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2 13:05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보전의 세계에 분수령이 되었다. 포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국 정부는 놀라울 정도로 상세한 첩보를 몇 주 동안 계속해서 내보냈다. 러시아군의 움직임부터 러시아가 침공의 명분을 쌓기 위해 조작한 '가짜 도발'에 대한 것까지 폭넓은 정보였다.
이런 '폭로전'은 새로운 전략이었다. 원래 정보기관은 정보를 공개하는 것보단 숨기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폭로전은 주효했다. 러시아의 거짓말이 자리를 잡기 전에 진실을 공개함으로써 미국은 동맹을 결집하고 러시아를 겨냥한 뼈아픈 제재를 신속히 조율할 수 있었다. 첩보의 공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수세로 몰았고, 미국 정보기관이 어느 부처의 누구에게 침투해 들어온 것인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의 거짓말을 핑계로 러시아 편들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첩보의 공개는 시작일 뿐이었다.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와 미국, 그리고 다른 동맹국 및 협력국들 사이에 첩보 공유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는 러시아의 거짓말을 반박하는 데 도움이 됐으며 사이버공격으로부터 디지털 시스템을 보호하고 우크라이나군이 전장에서 러시아군 목표물을 타격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그리하여 현실이 얼마나 심대하게 변했는지를 드러냈다. 이제 첩보는 정보기관의 독점물이 아니다.
지난해 일반 시민과 민간단체들은 과거엔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러시아의 계획과 움직임을 추적해왔다. 기자들은 상업 위성이 제공하는 사진을 이용해 전황을 보도했다. 전직 정부 관리나 군 장교들은 매일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니터링하고 자신들이 분석한 전쟁에 대한 중장기 예측을 트위터에 올렸다. 몇몇 스탠포드대학교 학생들은 전직 미 육군 오픈소스 영상 분석가 앨리슨 푸치오니(Allison Puccioni)의 지도를 받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인권 유린 사례들을 유엔에 보고해왔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진해서 분석에 참여한 이 학생들은 상업위성의 적외선 및 전자광학 이미지, 틱톡 동영상, 위치추적 등을 이용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발견하고 검증했다. 군사 전문가, 분석가들이 필수적으로 참고하는 미국의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는 오픈소스 정보만으로 인터랙티브 전쟁상황도를 만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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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도 기술 진보 덕분이다. 인터넷, SNS, 인공위성, 자동화된 분석 도구 덕분에 민간인이 첩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후 배포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신기술이 러시아의 군사 활동을 더 잘 살필 수 있게 만들어주긴 했지만, 신기술이 항상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첩보 체계를 구성하는 18개 정보기관에 신기술은 더욱 빠른 속도로 위협이 되고 있다. 신기술로 인해 분석가가 다뤄야 할 데이터의 양은 급격히 늘고 있다. 게다가 신기술로 인해 민간 기업과 일반 시민들도 정보에 대한 니즈를 새롭게 갖게 됐고 국가이익을 지키는 데 민간이 기여할 수 있는 범위도 커졌다. 또한 타국은 물론이고 미국 정부 소속이 아닌 인물과 조직들도 새로운 첩보 능력을 갖추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오랜 시간을 통해 이뤄진 것이며, 정보기관을 이끄는 사람들 역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 시대에 미래를 대비하는 일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미국 정부는 최근 부상하는 신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 전면적인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오픈소스 첩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정보기관 창설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첩보 체계는 뒤처질 것이며 국민들을 새로운 유형의 위협에서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민간 기술이 정부를 압도하는 새로운 시대
1947년 중앙정보국(CIA)이 창설되었을 때 세상은 경험하지 못한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연합국은 2차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소련 군대가 벌써 유럽을 위협하고 있었다. 독재 정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민주주의 국가들은 쇠약한 상태였다. 국제체제는 자유진영과 비자유진영으로 나뉘고 있었다. 점증하는 불확실과 불안 속에서 미국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끌어야 했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이러한 역할을 위해 향상된 첩보력과 같은 새로운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들은 새로운 기관에 정보를 집중시키면 미래에 대한 적시의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진주만 기습 같은 상황의 재발을 막고 냉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다른상황은 여러모로 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상황을 빼닮아 오싹할 정도다. 강대국이 적나라하게 무력을 사용해가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이전투구의 세상이 다시 돌아왔다. 모스크바의 권위주의 지도자 하나가 이웃 국가를 침략하고 유럽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번에도 취약해 보인다. 미국과 그 동맹국은 또다른 패권 경쟁에 가담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상대가 중국이다. 중국의 '굴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공격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홍콩의 자유를 억압하고 대만 통일에 대한 호전적 언사들을 내뱉으며, 대만을 둘러싼 도발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돌아오고 있다. 사전에 세심하게 기획된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경제적 자유화의 지속보다 이념과 자신에 대한 충성이 중요함을 당 간부들에게 분명히 일렀다. 이걸로도 부족했는지 시진핑에 비해 더 개혁 지향적이던 후진타오 전 주석은 당대회 도중, 마치 범죄자가 포토라인에 세워지듯 자리에서 끌려 나갔다.
