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일러 코웬. /사진=World Economic Forum/Benedikt von Loebell (CC BY-NC-SA 2.0)
2025.03.07 13:55
온두라스의 가난한 섬 로아탄Roatán에 있는 최악의 도로를 지나면 "기업가들이 더 나은 것을 구축하도록 설계된" 자유지상주의 도시국가를 지향하는 프로스페라Próspera가 있다. 지난 1월, 버지니아주 조지메이슨대학교의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이 도시의 본부 역할을 하는 매력적인 열대 샬레chalet풍 별장 아래 야외 공동 작업 공간으로 안내받았다. 몇몇 디지털 노마드들이 입고 있던 반바지를 추스르며 그를 맞이하기 위해 일어섰다. 그중 한 명이 온두라스 정부로부터 부분적으로 자율성을 가진 프로스페라의 규제 시스템에 대해 코웬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코웬은 공손히 들은 뒤, 해안선 위로 두 마리의 갈색 새가 맴돌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로아탄에서 독수리를 뭐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누군가 그에게 알려주었다. "나와틀어를 사용하는군요." 그가 감탄하며 답했다.
일주일 내내 입었던 낡은 청바지에 자유지상주의자다운 회색 수염을 기른 61세의 코웬은 이 햇볕에 그을린 유토피아주의자들 앞에 그들의 지적 우주에서 빛나는 별처럼 나타났다. 코웬의 블로그 '마지널 레볼루션Marginal Revolution'은 억만장자들이 대화 중에 거론하는 블로그이며, 그의 책은 공항 서점에서 살 수 있으며 워싱턴에서 읽힌다. 그의 보조금 프로그램은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피터 틸의 지원을 받았다.
그들이 알든 모르든, 많은 테크 업계 구루들은 이제 코웬이 2010년대에 처음 제시했던 경제학적 분석을 받아들이고 있다. 당시 코웬은 테크놀로지가 거의 반세기 동안 미국의 성장률을 저하시켜 온 "대침체great stagnation"에서 미국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코웬은 끊임없이 책과 팸플릿을 써내 자신의 주장을 증폭시켰고 덕분에 실리콘밸리와 그 하위문화에서 독자를 찾을 수 있었다. 오늘날 그의 독자들은 정부효율부(DOGE) 직원들이다.
그러나 추종자들 사이에서 코웬은 특정한 이론보다는 광범위한 지성으로 유명하다. 간단히 말해, 그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다. 기계 학습, 아이슬란드 전설,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어디서 밥을 먹는 게 좋을지 등. "코웬과 함께 17세기 아일랜드 경제 사상가들, 또는 아프리카 음악의 트렌드, 또는 명목 GDP 타겟팅의 역사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한 토론을 할 수 있죠." 온라인 결제 회사 스트라이프의 공동 창업자인 패트릭 콜리슨이 말했다. "그처럼 깊이 있게 그렇게 많은 영역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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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웬의 블로그는 억만장자들이 대화 중에 거론한다. 그의 책은 공항 서점에서도 팔리며 워싱턴에서 읽힌다”
코웬은 덜컹거리며 프로스페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호스트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자신들에게 정말로 그 땅의 소유권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는가? 미국 투자보장협정이 그들을 얼마나 보호했는가? 도시에 대한 그들의 디자인 비전은 무엇인가? 우리가 자리에 앉았을 때, 분위기는 투자 미팅과 논문 발표의 중간쯤이었다. 창업가들이 즐겨 쓰는 어휘들이 따뜻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잔뜩 떠올랐다.
코웬의 질문 스타일은 원하는 정보에 직설적으로 접근하며, 간결하다. 수다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팟캐스트 '타일러와의 대화Conversations with Tyler'에서 유명한 기업가들은 종종 코웬의 쏟아지는 질문에 포위당하는 경험을 한다. "운 좋게도 가능한 한 많은 질문에 답할 수 있었죠." 에어비앤비, 도어대시, 레딧의 출시를 도운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의 기업가인 폴 그레이엄이 말했다. 그레이엄은 코웬이 심문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왔다고 내게 말했다. 팟캐스트 녹음이 끝나고 그레이엄은 장난을 시도했다. 그는 코웬에게 바다코끼리의 음경뼈—30센티미터 길이에 특징이 없는—를 건네며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타일러는 마치 제가 소금통을 건넨 것처럼 시큰둥하게 질문에 답하더군요." 그레이엄이 회상했다.
