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

윌렘 드 쿠닝과 이탈리아: 탁월하게 빚어낸 풍성한 향연

이 기념비적 전시는 이탈리아가 어떻게 화가이자 조각가인 드 쿠닝의 예술세계를 두 번씩이나 변화시켰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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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렘 드 쿠닝, <빌라 보르게세 Villa Borghese>, 1960, oil on canvas 80 x 70 inches (203.2 x 177.8 cm) Guggenheim Museum Bilbao / © 2024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SIAE

2024.05.31 14:33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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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보르게세 Villa Borghese>는 윌렘 드 쿠닝이 1960년 로마에서 황홀한 기억을 안고 뉴욕으로 돌아온 후, 로코코풍 핑크와 모랫빛 노랑, 연한 신록색과 푸른 물웅덩이색을 대담한 붓질에 담아 로마의 유명 조경 정원을 기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주간 중, 탁월하게 빚어낸 풍성한 전시로 각광을 받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윌렘 드 쿠닝과 이탈리아>전에서 단연 최고 인기작이기도 하다. 전시회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된 <빌라 보르게세>는 긴 세월을 겪은 광장의 풍화된 벽들을 가로질러 다리, 수상버스 등 베니스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선명한 색채와 유동적 형태, 풍부한 느낌의 드 쿠닝 작품들은 마치 원래 베니스에 있었던 양 지극히 편안해 보인다. 이 물의 도시와 그가 사랑했던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의 살집 있는 형상들로 가득한 작품들 사이에서 말이다.


거의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 미술관에서 열린 드 쿠닝의 전시회는 이탈리아가 어떻게 이 네덜란드 출신 미국 화가의 예술을 두 번에 걸쳐 변화시켰는지를 설득력있게 탐색한다. 전시는 그의 회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 또한 로마에서 시작되었고 로마의 영감에 대한 응답이기도 한 드 쿠닝의 조각들을 전시장 중앙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청동 조각들은 폭발적이고 코믹하기도 하며, 2차원의 캔버스에 묶인 인체를 공간으로 이끌어내 확장시키고 해방시킨 강렬한 존재들이다. 울룩불룩 굴곡지고 비틀린 표면은 작가가 점토를 주무르고 찌르고 쥐어짠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의 회화에서 느껴지는 액체같고 미끄러운 촉감을 드러낸다. 회화와 조각 두 영역에서 드 쿠닝은 형태를 변형시키고 재구성하며, 쌓아올리고 긁어내린다. 왜냐하면 드 쿠닝에 따르면 인체는 "이상한 기적처럼 마음대로 뒤틀 수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거대한 팔을 한껏 늘어뜨린 다부진 체격의 무용수 <다리를 꼰 인물 Cross-legged Figure>(1972)과 받침대를 벗어난 다리에, 담배를 쥐듯 올린 손, 천박한 미소를 지은 채 막대에 기댄 <접대부 Hostess>(1973)는 천연덕스럽고 경쾌하다. 수직의 긴 목재에 젖은 물감을 겹칠해 올린 풍경화 <여인, 새그 항구 Woman, Sag Harbor>(1964)나 <아카보낙의 여인 Woman Accabonac>(1966) 속 인물들이 그림에서 막 걸어나온 듯하다.



Installation View of Willem de Kooning and Italy,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2024 / © 2024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SIAE. Photograph by Matteo de Fina, 2024

Installation View of Willem de Kooning and Italy,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2024 / © 2024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SIAE. Photograph by Matteo de Fina, 2024


팔다리가 긴 <작은 좌상 Small Seated Figure>(1973)은 큰 엉덩이와 가슴, 뺨을 붉은 윤곽선으로 두른 채 다리를 벌리고 있는 <광고판 속 여인 2 Woman on a Sign II>(1967) 앞에서 몸을 비틀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드 쿠닝은 "나는 여성적인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 가슴은 정말 모양이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네덜란드에서 간판공으로 일했던 그는 1960년대 미국 옥외 광고에 등장하는 외설적인 여성의 모습을 패러디하곤 했다. 그러나 게리 개럴과 함께 전시회를 기획한 마리오 코도냐토는 <광고판 속 여인 2> 을 로마에 있는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황홀경 Ecstasy of St. Teresa>과도 비교한다. 역동성과 성적 환희, 주름진 옷 속에 가려진 인체의 굴곡과 같은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시 전반에 걸쳐 현대적 요소와 고전주의가 만난다. 중심에서 움직임이 뻗어나오는 원심적 동세에, 밀도높게 압축된 청동상 <떠다니는 인물 Floating Figure> (1972)은 마치 도약하려는 듯한 우주비행사를 연상시킨다. 미켈란젤로는 "위대한 예술가는 신체의 수축을 잘 이해하고 있다. 모든 것이 중심으로 돌아오며 인체는 중심으로부터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에 대한 드 쿠닝의 대답이기도 하다.


