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

타마라 드 렘피카의 아르데코 회화는 스타일이 전부다. 그걸로 충분할까?

가수 마돈나가 사랑하고 뮤지컬, 다큐멘터리, 대규모 샌프란시스코 전시로 각광받은 그녀의 작품들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면서도 인위적이다.

기사이미지

타마라 드 렘피카, <초록 드레스를 입은 소녀 (장갑을 낀 소녀)>, 1931년경, Oil on board, 24 1/4 x 17 7/8 in. (61.5 x 45.5 cm), Centre Pompidou, Paris, purchase, 1932, inv. JP557P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Digital image © CNAC/MNAM, Dist. RMN-Grand Palais / Art Resource, NY

2025.03.07 13:55

Washingt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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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기성 예술가는 스타일을 중심으로 일종의 베팅을 한다. 거칠게 말하면, 그들이 "베팅"하는 것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이진실이나 아름다움을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소통을 이루고, 지속적인 경력을 쌓고, 어쩌면 자신이 떠난 후에도 작품이 남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카라바조(Caravaggio)에게는 극대화된 사실주의와 강렬한 키아로스쿠로(명암대비)가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있었다.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에게는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신고전주의적 질서가 있었다. 자코메티에게는 길게 늘어진 인물들이 광활한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존적 강렬한 통찰이 있었다.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의 경우, 그녀의 베팅은 아마도 한쪽 어깨를 비현실적으로 치켜올리고 다른 쪽은 극적으로 내려놓으면 더욱 멋져 보일 것이라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이 포즈가 너무나 자주 반복되어, 마치 그녀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같은 증상을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할 정도다.


Thérèse Bonney (1894 - 1978), <Tamara de Lempicka working on the portrait "Nana de Herrera">, 1929년경, Gelatin silver print 5 1/2 x 6 15/16 in. (14 x 17.6 cm) © The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The Bancroft Library,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Source : Ville de Paris / Bibliothèque historique 4C-EPF-006-00701

Thérèse Bonney (1894 - 1978), <Tamara de Lempicka working on the portrait "Nana de Herrera">, 1929년경, Gelatin silver print 5 1/2 x 6 15/16 in. (14 x 17.6 cm) © The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The Bancroft Library,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Source : Ville de Paris / Bibliothèque historique 4C-EPF-006-00701


렘피카는 또 한 가지를 보고 있었다. 인물들에게 차갑게 빛나는 눈과 관능적으로 반쯤 감긴 눈꺼풀을 부여하고 흠결 없는 몸을 현대 조각처럼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하면 더욱 멋져 보일 지 모른다는 점이다.



"스타일은 장식이 아니다"라고 영국 작가 마틴 에이미스(Martin Amis)는 말했다. "그것은 하나의 요소이며, 어쩌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이 말을 사진작가 빌 헨슨에게 전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예술에서는 스타일이 결국 독성이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어요. 소량으로는 괜찮지만, 중금속처럼 몸에 축적되면서 결국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도 있죠." 즉, 스타일이 지나치면 우리가 예술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더 깊은 무언가를 죽여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타마라 드 렘피카,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 (키제트 인 핑크 II)>, 1928~1930년경, Oil on Canvas, 45 5/8 x 28 11/16 in. (115.9 x 72.8 cm), Private collection, courtesy of Artis—Naples, The Baker Museum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Photography: RoseBudz Productions

타마라 드 렘피카,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 (키제트 인 핑크 II)>, 1928~1930년경, Oil on Canvas, 45 5/8 x 28 11/16 in. (115.9 x 72.8 cm), Private collection, courtesy of Artis—Naples, The Baker Museum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Photography: RoseBudz Productions


