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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쇄빙선 MSV 노르디카에서 바라본 북극해의 모습. /사진=AP/뉴시스
2025.02.28 15:41
세상의 끝에서 바라본 빛은 다르다. 알래스카 해안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항구 도시 노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엇보다 빛이 정말 밝다고 느꼈다. 태양이 수평선에 걸쳐 있었고, 빛줄기는 가늘고 예리한 선이 되어 잿빛 하늘과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태양은 강렬하지만 무력하기도 한데, 이곳에서 빛은 불과 몇 시간밖에 존재하지 못한다. 바다와 하늘을 채운 카나리 노랑과 스모크 컬러. 마크 로스코가 여기 살았다면 화폭에 담았을 법한 색이다.
2024년 10월 25일, 오전 10시 40분이지만 빛 때문에 훨씬 더 이른 시간처럼 느껴진다. 노움Nome은 내가 미국에서 가본 어느 곳보다도 이국적이다. 영구동토층 위에서는 건축이 어려운 탓에 주택들이 기둥 위에 올려져 지어지고 있다. 지역 신문 노움너게트Nome Nugget는 원주민의 날 이야기와 최근 베링 해협을 강타한 폭풍 소식을 주요 기사로 싣고 있다. 극강의 남성 스포츠 경기라 할 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의 결승점이 바로 노움이다. 노움의 경제는 주로 생존 필수품 거래로 이루어진다. 지역 게시판에는 어피魚皮 무두질과 총기 경품 행사 광고가 걸려 있다.
노움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미국 해안경비대다. 해안경비대는 마약 밀매와 불법 조업을 단속하고, 러시아와 중국의 첩보 활동을 감시하며, 미국 해역을 지키는 미국 군 조직이다. 조난당한 선박이나 사람들을 구조하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며,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나는 해안경비대 커터함인 힐리Healy호에 올라타기 위해 이곳에 왔다. 힐리호는 약 1.5미터 두께의 얼음을 깨며 항해할 수 있는 '쇄빙선'이다. 해안경비대는 길이가 약 20미터 이상인 중대형 함선을 뜻하는 '커터'를 241척 운용하고 있으며, 그 중 쇄빙선은 단 두 척뿐이다.
미국에 쇄빙선이 이렇게 적다는 사실이 바로 내가 여기에 온 이유다. 쇄빙선은 북극 탐사와 보호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북극은 이제 지구상 가장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지역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입을 제안하기 훨씬 전부터 그런 움직임은 뚜렷했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25년 동안 새로운 쇄빙선을 한 척도 건조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능력이 없다. 상업적 해운업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미국은 자체적으로 이런 선박을 효율적으로 건조할 능력을 상실했다. 가장 최근의 건조 시도조차도 당초 계획보다 5년이 지연되었고 예산을 크게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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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빙선에 대한 절박한 수요는 드물게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핀란드 및 캐나다와 협력하여 쇄빙선을 공동생산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 아이디어는 사실 트럼프의 첫 임기 중 처음 제안되었다. 이제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회의(NSC)가 이 '쇄빙선 협력 협정'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길 것이며 이를 통해 핀란드의 조선 기술을 미국에 도입, 향후 10년간 미국과 동맹국들을 위한 쇄빙선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조선업을 지원하기 위한 초당적 법안인 미국 조선업강화법이 발의되었다. 법안은 현재는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인 마이크 왈츠 전 하원의원이 공동 작성했다.
왈츠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과 저는 강력한 해양 산업기반이 경제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상업적 해양 산업을 재건하고 미국의 쇄빙선 역량 강화에 투자해야 할 전략적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왈츠는 이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선박을 운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이를 위해 의회에 예산 지원을 긴급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 조선업체들이 선박을 적절한 시간과 예산 내에서 건조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제약을 제거하고, 필요할 경우 동맹국들과 협력해 선박을 반드시 확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북극에 대한 관심은 군사적 측면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도 크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얼음이 녹으면서 새로운 해상 항로가 열리고 있으며, 아시아와 대서양 항만 사이의 운송 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될 수도 있다. 현재 가장 효율적인 항로는 러시아 북부 해안을 따라 형성된 경로인데, 러시아는 이를 자국 영해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해역에 새로운 항로가 열릴 경우, 이는 사실상 글로벌 공급망을 재설계하고, 남중국해,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같은 전략적 요충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 및 사고의 영향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극지방의 빙하가 줄어들면 해저에 접근하는 것도 쉬워진다. 여기에 매장된 막대한 양의 희토류 광물, 석유, 천연가스를 선점하고 개발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 여러 국가 간의 경쟁이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또한 북극이 점점 더 군사와 첩보 활동의 중심지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이유로 인해 북극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10월 25일
민간 부문에서는 효율성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A에서 B를 얻어내는가가 문제다. 하지만 군사 부문은 위험을 평가하고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힐리호가 해안에서 불과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음에도 육지에서 배까지 이동하는 과정이 90분이나 걸리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항구에서 얼어붙는 얼음 사이로 최적의 경로를 찾아야 하고, 혹시라도 차가운 물에 빠질 경우를 대비해 생존 장비를 갖춰야 한다.