프로스페라에서 코웬은 하루 종일 질문을 했다. 심지어 장수에 관한 컨퍼런스에서 연설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청중 중에서 죽은 후 냉동되어 더 발전된 문명에 의한 부활을 기다릴 계획이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나? 그들은 갑자기 해동될 것을 걱정하는가? 이것이 어떻게든 채식주의에 대한 견해에 영향을 미쳤는가?
연설이 끝나고, 사람들은 흥분하여 코웬 주위에 몰려들었다.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유형이었다. 젊고, 야심차며, 자신을 "너드nerd" 또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 그들은 국가 IQ 평균과 사회주의 정부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테크 하우스와 공동생활에 대해, 배아 선택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지켜보며 나는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정과 망설임이 뒤섞인 걸 느꼈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자신의 사업계획을 피치하고 싶어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그를 감동시키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와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몰랐다. 그에게 다가온 모든 사람은 같은 문제에 직면한 것 같았다.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에게 뭘 물어봐야 할까? 각각 대화에서, 나는 질문자가 하려던 말을 멈추고 머뭇거리는 걸 지켜봤다. 코웬은 그때를 놓지지 않고 뛰어들어 그의 희생자를 열렬히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 모든 정보를 뽑아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정보를 원하는가 궁금해 하곤 했다. 코웬은 경제학자이자 공리주의자다. 그는 사람들이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에 대응하여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행동에는 측정 가능한 윤리적 결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하는 데이터 수집 대부분에는 구체적인 수익이 없다. 그는 돈을 받지 않고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 갈 법한 속도로 연구해 왔다. "타일러를 정말 좋은 GPT처럼 대하면 됩니다." 코웬의 한 친구가 조금의 아이러니도 찾을 수 없는 어조로 나에게 조언했다. 모든 것을 알고 지능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AI의 등장은 코웬의 삶의 핵심에 있는 철학적 질문만 더 날카롭게 만든다.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전 그것에 대해 과도하게 분석하지 않아요."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코웬이 나에게 말했다. "한번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농담이었지만, '난 삶의 의미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삶의 의미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는 매우 관심이 있지.'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에요."
1990년대 초, 조지메이슨대학교의 경제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알렉스 타바록Alex Tabarrok은 당시 신동이라는 평판을 가진 젊은 교수였던 코웬의 조교로 일하게 됐다. 하루는 자신의 논문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코웬의 테이블에 논문을 놓았다. 그가 나가려고 돌아서는데 코웬이 그를 멈춰 세웠다. "코웬 교수가 그러는 거예요. '아니 아니, 앉게나.' 그리고는 논문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죠. '애로우의 1945년 논문을 살펴보는 게 좋겠네.' 페이지를 넘겨요. '아니, 이건 틀렸어.' 페이지를 넘겨요. '오, 이건 좋은 지적일세.' 마치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제 논문을 그 자리에서 읽더라고요."
“코웬은 자신을 '과다독서증'이라고 부른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하루에 4~5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나는 몰래 그가 마르틴 루터의 복잡한 논문을 읽는 시간을 측정했는데 한 페이지를 읽는 데 30초가 걸렸다 ”
코웬은 자신을 "과다독서증hyperlexic"이라고 부른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하루에 4~5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나는 몰래 그가 마르틴 루터의 복잡한 논문을 읽는 시간을 측정했는데 한 페이지를 읽는 데 30초가 걸렸다. 나중에 나는 그의 옆에 앉아 그가 경제학 논문을 읽는 걸 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페이지 확인하는 듯한 속도로 논문을 읽었다.
가족의 전설에 따르면 코웬은 2살 때 스스로 읽는 법을 배웠다. 그는 뉴저지에서 자랐으며 야구 카드와 공상과학 소설에 몰두한 조용한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그는 자신의 강박적인 경향을 발산할 출구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10살 때, 그는 TV에서 바비 피셔가 보리스 스파스키를 이기는 것을 보고 체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몇 년 사이에 그는 전문 체스 강사로 일했고 15세에 사상 최연소 주 챔피언이 되었다.
