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

음악은 소리 그 이상이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은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을 중심으로 긴 시간 돌고있는 시각적 기술적 디자인의 은하계를 탐험한다.

기사이미지

Milton Glaser, <Dylan Poster>, 1967,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gift of the designer; © Milton Glaser, permission of the estate of Milton Glaser; photo: Tenari Tuatagaloa

2024.07.26 14:41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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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플루트 음악은 좋았다. 하지만 지난 2월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의 전시《노이즈의 미술 Art of Noise》개막 행사에서 숨죽여 연주를 듣는 관객들에게 부드러운 숨소리가 섞인 플루트 음계는 경험의 일부에 불과했다.


플루티스트(참고로, 연주자는 래퍼 안드레3000이었다)가 입은 화려한 색상의 의상도 관객들에겐 체험이었다. 선명한 사운드의 스피커들도 체험이었고, 스모크머신(연무효과 장치) 또한 체험이었다. 무대 중앙에 놓인 트래픽콘 (교통 통제용 원뿔) ― 안드레3000은 트래픽콘에 점차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 위에 균형을 잡고 있는 물잔에 두 개의 레이저가 통과하는 장면도 체험이었다.


음악은 음악이다. 하지만 음악은 또한 그것을 둘러싼 것들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5월 4일부터 8월 18일까지 음악의 저궤도에서 따온 시각적 기술적 유물들의 전시를 통해 이 자명한 진리를 실증할 것이다.《노이즈의 미술》은 초기의 음악 청취기구에서부터 최첨단의 스피커 그리고 상징적 앨범 커버를 포함하여 800점 이상의 전시물을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느슨하게 분류하여 전시한다. 이 외에도, 네 개의 사운드 설치작품들은 그들만의 예술적인 노이즈를 생성해낸다. 그러나 전시의 진짜 주제는 바로 우리와 음악의 관계일지 모른다.



Mathieu Lehanneur, <Power of Love>, 2009;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Accessions Committee fund purchase; © Mathieu Lehanneur; photo: Don Ross

Mathieu Lehanneur, <Power of Love>, 2009;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Accessions Committee fund purchase; © Mathieu Lehanneur; photo: Don Ross


베토벤의 5번 교향곡,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 콜트레인의 '버드랜드 라이브' 앨범을 생각해 보자. 이들 자체는 우리의 고막을 가로질러 진동하는 공기 입자들에 불과하다. 음악은 어떻게보면 그것이 영감을 불어넣는 물질문화를 통해 신성해진다.


그리고 음악이 디자인의 형상을 빚는 것처럼 ― 재즈 앨범 커버와 메탈 앨범 커버를 비교해보라 ― 디자인 또한 음악을 듣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설정한다. 펑크 공연을 알리는 낡은 전단지 복사물에는 이 음악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한 정보가 있다. 이젠 아이콘이 된 맥셀 카세트 테이프 광고에는 록의 정신을 담은 기호들이 숨어있다.


전시는 흥미로운 시점에 열린다. 지금껏 음악이 이토록 듣기 쉬운 ― 어쩌면 무시하기 쉬운 ― 시절도 없었다. 사실상 어떤 음원에도 쉽게 디지털로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음악과 우리의 연결은 오히려 약해졌다. 카세트 하나를 애지중지하며 수개월동안 반복해 들으면서, 손가락 끝에 되감기 버튼의 윙윙거리는 진동의 기억이 깊이 각인되는 그런 몰입의 경험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짐은 성찰에의 초대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렀는지를 이해하고,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것들이 펼쳐질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미술이 음악을 만나다


Lee Conklin, <Canned Heat and Gordon Lightfoot at the Fillmore West, October 3–5, 1968>, 1968,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gift of Jim Chanin; © Wolfgang's Vault; photo: Don Ross

Lee Conklin, <Canned Heat and Gordon Lightfoot at the Fillmore West, October 3–5, 1968>, 1968,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gift of Jim Chanin; © Wolfgang's Vault; photo: Don Ross


Bonnie MacLean, <The Yardbirds and The Doors at the Fillmore Auditorium, San Francisco, July 25–30, 1967>, 1967,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gift of Jim Chanin; © Wolfgang's Vault; photo: Don Ross

Bonnie MacLean, <The Yardbirds and The Doors at the Fillmore Auditorium, San Francisco, July 25–30, 1967>, 1967,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gift of Jim Chanin; © Wolfgang's Vault; photo: Don Ross