드 쿠닝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 중 유일하게 전통에 관심을 가진 작가였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베니스인들의 붓질. 그래, 그들의 붓질. 어느 누구도 그들보다 더 붓질을 잘 할 수는 없어"라며 끊임없는 찬양을 늘어놓아 지루할 정도였다고 불평했다. 그건 심지어 드 쿠닝이 베니스를 방문하기도 전이었다. 이후 그는 불륜의 사랑을 쫓아 베니스에 왔지만 관계가 파국을 맞자 며칠만에 로마로 갔고, 그곳에서 "엄청난 인상을 받았다." 머지않아 로마에 다시 돌아온 드 쿠닝은 1959에서 1960년까지 장기간 머물렀다.


윌렘 드 쿠닝, <Untitled (Rome)>, 1959, ink on paper, 40 x 30 inches (101.6 x 76.2 cm) The Renee & Chaim Gross Foundation, New York / © 2024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SIAE

윌렘 드 쿠닝, <Untitled (Rome)>, 1959, ink on paper, 40 x 30 inches (101.6 x 76.2 cm) The Renee & Chaim Gross Foundation, New York / © 2024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SIAE


<흑백의 로마> 드로잉들은 검은 에나멜에 광을 줄이기 위해 경석 분말 ground pumice을 섞어 작업한 표현적이고 건축학적인 추상화이다. 때로는 찢겨져서, 파편화된 면들을 겹쳐 콜라주로 재구성된 이 작품들은 로마의 건축과 역사의 층들, 그리고 전쟁의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고 있는 로마의 활기에 화답한다. 자연광이 들지 않는 작가 아프로 Afro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창작된 이 작품들은 실험적이고 즉흥적이며, 도시의 소용돌이와 밤문화의 약동에 맞춰 고동친다. 흥분에 찬 시선들을 떠올리게도 하고, 로마에서 산책할 때 흔히 겪듯 햇빛에서 그늘로 접어드는 순간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1960년은 펠리니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이 상영되고, 로마의 아방가르드 미술이 원숙해진 해이다. 드 쿠닝은 라 타르타우가 미술관 주위의 예술가 써클에 바로 소개되었다. 사이 톰블리의 그래피티 회화, 야니스 코우넬리스와 파비오 마우리의 흑백 콜라쥬, 알베르토 부리의 철판 작업들은 드 쿠닝의 흑백 드로잉들에 강렬함과 파편의 미학을 불어넣어 주었으나, 결국 드 쿠닝은 다른 길을 택했다. 로마에서의 작업은 "새로운 회화를 위한 준비이다. 나는 회화에서 '모든 것', 즉 자연의 실체와 추상의 몸짓을 다 해보고 싶다." 드 쿠닝은 그렇게 직감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대형 추상 '전원 풍경화' 세 점을 그렸다. 넓은 붓질, 기이한 절단과 중첩 기법은 로마에서 창작한 작품들에서 첫 선을 보였는데, 특유의 느슨함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재회한 세 작품은 <빌라 보르게세>를 비롯해, 거품을 안고 푸르게 부서지는 파도와 따뜻한 붉은기가 도는 황토색 땅을 품은 <나폴리의 나무 A Tree in Naples>, 그리고 선명한 분홍과 크림색 노랑의 <강으로 열린 문 Door to the River>이다. 이 작품에서, 열정적인 몸짓의 흔적은 깃털처럼 섬세한 붓자국으로 중화되고 장대한 수직선들 사이의 잿빛 조각들은 "문"이 열어준 깊은 공간으로 이어진다. 작품은 드 쿠닝이 사는 롱 아일랜드를 이야기하지만 이탈리아의 기억도 묻어있다. 일레인 드쿠닝은 남편이 "로마에 깊은 애정을 갖고있다. 로마의 문은 크고, 언제나 환영받는 기분이다"라고 썼다.


