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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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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2 13:49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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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실적이 급락하면서 SNS의 시대가 몰락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기 때문에 아직은 설익은 관측입니다만 사회적, 윤리적 측면에서 SNS의 폐해가 너무 크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습니다. 매체 철학자이자 게임 디자이너인 이언 보고스트는 SNS의 발달 과정에서 어떻게 이런 해악이 발생했는지를 짚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문예지 애틀랜틱(The Atlantic) 2022년 11월호에 실린 글을 협약 하에 전문(全文) 번역으로 소개합니다.



SNS의 시대는 끝났다. 페이스북은 쇠락하고 있고 트위터는 혼돈 그 자체다. 마크 주커버그의 제국은 시가총액 수천억 달러가 증발했고 1만1000명을 해고했다. 페이스북의 광고 사업은 위기고 '메타버스'의 꿈은 아무런 기약도 없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자 광고주들은 서둘러 광고를 빼기 시작했고 트위터 유명인사들은 트위터를 떠나기 (적어도 떠나겠다는 트윗을 올리기) 시작했다. SNS의 시대가 조만간 끝날 거란 이야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럴싸하게 들린다.


마치 풍랑을 만나 낯선 무인도에 떠내려온 것 같은 상황이다. 한편으론 우릴 여태껏 표류하게 만든 최초의 조난 사고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돌이켜 보기에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 할 수도 있다. 우린 마치 SNS가 처음부터 우리 삶의 일부였던 양 사용했지만 SNS는 결코 일, 놀이,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니었다. 우리가 SNS를 사용하는 방식은 기이한 변이를 통해 발전했는데 워낙 미묘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당시에는 무엇이 변했는지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변화가 시작된 건 대략 20년 전이었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의 사용이 용이해지면서 사람들은 이를 인간관계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활용하기 시작했다. '소셜 네트워킹'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를테면 친구와 정말로 친교를 맺는 대신 친구를 '수집'하는 것 같은) 이는 그 뒤에 벌어지는 일에 비하면 약과였다. 2000년대 후반이 되자 지금의 SNS와 같은 '소셜 미디어'가 자리를 잡았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변화였지만 그 영향은 엄청났다. '소셜 소프트웨어'는 기존 인간관계를 적절히 사용(생일 파티 준비 같은 오프라인 생활을 위한 용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준을 넘어, 사람 사이의 연결망을 일종의 방송 채널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자 수십억의 사람들이 일순간에 스스로를 연예인, 전문가, 또는 유행의 선구자로 포장하게 됐다.


누구나, 원하는만큼, 아무거나 말할 수 있는 전지구적인 방송 네트워크. 누구나 응당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걸 가로막는 것은 억압과 검열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시작부터 끔찍한 이러한 발상이 바로 '소셜 미디어' 개념의 근간에 깔려 있었다. 오직 끊임없이 콘텐츠를 전송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시스템, 이것이 바로 소셜 미디어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SNS에도 종말이 올 수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이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회다. 유사한 다른 플랫폼으로 옮아가는 대신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SNS의 파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많은 SNS가 지구상에 존재했다.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라는 '케빈 베이컨 게임'에 착안해 이름을 지은 식스디그리(Six Degrees)는 1997년 등장했지만 2000년 닷컴버블 붕괴 이후 곧 망했다. 세상은 아직 SNS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프렌드스터(Friendster)가 2002년 등장했고 마이스페이스(MySpace)와 링크드인(LinkedIn)이 이듬해 뒤를 따랐다. 2004년에는 하이파이브(Hi5)와 페이스북이 등장했는데 당시 페이스북은 일부 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서비스였다. 같은해 구글이 만들고 운영했던 오르컷(Orkut)도 출범했다. 비보(Bebo)가 2005년에 론칭됐고 나중에는 AOL과 아마존이 이를 공동 소유하게 된다. 구글 버즈(Buzz)와 구글 플러스가 태어났고 오래지않아 도태된다. 이 SNS 중 몇몇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일 수 있다. 중요한 건 페이스북이 세계를 지배하기 전에도 이들 SNS는 인기가 드높았다는 사실이다.


