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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친구'가 되려는 사우디·UAE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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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PADO

2023.09.15 13:18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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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우디와 UAE의 움직임을 모르고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어마어마한 석유자산에 더해 지금까지 벌어들였던 페트로달러로 만든 거대 국부펀드, 거기에 유라시아대륙의 중앙에 자리잡은 지리적 위치 등을 활용해 국제정치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이 '탈석유' 경제로 이행하면서 산유국과 서방의 전통적인 유대관계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당분간 석유를 계속 사줄 주 고객은 중국, 인도 등 신흥산업국가와 '글로벌 사우스'가 될 것입니다. 부자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기존의 친미 일변도에서 중국, 인도 등으로 외교를 다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빈살만 같은 젊은 야심가들은 다극체제 등장의 조짐이 보이는 이때에 스스로 하나의 극을 형성하겠다고 합니다.


이번 달에 전세계에서 고위관리들이 우크라이나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몰려들었을 때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달성되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같은 주제지만 규모는 좀 더 작았던 코펜하겐 회의에서 프랑스는 사우디측에 다음 번 회의 개최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중국과 함께 이른바 '글로벌사우스'에 속하는 국가들이 유럽 밖에서 개최될 때 좀 더 마음 편하게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빈살만 왕세자는 그 요청을 이행했다. 외교관들에 따르면, 그는 중국측에 대표를 보내달라고 하는 등 회의준비를 직접 챙겼다. 총 42개국이 사우디 젯다에서 열리는 이 회의에 대표를 파견했는데, 이들 나라 중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정하라는 서방의 압박에 저항해왔던 나라들도 있었다.


회의가 다 끝날 때까지 별다른 논의의 진척은 없었다. 있었다면 중국이 차기 회의에도 계속 참석할 수 있다는 의사를 넌지시 비친 것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빈살만 왕세자에게 이 이틀간의 회의는 의심할 여지없는 성공이었다. 이번 회의는 이 젊은 왕세자에게 자신의 세계관을 세상에 펼쳐보일 완벽한 무대였다. 그가 내비친 사우디 왕국의 꿈은 그 영향력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뻗치는 신흥 강대국의 꿈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석유가 넘치는 걸프국가들의 더 높은 야심과 솟아오르는 자신감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야심과 자신감은 작년의 에너지가격 급등 이후 더욱 커졌다. 이 걸프국가들은 일극一極을 넘어 다극多極으로 블록화되고 변화무쌍해지고 있는 국제정세 속에서 자신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제 갈 길을 찾아가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있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17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방한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를 영접하고 있다. (총리실 제공) 2022.11.17/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17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방한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를 영접하고 있다. (총리실 제공) 2022.11.17/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걸프만의 두 권력원천인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이 지역의 지배적인 무역 허브인 아랍에미리트UAE인데, 두 나라 모두 눈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리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예측불허의 세계정세 흐름을 불안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반해, 사우디와 UAE는 이러한 예측불허의 흐름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 있다. 그들은 풍부한 자금력과 석유자원을 활용해 전통적인 서방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낮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모두 자신만만하고 자기주장 강한 지도자들이 보통 그렇듯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양자택일의 미국 요구를 더 이상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UAE의 지도자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은 여러 해에 걸쳐 이 작은 나라의 군사력과 자금력을 동원해 나라의 크기에 걸맞지 않게 큰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마찬가지로 빈살만 왕세자는 신속히 수천억 달러를 투입해 사우디 발전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자신의 나라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G20의 정상급 국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서로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경쟁하는 이 두 나라는 폭넓은 외교 네트워크를 엮어내면서 국제무대에서 자국을 '모두의 친구'로 자리매김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데 열심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부분적으로 통상환경의 변화와 지정학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데, 오랫동안 걸프지역에서 역외 세력으로서 지배적인 입지를 갖고 있었던 미국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인도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현재와 같이 변화하는 세계 정세를 리스크가 아닌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극체제가 등장하면 자신들이 거기서 하나의 극을 맡을 수 정책과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런던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소IISS 지역안보팀장인 에밀 호케이엄의 말이다. "그들은 매우 기회주의적이고, 따라서 그만큼 유연하고 거래지향적 접근법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완전히 한 편에 서주기 바라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새로운 친구들

