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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나'를 잃기 전에 안락사를 택하려는 환자들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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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이레네 메켈은 조력사를 원한다.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2025.03.21 16:01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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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심리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너먼은 2024년 3월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사실은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택했다는 사실이 지난 주말 밝혀져 논란이 됐습니다. 카너먼 본인은 사망 전까지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배우자가 혈관성 치매로 오래 고통받았다는 사실이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조력사(안락사)가 불법입니다만 여론은 입법에 호의적이며 작년에도 관련 입법안이 발의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사회 내에서 충분한 논의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알츠하이머병 등을 비롯한 치매 환자의 조력사 문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사안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월 16일 치매 환자의 의료적 조력사가 합법인 극소수의 국가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사례를 깊이 파고든 기사를 발행했는데 앞으로 관련 논의가 커질 수 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곧, 이레네 메켈은 자신이 죽을 날을 선택해야 한다.


서두르지는 않는다. 사실 그는 자신의 삶을 좋아한다. 바다 근처의 네덜란드 마을 카스트리쿰Castricum에 위치한 그의 집은 깔끔하고 바람이 잘 통한다. 뒷마당에는 꽃이 자라고 있으며 인근 거리에는 상인과 고객이 모두 서로를 잘 아는 시장이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이 원하는 방식대로 끝나려면, 그가 원하는 것보다 더 빨리 날짜를 정해야 할 것이다.


"비극이죠." 그가 말했다.


82세인 메켈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 1년 전에 진단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인지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음을 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안다. 그는 오랫동안 간호사로 일했으며, 혈관성 치매를 앓던 여동생을 돌봤다. 지금은 세 자녀가 거실 구석에 있는 큰 화면을 통해 날짜와 약속을 원격으로 알려주는 방식으로 생활을 겨우 관리해나가고 있다.



조만간,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게 안전하지 않게 될 것이다. 작년 8월 심하게 넘어져 팔꿈치가 부러진 일이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자녀들과 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자녀들도 각자의 직업과 각자의 자녀들 때문에 바쁘다. 그는 절대 요양원에는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에게 요양원에 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존엄성의 상실이었다. 네덜란드 시민으로서 그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점에 도달했을 때 의사가 생명을 끝내도록 도와달라고 법적으로 요청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그는 의학적 조력사를 신청했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기 직전이었던 2023년, 메켈은 네덜란드자발적생명종료협회Dutch Association for Voluntary End of Life가 주최한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명시한 사전 요청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배웠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euthanasia라고 부르는 것을 요청할 조건도 적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과 손주들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대화를 나누지 못하거나,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없을 때로 결정했다.


그러나 메켈의 담당 의사는 메켈의 사전 의료지시서를 읽고서, 자신이 안락사를 지지하지만 안락사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의 의사표시 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 안락사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메켈의 집 창틀에 놓인 꽃.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메켈의 집 창틀에 놓인 꽃.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메켈이 자신의 책상에서 매일 기록하는 일기장.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메켈이 자신의 책상에서 매일 기록하는 일기장.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에콰도르부터 독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죽음에 대한 의학적 지원을 합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 대부분에서, 이 절차는 말기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


네덜란드는 치매 환자를 위한 사전 요청에 의한 의학적 조력사를 허용하는 단 네 개의 국가(그리고 캐나다 퀘벡 주)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인구가 고령화되고 의학적 개입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적 쇠퇴를 경험할 만큼 오래 살게 됨에 따라, 치매에 대한 조력사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지지를 얻고 있다.


네덜란드 대중은 치매 환자의 조력사 권리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네덜란드 의사들은 이를 제공하기를 거부한다. 더 이상 자신의 의사를 확인할 인지 능력이 없는 사람의 생명을 끝내는 데 따르는 도덕적 부담이 감당하기에 너무 무겁다고 느끼는 것이다.



메켈의 의사는 그를 헤이그에 있는 안락사전문센터Euthanasia Expertise Center로 의뢰했다. 이곳은 네덜란드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안락사를 제공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를 훈련시키고 환자들을 요청을 조사하며, 적격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의사가 안락사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에 환자에게 조력사를 제공할 의료팀과 연결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이들 의사조차도 사람이 정신적 능력을 상실한 후에 안락사를 제공하기를 꺼린다.


작년에는 센터의 의사와 간호사가 3개월마다 메켈을 만나 차를 마셨다. 그들은 메켈이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짓기 원하는지 논의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메켈은 그들이 실제로 자신의 정신적 능력이 얼마나 빨리 쇠퇴했는지 모니터링하고 있음을 알았다. 평범한 다과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메켈은 말했다. "그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요."


