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미국 자본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미국은 넘치는 돈과 큰 정부에 과도한 의존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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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14:16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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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인구 3억이 넘는 세계 최대의 경제국이면서도 연 3~4% 성장률을 자랑하며 세계 경제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산업 기반이 무너진 러스트벨트와 펜타닐 중독에 시달리는 저소득층 등, 그 그림자도 짙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 2024년 5월 25일자 에세이에서 인도 태생의 펀드매니저이자 사상가인 루치르 샤르마는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미국사람들이 통증을 못 견디며 펜타닐 등 마약에 의존하듯 미국 정부는 시장의 부침(浮沈)을 못 견디며 경기의 후퇴, 회복 상관없이 계속적으로 확장적 금융, 재정 정책을 적용하는 좌파적 케인즈주의를 채택해왔고 이것은 심지어 공화당 정부도 마찬가지였다고 비판합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근본문제인 경제성장 둔화와 경제 분배 악화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기업들과 부자들에게 돈을 퍼주면서 미국 자본주의의 건강함을 망가뜨려왔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해법으로 시장의 활성화를 제시합니다. 국가와 대자본의 유착, 그리고 번영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관여로 특징지어지는 현재의 미국 자본주의가 건강한 시장중심주의를 되살려낼 수 있을지,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경제적 원인에서만 나온 것인지, 아니면 3억이 넘는 거대 제국으로의 변모에서 나오는 관료화 경향 때문인지 궁금해집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를 읽으며 한국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고별 연설에서 미국을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로 묘사하며 "의지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고, 오늘날 미국이 세계 테크놀로지를 선도할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는 학계와 업계의 역동적인 조합은 여전히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현재 미국 100대 기업 중 10개 기업이 내 모국인 인도에서 태어난 최고경영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적 능력본위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이 지금 세계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걱정이다. 정부를 제한해 개인에게 자유와 주도권을 보장한다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가 급락하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5년 후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데, 이는 20여 년 전 에델만 신뢰지표가 이 질문을 처음 물은 이래 사상 최저치다. 5명 중 4명은 자신의 세대보다 자녀 세대의 삶이 더 나아질 것에 회의적인데, 이 전망 역시 가장 바닥에 있다. 최근 퓨 여론조사에 따르면 모든 미국인, 특히 민주당 지지자와 젊은 층 사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30세 미만의 민주당 지지자 중 58%는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29%만이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들어온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20년 바이든이 당선되었을 때, 세계의 많은 신문 칼럼들은 그의 대통령직을 레이건과 마가렛 대처가 시작한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반란이 가져온 "작은 정부 시대"의 종말이라며 환영했다. 또 최근의 자본주의 역사 저작들 역시 비슷한 역사경로를 그리면서 레이건과 대처가 사회민주주의의 '영광스러운' 30년을 끝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들이 보기에 그 30년 동안 의욕이 넘치는 정부들이 기업 및 노조 지도자들과 협력해 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기업의 수익을 더 공평하게 분배했던 것이다. 요컨대, 이 언론과 학계의 사상가들은 새로운 재정지출과 규제강화에 대한 바이든의 계획을 구두쇠같은 작은 정부에서 풀려나는 것으로 환영했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좌절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 관점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작은 정부 시대'라는 것이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거의 한 세기 동안 거의 모든 측정 가능한 측면을 보건대 돈을 쓰고 빌리고 시장을 규제하는 기능에서 확장되어 왔을 뿐이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이런 경향에서 한 차례 아주 짧게 후퇴한 것이 이러한 확장이 얼마나 장기적 추세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연방정부 지출은 1930년 이후 8배 증가해 GDP의 4% 미만에서 24%까지 그 비중이 증가했는데, 주 및 기타 지방 지출까지 포함하면 비중이 36%에 달한다. 레이건 정부에서 나타난 변화는 정부 지출이 증가해도 세수는 변화가 없었던 상황에서 정부가 차입을 통해 지출 확대 재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재정적자는 드문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 되었고, 그 결과 미국의 공공 부채는 4배나 증가해 지금은 GDP의 120%를 넘어섰다.



