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4:01
사진의 시대는 현대 도시의 탄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사진가들이 새로운 매체를 실험하고 있을 때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은 어두운 중세 골목길, 공동 주택, 빈민가를 가로지르는 대로를 건설했다. 사진은 때맞춰 등장해 오래된 거리를 필름에 담은 후, 간판들로 번쩍이는 전기화된 도시의 등장, 불야성의 어반 라이프urban life의 확대, 내연기관의 등장 등 현대 도시 변화의 옆을 지켰다.
사진가들은 그곳에서 무너져가는 과거와 그 속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들의 사진은 역사를 보존하는 동시에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도발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V&A 던디 뮤지엄의 <포토 시티: 이미지가 도시 모습을 어떻게 만드는가Photo City: How Images Shape the Urban World>는 도시를 촬영하는 방식과 그 촬영된 이미지가 도시 발전에 대해 미친 영향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어떻게 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언제든 열릴 수 있었던 평범한 주제의 전시다. 하지만 뉴욕의 타임스퀘어나 런던의 피카딜리서커스처럼 도시 자체가 너무 많은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고 우리가 도시를 탐색하고 이해하기 위해 너무 많은 화상(畫像)을 생산해내고 있는 이 '포화 상태'에서 특히 시급해 보이는 전시이기도 하다. 등장한 지 180년이 된 도시 사진이 이제는 피사체를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이 전시의 큐레이터들은 "백과사전같은 도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이미지 도시" 세 가지를 테마로 잡았다. 첫 번째 섹션은 건설 중이던 현대 대도시의 초기 유령같은 이미지 몇 장으로 시작하지만(이미지 중 하나는 1846년 에든버러의 스콧 기념비 건립을 기록한다) 곧이어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 이미지로 이동한다. 초기 사진가들은 신의 시점을 채택해 높이 떠있는 풍선에 카메라를 달아 사진을 찍었는데 (여기서는 암시적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시점은 도시로 사진 프레임을 가득채우며 일종의 소외, 다시 말해 삶의 촉감과 지평의 상실을 이야기한다. 빌 브란트Bill Brandt의 자갈이 깔린 잉글랜드 북부 거리 사진부터 베레니스 애보트Berenice Abbot와 프레드 지네만Fred Zinnemann의 새롭게 고층 빌딩이 들어선 뉴욕 풍경 항공사진까지, 이 사진들은 건설현장과 전깃불이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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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폭격 표적의 사전 확인을 위해 정찰기가 촬영한 이미지와 짝을 이룬다. 항공 정찰 사진을 3D로 분석하는 불길해 보이는 거미 다리 모양의 장치인 페어차일드 스테레오그램 뷰어가 보다 정확한 폭격을 위해 찍은 이들 사진 옆에 놓여져 있다.
그러나 으젠 아제Eugène Atget가 기록한 파리의 오래된 주철 문고리부터 사라진지 오래된 기념건축물의 사진까지, 사진과 건축물 보존이 동시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례도 많이 있다. 샤를 마르빌Charles Marville의 파리 사진은 과거의 파리와 함께 오스만Haussmann이 새로 건설한 대도시 파리의 여러 일상적 랜드마크들, 예컨대 거리의 설비들이나 가로등을 보여준다. 그는 근대화와 사회기반시설 모습을 멋지게 담아내는 공식 작가가 되었고, 그의 사진은 파리를 '빛의 도시'로 홍보하는데 사용되었다. 에드 루샤Ed Ruscha의 로스앤젤레스 선셋스트립를 보여주는 사진은 트럭 짐칸에 장착된 전동 카메라로 이 지역의 모든 건물을 덤덤하게 촬영한 것이다. 이 파노라마 사진은 소형 아코디언처럼 펼쳐 놓아도 여전히 작아 보이지만 예술과 건축에 미친 그 영향은 기념비적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섹션은 보다 사회적인 사진을 전시한다. 건물들이 먼저 나온다. 건물들은 정적이고 쉽게 포착되며, 사람들은 처음에는 유령처럼 등장하고는 긴 노출로 인해 흐릿한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인물들은 존 톰슨의 런던 노점상과 같은 거리생활의 설정된 사진에서, 그리고 공장과 노동자 숙소의 비참한 환경을 기록한 사진에서 곧 구체성을 띠게 되는데, 불황과 재난의 영향을 기록한 이 사진들은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사용되었다. 빈민가 거주자와 노동자들의 생생한 표정은 지금도 관람자를 매혹시킨다. 이 사진들은 가난하고 비좁은 환경 속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이들이 살던 동네는 이제 부촌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 섹션에도 결정적인 순간포착들이 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멋진 거리 사진들과 마크 리부Marc Riboud, 시르카-리사 콘티넨Sirkka-Liisa Knottinen,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개리 위노그랑Garry Winogrand, 헬렌 레빗Helen Levitt, 리 프리드랜더Lee Friedlander를 비롯한 익숙하거나 낯선 사진가들의 여러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오늘이 있다.
세 번째 섹션인 "이미지 도시"는 규모와 포화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음을 인정하는 좋은 제목이다. 도시와 사진 이미지 간의 교류는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어 매일 수십억 장의 사진이 공개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서 입소문을 탄 이미지는 이제 도시를 방문하고 탐색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는 네온의 도시 풍경을 현대 도시생활에 대한 진지한 연구 주제로 재해석한 건축가 데니스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의 산타모니카, 라스베이거스 사진들을 비롯한 포스트모던 도시의 이미지, 즉 유흥의 풍경과 이미지 소비로서의 도시가 있다.
전복의 시도도 역시 있다. 앱을 실행한 상태에서 스마트폰들로 가득 찬 카트를 끌어 가상 교통체증을 만듦으로써 구글의 교통 지도를 일그러뜨린 사이먼 웨커트Simon Weckert의 작품이 그런 전복 시도다. 그리고 사진으로 포화된 도시를 새로운 종류의 이미지 콜라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전시되어 있는데, 니시노 소헤이西野壯平의 장대한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은 1920년대 베를린 다다이즘 작품, 즉 대도시를 뒤죽박죽의 꿈으로 그려낸 것을 연상시키는, 최면이라도 거는 듯 거대한 캔버스에 던디 시티를 호크니 식의 속도감 있는 사진 콜라주로 표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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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보통의 사진집처럼 안 보이도록 큐레이팅하기가 매우 어려운 주제를 매력적이고 보기 좋게 표현해 낸다. 도시 사진은 너무 보편화되고 널리 퍼져 있으며 친숙하고 반복적이어서 우리는 잘 안보게 된다. 하지만 이 전시를 통해 우리는 사진과 도시가 항상 생산적이고 친밀하며 때로는 파괴적인 관계를 유지해왔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V&A 던디 뮤지엄의 <포토 시티: 이미지가 도시 모습을 어떻게 만드는가>는 10월 20일까지 전시한다.
필자 에드윈 히스코트Edwin Heathcote는 작가, 건축가, 그리고 디자이너이며, 1999년 이후 파이낸셜타임스의 건축 및 디자인 비평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그는 '희망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Hope'(Francis Lincoln, 2010) 등 다수의 건축 및 디자인 관련 저작이 있다.
역자 이희정은 영국 맨체스터대 미술사학 박사로 대영박물관 어시스턴트를 거쳐 현재 국민대 강사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역서로 '중국 근현대미술: 184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미진사,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