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5 13:17
게일 애로우드Gayle Arrowood와 마크Mark 애로우드는 미국 에너지부 부설 연구소에서 은퇴한 바로 그날, 인생 2막을 시작하기 위해 아이다호Idaho주 선밸리Sun Valley로 차를 몰고 떠났다. 스키 리조트에서 바텐더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마크는 바로 그날 밤 교대 근무가 있었다.
은퇴 전까지 둘은 수십 년간 열심히 일했다: 마크는 경비실 직원으로 시작해 매니저로 승진했고, 게일은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연구소 프로젝트의 스케줄 관리자가 되었다. 연구실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제시간에 출근하려면 새벽 3~4시에 일어나야 했다. 둘은 여러모로 일을 즐겼지만 일터는 사내 정치와 다음 승진을 위해 일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기도 했다.
이 부부는 몇 년 전부터 주말에 스키 리조트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취업 박람회에 갔던 게 계기였다. 부부는 리조트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고객들을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2017년에 은퇴했을 때 바텐더 일을 그만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전 직장은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곳이었지만 리조트의 바는 근무 시간이 기다려지는 곳이었다. "사무직, 행정·관리직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얼음과 와인 상자를 나르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전엔 억대 연봉을 받았지만 지금은 최저임금을 받고 있고요." 게일의 말이다. "근데 우린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해요."
애로우드 부부의 전환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경제적 변화 속에서 일어났다: 지난 20년 동안 청년층 노동 참여율은 감소한 반면, 고령층의 노동 참여율은 증가했다. 몇몇은 단순히 은퇴를 미루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고용과 은퇴의 경계는 보다 모호하다. 지난 4월, 미국의 은퇴자 중 13%가 급여 노동을 했다. 이는 (배달이나 대리운전 같은) 단발성 노동일 수도 있고 아르바이트일 수도 있다. 일정 기간 쉰 후 '은퇴 번복'을 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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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의 경우, 일을 계속하기로 결심하는 건 재정적 필요 때문이다. 가난한 미국인들이 은퇴 연령에 도달할 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이 평균적으로 얼마 남지 않는다는 걸 고려할 때 특히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그만둘 여유가 없는 사람들만 반영하는 건 아니다. 2014년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퇴직자'의 80%가 자신이 원해서 취업했다고 답했고 실제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노동자 사이에서 은퇴 후 취업이 더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로 얻는 수입을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인생 2막' 직업이 즐겁고 성취감을 준다고 여기는 듯 보인다.
은퇴 후에도 의도적으로 일로 채운 삶이 암울해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너무나 오랫동안 행복보다 성취를 우선시해와 60대가 돼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반퇴'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을 덜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존재할 수 있다.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희귀한 존재다. 진정으로 권한을 가진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반퇴'를 택한 이들이 굳이 일할 필요가 없는데도 일을 하면서 무엇을 얻는지를 살펴보면 직업이 우리에게 주는 게 무엇인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은퇴하기 훨씬 전에 직업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애로우드 부부의 바텐더 일보다 해변에서 느긋하게 쉬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매일매일을 채울 일이 없으면 길고 지루한 나날이 될 수 있다. 은퇴 코칭 전문가 조 케이시는 많은 고객들이 은퇴 후에 닥칠 일에 대해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직업은 체계, 사회적 교류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신체 활동까지 제공한다. "일을 하면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가 생기죠." 은퇴 전문가이자 메릴랜드대학교 상담심리학 명예교수 낸시 K 슐로스버그Nancy K Schlossberg의 설명이다. 직업이 제공하는 공동체와 과제가 없어지면 신체적, 인지적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 물론 자원봉사나 취미 활동 등 두뇌와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직업이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결정적으로 많은 '반퇴자'들이 선택하는 직업은 젊은 시절의 직업만큼 힘들지 않다. 적어도 예전 방식으로 힘들진 않다. 애로우드 부부의 경우를 보라. 둘은 스키 리조트에서 관리직으로 승진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 시즌별 스케줄에 따라 근무하기 때문에 충분한 휴가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막판 항공권 특가 상품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료 스키 패스와 같은 특전도 누리고 스스로를 동료들 자녀의 '대리 조부모'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자율성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절실해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마크는 내게 말했다. "순전히 하고 싶어서 하는 거죠."
전문가들은 반퇴자들이 목적의식, 계속 배울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연성을 주는 직무를 찾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주 5일, 최소 40시간 풀타임 근무를 해야하고 보통 그보다 오래 일하죠. 하지만 반퇴자는 그런 식으로 일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다른 방식 일하길 원하죠." 미네소타대학교의 사회학자 필리스 모엔Phyllis Moen의 말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이 시기를 이용해 소소한 열정을 추구하거나 평생의 꿈을 이루거나 젊은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다. 이 기사를 위한 취재를 진행하면서 나는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에서 일하게 된 엔지니어, 마사지 치료사 교육을 받은 의회 연구원, 야구장에서 핫도그 판매를 시작한 제조 장비 회사 부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경우에는 현재 직장에서 근무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잠시 자리를 떠났다가 나중에 복귀하기도 한다. 실제로 65세 이상 취업자의 40%가 과거 은퇴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안식년 같은 일시적인 은퇴라도 재충전하면서 자신이 커리어에서 원하는 걸 재평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시 돌아오더라도?심지어 전통적으로 야심 찬 역할로 돌아오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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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은퇴자들이 찾는 종류의 유연한 임시직gig는 구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반퇴를 했을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퇴직자의 약 절반이 좋은 기회가 온다면 재취업을 고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의 구인난 때문에 일부 고용자는 덜 경직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주 4일 근무제 추진과 원격근무의 인기 등, 다른 트렌드도 반퇴자에게 취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 고령 직원에게 관대한 회사는 젊은 직원도 도와주는 경향이 있다. 트윈시티Twin Cities의 고령 친화적 직장에 대한 연구에서 모엔은 기업이 다양한 일정 요구 사항을 수용하거나 근로자에게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데 더 개방적일 때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렸다"는 걸 발견했다.
물론 반퇴의 일부 혜택은 특정 사람들, 다시 말해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반퇴의 매력 중 하나는 오랜 커리어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애로우드 부부에게 이전 직업에 대해 후회하느냐고 물었더니 두 사람 모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 직업이 그들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재미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 전에 성과를 인정받고 저축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오늘날의 젊은 미국인들은 은퇴하기 전까지 60년 이상 일하는 것이 일반적일 미래를 바라보고 있으므로 일에서 자신이 실제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2022년 미국에서는 5000만 명 이상이 직장을 그만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더 나은 일자리?세금 부담이 적고, 성취감이 높으며, 덜 소모적인?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여전히 자랑스러운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유연하고 의미 있으며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는 일의 모델로 반퇴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출생률은 낮고 기대수명은 높아지면서 고령인구가 빠르게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애틀랜틱이 소개하고 있는, 미국에서 최근 늘고 있는 '반퇴' 즉 완전한 은퇴가 아닌, 좀 낮은 임금이지만 노동조건이 보다 유연하고 좀 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는 삶이 어쩌면 한국사회의 대안이 될 듯 합니다. '워라밸' 즉 일(워크)과 생활(라이프)의 밸런스라는 표현은 보통 생활에 방점을 찍는 표현입니다만, 노령인구의 '워라밸'은 일에 방점이 찍혀야 합니다. 우리는 적절한 일(근로)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또 타인들과 교류할 수 있습니다. 은퇴가 아닌 '반퇴', 우리의 미래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