 더 심해지는 불행과 분노는 제어 불가능한 사회적 갈등을 촉발했으며 그로 인해 세기 중반에 군부 독재를 초래했다고. 이후 '민주주의 전망당'이 문민통치를 복구했으나 모두 지쳐 있었고 미국 예외주의도 약화되었다. "100년 전(1996년)의 미국인과 비교하면 우리는 고립주의적이고, 어떠한 야심도 없으며, 그저 그런 중견국 시민이 되었다." 말미에 화자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모든 것은 깨지기 쉬운 미국인의 시민적 우애를 온전하게 보호하는 데 달려 있다." 이 글은 휘트먼의 '민주주의의 전망'과 밸러미의 '뒤돌아보기'를 암시하며 이러한 도덕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마지막 책에서뿐만 아니라 로티는 자신의 모든 저작에서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전통 철학이 얼마나 중요하지 않은지 보여주는 것이고, 둘째는 그 사실이 얼마나 중요하지 않은지 보여주는 것이다. 즉, 우리의 도덕적 삶이 철학적 원칙들로부터의 연역에 얼마나 적게 기반하는지, 그 대신 공감, 연대, 도덕적 상상력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셸리18는 두 세기 전에 '시의 옹호'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위대하게 선한 사람은 깊고, 그리고 넓게 상상해야 한다. 그는 자신을 다른 이의 위치에, 수많은 이들의 위치에 두어야 한다. 동족의 고통과 즐거움이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 도덕적 선의 가장 위대한 도구는 상상력이다."
상상력, 그것은 도덕철학이 아니고, 텔로스에 대한 순응도 아니며, 다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감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로티처럼 고도로 지적인 철학자의 것이라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메시지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 메시지가 불필요한 것은 아닌 듯싶다.
서평에서 다룬 책
- Emile Perreau-Saussine, 'Alasdair MacIntyre: An Intellectual Biography'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22)
- Richard Rorty, 'What Can We Hope For? Essays on Politic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22)
조지 샬라바는 미국의 서평가로 2015년까지 하버드대학교 건물 관리자로 일했다. 1991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의 서평상 'Nona Balakina Citation for Excellence in Reviewing'을 수상했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와 리처드 로티는 모두 시민사회의 연대를 중시하는 '리버럴'이지만 철학적 출발점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래서 두 철학자는 서로 존경하면서도 평생 대립해왔다고 합니다. 우선 매킨타이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을 따라 객관적인 인간 본성을 상정합니다. 반면 로티는 인간 밖에 있는 객관적 자연질서의 존재를 거부합니다. 매킨타이어와 로티의 철학은 동양의 성리학-양명학 논쟁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서양 기독교의 가톨릭-개신교 논쟁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더네이션의 2023년 5월 15~22일호 서평은 두 철학자에 대한 최근 서적을 다루면서 둘의 관점 차이를 조망하고 있어 현대 리버럴리즘 철학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적절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