코웬의 아버지는 지역 상공회의소를 운영하는 사교적인 자유지상주의자였다. 코웬이 10대 초반이었을 때, 그는 월터 그린더라는 아버지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경제학자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이었다. 그는 코웬이 이름을 댈 수 있는 어떤 저자에 대해서든 유창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전 그분의 직업적으로 더 성공한 버전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코웬은 말했다.
코웬은 새롭게 생긴 집착거리에 진정한 에너지를 쏟으면서도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최고 성적으로 가뿐히 졸업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버스를 타고 맨해튼으로 가서 뉴욕대학교의 경제학 세미나에 참석했다. 학부생일 때도 권위 있는 저널에 학술 논문을 출판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 기간을 클래식 음악에 몰두한 시기로 기억한다. 그는 박사 학위과정을 밟는 동안에도 예술, 여행, 토속 요리에 심취했고 25세에 학위를 취득했다. 하나의 집착은 또 다른 집착으로 이어졌다. 그는 아이티에 갔다가 아이티 예술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가 그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전문가는 멕시코 원주민의 나무껍질 그림도 수집했다. 결국 그는 600달러(80만원)짜리 택시를 타고 멕시코의 작은 산골 마을 산아구스틴오아판San Agustín Oapan을 찾게 됐다. 곧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있는 코웬의 교외 주택을 장식하던 아이티 부두교 미술품 옆에 밝은 색상의 꿈 그림들이 자리잡았다.
조지메이슨에 자리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웬은 커밀 팔리아Camille Paglia의 '섹슈얼 페르소나Sexual Personae'를 읽었는데 이는 수천 년에 걸친 서양 예술에 관한 대담한 비판서였다. 그는 팔리아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자신이 쓰고 싶은 종류의 책이라는 걸 알았다. 몇 달 안에 그는 시장과 고급문화에 관한 활기차고 대중적인 역사서의 초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2003년 그와 타바록은 '마지널 레볼루션'이라는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타바록이 소박한 자유지상주의자—호전적이고 정치적으로 읽기 쉬운—였다면, 코웬은 늘 좀 더 모호했다. 그는 보호무역주의가 파인다이닝을 어떻게 해치는지나 얀 베르메르(네덜란드 화가)를 논의하면서 베스트팔렌 조약을 언급할 수도 있었다. 둘은 이런 농담을 했다. 블로그 게시물이 당신을 화나게 하면 그것은 알렉스가 쓴 것이고, 당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면 그것은 타일러가 쓴 것이다.
코웬이 현대 경제사에 대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었던 독자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코웬의 커리어 초기에 영국 철학자 데릭 파핏Derek Parfit은 코웬에게 사회적 할인율social-discount rate에 관한 논문을 함께 쓰자고 요청했다. 사회적 할인율이란 여러 해에 걸쳐 이익을 제공하는 사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정책 도구다. 미래의 재화는 현재의 재화보다 덜 시급하고 더 불확실하기 때문에, 정부는 더 먼 미래에 오는 이익일수록 그 이익을 '할인'한다.
파핏과 코웬은 이것이 도덕적 부조리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할인율을 5%로 설정하면 내년의 통계적 사망 한 건은 400년 후의 사망 10억 건보다 더 중요해진다." 그들은 썼다. 그들은 할인율이 도덕적으로 일관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그 결과가 언제 발생하든 상관없이 우리 행동의 알려진 결과에 대해 동등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입장의 표준적인 결론은 기후변화에 대한 더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웬은 이것의 경제 성장에 대한 함의를 파고들었다. 결정적으로, 성장의 이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리로 증가한다. 특정 해에 GDP 성장 1% 달성에 실패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가 100년 동안 1% 성장률 달성에 실패했다면 그 피해는 단순히 달성하지 못한 성장의 합보다 훨씬 클 것이다. 지금의 GDP 성장에서 무언가를 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 세대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코웬이 볼 때, 경제 성장은 그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필수적이다.