힐리호는 길이 약 128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강철 덩어리로, 붉은색과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1999년에 취역했으며, 미국 해안경비대에서 가장 큰 함선이지만 기술적으로는 중형 쇄빙선으로 분류된다. 쇄빙선은 얼어붙은 해수면이나 총빙叢氷(pack ice)을 정면으로 뚫고 항로를 개척하는 역할을 하므로 일반 선박과 달리 세 가지 필수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강화된 선체, 부서진 얼음을 선체 주변이나 아래로 밀어내는 선형船形, 그리고 이를 모두 돌파할 수 있는 강력한 엔진 출력이다.
물리적 능력만 강력한 것이 아니다. 함선 내부의 많은 기능이 디지털화되었다. 대형 서버들이 계속 가동되면서 음파탐지기 및 위성 데이터 판독에서부터 기상 관측, 통신, 기계 센서 데이터 처리까지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북극에 광범위한 무선 인터넷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해안경비대의 통신 능력뿐만 아니라 대원들의 개인 생활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대원들은 휴식 시간에 영화를 스트리밍하고, 자녀들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힐리호는 자체적인 일정에 따라 운영되는 떠다니는 도시와 같다. 오후 3시 30분에는 청소가 이루어지고, 오후 4시 15분에는 장교 회의가 열리며, 오후 5시 30분에는 저녁 식사가 제공된다. 규칙적 생활은 햇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다. 대원들은 두 개 조로 나뉘어 12시간 교대 근무를 한다. 늦은 오후, 교대시간이 되면 일부 대원들은 잠자리에 들고, 복도와 계단에는 붉은 조명이 켜진다. 이 모든 것 때문에 나는 영화 '붉은 10월'의 엑스트라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9층이나 되는 갑판들을 오르내리는 정해진 이동 경로를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다. 다행히 대원들은 계단에서 나와 부딪혀도 너그럽게 이해해준다. 모든 것이 비슷해 보여서, 내가 묵는 '객실'로 가는 길을 확실하게 익히는 데 여러 날이 걸렸다. 방은 약 18평방미터 크기의 단조로운 베이지색 공간으로, 대학 시절 처음 생활했던 기숙사 방을 떠올리게 한다. 좀 삭막하지만, 많은 승조원들이 말하듯 일반 '격실'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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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승선한 미 해안경비대 힐리호의 2009년 모습. /사진=로이터/뉴스1
사실, 나는 해안경비대에서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우선 룸메이트가 한 명밖에 없다. 우즈홀 해양연구소 소속의 해양학자인 매디인데,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 우리는 옆 방에 있는 여성 해안경비대원 여섯 명과 욕실을 함께 쓴다. 지금 나는 시베리아와 수어드 반도 사이를 지나가면서, 머리를 감고, 넷플릭스도 보고, 선내 체육실 두 곳 중 한 곳에서 일립티컬 머신으로 운동도 할 수 있다.
힐리호는 또한 북극을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과학 탐사선이며, 힐리호에 있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여러 해 동안 승선을 기다렸다. 이들은 모두 복잡한 기후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즉, 파도 패턴, 대륙붕 침식,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폭풍을 촉진하고 그 폭풍이 다시 침식을 가속화하는 방식을 조사한다. 또한 새로운 조류가 번식하면서 혹등고래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고, 이 과정에서 혹등고래가 지역 주민들의 생계 수단인 토착 고래들과 경쟁하게 되는 양상도 연구 중이다. 아울러 해수 온도의 변화가 어떻게 바다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지 측정하고 있다.
"북극해는, 이를테면 보스턴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오리건주립대학교의 해양학자 로리 주라넥의 말이다. 그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선상船上 연구 기법을 훈련시키고 있다.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극지 증폭polar amplification'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면 다른 지역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힐리호에서 과학 임무를 수행하는 비용은 하루 7만 달러 이상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기관과 정부 기관들이 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그 가치는 순수 과학 영역을 넘어선다. 한때는 미국이 해양학을 지배했지만, 1990년 이후 중국이 64척의 해양학 연구선을 건조하며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은 단순히 상업용 유조선을 건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를 연구하고 탐험하며 지배하기 위한 선박을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바이든 행정부 해군 장관의 수석 고문이었던 전직 해군 장교 스티브 브록은 말한다. "이는 경제와 국가 안보 측면에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연구선이 많아지면 천연자원 발견과 해저지도 제작이 더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 하루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상훈련 시작을 알리는 경고가 울린다. 나는 과학 회의실에서 메모를 하다가 자리를 떠나, 살을 에는 젖은 공기 속으로 걸어 나가며 바다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어둠 속에서 복도 벽을 따라 천천히 이동한 끝에 헬리콥터 격납고 입구에 도착한다. 종종 농구장으로도 사용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승선한 총 113명 중 한 그룹에 합류해, 붉은색 커다란 고무 재질의 구명복을 건네받아 착용한다. 저녁 무렵이었고 바깥은 칠흙같이 어둡지만, 바다 냄새와 밑에서 출렁이는 물결의 진동이 온 몸에 전해진다.
