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테크

런던의 호화 맨션과 2.5조원짜리 비트코인의 미스터리

천문학적 규모의 암호화폐를 소지한 두 중국 여성은 런던의 저택에서 무얼 하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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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4 15:54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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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주요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는 등, 암호화폐는 이제 어엿한 투자용 자산으로서 입지를 굳힌 듯 보입니다. 그 실질적인 용도는 아직도 불분명한 가운데 오래 전부터 제기됐던 돈세탁 우려는 여러 차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이낸스 등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들이 돈세탁 방조 혐의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2024년 3월 20일 기사는 영국에서 발생한 돈세탁 사건을 소개하는데 주범은 도주에 성공하고 당국이 끝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데 실패하는 것을 보면 암호화폐 범죄를 추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암호화폐 보유·거래량을 자랑하는 한국의 실태는 어떨까요? 당국은 이를 제대로 감시하고 있을까요?


2018년 10월 31일 이른 아침, 조 라이언 형사는 런던 북부 햄스테드에 위치한 붉은 벽돌 양식의 한 저택에 도착했다. 런던 광역 경찰청 소속 자금세탁 조사관인 라이언 형사는 36세 여성 원졘Wen Jian의 행적을 조사하기 위해 가택수색영장을 받은 상태였다. 원씨는 중국 출신의 영국 시민으로, 출처 불명의 비트코인을 사용해 수백만 파운드의 부동산 구매를 시도한 기록이 있었다.


저택으로 접근하던 라이언 형사는 진입로에 세워진 검은색 벤츠 E클래스 안에 앉아 있는 원씨를 발견했다. 차창을 두드리며 집을 수색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원씨는 협조하지 않았다. 그가 단호하게 앉아 있는 동안 경찰관들은 차를 둘러쌌다. "이러시면 강제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언 형사가 말했다. "체포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경찰관이 경고했다.


마침내 정문이 열리자 원씨는 위층 침실 중 하나로 향했다. 그 안에서 경찰은 침대 위에 있는 원씨의 룸메이트 야디 장Yadi Zhang을 발견했다. 그는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후 몇 시간 동안 노트북, 노트, 그리고 금속 통에 보관된 분홍색 USB를 압수했다. 원 씨의 침실에서는 6만9000파운드(약 1억2000만원)의 현금도 발견됐다. 경찰은 앱을 지우던 원씨를 발견하고 그의 아이폰마저 압수했다. 다른 아이폰 케이스 안에는 500유로(약 74만원)와 손글씨로 적힌 비밀번호 목록 쪽지가 들어있었다.


라이언 형사가 발견한 암호화폐의 실제 규모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명확해졌다. 수색 둘째 날, 저택과 금고에서 6만1000개의 비트코인이 발견됐는데 이는 수사기관에 의해 압수된 가장 큰 비트코인 규모 가운데 하나다. 2021년 암호가 해제되었을 때, 그 금액은 14억1000만파운드(약 2조4400억원)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사건의 경위를 모두 파악한 시점에 장씨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조사 결과 원 씨의 이 동거인은 중국에서 대규모 투자 사기를 벌인 혐의로 수배 중인 도피범으로 밝혀졌다. 원씨는 2021년 5월에 체포되어 사우스워크 법원Southwark Crown Court에서 총 12건의 돈세탁 및 형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 사건과 관련된 재판 절차는 보도가 제한되어있다. 따라서 이 기사는 법정에 제출된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5주간 진행된 재판은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어떻게 악용되어 많은 양의 자금을 세탁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동시에 수사기관이 이를 추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드러났다. 법정에서 원씨는 헐렁한 재킷을 입었고 얼굴을 가릴 만큼 큰 안경을 썼다. 방청석에 그를 동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원씨는 매일 저녁 네 명의 경관에 둘러싸여 유럽 최대 여성 교도소로 호송됐다.


원씨는 12건의 혐의 중 각 혐의에 대해 최고 14년 징역형에 직면하고 있지만 무죄를 주장했다. 증언 중 그는 종종 눈물을 보이며 자신은 중국에서 일어난 장씨의 범죄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고집했다. 원씨의 변호사는 그가 '전문적인 조종자'에 이용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씨가 도주하자 원씨가 경찰에게 아쉬운대로의 '감투상'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검찰측도 인정했다. "배심원단은 원씨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를 하나도 못 찾겠지만, 장씨의 비트코인 출처가 불법적이라는 사실은 그녀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양측 모두 증거의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없었다. 배심원단에겐 원씨가 장씨의 신임을 얻은 협력자인지, 아니면 이용만 당한 피해자인지 판단하는 숙제가 남았다.




