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7 13:52
광대하고 이질적인 인터넷의 시민들이 뭔가를 위해 뭉치는 것은 언제나 고무적이다. 2024년 3월에는 한 에세이에 대한 혐오로 인터넷의 시민들이 똘똘 뭉쳤다. 더컷The Cut 매거진에 실린 '연상의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바로 그렇게 결혼한 여성 그레이스 소피아 크리스티가 쓴 것으로, 그는 하버드 재학 시절, MBA 과정 지원자들을 위한 리셉션에 몰래 숨어들곤 했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젊음이 사라지고 평범해지기 전에 보다 자리를 잡은 남자를 낚기 위해서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는 20살 때 30세 남성과 결혼에 골인했는데 남편의 특징은 프랑스 출신에 부자라는 것뿐인 듯했다.
이 에세이가 받은 혐의는 그레타 툰베리를 화나게 만들 것부터—필자는 바이라인에 대수롭지 않은 듯 자신이 "마이애미와 런던"에 산다고 썼다—글로리아 스타이넘1을 짜증나게 할 만한 것까지 다양했다.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썼다. "그는 마치 나를 (미래의) 나 자신에게 소개하는 것처럼 우리의 첫 보금자리를 소개했다. '이건 네가 마실 와인이고, 여긴 네 옷을 보관할 곳이야. 우리는 여기서 휴가를 보내고, 이건 우리가 사용하게 될 또 다른 언어인데 너도 곧 배우게 될 거야.'"
필자 크리스티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팔자를 고치려는 여자'라는 고전적인 전형을 취하고는 그것을 뭔가 지적이고 해방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수건을 쓰고 바닥에 내버려두는 남동생을 언급하며,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남자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고 쓴다. 그는 다른 여자가 많이 고쳐 놓은, 그리고 자신을 고쳐줄 수 있는 남자가 필요했다. 그는 '파트너'가 아닌 '멘토'를 원했다고 썼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페미니즘이 성취하지 못한 약속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난 공정함과 불공정함, 평등함과 불평등함에 대한 논의가 따분해졌다." 크리스티는 썼다. "그 대신 안락함이란 것을 선호하게 됐다."
안락함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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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지막 문장 하나만이 글 전체에서 유일하게 나로 하여금 멈춰 서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너무나 투명해 숨막힐 정도였다. '무슨 원칙이나 세계관에 기반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인생은 힘겨워 보이고 이건 쉬워 보였기 때문에 그런 거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젊음을 전제로 관계를 맺는다면 늙게 될 경우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비난'은 크리스티의 에세이를 다루는 가장 지루한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그 글이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던 주제는 글쓴이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만큼 더 컸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의 만족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여유rest란 무엇인가. 로맨틱한 관계를 인생을 뒤바꾸는 궁극적인 기법으로 보는 개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뒤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체념적 생각 말이다.
최근 '전통주의 와이프tradwife'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틱톡에 능통한 기혼 여성으로, 집안일을 하고 "전통적" 가치관을 찬양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다. 심지어 '전업주부 여자친구Stay-at-Home-Girlfriend (SAHG)'라는 표현도 있다. 인플루언서 커뮤니티에서 여성적 안락함에 대해 설파하는 진정한 예언자들이다. 아이들 등하교나 육아로 하루를 보내는 전업주부 엄마들과 달리, 자녀가 없는 '전업주부 여친'의 하루는 주로 집 관리와 자기 관리로 채워진다. 정교한 피부, 운동, 식단 관리로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고 인생을 평온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지원해 주는 남자친구를 위해서다.
내가 본 어느 '전업주부 여친' 영상에서 백금발의 여성은 남자친구가 여행 비용은 다 내주는 대신 짐 싸는 것은 모두 자신이 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상의 나머지를 신발 안에 선글라스를 넣는다거나 말아놓은 셔츠를 무지개빛으로 배치하는 등 역대급으로 꼼꼼한 캐리어 짐싸기에 할애했다. 거의 반나절을 짐싸는 데 보낸 듯했다.