걸프지역의 변화는 무엇보다 무역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걸프지역의 최대 무역상대국), 인도, 일본이 걸프지역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 되었고, 미국은 북미에서 셰일가스 붐이 있은 후 지난 15년간 원유 수입을 줄였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는 석유에서만이 아니다. 걸프국가들은 국내 발전 계획에 따라 그리고 석유의존적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공지능, 에너지, 물류, 생명과학 등 새로운 기술을 획득하려고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기존 선진국들과의 관계는 물론 확고합니다." 어느 UAE 고위관리의 말이다. 하지만 "멀리 10년, 20년 뒤를 내다볼 때 새로운 경제성장은 어디서 이뤄질까요? 아시아의 거대 시장들, 그리고 남미의 시장들, 잠재적으로는 아프리카 시장들 아닐까요?"


사우디와 UAE는 중국과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 해 12월 젯다에서 열린 아랍정상회의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초대했는데, 그는 이 회의가 중국과의 관계에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고 하면서 사우디는 "국제적 안정을 제고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인터뷰한 한 중국 관리는 중국과 걸프국가들의 관계는 "개발도상국 및 일대일로 참가국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인프라, 금융, 기술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는 협력을 열거하면서, 이 중국 관리는 걸프지역과 중국은 "함께 협력해 중동지역에서 더욱 공정한 다자질서를 만들어냄으로써 모든 나라들의 주권이 존중받고 특정 강대국의 패권이 더 이상 힘을 못 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걸프국가들이 눈을 돌리고 있는 나라는 중국만이 아니다. 모두 합쳐 1조3000억달러를 운용하는 국부펀드들을 갖고 있는 UAE는 지난 18개월 동안 인도, 인도네시아 등 6개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아부다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아부다비 대통령 공항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을 기다리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부다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아부다비 대통령 공항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을 기다리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7월에 인도의 모디 총리가 UAE를 방문했을 때(그의 8년 재임중 5번째 UAE 방문이었다), 8500억 달러를 운용하는 아부다비투자청ADIA은 향후 "몇 달 안에" 인도 구자라트1에 지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아부다비투자청의 해외지사는 홍콩에만 한군데 있었다.


사우디와 UAE는 또한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남아공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가입하려 하고 있다2. 사우디와 UAE의 관리들은 세계 무역상황을 볼 때 브릭스 가입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또한 매우 중요한 (게다가 자신들을 환영하는) 또 하나의 외교 네트워크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나라든 중요한 나라가 되고 싶고, 테이블에 자기 자리가 있기를 바라죠." UAE의 큰 꿈과 관련해 설명하면서 UAE 나흐얀 대통령의 보좌관인 안와르 가르가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와 연결하는 다리를 놓을 생각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과 전통적인 아랍 동맹국들의 관계를 훼손하고 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이들 나라들의 관계가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튀르키예(터키)나 브라질처럼 "그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 편을 고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한편에 서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전직 미국 외교관인 제프리 펠트먼의 말이다. "그들은 사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냉전시기 동안 중국과 소련을 대립시키면서 이득을 봤던 것처럼 말이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UAE는 유엔 안보리의 비상임이사국 지위를 이용해 미국 정부를 흔들었던 적이 있었다. 전통적인 동맹국으로 여겨졌던 UAE는 미국이 주도한 러시아 비난결의안에 기권해버렸던 것이다. 미국정책에 대해 이렇게 불만을 표시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놀라웠다.


UAE와 사우디는 푸틴을 돕지 말라는 서방측의 설득을 계속해서 퇴짜 놓고 있는데, 두 나라는 푸틴과 OPEC+를 통해 석유정책에서 협력하고 있고, 또 그를 중동지역의 주요 행위자(또한 잠재적 훼방꾼)로 생각하고 있다.


인도의 모디 총리가 UAE의 아부다비를 방문하기 한달 전 나흐얀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국제경제포럼IEE에 참석한 몇 안 되는 세계지도자 중 한 명이었는데, 그의 보좌관인 가르가쉬는 이 참석을 "계산된 리스크"였다고 설명한다.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UAE 역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을 맡으려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흐얀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대통령은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역할을 하고싶어서 여기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가르가쉬의 말이다.