구명복을 모두 착용한 후, 우리는 실제 비상 상황에 대비해 각자 특정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내 임무는 식량과 물을 챙기는 것이지만, 단 한 차례의 연습만으로는 막상 위급한 상황에서 식량 보관함이 어디 있는지 기억할 자신이 없다. 우리는 구명정을 전개하는 방법을 배운다. 다행히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능숙해 보인다.

러시아의 쇄빙선이 뒤따르는 화물선을 위해 얼음을 갈라 길을 내주고 있는 모습. /사진=AP/뉴시스
10월 26일
이른 아침,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선장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함께 식사한다. 군산복합체 대한 걱정들이 있지만, 군대는 사실 미국으로서는 가장 사회주의에 가까운 성격의 조직이다. 상업적 탐욕을 넘어선 세계, "명예"와 "봉사" 같은 단어들이 진지하게 사용되는 세계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음식이 놀랍도록 훌륭하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넘쳐나고, 매일 다양한 샐러드 바가 준비된다. 심지어 전담 제빵사도 있다. 음식은 대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자,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다. 매일 갓 구운 시트 케이크, 시나몬 롤, 맛있는 빵을 마음껏 먹다보니, 계단이 있어서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심지어 대원들이 자기 개인 시간을 내 운영하는 작은 전문 커피숍도 있어, 제법 괜찮은 라떼를 마실 수도 있다.
카페인을 완전히 충전한 후, 오전 9시 30분에 과학팀 회의에 참석했다. 날씨가 춥지만 예상보다는 기온이 높아 모두들 걱정하는 분위기다. 얼음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 게다가 날씨 때문에 힐리호가 러시아 해역이나 토착 주민들의 고래잡이 구역으로 너무 가까이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고래사냥 시즌에는 해당 지역을 피해야 한다.
이 문제는 알래스카의 유피크 족과 이누피아트 족을 대표하는 공식 참관인이자 환경 과학자인 클라리사 젤러가 주시하고 있는 사안 중 하나다. 젤러는 31세로 키가 크고 날씬하며, 짧고 검은 머리에 코걸이를 하고 있다.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자기 부족部族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젤러는 현지 연어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으며 남획이 문제라고 말한다. 또한, 급격한 수온 변화가 고래, 바다코끼리, 물개, 연어의 사냥 패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이런 상황은 우려할 일이긴 하지만 절망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부족은 역사적으로 이동해 왔고, 또다시 이동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부족은 구리 광산 개발 프로젝트가 연어 어획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젤러는 스스로를 "과학 외교관"이라고 부르며 매일 부족에 최신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의외로 낙관적이다. 그녀는 "영구동토층이 녹아 사라지면서 새로운 땅이 생길 것입니다.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농업에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함교로 올라갔다. 눈 앞에 펼쳐진 경치가 장관이다. 이곳에는 마치 교회 같은 분위기가 있다. 모두들 조용하고 엄숙한 태도로, 각종 컴퓨터 화면 앞이나 수십 개의 커다란 창가에 배치되어, 끝없는 회색빛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브라이언 윌리엄스 소령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태평양 지역 해안경비대에서 온 방문 장교로, 선상의 여러 안보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쇄빙선과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윌리엄스 소령은 '북극전략 전망 실행계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계획에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해안 지역 사회와 협력하여 회복력을 강화하고, 둘째, 국립과학재단(NSF)과 협력하여 북극 연구를 수행하며, 셋째, 가장 중요한 목표로서 이 지역의 해양 역량 및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노르웨이, 캐나다,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해군과 함께 많은 순찰 활동과 안보 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힐리호는 우리가 '존재에는 존재로 대응한다'는 원칙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는 러시아의 과학 조사선과 마주친 적이 있다. 두 배는 약 30분 동안 서로를 주시한 뒤 각자 항해를 계속했다.
윌리엄스 소령은 쇄빙선을 단 두 척만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늘 힐리호를 북극에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동맹국들과의 훈련을 위해 더 먼 곳으로 보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과학적 목표, 유럽 및 동맹국들과의 연합 훈련, 그리고 남극과 북극에서의 존재감을 확립할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러시아가 북극 내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역시 "근近 북극 국가"임을 선언하며 세 척의 새로운 쇄빙선을 배치했다.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해운 산업을 강화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왔다. 미국이 민간 대양 상선 185척을 보유한 반면, 중국은 5500척을 보유하고 있다. 윌리엄스 소령은 무엇보다 중국이 과거보다 더 불투명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는 "중국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이 모든 것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할 방법이 모색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오가 되자, 과학팀이 첫 번째 샘플 채취 장비를 투하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 장비는 가로 약 1.8미터, 세로 약 3미터의 튜브로, 다양한 깊이에서 수온, 염분 농도, 산소량 및 플랑크톤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 수질 샘플을 채취할 예정이다. 플랑크톤 망과 토양 채취 장비도 함께 사용될 계획이다. 모든 장비는 접촉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다뤄야 한다.
