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유층 소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미국 경제

상위 10% 고소득층의 지출은 물가상승률을 훨씬 초과하여 증가했지만 나머지 계층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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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뉴스1

2025.03.07 13:56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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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폭풍'의 불확실성이 시장을 흔들기 전까지 미국 경제는 매우 견조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의 2월 23일자 기사는 그 이면에 담겨 있는 불안 요소를 지적합니다.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현재의 미국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유층의 소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경제적 양극화는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특히 중국으로 제조업 이동이 가속화된 이후 미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실리콘밸리 등 테크 부문을 중심으로 성장을 해왔고, 부가가치가 낮은 자동차, 선박, 철강, 기계 등에서는 후퇴를 거듭해왔습니다. 즉, 수억 원대의 고소득을 버는 테크 부문 근로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지만, 다른 부문에서는 소득이 줄거나 아예 일자리를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경제양극화로 미국이 꾸준히 성장을 해나갈 수 있을 거냐는 것입니다. 부유층이 아무리 소비성향이 높더라도 저소득층보다 높을 순 없습니다. 월 300만원 버는 사람이 300만원을 다 쓰는 것은 쉽지만, 월 3억원 버는 사람이 3억원을 다 쓰는 것은 어렵습니다. 따라서 부유층은 소비성향은 낮고 저축성향은 높아집니다. 미국 경제에서 부유층과 저소득층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부유층의 소비가 경제를 이끌게 되면 결국 생산과 소비의 갭, 즉 과소소비寡少消費로 인해 경제적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향후 미국 경제의 향방에 중요한 요인으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미국인이 높은 물가와 끈질긴 인플레이션에 지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반면, 부유층은 아낌없이 소비하고 있다.


연간 25만 달러(3억6000만원) 이상을 버는 상위 10% 고소득층은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치 상승에 힘입어 휴가부터 명품 핸드백까지 다양한 품목에 과감히 지출하고 있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 소비자는 현재 전체 지출의 49.7%를 차지하며, 이는 198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30년 전만 해도 이들의 지출 비중은 약 36%에 불과했다.


이러한 흐름은 경제 성장이 부유층의 소비에 유례없이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는 상위 10%의 소비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3분의 1을 맡고 있다고 추정했다.



2023년 9월부터 2024년 9월까지 고소득층의 소비는 12% 증가한 반면,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의 소비는 같은 기간 감소했다.


"부유층의 재정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좋고, 그들의 소비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며, 경제는 이 계층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의존하고 있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분석을 총괄한 마크 잔디는 이렇게 말했다. 해당 분석은 연방준비제도(Fed)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며, 가장 최근 이용 가능한 자료인 2024년 3분기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부유층은 물가상승률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으로 소비를 늘렸지만, 다른 계층은 그렇지 못했다. 하위 80% 소득 계층의 소비는 4년 전보다 25%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21%의 물가 상승을 간신히 앞서는 수준에 그쳤다. 반면, 상위 10%의 소비는 58% 증가했다.


주식 시장의 급락이나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인해 상위 10%의 소비 심리가 흔들리고 지출을 줄인다면, 이는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반적인 소비자 심리는 점차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부유층 상위 3분의 1을 포함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관세부과 위협과 같은 요인 때문으로 분석된다.


마크 잔디에 따르면, 상위 소득층은 대체로 연령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경향이 있으며, 이들의 구매력은 부분적으로 최근 몇 년간 주택 가격과 주식 시장 가치가 급등한 데서 비롯된다. 자산 가격 상승은 흔히 경제 호황의 신호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부동산과 주식을 보유한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 간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38세의 비벡 트리베디는 팬데믹 기간 동안 저축을 늘렸으며,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자신이 거주하는 인디애나폴리스 지역에서 세 채의 투자용 부동산을 매입했다. 그는 또한 팬데믹 동안 낮은 금리로 갈아타면서 3% 미만의 고정금리를 확보해, 자신의 주거 비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와 그의 아내 푸르바 트리베디는 둘 다 제약업계에서 근무하며, 부부의 연 소득은 35만 달러 이상으로, 팬데믹 이전보다 약 45% 증가했다. 두 사람은 두 명의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으며, 함께 거주하는 그의 부모도 부양하고 있다.


