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3 12:19
아야라(가명)는 프린터에서 갓 출력해 따끈따끈한 이력서를 잔뜩 든 채, 채용 박람회로 달려갔다. 박람회장은 이미 구직자들로 가득했다. 올해 대학교 2학년인 아야라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UC버클리 컴퓨터공학과 학생은 이런 캠퍼스 채용박람회를 통해 이른바 'FAANG', 페이스북(현 메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에서 여름 인턴십을 기대할 수 있었다. 아야라의 절친한 친구도 여기서 애플 인턴십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엔 FAANG 기업 중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스포티파이와 세일즈포스, 우버,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몇달 전, 아야라는 이들 기업은 물론 50여 개의 다른 유명 기업 인턴십에 지원했다가 줄줄이 쓴맛을 봤다. 이들 기업이 대량 해고를 실시하기도 전이었다. 테크 기업들은 지난 1월과 2월에만 12만 명을 해고했는데, 이중 10%가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이 진행한 정리해고였다. (메타는 박람회 직후 1만 명을 추가로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지난 3월 채용 박람회가 열렸을 때 아야라는 욕심을 줄였다. "지금은 저를 뽑아만 준다면 어디든 좋아요."
박람회장에 들어선 아야라는 주니퍼네트웍스의 부스가 있는 행사장 뒷편으로 갔다. 이곳을 찾은 대학생 대부분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1996년에 설립된 주니퍼는 실리콘밸리에서 견조하게 사업 기반을 다져왔다.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하드웨어 및 하드웨어 제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확보한 기업이다. 다만 주니퍼에선 FAANG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생기발랄함'(아야라가 좋아하는 단어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니퍼의 인사 담당자는 주니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니퍼에겐 이번 박람회를 찾은 학생들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바로 인턴을 채용 중이란 사실이다.
아야라는 주니퍼 채용 담당자의 눈에 띄었고, 상담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긴장을 덜어주는 술만 없다 뿐이지, 박람회장은 칵테일 파티장처럼 예의바른 미소와 집요한 영업 멘트로 가득했다. 일부 학생들은 긴장이 되는지, 허벅지를 두드리거나 손의 피부를 꼬집기도 했다. 아야라는 최대한 편안해 보이려 노력했다. 채용 담당자가 이력서를 살피는 동안, 그는 자동차 렌트 업체 집카의 자회사에서 인턴을 했던 경험과 플레이스테이션 메시지 기능에서 이모티콘 반응을 도입했던 경험 등 몇몇 주요 경력을 열심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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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업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것 같군요." 채용 담당자는 긍정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왜 주니퍼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우리 회사에 대해 어떤 걸 알고 있어요? 아니면 그냥 알아보고 싶은 건가요?"
"여름 인턴십을 찾고 있어요." 아야라는 은근슬쩍 질문을 회피하며 말했다.
티셔츠에 버클리 동문 배지를 단 채용 담당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회사의 주요 초점이 네트워크 보안이라고 설명했다. "보안에 관심이 있나요?"
"네에." 아야라는 보안처럼 화려하지 않은(생기발랄하지 않은!) 분야의 경력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박람회가 끝나고 그는 주니퍼에 지원서를 냈다. 몇 주가 지났지만 답변은 여전히 없다.