“그는 이 시기를 "대침체"라고 불렀는데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문화적이었다. 과학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자는 것이었다 ”
2011년, 코웬은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미국이 드러나지 않은 성장 상실의 위기를 겪었으며 이는 새로운 기술 발전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디지털 팸플릿을 출판했다. 그는 이 기간을 "대침체"라고 불렀고 경제적 해결책보다는 문화적 해결책을 제안했다. 과학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자는 것이었다. 전자책은 너무 성공적이어서 서둘러 인쇄에 들어가야 했다. 큰 아이디어에 관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코웬은 GDP 상승에 따른 이익이 생겼을 때,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가지는 않을 것임을 인정했다. 그의 후속작 '평균은 끝났다Average is Over'에서 그는 미국이 두 개의 국가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테크의 이익으로 부유해진 번영하는 계층이 있는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있는 나라다. 소외된 사람들은 초부유층을 위한 하인과 서비스 제공자로서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그는 이 새로운 체제를 "하이퍼 능력주의hyper-meritocracy"라고 불렀다.
2010년대 초반, 코웬은 친구들을 통해 웨스트코스트의 하이퍼능력주의자들 사이에 많은 팬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코웬은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로 여행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창출하는 엄청난 부의 분출 모두에 압도되었다. 그는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를 만났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벤처 캐피털리스트 중 한 명인 마크 앤드리슨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그는 테크에 대해 더 많이 블로깅하고 인터뷰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는 피터 틸과의 '대화'였다. 실리콘밸리는 거품과 유행에 취약할 수 있지만 또한 코웬처럼 쉴 새 없이 정보를 습득하는 만물박사를 조용히 공포에 몰아넣는 지적 안일함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코웬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가 지금까지 만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4시간 떨어진 곳에 살다가 갑자기 그곳에 갈 수 있게 된 것과 같달까요." 그가 내게 말했다.
만약 이 기간이 실리콘밸리가 가장 좋아하는 경제학자로서의 그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면, 그것은 또한 그의 사고방식도 변화시켰다. 이 시점까지 그의 연구 작업은 상당수는 시장이 평균적인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포인트를 바꿔, 비범한 인간이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보조금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대니얼 그로스Daniel Gross와 함께 그들을 발견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썼다.
코웬은 다른 것도 발견했다. 자신이 이제 유명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테크 업계에서, 그는 자신이 하는 일—그는 그것을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정리하고, 흡수하고, 큐레이팅하는 것으로 설명했다—에서 "최고"로 받아들여졌다고 내게 말했다. 코웬은 허영심 강한 사람이 아니다. 초연한 태도로 자신의 명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알렉스 호놀드Alex Honnold 같은 인물이에요." 그는 자연적인 아드레날린 결핍으로 인해 대담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미국의 암벽 등반가를 언급하며 말했다. "저는 그가 그 분야에서 최고인지조차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그것 때문에 상징적인 인물이 된 사람이죠, 안그래요?" 그의 말은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경제학자나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유명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타일러 코웬이라는 이유로 유명했다.
온두라스의 도시 코마야과의 골목길에 있는 나무 문에는 종이 조각에 손으로 쓴 표지판이 있었다. 5렘피라(300원)에 목욕을 할 수 있었다. 그 두 배를 내면 목욕을 하고 종이 타월도 살 수 있었다. 코웬은 그것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이게 비용인가요?" 그가 물었다. "아니면 가격 차별인가요?"
모든 학문을 날것의 데이터raw data를 사용 가능한 정보로 조직화하는 체계로 간주할 수 있다면, 경제학은 가장 많은 생산적 투입을 허용하는 과목처럼 보인다. 코웬의 야망은 경제학적 사고 방식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인센티브, 수요 곡선, 마진을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가 더 나은 삶과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지에 대해—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분명 그는 자신의 삶에도 매우 활발하게 경제적 분석을 적용해 왔다. 코웬은 예술, 문학, 음식과 같은 매우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포함한 인간 경험의 모든 측면에 대해 조언을 제공한다. 코웬의 블로그에 "방법how to"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예술 수집을 시작하는 방법, 인도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는 방법, "유카탄과 킨타나루에서 잘 식사하는 방법" 등을 설명하는 다양한 상세 목록이 나온다. 아마도 역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을 양적 용어로 평가하기 위해 코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역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을 양적 용어로 평가하기 위해 코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코웬이 모든 일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정도는 그 수익률에 비해 불균형해 보일 수 있다.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 외곽의 공항에서, 그는 어디를 가든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소지품을 배치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5년에 한 번쯤 여권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거예요." 그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우리는 엉뚱한 비행기에 탑승할 뻔했다.
