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2 13:54
미국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쉽게 받아들여지고 널리 통용되며 열렬히 원하는 통화다. 또한 달러는 미국에게 국제문제에 대한 막강한 힘을 부여하기 때문에 욕을 먹기도 한다. 미국은 제재를 가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등 경쟁국에 대해 달러를 무기처럼 휘두르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조차도 달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미국 정책의 변동에 노출되어 있다고 불평한다. 따라서 미국의 라이벌과 동맹국 모두 달러의 지배를 끝내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국 통화를 포함한 대안을 장려하기 위해 열심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거인이 아니다. 공공 부채는 막대할 뿐만 아니라 증가하고 있으며, 워싱턴의 정책결정은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다. 채무불이행의 지속적인 위험성은 미국 국채가 안전하다는 인식을 약화시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몇 년간 미국의 민주적 제도를 무너뜨린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법치주의, 독립적인 연방준비제도, 견제와 균형 시스템 등 달러 강세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따라서 달러가 빠르게 힘을 잃고 있더라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달러 약세를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흐름들은 대부분 미국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도, 이런 흐름들로 인해 오히려 달러의 글로벌 지배력은 강화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미국 경제의 규모와 역동성이 다른 주요 경제에 비해 크기 때문에 달러가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미국의 제도가 약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부상하는 등 다른 나라의 제도는 더 나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 및 지정학적 혼란은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심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며, 투자자들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통화인 달러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금융 시장은 다른 나라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 달러 자산을 더 쉽고 저렴하게 사고 팔 수 있다.
달러는 세계경제 및 지정학적 힘의 변화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그러나 달러가 어느 정도 입지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와 다른 경쟁국과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인도는 주요 경제 강국이 되었지만, 그들의 통화는 자국 밖에서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의 글로벌 위계질서가 변화하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의 대부분은 경쟁 통화들을 약화시켜 달러의 상대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세계경제나 국제정세의 혼란은 미국의 정책 실수로 인해 촉발되거나 악화되는 경우에도 대안 통화에 대한 달러의 강세를 강화할 뿐이다. 당분간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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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졌지만 여전한 가치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달러는 계정 단위, 교환 수단, 가치 저장수단 등 모든 면에서 넘버원 국제통화였다. 보수적으로 추산하더라도 현재 모든 국제무역의 절반 이상이 달러로 표시되며, 이는 다른 어떤 통화보다 훨씬 많고 세계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약 11%)보다 훨씬 높다. 달러는 주요 송장 발행 통화이자 가장 많이 결제되는 통화로, 모든 국제 결제의 약 절반이 달러로 결제된다. 중국 기업이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수입하거나 브라질 기업이 중국에서 반도체를 구매하는 경우, 이러한 거래는 거의 대부분 브라질 헤알화나 중국 위안화가 아닌 달러로 송장을 발행하고 대금을 지불한다.
달러는 또한 주요 글로벌 준비 통화로, 전 세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의 59%가 달러 표시 자산, 즉 액면가와 가격이 모두 달러로 표시된 자산으로 보유되고 있다. 그 비중이 큰 데에는 이유가 있다.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의 비상 자금 역할을 한다. 수입 대금을 지불하거나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할 때 이를 보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신흥시장 국가의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불안정한 자본 흐름으로부터 경제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안전하고 유동적인 자산으로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대량으로 공급되고 항상 수요가 있어 최소한의 거래비용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달러 표시 자산을 구매하게 된다.
그리고 달러는 여전히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주요 자금 조달 통화로 사용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기업이나 정부가 이러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고 할 때, 그들은 일상적으로 외화로 차입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일반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해당 국가의 자국 통화 가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달러로 상환받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유럽 기업과 은행도 달러로 자본을 조달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달러가 넘쳐나면서 더 저렴하고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자국 밖에서 발행하는 주식의 3분의 2가 달러로 표시되어 있다.
이렇게 달러를 선호하는 다양한 동기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외국 중앙은행의 미국 재무부 채권에 대한 수요는 미국 정부의 차입금 조달에 도움이 되며, 미국 금리를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한다. 이는 다시 외국 정부, 기업, 금융기관이 달러로 차입하는 데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국제무역에서 달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 달러로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영란은행과 유럽중앙은행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로부터 달러를 차입했다.