힐리호 함장 미셸 샬리프는 강인하고 차분하며 인상이 온화한 49세의 해안경비대 베테랑이다. 그녀가 함교에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커터함 지휘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바다에 나와있는 것이 정말 좋아요." 미시간주 어퍼반도에서 상선 선원의 딸로 자랐기에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항해를 했다. 샬리프는 "저는 바다 위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게 좋고, 배가 다양한 해류와 방향타의 각도, 프로펠러의 움직임을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이 즐거워요."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한 베테랑 선원답게, 그녀는 배 내부 기계 장치의 진동에 익숙해져 자면서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잠을 많이 자는 것은 아니다. "저는 24시간 대기 상태이고, 보통 새벽 6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둡니다."
과학 연구 장비를 바다에 안전하게 투하하는 데 여섯 명이 필요하다. 한 연구원이 갑판 크레인을 조작하는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있다. 크레인 집게를 조종하는 손잡이를 돌리는 그녀의 손이 떨린다. 부족 대표 참관인인 젤러가 해안경비대원들과 함께 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런 과학 탐사 방식은 마치 장거리 비행과도 같다. 긴 시간 지루함이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긴장과 발견의 순간이 찾아든다. 앞으로 며칠 동안 수집된 데이터는 연구팀과 해안경비대에 북극 해역의 변화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저녁 식사 후, 나는 한동안 식당에 남아 몇몇 공학팀 대원들과 함께 영화 '헝거 게임' 프리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 중 가장 멋진 순간은 모두가 잠든 후에 찾아왔다. 새벽 3시 무렵, 오로라를 보려면 갑판으로 올라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잠옷 위에 파카를 걸치고, 추위에 몸을 웅크린 채 더듬더듬 갑판으로 나서자, 환상처럼 형광빛 초록 광채가 나를 감쌌다. 마치 포토샵으로 보정한 듯한 색이다. 오로라는 머리 위 하늘에서 춤을 추고, 그 사이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은 달과 별들이 빛을 뿜고 있다. 나는 숨을 잊고 멈춰섰다. 베테랑 승조원들도 밖으로 나와 이 장면을 찍고 있었다. 며칠 후면 미국 대통령 선거가 열리고, 이어서 큰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것들에서 멀어져 영원에 가까워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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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세계 최북단 도시로 거론되는 러시아의 북극해 도시 무르만스크의 항구. /사진=로이터/뉴스1
10월 27일
얼음에 부딪혔다! 하지만 아직 어린 얼음, 과학자들이 "팬케이크 아이스"라고 부르는 얼음이다. 타원형 조각들이 떠다니다가 서로 부딪히고 엉겨 붙어 점점 더 두터운 층을 형성한다. 수면 위에 펼쳐진 회색과 흰색 조각들이 마치 조각보 누비이불처럼 보인다. 당직사관 중 한 명인 헤일리 하워드는 선박이 더 쉽게 돌파할 수 있는 "리드leads", 즉 얼음 사이의 틈을 찾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건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죠." 그녀가 말한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배가 이불같은 얼음을 헤치고 나아갈 때, 선체에 진동이 느껴지고, 얼음이 부서지고 떨어져 나가는 거친 소리가 들린다. 마치 칠판을 긁는 소리처럼 날카롭다. 소리는 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거세진다. 이 마찰음이 혹시 타이타닉호에 재앙이 닥치기 전, 보일러에 석탄을 퍼 나르던 선원들이 들었던 소리와 같은 것일까. 문득 스치는 생각을 빨리 떨치고, 대신 대원들을 알아가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대원들은 이글 스카우트Eagle scout(최우수 보이스카웃) 출신이 많고, 군 복무를 마친 후 학비 지원을 받는 제대군인원호법(G.I. Bill)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많다. 상당수가 직업교육을 받았으며, 그것이 4년제 학위와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다. 나는 선상에서 3D 프린팅 작업장을 운영하는 몇몇 젊은 대원들을 만났다. 이들은 긴급 상황에서 선박에 필요한 부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다. "무척 유용합니다." 한 명이 말한다. "아마존 프라임이 여기까지 배송해 주지는 않으니까요."
나는 해군 잠수함에서 기술병으로 복무한 남자 형제가 있어서, 어떻게 미국 군대가 목표 없이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숙련된 성인으로 변화시키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 미국이 1년 의무 군복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18세의 청소년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릅니다"라고 전기 계통 장교인 브라이언 휠러는 말했다. 산타바바라 소재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SCU)를 다니면서 동시에 해안경비대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그는 "엘리트 계층이 군대 경험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군대는 극기력과 전문성을 길러줍니다. 힐리호는 이동식 과학 기지이며, 우리의 임무는 이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디젤 엔진 유지보수부터 담수화, 하수 처리까지 "모든 것을 파악하는 데 약 3개월이 걸렸습니다"라고 말했다.