"미술은 우리가 공간을 장식하는 방법이고 음악은 우리가 시간을 장식하는 방법이다." 쟝-미셸 바스키아가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미술이 음악을 장식하기도 한다. 이는 샌프란시스코의 사이키델릭 록 포스터의 전성기 시절 환각적 몽환의 분위기 속에서 어느 때보다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


여기 자유롭고 야성적인 석판화들로 채워진 네 면의 밝은 벽들은 합쳐져 이성을 마비시킨 시대에 바쳐진 작은 신전이 되었다. 아르누보 스타일과 환각 상태의 황홀경 그리고 그 너머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이 포스터들은 곧 열릴 공연 소식을 전하기 위해 존재했다. 전시장 다른 쪽에 자리한 우주 시대의 스테레오와 빈티지 헤드폰이 그랬듯, 포스터들도 음악을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빌 그레함 같은 공연 홍보회사가 록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의 다가오는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포스터 작가에게 작업을 의뢰하면 일 주일 후 짜잔! 하고 작품이 나왔다. 광고로서는 글자를 읽기가 어려워 문제였지만 ― 이는 당시 문화적으로 고루하고 보수적인 소위 '꼰대'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했다 ― 못본 체 그냥 지나치기는 더 어려운 포스터였다.


언젠가 록 포스터 작가 빅토르 모스코소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뮤지션들은 고막을 찢어버릴 정도까지 앰프를 크게 튼다. 나는 눈의 망막에 그런 일을 한 것이다."


금문교처럼 이 60년대 록 포스터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를 대표하며 숱하게 모습을 드러내 왔다. 그러나 역시 금문교처럼 이들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란하게 구부러진 선들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포스터마다 예기치 않은 다양성이 있는 것이다. 모든 상상할 수 있는 색을 품은 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바짝 붙여져 있는 수백 장의 포스터들을 바라보면, 더 큰 무엇인가가 뚜렷이 초점에 잡힌다. 그것은 음악이 한 미국 도시를 고유의 새로운 예술 장르 속에 도배시킨 순간이다.



에너지를 느끼며


Devon Turnbull, <HiFi Pursuit Listening Room Dream No. 1>, 2022; courtesy Devon Turnbull/Lisson Gallery; photo: Michael Lavorgna, twitteringmachines.com

Devon Turnbull, <HiFi Pursuit Listening Room Dream No. 1>, 2022; courtesy Devon Turnbull/Lisson Gallery; photo: Michael Lavorgna, twitteringmachines.com


몇년 전 데본 턴불은 자신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농 드 게르Nom de Guerre'의 대중적 인기로 한창 명성을 떨치던 중에 뭔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첫사랑은 단연코 음악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등장한 주머니 속 아이팟으로 인해 자신이 너무 가벼운 청취자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턴불은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어렸을 때만큼 음악에 대해 의미있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좀더 깊은 연결을 원했다"고 말했다.


오디오 엔지니어로 교육을 받은 턴불은 새로운 사운드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그가 원하는 깊은 연결을 되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추구하는 일이었다. 턴불은 오자스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익히 알려지지 않은 희귀 부품들을 일본으로부터 조달하면서, 브루탈리즘 1스타일 외관의 앰프와 스피커들을 만들었고 곧 광적인 애호가들이 생겨났다. 원음 재생에서 완벽한 고품질은 아니었지만 관계 없었다.


"내가 오디오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방식은 대부분의 하이엔드 오디오 제작자들이 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나는 더 감성적인 콘텐트를 전달하는 기기를 만들고자 하는데, 그것이 꼭 더 나은 사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턴불은 말했다.


이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된 공간 <하이파이 지향 음악감상실 드림 넘버2 Hi-Fi Pursuit Listening Room Dream No 2>에서 관객들은 바로 그 감성적 콘텐츠에 빠져들 수 있다. 단독 갤러리에 배치된 이 자그마한 공간은 극히 절제된 장식으로 우주선 같은 분위기를 내지만, 음악을 들어보라. 다양한 장르로부터 형용할 수 없이 깊고 자연스러운 청음을 향해 결을 맞춰 선택된 곡들이 LP판과 릴투릴 테이프를 통해 흐른다. 턴불이 말하듯 마치 뮤지션의 "에너지가 바로 그 방에 실재하는 것" 같다.


"턴불은 스피커를 만든다기보다 귀를 만드는 것 같다." SFMOMA의 건축 및 디자인 담당 차석 큐레이터이자《노이즈의 미술》큐레이터인 죠셉 베커의 말이다.