그러나 그 위기 이후 달러는 점점 더 위험한 자산이 되었다. 미국은 여전히 역동적이고 탄력적인 경제이지만 2024년 말에는 연방 공공부채 총액이 연간 GDP의 약 125%에 달하는 35조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보이며, 의회는 지출을 억제하거나 세금을 인상할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미국 정부가 부채 의무를 벗어던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엄청난 부채 규모에 더해 단기 채무불이행의 위험성까지 겹치면서 S&P와 피치 같은 신용평가 기관은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달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정치의 인질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달러의 안정적인 장기 가치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믿음의 보루인 법치와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은 타격을 입었다.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너무 취약하고 제도밖의 불문율에 의존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은 달러에 대한 신뢰를 재평가하고 대안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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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란, 북한, 러시아의 달러 거래와 국제 금융시스템 접근을 금지함으로써 달러의 위상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모스크바의 달러화 외환보유액를 동결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가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으로 정당화되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중앙은행들은 자국 정부가 미국과 대립할 경우 달러 표시 외환보유액이 동결될지 여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거짓 예언자들
그러나 달러의 종말에 대한 예측은 달러의 약세를 크게 과장했으며, 이러한 과장은 달러가 보여준 놀라운 내구력을 통해 분명해졌다. 분석가들은 수년 동안 달러가 다른 통화에 밀릴 것이라고 경고해왔지만, 아직까지 다른 통화가 달러를 대체한 사례는 없다. 1999년 출범 당시 달러의 독보적인 권력의 종말을 알리는 것처럼 보였던 유로화를 생각해 보자. 유로존은 경제 및 금융 시장 규모 면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권이었다.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있었고 회원국들은 전반적으로 법치를 따랐다.
처음에는 유로화가 결제 및 준비 통화로서 달러의 점유율을 잠식했다. 2009년까지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유로화의 비중은 2000년 18%에서 28%로 증가했고, 달러화의 비중은 그에 상응하는 만큼 감소했다. 하지만 그해 말 유로화의 행진이 멈춰 섰다. 유럽 정부들은 통화동맹을 더 광범위한 경제 및 금융동맹으로 전환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이들 정부가 유로존 기관에 더 많은 권한을 넘기고 국내 정책에 더 큰 제한을 감내할 수 있어야 했다. 2009년 유로존 부채 위기는 통화동맹의 경제적, 정치적 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후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화되어 현재는 20% 이하로 떨어졌다.
중국 위안화도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2010년에 중국은 자국 통화의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세계경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 노력은 빠르게 확대되었다. 5년 전만 해도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전 세계 무역 거래의 약 3%가 2015년에는 위안화로 이루어졌다. 중국 기업들은 홍콩과 기타 금융 시장에서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여 언젠가는 달러에 도전할 수 있는 주요 통화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 위안화도 멈춰섰다. 중국 경제와 주식 시장은 2014년과 2015년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자본이탈이 급증했고 위안화는 가치를 잃었다. 중국은 자본의 해외 유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대응했는데, 이것이 외국인 투자자들을 겁먹게 했다. 이후 글로벌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은 소폭 증가했지만 중국이 직접 관여하는 무역에만 국한되었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정체되어 3% 미만에 머물러 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이 통제를 강화하고 중대한 경제개혁을 피하는 등 중국 경제가 비틀거리면서 외국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위안화 표시 자산을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국가들은 달러의 지위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학자 배리 아이켄그린이 관찰한 것처럼 최근 몇 년 동안 호주 달러, 스웨덴 크로네, 인도 루피 등 일부 소규모 기축통화가 경제 및 지정학적 요인에 힘입어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통화는 여전히 글로벌 금융에서 제한적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며, 주로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와 같은 전통적인 기축통화를 희생시키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달러는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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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화폐
일부 정치인과 분석가들은 각국이 법정화폐를 넘어 금과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대체 "안전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과 암호화폐는 모두 공급이 희소하기 때문에 무한정 생산할 수 있는 기존 통화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희소성만으로는 지속적인 가치를 보장할 수 없다. 일부 중앙은행이 금을 축적해 왔지만, 금의 변동성이 크고 대량의 금을 사용가능한 통화로 전환하기 어렵기 때문에 안전자산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어떤 중앙은행도 전적으로 투기적 성격이 강한 암호화폐에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쩌면 테크놀로지가 정부가 할 수 없는 일, 즉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비트코인과 기타 암호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하는 공식 통화의 자유지상주의적 대안으로 부상했다. 일부 정부도 디지털 화폐를 수용하고 있다. 중국, 인도, 일본에서는 이미 공식 통화의 디지털 버전을 테스트하고 있으며, 디지털 유로화도 곧 출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가치 변동성이 크고 거래 수수료가 높으며 대량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 제한되어 있어 결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법정통화 보유고의 뒷받침을 받아 안정적인 가치를 갖는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새로운 암호화폐는 국내 및 해외 결제에서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달러로 뒷받침되는 스테이블코인만이 실질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통화로서 달러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을 뿐이다.
