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9 14:14
거의 30년 전, 나는 애틀랜틱 1994년 2월호에 긴 커버스토리를 기고했는데, 제목이 '다가오는 무정부상태'였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끝났다. "이츠하크 라빈(이스라엘 총리)과 야세르 아라파트(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가 백악관 잔디밭에서 악수를 하던 바로 그날, 내가 타고 있던 에어아프리크 여객기는 말리의 수도 바마코Bamako에 접근하고 있었다. 내 눈 아래 사막(계속 넓어지고 있다) 끄트머리에는 양철 슬레이트 판잣집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오늘의 진짜 뉴스는 백악관이 아니라 바로 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라빈과 아라파트의 악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오슬로협정으로 이어졌고, 이 협정은 결국 깨져버렸다. 반면 "다가오는 무정부상태" 즉 가뭄과 사막화를 포함한 지구의 환경문제가 21세기의 국가안보 문제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주장은 입증되었다. 물론 이제는 '기후변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990년대 나온 신문이나 매거진 컬럼들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모두 민주주의의 이상이 어떻게 탈냉전시대를 이끌고 나갈 것인가에 골몰해 있었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심각해지는 지하수 부족 문제, 과잉경작에 따른 토질 악화 등이 간접적으로 인종적, 종교적, 종족적 갈등을 어떻게 악화시킬지에 골몰해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경제적, 정치적으로나 취약한 지역에서 청년 남성의 수가 증가하는 것과 결합해 극단주의와 폭력적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연의 힘들이 정치적 불안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썼다. 모든 지역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세계에서 거버넌스가 가장 약한 지역은 확실히 이러한 쪽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저개발되어 있는 사헬 지역은 극단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전지구적으로 찾아올 혼란을 미리 보여주는 샘플이 된다. 아프리카는 확실히 우리 모두를 위한 교훈을 갖고 있다.
니제르에서 최근 발생한 쿠데타가 더욱 혼란에 빠뜨릴 사헬 지역은 늘 식수부족과 이상고온에 시달려왔다. 이 지역 여성들은 평균 6번의 출산을 겪고, 주민의 40% 이상은 극빈 상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 길을 찾아 해외로 이주를 한다. 니제르 주민은 떠나고 주변 국가에서는 분쟁을 피해 니제르로 도망쳐오는 난민의 행렬이 끊기지 않고 있다. 이는 '기후 전쟁'이라는 개념이 왜 과도한 단순화인지 잘 보여준다.
내가 '다가오는 무정부상태'에서 상세히 기술했듯이 기후변화라는 이슈는 최빈국들의 높은 인구증가율, 자원부족, 질병확산, 약하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제도적 인프라, 멋대로 그어진 국경선, 종족간·종교간 갈등과 합쳐서 파악해야 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특히 사헬 지역은 극단적인 형태로 이러한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세계의 미래, 특히 매우 기분 나쁜 문제를 미리 보여준다. 바로 '국가와 지도자들은 어떻게 통제불능의 힘에 압도당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새로운 PADO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카톡으로 알려드립니다 (무료)]
현재 아프리카는 전 세계 인구의 18%를 가지고 있는데, 2050년쯤 되면 이 비율이 26%로 올라갈 것이다. 2100년이 되면 거의 4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가 막 시작했을 무렵 유럽과 아프리카는 거의 같은 인구를 가졌다. 하지만 21세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아프리카는 유럽보다 7배나 많은 인구를 가지게 될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유럽의 운명이 동쪽 즉 우크라이나에서 결정될 것처럼 보이는데, 미래에는 남쪽이 유럽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사하라 이남에서의 이주민 물결이 유럽 남쪽 해안을 계속해서 때릴 것이다. 니제르를 우리가 주시해야 하는 것은 이 나라가 러시아 용병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미군들이 싸우는 전장(戰場)이어서가 아니다. 