미국과 그들

수십 년 동안 걸프지역은 확실히 미국 영향권에 있었다. 양쪽의 관계는 '미국은 안보를 보장하고, 아랍 산유국들은 안정적인 세계에너지 공급을 보장한다'는 보이지 않는 약속에 기반해 있었다. 한때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세웠던 사우디는 중국을 1990년이 되어서야 합법정부로 인정했다.


어느 나라보다 UAE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아랍 동맹국으로 자리매김을 해왔었고,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제외한 미국이 주도하는 모든 군사행동에 참여했다. 사우디와 UAE는 모두 수백억 달러를 써가며 미국산 무기를 계속 구매했고 석유판매로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내 자산들을 구입해왔다.


하지만 이들 국가와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아랍의 봄 봉기 직후 사우디와 UAE의 우려를 무시하자 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벌어지기 시작한 관계는 오바마가 이들 국가의 역내 라이벌인 이란과 핵협정을 전격 타결함에 따라 더욱 나빠졌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실리적인 관계를 추구하면서 전제정치를 하고 있는 걸프지역의 인권문제 등에 무관심해지고 이란과의 핵협정을 폐기해버리면서 관계가 다소 회복되기는 했다.


하지만 아랍 관리들은 트럼프의 예측불가능성을 걱정하기 시작했는데, 걸프만의 유조선들과 사우디의 석유시설이 공격(이란발 공격으로 추측되었다) 받았을 때 미국이 보여줬던 미온적 대처를 보면서 실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빈살만 왕세자를 기피하고 사우디의 인권문제, 특히 사우디 요원들에 의한 자말 카슈끄지 살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미-사우디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작년에 친이란 예멘 반군이 아부다비를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을 때 미국이 보여줬던 미온적 대처를 보고 나흐얀 대통령은 격노했다. 그는 2017년 이후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는데, 미국의 이러한 대처를 보면 전통적으로 미국과 걸프 동맹국을 엮어왔던 핵심인 사적인 친분관계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알 수 있다.


미국과 이들 국가 사이의 긴장은 이후 다소 풀리긴 했지만 마찰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5월 UAE는 이란이 걸프만에서 유조선 두 척을 억류한 일이 발생한 후 미국이 정한 교전수칙에 불만을 품고서는 미국 주도의 연합해상작전에서 이탈해버렸다.


하지만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이 걸프국가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의 인권문제에 대한 거부감을 내려놓고 에너지가격 안정, 지역정책, 우크라이나전쟁 등의 이슈에서 사우디의 협조를 구하려 하고 있고, 결국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젯다를 마지못해 방문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UAE가 연합해상작전 참여를 중단한 후 걸프지역에 대한 안보 공약을 다시 확인했고 걸프만에 해군함정과 전투기를 추가배치했다.


사우디와 UAE 관리들은 그들의 국방이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사실 그들의 안보에 대한 요청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더욱 촘촘하게 제도화된 안보 동반자 관계망을 미국에 요청하고 있다.


미국과 UAE의 안보논의는 작년 아부다비에 대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이 있은 후 가속화되었다. 미국과 사우디의 안보논의는 사우디를 설득해 이스라엘과 관계정상화로 나아가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고 사우디가 군사협력이나 기술이전 같은 부문에서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기도 하다.


사우디 왕실에 가까운 사우디 평론가 알리 쉬하비는 미국이 사우디와 안보동맹에 동의하더라도 사우디는 약간의 "조정"은 몰라도 중국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려는 그 어떤 압력에도 저항할 것이라고 말한다.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사우디는 글로벌사우스, 러시아, 중국에 연결시킨 다리들을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들은 사우디 경제 운영과 사우디의 장기 시장수요에 꼭 필요합니다." 알리 쉬하비의 말이다. "현재의 사우디 지도부는 훨씬 더 독립적으로 사고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의 요구에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였던 한 세대가 지도부에 있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걸프국가들에게 미국이 특정 대의를 따를 경우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보여줬다. 하지만 사우디와 UAE 사람들은 미국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에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일것인지 걱정한다.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힘이 이젠 예전같지 않다거나 적어도 10년뒤엔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미국이 걸프지역과 UAE의 국가이익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냐는 것입니다." 가르가쉬의 말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걸프지역을 미국쪽에 묶어두는 것은 미국의 군사력만은 아니다.