브라이언의 상사인 류언 콘제는 쾌활한 성격의 힐리호 수석 기술 장교로 캘리포니아 해양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짙은 붉은색 머리에 안경을 쓴 36세의 그는 기계를 만지는 것을 좋아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해양 아카데미들은 민간 해운 산업에 많은 인력을 공급합니다." 그는 말한다. 국제 해운회사들은 숙련된 해양 인력들에게 최대 6자리 연봉(십만 달러 이상)을 지급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해안경비대나 해군은 전문인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조선업 아웃소싱 문제 외에도, 미국 해양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숙련된 선원과 조선 기술자의 부족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작년에 졸업한 해양 공학 전공자가 약 2000명이었던 반면, 미국은 단 70명뿐이었다. 최근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인수한 한국 기업 한화는 현지 인력을 훈련시키기 위해 한국에서 은퇴한 기술자들을 불러와야 했다.
힐리호에 승선한 많은 대원들처럼, 콘제 역시 민간 부문에서 일한다면 급여를 두세 배로 많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해안경비대의 모험"에 이끌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배는 국가를 지원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세계적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 북극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라고 알리는 것이죠." 콘제를 비롯해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뛰어넘어, 물질적 이익을 초월한 더 큰 가치에 봉사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 힐리호의 많은 사람들이 미군 내 여러 군조직 중에서 해안경비대를 선택한 이유는, 해안경비대가 본질적으로 해외에 나가 사람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 국내에서 사람을 돕는 일을 임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4시 15분 회의가 끝난 후, 나는 알렉스 하멜 작전 장교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말수가 적고 진중한 인물로,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전과 항해 결정의 총책임을 맡고 있다. 이번 항해에서 그가 수행할 주요 임무 중 하나는 북서항로의 일부 해역을 탐사하여 해도를 작성하는 일이다. 북서항로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새로운 항로로, 그린란드와 캐나다 북부, 알래스카를 따라 이어진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이 항로를 따라 전 세계 데이터의 95%를 전송하는 해저 광섬유 케이블을 설치하고, 이 항로를 통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항해를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임무에서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하멜에게 묻자, 그는 잠시 나를 응시한 뒤 대답했다. "현재 북극을 가로지르는 항로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북동항로, [아직 개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북극점 횡단항로, 그리고 북서항로입니다. 북서항로는 많은 상업적 이해관계자들이 주목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해도가 작성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북극 해저의 단 15%만이 지도화된 상태다. "우리는 배핀 만Baffin Bay에서 북극의 반대편까지 항해할 수 있는 경로를 최대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명확하게 파악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북위 74도, 북극권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오늘 밤은 별을 볼 수 없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28일
과학자들이 녹초가 되었다. 그들은 새벽 4시까지 어둡고 눈보라가 치는 악천후 속에서 작업했고, 날씨는 더 악화될 전망이다. 나도 역시 지치고 머리가 멍하지만, 극지 초보자에게는 정상적인 증세 같다. 빛이 부족한 탓도 있고, 오른쪽 귀 아래에 붙인 멀미약 패치가 서서히 약효를 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연구를 남극에서 수행하는 한 젊은 해양학자는 남극 기지에 있는 사람들은 단기 기억 상실을 자주 겪는다고 말해주었다.
미국 국가해양대기청(NOAA)의 방문 선장인 메건 맥거번을 만났다. 국가해양대기청은 토머스 제퍼슨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관으로, 대서양 해안을 측량하여 지도를 제작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서 핵심은 해안과 해저에 대해 가능한 모든 것을 파악함으로써 병력, 보급품, 그리고 기타 자산을 문제없이 정확한 장소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페어웨더호에 탑재된 수중 음파 탐지기는 얕은 수심에서만 효과적이다. 따라서 "우리 팀은 힐리호를 이용해 캐나다 북쪽의 보퍼트해를 지도화하여, 군용 및 상업용 선박 모두 안전하게 통과하고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항로를 개척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가 다시 항구로 돌아갈 즈음이면, 그녀의 팀은 푸에르토리코와 맞먹는 면적의 해저 지도를 완성하게 될 것이다. 힐리호 선장 샬리프는 이렇게 말한다.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선박이 국가 경제의 약 80%를 떠받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수한 조선업과 선박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샬리프를 비롯해 승선한 모든 사람들은 힐리호가 25년 된 노후한 선박이며, 곳곳에서 노후화의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 날씨가 예상보다 더 나쁜 이유 중 하나는 선박 내 화재가 발생해 수리하는 데 몇 주가 소요되면서 이번 항해가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해안 길이가 약 16만킬로미터에 달하고, 인구의 40%가 그 해안 가까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더 이상 자국에서 배를 적시에, 효율적 비용으로 건조할 수 없고, 해상 물류를 자체적으로 지원할 수도 없으며, 외국의 도움 없이는 군수 물자를 바다로 운송하는 것조차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현재, 미국 군사 장비 및 보급품의 약 90%는 상업 선박을 통해 운송된다.)