레이건은 정부의 정책 방향을 작은 정부로 바꾸었다기보다는 공론의 의제를 신자유주의적인 '세금, 재정적자, 규제 줄이기'로 바꿔버렸다. 그러나 정부가 탈규제를 시도한다고 해도 그 결과 실제 나타난 것은 더욱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규칙이었을 뿐이고, 이러한 규칙은 부유하거나 힘센 자들이 가장 잘 빠져나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채 증가가 1930년대식 대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중앙은행들은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정부와 함께 대기업, 은행, 심지어 외국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 새로운 방식의 자본주의를 "부유층을 위한 사회주의"라고 조롱했지만, 사실 정부는 빈곤층과 중산층을 위한 구제책도 내놓고 있었다.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위험의 사회화'이고, 사회 전체가 경제 침체에 맞설 수 있도록 예방접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희석되지 않은" 레이건식 자본주의의 본고장이라는 비판을 여전히 받고 있지만 이제 유럽을 대신해 '슈퍼리치'를 포함해 그 누구도 경제적 고통을 받지 않도록 적극 관여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문화에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벼운 상처나 부상도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이른바 "통증관리 혁명"이 온 나라를 옥시콘틴(OxyContin: 한국에서는 옥시코돈 서방정으로 암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로 처방된다-역자주)에 중독시켰던 것처럼, 경제에서의 통증관리 접근법 역시 조금씩 입에 넣어주는 정부 지원으로 시스템 전체를 중독시키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규제와 부채가 모두 증가하면서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도 순위에서 4위에서 25위로 떨어졌다.


작은 정부의 시대가 존재했다는 것이 신화에 불과하다면 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하길 바라는 대다수 사람들은 생각을 고쳐먹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더더욱 커지는 정부는 현대 자본주의의 작동불량에 대한 좌절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확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역사는 큰 정부를 향해왔다

레이건은 복지국가를 파괴하지 않았다. OECD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복지지출이 증가했는데, 미국에서는 OECD 평균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다. 더 많은 복지지출을 선호하는 진보주의자들도 미국에 이러한 추세가 있었음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미국의 빈곤상황을 연구하는 매튜 데스몬드(Matthew Desmond)는 미국의 빈곤층에 대한 지출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색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이어서 그런 추세를 발견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데이터를 뒤졌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이었음을 발견했다고 썼다.


원래 케인즈의 생각은 정부가 경기회복기에 저축을 해놓고 경기침체기에 침체 완화를 위해 많은 지출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서 이 생각에서 '저축' 부분이 사라졌다. 민주당의 케네디 대통령이 (경기침체 완화가 아니라) 경기회복 가속화를 위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처음으로 시행했던 것이다. 곧 미국 정부는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경기부양책을 실시해 상당한 적자를 내게 되었고, 1980년부터 2019년 말까지의 경기침체기에는 GDP의 평균 4%, 그외의 경기 회복기에는 3%의 적자를 기록했다. 따라서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는 재정 "긴축"의 시대는 지속적인 부양책의 시대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모든 일에 관여하는 국가는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합작사업체로서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1987년 주가 폭락 사태 이후 공화당이 지명한 앨런 그린스펀이 이끄는 연준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금융 시장에 처음으로 공개 지원을 약속했고, 이후 10년 동안 경기 회복을 가속화기 위한 - 나중엔 회복의 장기지속을 위한 - 금리인하(금융정책)와 지속적인 부양책(재정정책)의 결합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2008년 무렵 연준은 기준 금리를 더 이상 낮출 수 없었기 때문에 공개 시장에서 수조 달러 규모의 국채와 기타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차입 비용을 낮춰주려 했다.


당국은 점차 부채를 늘려나감에 따라 시스템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위기 때마다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하도록 압박을 받았다. 이러한 파멸의 순환에 갇힌 각국 정부는 1980년대 이전 드물고 소규모였던 구제금융을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으로, 코로나 팬데믹 때에는 수조 달러의 돈뿌리기로 확대했다. 미국은 팬데믹 당시 마치 비를 뿌리듯 돈을 뿌렸는데, 기업의 크기나 위기 여부 상관없이 자금을 지원했고, 미국 국민 절반 이상인 1억7천만 명의 미국인에게 실업 여부 상관없이 수천억 달러의 현금을 퍼부었다. 현금 수령자들 중 상당 수는 연 소득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이었다.