하지만 겉보기에 속으면 안 된다. 기술혁신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과제들은 2차세계대전 직후와는 아주 다르다. 떠오르고 있는 기술들은 전례 없는 방식과 속도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수많은 발명이 세계를 더욱 긴밀히 연결하고 있고 지정학적 우열을 결정하는 요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기술과 데이터가 국력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는데, 이것들은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데다 이를 만들고 다루는 건 정부가 아닌 기업인 경우가 많다. CIA나 다른 정보기관들이 21세기의 지정학적 위협과 역학을 이해하는 것은 20세기 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을 보자. 1990년 중반에는 전세계 인구의 1% 미만만이 인터넷을 이용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얼음으로 덮인 극지대부터 사막의 베두인 천막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66%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 3년 사이에만 10억 명 넘는 사람들이 추가로 인터넷에 들어왔다. 대대적인 인터넷 참여는 이미 세계정치를 변모시켰는데 여기에는 명암이 혼재한다. SNS는 아랍의 봄이나 홍콩의 우산 운동에서처럼 독재정치에 대한 저항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기술 기반 감시체제에 새로운 발전을 낳기도 했고 러시아 정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약화하기 위해 실시한 대대적인 가짜뉴스 공작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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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질서를 뒤흔드는 기술이 이런 디지털 연결만은 아니다. 인공지능(AI) 역시 의료에서 트럭운송까지 거의 모든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어떤 전문가는 향후 25년 내로 전세계 일자리의 40%가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지리라 추정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병참에서 사이버보호까지 모든 것을 자동화하면서 전쟁방식을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은 심지어 국가들이 전투용 무인기(드론)를 대량으로 만들어 적 방어망을 압도하고 인간 조종사보다 더 빠르고 더 스마트하게 항공작전을 펼치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인공지능 기술을 이끄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 중국 또한 2030년까지 전세계 인공지능 1위 국가가 되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기술 혁신으로 약소국이나 테러단체도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상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쉽게 감지하는 게 가능해지고 있다. 상업위성의 능력은 근래 비약적으로 발전해, 이제 누구든 원한다면 우주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수 있다. 2016년에서 2018년 사이에 인공위성 발사가 두 배 이상 늘었고, 현재 5,000개 이상의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고 있다. 어떤 인공위성은 빵 한덩이보다 작다. 통상적으로 상업용 위성은 첩보위성보다 센서의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민간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어떤 상업위성은 해상도가 상당히 높아 우주에서 맨홀 뚜껑이나 간판, 심지어 도로 상태까지 식별할 수 있다. 어떤 위성은 전파가 송출되는 것을 포착하거나 차량흐름을 지켜보고 핵발전소의 냉각수 수증기를 관찰할 수 있다. 흐린 날 야간에 우거진 수풀이나 위장막을 뚫고 목표물을 지켜볼 수 있는 위성도 있다. 작은 인공위성들을 연결하면 동일한 장소의 상공을 매일 몇 번씩 방문해 짧은 시간 동안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 추적할 수 있는데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각국의 정보 수집 능력이 평준화되고 있는데 항상 좋은 일은 아니다. 예컨대 2020년 이란은 상업위성이 제공한 사진을 이용해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을 감시하고 있다가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100명 이상을 부상시킨 바 있다.
