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중국이 '달러 패권' 공격에 미국의 제재를 역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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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PADO

2023.09.22 11:20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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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용화폐인 달러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힘으로 손꼽힙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달러를 매개로 상업 및 금융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달러를 발행하면 수많은 나라들이 함께 사용합니다. 통화량을 늘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게 경제학의 상식이지만 미국은 예외에 가깝습니다. 돈을 찍어 국가재정을 마련한다는 이른바 '인플레이션세(稅)'를 전세계가 나눠 부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국민에게 큰 부담을 지우지 않고도 달러를 찍어 1000조가 드는 전쟁도 쉽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로 재정에 대한 부담없이 자유롭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외에는 없습니다. 중국은 바로 이 '달러 패권'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흥미롭게도 미국 스스로가 달러 패권을 약화시키는 실책을 저질렀다고 지적합니다. 전세계가 함께 쓰는 달러의 힘을 이용해 문제 있는 나라에 대해 '달러를 사용 못하게 하는' 금융제재를 가하는 빈도를 높여왔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제재 대상국을 국제거래에서 고립시키는 효과가 있었겠지만, 빈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제재 대상국들이 너무 많아짐에 따라 이들끼리 제3의 결제수단으로 거래하는 방법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즉 달러가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 넓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공간의 확대를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중국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당면 과제는 당장 달러 패권을 무너뜨리는 게 아닙니다. 향후 유사시에 중국을 겨냥할 수 있는 미국의 제재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정도로만 달러의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어도 큰 성공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그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7월 말 익숙한 문제에 직면했다. 최근 IMF에게 받은 구제금융 440억달러 중 27억을 상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색다른 해결책을 내놓았다. 달러 순 보유고가 적자 상태였던 아르헨티나 정부는 상환의 일부를 위안화로 했다. "아르헨티나는 외환보유고에서 단 1달러도 상환에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세르지오 마사Sergio Massa 아르헨티나 경제부 장관의 호언장담이었다.


아르헨티나가 IMF에 중국 통화로 송금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이는 국제 금융 시스템에 더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러한 변화는 항구적이 될 겁니다." 아르헨티나 경제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되돌릴 수는 없을 겁니다."


지구 반대편 방글라데시도 지난 4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위해 러시아에 밀린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위안화를 선택했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달러는 사용할 수 없었고 루블화 결제는 방글라데시 정부에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두 나라는 대신 위안화를 쓰기로 합의했다.



개발도상국들은 국제 무역과 금융에서 미국 달러의 지배력에 오랫동안 불만을 제기해 왔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비해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 줄어들고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이 새로운 중견국으로 부상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 심해졌다.


반제국주의자들은 수십 년 동안 '탈달러화'를 추진해왔지만 미국 통화의 압도적인 힘으로 인해 탈달러화는 최근까지 구호에 불과했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 제재가 확대되고 국제 결제를 위한 신기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한때 난공불락이었던 달러의 지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e-위안)를 수용하고 대체 글로벌 결제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리야드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GCC(걸프협력회의) 정상회의에 참석해 석유와 가스 수입에 대한 위안화 결제를 시행할 뜻을 밝히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리야드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GCC(걸프협력회의) 정상회의에 참석해 석유와 가스 수입에 대한 위안화 결제를 시행할 뜻을 밝히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 목표는 달러의 패권을 무너뜨리겠다는 게 아니다. 달러의 지배력을 약화시켜, 언젠가 미국이 러시아에 부과한 것 같은 제재를 중국에게 겨냥할 경우 중국의 경제적 생존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의 금융력을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하고 있죠. 여기서 미국 달러의 헤게모니가 차지하는 부분은 큽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관료의 말이다. "미국이 결제 시스템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제재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도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현재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이 제재한 개인 및 단체의 목록은 2206페이지에 달하며 여기에 적힌 이름은 1만2000건이 넘는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대통령들이 외교 정책 문제에 대해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유혈 사태를 초래하지 않는 듯 보이는 금융제재를 선택함에 따라 그 사용이 급격히 늘었다.



"이런 금융제재는 미국 영토 바깥에서도 적용을 암시하기 때문에 다른 정부들을 겁먹게 하죠." 채텀하우스의 라틴아메리카 연구위원 크리스토퍼 사바티니Christopher Sabatini다. "세계 경제의 4분의 1이 어떤 형태로든 제재를 받고 있고, 그 제재가 언제든 어느 나라에게 사용될 수 있다는 위협이 있다면 판도가 바뀝니다."