다른 영상에는 네글리제를 입은 젊은 여성이 인내심 있게 머리카락을 말고 있는 동안에 이런 자막이 떴다. "사람들은 제게 '꿈의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어보곤 했어요. 전 결코 대답을 몰랐죠. 제가 노동을 꿈꾸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전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삶을 꿈꿔요." 영상의 제목은 "전 여성적 여가feminine leisure를 꿈꿔요"였는데 나는 곧 이 표현이 이 바닥에서 일종의 모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 여성적 여가를 꿈꿔요." 사랑스러운 갈색 머리 여성이 얇은 비치 가디건을 입고 수영장으로 한가로이 걸어가는 모습의 영상에 달린 자막이다.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전 여성적 여가를 꿈꿔요." 또 다른 사랑스러운 갈색 머리 여성이 화장대에서 새 립글로스를 바르는 모습의 영상에 달린 자막이 말한다.
대체 여성적 여가란 무엇일까? 미리 규정된 행동의 집합인가? 미학인가? 분위기인가?
간단한 답변은 그것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좋은 해결책은 아닐지 모르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상상 가능한 해결책이다. 그 문제란 일부 젊은 여성들이 현대 성인기의 풍경에서 진단한 것이다.
몇 달 전 한 16세 소녀의 어머니가 슬레이트의 육아 조언 칼럼에 패닉 상태의 메시지를 쓴 일이 있다. 과거에는 늘 학업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딸이 이젠 대학의 엄격함을 건너뛰고 대신 미래 남편을 위해 외모 관리에 전념하고 싶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우리 딸아이가 이젠 '가부장제'가 얼마나 대단한지, 누군가 와서 자신을 돌봐주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니까요." 그 어머니가 썼다.
크리스티부터 전통주의 아내, 전업주부 여친, '가부장제 딸'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주제는 여성 해방이 과대 포장되었다는 개념인 것 같다. 여성 독립의 미덕을 배우며 자란 여성은 사기를 당했다는 게다. 물론 이제 우리는 커리어에서도 성공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누구도 아직 해야 할 빨래나 집안일의 양을 줄이진 못했다. 아무도 하루를 몇 시간 더 늘리진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사회지표연구Social Indicators Research 저널에 실릴 새로운 논문을 상세히 다뤘는데 그 논문의 결론은 "어떻게 질문하든, 어떤 척도를 사용하든 여성은 남성보다 더 불안하고, 더 우울하며, 더 피곤하고, 더 비관적이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은 "자신이 행복하고 삶에 만족한다고 말할" 가능성도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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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여성 행복의 역설female happiness paradox'로 알려진 현상으로, 연구자들은 아직까지 그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기사에서 인용된 한 가지 추정은 측정 기준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자살, 약물 과다 복용, 알코올 중독으로 더 많이 죽는 것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성이 여성보다 덜 불안하고 우울한 게 아니라, 과묵하도록 자라서 불안과 우울감을 얘기할 가능성이 적은 것일 수 있다. 또 다른 추측은 여성을 스트레스 받게 만드는 것들(자녀, 인간관계 구축, 일과 삶의 균형 달성)이 한편으로는 여성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것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든 팩트는 그대로 남는다. 여성들이 불행하지만 행복하거나 행복하지만 불행하다는 것. 그리고 과학자들이 이 역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20대 여성들은 할 수 있을까? 무엇하러 스스로를 혹사시키나? MBA 리셉션에 뛰어들고, 머리카락을 말고, 여행 가방을 싸라. 안락함을 선택하라.