요즘은 테크 업계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 좋은 시기는 아니다. 수년 동안 테크 업계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확장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팬데믹 기간 얻은 성공에 취한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투어 신규 채용을 진행했다. 메타는 단기간에 직원 수를 두 배로 늘렸다. 하지만 호시절은 끝났다. 테크 대기업들은 막강한 경쟁자(틱톡 같은)를 만났고, 공급 부족과 고금리 같은 만만치 않은 경제적 난관에 봉착했다. 투자자들이 '재정적 책임'과 '장기적 성장'과 같은, 과거에는 익숙치 않던 개념을 강요하면서 업계는 지난 1년 반 동안 약 30만 명을 감원했다. 20년 전 닷컴 버블 붕괴 이래 가장 큰 규모다. 아마존과 메타는 채용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전국 각지의 캠퍼스에서 그 영향을 체감할 수 있다. 버클리에서는 인턴 기회를 얻으려는 학생들이 박람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길게 줄지어 섰다. 몇몇 열성적인 학생은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하고 박람회장을 찾았다(후드티가 기본인 캠퍼스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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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십 기회를 얻더라도 안심할 순 없다. UC버클리 취업 센터의 수 하버에 따르면 일부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인턴십이 취소되거나 채용 제안을 받은 학생들의 입사일이 미뤄진 적도 있다. 그나마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내가 만난 어떤 학생들은 기업 수백 곳에 입사 지원이나 인턴십 지원을 했지만 아무런 제안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다는 한 2학년 학생은 내 소개를 듣더니 "이코노미스트는 사람 안 뽑나요?"고 물었다. 농담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번 버클리 채용 박람회에는 정부, 금융 기관부터 틈새 기술 스타트업, 그리고 놀랍게도 스파 업체에 이르기까지 60여 기업이 부스를 꾸렸다. 참여 기업중 가장 큰 테크 기업은 유럽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대기업 SAP였다. 테크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은 터라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기업들에 많은 구직자들이 몰릴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 테이블을 그냥 지나치더라구요." 지역 대중교통 기관에서 나온 채용 담당자의 말이다. 그는 가까스로 상담자 몇 명을 확보했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자율주행 트럭을 만드는 스타트업 등은 갑자기 박람회장의 스타가 됐다. 현장에 부스를 차린 주니퍼의 채용담당자 벤자민 첸은 주니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우리 회사의 사업 영역이 외적으로 잘 드러나는 건 아니거든요." 그는 "주피터에 대해 알려주세요"라고 용기있게 말문을 연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기업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처우나 복리후생 이외의 또 다른 매력 요소를 갖고 있는 셈이다. 채용 스타트업인 핸드셰이크가 최근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요즘 학생 구직자들이 기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안정성이다. 첸도 "조금 더 위험한 회사보다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회사를 선호하는 쪽으로 경향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은 버클리의 컴퓨터공학 전공생의 문화도 크게 바꿔 놓았다. 예전에는 이들에겐 대기업이 거의 마법 같은 매력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기업이 아닌 다른 곳은 들어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 이름을 통해 그 사람이 하는 일이나 역량을 인정받으니까 어디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하죠." 아야라가 말했다. 사람들이 "오, 이 사람은 저기서 일했군"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유명 대기업을 열망하는 현상 저변에는 SNS가 조장한 경쟁의식과 남보다 앞서고 싶은 심리가 놓여있다. UC버클리 학생들은 이미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남을 밀어내야 하는" 선발 과정을 통과한 이들이다. 취업과 인턴십을 확보한 학생들은 링크드인에서 자신의 성취를 요란하게 자랑한다고 아야라는 말했다.
빅테크 기업의 높은 연봉과 근사한 구내식당도 구직자에게 어필한다. UC버클리 졸업생 비키 리(21)는 "운동장"처럼 드넓은 기업 캠퍼스도 빅테크에 가고 싶은 이유였다고 말했다. 대기업 인턴십이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다. 예를 들어 리는 구글 인턴은 하루에 2시간만 일해도 "엄청난 급여를 받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구글에 문의했더니 "시간제 인턴십은 운영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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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학생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빅테크 기업을 제대로 본 게 맞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리는 자신이 FAANG 기업들을 '낭만화'해 왔다고 했다. 이제 그는 그들이 제공하는 특전을 일종의 술책으로 여긴다. 이제 그는 스스로를 "좀 더 반기업적 입장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대규모 감원이 시작되기 전에 대기업에서 일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대기업에 빨려 들어가지 않은 데에 안도하고 있다. 그는 "더 큰 이름을 좇기보다는 탄탄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소규모 회사, 이상적으로는 스타트업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주니퍼 부스에서 이름이 덜 알려진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유명 기업의 입사 제안을 거절했다는 버클리 졸업생 아서 캉을 만났다. 그는 주니퍼가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설명했다. 친구들은 그의 결정을 의아하게 여겼지만 그는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확신한다. "안정성이라는 말에는 당장 해고를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죠."
찰리 맥캔은 1843매거진의 피쳐 기자로,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대학 '개혁'을 취재한 바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명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빅테크' 기업을 골라서 취업할 수 있었죠. 하지만 최근 테크 업계의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미국의 '취준생'들도 급변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1843매거진이 5월 15일 기사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