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해방된 시리아에 민주주의 대신 이슬람주의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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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반군 HTS의 무장대원이 쫓겨난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벽화 앞에 서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2025.02.14 17:08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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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는 이스라엘, 요르단,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로 둘러쌓인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주변 국가들이 관여하고 싶어 하는 나라입니다. 아사드 가문이 장기 독재를 펼치다가 갑자기 러시아로 도망가고 이제 HTS라는 이슬람주의 반군세력이 정권을 차지했습니다. 전 세계가 이란같은 또 하나의 이슬람주의 정권이 등장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27일자 포린어페어스 기사는 시리아의 새 정권이 민주주의를 채택하진 않을 것 같다고 예상합니다. HTS의 지도자는 양복을 입고 서방이 보더라도 세련된 레토릭, 매너,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정권이 실제 펼치고 있는 것은 HTS 일당의 배타적 권위주의입니다. 특히 권력 기관들을 장악해나가고 있습니다. 당장 치를 것 같았던 선거도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HTS 지도자 알샤라는 공식 석상에서 한번도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신봉하는 살라피 이슬람교는 신정(神政) 즉 종교그룹의 소수파 통치를 추구합니다. 다만 이들의 후원세력으로 튀르키예(터키)의 집권 정의개발당이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뒤를 따른다면 이슬람주의 색채는 가지면서도 어느 정도 세속적 정치체제를 추구할 것 같지만, 내전으로 완전히 파괴된 시리아에는 튀르키예처럼 독재를 견제할 시장이나 시민사회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가로의 권력 집중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또 하나는 아직 HTS 이외의 반군 세력, 즉 군사조직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쿠르드족이 주도하는 시리아민주군(SDF)입니다. 이 조직은 미국이 후원자입니다. 따라서 미국과 쿠르드족의 시리아민주군이 HTS와 협상을 통해 좀 더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정치체제로 견인할 여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새로운 시리아의 앞날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시리아가 중동의 이웃국가들과 다투지 않고 종교적 열정보다는 세속적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압제 끝에 아사드 가문의 시리아 통치는 종말을 맞았다. 시리아 국민들은 이를 축하할 충분한 권리가 있지만, 그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최종 축출은 갑작스러워 보였지만, 그 뿌리는 2011년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에 있었다. 이제 시리아인들은 아랍의 봄 혁명 이후 다른 아랍 국가들이 겪었던 문제들과 유사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랍의 봄 혁명과 그 이전의 중동 혁명들은 세속 민족주의자, 학생, 지식인, 좌파 활동가 등 다양한 사회 세력이 주도했지만, 거의 모든 경우 결국엔 이슬람주의 세력에게 장악당했다. 그리고 이들은 정치적 권위주의를 타도하고 종교적 권위주의를 세웠다. 이슬람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조직력이 뛰어나고, 지도부가 유능하며, 규율이 있었다. 이는 권력 공백 상태에서 중요한 장점이었다.


아사드는 자신의 몰락을 늦추려 잔혹한 탄압을 가했지만, 이는 오히려 시리아를 또 다른 강압적 통치에 더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다. 14년간의 내전 동안 수백만 명이 빈곤과 기근으로 내몰렸고, 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은 시리아를 민족·종파 간 갈등으로 더욱 분열시켰으며, 외세의 개입으로 영토가 쪼개지고 각축장이 되었다. 아사드 정권의 악명 높은 공안기관들이 붕괴하면서, 수만 명의 실종된 가족과 친구들을 찾는 일이 시리아인들에게 남겨진 과제가 되었다. 전쟁의 상처가 깊은 시리아는 더 이상 단일 정당이 지배하는 정부를 가져서는 안된다.


새롭게 부상한 통치 세력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은 기존과 다를 것이라는 약속으로 외부의 기대를 모았다. HTS는 보수적인 살라피-이슬람주의 조직이지만, 다마스쿠스 장악을 위해 취지에 동의하는 이슬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군과 함께 이들립 지역을 장악하고 있을 때 HTS의 지도자는 '아부 모하메드 알-자울라니'라는 전시(戰時) 가명을 사용했으나, 이제는 평시 이름인 '아메드 알샤라'로 이름을 바꾸고 군복 대신 정장을 입었다.