베르트 카이저 박사는 매우 특별한 순간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른바 "자정 5분 전five to 12"으로, 사람이 죽음을 원한다는 이성적인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능력을 상실하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을 의미한다. 이때가 되면 의사, 환자 및 그들의 간병인은 죽음의 시간을 맞추기 위한 민감한 협상에 참여한다. 그는 메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완전히 인식하고 있는 동안 자신의 삶을 종료해 달라는 메켈의 요청을 이행할 생각이다.


즉, 치매가—다른 많은 환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너무 심해져 메켈로 하여금 자신의 정신이 온전하다고 여기도록 만들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의사 베르트 카이저는 메켈이 자신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완전히 알고 있을 때에만 조력사 요청을 이행할 것이다.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의사 베르트 카이저는 메켈이 자신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완전히 알고 있을 때에만 조력사 요청을 이행할 것이다.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이 순간은 발견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그가 말했다. "왜냐하면 의사와 환자 둘 다 예후가 어떻고 상황이 어떻게 발전할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끔찍한 일을 위한 적절한 시간을 찾는 게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메켈은 이 협상 과정이 너무나 힘들다. 이런 협상 과정은 그저 돌봄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고통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생각,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는 것이 고통이라는 생각, 존엄성의 상실이 고통이라는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누구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나, 그는 묻는다. 자율성의 상실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보는 현재의 이레네 메켈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음식을 먹이고 옷을 입혀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더 이상 불행감을 느끼지 않거나, 혹은 더 이상 자신이 불행하다는 걸 전달할 수 없는, 진행된 치매를 가진 미래의 이레네인가.


네덜란드의 1800만 국민 중 50만 명 이상이 그와 같은 사전 요청 문서를 주치의에게 제출해 놓았으며, 인지적으로 자신들이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지점까지 쇠퇴할 경우 의료적 조력사에 대한 그들의 요구사항을 명시적으로 서술해 놓았다. 이런 요구사항을 기술한 대부분은 사전 요청을 해놓으면 치매가 진행될 경우 그들의 배우자, 자녀 또는 간병인이 그들의 삶이 끝나야 할 순간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매년 발생하는 9000건의 의료적 조력사 중, 정신적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을 위한 것은 단 6~7건에 불과하다. 압도적 다수는 말기 질환, 주로 암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한참 적은 소수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나 난치성 우울증과 같이 말기는 아니지만 급성 고통을 유발하는 사람들을 위한 경우다.


네덜란드의 경우 의료적 조력사가 합법인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조력사의 법제화가 의회의 입법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아닌 의사들의 추진으로 법제화가 이루어졌는데 네덜란드 의사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할 것이고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강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정 5분 전'은 "참을 수 없고 치유 불가능한 고통"의 상황에서 의사들이 생명을 종료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기 위해 형법이 개정된 이후 23년이 지나 등장한 실용적인 타협안이다.


아들 멜키오르와 함께 있는 메켈.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아들 멜키오르와 함께 있는 메켈.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충격

체구가 작고 활발한 메켈은 진단을 받기 전부터 한동안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고 의심했다. 사소하지만 불안한 징후들이 있었고, 그러다 큰 사건이 생겼다. 어느 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는데 45년 동안 살았던 거리에서 단 한 채의 집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현관문도 식별하지 못했다.


그때 그는 계획을 세울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장은 요양원에 대한 생각, 누군가가 옷을 입혀주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게 해주고, 그들의 세계가 요양원 병동 끝에 있는 일광욕실로 축소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자신의 의지를 잃고, 더 이상 독립적이지 않을 때 — 제겐 그게 악몽이에요." 메켈이 말했다. "차라리 죽어버릴 거에요."


그는 인지능력이 봄날 아침 정원 위의 안개처럼 부지불식중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러한 상실이 일어나기 전에 카이저 박사에게 자신의 생명을 끝내달라고 미리 요청해야 한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 일정이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한 그의 고통은 당연한 반응이다.


메켈의 집 거실에 걸린 시계.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메켈의 집 거실에 걸린 시계.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메켈의 정원에 온 이웃집 고양이.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메켈의 정원에 온 이웃집 고양이.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피터 스틱터 박사는 요양원과 안락사전문센터의 컨설턴트로 일하는 노인병 전문의로, 충격을 받은 환자들에게 그들이 신중하게 작성한 사전 지시서가 기본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설명해야 할 때가 많다.