디지털 위안화의 도입이 중국 통화의 부상을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는 근거가 없다. 대부분의 국제 결제는 이미 디지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자국 통화를 국경 밖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외환 시장에서 위안화 가치를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러한 통제를 완화한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위안화를 널리 사용하고 보유하기 전에 법치주의와 국가의 각 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대대적인 정치 개혁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버티는 힘
달러 종말론자들은 여전히 달러가 곧 하락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가 얼마나 빠르게 파운드화를 대체하여 주요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는지를 예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황은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은 경제 규모와 금융 시장 규모를 합쳐도 그에 맞먹는 심각한 경쟁자가 없다. 미국의 제도도 악화되었지만 다른 주요 국가들의 제도는 훨씬 더 열악하다.
다른 요인들도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혼란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달러의 안전성을 추구하면서 달러의 입지가 더욱 강화되었다. 미국 투자자가 해외에 보유한 금융자산보다 외국인 투자자가 미국에 보유한 금융자산이 더 많다는 것은 미국이 전 세계에 대한 순채무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부채는 달러로 표시되어 있으며,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달러의 안전성에 대한 대가로 낮은 수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반면에 미국 투자자들은 대부분 외화로 표시된 해외 자산에 기꺼이 투자해왔는데, 이는 해당 자산이 더 위험하더라도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달러화를 외면하고 다른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 해외에 있는 미국 자산의 가치가 달러화 환산시 더 크게 된다. 외국 통화 한 단위가 더 많은 달러화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국인은 달러 표시 자산을 자국 통화로 다시 환산할 때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여 타격을 입게 된다. 다시 말해, 달러 가치가 급락하면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막대한 금전적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무서운 시나리오를 고려할 때, 전 세계 국가들은 당연히 "달러의 덫"에 대한 노출을 줄여야 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2014년부터 2024년 초까지 미국의 대외 부채는 30조 달러에서 51조 달러 이상으로 증가한 반면, 미국의 자산은 24조 달러에서 33조 달러로 증가했다. 즉, 미국은 2014년에 전 세계에 6조 달러의 순채무를 지고 있었던 것이 지난 10년 동안 그 금액이 18조 달러로 3배 증가했다. 이제 미국은 전 세계에 대해 더욱 강하게 '목 조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가 약세가 아닌 강세를 보이는 또 다른 예는 1969년 국제통화기금(IMF)이 회원국을 위한 추가 준비금 역할을 위해 만든 인공통화 SDR(특별인출권)의 가치 결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9년부터 2015년까지 SDR의 가치는 달러, 유로, 영국 파운드, 일본 엔 등 4개 주요 통화의 가치에 연동되었으며, 각 통화는 그 가치를 결정할 때 특정 가중치를 가졌다. SDR "바스켓"에 포함된 통화의 가중치는 해당 국가의 GDP,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 해당 통화로 보유한 글로벌 외환보유액의 비중을 고려한 공식에 따라 결정된다. 가중치를 모두 합치면 100이다.