'백파이어: 제재는 어떻게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세계를 재편하나Backfire: How sanctions reshape the world against US interests'의 저자 아가테 드마레Agathe Demarais는 세 가지 주요 사건을 꼽는다. 2012년 이란의 스위프트SWIFT 글로벌 금융 메시징 네트워크 차단, 2014년 크름(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이로 인해 러시아는 역대 최대 제재 대상국이 됐다), 2018년부터 시작된 중국과의 무역전쟁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은 '불량국가'들의 사고방식을 전환시켰죠... 서구의 금융 메커니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대폭 확대된 서구의 제재는 권위주의 국가들만 자극한 게 아니다. 브라질처럼 국제 금융 시스템이 무기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신흥 강국들의 분노를 샀다.


"오늘날 달러에 기반한 국제 금융 시스템에는 많은 불편이 있습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cio 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의 외교 보좌관인 셀소 아모림Celso Amorim이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 이면의 주요 원인은 제재입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Eswar Prasad 코넬대학교 교수는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뿐만 아니라 경쟁국을 포함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달러 표시 금융 시스템을 버리고 싶어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이것이 쉽지는 않다고 지적한다.



신흥국들이 대안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달러가 국제 금융 시스템에 너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은 달러의 광범위한 지배력에서 나오는 '네트워크 효과'가 달러화를 대체하려는 모든 노력을 좌절시키리라라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 전반에서 중국은 자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미국 통화의 지위를 깎아내리고 있다.


중국은 국가 간 송금의 약 90%가 이뤄지는 글로벌 플랫폼인 벨기에의 스위프트의 힘을 점차 약화시키는 데 주력해 왔다. 전문가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중국의 다각적이고 끈질긴 전략이 중요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중국의 전략 중 하나는 역외 자본시장에서 위안화 유동성 풀을 더 많이 만들어 트레이더와 투자자에게 위안화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 (CIPS)의 설립으로, 세계 최대의 민간 부문 달러 청산 및 결제 시스템인 CHIPS와 스위프트의 대항마다. CIPS의 총 결제액은 2022년 20%이상 증가해 97조위안(1경8000조원)이다.


CHIPS나 스위프트를 거치지 않고도 거래할 수 있는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적 출시도 이 전략의 일환이다.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 될 겁니다... 서구 금융 규제기구와 완전히 단절된 시스템이 되겠죠." 뉴욕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쭝위안 조 리우Zongyuan Zoe Liu다.


"제재가 발동되려면 [미국 당국이] 거래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e-위안화가 CIPS와 결합되면 서구의 금융제재에 맞서서 상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중국이 자국 통화를 홍보하고자 하는 열망은 위안화가 완전 태환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방해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가외환관리국?家外?管理局에 따르면 지난 3월 위안화는 달러를 제치고 중국 내 국경 간 결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화가 됐다.


모건스탠리 출신의 통화 전문가 스티븐 젠Stephen Jen은 4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달러가 통념보다 훨씬 빠르게 국제 준비 통화로서의 지위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율 변동을 보정했을 때 달러가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1년 73%에서 2023년 58%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적인 진전의 조짐이 보이긴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의 '달러 패권'을 깨뜨리는 꿈조차 꿀 수 있기까지는 아직 몇 년이 더 남았다고 경고한다.


위안화의 성공 한 가닥은 역외 자본시장에서 나왔다. 중국 데이터 제공업체 윈드Wind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해외 발행사의 '판다 본드' 판매액이 750억위안(13조원)으로 증가하며 이미 2021년 연간 기록을 넘어서는 등 위안화 표시 국경 간 차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블룸버그의 데이터에 따르면 홍콩의 위안화 표시 '딤섬 본드' 발행액도 같은 기간 3200억위안을 돌파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화 가격이 글로벌 표준인 에너지 시장에서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걸프 아랍 지도자들에게 석유와 가스 거래에 중국 통화가 사용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상하이 거래소에서 위안화로 결제된 최초의 LNG 거래는 지난 3월 중국 국영 석유회사와 프랑스 토탈 간의 거래로 알려졌다.


신흥국들도 중국의 위챗페이WeChat Pay, 인도의 통합결제인터페이스UPI, 브라질의 PIX, 케냐의 모바일 머니 서비스 M-PESA처럼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발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여전히 비자Visa와 마스터카드Mastercard가 지배하고 있는 서구는 뒤처진 편이다.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디지털 통화와 결제 시스템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중국은 태국 및 UAE(아랍에미리트)와 양자 간 무역을 e-위안화로 정착시키기 위한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드마레의 말이다. "이것은 국가가 제재를 예방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명백한 사례로, 중국은 선점 우위를 얻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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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조만간 권좌에서 쫓겨나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위안화의 역할이 커지면서 국제 금융 시스템이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신흥국의 다각화 욕구를 충족시킬 것이다.


"달러가 세계 최고 통화로서의 지위를 잃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니엘 맥도웰Daniel McDowell 시러큐스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하지만 저는 미국의 힘에 리스크가 있다는 걸 진심으로 믿습니다. 특히 중국에 대해 제재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 말이죠."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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