"제가 그들에게 처음 하는 말은 '죄송합니다. 그렇게 되진 않습니다'예요." 그가 말했다. "정신적으로 무능력한 상태에서 조력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이제 그런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자신들도 치매를 앓는 부모를 돌본 경험이 있는 환자들은 자신의 사전 지시서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되거나, 실금이 생기거나incontinent,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고 싶지 않다고 명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다도, 만약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내심 있게 미소 짓고 있다면, 비록 그 사람이 이전에 그 상황을 사전 지시서에 설명했더라도, 그 순간에 그것이 환자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고 확신하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스틱터가 말했다.


사전 지시서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쓰는 것은 "'내가 내 자녀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점에 이르면'입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알아본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 사람의 이름을 아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 사람이 방에 들어왔을 때 크게 미소 짓는 것인가요?"


'자정 5분 전'은 의사들에게 부과되는 부담을 도덕적으로 견딜 수 있게 만든다.


"안락사를 실시해야 하는 사람은 의사죠." 따뜻하고 날렵한 44세의 스틱터가 말했다. "제가 그것을 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고통스럽지 않아야 합니다."


네덜란드에서 조력사 사전 요청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꼭 거론되는 사례가 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커피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016년, 74세의 치매 환자에게 안락사를 제공한 의사가 안락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일이 있었다. 환자는 4년 전에 자신이 요양원에 들어가야 하게 되면 안락사를 원한다는 사전 지시서를 작성해둔 상태였다. 환자의 가족이 정한 날에 의사는 환자에게 진정제가 든 커피를 줬고 그 다음 보다 강한 진정제를 투여했다. 그러나 환자의 심장을 멈추게 만드는 약물을 주입하려던 와중에 환자는 깨어나 저항했다. 의사가 안락사를 마치기 위해 환자의 남편과 자식들이 환자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의사는 2019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사는 환자의 사전 요청이 의사가 안락사를 실시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자가 죽어가는 동안 가족이 환자를 저항 못하게 붙들고 있었다는 데 대한 대중의 반발은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네덜란드 의사들의 결심을 더욱 굳혔다.


피터 스틱터 박사. 헤이그 소재 안락사전문센터의 정원에서.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피터 스틱터 박사. 헤이그 소재 안락사전문센터의 정원에서.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참을 수 있는 고통, 참을 수 없는 고통

스틱터는 결코 조력사를 제공하리라 가정하고 사례를 맡지 않는다. 인지적 쇠퇴는 유동적인 것이며 참을 수 있는 고통과 참을 수 없는 고통의 경계도 마찬가지로 유동적이다.


"환자가 원하는 것을 반영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게 목표지만 환자가 뭘 원하느냐는 항상 바뀔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누군가는 '미래에 안락사를 원해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순간이 왔을 때는 다릅니다."


스틱터는 몇 년 전 헹크 자위데마에게 이를 설명했다. 타일 설치공이었던 자위데마는 57세에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운전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일을 중단하고 그의 주된 취미였던 빈티지 모토크로스 바이크를 포기해야 했다.


무뚝뚝하고 금욕적인 가장이었던 자위데마는 더 이상 아내를 부양하거나 가족을 돌볼 수 없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고, 그는 질병으로 인해 완전히 의존적인 상태가 되기 전에 의학적 조력사를 구할 것이라고 가족에게 말했다.


그의 주치의는 그가 죽는 것을 도울 의향이 없었고, 그 병원의 모든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의 딸 프라우키에는 안락사전문센터를 찾았다. 스틱터가 그의 사례를 맡게 되었고 흐로닝언 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매달 30분을 운전하여 농촌 마을 보엘렌슬란에 있는 자위데마의 집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피터(스틱터)는 아버지에게 매우 분명하게 말했어요. '당신이 언제인지 저에게 말해줘야 해요.'" 프라우키에 자위데마(자위데마의 딸)가 말했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죠. 아버지가 결정을 내려야 했으니까요."


병이 깊어지면 그의 판단력을 손상시킬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이 멀쩡하다며 자신의 정신적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이해하자, 자위데마는 빠르게 몇 달 안에 죽을 계획을 세웠다. 가족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에게는 이유가 분명했다. "하루라도 늦게 가는 것보다 일 년이라도 일찍 가는게 낫다"고 그는 했다.


스틱터는 자위데마에게 그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무엇일지 분명히 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그렇게 늙어가는 게 왜 그렇게 나쁘죠?'고 물었어요." 프라우키에 자위데마가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왜 요양원에 가는 것이 그렇게 나쁘죠? '고통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제 생각과 다르니, 왜 이것이 그렇게 고통인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어요."