중국의 경제력 상승을 반영하기 위해 IMF는 2016년에 중국 위안화를 SDR 바스켓에 추가했다. 공식에 따라 위안화는 바스켓에서 10.9%의 비중을 할당받았는데, 이에 따라 다른 통화들의 비중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비중감소분의 거의 전부가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에서 나왔고 달러의 비중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가장 큰 손해를 본 통화는 유로화로, 바스켓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7%에서 31%로 줄었다.
IMF는 공식에 포함되는 변수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5년마다 가중치를 조정한다. 2022년에 발효된 최신 개정안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가 계속 발전함에 따라 위안화의 비중이 12.3%로 상향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달러는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달러의 비중은 43%로 2%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유로화의 비중은 29%로 줄어드는 등 다른 세 통화는 약세를 보였다.
혼란 속 오히려 부각되는 안전성
경제 및 지정학적 요인들로 인해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하려는 중앙은행의 욕구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러가 여전히 너무 강력하고 세계 경제에서 너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각국이 다른 통화로의 전환을 고려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 대안적 통화의 결제 및 준비 통화로서의 지위가 약화되어 더더욱 전환이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미국은 거의 모든 다른 나라보다 더 크고 역동적인 경제를 자랑한다. 중국이 언젠가는 미국의 경제력과 경쟁하게 될지 몰라도 미국과 경쟁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제도적 틀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미국이 지나치게 돈을 많이 써 달러의 위상을 손상시킬 수 있다. 시장이 미국 공공 부채의 수준과 궤적이 지속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전환점이 있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여 국채의 가치를 낮추는 것을 두려워하는 국내외 투자자들은 미국 재무부 채권을 버릴 수 있다.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와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 훼손은 미국 금융시장과 달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혼란은 달러에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및 지정학적 혼란은 비록 그것이 미국에 의해 촉발되더라도 전 세계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찾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미국 금융 시장은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히 큰 유일한 시장이다.
물론 미국 정치인들은 다른 나라의 경제 및 제도적 취약성에 의존하는 대신 자신의 카드를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달러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정부 부채를 억제하는 절제된 재정 정책을 포함하여 성장과 금융 안정을 촉진하는 경제 정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금융 제재를 보다 신중하게 사용하면 달러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달러에 대한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강점보다는 미국 밖 세계의 약점에 대한 이야기다. 이러한 불균형이 바뀌기 전까지는, 미국이 아무리 나쁜 카드를 사용하더라도 달러의 힘이 약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시길.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코넬대학교의 무역정책 교수이며,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저서로 '화폐의 미래: 디지털혁명이 화폐와 금융을 어떻게 바꿀것인가'(The Future of Money: How the Digital Revolution Is Transforming Currencies and Finance)가 있다.
달러 패권은 미국에게 빛과 그림자를 함께 주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정부로서는 종이로 돈을 찍어 마음대로 써도 국내에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지 않아서 좋을 겁니다. 전 세계가 달러를 함께 쓰니 인플레이션 압력이 전 세계로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가 달러를 쓴다는 이야기는 달러가 미국 밖으로 유출된다는 것이고 달러가 유출되려면 무역수지는 적자여야 합니다. 달러 패권에는 늘 무역적자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무역적자는 제조업 기반을 위협합니다. 미국 연방정부에겐 좋지만 제조업을 하는 기업가와 노동자에겐 좋지 않습니다. 이것이 달러 패권의 딜레마입니다. 달러 패권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요? 우리는 보통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힘을 이야기 합니다만, 달러 패권의 배경에는 다른 중요한 요소도 있다는 것이 2024년 7/8월 포린어페어스의 이 기사가 지적하는 바입니다. 즉, 미국의 정치, 경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다른 나라들의 정치, 경제가 좋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달러가 강세라는 것입니다. 달러 패권에 도전했던 유로화, 위안화 모두 이런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유로화는 유럽국가들이 단일한 통화금융 거버넌스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리고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 안정적인 법치와 함께 제도적 견제와 균형이 오히려 후퇴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원화는 언제쯤 일본 엔화 정도는 아니라도 호주 달러 정도의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까요? 기축통화가 된다면 금융정책에서 좀 더 운신의 폭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으시면서 통화 패권과 기축통화의 메커니즘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