'작은 정부' 이야기는 실제 데이터가 아닌 세간의 이야기에 근거한 것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도 감세는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보이지 않게 세금 인상이 이뤄졌기 때문에 1950년대 이후 유지되어온 GDP 대비 세금징수액 비율은 그대로였다. 또 '탈규제' 캠페인은 결국 '탈규제 의도'를 가지고는 옛 규정을 더욱 상세히 재작성하는 결과를 낳아, 대거 생긴 법적 틈새를 찾아낼 수 있는 변호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대형 은행에 유리한 것이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관료들은 총 20개의 규칙을 폐지한 반면, 매년 약 3000개의 새로운 규칙을 마치 메트로놈 박자에라도 맞춘 듯 추가했으며, 이는 민주, 공화 어느 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금융 부문 탈규제가 대형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긴 했지만, 이들의 자본은 정부와 중앙은행에서 나온 것이었다. 주식과 채권을 포함한 금융시장의 규모는 1980년에 세계 실물경제보다 약간 컸던 것이 오늘날은 거의 4배로 커졌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금융시장 붐은 정부들이 후퇴하면서 시장이 자유롭고 활기차게 운용된다는 환상을 심어주었지만, 사실 자본주의의 '금융화'를 이끈 원동력은 정부로부터 흘러나온 '이지머니' 즉 넘치는 유동성이었다.


1980년대 초에 이미 점점 고립되어가던 일군의 보수주의자들은 정부 지출이 커지면 채권이 폭락하거나 물가가 급등하는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그런 위기는 오지 않았다. 세계화는 더 많은 경쟁을 가져와 소비자 물가상승을 억제했고, 정부의 적자와 부채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는 믿음을 굳혔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취약한 기업들을 "청산해버리려는" 대공황 이전의 본능은 이후 그 반대의 과잉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유동성 공급, 유동성 공급, 유동성 공급"이 새로운 본능이 되었다. 정부가 공짜로 돈을 빌릴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을 구제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관찰자들은 최근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하면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야 했기 때문에 '이지머니'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저금리로만 정의되지 않았고 또 2008년에 와서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이 시대는 한 세기 동안 쌓여온 '빌리고 구제해주고 규제하고 부양하는' 일련의 습관을 담고 있었다. 이 시대는 이 오랜 습관들이 바뀔 때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의 새로운 지출과 트럼프의 감세가 합쳐져 경기회복을 위한 정부부양책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두 행정부가 공동으로 고안한 '모두에게 뭔가 하나씩 나눠주는' 팬데믹 구호책은 향후 위기 상황이 나타나면 익숙한 모습을 띠고 계속 반복될 것이다.

정부의 구제, 무엇이 문제인가?

자본주의의 위기는 추측도 아니고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위기는 명백히 우리 눈앞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과도하게 팽창하는 정부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인 경제성장 둔화와 분배 양극화 심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2000년대 시작 무렵, 이지머니의 영향은 평평해지는 경기순환 곡선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기침체는 점점 더 줄어들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부채 증가가 계속되고 경기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좌절감은 커져만갔다. 2010년대의 경기회복은 역사상 가장 느렸고 약했다. 차트로 보면 미국 성장률의 그래프는 마치 죽어가는 환자의 심전도처럼 보인다.


경기회복력의 약화 이면에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미스터리인 생산성, 즉 노동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의 붕괴가 있었다.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생산성은 1960년대 이후 절반 이상 감소했다. 그리고 정부 규제와 부채로 포위된 비즈니스 환경이 핵심 문제라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즉 이러한 환경 속에서 초거대 기업들이 번창하고 쓸모없는 기업들이 더욱 많이 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테크 업계의 거대 기업들이 주목을 가장 많이 받지만, 미국 산업 4개 중 3개는 서너 개의 기업이 지배하는 과점 체제로 굳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과점 기업들이 혁신을 통한 자연 과점을 이뤘다기보다는 규제 당국에 대한 로비와 경쟁사 죽이기를 통해 과점을 이뤄 번영을 구가하는 '나쁜 과점'인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지머니는 기존 부채에 대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새로운 부채를 얻어 생존하는 '좀비 기업'을 양산했다. 이 좀비는 식별 및 추적이 어렵고 추정치는 다양하지만 2000년 이전에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는데 현재는 미국의 상장기업 5곳 중 1곳이 좀비 기업이라고 한다. 좀비는 그 자체로는 약하고 수익성도 없는데도 인재와 자금을 빨아들여 동종 업계 경쟁사의 실적을 저해한다.



위로부터는 과점에 의해, 아래로부터는 좀비에 의해 압박을 받는 '중류층' 기업들은 정체되어 있다. 팬데믹의 대혼란이 일어나기 전, 미국에서 새로운 기업이 창업하는 숫자가 1980년대 초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고, 낡은 기업이 문을 닫는 숫자는 1980년 초의 3분의 2에 불과했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려면 작고 새로운 기업이 오래된 부와 권력의 집중에 도전하고 창조적 파괴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경쟁의 장이 필요하다. 오늘날 산업이 점점 더 집중되고 쇠퇴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미국 도시와 카운티가 하나의 큰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1980년 이전에는 미국인들이 주를 옮길 확률이 지금보다 두 배나 높았고, 같은 산업에서 직업을 바꿀 확률은 25% 더 높았다.