콘텐츠 공유 사이트도 사실상 SNS처럼 기능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올린 게시물보단 자기가 아는 사람이 올린 게시물을 먼저 볼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진 공유로 유명한 플리커(Flickr)가 대표적이다. 한때는 '플리커의 영상 버전'으로 불렸던 유튜브(YouTube)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생각 등을 적을 수 있었던 블로그, 그리고 블로그와 유사한 텀블러(Tumblr) 같은 서비스도 있었지만 블로그를 보는 사람은 적었고 댓글 등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더 적었다. 2008년 네덜란드의 매체 이론가 헤이르트 로빙크(Geert Lovink)는 블로그와 SNS에 대한 책을 냈는데 책의 제목 <댓글 제로>는 당시 SNS의 평균 도달률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오늘날 이런 서비스들을 통틀어 '소셜 미디어'라고 부르는데 워낙 여기저기에 쓰이다 보니 이젠 소셜 미디어가 뭘 뜻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됐다. 그러나 20년 전에는 소셜 미디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많은 서비스가 자신들이 '사용자 생성 콘텐츠(User-Generated Content)'를 쉽게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웹 2.0' 혁명에 일조하고 있다고 포장했다. 이전만 하더라도 콘텐츠(content)라는 단어는 보통 다른 강세로 발음해 '만족한 상태'란 뜻으로 쓰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런 서비스들이 '소셜 네트워크' 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일컬어졌다. SNS가 우후죽순처럼 번성하는 걸 빗댄 조크도 생겨났다. 마치 봄날의 민들레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게 SNS였다.


(로이터=뉴스1) 김민수 기자 = 트위터 로고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2022.10.27/뉴스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로이터=뉴스1) 김민수 기자 = 트위터 로고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2022.10.27/뉴스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소셜 네트워킹은 본래 콘텐츠의 발행이 아닌 '연결'이 본질이었다.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개인적인 네트워크(사회학에서는 이를 '강한 연결(strong ties)'이라 부른다)를 (이른바 '약한 연결(weak ties)'을 통해) 타인의 유사한 네트워크와 연결하면 신뢰하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보다 큰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링크드인은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연결을 훑어 일자리를 찾고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해주겠다고 선전했다. 프렌드스터는 같은 방식을 개인적 인간관계에, 페이스북은 대학교 내 인간관계에 적용했다. 당시 SNS의 핵심은 대체로 내가 알고 있던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보다 깊게 만드는 '네트워킹'이었다. 그 관계맺기를 어떻게, 그리고 왜 하는지는 대체로 사용자가 결정할 문제였다.


2009년경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인스타그램이 론칭되면서 '소셜 네트워킹'은 '소셜 미디어'가 됐고,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사람이나 단체와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연결'의 기능 대신, '소셜 미디어'는 가까운 지인의 네트워크를 넘어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콘텐츠를 전파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 모두를 방송인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는 재앙이나 다름없었지만 한편으론 매우 쾌락적이었다. 그리고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실로 파국적인 조합이었다.



이젠 'SNS'와 '소셜 미디어'를 같은 의미처럼 번갈아 사용하지만 원래 그런 건 아니다. SNS('네트워크')란 명함첩, 세일즈 대상 고객들의 명단, 어쩌면 영혼의 짝궁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담긴 졸업앨범처럼 일종의 수동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미디어')는 (과도하게) 능동적이다. 필요할 때까지 그대로 두는 대신 쉴새없이 각각의 관계망으로부터 콘텐츠를 쏟아낸다.