국가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기술 혁신 분야에는 양자컴퓨터가 있다. 양자컴퓨터 기술은 결국 세상의 거의 모든 암호기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고급의 기밀 정보를 탈취하는 게 더 용이해질 것이다.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은 과학자가 생명체를 조작할 수 있게 만들어 식량, 의료, 데이터 저장, 무기 생산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기술 혁신이 가져올 미래의 명암을 이해하는 것은 정보기관의 핵심적 임무다. 미국 정부는 누가 핵심 기술 경쟁에서 이길 것인지, 그리고 그 영향이 어떨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미래의 전쟁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그리고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정확히 검토해야 하며, 새로운 기술들을 이용해 기후변화 같은 전지구적 문제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또한 적들이 어떻게 데이터와 기술적 수단들을 이용해 다른 나라를 압박하고 만행을 저지르고 제재를 피하고 위험한 무기를 개발하고 다양한 이익을 확보하게 될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질문들에 답하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양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기술혁신을 따라잡고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인터넷이나 GPS 같은 기술 혁신이 미국의 정부 기관에 의해 이뤄졌고 이후 민간부문에 의해 상업화되었다. 당시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혁신 대부분은 상업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크지 않은 편이었다. 때문에 개발 당시부터 기밀로 지정될 수 있었고 필요할 경우에는 영원히 기밀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오늘날의 기술 혁신은 상업적인 용도와 군사적 용도 모두에 이용할 수 있는 '이중 용도(dual-use)'인 경우가 많다. 또한 민간부문에서 기술 혁신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는데 해외투자가들이 기술개발에 돈을 대고 다국적 인력이 그 개발에 참여하며 전세계의 공공과 민간부문에서 개발된 기술을 구매하는 실정이다.
민간부문에서 이뤄진 기술혁신들은 널리 공개돼 있고 사용이 제한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일례로 인공지능은 널리 보급된 데다가 사용하기도 편리해져 코딩을 배우지 않은 고등학생들도 '딥페이크(deepfake: 어떤 사람이 실제로 하지도 않은 말과 행위를 진짜처럼 하는 모습을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낸 영상)'를 만들어낼 수 있다. 2022년 3월에는 누군가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군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는 딥페이크를 만들어 유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마이클 맥폴(Michael McFaul) 전 주러시아 미국 대사의 딥페이크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관계자를 속여 우크라이나 군대의 작전상황 정보를 빼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맥폴 딥페이크는 너무 많이 퍼져 진짜 맥폴 전 대사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에게 "러시아의 신무기"인 딥페이크에 속지 말라고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양상이 변화하면서 민간 부문의 리더들은 새로운 권력을 얻는 반면,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관료들은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국제관계에서만 권력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대내적으로도 권력관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SNS 플랫폼들은 이제 정보전쟁의 최전선이 됐는데 플랫폼 안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어떤 말이 허용되고 금지되는지를 결정한다. 스타트업이 개발하는 기술은 적들도 사용할 가능성이 있지만 누가 사용하게 될지 알 수 없고, 그 결과도 통제할 수가 없다. 한편 미국의 국방 및 정보기관들은 정부 밖에서 결정적인 기술을 도입하고 과거의 관료적 속도가 아닌 혁신의 속도로 움직이고자 애쓰고 있다. 민간부문의 리더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책임을 갖게 됐고, 정부부문의 리더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능력을 원하고 있다.
대통령 결단에 걸린 시간: 쿠바 위기 13일, 9/11 테러 13시간... 앞으로는 13분? 13초?