그의 과묵한 아버지는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마침내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잃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사람들을 도울 수 없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내 어린 손주들과 더 이상 혼자 있을 수 없게 되면 고통스러울 겁니다. 이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아요... 내가 겉으로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무시하시고, 내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온전히 있는 이 모습을 돌아봐 주세요."


치매의 진행은 예측할 수 없으며 자위데마는 급격한 쇠퇴를 겪지 않았다. 결국 스틱터는 1년 반 동안 매달 그를 방문했고 둘은 서로 신뢰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프라우키에 자위데마(딸)가 말했다.


스틱터는 2022년 9월 의학적 조력사를 제공했다. 당시 59세였던 자위데마는 거실 창가 근처의 침대에 누워 있었고 아내와 자녀들이 곁에 있었다. 그의 딸은 스틱터를 "진정한 영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의사로부터 조력사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더 일찍 자살했을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헹크 자위데마의 의자.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헹크 자위데마의 의자.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틱터는 그들이 갖지 못한 시간에 대해 아쉬워한다. 만약 사전 지시서가 법에 정의된 대로 작동했다면—'자정 전 5분' 순간을 놓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면—그의 아버지는 더 많은 시간을, 집에 있는 넓은 녹색 잔디밭에 앉아 손주들이 축구공을 차는 것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그의 발치에 있는 개와 함께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손자와 함께 강둑에 앉아 물 속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었을 거예요." 프라우키에 자위데마가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때일렀다는 그의 기분은 아버지가 원하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데 대한 감사함을 능가하지 않는다. 에라스무스 대학병원의 아그네스 반 데르 하이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위데마의 다른 가족도 딸과 같은 생각이라고 한다.


"네덜란드 인구의 대다수는 안락사와 관련하여 의사를 신뢰하며 의사가 그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생명의 종료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독립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말했다.


'자정 5분 전'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환자를 잘 알고 환자의 인지 능력의 변화를 추적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네덜란드의 공공 의료 시스템이 점점 더 압박을 받고 가정의가 부족해짐에 따라, 이러한 돌봄 모델은 점차 희귀해지고 있다.


메켈의 담당의 카이저는 자신이 긴 시간 환자들을 방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거의 은퇴한 상태인 데다가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이저는 진료 외에도 네덜란드 신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주목받는 사례에 대해 논평한다. 그는 어느 정도 조력사 유명인사이며 메켈에 따르면 안락사 워크숍에 참석한 다른 나이 든 여성들은 카이저가 그의 담당의로 배정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부러워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메켈의 희망사항을 명확히 알고 있으므로 티파티는 중단되었다. 그는 그녀의 자녀들이 그녀의 인식이나 기능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고 알려줄 때—'자정 5분 전'이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 방문을 재개할 것이다.


메켈, 자신의 거실에서.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메켈, 자신의 거실에서. /사진=Melissa Schriek for The New York Times

감내할 수 없는 대가

메켈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장이 "조력사의 순간을 놓친" 데 대해 괴로워한다.


장은 요양원으로 가는 걸 피하기로 결심했지만 8년 동안 요양원 생활을 했다. 메켈은 장이 대화를 이어갈 수 없게 될 때까지 그곳을 방문했다. 메켈은 계속 그에게 전화를 걸고 장의 자녀들이 그에게 읽어주는 이메일을 보냈다. 장은 7월에 87세의 나이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장의 사례 때문에 메켈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빨리 죽음을 계획할 의향이 있다.


그러나 장의 아들인 요스 반 오메렌은 메켈이 친구의 운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는 어머니가 요양원을 두려워했다는 데 동의하지만 일단 그곳에 가게 되자 어머니가 몇 년 동안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장은 열렬한 독서가였으며 매일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탐독했다. 그는 평생 일광욕을 즐겼으며 직원들은 그가 햇볕 아래 앉아 몇 시간 동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왔다.


마지막 몇 년 대부분은 좋은 시간이었다고 반 오메렌은 말했다. 어머니가 요청했던 조력사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메켈에게 그 대가는 감내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막내 아들인 멜키오르는 얼마 전에 어머니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만약 독립성을 잃어버리더라도 그걸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면 요양원도 괜찮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메켈은 그에게 애정과 혐오가 섞인 눈빛을 던졌다.


"아냐." 그가 말했다. "그럴리 없다."


1825년 창간된 미국의 진보 성향 일간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퓰리처상을 수상(130회 이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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