온두라스 위를 날면서, 그는 코를 창문에 대고 내륙의 구겨진 갈색 산들을 바라보았다. 20세기 초, 온두라스는 다국적 과일 회사 세 개의 영지였다. 국가는 빼앗은 토지를 이 기업들에게 대규모로 팔았고 기업들은 토지를 개발하겠다는 공허한 약속을 했다. 곧 온두라스에는 제대로 작동하는 철도 시스템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 철도는 나라의 수도에 정차하지 않았다. "그들이 꼭 사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온두라스를 개발하는 게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아니었죠." 코웬이 말했다.
미국의 부와 권력에 가깝다는 사실은 온두라스에겐 양날의 칼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은 자국의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온두라스에 개입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코카인 수요는 온두라스 내 갱단 폭력의 극적인 증가를 촉진했다. 빈곤은 지속적이다. 해외에서 일하는 온두라스인들의 송금은 GDP의 4분의1에 해당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북쪽으로 이주하고 있다. 코마야과에서 본 어느 입간판은 멕시코를 위한 "비자 서비스"를 광고했다. 코웬은 그것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실제로 무슨 의미인지 우린 알죠." 그가 말했다.
거의 해질녘이었고 상점들은 문을 닫고 있었다. 이곳의 집들은 색깔은 화려하지만 무너지고 있었으며 모든 열린 부분에는 두꺼운 안전 창살이 설치되어 있었다. 검은 덩굴처럼 엉킨 고무 케이블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우리는 마을의 유일한 관광객이었다. 길을 걷는 동안 코웬은 구멍이 뚫린 보도를 뛰어넘었고, 때때로 다가오는 차량을 피하기 위해 놀라운 속도로 재빨리 몸을 피했다다. 그는 마약 전쟁이 왜 희망이 없는지, 그리고 왜 온두라스가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같은 이웃 국가들과 달리 최근 수십 년간 내전을 면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기대하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아닐 겁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생각을 가다듬고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죠."
마을의 중앙 광장에서는 가족들이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이 내려다보는 우아한 석조 분수 주위에 앉아 있었다.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고 누군가 연주대 옆에서 분홍색 풍선을 팔고 있었다. 낡은 크록스를 신은 이가 하나도 없는 남자가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를 수제 지팡이로 사용하며 지나갔다. 전체 광경은 분주하고 명랑했지만, 절망감이 그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의 사람들이 다른 곳보다 소득을 행복으로 더 효율적으로 전환한다는 일부 증거가 있어요." 코웬이 말했다. 잠시 후, 고무 바퀴가 달린 네온 핑크색 열차가 아이들을 광장 주위로 계속해서 나르기 시작했다.
나는 코웬에게 물었다. 완벽한 중앙아메리카 광장의 기준은 무엇인가? 코웬에게 묻게 되는 질문이란 이런 것이다. 그는 우리 주변의 광경에서 디테일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음악, 나무, 교회, 분수, 노는 아이들. "좋은 풍선도요." 그는 풍선 노점상을 인정하듯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가 주변의 활용 가능한 디테일들을 갖고 즉흥적으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상적인 광장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기존 모델과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걸 대비해서 말하고 있는지 정말로 분간할 길이 없었다.