원씨의 배경에는 그가 글로벌 돈세탁 계획에 연루될 후보자라고 생각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는 자신이 부유한 가정 출신이 아니라고 법정에 진술했다. 1981년생인 원 씨는 법학 학위를 취득하고 영국인 남성을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2007년, 임신 7개월이던 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고 웨스트요크셔 핼리팩스에 정착했다.

원씨의 결혼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그는 법정에서 남편이 고압적이었고 자신을 학대했다고 증언했다. 2010년 그들은 이혼했고 원씨는 리즈에서 단순 노동직에 종사하며 생을 이어나갔다. 이후 그는 교육을 위해 아들을 중국으로 보냈다. 2017년에는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런던으로 이사했다.


그해 9월 원씨는 싸구려 호스텔에 살며 중국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가진 게 거의 없었다. 그 무렵 중국 메신저 앱 위챗WeChat에 중국어 구사 가능한 비서를 구한다는 광고가 올라왔고 원씨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전화를 걸었고 켄싱턴 대로에 있는 로열가든호텔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곳에서 원씨는 처음으로 장씨를 만났다. "태국 전통복장 차림이었습니다... 매우 젊어 보였고 피부는 눈이 부실 정도였습니다." 원 씨의 증언이다.



장씨는 자신이 보석 사업을 하고있는데 영국에 매장을 열려고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차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었고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원씨는 경력이 없었지만, 장씨는 그를 '간병인이자 통역사'로 고용하겠다며 월 4000파운드(약 700만원)의 현금 급여를 제안했다. 장씨는 자기에게 새 옷과 은행계좌, 그리고 영구 거주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씨의 실제 이름은 쳰즈민Zhimin Qian이었고 중국 당국으로부터 도피 중이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그는 톈진란톈거뤼기술회사Tianjin Lantian Gerui Technology Company를 통해 50억파운드(약 8조6760억원) 규모의 투자 사기를 도모했다. 12만8000여 명의 투자자들이 사기에 걸려들었고 이와 관련해 수십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원씨는 이 사건에는 연루되지 않았다). 투자자들의 투자금 대부분을 비트코인으로 전환한 장씨는 자금이 든 레노보 노트북과 몇 가지 물품을 가지고 도주했다. 그는 새로운 이름과 1990년 생으로 기재된 세인트키츠네비스 여권을 들고 런던에 도착했다(실제로 장씨는 1978년생이다).


원씨는 장씨를 만난 지 며칠 만에 위조문서와 천문학적 금액의 돈을 다루게 되었다. 법정에서 그는 은행계좌 개설 시 주소 증명에 필요한 가짜 가스요금고지서를 만든 적이 있다고 밝혔다. 2017년 9월 원씨는 부동산 중개회사 체스터턴스Chestertons와 햄스테드 저택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저택의 월세는 1만7300파운드(약 3000만원)였고 두 사람은 공동 임차인으로 들어갔다. 원씨는 체스터턴스에 자신을 장씨의 보석 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10월과 11월에 원씨는 은행에 자신의 계좌에 4만파운드(약 7000만원)가 입금된 것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보내지지는 않은 그 편지 초안에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집수리'를 위해 돈을 보내왔다고 거짓 내용이 적혀 있었다. 원씨는 태국에 두 번 갔는데 장씨의 남자 친구에게서 보석을 받아오려고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갈 때마다 새로운 노트북을 가지고 돌아왔다. 또 어느 시점에 원씨는 햄스테드 거처에서 20만파운드(약 3억4700만원)의 현금을 받았다. 법정에서 그는 그 돈을 누가 가져왔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원씨는 새로운 일에 대해 수상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12월에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회계사에게 "친구"가 비트코인 매도 대금 200만파운드(약 34억7000만원)를 자신의 개인 은행계좌로 보내도 되는지 물었다. 원 씨가 세금 문제가 있을지 묻자, 그 회계사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요. 하지만 자금세탁 혐의를 받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회계사의 조언을 따랐다고 진술했다.


원씨는 장씨가 대체로 자신을 신뢰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씨를 의심하지 않았다. 원씨는 장씨의 기질이 암호화폐 쪽과 부합해 보였다고 진술했다. 장씨는 자신의 재산이 보석사업과 비트코인 채굴과 같은 합법적인 출처에서 왔다고 전했다. "저는 장씨가 중국과 관련이 있는 줄 전혀 몰랐습니다." 원씨의 증언이다.