많은 이들이 첩보를 오해한다. 첩보기관이 비밀을 다루긴 하지만 비밀을 생산하는 게 첩보기관의 업무는 아니다. 첩보기관의 핵심 임무는 정책결정자에게 통찰을 제공하고 앞날을 상대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다. 도청한 통화 내용이나 첩보원의 보고서처럼 비밀스럽게 획득한 정보는 중요하지만 비밀은 첩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정보 보고에 담긴 대부분의 정보는 기밀이 아니거나 공개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가공되지 않은 첩보는 비밀정보든 공개정보든 그 자체로는 거의 가치가 없다. 왜냐면 가공 전의 첩보는 대체로 불완전하고 애매하고 모순투성이고 정보 원천 자체가 부실하고 방향을 아예 잘못 잡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속이려 들고 또는 완전히 잘못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분석은 중구난방인 첩보 쪼가리들을 종합하고 그 맥락, 신뢰성, 의미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불확실한 자료를 통찰을 담은 정보로 탈바꿈시킨다.
분석을 거친 정보가 언제나 적중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중하는 정보는 형언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 미국 정보기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다고 경고했을 때,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무장을 돕고 서방을 단결시켜 대응에 나서게끔 하는데 필요한 결정적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정보기관들이 이러한 성공을 계속 이루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전지구적 위협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양적으로 많아지고 복잡해졌으며, 위협이 움직이는 속도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거의 반세기 동안은 소련을 견제하는 데 집중하다가 그 이후 20년간은 테러와 싸워왔던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제 훨씬 다양한 종류의 위험과 맞서야 한다. 팬데믹이나 기후변화 같은 초국가적 위협부터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과의 패권 경쟁, 테러리즘, 내부 통제에 실패한 약소국에서 발생하는 위협, 놀라운 속도와 규모로 훔치고 엿보고 혼란을 일으키고 파괴하고 거짓을 유포하는 사이버 공격을 다뤄내야 한다. 정보기관들은 현재 점잖게 말해 과부하 상태다.
첨단기술은 오늘날 위협의 양과 종류를 늘렸을 뿐만 아니라 더욱 가공할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과거 국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고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하면 됐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에서는 그 누구든지 어디서나 공격을 할 수 있다. 공중, 땅, 바다에 설치해 놓은 방어망을 힘들여 뚫을 필요가 없다. 사실 오늘날의 강대국 대부분이 가장 취약한 상황인데 국력의 기반이 되는 산업, 교육, 의료, 군사작전 등을 디지털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인프라를 무력화하는 강력한 공격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안보 담당관이 눈치채지 못할 작은 공격들에 노출될 수도 있는데 이 작은 공격이 반복되고 그 피해가 쌓이다 보면 치명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중국은 미국 회사들을 해킹해 각 회사로부터 한 번에 조금씩만 기술을 훔쳐내는 방식으로 전투기에서 제약까지 수많은 산업에서 기술적 우위에 차근차근 오르고 있다. 연방수사국(FBI) 국장 크리스토퍼 레이(Christopher Wray)는 이를 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의 유출이며 "장기적으로 미국의 경제적, 국가적 안전보장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역시 사이버공격으로 큰 재미를 봤는데 악의를 갖고 첨단기술을 활용하면 기계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리도 해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러시아 작전 요원들은 인터넷 봇(bot)이나 가짜 SNS 계정을 만들어 미국인 행세를 하면서 2016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 기간 가짜 정보를 퍼뜨려 미국을 분열시켰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러시아는 사이버 심리전에 미국의 SNS 플랫폼을 사용했지만 중국은 심지어 미국의 플랫폼 없이도 미국인들 사이에 대립을 조장하는 게 가능하다. 10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자랑하는 틱톡(TikTok)은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ByteDance)의 소유로, 미국인 1억 3500만명이 틱톡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 인구의 40%에 달한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틱톡을 통해 중국 정부가 미국인들에 대한 각종 정보를 빨아들이고는 중국 정부의 이익에 맞춰 여론을 조작할 수 있음을 걱정하고 있다. 