잠깐 여기서 일반적으로 이런 관계에서 남성들의 목소리는 인플루언서 아내나 여자친구들에 비해 훨씬 덜 들린다는 점을 언급해야겠다. 이들의 목소리는 이 담론에서 누락되어 있다. 어쩌면 상호 합의가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이를 인정하면 성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워서 일 수도 있다. 어쩌면 셔츠를 말아 넣는 것에 대해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설명함으로써 여자친구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는 걸 수도 있다. 어쩌면 단지 그 모든 사랑스러운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동안 그들은 사무실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많은 남성들이 전업주부 파트너를 갖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이 여성혐오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미리 장을 봐놨으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또한 많은 남성이 화요일 한낮에 수영장으로 느릿느릿 걸어가거나, 크리스티가 더컷에서 묘사한 대로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로 글을 읽거나 런던 중심가와 마이애미를 걸으며 즐거운 생각들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지금까지 틱톡은 이에 상응하는 전업주부 남자친구 미학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사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 중 최고의 모습으로 보이고, 느끼고, 존재하기 위한 시간을 원하는 만큼 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안락함이란 이름의 그 무엇'과 고도로 미학적인 관계를 쌓는 시간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 없다.
문제가 페미니즘이 아니라 자본주의, 특히 일과 삶의 균형이 압권인 미국식 자본주의라면 어떨까? 이 여성들이 유급휴가로 미국 평균인 11일 대신 영국 표준인 한 달을 다 받는다면? 주5일(혹은 6일이나 7일) 대신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벨기에 같은 나라에서 시범 운영 중인 주4일제로 일한다면? 그렇다면 완벽한 피부 관리와 멋진 여행가방을 챙길 시간이 충분할까? 대학 교육이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비싸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 어머니의 딸은 금전적 독립으로 가는 길고 가파른 길 대신 가부장제를 안락함으로 가는 지름길로 삼고 그렇게 열심히 매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성에게 집에 머무를 선택권이 없었던 것은 공정하지 않았다. 여성이 일하면서도 여전히 집안일을 하고 있다면 공정하지 않다. 남성과 여성 모두 함께 재정을 잘 관리하려 노력하면서도 여전히 하루에 충분한 시간이나 돈이 없다고 느낀다면 그 역시 공정하지 않다.
누군들 여성적 여가를 꿈꾸지 않겠는가?
몇 달 전 나는 오테사 모시페그Ottessa Moshfegh의 훌륭한 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를 다시 읽기로 결심했다. 성인이 된 삶에 너무 힘들어 처방 진통제를 꾸준히 복용해 1년 내내 잠만 자는 계획을 세운 한 젊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결말은 모호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해피엔딩이었다. 실험이 끝날 무렵, 주인공은 마침내 충분히 휴식을 취해 이전보다 활기차고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에 다시 합류한다.
내가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친구는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그래?" 내 친구가 말했다. "난 주인공이 죽은 줄 알았는데."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한 동료와 내가 모두 전통주의 아내 미학을 가진 한 인플루언서에게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는 마치 뇌엽절제수술을 받은 것처럼 평온하고 변함없는 표정으로 정교한 빵 반죽을 만들었다. 2024년에 이것은 풍자일까, 진심일까?
내 동료는 내 SNS 피드에도 가득했던 전업주부 여친 스킨플루언서skinfluencer 영상도 봤다고 한다. 어떻게 하루에 30분씩 세수하는 데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우리는 서로에게 물었다.
난 집으로 돌아간 후, 최근 몇 달 동안 가장 만족스러웠던 날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간 쌓인 대체 휴무시간을 사용해 평일 수요일에 유급 휴가를 낼 수 있었다. 요가를 하고, 멋진 샌드위치를 사고, 여름 여행 계획을 짜고, 유치원을 알아보고, 절망한 상태로 구글에 "콩 캔 하나와 감자 하나로 15분 만에 저녁 만들기?" 따위를 검색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저녁을 만들었다.
그날 나는 상당한 여가를 누릴 수 있었다. 심지어 상당한 여성적 여가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거다. 그날이 만족스러웠던 건 내가 여성적 운명과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이 만족스러웠던 까닭은, 성별을 불문하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성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보통 그것들을 해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문화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근무 시간은 길고, 휴가는 제한적이며, 유치원은 보편적이지 않아 늘 미리 살펴둬야 한다.
꿈? 꿈은 꿈일 뿐이다.