곧 장씨는 더 복잡한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부동산 구매를 돕는 것이었다. 원씨는 부동산 중개회사인 런던월London Wall에 연락했다. 이 회사의 공동 창립자인 레프 로기노프Lev Loginov는 햄스테드 린드허스트 로드Lyndhurst Road에 있는 8개의 침실과 실내 수영장을 갖춘 2350만 파운드(약 408억원) 상당의 저택을 소개했다. 로기노프는 원씨를 런던의 유명 로펌인 미숀 드 레이아Mischon de Reya(이하 미숀)의 부동산 전문 변호사 제임스 리펜James Liffen과 연결해 주었다.


거래는 복잡했다. 원씨는 리펜에게 자신이 이 저택의 단독 소유자가 되어야 하며 1년 후에 장씨에게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리펜은 이메일로 이 이상한 요청에 관해 물었다. "뭔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가요?" 원 씨는 자신도 이유를 모른다고 답했다.


2018년 1월 원씨는 왓츠앱WhatsApp을 통해 로기노프에게 비트코인으로 저택을 구매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자금의 출처에 대한 세부 사항은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장씨는 집 구매 계약을 체결할 겁니다." 원씨가 말했다. "알았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해 봅시다." 로기노프가 화답했다.


로기노프는 원씨에게 금융감독원Financial Conduct Authority에 등록된 중개업체 엑스무어 파트너스Exmoor Partners를 운영하는 안와르 시우피Anwar Sioufi를 소개했다. 법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엑스무어는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전환하고 부동산 구매자금의 출처가 적힌 확인서를 제공할 계획이었다. 엑스무어와 로펌 미숀과의 계약은 저택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원씨의 이름으로 체결되었다. 2월, 엑스무어는 85만파운드(약 14억70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전환하여 계약금조로 미숀에 송금했다. 비트코인 현금화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이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광장에서 한 목회자가 설교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광장에서 한 목회자가 설교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암호화폐가 범죄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는 명백하다. 암호화폐 옹호자들은 디지털 화폐의 투명성을 찬양하지만, 감시를 피해 큰 액수를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은 범죄자들에게 상당한 매력이다. 비트코인이 든 노트북은 현금 가방보다 덜 눈에 띄며 은행 송금과 달리 차단할 수도 없다. 2009년 비트코인이 등장한 이래 금융 규제기관들은 암호화폐의 자금세탁 위험성을 경계해 왔다. "비트코인의 상대적 익명성이 불법 자금의 출처를 숨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물론 비트코인을 소유한다고 곧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다." 이번 사건의 재판장 알렉산더 밀네Alexander Milne 판사의 말이다.


장씨는 런던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2018년 대부분을 유럽 대륙을 여행하며 보냈고 원씨가 종종 동행했다. 두 사람은 주로 자동차로 이동했는데 장씨가 경찰에 압수된 일기에 적은 바로는 국경검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은 사진 속에 고스란히 기록되었는데 항상 둘이 아닌 각자만 찍혀 있었다. 4월 스웨덴으로 가기 전 원씨는 인터넷에 '스웨덴 중국 범죄인 인도 조약'을 검색했다.


린드허스트 로드 거래는 판매자가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면서 무산되었다. 장씨와 원씨의 부동산 자문인은 토트리지 커먼Totteridge Common에 있는 8개의 침실, 홈 시어터, 체육관 및 사우나가 있는 1250만 파운드(약 217억원) 가치의 두 번째 부동산을 찾았다. 하지만 이때에는 두 여성의 활동이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원씨의 은행은 설명되지 않은 거액의 자금이 유입되자 계좌를 폐쇄했다. 그가 다른 은행에서 새 계좌를 개설하려 하자 장씨는 씨티은행을 시도해 보라고 했다. "먼저 계좌를 개설해서 동태를 살피자. 거긴 큰 액수를 좋아하고 엄격하지 않으니까." 장씨가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시티뱅크마저 27만6000 유로(약 4억8000만원)의 전자 송금 이후 계좌를 폐쇄했다.


토트리지 커먼 거래가 진행되면서 리펜은 원씨에게 장씨의 암호화폐 출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 장씨는 자신이 비트코인을 채굴했다고 말했지만, 기록을 보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리펜은 구매에 사용될 자금의 내역을 추적하기 위해 공개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에서 비트코인 주소를 보고 싶어 했다. 장씨는 원씨를 통해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잘못된 주소를 제출하며 거래를 지연시켰다. 이후 7월에 원씨는 엑스무어 파트너스의 시우피에게 토트리지 커먼 거래를 위해 약 100만파운드(약 17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전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원씨는 법정에서 시우피가 그 돈을 가지고 도주했다고 밝혔다. 런던월은 법적 난관에 부딪히자 미숀의 승인이 있기 전까지는 엑스무어 파트너스를 대체할 중개사를 고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토트리지 커먼 거래는 일시 중단되었다.