니제르가 우리를 습격해올 중대한 문제들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로 지리적 거리가 줄면서 세계가 좁아지고 걱정거리로 가득하게 됨에 따라 아프리카는 우리의 의식 속 지도에서 더욱 커질 것이며, 우리는 모두 서로 긴밀히 연결된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밑바닥에 있는 삶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정치학에서나 다룰 법한 추상을 다루는 것보다 중요하다. 내 '다가오는 무정부상태'가 발행되고 10년 뒤, 나는 미 해병대 1개 소대를 따라 니제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수도인 니아메Niamey는 니제르의 서쪽 끝단에 소재했는데 이 지역은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이었다. 니아메를 나와 자동차 바퀴자국 투성이의 흙길을 따라 동북 방향으로 가다보니 국가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경찰도 없고 그 어떤 공권력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투아레그Tuareg족 두건을 쓴 남자들이 곳곳에 장애물로 길을 막고서는 돈을 요구했다. 붉은 빛의 토양이 거친 사막으로 바뀌었고, 사방에서 가시나무들이 다리를 찔렀고 커다란 흰개미 집이 곳곳에 보였다. 결국엔 완전한 사막이 나타났다. 2006년에는 이웃 나라 말리에 주둔한 미 육군 특수부대를 따라 더욱 극단적인 체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난 사하라 사막 지역으로 깊게 들어가게 되면서 흙집들과 가끔 보이는 위성안테나뿐이었던 말리의 북동쪽 도시 팀북투Timbuktu가 세상의 끝에 있는 황량한 구석이 아니라 내가 살아왔던 현대적 세계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라우안Araouane이라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우물도 주민도 거의 없는 지역이지만 마치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처럼 지도 상에 이름만은 올려두고 있었다. 남서쪽에 있는 수도 바마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팀북투 사람들도 아라우안에 도대체 사람이 실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치안과 보건은 도대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나와 함께 움직였던 그린베레(미국 특수부대)는 이를 알기 위해서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린베레 군인들은 팀부쿠에서 아라우안까지 4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11시간 걸렸다. 가는 도중에 타이어가 펑크 나기도 했고, 배터리가 과열로 터져버리기도 했고, 수시로 모래 속에 바퀴가 빠져 헛돌았다. (이 지역에서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홍수가 발생한다. 모래가 바싹 말라 물을 전혀 흡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라우안은 파괴된 건물들만 남아있었고, 사람이라고는 여자, 아이, 노인뿐이었다. 젊은 남자들은 밖으로 나가 캐러번 길을 따라 강도질 하거나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말리에도 민주주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을 때였다. 정치가들은 해외원조 자금을 인구가 많은 수도 바마코가 있는 남부에 주로 뿌렸다. 표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가 말리의 인위적으로 그어진 비합리적 국경선을 더욱 비합리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보다 이 버려진 사막지역은 이후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들어왔던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국경을 제멋대로 그었을 때, 그들은 수도를 가급적 남쪽에, 그리고 사바나 지역 가까이에 두려고 했다. 그들은 이들 나라들의 수도를 각 나라의 실질적 수도라기 보다는 프랑스 군대가 대부분 주둔하고 있던 서아프리카 해안지역의 북쪽 연장지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수도와 인근 주민들은 주로 사막과 초원지역 사이의 사헬 지역에 있다. 하지만, 제국주의자들이 멋대로 그은 지도에 따라 니제르와 말리의 정부는 북동쪽 멀리 떨어진 사하라 사막의 광대한 땅까지도 관할권에 두고 있다. 이 사막지역이 두 나라의 공식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니제르는 광활하기만 하고 인구가 거의 없는데도 그 북동쪽의 리비아 접경은 미국 북부의 오대호에서 남쪽 멕시코만까지의 거리보다 더 멀리 수도 니아메에서 떨어져 있다.