2003년 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은 이를 강조한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사용자가 '정보 교환'에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소셜 미디어를 제안한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사용됐던 SNS를 일종의 방송 채널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굴지의 미디어 그룹 뉴스코프가 2005년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마이스페이스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음악 및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라고 따옴표를 쓰며 소셜 네트워크란 단어를 소개했다. 마이스페이스의 주된 콘텐츠였던 음악은 소셜 네트워킹 기능과 별개의 것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에 대해 갖고 있던 비전도 "세계 모든 사람을 연결하기"였다. 이는 네트워킹의 기능을 뜻한 것이지 콘텐츠 배포를 뜻한 게 아니었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해악 때문에 당시에는 소셜 미디어라는 혁신이 얼마나 환상적으로 느껴졌는지 잊기 쉽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의 시절에 페이스북에 가입하면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연락이 끊긴 사람들까지)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당시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정신나간 친구들이 공유하는 음모론 같은 게 아닌, 내 친구들의 삶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링크드인에서는 업무상 인맥들과 비슷한 걸 할 수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쉽게 추천서를 써주거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2003년 게임회사를 차렸을 당시 링크드인은 갓 론칭한 상태였는데 링크드인의 인맥을 통해 첫 번째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2006년 론칭한 트위터는 (당시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진 않았지만) 아마 최초의 진정한 소셜 미디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연결하는 데 집중하는 대신 트위터는 전세계가 참여하는 거대한 채팅창이 됐다. 트위터는 '모두'에게 이야기하기 위한 플랫폼이었다. 기자들이 트위터에 몰려든 것도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블로그도 엄연히는 웹브라우저를 쓰는 누구나 읽을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독자를 찾는 게 어려웠다. 블로그가 초반에 블로그롤1이나 링크백2 같은 기능을 통해 소셜 네트워크처럼 운영됐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그러나 트위터에서는 그 어떤 누군가가 올린 것이라도 바로 다른 사람들이 발견해 읽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블로그 게시물이나 플리커의 사진, 유튜브의 영상과는 달리 트윗은 짧고 작성하는 데 많은 노력이 들지 않아 하루에도 몇개씩 올리는 게 가능했다.


일론 머스크 말마따나 전세계의 '마을 광장(town square)'이란 개념은 바로 이런 요소에서 연유한다. 트위터에서는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에서나 캔사스 어느 도시에 있는 오마카세 식당에 대해서 곧바로 알 수 있다. 기자들이 트위터에 너무 의존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보의 출처나 어떤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까지 모든 게 끊임없이 나오는 자판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그때 소셜 미디어라는 이름은 아직 없었지만 이미 소셜 미디어의 정신은 도래해 있었다. RSS 리더3는 아직 읽지 않은 게시물 숫자와 함께 블로그 게시물 목록을 제공했다. 마이스페이스는 음악과 잡담을 합쳤고 유튜브는 이를 영상으로 구현했다. 2005년 어느 컨퍼런스에서 한 참석자가 하는 말을 우연히 들은 기억이 난다. "내 플리커가 너무 밀렸어!" 당시 나는 대체 그게 무슨 뜻인가 의아해했다. 오늘날 그 답은 자명하다. 어떤 이유로든 (혹은 아무 이유없이)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소셜 '네트워킹'을 앞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2010년 론칭한 인스타그램은 어쩌면 소셜 네트워크 시대와 소셜 미디어 시대 사이의 가교를 놓았을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은 콘텐츠 배포를 주된 활동으로 삼았고 이를 위해 사용자들 사이의 연결에 의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소셜 네트워크가 소셜 미디어가 됐다. 페이스북은 그룹, 페이지, 뉴스피드 기능을 론칭하면서 사용자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친구들에게 내 소식을 전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발행한 콘텐츠를 공유할 것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링크드인도 콘텐츠 발행을 위한 기능을 내놓았다. 근본적으로 콘텐츠 발행 플랫폼이었던 트위터는 '리트윗' 기능을 추가해 바이럴을 훨씬 쉽게 만들었다.