틱톡이야 자신들이 단지 미국 소비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뿐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오늘날의 정보전쟁에서 진짜 무기는 무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이버공격은 너무나 일찍 발생한다. 정책결정자들도 화면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실시간으로 현 상황이나 그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미국 정보기관 역시 새로운 속도로 발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물론 정보기관의 업무에 '적시성'이란 언제나 중요한 요소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의 U-2 정찰기가 쿠바에서 핵무기 시설을 탐지한 순간부터 케네디 대통령이 올라온 정보를 살펴보고 정책의 선택지를 검토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13일뿐이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공격이 발생한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올라온 정보를 살펴본 후 대응책을 발표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3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대통령이 정보를 살펴본 후 중대한 정책 결정을 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은 아마도 13분, 심지어는 13초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빨리 움직이는 데는 그만큼 리스크가 따른다. 정보 출처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일, 여러 분야에 걸쳐 전문지식 채널을 구축하는 일, 특정 첩보에 대한 여러 설명들을 비교하면서 검토하는 일 모두 시간이 필요하다. 조심스럽게 공들인 정보 분석이 없는 경우, 지도자들은 섣부르거나 심지어 위험천만한 결정을 내릴 위험성이 있다. 성급한 조치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는 2016년 12월 파키스탄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전 국방부 장관이 파키스탄 정부가 시리아에 파병할 경우 이스라엘이 파키스탄에 핵 공격을 하겠다고 협박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파키스탄의 카와자 아시프 국방부 장관은 곧바로 트위터에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우리나라가 IS에 맞서 시리아에서 군사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제멋대로 상상하면서 우리 파키스탄을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파키스탄도 핵무기 보유국임을 잊고 있다"라고 썼다. 그러나 보도된 내용 자체가 가짜였다. 아시프 국방부 장관은 진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성급히 트윗을 날렸다. 조심스럽게 정보를 수집하고 검토하고 분석하면서도 정책결정자의 속도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키기란 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젠 대통령 뿐만 아니라 기업, 국민도 정보기관의 고객
정보기관이 다뤄야 하는 오늘날의 데이터 환경은 빠를 뿐만 아니라 방대하다. 온라인에서 획득 가능한 정보의 양은 상상의 영역을 넘어갈 정도로 방대해졌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자들이 매일 5억 건의 트윗을 올리고, 2억 9400만 건의 이메일을 발송하고, 페이스북에 3억 5000만 장의 사진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1초에 오가는 데이터의 양은 거의 1페타바이트에 달하는데 이는 한 사람이 3년 넘게 영화를 쉬지 않고 보는 것과 맞먹는 수준의 정보량이다.
미국의 정보기관은 이미 사람이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분량을 훨씬 넘는 양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미국 정보기관이 한 전투 구역에 배치한 센서 하나에서 하루에 획득하는 고화질 영상정보의 양은 미국 미식축구리그 3년 치에 달한다. 미 국방부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2020년 중동에 파견된 한 병사가 자신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비밀 이메일에 압도되어 그 수를 세어봤는데, 120일 동안 총 1만 건이었다고 한다. 아마 오가는 정보량이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세상에 유통되는 디지털 데이터의 총량이 2년마다 곱절로 증가하고 있다는 추정도 있다.