미군이 사헬과 사하라에 주둔하고는 있지만, 이 광활하며 텅 비어 있는 지역의 상당 부분은 이슬람 과격파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에 맞서 더욱 많은 미군 병력과 러시아 바그너 용병들이 이 지역에 투입되고 있다. 모든 문제는 수도 주변을 제외한 지역 대부분은 무정부상태라는 점에서 나온다. 수도 또한 산업이라는 것이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한 상태에서 일자리도 부족한데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이 도시의 경제는 겨우 먹고 사는 수준이며 게다가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사헬 지역과 서아프리카의 국가간 경계선들을 살펴보자. 순전히 인구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기니만 해안선을 따라 동서로 지역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는데, 국가의 경계를 표시한 정치적 지도는 이 거대한 땅덩어리를 남북으로 빵 자르듯 여러 개로 나눠놨다. 인구의 대부분은 남쪽에 살고 국토는 북쪽으로 뻗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할 수밖에 없는 형태다. 안 그래도 종족이나 기타 다른 것으로 나뉘어진 문제를 품고 있는 이 나라들인데, 이러한 국토의 구성 자체가 엄청난 문제가 된다. 여기에다 자연도 이들 편이 아니다. 토양은 그다지 비옥하지 않고 농작물이 너무 빨리 자라다보니 사람들이 농업노동에서 해방될 수가 없다. 가뭄과 온난화를 가져온 기후변화는 농업 사이클을 교란하고 물부족을 악화시키거나 다른 재앙을 가져온다. 물론 이러한 기후변화가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지역은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의 이 지역은 원래부터 인간 생존을 위한 최악의 자연 조건을 보여준다. 과거 식민지 역사와 현재의 정치가 이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미국의 외교정책 엘리트들은 몇몇 손꼽히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최선의 해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민주주의가 그 해법이라는 것이다. 서아프리카 나라들이 선거를 치르고 문민정치 원칙만 잘 지킨다면 천천히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이며, 국토 전역에 걸쳐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운영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개발도상국들을 볼 때 선거를 제대로 치르면 성공한 나라,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나라로 규정한다. 이것은 역사나 정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논리나 신념이 아니다. 순전히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것도 광신적 이데올로기다. '아랍의 봄'의 실패를 보자. 물론 개발도상국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원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엄청난 빈곤, 종족적·종교적 갈등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민주주의가 한국이나 대만에서는 작동하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 나라가 우선 산업화와 중산층 형성에 성공했기 때문이지 민주주의가 산업화와 중산층 형성을 도운 건 아니었다.
사헬 지역 국가들처럼 쿠데타가 빈번한 나라들의 정치동학에 대해 가장 명쾌하게 설명했던 이는 하버드의 고故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교수였는데, 특히 그의 '변화하는 사회의 정치질서'(1968)에서였다. 헌팅턴은 이렇게 썼다. "과두제에서는 군인이 급진파로서" 개혁에 우호적이다. 그리고 "중산층이 지배하는 곳에서 군인은 참여자, 중재자이고, 대중사회가 나타나게 됨에 따라 군인은 기존질서의 보수적 수호자가 된다. 역설적이지만 이해는 할 수 있는 것이, 사회가 후진적일수록 군의 역할은 진보적인 것이 된다는 점이다."
헌팅턴에 따르면, 정치발전은 결코 직선적일 수가 없다. 사회가 복잡하게 될수록 더욱 많은 혼란이 발생한다. 쿠데타는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에 혼란이 생기고 있음을 의미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외부자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헌팅턴에 앞서 미국의 사회학자인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 Jr는 주요 국가들을 상세하게 비교연구한 놀라운 저작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1966)에서 각국은 안정적이고 리버럴한 정치를 갖기 위해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기술했다. 이러한 과정은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관리들의 공식 언급을 살펴보면, 꼭 알아야 할 이런 미묘함과 현장의 실제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들이 말하는 단순한 보편적 민주주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특정 국가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이들 관리들처럼 단지 선거를 원하는 것이라면 별도의 지식은 불필요하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현실 밖에 우뚝 서있는 아름다운 이데아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번 니제르 쿠데타에서 종족간 갈등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제거된 대통령인 모하메드 바줌Mohamed Bazoum은 동부지역 출신의 디파Diffa 아랍인이다. 반면 쿠데타 지도자인 압두라흐만 치아니Abdourahmane Tchiani 장군은 동료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서부지역에서 온 하우사인Hausa이다. 서방 국가의 수도 지식인들에게 이러한 점을 거론하면 결정론이니 본질주의니 하는 온갖 공격을 받게 되며, 실제 권력투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게 된다.