사회적이고 실존적인 불안의 문제를, 관계를 추구하여 해결하려는 듯한 여성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정말로 스스로 재정 관리를 할 수 없길 원할까? 파트너에게 용돈을 달라고 하는 상황을 정말로 원하는 걸까? 5년, 10년, 20년 후에 자신과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아무리 잘 관리해도 피부에 주름이 생길 때. 아침에 함께 준비하는 영상을 촬영할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
코스모폴리탄은 2024년 3월 한때 전업주부 여자친구로 살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남자가 당신 평생 돈을 벌어오고 당신에게는 전혀 수입이 없다면, 원망이 생기기 시작할 거예요." 인플루언서 벨라 그린리가 코스모폴리탄에 한 말이다. "너무 심심해서 집을 필요 이상으로 청소했어요. 할 일이 정말 없어서 미쳐 가고 있었죠."
젠더와 노동의 역사에서 이 혼란스러운 순간에 대한 해결책은 과거의 중산층 방식—여성은 예쁜 소유물로, 남성은 강제된 생계부양자로—으로 퇴행하는 꿈을 꾸면서 오늘날의 방식이 효과가 없다면 과거의 방식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해결책은 우리가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나이 든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 에세이가 나온 지 며칠 후, 그보다 관심도 악플도 덜 받은 기사가 뉴요커에 실렸다. 4년 전 원조 전통주의 아내 인플루언서 중 한 명으로 유명세를 탄 알레나 케이트 페티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잘 정돈된 집과 잘 차려진 식탁을 소중히 여겼고, 결혼하고 임신한 후 그런 삶을 실현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그는 다림질을 했고 바느질을 했다. 바나나 빵을 만들고 1950년대 스타일의 옷으로 멋을 내는 자신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나서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는 점차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에 지쳤다. 그녀는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사로 추구했던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천천히 상징적이고 정치화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콘텐츠가 자기반복적이 됐음을 느꼈다. 그가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가정적인 모습의 사진을 올리면 반응이 "약했고", 반면 화려한 레트로 하우스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올리면 반응이 "천장을 뚫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 많은 드레스를 입었고, 더 많은 팔로워를 얻었으며, 그래서 또 더 많은 드레스를 입었고, 사진 속 그의 모습은 점점 실제 삶보다는 일종의 환상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안락함이 부족했다, 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레트로'의 버블로 자신을 감싸는 것조차도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자기성찰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인생을 살아나가야 하는 것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진 못했다. 대중을 상대로 전통주의 아내가 되는 것은 '모든 걸 다 갖는2having it all' 것만큼이나 거짓된 약속으로 드러났다.
페티트는 지난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인스타그램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아들이 곧 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고 가족은 대륙을 횡단하는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삶의 선택을 반추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늘 카페를 하고 싶어 했다. 직장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미국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한 가지 조류는 '보수의 반격'입니다. 그동안 진보가 주도하던 젠더, 교육 등의 각종 사회 이슈(이를 통틀어 '문화전쟁'이라고도 하죠)에서 보수의 반격이 두드러집니다. 그 중에서도 요즘 흥미로운 현상은 페미니즘이 만든 보다 진취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발입니다. 소위 '전통주의 아내tradwife'나 '전업주부 여자친구stay-at-home girlfriend'라는 문화현상이 바로 그것인데 한국에서도 보수적 여성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확산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그 움직임 자체에 큰 의미를 두기 보다는 특정 사안에 대해 사회가 시계추처럼 흔들리면서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지배적이었던 여성의 주체성과 신자유주의적 성공 신화가 결합된 '모든 걸 다 갖기having it all'(커리어와 육아 모두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최근 이런 문화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진보 성향 매체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미국의 보수적 문화현상들을 탐사하는 편입니다.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곤 있지만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아래 소개하는 '전통주의 아내' 현상에 대한 워싱턴포스트의 4월 10일 칼럼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물론 이 칼럼은 워싱턴포스트답게 진보적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자본주의가 개선된다면 일(성취)과 여가가 양립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여성적 여가'라는 퇴행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내비칩니다. '여성적 여가'를 진보주의 테마 속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전통주의적 여성이나 여성적 여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