전반적으로 소득 불평등은 확대되어왔지만, 2000년 이후 이러한 추세는 더 이상 일반 근로자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의 등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소득 불평등은 구글 같은 슈퍼스타 기업의 등장 때문에 확대되고 있다. 슈퍼스타 기업에서는 상하 할 것 없이 모든 근로자들이 힘없는 다른 기업의 근로자들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계층이동성의 제한 역시 아메리칸 드림을 억누르고 있다. 영국인을 제외하면 미국인은 부모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릴 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다. 기록적인 팬데믹 구제금융으로 인해 미국의 주요 갑부들은 12개월 동안 수백억 달러의 자산이 증가했다. 그러나 계층이동성이 제한되고 같은 억만장자들이 계속 같은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적 슬로건대로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한다면, 본질적인 실패는 국가가 지원을 너무 많이 하는데 있지 너무 적게 하는데 있지 않다.

출구

정부 지도자들은 과도하게 올려진 구축물 위에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불평등을 확대하며 대중의 불신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기있는 비관론의 유혹을 피하고 활력을 되찾은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일지 한번 생각해보자.


정부가 너무 비대해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지도자들은 과거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여 현재의 미국이 어디에 서 있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 미국의 낙관주의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은 당시 정부가 더 작고 덜 적극적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되살리려면 정부가 더 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작아져야 할 것 같다. 근래의 경제위기들에서 당국은 비록 그 위협이 미미하더라도(작년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사례처럼) 또 다른 대공황을 막기 위해 (오류를 범한다면) 너무 많은 일을 너무 빨리 하는 오류를 범하는 쪽을 택하겠노라고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미국보다 국가의 구제와 규제가 더 빨랐고 생산성과 평균 소득의 성장이 더 둔화되었던 유럽에서 더 멀리 잘못된 길로 갔다. 그러나 이제 미국과 유럽이 서로 자리를 바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이든 집권 이후 미국은 재정적자와 부채가 기록을 경신하고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극단적인 예외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의 정책 입안자들은 '구제하자, 규제하자, 지출하자'라는 오랜 충동에 빠져 있으면서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는 현상유지론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더 나은 결과가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사회 전체가 아닌 시장과 억만장자만이 힘들이지 않고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정부를 제한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와 기회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자본주의의 기본이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번도 실행에 옮겨진 적이 없었다.


진정한 새출발을 위해서는 19세기의 '부실기업 청산' 주의자와 오늘날의 '이지머니' 주의자 사이에서 중용을 찾는 절제가 필요하다. 경기침체기에 당국은 실직자에 대한 구제를 확대하고, 공포로 얼어붙은 금융 시장에 자본과 신용이 계속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실험적인 끝없는 경제성장 추구는 유토피아적인 발상이며 비생산적인 조치다. 경기가 회복하고 있을 때에는 경기 부양책을 중단하고 금융 시장이 때때로 흔들릴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울 수 있도록 놔둬야 한다.


우리 지도자들은 종종 경제를 "미세 조정"이 필요한 "엔진"이라고 말하지만, 경제는 엔진보다는 자연 생태시스템과 더 비슷하며 이 시스템에 인간이 함부로 개입하려다가는 자신과 생태시스템 모두를 해칠 위험성이 있다. 당국은 더이상 100년 전처럼 진보라는 이름으로 숲과 바다를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시도한다면 저항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하지만 경제를 놓고는 이런저런 실험을 시도한다면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경제학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엄밀한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과학은 삶을 생멸(生滅)이 반복하는 변화로 설명하겠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여전히 자신이 (생만 있고 멸은 없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조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더 큰 피해를 낳기 전에 이들의 과신을 억제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인류의 발전을 위한 최고의 희망이지만, 자신의 힘을 맘껏 쓸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야만 그 희망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루치르 샤르마는 인도태생으로 저술가, 펀드매니저이며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이다. 그는 모건스탠리에서 신흥국 투자를 담당했고 현재는 투자회사인 록펠러인터내셔널의 대표이다. 그는 2012년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톱 글로벌 사상가' 중 한 명이었고, 2012년 작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은 월스트리트가 뽑은 비즈니스 부문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고, 2015년에 블룸버그마켓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명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신작 '자본주의의 문제'(What went wrong with capitalism)는 미국의 사이먼&슈스터(Simon & Shuster) 출판사와 영국의 앨런레인(Allen Lane) 출판사에서 금년 6월 11일 출간되었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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