결국 원씨는 리펜에게 올바른 블록체인 주소를 제공했다. 주소는 장씨의 설명과 일치하지 않았다. 채굴된 비트코인이라면 소수의 출처에서 나와야야 했지만 장씨의 비트코인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포함한 수백 개의 출처를 갖고 있었다. 9월에 원씨와 장씨는 또 다른 위기에 닥쳤다. 더블린에서 입국할 때 장씨의 비자 문제로 조사를 받았는데, 원씨가 3만유로(약 4440만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재판중 배심원단에게 아일랜드 당국이 찍은 사진이 제시되었는데, 장씨는 둥근 얼굴, 이중 턱, 작은 안경, 짧은 검은 머리의 여성이었다. 아일랜드 당국은 장씨를 그가 왔던 오스트리아로 돌려보냈고 원씨는 런던으로 되돌아왔다. 원씨의 아들은 영국 사립학교에 다니기 위해 중국에서 돌아왔는데 학비는 장씨가 지불했다.


더블린 입국 금지 사건 직후, 원씨는 추후 결정적인 증거가 될 만한 것을 만들고 말았다. 그는 장씨의 비트코인 지갑의 비밀번호가 적힌 노트를 사진으로 찍어 분홍색 USB에 저장한 것이다.




라이언 형사가 원씨의 수상한 움직임을 어떻게 눈치챘는지는 배심원단에게 알려지지 않았었다. 10월 10일, 라이언 형사는 원씨에게 이메일을 보내 미숀이 여전히 보유 중이던 85만파운드에 대한 동결 명령을 받았다고 알렸다. 원씨는 미숀 측이 경찰에게 언질을 준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한 런던월 직원에게 이렇게 써보냈다. "FXXX."


몇 주 후 라이언 형사는 원씨의 벤츠 차창을 두드렸다. 경찰과의 자발적인 면담에서 원 씨는 자신을 장씨의 '간병인이자 통역사'라고 설명하며 비트코인에 대해 '거의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 장씨의 변호사는 그의 압수된 소지품을 되찾기 위해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원씨와 장씨는 왓츠앱을 통해 돈의 출처를 증명할 증거를 수집할 방법을 논의했다. "뭔가 보여줘야 해요." 원씨가 2019년 8월에 장씨에게 말했다.


원씨는 경찰의 주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장씨를 위해 일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그는 런던에서 낯선 사람들과 거래하며 장씨를 위해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전환했다. 장씨는 코인을 보내왔고, 원씨는 현금 가방을 받아 갔다. 한 구매자와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원씨는 CCTV가 설치된 장소를 피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판사의 예상에 따르면 이 기간에 원씨는 40만파운드(약 6억9490만원) 이상의 현금을 거래했다.


동시에 원씨는 두바이에 있는 부동산을 물색했고, 아라비안 이스케이프Arabian Escapes라는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중개인 마이클 버크Michael Burke의 도움을 받았다. 원씨가 등록 서류를 작성할 때 버크는 자금 출처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 사이에서만 실제 출처를 공개해 주시면 제가 뭔가 떠올려 보겠습니다." 법정에 제출된 그의 메시지다.


2019년 말, 버크는 원씨가 비트코인이 범죄와 관련이 없다며 안심시키자 두바이에 있는 아파트 두 채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자신의 회사인 세이셸의 MJB 홀딩스와 스위스의 아웃소싱서비스솔루션Outsourced Serviced Solutions을 통해 원씨가 200만파운드(약 34억7000만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팔수 있도록 도왔음이 밝혀졌다. 그 대부분의 돈은 버크가 미리 준비해둔 선불카드에 입금되었고 원씨는 그 카드를 장씨에게 보냈다.