Installation View_Willem de Kooning and Italy_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2024 / © 2024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SIAE_Photo by Matte de Fina 2024

Installation View_Willem de Kooning and Italy_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2024 / © 2024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SIAE_Photo by Matte de Fina 2024


1969년, 그는 스폴레토 축제에 초청되어 다시 이탈리아에 돌아오게 되었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건반을 그린 작품들을 포함해 물결처럼 선이 유려한 <스폴레토> 드로잉들은, 축제에서 상연된 프롬나드 연극 <올란도 퓨리오조>의 에너지와 개방적 분위기를 담고 있다. 오랜 지인이었던 헤르츨 엠마누엘과 로마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은 드 쿠닝에게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헤르츨은 드 쿠닝을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자신의 청동 주조소에 초대해 작업하게 해주었고, 드 쿠닝은 그렇게 조각에 입문하게 되었다. 드 쿠닝의 첫 조각 작품들, 소형의 무제 13점은 굽이치고 관능적이며 의인화되어, 마치 물이 흘러넘치는 듯한 베르니니 분수의 인물상들을 연상시킨다.


1970년대 초반 드 쿠닝은 조각에 몰두했고, 그의 조각 작업은 이스트 햄튼 해변에서 만난 조개잡이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조개잡이 Clamdigger> 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자신의 몸과 섞여버린 진흙을 헤치며 나아가는 이 원시적 형상은 장엄하게, 하지만 조금은 진부하게, 그러면서도 인간미 있게 전시회를 지키고 서있다.


윌렘 드 쿠닝, <아이들의 고함소리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같다 Screams of Children Come from Seagulls (Untitled XX)>, 1975 oil on canvas, 77 x 88 inches (195.6 x 223.5 cm), Glenstone Museum, Potomac, Maryland / © 2024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SIAE

윌렘 드 쿠닝, <아이들의 고함소리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같다 Screams of Children Come from Seagulls (Untitled XX)>, 1975 oil on canvas, 77 x 88 inches (195.6 x 223.5 cm), Glenstone Museum, Potomac, Maryland / © 2024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SIAE


피카소처럼 드 쿠닝 역시 회화에서 펼칠 새로운 움직임들을 조각 작업을 통해 고안했다. 1970년대 초반의 관능적인 청동상들은 이후 1970년대 중반에 제작된 투명하고 명쾌한 대형 추상화들과 공간을 함께하고 있다. 바다의 영감으로 창작된 이 대형 추상작들 중 <아이들의 고함소리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같다 Screams of Children Come from Seagulls> 와 <북대서양의 등대(무제 18) North Atlantic Light (Untitled XVIII>가 단연 백미라 할 수 있겠다.


전시의 마지막 방은 1981년에서 1987년 사이에 제작된 대형 추상화들을 선보이는데, 작품들은 해가 갈수록 단순해진다. 첫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대여해온 <해적(무제 2) Pirate (Untitled II)> 으로, 빛나는 흰색 조각들을 가로질러 유영하는 색채의 띠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흥적이면서도 정밀히 계산된 아름다운 작업이다. 마지막 작품은 재스퍼 존스 컬렉션에서 대여한, 빨강과 노랑의 간결한 낙서들로 이루어진 <고양이의 야옹 소리 The Cat's Meow >이다.


쇠락한 노인의 낙서에 불과할까, 아니면 대가의 마지막 열정의 구현일까? 전시의 맥락을 볼 때 내리 덮치는 선들, 불거진 양감, 장식적 조형과 자유롭게 부유하는 형태들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그를 사로잡았던 생명력과 화려함-저변에 무상함과 변덕스러움이 흐르는-의 최종적 표현일 터이다. 이탈리아 교회의 실내 장식에 대해 드 쿠닝은 말했다. "모든 것이 공중에 반쯤은 매달려 있거나 돌출되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든 그림들은 완벽하다. 모든 비밀은 중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25년에 걸쳐 끊임없이 진화한 그의 예술세계를 관람한 후, 몇 분 거리에 위치한 프라리 성당의 티치아노와 산로코 대신도회장의 틴토레토를 만나게 되면 흔치 않은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Gallerie Accademia)의 <윌렘 드 쿠닝과 이탈리아Willem de Kooning e L'Italia>는 9월 15일까지 전시한다.





필자 재키 불슐래거(Jackie Wullschläger)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 예술평론가로 활동중이다. 그는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 이야기꾼의 삶'과 '샤갈: 삶과 망명'으로 스피어(Spear) '금년의 전기'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역자 음해린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후 시각예술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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