영원한 노래


Teenage Engineering, <choir>, 2022; © teenage engineering

Teenage Engineering, <choir>, 2022; © teenage engineering


음악과 디자인이 강렬하게 만나 제스퍼 코투프드를 완전히 매혹시킨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이 젊은 스웨덴 청년은 소니 워크맨이라는 문명의 도약과, 좋아하는 음악을 휴대할 수 있게 만든 그 놀라운 능력을 목격했다. 어느날 갑자기, 마치 꿈이 현실이 되듯, 독일 전자음악 그룹 크라프트베르크가 함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거의 반 세기 후 코투프드는 음악과 디자인으로 다른 사람들을 매혹시키면서 먹고 산다. '틴에이지 엔지니어링'은 그가 공동설립한 가전제품 회사로 초현대적 신시사이저와 스피커, 다른 오디오 기기를 만든다. 몇년 전 이 회사는 나무 인형 모양의 여덟 개의 스피커 세트 '콰이어Choir'를 출시했다. 이 스피커 세트는 일종의 알고리즘에 따라 프로그램된 합창을 만들어낸다. 이 인형들이 작은 미디어 갤러리에 전시되어 그야말로 이발소 음악에서 바로크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힘차게 뿜어내고 있다. 이 로봇 합창단은 블루투스를 통해 자신의 노래를 듣고, 대위법 선율로 마디 마디 독창적인 즉흥곡을 창작한다.


코투프드는 전화 인터뷰에서 "예전에 스웨덴에서는 모든 집에 TV 대신 오르간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악기는 교회 오르간이었다. 내겐 오르간 소리가 마치 신의 목소리 같았다. 두번째로 좋아했던 것이 합창이었는데, 합창도 오르간과 느낌이 비슷했다."고 회상했다.


모든 종교는 그들만의 소리풍경을 갖는다고 코투프드는 덧붙였다. 이 소리풍경은 더 나아가 그 자신만의 이상한 종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사운드 온 사운드 2


Yuri Suzuki, <Arborhythm>, 2024;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purchase, by exchange, through a gift of Peggy Guggenheim; © Yuri Suzuki; photo: Don Ross

Yuri Suzuki, <Arborhythm>, 2024;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purchase, by exchange, through a gift of Peggy Guggenheim; © Yuri Suzuki; photo: Don Ross


홀로 두드러져 보이는 작품이 하나 있다. 말 그대로 다른 작품들과 떨어져 미술관 이층 실외 난간에 설치된 작품이다. 높고 낮은 사무실 건물들이 뒤섞여있는 좁은 나토마 거리를 배경으로, 마치 몇 묶음의 나무들이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이 천연색 금속 튜브들이 스피커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일본 아티스트이자 뮤지션인 스즈키 유리에게 샌프란시스코의 현장에서 녹음된 소리들 ― 교회 종소리, 뱃고동 소리, 케이블카의 철커덩 소리 등 ― 을 리믹스하여 샌프란시스코 자체를 사운드트랙으로 표현해 줄 것을 의뢰한 것이다(사운드 조각에 관심이 큰 사람들이라면 샌프란시스코의 선구적인 사운드 아트 극장 오디움을 떠올릴 것이다). 이 작품은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비슷한 파형을 가진 소리들의 레코딩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찾아 이들을 혼합하여 진화된 형태로 빚어낸 것이다.


어떤 도시의 소리풍경을 음악이라 할 수 있을까? 잠깐만, 도대체 음악이란 무엇일까? 당신은 가만히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앉아 신선한 바깥 바람을 즐기며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도시의 소리를 흉내내 섞어놓은 것들(자동차 소리, 사람 목소리, 어딘가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과 바로 당신의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실제 도시의 소리(자동차 소리, 사람 목소리, 어딘가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뒤섞인다. 노이즈의 혼란 속에서 시공의 좌표가 사라진 듯한 명상의 시간이 작품 <아보리듬 Arborhythm>을 에워싼다.


그렇게 당신은 더 깊이 듣는 일에 집중한다. 만일 이곳이 여정의 종착지라면 ― 이것이 전시의 최종 목표라면 ― 참으로 조화로운 결말이 될 것이다.



필자 크리스 콜린(Chris Colin)은 저널리스트, 작가, 음악가로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음악프로듀싱도 하고 있다.


역자 음해린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후 시각예술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1825년 창간된 미국의 진보 성향 일간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퓰리처상을 수상(130회 이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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