"우리는 경력과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전략적인 선택을 해왔습니다," 비벡 트리베디는 말했다. "우리는 소비를 줄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비벡 트리베디는 로드 사이클링을 취미로 삼으며 3000달러짜리 자전거를 구입했다. 부부는 식료품비가 상승하는 것을 느꼈지만, 유기농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 그들은 여행 예산으로 1만~1만5000달러를 책정했으며, 고향인 인도로의 여행도 고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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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인들은 소득 계층을 막론하고 역대 최고 수준의 저축을 기록했다. 외출이 제한되면서 소비가 줄어든 데다,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책을 통해 추가 자금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2022년 초까지 가계가 저축한 추가 금액은 총 2조6000억 달러(3760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닥치면서 물가가 급등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치솟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팬데믹 동안 저축했던 돈을 사용했다. 하지만 상위 10%의 소득층은 대부분의 저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부유층은 또한 주식과 같은 자산의 가치가 갑자기 급등하면서 더욱 많은 부를 축적했다. 연방준비제도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말 이후 상위 20% 소득 계층의 순자산은 45%, 즉 35조 달러(약 5경원) 이상 증가했다.


반면, 나머지 80%의 순자산 증가율도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절대적인 금액 차이는 컸다. 하위 80% 계층의 순자산은 같은 기간 동안 14조 달러(약 2경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톰 쇼프는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르도에 거주하는 61세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팬데믹 이후 자신의 순자산이 약 40% 증가했다고 추산한다. 와이오밍주의 목장부터 은퇴대비 계좌에 보유한 주식까지, 그의 거의 모든 자산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그의 아내 크리스티 쇼프는 작업치료사로 일하고 있으며, 부부의 연 소득은 약 50만 달러(약 7억2000만원)에 달한다. 최근 그들은 증여세 면제 한도(1인당 1만9000달러) 내에서 두 명의 성인 아들에게 매년 증여하는 것을 시작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몇몇 친척들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우리가 왜 기다려야 하지?'라고 생각하게 됐죠." 톰이 말했다.


부부는 몇 년 후 은퇴할 때를 대비해 100만 달러(약 14억5000만원) 이상을 새 집 구입 자금으로 마련해 두었다. 그는 팬데믹 이전에 소형 비행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순자산이 증가하면 확실히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줍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분석에 따르면, 소득 상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고객들의 신용카드 및 직불카드 소비가 하위 3분의 1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소비 분야에서 지출 증가가 두드러졌다. 상위 5% 가구는 해외에서 명품 소비를 전년 대비 10% 이상 늘렸다.


"그들은 파리로 가서 명품 가방, 신발, 옷으로 가득 찬 여행 가방을 들고 돌아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연구소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틴슬리는 이렇게 말했다.


델타항공의 최고경영자 에드 배스티안은 지난달, 고급 여행에 대한 강한 수요가 올해 수익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해당 항공사의 프리미엄 좌석 판매는 8% 증가했으며, 일반석 판매 매출은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로열캐리비안은 최근 몇 달간 회사 역사상 최고의 5주간 예약 실적을 기록했으며, 고소득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유럽 리버 크루즈' 사업을 새롭게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JP모건체이스의 애널리스트 매튜 보스는 "이들 기업과 저소득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기업들 간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빅 롯츠(Big Lots)는 지난해 가을 파산을 신청했으며, 콜스(Kohl's)와 패밀리 달러(Family Dollar)는 매장을 폐쇄하고 있다. "이들은 점점 줄어드는 소비자 지출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보스는 덧붙였다.


57세의 바버라 피어스는 임팩트 투자와 자선 활동에 중점을 둔 멤버십 그룹 위민위드캐피털(Women With Capital)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참가하는 부유한 여성들 사이에서도 식료품 가격 상승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마린 카운티에 거주하는 피어스는 외식비 상승으로 인해 테이크아웃 식사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15달러짜리 샌드위치를 사고 싶지는 않아요."


피어스와 그녀의 남편은 주로 투자 수익을 통해 연간 약 30만 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들 부부는 10대 아들과 함께 지난 7월 아프리카로 3주간 사파리 여행을 다녀왔으며, 여행 비용만 약 3만5000달러(5000만원)에 달했다.


"아들이 우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많은 돈을 쓰고 있어요." 피어스는 이렇게 말하며, "지금이 그럴 때라고 느낍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앞으로 몇 주 안에 또 다른 큰 구매를 계획하고 있다. 다가올 관세 인상을 염두에 두고, 10년 된 자신의 자동차를 교체할 예정이다.

1889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지. USA투데이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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