조선업의 쇠퇴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한 가지 핵심 요인은 1980년대 상업용 조선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폐지였다. 안보 강경파이자 자유시장주의자였던 레이건 행정부 관료들은 냉전 시기의 군비 지출이 충분한 수요를 창출해 미국 조선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잘못 판단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와 그에 따른 "평화 배당금" 감축 조치는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조선업을 더욱 황폐화시켰다. 카를로스 델 토로 해군장관은 퇴임 전 2023년 하버드 케네디스쿨 연설에서, "역사가 증명하듯이, 장기적으로 위대한 해군 강국이 동시에 해양 강국 (상업 조선업과 글로벌 해운 산업을 보유한 국가)이 아니었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군사 및 상업용 조선업을 분리하고, 조선업을 해외로 아웃소싱한 결정은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다. 이건 현실적인 문제다. 해양 산업은 경제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조차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던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였다. 전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제이크 설리번은 퇴임 전 나와의 인터뷰에서 "'배ship가 새로운 반도체chip'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듯이 미국이 조선업을 국가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아, 국내 생산을 확대하고 동맹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실현하는가의 여부야말로 트럼프 행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이 실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구호에 그치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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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2022년 새로 건조한 원자력 쇄빙선 '우랄'호. /사진=AP/뉴시스
저녁 회의 시간이 되자, 모두가 날씨 이야기만 하고 싶어 한다. 힐리호에 파견된 해군 기상 예보관 브리타니 에이모스는 우리가 더 거친 바다로 들어설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지금까지 파도의 높이는 1.5~3미터 정도 였지만 곧 4.5~6미터에 이를 것이다. 힐리호는 약15미터 파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거센 파도 소식에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지난밤, 침대에서 몸이 구를 정도로 배가 요동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영화 '퍼펙트 스톰' 속 컴퓨터로 구현된 거대한 파도 장면이 떠나질 않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에이모스와 그녀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사람들처럼 그녀도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 해군에 입대했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군을 떠나 데이터 과학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돈을 더 벌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의 정치문화적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맞아, 난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게 자랑스러워'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마도 '그래, 난 그냥 내 직업을 하고 있을 뿐이야'라고 할 겁니다.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예전만큼 강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그녀에게 언제부터 변화가 시작된 것 같은지 물었다. "1980년대부터 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더 개인주의적으로 변했고, 공동의 목적이나 함께 봉사한다는 의식이 사라졌어요." 배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처럼, 그녀는 정치적으로 비교적 중립적이며, 변화의 책임을 민주당이나 공화당 어느 쪽에도 돌리지 않았다.
오후 6시 30분, 나는 밖에서 30분 동안 과학팀이 플랑크톤을 채집하기 위해 그물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갑판에는 일곱 명이 있었고, 모두 안전 장비를 단단히 착용하고 있었다. 그물을 내리는 동안 스피커에서는 록그룹 AC/DC의 '하이웨이 투 헬'이 울려 퍼졌다. 자정이 되자, 바람과 파도가 너무 거세 작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10월 29일
날씨가 나쁘고, 밖에 나가기에는 너무 춥다. 배는 지금 보퍼트해의 대륙붕단大陸棚端(shelf break)을 향해 항해 중이다. 해저 깊이가 40미터에서 4000미터로 급격히 변하는 지점이다. 국가해양대기청은 어제 역사상 처음으로 이 지역 해저 지도를 그려냈다. 이제 모두가 음파 탐지 결과를 무척 기대하고 있다. 지도화 작업이 이처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어려운 작업이지만, 그 중요성은 배 안에 걸린 여러 지도 중 하나를 보면 분명해진다. 지도들은 북극을 내려다보는 조감도 형태로 세계를 보여준다. 이렇게 지구를 보면, 러시아가 얼마나 거대한지, 기후 온난화 시대에 그린란드가 지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미국이 왜, 북극 국가로서, 새롭고 지정학적으로 더욱 중요한 이 광활한 지형을 더 잘 이해해야 하는지를 쉽게 깨닫게 된다.
플랑크톤 과학자인 섀넌 도허티는 동위원소가 담긴 조개껍데기들로 그물이 가득 채워져 돌아온 소식에 한껏 들뜬 기색이다. 동위원소는 파도와 해수, 그리고 얼음의 과거 양상을 파악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물을 끌어올린 승조원들은 지금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음악을 들으며 갑판을 청소하고, 비행기 날개에서 얼음을 제거하듯 얼음을 제거하고 있다. 힐리호는 이런 환경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어선들 중에는 얼음이 너무 많이 쌓여 전복되면서 인명 피해를 겪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떨치고,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간다. 메뉴는 부드러운 타코, 밥에 곁들인 쇠고기 볶음, 그리고 브로콜리 조림이다. 후식으로는 따뜻한 브라우니와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북극에서 먹는 식사치고는 나쁘지 않다.