정보기관이 만족시켜야 하는 고객들도 예전보다 다양해졌다. 새로운 고객 중에는 군대를 지휘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비밀취급 인가가 없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정부에서 일하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오늘날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을 내리는 리더 중 상당수는 백악관 상황실이 있는 워싱턴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곳 기업의 이사회 회의실이나 가정집 거실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같은 거대 IT기업들은 자신들의 시스템에 대한 사이버위협, 그리고 그 시스템을 이용해 남들을 공격하는 사이버위협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미국의 주요 인프라는 대부분 에너지기업 같은 사기업들이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도 시스템을 뒤흔들고 파괴할 수 있는 사이버 위험요소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유권자도 외국 정부가 어떻게 국내선거에 개입하고 유권자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을 일으키는 심리전을 펼치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이버위협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안보를 위해 동맹국들 및 협력국들과 정보를 더 빨리, 더 정확히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다 다양해진 고객을 위해 미국 정보기관은 과거와는 다른 수준으로 공개정보를 생산하고 외부 세계와 협력하고 있다. 국가안보국(NSA), FBI 등은 미국 선거에 대한 외국의 위협을 주제로 공공 비디오를 제작하고 있다. 2022년 9월, CIA는 '랭글리 파일'이라는 팟캐스트를 개설했는데 CIA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인공위성 영상정보와 기타 지리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국가지리정보국(NGIA)은 '테어라인(Tearline)'이라는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는데 외부의 싱크탱크, 대학, 공익단체들과 협력해 기후변화, 러시아군의 움직임, 인권 문제 등에 대한 공개 보고서를 생산한다. 2021년, NSA는 FBI,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안보·기반시설안전청과 공동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는 주요 사이버위협이 무엇인지,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안전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이 세 기관은 심지어 중국 정부가 미국과 동맹국 네트워크를 해킹하는 데 악용하는 주요 취약점 20개의 세부사항과 함께 어떻게 사이버보안을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디테일한 요령까지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현재 해외의 정보 파트너들과 공동 보고서를 내고 있다.
이렇게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공개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우크라이나에서 볼 수 있다. 정보공개를 통해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전세계에 사전 경고할 수 있었고 서방을 단결시켜 빨리 대응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러시아 정부의 갖가지 시도를 계속해서 좌절시켰다. 최근에는 러시아군 지도부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술핵을 사용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정보를 미국 정부가 공개하자, 시진핑 중국 주석이 "핵무기의 사용이나 사용하겠다는 위협"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다. "그 어떤 제한도 없다"던 시진핑과 푸틴의 친근한 관계에도 결국 제한이 있었던 것이다.
오픈소스 첩보가 가져오는 가능성과 리스크
첨단기술의 발전은 미국 정보기관에 더 많은 고객 뿐만 아니라 더 치열한 경쟁 상황을 부여했다. 온라인에서 오픈소스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상업위성들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여기에 더해 인공지능이 부상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개인들과 사기업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배포할 수 있게 됐다.
스스로를 '대중을 위한 정보기관'이라 일컫는 자발적 단체 벨링캣의 아마추어 조사원들은 지난 수년간 숱한 특종을 터뜨렸다. 벨링캣은 영국에서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 세르게이 스크리팔을 살해하려 했던 러시아 암살팀의 신원을 밝혀냈고, 유럽에 거주하는 IS 지지자들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들은 또한 말레이시아 항공 17편이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된 사건이 러시아 소행임을 밝혀냈다.
벨링켓이 유일한 민간 정보단체는 아니다. 2020년 이란 정부가 어느 공장에서 작은 화재 사건이 있었다고 발표했을 때, 미국의 연구자 데이비드 올브라이트와 페이비언 힌즈는 오직 컴퓨터와 인터넷만을 이용해 몇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이란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사실 문제의 그 건물은 이란의 핵심 우라늄 농축시설에 부속된 원심분리기 조립공장이었다. 2021년 제임스마틴비확산 연구센터의 핵 문제 연구진은 상업위성 사진들을 이용해 중국의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사일로를 200개 넘게 찾아냈는데 이는 중국의 핵무기 숫자가 역대급으로 증가했음을 시사한다.
미국 정보기관들에게 오픈소스 첩보라는 신세계의 대두는 위험과 함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긍정적인 점을 보자면, 민간의 사이버 '탐정'들이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는 사태와 위험들을 뒤지면서 전세계 곳곳을 살피는 수많은 눈과 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지성은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데 특히 작은 조각 정보들을 묶어내는 작업에 특히 도움이 된다. 관료제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오픈소스 분석가들은 신속한 작업이 가능하다. 오픈소스 첩보는 문자 그대로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민감한 정보원이나 정보수집 방법을 노출할 위험 없이 정부 기관끼리는 물론이고 민간과도 공유할 수 있다.