레딧(Reddit), 스냅챗(Snapchat), 왓츠앱(WhatsApp) 같은 서비스들도 이런 방식으로 발전해왔고 오늘날에는 트위터보다 훨씬 인기가 많다. 한때는 새로운 관계를 맺는 잠재력을 갖고 있던 소셜 네트워크가 이젠 끊임없이 콘텐츠가 흐르는 아우토반이 됐다. 소셜 미디어의 최근 발전 단계에서는 소셜 네트워크로서의 측면은 더 깊숙이 숨겨졌다. 틱톡(TikTok)에서 본래 아는 사람들이나 특정한 사용자를 팔로우하는 게 가능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알고리즘이 뽑아올린 영상들의 무한한 흐름을 따라 흘러가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여전히 특정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용자들과 연결이 되어야 하지만 이제 '연결'은 소셜 미디어의 주된 기능이 아니다. 이렇게 비교할 수 있다. 소셜 네트워킹 시대에는 사람 사이의 연결이 본질적이었고 이것이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로 연결됐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그저 콘텐츠가 계속 흐를 수 있게 만들 정도의 얄팍하고 손쉬운 연결만 있으면 된다.


소셜 네트워크가 소셜 미디어로 진화하면서 기회와 함께 재앙도 찾아왔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 서비스들의 사용자 참여도가 급증하자 데이터 기반 광고를 팔아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타인의 관심을 기반으로한 콘텐츠 경제가 생겨난 덕분이었다. 이는 또한 '인플루언서' 경제라는 걸 만들어냈다. 게시물의 실제(또는 추정) 도달률을 통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개개인도 협찬 등을 통한 마케팅 채널의 값어치를 갖게 됐다. 이젠 평범한 사람도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생산함으로써 돈을, 심지어는 상당한 돈을 버는 게 가능해졌다. 플랫폼은 사용자에게 이를 약속하며 각종 추가 기능을 덧붙였다. 그러자 전통적인 의미의 '셀럽'이 되거나 어떤 종류든 직업을 얻는 것보다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지는 게 더 쉽겠다고 여긴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인플루언서가 선망 받는 직업이 됐다.


뒤이은 재앙은 복합적이었다. 일례로 소셜 미디어 운영자들은 콘텐츠의 내용에 감정적인 요소가 강할수록 사용자들의 네트워크에서 더 잘 확산됨을 발견했다. 극단적이고 공격적이거나 혹은 아예 허위의 정보가 배포되기에는 최적이었다. 플랫폼이 이를 깨닫고 여론이 격분하게 된 때에는 이미 되돌리기에 늦어버렸다.


집착은 불난 데 기름을 끼얹었다. 충동은 컴퓨터로 촉진하는 소셜 네트워킹을 언제나 괴롭히는 원죄와도 같았다. 나중에 쓸 일을 위해 친구들과 업무상 지인들을 온라인 프로필 한 구석에 모아 넣는 건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 결코 건강한 방식이 아니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에 집착하는 것처럼 2003년에는 링크드인에서 500명 이상의 연결을 갖는 데 집착하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가 소셜 미디어로 진화하자 사용자의 기대가 급격히 높아졌다. 벤처 투자자의 기대와 월스트리트의 요구로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한 IT 기업들은 더 큰 규모에 중독됐다. 네트워크의 규모가 더 커질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손쉽고 저렴하게 도달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사실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트위터에서 명성 자본을 획득하는 기자, 인스타그램에서 기업 협찬을 구하는 20대 청년, 유튜브에 자신들의 대의명분을 호소하는 반체제 운동가, 페이스북에서 반란을 선동하는 모반가, 온리팬즈(OnlyFans)에서 자신의 포르노를 파는 사람들, 링크드인에서 조언을 파는 자칭 '구루(guru)'들이 바로 그렇게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사람들이다. 소셜 미디어는 저비용 고수익으로 대규모의 관객을 확보할 '잠재성'을 보여줬는데 사람들은 이걸 보면서 자신에게도 그만큼의 관객이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것이 바로 소셜 미디어라는 동전의 뒷면이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모두가 접근 가능하다면 관객 또한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글을 쓴 작가도, 프로젝트를 발표한 유명인도, 그냥 자신의 삶을 사는 예쁜 여성도, 익명의 악플러조차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이유로든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네트워크 연결이 작동하면 모든 연결이 활보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끔찍한 발상이었다. 내가 과거에 썼듯, 인간은 원래 이 정도로 서로에게 말을 걸도록 돼 있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말을 해서도 안 됐고, 그런 표현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돼서도 안 됐다. 모든 생각이나 관념에 대해 댓글을 달거나 응수할 권리가 있다고 여겨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구입하는 모든 상품에 대해 리뷰를 남겨달라는 요청을 받는 것부터 모든 트윗과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좋아요'나 댓글, 팔로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까지, 소셜 미디어는 인간의 사회성에 소시오패스적이고 정신착란적인 면을 빚어놓았다. 페이스북처럼 소시오패스가 디자인 철학인 IT 대기업에서 소셜 미디어의 모델이 탄생했다는 걸 떠올려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매출이 급락해서든 일론 머스크가 인수하면서 부담한 빚 때문이든, 트위터가 망하게 되면 소셜 미디어의 전반적인 몰락이 더 빨라질 수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 얻는 뉴스나 커뮤니티, 사람들과의 교류, 또는 순전히 충동 때문에 이런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던 이들에겐 슬픈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댓글 제로'의 시대는 너무나 쓸쓸했고,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쏟아지는 '좋아요'와 '공유'는 거부하기엔 너무나 달콤했다. 그리고 규모에 대한 집착으로 대안들은 오래 전에 죽어 없어졌다.