언젠가 이 문제를 놓고 워싱턴 외교정책 서클의 매우 높은 자리에 있고 영향력도 있는 한 인사와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몇 년 전 사분오열된 리비아가 스웨덴 같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며, 기본적인 정치발전에만도 매우 길고 느린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 인사는 리비아의 종족적, 지역적 분열상황에 대해 아무런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도 리비아에 민주주의를 가르칠 전문가들만 파견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단언했다. 현장 상황에 대한 관심도 없고, 지식이 거의 없음에도 자신이 지식을 갖고 있다는 망상이 참으로 놀라웠다. 사실 리비아가 이렇게 사분오열된 것은 서방이 보편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독재자 가다피를 무너뜨리도록 부추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사헬 지역과 관련해 무지한 미국 및 유럽 정책결정자들이 똑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사헬 지역은 현재 리비아와 같은 무질서와 혼란을 상당히 노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아프리카에서 선거라고 불리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을 계속 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폭력행동의 위협이 일상이 되고 있다. 이 위협이 쿠데타나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서방의 정책결정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이 사회에 이미 존재했던 종족간 분열 등이 선거과정을 통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민주주의는 필요한 제도와 중산층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어야 작동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런 상태가 되어야 충분한 지식을 갖춘 관료제가 탈 없이 작동하고, 정치적 분열이 종족적, 인종적 분열보다 덜 위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서방은 이러한 제도들이나 상당한 규모의 중산층도 없는 사헬 지역 국가들에서 무조건 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가 현재의 니제르다.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자신의 경호부대와 싸움을 하고 이에 따라 쿠데타가 발생했다. 대통령이 선거로 뽑힌다고 해서 제대로 작동하고 제도화된 민주주의 시스템이나 이를 조금이라도 닮은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 정부는 니제르 상황과 관련해 너무 많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나는 우리가 단지 쿠데타를 용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곳에서는 쿠데타 세력이 제거된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매우 폭력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잘 안다.
위태로운 선거와 혼란한 민주주의 실험은 맬서스적 인구 압력이 간접적인 원인이 되는데, 이러한 압력은 질병, 자원부족, 기후변화에 의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 고령화는 진행되고 있지만 사헬 지역에는 별로 그렇지 않다. 이 지역의 상황은 19세기 영국 철학자인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의 통찰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맬서스에게 있어서 인류는 자연 생태계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자연환경은 너무 빠른 인구증가에 의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어떻든간에) 당분간은 이러한 경향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사헬 지역의 중단기 전망은 부정적인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살기 어려운 사막이나 반半사막 부근의 슬럼과 판자촌에 살게 될 것이며 기온은 높아지고 마실 물은 더욱 귀해질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듯 앞으로도 이 지역은 주민의 이주행렬이 아프리카 안팎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를 실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혼란과 환경변화에 의해 '강경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혼란이라고 해서 모두 국제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주지 않는 혼란들이 있다. 