나는 타마라 드 렘피카를 좋아한다. 그녀는 재능이 있었다.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스타일을 결정화시켰다. 그리고 몇 점의 누드 작품은 마치 맑은 폭포수가 신경계를 강타하듯 순수한 감각의 쾌락을 선사한다. 그녀는 분명 더 깊이 조명받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녀는 '더 깊은 무언가'—애초에 그것이 그녀에게 있었는지 모르겠다—를 놓쳐버린 것 같다. 그녀는 스타일이 모든 것을 압도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것이야말로―일부에서 주장하듯 단지 그녀가 여성 예술가였기 때문이 아니라―그녀가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진짜 이유일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미술계는 렘피카의 명성을 되살리려는 기계음을 요란하게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장은 그녀를 20세기의 저평가된 거장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오랫동안 미술관 기념품점 달력에 실렸고, 마돈나, 잭 니콜슨, 팀 라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같은 유명 수집가들이 꾸준히 사랑해온 그녀의 작품이 이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려는 것이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미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본격적인 회고전—를 통해 조명을 받고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고통과 방랑이 뒤섞인 렘피카의 삶은 올해 브로드웨이에서 짧게 상연된 뮤지컬 '렘피카'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줄리 루비오가 연출한 장편 다큐멘터리 '타마라 드 렘피카의 실제 이야기와 생존의 예술'이 지난달부터 상영을시작했다.


타마라 드 렘피카, <광휘 (박칸테)>, 1932년경, Oil on panel, 14 1/4 x 10 5/8 in. (36.195 x 27 cm), Rowland Weinstein, courtesy of Weinstein Gallery, San Francisco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타마라 드 렘피카, <광휘 (박칸테)>, 1932년경, Oil on panel, 14 1/4 x 10 5/8 in. (36.195 x 27 cm), Rowland Weinstein, courtesy of Weinstein Gallery, San Francisco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렘피카는 1980년 멕시코에서 생을 마감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녀는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네 해 앞선 1894년 출생인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출생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대교도였으나, 타마라 로사 후르비츠(그녀의 본명)가 태어나기 전 개신교로 개종했다.



그녀는 폴란드에서 자랐으며, 젊은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첫 남편인 변호사 타데우스 렘피츠키를 만나 결혼했고, 딸 키제트를 낳았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면서 남편이 러시아 황제와의 연관성 때문에 잠시 투옥되었고, 렘피카는 키제트와 함께 파리로 피신했다. 남편은 석방된 후 그들과 합류했다.


부부는 1928년 이혼했으며, 이후 키제트는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렘피카는 자신의 작품을 수집하던 헝가리 출신의 라울 쿠프너 남작과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양성애자였으며, 프랑스 시인 이라 페로, 가수이자 배우, 그리고 나이트클럽 운영자였던 수지 솔리도르 등 여러 여성들과 연애하며 레즈비언 사교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39년 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다시 한 번 피난길에 올랐다. 쿠프너 남작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향했고, 두 해 뒤인 1941년 키제트도 합류했다.


드 영 미술관 전시는 렘피카 연구자 조이아 모리와 드 영 미술관 큐레이터 푸리오 리날디가 기획했으며, 이 전시를 보면 렘피카가 탁월한 재능을 지닌 예술가였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는 철저히 현대적 감각을 지닌 화가였으며, 동시에 자신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줄 아는 인물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상류층 사회에 주목을 받았다.


최고의 패션 사진가들처럼, 렘피카는 속도, 성(性), 그리고 여성의 독립성을 찬미하는 예술가였다. 그녀의 시각적 스타일은 아르데코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는데, 아르데코는 순수미술이라기보다 미술에서 차용된 요소들을 활용한 디자인 운동이었다. 그녀의 스타일은 특히 살롱 큐비즘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살롱 큐비스트들은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후안 그리스를 비롯한 원로 큐비스트들의 혁신적인 기법을 보다 무해하고 환심을 사는 방식으로 변형해, 가정용 인테리어에도 어울릴 만한 스타일로 발전시켰다.