코웬은 일상의 부드러운 피부가 경제학이라는 골격을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 이것이 그가 레스토랑에 대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는 이유 중 하나다. 레스토랑은 인간의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교과서처럼 명확한 시장 메커니즘이 전략적 기회들과 교차하는 장소다. 코웬은 지금껏 너무 많은 레스토랑 추천을 썼기 때문에—그의 '토속 식당 가이드'는 현재 31번째 판까지 나왔다—그는 AI에게 자신의 조언을 자동화하도록 요청하기 시작했다. 어느 오후, 나는 그가 호텔 로비에서 아이패드를 얼굴에 가까이 들고 챗GPT에게 "타일러 코웬이라면 이 근처 어디에서 저녁 식사를 어디서 하라고 추천할까요?"라고 묻는 것을 발견했다. 섬 맞은편에 있는 일련의 프라이드 치킨 레스토랑이 나타났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실망한 소리를 냈다. 다 그가 아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코웬의 이메일은 그 자체로 그리스 신화급의 노동이다. 그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만약 낯선 사람이 크리스마스에 그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면 그는 당일, 아마도 한 시간 내에 답장할 것이다”
코웬의 이론 중 몇 가지는 사람들이 왜 무언가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차원에서 오해하는 것 같다. 그는 기회비용을 유용하게 활용하라고 독자들에게 조언하는데 이를 테면 전화 통화 약속 시간을 영화 중간 쯤으로 잡으라는 것이다. 일정을 재조정할 필요가 없다면 그 영화는 끝까지 볼 가치가 없는 것이다. 디저트는 처음 몇 입 이후 한계효용이 감소한다. 마지막 80%는 그저 무의미한 칼로리일 뿐이니 먹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에게 이러한 활동들의 감성적이고 의례적인 측면은 그것이 제공하는 쾌락과 명확하게 분리될 수 없다. 코웬이 이러한 분석에 열심인 까닭은 그의 독특한 심리적 성향 때문이다. 하지만 코웬을 제외하고 정말로 영화관에서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디저트 뷔페의 효용을 분석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
2018년부터 코웬은 훌륭한 레스토랑 추천보다 더 큰 공익적 개선을 제공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는 이머전트벤처스Emergent Ventures(EV)라는 보조금 프로그램을 통해 수백만 달러를 지급했는데, 이는 젊고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펀딩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 지원자들이 코웬에게 자신의 계획에 대한 설명을 보내면 그는 몇몇을 인터뷰에 초대한다. 만약 그들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다면 그들은 며칠 내에 필요한 펀딩을 받는다. 뭔가 새로운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펀딩의 세계에서 EV는 혁명적이다. 유럽연합(EU)이 운영하는 명망 있는 펀딩 프로그램인 호라이즌유럽Horizon Europe의 보조금은 지원 마감부터 273일이 지나야 지급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코웬과 스트라이프 창업자 콜리슨은 연구 펀딩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보조금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두 사람은 더 큰 기관들이 대응하기 전에 수백만 달러를 모아서 지출했다. 큰 보조금 하나는 코로나19 타액 검사를 개발한 앤 와일리Anne Wylie에게 돌아갔다. 와일리는 예일 공중보건대학원의 연구원으로 2020년에 310억 달러(약 45조원)의 기부금을 가진 대학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21세기의 가장 치명적인 공중보건 위기 속에서 코웬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1843매거진은 예일에 질의를 보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
이 펀딩 프로그램은 웨스트코스트에서 코웬에게 더 큰 관심과 존경을 갖게 만들었다. 굼뜬 공무원이 아닌 지적인 슈퍼 엘리트가 이끌어서 훨씬 더 잘 돌아가는 것 같은 일의 또다른 사례였던 것이다. 지적인 측면에서 코웬의 프로그램은 정부효율부(DOGE)와 공통점이 있지만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와 달리 코웬의 프로그램은 뭔가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실험에 더 관심이 있다.
EV는 '문샷' 프로젝트 즉 세계를 바꾸는 고(高)임팩트 방법을 찾는다는 걸 강조한다. 예를 들어 코웬이 펀딩한 형사법 비영리단체인 레시디비즈Recidiviz가 있다. 이 단체는 데이터 도구를 사용하여 가석방 자격이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수감자 7만 명을 가석방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펀딩을 받은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 많은 보조금이 최대 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지 않음이 뚜렷해진다.