그러나 HTS가 포용적 태도를 버리고 단일 정당 중심의 이슬람주의 통치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불안한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어 온 패턴이다. 이를 깨뜨리려면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며, 그 중심에는 시리아인들이 있어야겠지만 외부 세력의 역할도 요구된다.


간격에 주의하라

지난 12월 반란에 대한 언론 보도 대부분은 이를 시리아 아랍의 봄이 미완으로 남겼던 과업을 완수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아사드의 축출로 아랍의 봄 시위대가 싸웠던 목표가 달성된 것은 아니다.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시아파) 출신인 아사드는 자신의 정권이 민족·종교적 소수자를 보호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아사드는 시리아 전 국민을 탄압하며 이 아름다운 나라를 파괴했다. 아랍의 봄을 이끌었던 민족주의자, 인권운동가,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국제적 감각을 가진 수니파였는데, 이들은 HTS의 엄격한 이슬람 해석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종교적 통치가 아니라, 모든 시리아인을 위한 평등한 국민적 권리였다.


12월 권력을 장악한 이후, 알샤라는 포용적이고 온건한 통치를 하겠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외교전을 펼쳤다. 그는 서방 및 중동 국가들과의 연쇄 회담에서 새로운 시리아가 주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HTS가 국내 평화 회복, 국가 재건, 황폐해진 경제 성장과 자유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또한 다른 이슬람주의 정권과의 거리를 분명히 하며 "국가운영의 논리는 혁명의 논리와 다르다"며 시리아가 아프가니스탄과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과 종교적 소수자를 보호하고, 아사드 지지자들에 대한 보복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0년 만에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한 미국 고위 외교관은 알샤라가 "실용주의자로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안심시키는 말과 실제 정책 사이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12월, 알샤라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리아인들과 협의해 과도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최근 이를 철회했다. 시리아의 법 체계를 재정비하고 인구 조사를 완료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새 헌법 초안 작성까지 최대 3년, 선거 실시까지 4년이 걸릴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 사이 HTS는 핵심 안보·경제·사법 기관들의 장악을 기정사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12월 10일, 알샤라는 자신의 측근인 모하메드 알바시르를 임시 총리로 임명하고 3월까지 직을 맡도록 했다. 바시르는 HTS의 주요 거점이었던 북부 이들립에서 활동했던 인사들로 내각을 구성했으며, 국방·정보·경제·외교 등 핵심 부서의 장관직에는 특히 신뢰하는 인물들을 배치했다. 주요 도시의 행정권은 충성도가 높은 무장 이슬람주의 조직인 '아흐라르 알샴' 출신 인사들에게 맡겼다. 결국 HTS는 과거 이들립에서 운영하던 체제를 다마스쿠스로 옮겨오면서, 세속주의자와 온건한 종교 세력은 철저히 배제했다.


튀르키예(터키)의 지원을 등에 업은 알샤라는 일부 반군 세력을 무장해제시키고 이들을 과도정부의 국방부에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단독으로 50명의 강경 이슬람주의 지휘관을 군 고위직에 임명했으며, 이들 중에는 중국, 이집트, 요르단, 타지키스탄, 튀르키예 출신 외국인 전사들도 포함됐다. 새 시리아군이 국가의 이슬람주의 정체성을 지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신호는 분명하다. 국방부는 신병 훈련 과정에 21일간의 샤리아(이슬람 율법) 교육을 의무화했으며, 군의 목표는 "하나의 손처럼 움직여 우리의 종교를 섬기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알샤라는 12월 혁명이 모든 시리아인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와 그의 이슬람주의 연합 세력은 자신들만이 아사드를 몰아냈고, 그에 따른 이익도 독점할 수 있다는 듯 행동하고 있다. 세속 민족주의자들과 활동가들은 새 정부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으며, 그 정도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HTS가 아직 아사드 지지 세력에 대한 대규모 보복 학살을 벌이진 않았지만, 시리아 인권 단체들과 지역 주민들은 알라위파에 대한 즉결 처형과 실종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전히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강력한 반대 세력도 존재한다. 쿠르드족이 주도하는 시리아민주군(SDF)은 HTS가 보다 투명하고 포용적인 통치를 향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과격한 파벌들