1920년대 신고전주의의 유행이 돌아오면서―이른바 '질서로의 회귀'― 렘피카는 페르낭 레제와 아리스티드 마이욜의 기하학적으로 정제된 원통형 형태를 모딜리아니와 앵그르의 떨리는 듯한 관능미와 결합시켰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의 평론가 아르센 알렉상드르는 그녀의 스타일을 두고 "변태적 앵그르주의"(Ingrisme pervers)라고 표현했다. 이는 19세기 앵그르가 그린 <그랑 오달리스크>(Grand Odalisque, 1814) 같은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누드화가 이미 기묘하고 퇴폐적인 감각을 풍겼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1925년 밀라노에서 열린 첫 개인전 무렵, 렘피카는 자신을 현대적 매너리즘 화가로 변모시켰다. 즉, 이탈리아 후기 르네상스 화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뜻이다. 미켈란젤로의 영향 아래, 매너리즘 화가들은 과장된 비율과 비대칭적인 신체 포즈를 즐겨 사용했으며, 종종 좁은 공간 속에 인물을 배치하면서도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매너리즘 화가들의 혼란 즉 스타일의 혁신이 영적 목적을 앞지르는데서 나오는 혼란은 존 커린, 리사 유스카바지, 안나 웨이언트를 비롯한 최근 화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기이함을 극도로 밀어붙이고, 자기 모순적 아이러니를 품으며,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작가들이다. 그러나 그들보다 앞서 이 길을 닦은 인물이 바로 렘피카였다. 유리알 같은 눈빛, 옆을 흘겨보는 시선, 돌출된 턱선, 말처럼 고개를 휙 젖힌 포즈와 그녀의 초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비대칭적인 어깨가 바로 완전한 100% 매너리즘이다.


타마라 드 렘피카, <발코니의 키제트>, 1927, Oil on canvas, 51 3/16 x 31 13/16 in. (130 x 80.8 cm), Centre Pompidou, Paris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 Centre de création industrielle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Digital Image © CNAC/MNAM, Dist. RMN-Grand Palais / Art Resource, NY

타마라 드 렘피카, <발코니의 키제트>, 1927, Oil on canvas, 51 3/16 x 31 13/16 in. (130 x 80.8 cm), Centre Pompidou, Paris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 Centre de création industrielle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Digital Image © CNAC/MNAM, Dist. RMN-Grand Palais / Art Resource, NY


1920년대 후반, 렘피카는 키제트의 초상화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파란 눈을 가진 사랑스러운 소녀로 그렸다. 도톰한 입술과 짧고 헝클어진 금발이 인상적이었다. 말괄량이 소녀는 튜니카식 원피스 아래 무릎과 허벅지를 드러냈고, 긴 흰색 양말과 샌들을신었다. 은빛을 띤 색조는 피부의 따뜻한 톤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포즈는 묘하게 불안정하다. 한 손은 이유 없이 위를 향해 뒤집혀 있고, 다른 손은 발코니 난간을 잡고 있다. 한쪽 발은 어색하게 안쪽을 향해 비틀어져 있으며, 머리는 잘려나가듯 기울어져 있다. 마치 갑작스런 성장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다. 키제트는 프레임 속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애쓰면서도, 여전히 작고 사랑스러워 보이고 싶어 하는 듯하다.


<발코니의 키제트>가 당시 큰 화제가 된 이유도 렘피카가 이후에도 딸을 모델로 계속 활용한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효과를진실보다 우선시하는 그림들이 흔히 그렇듯, 이 초상화 역시 낭만적이기보다는 키치적이고 불편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큐비즘인가 리얼리즘인가? 그녀가 의도한 분위기는 도발적인 것인가 사랑스러운 것인가?