뉴욕에 사는 박사후 연구원인 울카르 아가예바는 코웬의 보조금 중 하나에 지원했는데 그가 클래식과 아제르바이잔 전통을 융합해 작곡한 음악의 레코딩을 위해서였다. 수바이타 라만은 생활비 보조금을 받아서, 보스턴의 테크하우스1에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일부 보조금은 코웬이 그저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의 저술에 주어진 것 같았다. 자유주의와 마드리드에 관한 책, 코웬의 맥락에서 존 밀턴의 삶과 작품에 관한 책, 블랙홀에 관한 책. 코웬이 전업으로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헌신은 그의 삶의 역설을 더 깊게 만든다. 그는 뚜렷한 실용적 용도가 없어 보이는 지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지를 강박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코웬은 EV를 "저低 고정비용" 프로그램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코웬 스스로가 작업 대부분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지원서는 수시로 접수된다. 온두라스 내륙을 가로지르는 택시에서 코웬의 어깨 너머로 그의 화면을 훔쳐봤는데 지원서가 한 번에 40~50통씩 의욕을 꺾는 수준의 양으로 쏟아지는 걸 봤다. (코웬의 이메일은 그 자체로 그리스 신화급의 노동이다. 그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만약 낯선 사람이 크리스마스에 그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면 그는 당일, 아마도 한 시간 내에 답장할 것이다.)
일년에 한 번, EV 보조금 수혜자들은 버지니아에서 열리는 '언컨퍼런스UnConference'에 초대되는데, 사람들이 어울리고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적인 배양 접시로 기능하게끔 구성됐다. 사전 준비나 일정 없이, 원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무작위로 배치된 토론 그룹에서 대화가 진행된다. 저녁에는 버스를 타고 코웬이 좋아하는 레스토랑 중 하나로 이동한다. 참석자들은 그가 열정적인 젊은이들이 길게 앉은 테이블 가운데에 행복하게 앉아 있곤 했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코웬에게 그의 보조금 프로그램(EV)이 그의 다른 일들과 어떤 다른 형태의 보상을 제공하는지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그가 답했다.
“"우파의 많은 사람들이 미쳐버렸어요." 코웬이 여행 초반에 내게 말했었다. 사실 그는 그 이야기를 자주 했다. 코웬은 항상 더 많은 이민을 선호했고 도널드 트럼프에 반대했다. ”
코웬이 한 일의 상당 부분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종종 이것이 그들로부터 배우려는 열망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과 접촉하고자 하는 보다 근원적인 욕구 때문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코웬의 가까운 친구들 대부분은 조지메이슨대학교의 동료들인 것 같다. 내가 대화한 몇몇 지인들은 코웬에게 경외심을 갖고 있었지만 가용한 시간 안에서 최대한 가치를 추출하는 데 혈안이 된 사람이 왜 그들과 친구가 되기로 선택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코웬의 30년 지기인 브라이언 캐플런이 내게 말했다. "그가 하는 일을 생각하면 믿기 어렵지만 정말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그가 사람들을 모르는 행사에 있을 때 본 적이 있어요. 그냥 제 옆에 앉기를 선호하더라고요." 내가 코웬에게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공동체의 부재를 느꼈는지 물었을 때, 그는 약간 굳어졌다. 그는 공동체가 과용된 단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맞아요. 지금 상황이 더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그에겐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연락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엄청난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말했다. "억만장자들도 그런 특권은 없죠."
코웬의 감성적 생활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는 후회를 경험하지 않는다고 내게 말했다. "후회가 무슨 기능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말했다. "내가 사려깊다는 걸 보여주는 신호인가요? 추가적인 실수를 막기 위한 것인가요? 복수 같은 거예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코웬은 또한 질투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질투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는 혼자 있을 때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그걸 왜 신경 쓰죠?"라고 말했다.
그가 우울한 적이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무슨 의미인지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임상적으로 우울한 적이 없었나? 한 달 동안 우울했던 적은? 일주일 동안은? 오후 한때는? 나는 노트에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이제껏 본 적 없는 엄청난 미소가 코웬의 얼굴 전체에 퍼져 있었다.
"오후 내내요?" 그가 크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날, 우리는 빽빽한 숲이 우거진 언덕을 넘어 해변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녹슨 요트가 작은 나무 부두에서 우리를 픽업했다. 우리는 점심 먹을 곳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만을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건물은 물 위로 튀어나온 허름한 나무 플랫폼이었다.
우리가 그 옆에 배를 대고 하선할 준비를 할때가 돼서야 나는 그곳에 걸려 있던 현수막을 알아챘다. "트뤼도 꺼져" 현수막 하나에 쓰여 있었다. "트럼프 2024: 미국을 다시 구하자" 다른 현수막이었다. 바 위의 표지판에는 현금, 비트코인, 금과 은을 모두 받는다고 써있었다. 골동품 대포 두 문이 근처 갑판에 놓여 있었다.