걸프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페그시켰고 미국을 핵심 투자대상국으로 보고 있다. 아부다비투자청은 펀드의 40% 이상을 미국에 투자해두고 있다. 사우디의 6500억 달러짜리 공공투자펀드PIF는 대규모 투자의 경우 많은 부분을 미국내 자산 매입에 쓰고 있고, 특히 우버나 전기자동차 회사인 루시드 지분 매입에 썼다.


관리들은 걸프지역 국부펀드가 덜 자유화되어 있는 아시아시장보다는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그들의 야망에 걸맞는 수준으로 대규모 투자하려고 할 때 더욱 그렇다. 또한 걸프국가들이 확보하고 싶어하는 최고 수준의 테크놀로지는 대부분 미국 기업들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과의 무역은 증가일로에 있고 걸프지역 국부펀드들은 아시아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런던소재 아시아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사우디는 중국과 8170억 달러의 무역액을 찍으며 잠시 미국, 영국, 유로권 국가들 모두와의 무역액을 초과했었다.


사우디의 대중국 무역액(푸른색)과 미국, 영국, 유로존 국가 무역액 총합(붉은색)의 비교. /그래픽=FT

사우디의 대중국 무역액(푸른색)과 미국, 영국, 유로존 국가 무역액 총합(붉은색)의 비교. /그래픽=FT


작년에 공개된 이 보고서는 UAE도 비슷한 패턴을 따를 것이며 UAE의 대중국 무역액과 대서방(미국+영국+유로권) 무역액의 차이는 몇 십억 달러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무역액 차이가 2010년에는 280억 달러였다.


전 세계가 탈화석연료 과정에 있는 오늘날, 사우디와 UAE는 자신들의 석유를 마지막까지 사줄 고객은 미국이나 서방보다는 중국과 인도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미국 대신 중동지역의 안정을 책임질 생각까지는 아직 없지만 현재와 같은 무역만 하는 관계는 넘어야겠다는 의중을 넌지시 내비치고 있다. 지난 3월 중국이 나서 철천지원수 같았던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적 합의를 중재해낸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이 지역에서 좀 더 정치적인 역할을 맡고 싶어하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사우디와 UAE 관리들은 미국과 중국이 양쪽 경제를 '디커플링' 하려고 하는 이 상황에서 미중 경쟁의 십자포화 안에 갇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다.


"위험은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디커플링' 논의에 있습니다. 갑자기 우리가 서로 경쟁하는 기술을 살펴보고 있는데 세상이 VHS와 베타 방식으로 완전히 나뉘어지고 있는 셈이죠." UAE의 한 관리는 1980년대 비디오 포맷 전쟁을 빗대어 말한다.


여전히 이들 걸프국가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5G 무선통신 네트워크 등 중국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어 미국이 우려하고 있다. 2년 전 UAE는 중국이 아부다비 항구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미국의 의심을 사 급히 해명에 나서게 된 일이 있었다.


중국의 국영언론에 따르면 UAE는 이번달에 중국과 최초의 연합공중훈련을 가진다. 또 사우디가 지난 11월 주하이 에어쇼 직후 중국으로부터 40억 달러치의 무기를 구매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 무기거래 규모는 역대 사우디-중국 무기거래 규모를 크게 뛰어넘는 것이다.


사우디와 UAE가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우리는 먼저 당신을 찾았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안 준다면 (그것이 무기든 기술이든) 다른 곳에 갈 것이다." 많은 분석가들의 설명이다. 분석가들은 두 나라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이익을 취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 균형 잡기는 매우 예민하다.


"이들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딜레마는 그들의 안보 이익은 서방 쪽에 있고 에너지 이익은 러시아 쪽, 미래의 경제적 번영은 중국과 기타 아시아 국가들 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호케이엄의 말이다.


"이 복잡한 관계망을 잘 운영하려면 계속해서 발을 움직여야 하고 계속해서 이쪽 저쪽 챙겨야 합니다. 걸프국가들은 주요 국가들 모두에 대규모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 투자는 돈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지정학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의 투자를 말합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줄타기입니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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