HTS의 최고 지도부는 자신들이 알카에다(HTS는 알카에다의 분파였다)와 결별했다고 주장하지만, 살라피 이슬람주의에 대한 신념을 공식적으로 철회한 적은 없다. 살라피즘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엄격한 적용이 안정적인 정치 질서의 기초라고 가르친다. 서방 관리들과의 회담을 위해 어떤 말을 하든, HTS 지도부가 국민의 의지를 정당한 정치 권력의 근원으로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


물론 이것이 HTS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처럼 극단주의 정책을 그대로 따르거나, 이라크·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학살과 탄압을 모방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알샤라는 "탈레반은 부족적인 사회를 통치했지만, 시리아는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HTS는 종교적 극단주의를 억제하는 듯한 조치를 통해 외부의 환심을 사면서, 동시에 정치적 권위주의를 탈색하고 감추려 했다. 야심 차고, 계산이 치밀하며, 유연한 알샤라는 이념적 순수성보다 권력 공고화를 우선시하며, 오합지졸 같았던 무장 조직을 훈련된 준(準) 전문적 군사 조직으로 바꿔냈다. 이들립에 있을 때, 그는 HTS 내부에서 평전사들이 주축인 강경파와 실용주의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듯 보였지만, 종종 실용주의자들 편을 들었다. 그는 실용주의적 전략의 실행을 위해 철권 전술을 사용했다. 알샤라는 HTS의 과격성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펼쳤으나, 내부의 강경파를 처형하거나 투옥시키는 권위적 방식으로 진행했다.


알샤라의 지도 방식은 보수적 수니파 이슬람주의, 바트당 이전 시기의 시리아 민족주의, 전문관료적 실용주의가 결합된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튀르키예의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이념적 기반과 유사하다. HTS는 튀르키예를 동맹이자 발전 모델로 삼고 있으며, 이미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들이 알샤라를 지원하며 그의 권력 강화를 돕고 있다. 외부 세력 중에서도 튀르키예가 시리아의 향후 방향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새로운 다마스쿠스 정부의 정당성은 이슬람과 다수결에 대한 살라피식 해석에 기반할 것이다. 알샤라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으며, 민주주의를 세속적이고 반(反)이슬람적인 개념으로 간주한다. 대신 그는 국가 기관을 재건하겠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실상 이슬람화를 의미할 수 있다. 실제로, 시리아의 신임 법무장관 샤디 모하메드 알와이시는 올해 1월 초 "시리아인의 90%가 무슬림이므로, 이들은 샤리아법 적용에 찬성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는 알와이시를 비롯한 HTS 지도부가 선거를 그 자체로 중요한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 이슬람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알샤라의 과도정부는 국가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여 시리아 역사를 이슬람주의적 해석에 맞춰 재구성하고, 진화론과 같은 내용을 교과서에서 삭제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새로운 시리아가 권위주의적 과거와 완전히 단절할 가능성은 낮다. 역사는 이를 입증한다. 1979년 이란에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과정도 유사했다. 무함마드 레자 샤 팔레비의 축출은 10여 년 동안 중산층, 지식인, 민족주의자, 자유주의 이슬람 세력, 그리고 강력한 사회주의·좌파 정치운동이 주도한 시위 끝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결국 조직력과 규율에서 우위를 점했던 종교 보수 세력이 혁명을 장악했다. 광범위한 모스크 네트워크, 카리스마적 지도력, 그리고 경쟁 세력을 제거할 무력을 갖춘 이들은 종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좌파·자유주의자·세속주의자를 정부와 공적 영역에서 제거했다. 민주주의 혁명으로 시작된 운동이 이슬람주의 정권으로 귀결된 것이다.