한편으론 이러한 특징이 바로 약점이기도 하다. 오픈소스 첩보는 어떤 동기로 접근하는지, 어느 나라에 충성하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불문하고 세상 그 누구라도 열람할 수 있다. 민간 '탐정'들은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고 특정한 훈련을 받지도 않는데 이는 여러 가지 위험성을 안고 있다. 자발적으로 분석에 참여하는 이들은 (특히 온라인에서) 빨리 분석을 해내면 보상받지만 분석이 틀릴 경우 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다시 말해 잘못된 분석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집단 지성과 군중의 위험은 단지 백지장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2013년에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공격으로 3명이 죽고 260여명이 부상을 입자 레딧(Reddit) 사용자들이 행동에 나섰다. 익숙한 가설, 검증되지 않은 경찰들의 무전기 대화를 비롯한 파편적 정보를 집단으로 수집한 후, 레딧 아마추어 수사관들은 두 명의 '용의자'를 지목했고 주류 언론은 이 발견을 그대로 보도했다. 하지만 두 명 모두 무고한 사람들로 밝혀졌다.
이런 취약점은 정부에게 심각한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잘못된 분석이 SNS와 언론을 타고 퍼지면 정보기관은 타인의 분석을 팩트체크하고 정책결정자들에게 정보기관이 제공한 원래의 정보분석이 바르다고 안심시키는 데 귀한 시간과 역량을 허비해야 한다. 정확한 오픈소스 첩보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예컨대 비밀로 유지되면 당사자 간에 타협의 여지를 남길 수도 있고 위기 국면에서 당사자들이 체면을 잃지 않고 물러날 수도 있을 것을, 정보가 세상에 공개됨에 따라 정책결정자가 궁지에 몰릴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미사일을 쿠바에서 철수시키는 대가로 미국도 미사일을 튀르키예에서 비밀리에 철수하는 타협안에 동의했다. 만약 쿠바에 배치된 소련 미사일의 위성사진이 만천하에 공개된 상태였다면 케네디는 국내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이러한 타협안에 동의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오픈소스 전담' 정보기관 신설 필요
미국의 정보기관 리더들은 보다 많은 위협, 더욱 빠른 속도, 더 많은 데이터, 더 많은 정보 고객들, 더 많은 경쟁자로 가득한 21세기의 세계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자신들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는 걸 잘 안다. 새로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 개편을 하거나 기술 혁신 사업을 시도하기도 하며 최고의 과학, 공학 인재들을 채용하기 위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몇몇 중대한 성공 사례도 있지만 이런 난관들은 극복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지금까지 정보기관들의 노력은 부분적인 수준이었다.
특히 진전의 속도가 더딘 것이 우려스럽다. 어떤 난관이 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데다가 사안이 매우 중차대하고, 첩보의 취약점들은 오랫동안 악화해 왔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 보도와 보고서들이 정보기관들이 기술적 발전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음을 지적해왔다. 이는 현존하는 정보기관들을 조금씩 고치는 것만으로는 작금의 난관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 21세기를 위한 미국의 정보 능력 개발을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공개된 데이터들을 샅샅이 파헤쳐 숨어있는 의미들을 밝혀내는 일에 집중하는 오픈소스 첩보 전담 기관을 창설해야 한다.
18개나 되는 정보기관을 두고 19번째 정보기관을 설립하는 게 불필요한 중복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픈소스 첩보는 미국의 정보기관 내에서 늘 서자 취급을 받아 왔다. 독자적인 예산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직원을 채용하고 오픈소스 첩보의 중요성을 대변할 기관장이 없기 때문이다. 비밀정보를 주로 다루는 정보기관들은 비밀정보를 우선시하기 마련이다. 오픈소스 첩보가 이런 기관에 종속될 경우 결국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현존 정보기관들이 비밀을 중시하는 기풍은 앞으로도 민간 부문의 첨단기술 도입을 계속 방해할 것이다. 첨단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절실한 인재를 영입하고 조직 내에 계속 붙잡아두는 것도 힘겨울 것이다. 민간의 오픈소스 첩보 수집가와 분석가들이 가진 힘을 정보기관에 필요한 방향으로 활용하려는 노력 역시 실패할 공산이 크다.