렘피카의 1925년작 작가 앙드레 지드의 초상화는 더 나은 방식으로 기억될 만한 작품이다. 이 소형 유화(판지 위에 유화)는 곡선으로 흐르는 주름, 그을린 듯한 키아로스쿠로, 그리고 유려하게 뻗은 광대뼈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드의 얼굴은 마치 거친 수염이 듬성듬성 돋은 풍경화처럼, 좁게 찢어진 그의 생기 없는 눈에서 바깥으로 확장되는 듯한 형상을 이룬다. 이 작품은 압력과 비틀림의 대작이라 할 만하다.


타마라 드 렘피카, <앙드레 지드의 초상>, 1925, Oil on cardboard, 19 1/2 x 12 1/2 x 1/2 in. (49.53 x 31.75 x 1.27 cm), Private Collection, Photograph by Gerard Vuilleumier, courtesy of the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타마라 드 렘피카, <앙드레 지드의 초상>, 1925, Oil on cardboard, 19 1/2 x 12 1/2 x 1/2 in. (49.53 x 31.75 x 1.27 cm), Private Collection, Photograph by Gerard Vuilleumier, courtesy of the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렘피카는 머리카락을 단순히 피부에서 자라는 생물학적 요소가 아니라, 순수한 조각적 장식으로 변형시켰다. 그녀의 작품에서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빗어 내려간 컬이 되거나, 혹은 빛나는 구리빛 띠처럼 팽팽하게 조여진 채, 마치 셀룰로이드 뱀처럼 머리에서 풀려 나오는 형태를 띤다.


렘피카의 누드화들은 인위적인 요소가 강하면서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다. 그녀의 대표적인 누드 작품들 중 일부는 <라파엘라>(Rafaëla)를 모델로 삼았다. 렘피카가 파리의 불로뉴 숲에서 운동하던 중 만난 매춘부였다.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라파엘라는 <아름다운 라파엘라>(La belle Rafaëla)를 포함한 여러 작품에서 풍만한 자태의 누드 모델로 등장했다. 이 시리즈는 매끄럽고 윤기 나는 육체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작품들로 평가받는다.


타마라 드 렘피카, <아름다운 라파엘라>, 1927, Oil on canvas, 25 1/2 x 35 3/4 in. (64.77 x 90.805 cm), Collection of Tim Rice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Banque d'Images, ADAGP / Art Resource, NY Image provided courtesy of the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타마라 드 렘피카, <아름다운 라파엘라>, 1927, Oil on canvas, 25 1/2 x 35 3/4 in. (64.77 x 90.805 cm), Collection of Tim Rice © 2024 Tamara de Lempicka Estate, LLC / ADAGP, Paris / ARS, NY Banque d'Images, ADAGP / Art Resource, NY Image provided courtesy of the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렘피카의 그림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인기 있다. 또한, 아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와 '파운틴헤드'의 표지를 장식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명인들도 오래전부터 그녀의 작품을 사랑해 왔다. 그 매력은 분명하다. 현실에 충분한 인위성을 주입하면 세상이 한층 더 매끄럽고 유연해 보이며 장애물로 어지럽혀지지 않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이 그림들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녀 작품들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미(美)는 이제 낡아 보인다. 이 작품들은 갑작스럽게 부(富)를 얻은 이들의 환상을 맞춰주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작품들을 보고난후, 나는 질서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실로의 회귀를 갈망하게 된다.



세바스찬 스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워싱턴포스트의 미술평론가이자『라이벌의 예술: 모던 미술의 네 가지 우정, 배신, 돌파구』The Art of Rivalry: Four Friendships, Betrayals and Breakthroughs in Modern Art의 저자다. 보스턴글로브에서 근무했고, 런던과 시드니에서는 데일리 텔레그래프, 가디언, 스펙테이터, 시드니 모닝 헤럴드를 위해 일한 바 있다.


역자 이희정은 영국 맨체스터대 미술사학 박사로 대영박물관 어시스턴트를 거쳐 현재 국민대 강사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역서로 '중국 근현대미술: 184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미진사, 2023)가 있다.


1877년 창간돼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로 손꼽힙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진 1972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로 유명합니다.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이래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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