바를 지키는 남자는 긴 회색 포니테일과 금니를 갖고 있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머그샷이 인쇄된 검은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적어도 첫 번째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는 마약에 취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방 입구 옆에는 얇은 회색 줄이 목에 묶인 분홍색 얼굴의 카푸친 원숭이가 앉아 있었다.
"우파의 많은 사람들이 미쳐버렸어요." 코웬이 여행 초반에 내게 말했었다. 사실 그는 그 이야기를 자주 했다. 코웬은 항상 더 많은 이민을 선호했고 도널드 트럼프에 반대했다. 그의 글에서 코웬이 정치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는지 즉시 명확해지는 거의 유일한 경우는 그가 자신의 자유지상주의를 그가 "신우파new right"라고 부르는 것과 거리를 두려고 시도할 때이다. 코웬식 고전적 자유지상주의는 인간 자율성의 원칙을 기반으로 상향식으로 구축된 세계관이며, 전통적으로 약물 합법화, 높은 수준의 이민, 그리고 무복지 국가를 지향한다. 이런 사상은 이제 정치에서 진귀한 것이 됐다. 진정한 고전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으며 자유지상주의 사상의 주류가 편협하고 거친 내셔널리즘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에 절망한다. 그러나 코웬은 두 그룹을 여전히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본다.
코웬은 지치지 않고 바텐더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주변의 집값은 어떤가요? 팬데믹 봉쇄(락다운) 기간 동안 문을 닫았나요? 근처 마을 존스빌에서 락다운이 있었나요? 업주는 정부들이 어떻게 모든 곳에서 사람들의 사업에 간섭해 왔는지에 대해 불평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바뀌고 있죠." 그가 말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세요?" 코웬이 물었다.
"아마도 코로나19일 거예요." 주인이 말했다. "사람들은 정부가 어떻게 그들을 제거하려고 하는지를 깨달았죠."
커다란 눈에 몸을 떨고 있는 치와와가 부엌에서 나와 원숭이와 놀기 시작했다.
"저 개와 원숭이는 사이가 좋나요?" 코웬이 물었다.
"우리 원숭이는 모두와 잘 지내죠." 이제 원숭이를 들어 올려 아기처럼 품에 안은 바텐더가 말했다.
"원숭이가 무나요?"
"이빨이 뭐 때문에 있겠어요?"
우리가 해안으로 돌아왔을 때, 코웬은 평범하고 버려진 마을을 보며 미소 지었다. "나는 존스빌에 대해 롱long입니다." 그가 따뜻하게 말했다. (그는 종종 장소와 사람들에 대해 마치 그들이 당신이 매수하거나 매도할 수 있는 주식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는 "왜 신경 써?"라고 말하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택시는 시지푸스가 헐떡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언덕 꼭대기를 향해 힘겹게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가 차에서 내려야 하나라고 중얼거렸다. "괜찮을 거예요." 코웬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집 근처 코트에서 농구 하는 걸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농구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코트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제 20년째 농구를 했다. 효율적인 운동 방법이고 날씨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나는 그에게 수십 년 동안 혼자 농구를 하면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뭔가를 오랫동안 하더라도 여전히 능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그가 말했다. 택시는 아래로 마끄러지기 시작했다.
PADO는 피터 틸부터 네트워크 국가, 효율적 이타주의까지 실리콘밸리에 사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과 조류를 계속 조명하고 있습니다. 조지메이슨대학교의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 또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학자인데 때마침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1843매거진에서 2월 28일 타일러 코웬에 대한 훌륭한 프로필 기사를 실어 소개합니다. 코웬은 기본적으로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이지만 문학, 미술, 음악부터 미식에 이르기까지 실로 어마어마한 교양을 가진 인물(혹자는 코웬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이기도 해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걸 제쳐두고라도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비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리신다면, 15세 때 뉴저지에서 최연소 체스 챔피언이 됐고 하루에 책 4~5권을 완파한다는 코웬의 이 프로필 기사를 매우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