변화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를 실현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이미 우린 우리의 삶을 소셜 미디어의 쾌락과 고통에 적응시켰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를 그만두는 건 마치 단체로 담배를 끊는 것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20세기 미국에서 사람들이 금연을 하게 되기까진 수십 년에 걸친 규제와 PR 캠페인, 흡연에 대한 공개적 비난, 미적 기준의 변화가 필요했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담배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흡연이 불쾌하거나 멋지지 않아 보인다거나 심지어 흡연으로 우리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흡연을 압살하도록 강요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담배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소셜 미디어에 대해서도 그런 과정이 시작돼야 한다.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는 소셜 미디어의 불길 속에서도 그 핵심인 소셜 네트워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오늘날 SNS들은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적어도 적절히(너무 자주는 말고, 정당한 이유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컴퓨터를 사용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발상 자체는 결코 끔찍한 게 아니다 (물론 서로를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위험은 남는다). 문제는 이걸 매순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하나의 열망, 하나의 집착으로 사용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처음부터 소셜 미디어가 약속한 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소셜 미디어가 마치 파우스트의 계약처럼 큰 댓가를 치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20년이나 걸렸다. 언젠가 결국은 소셜 미디어의 그물이 모두 성글어질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1년 전 내가 처음으로 소셜 미디어의 사용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게 가능해보이진 않았다. 여전히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이지만 지금은 가능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금단 증상으로 다시 중독으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작은 감소라도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삶의 본질을 되찾기 위해서는 전세계 수십억 사람들이 다시 그 사회적 삶을 자제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보다 적은 사람에게, 덜 말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비롯한 모든 이에게 그렇게 하는 것을 익혀야 한다. 소셜 미디어를 좋은 것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그 구조 자체가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소셜 미디어가 사그라지길 바라면서 소셜 미디어를 버리는 데 각자의 몫을 하는 것 뿐이다.



이언 보고스트는 미국의 학자이자 게임 제작자로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에서 영화·미디어학을 가르치고 있다. SNS 게임을 희화화하며 비판한 게임 '카우 클리커'(Cow Clicker) 등을 제작했고 저서로 '뉴스게임'(Newsgames: Journalism at Play), '비디오게임의 표현력'(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등이 있다.



1857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문예 매거진. 진보적 성향으로 롱리드 피처, 인터뷰 기사로 유명합니다. 본래 월간지였으나 현재는 1년에 10회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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