2020년 8월, 경찰은 다시 한 번 햄스테드 저택 수색에 나섰다. 이번에는 장씨가 없었다. 원 씨는 법정에서 장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같은 달 25일 집에서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임대차 계약을 끝내는 중이었다. 4만 파운드(약 7000만원) 보증금 중 남은 금액과 벤츠 차량은 원씨에게 돌아갔다. 장씨는 경찰 조사를 받기 전 사라졌고, 원씨는 법정에서 그 이후로 그로부터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2021년 5월까지 원씨는 런던 남부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아들과 함께 살며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때 라이언 형사가 마지막으로 찾아왔고, 집을 수색한 뒤 그를 체포했다. 추가 수색에서는 다음과 같은 손으로 쓴 메모가 발견되었다. "경찰이 비트코인 암호를 알아내면 나는 죽은 목숨이다." 법정에서 메모의 의미를 묻자 원씨는 혼란스러워하며 괴로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수사로 인한 압박감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같은 달 경찰은 장씨의 비트코인 지갑을 열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수억 파운드 규모의 금액을 발견했다. 7월 중순에는 가장 큰 두 개의 지갑을 열어 12억 파운드(약 2조850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찾아냈다. 배심원단에게 경찰 수사가 3년 가까이 걸린 이유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었다. 2018년 초기 수색 이후 일부 비트코인이 빠져나갔는데, 2021년 5월 30일 새벽에는 4000개의 비트코인(1억 파운드 이상)(약 1737억원)이, 며칠 후에는 500개가 추가로 유출되었다. 원씨의 변호사는 원씨가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법정에서도 이와 관련한 아무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 3월 배심원단은 11시간 13분 동안의 심의 끝에 마침내 평결을 내렸다. 판사는 만장일치가 아닌 10대2 다수결 평결을 허가했다.


서기가 원씨를 일어서게 했다. 단정한 정장을 입은 남성 배심원단 대표도 일어섰다. 첫 번째 혐의에 대해서는 평결이 없었다. 두 번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였다. 세 번째 혐의에 대해서도 평결이 없었다. 원 씨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나머지 혐의에 대해 대표가 조용하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반복했다. "무죄. 무죄. 무죄." 배심원단은 두 가지 혐의에 관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나머지 모든 혐의에서 원 씨는 무죄 평결을 받았다. 원 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방청석에 있던 라이언 형사와 경찰관들은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한 배심원은 기도하듯이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이번 평결은 검찰의 일련의 실패로 마무리됐다. 경찰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몇 년 동안 국제 도피범은 종적을 감췄고 많은 비트코인이 사라졌다. 재판 중간에 판사는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지갑과 관련된 두 개의 소지 혐의를 기각했다. 그 지갑의 비밀번호는 암호화되어 있었다. 원씨의 변호사 마크 해리스Mark Harries는 원씨가 암호화되지 않은 버전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이제 남은 사건의 대부분은 10명의 배심원에게 맡겨졌다.


해리스 변호사는 마지막 변론에서 배심원단에게 검찰의 '겉만 요란한' 주장과 원씨의 의문스러운 행동을 무시하고 오직 증거에만 집중해서 증거가 실제로 장씨의 비트코인이 범죄 수익이라는 것을 원씨가 알고 있었거나 의심했다는 것을 입증하는지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말했다. "원씨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었고 그저 자신의 가난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을 뿐입니다." 그가 이어 물었다. "자신을 식당 부엌에서 구해내어 햄스테드에 있는 400만 파운드짜리 집에 살게 해준 장씨를 믿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원씨가 이 모든 것에 대해 무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배심원단도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1년 후에도 원씨는 여전히 교도소에 있었고 그의 일상에는 변함이 없었다. 2월에 그는 전년에도 그랬듯이 매일 사우스워크 법원으로 호송되어 장씨의 비트코인을 세탁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원씨가 무죄 평결을 받지 않은 두 건의 혐의로 다시 기소했다. 두 번째 재판이 열릴 때, 검찰은 새로 발견된 또 다른 비트코인 지갑과 관련하여 세 번째 혐의를 추가했다. 원씨가 세탁한 것으로 지목된 금액은 총 100만파운드(약 17억원)에 달했다.


2023년 3월, 해리스 변호사는 원씨가 수사 과정에서 도주를 시도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보석을 요청했다. 남은 혐의들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더라도 이미 형기가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보석 요청은 기각되었다. 전년도 3월부터 시작된 구금 경험으로 인해 오히려 원씨가 도주할 위험이 커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구금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알것입니다." 밀네 판사의 설명이다.


두 번째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원씨는 아픈 모습을 보였고 자주 기침을 했다. 이번 재판 과정도 첫 번째와 유사했다. 검찰 측의 질리언 존스Gillian Jones는 사건의 전모를 다시 설명했고 해리스 변호사는 배심원단에게 이미 지나간 드라마에 현혹되지 말 것을 호소했다. 원씨는 눈물을 흘리며 피고석에 주저앉았다.


2024년 3월 18일, 배심원단은 원씨를 3건의 자금 세탁 혐의 중 1건에 대해 다수결 유죄 평결을 내렸다. 나머지 2건에 대한 평결은 없었다. 원씨는 5월에 형량을 선고받을 예정이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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