10월 30일
큰 뉴스가 있다. 해저 지도 제작팀이 새로운 지형을 발견했다. 제작팀이 "특이지형"이라고 부르는 이 지형은 마치 해저 화산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메탄 기둥'이 분출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곳에서 이런 지형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맥거번 선장이 말했다. "바로 인근에 토착 주민들의 고래잡이 구역이 있거든요."
팀은 데이터를 계속 검증한 후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만약 천연자원이 발견된다면, 국영 석유 대기업들과 민간 다국적 기업들이 모두 쇄빙선을 투입해 조사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인근 코디악 해안경비대 항공 기지에서 출발한 비행기 한 대가 머리 위로 빠르게 접근하며 훈련을 위해 "근접 저공 비행"을 수행해도 되겠는지 교신을 보내왔다. 힐리호가 승인하자, 비행기는 우리 배 위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높이를 빠르게 지나갔다. "머리 깎아줘서 고마워!" 함교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무전으로 비행기에 농담을 던진다. 코디악 기지는 캐나다 및 일본과 함께 불법 조업을 단속하고 있다.
갑자기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고, 직원들이 사라진 실험용 부표를 찾기 위해 쌍안경을 들고 분주히 드나들면서 함교에 차가운 바람이 들이닥쳤다. 하늘이 온통 하얗고, 빛은 희미하게 퍼져있다. 회색빛 바다에 하얀 포말이 부서지고, 멀리 수평선에 팬케이크 얼음 몇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마침내 부표를 발견했다. 여러 차례 급회전을 반복하며 이를 회수하는 데 성공한 항해사에게 ("운전 실력이 대단하네요!"라며) 모두들 박수를 보냈다.
함장이 현재 기상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소형 보트를 타고 실험을 수행하는 것을 허용할지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작은 보트는 위험 부담이 크지만, 얼음과 해수를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모든 주요 작전 결정과 마찬가지로, 핵심 인력들은 여러 기준을 바탕으로 임무의 위험성과 보상을 평가한다. 현재 수온과 기온은 모두 영하이고, 바람은 시속 약 32킬로미터로 불고 있다. 다행히 파도가 거의 없어, 북극 해역 기준으로는 중간 수준의 위험도에 해당하므로 허용가능한 상황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따라, 해안경비대원 두 명과 과학자 네 명을 포함한 대원들이 개인 보호 장비를 착용한 후, 우리가 타고 왔던 것과 동일한 소형 보트를 진수하기 시작했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바다로 나갔다.
10월 31일
오늘은 두 차례의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첫 번째는 과학 연구실에서 열렸으며, 연구팀이 오늘 채집한 해양 생물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플랑크톤(해양 생태계의 건강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신호다), 작은 사족류, 그리고 유리병 속에서 헤엄치는 작은 주황빛 해파리 등이 선보였다. 선장을 비롯한 많은 대원들이 연구실로 내려와 이 신비로운 생명체들을 구경했다. 현재 이 해역이 이토록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이유 중 하나는 수심이 훨씬 얕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심이 700~1500미터에 달했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불과 50미터 깊이에 불과하다.
많은 대원들이 오늘 밤 헬리콥터 격납고에서 열릴 할로윈 파티를 위해 의상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나는 다가오는 폭풍이 걱정되어 마음이 무겁다. 예보에 따르면 폭풍은 약 3.6미터의 파도와 시속 약 72킬로미터의 강풍을 동반할 것이다. 그렇다고 폭풍을 피해 이곳을 떠날 수는 없다. 이동할 경우 근처의 포경 활동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수염고래 철이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벨루가 철이 시작되고 있다. 부족 대표 참관인 젤러가 이 모든 상황을 팀 회의에서 보고했다.
이곳에서는 누구라도 오뒷세우스가 된 듯한 기분에 빠지기 쉽다. 위험으로 가득한 흑백의 세계에서 홀로 있는 느낌이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두렵다. 위험에 대한 모든 논의, 그리고 선박 운항에 사용되는 기술적이고 정밀한 언어들은 모두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노력의 일부처럼 보인다. 온갖 전문 용어와 약어들로 감싸여 있다 보면 마치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 아래 있는 듯 착각을 하게 되지만, 실상 우리는 그저 거대한 얼음을 헤쳐나가는 작은 강철 덩어리일 뿐이다.
굳이 유령의 집이 없어도 이곳에서는 충분히 두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어쨌든 할로윈 분위기를 내고 싶은 직원들은 유령의 집을 하나 만들었다. 그 외에도 설탕 쿠키 장식, 무알콜 펀치, 공작 활동, 그리고 할로윈 복장 콘테스트 같은 다른 유치한 소소한 즐길 거리들이 있다. 재미는 있지만 한편으론 뭔가 애잔하다.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대학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았던 미국 젊은이들이 세상의 끝에서 이렇게 어울리고 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서도, 더 적은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더 단단하게 만든 듯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인다.
11월 1일
우리는 현재 러시아와 알래스카를 가르는 축치해Chukchi Sea를 지나가고 있다. 배가 파도를 타고 규칙적으로 기우는 탓에 마치 거대한 맥박이 뛰는 것 같다. 과거에, 극한의 지역을 항해한 선원들은 귀를 뚫어 자신의 거친 면을 과시했다. 이제는, 문신을 새긴다.