아랍의 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학생, 인권운동가, 노동조합, 중산층 전문가 등 다양한 세력이 주도했지만, 이집트·리비아·튀니지·예멘에서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뒤늦게 참여해 결국 혁명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시리아에서도 아사드 정권의 잔혹한 탄압이 평화적 시위를 무장 반란으로 변화시키면서, 군사적으로 조직된 HTS 같은 강경 이슬람주의 세력이 득세하게 되었다. 최근의 역사는 이슬람주의 세력이 권위주의 정권 붕괴 이후 중동 사회를 장악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단 권력을 잡으면, 그들을 몰아내기란 극히 어렵다.

정치적 전환을 위한 핵심 축

시리아에서 평온한 정치적 전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 국가가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은 너무도 복잡하고, 주요 정치 세력 간의 신뢰 부족은 심각하다. 전반적으로, 외부 세력의 개입이 적을수록 전환 과정은 더 많은 세력을 포용해가며 효과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서는 이란, 이스라엘, 튀르키예, 아랍 국가들이 개입을 중단하고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러나 올바른 외부 개입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현재 미군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민주군(SDF, 쿠르드족이 주축)은 튀르키예가 지원하는 반군과 북동부에서 충돌을 계속하고 있다.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시리아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시리아민주군과의 강력한 관계를 활용해 이를 촉진할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국가 통합을 유지하면서도 쿠르드족의 자치 요구를 존중하는 포용적 정부 구성이다. 이는 튀르키예의 안보 우려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이슬람국가(IS)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다시 부상하는 것을 막고, 궁극적으로 미군 2000명이 시리아에서 철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아랍의 봄 당시 결성된 광범위한 반정부 연합체 시리아국민평의회(SNC)는 UN이 직접 개입하기보다, 헌법 초안 작성 과정에서 감독·조정 역할을 맡아줄 것을 촉구했다. UN이 선거 감시를 지원한다면, 시리아는 18개월 내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HTS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민족주의 지도자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시리아의 반정부 세력과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집단행동에 나선다면, HTS의 권위주의적 경향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국제사회는 알샤라에게 보다 포용적이며 투명한 정부를 신속히 구축하도록 강한 압력을 가해야 한다. 시리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억압적 단일 정당 체제와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알샤라는 즉각적으로 다른 정치 세력과 독립적 활동가들을 정치적 전환 과정에 포함시켜야 하며, 특히 2011년부터 아사드 정권에 맞서 싸워온 민족주의자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HTS는 포용적 대화를 위한 회의를 약속했지만, 정작 주요 야당과 반정부 세력을 초청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HTS에 대한 테러 조직 지정 해제를 보다 포괄적인 정치 체제 구축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압박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압박이 효과를 거두든 그렇지 않든, 미국과 동맹국들은 시리아 경제를 붕괴시키는 제재를 해제하고, 인도적 지원을 원활히 해야 한다. 또한, 해외 거주 시리아인들이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도록 허용해 경제 회복을 지원해야 한다. UN에 따르면, 현재 시리아인의 90%가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75%가 긴급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700만 명이 국내 실향민, 500만 명 이상이 이집트·이라크·요르단·레바논·튀르키예 등으로 탈출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시리아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들이지만, 극심한 빈곤과 정치적 배제로 인해 국가 재건에서 소외되고 있다. 만약 이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시리아를 건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며, 이는 역사적 악순환의 반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파와즈 A 저저스는 런던정경대(LSE) 국제관계학 교수로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 서방과 중동 민주주의 실패What Really Went Wrong: The West and the Failure of Democracy in the Middle East'를 썼다.


1922년 창간된 격월간 국제정치 전문지. 미국의 국제정치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에서 발행하는데 국제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거진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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