새로운 오픈소스 정보기관은 미국의 정보 업무에 새로운 정보는 물론이고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새로운 기관은 오픈소스 첩보 생태계와의 협력은 물론이고 인적자본과 첨단기술의 도입 측면에서 큰 변화를 일구어낼 비옥한 토양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미래의 인재를 미국 정부의 정보 부문으로 인도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이 될 것이다. 공개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이 기관은 비밀취급 인가를 위해 수개월, 또는 수년을 허비하는 일 없이 최고의 과학, 공학 인재들을 채용해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보기관의 청사를 첨단기술 업계 인재들이 이미 살고 있거나 살기를 원하는 오스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같은 기술 허브 도시에 두면 인재들이 정부 직책을 보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첨단기술에 해박한 관료 그룹이 형성될 텐데 이들은 정부와 민간 양 부문을 오가면서 두 세계를 연결하는 일종의 외교사절처럼 움직일 것이다. 이들은 첨단기술 업계에서 정보기관들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동시에 업계의 최신 기술을 꾸준히 정보기관에 가져올 것이다.
비밀이 아닌 공개정보를 다룬다는 특성 때문에 오픈소스 전담 기관은 정보기관이 새로운 정보 수집·분석 기술을 더 빠르고 안전하게 도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픈소스 전담 기관이 신기술을 먼저 테스트해보고, 효과가 있으면 비밀을 주로 다루는 정보기관에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 소속이 아닌 주요 오픈소스 단체 및 인사들과 협력하는 데에도 이상적인 기관이 될 것이다. 민간 파트너십을 통해 미국 정보기관은 요원들이 본연의 비밀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업무를 정부 바깥의 분석가에게 아웃소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비밀정보기관이 해야 할 업무는 여전히 많을 것이다. 최고의 오픈소스 첩보에도 결국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 사진이 새로운 중국 미사일 사일로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중국 지도부가 이것을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려줄 수 없다. 온라인상에서 어떤 대상을 식별하고 움직임을 추적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통찰을 생산하는 데는 더 많은 게 필요하다. 비밀 정보수집은 외국 지도자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는데 유일한 수단으로 남을 것이다. 적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쓰는지를 알아내는 데 외국 지도자 가까이 첩보원을 잠입시키거나 적의 통신망에 침투하는 것을 대체할 만 수 있는 오픈소스 수단은 없다. 비밀정보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이 비밀정보가 다른 공개정보들과 어떻게 맞춰지는지를 알아내고 평가하는 일에는 비밀정보를 다루는 정보분석가의 존재가 항상 핵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비밀정보기관만 있으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미국은 강대국 간의 패권경쟁, 유럽에서 다시 시작된 전쟁, 계속되는 테러 공격, 급변하는 사이버공격 등으로 흔들리는 새 시대를 맞고 있다. 첨단기술은 이런 위협이 어떻게 뻗어나가는지, 그리고 누가 미래를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성공하려면 미국 정보기관은 보다 개방된 첨단기술의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
에이미 제거트는 후버연구소 시니어 펠로우이자 스탠포드대학교 프리먼스폴리국제학연구소 시니어 펠로우다. 최근 <스파이, 거짓말, 그리고 알고리즘: 미국 정보의 역사와 미래>를 저술했다.
첩보의 세계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휴민트(HUMINT: 인간 정보), 시긴트(SIGINT: 신호 정보) 뿐만 아니라 오신트(OSINT: 오픈소스 정보)라는 용어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오픈소스 정보의 세계는 007 같은 멋진 첩보원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지만 요즘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 매우 강력한 정보원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오픈소스 정보의 잠재성에 대해 세계적인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1·2월호에 실린 글을 협약 하에 전문(全文) 번역으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