컴퓨터 데크에 올라가니, 스타링크 위성의 위치를 표시한 커다란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과학 기술자 한 명이 일론 머스크가 이곳 통신의 존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놀랍죠." 그가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일론이 이 모든 것을 다 꺼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하이퍼자본주의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나와 과학자들에게 항해는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선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나는 샬리프 함장과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녀는 함장으로서 가장 어려운 순간들을 회상했다. 함내 화재, 폭풍우 후 어선에 매달린 두 사람을 구조한 일, 지난해 대원 한 명이 세상을 떠난 일이었다. 마지막 이야기를 할 때 함장은 눈물을 보였다.
샬리프 함장의 리더십 스타일은 흥미롭다. 그녀는 개방적이고 다가가기 쉽지만, 때로는 단호하다. 배우자는 없으며,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도 최근 시애틀에 집을 샀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것을 즐긴다. 대부분의 대원들처럼 그녀는 놀랄만큼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북극에 있을 때 가장 좋은 건 자연이에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커다란 바다코끼리 몇 마리가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배 가까이에서 헤엄치며 우리를 바라보기도 한다. 커다란 엄니와 수염이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는 리스번Lisburne 곶에서 약 38킬로미터 떨어진 해역을 항해하며, 저녁 중반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험한 바다를 헤치고 갈 항로를 설정하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 일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점은 무엇인가요?" "수색과 구조는 정말 멋진 일입니다." 샬리프 함장이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매일 수십억 달러 가치의 무역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경제와 직결됩니다."
11월 2일
우리의 마지막 날이다. 점심 식사 후, 격납고에서 전 대원 '집합'이 있었다. 함선을 떠나는 두 명의 초급 대원에게 경의를 표하는 시간이다. 일등 항해사가 그들이 연료 보급부터 요리까지 임무에 기여한 일들을 나열했고, 모두가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함장은 이번 항해의 성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우리는 지도 제작 임무를 수행했고, 새로운 항구 접근 경로를 찾았습니다. 이 지역의 해저 지형이 대형 화물선의 운항에도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캐나다에서 북미 서해안으로 이어지는 항로를 개척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는 경제적으로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환경 보호를 위해서도, 해상 안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날씨가 좋아 노움까지 항해는 순조로울 것 같다. 우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재자 투표 시간에 맞춰 항구에 도착할 예정이다. 나는 군 관계자들이 대개 그렇듯, 샬리프 함장이 정치적 의견을 쉽게 드러내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현재 세계의 첨예한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생각하면, 몇 년 전과 비교해 지금 이 일을 맡은 기분이 다르지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해군 기상 담당자가 큰 스크린에 투영하고 보정한 이미지를 바라보았다. 사진에 구름에 둘러싸인 산이 보인다. "저 산 위에 있는 게 렌즈형 구름인가요?" 함장이 물었다. 해군 기상 담당자가 쌍안경을 들어 직접 확인했다. "아니요." 쌍안경을 내려놓는다.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일합니다. 우리에게는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된 임무가 있으며,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누가 이 나라를 이끌든, 우리는 우리의 소임을 다 할 것입니다."
함장은 미소를 짓고, 다시 쌍안경을 들어 올려 이제 막 얼어붙기 시작한 항구를 바라본다. 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저는 바다 얼음들의 티파니 블루색이 정말 좋아요."
래너 포루하는 미국의 작가, 비즈니스 칼럼니스트이며, 파이낸셜타임스(FT)의 부편집장이다. 그는 CNN의 글로벌 경제 분석가로도 활동중이다.
역자 음해린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후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지구온난화는 안정적인 기후에 의존하는 많은 세계인들에게 재앙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능성도 가져오고 있습니다. 시베리아의 동토가 녹으면서 이 지역이 새로운 곡창지대가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북극해의 해빙이 녹으면서 해상물류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특히 북극해는 이미 강대국의 새로운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만일 북극해가 겨울에도 해상물류가 가능할 정도의 항로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 부산항이 얻게 될 반사이익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에 직접적으로 미칠 경제적 영향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2월 8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사는 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합병을 언급했는지, 기후변화로 북극해가 어떻게 열려가고 있는지, 미국은 쇄빙선을 포함해 얼마나 크게 라이벌인 중국 등과 '함정 갭' 또는 '선박 갭'을 가지면서 뒤쳐져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이 기사는 기자가 10일간 한국의 해양경찰에 해당하는 미 해안경비대 쇄빙선을 타고 북극해 주변에서 과학적 연구를 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사를 읽으며 북극해를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미국 정부가 선박의 부족으로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가진 첫 통화에서 선박과 관련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한국의 쇄빙선 건조 역량은 아직까지 부족하지만 현재 미국의 대중국 '선박 갭'을 메워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입니다. 동맹은 상호 동맹의 이익이 있을 때 더욱 굳어집니다. 한국은 한미동맹에 조선협력으로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