매일 정전과 단수가 발생하고, 치안이나 다른 공공 질서의 부재가 저강도의 혼란 또는 무정부상태를 만들어내지만, 대안이 없다보니 일상화되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내가 니제르와 말리를 여행했던 것처럼 제대로 경험을 하려면 반드시 그 곳에 가봐야 한다. CNN 보도만 의존해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데, 특히 저강도의 무질서는 일간뉴스 시스템에서는 보도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전혀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고강도 무질서는 보도가 된다. 아이티Haiti 같은 곳에서는 완전한 무질서 속에서 갱들이 지배하고 있으며, 아무도 주민을 책임 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이티 주민들은 외국 군대가 침공이라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1999년에 시에라리온Sierra Leone에서 일어났던 상황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다가오는 무정부상태'를 쓴 지 5년이 지났을 때였다. 시에라리온은 완전한 무정부상태에 빠졌고, 마약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수도 프리타운Freetown에서만 수천명의 주민들을 칼로 찌르는 등 난동을 부렸다. 다른 지역에서도 청년들이 몰려다니며 수천명을 살해했고, 온 나라가 공포에 얼어붙었다. UN 평화유지군은 어쩔 수 없이 2005년까지 주둔을 연장했다. 시에라리온은 최근에 선거를 실시했는데, 이 나라는 제대로 된 산업도 중산층도 존재하지 않는다. 부정부패는 만연해 있고 농업은 겨우 생존하는 수준인 이 나라는 분열되기 매우 쉬운 나라여서 주민들이 투표장에 갈 때면 해외 참관인들은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시에라리온은 다행히 평온한 상태이며, 상당 기간동안 평화를 유지해왔기에 우리는 혼란이 일부에 국한된 것이고, 제도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약간의 혼란이 있었던 것일 뿐이라고 믿을 뿐이다.
스펙트럼의 반대쪽에는 캐나다 정치학자 토마스 호머-딕슨Thomas Homer-Dixon이 이야기해온 '강경 정권'들이 있다. 이들 정권은 환경적 문제나 젊은 청년층의 인구증가에 대해 해법은 없고 단지 철권통치로 불만을 억누르고 있다. 물부족 문제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이집트가 이런 정권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수많은 갈등을 품고 있는 파키스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증가하는 인구에 확대되는 빈민지역을 갖고 있으며 자원은 부족하면서도 서양이나 아시아에 비해서 국가적 거버넌스가 상대적으로 약한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역시 미래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을 결국 도와주는 것은 깊게 뿌리내린 민주주의 제도의 전통이 될 것인데, 이런 제도들은 아직 도전을 받기도 하고 불완전하지만 스스로 만들어온 제도들이다. 크기만으로도 이들 국가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지역의 분위기를 선도할 핵심국가들이다. 향후 이들 국가들에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면 서방 언론은 주로 민주주의의 시련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게 될텐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 문제는 '기본적인 정치 질서'의 유지 여부이다.
현재로서는 사헬 지역에 대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니제르 중부의 아가데즈Agadez에 있는 미군 드론 시설은 이슬람 반군을 공격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데, 기지 주변에는 제대로 된 인프라도 거버넌스도 존재하지 않은 채 기지만 덩그러니 세워져있다. 이 기지는 잡목만 드문드문 있는 황무지 위에 몇 겹의 보안장벽을 갖고 있다. 이 기지는 제대로 된 선거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치안과 경제발전이 결여된 지역 한 가운데에 최첨단 기계만 놓여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며, 이 기지를 지켜줄 군대는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다. 이 미군들을 멀리 내쫓으면 그 빈 자리는 러시아의 바그너그룹이나 이슬람 반군들이 메울 것이다.
이곳은 확실히 진공 상태다. 이 사헬 지역 국가들은 국가라고 부를 수가 없을 정도로 비어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아프리카 사람들 자신들만의 잘못은 아니고, 서방의 잘못과 유럽의 제국주의 시대 이후 이어져 온 서방과 지역과의 잘못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사헬 지역은 세계 언론에서 또다시 천천히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사헬은 더욱 긴밀해져가는 세계 속에서 더욱 중요한 곳이 되어갈 것이다.
로버트 D 캐플런은 '지리 대전', '지정학의 복수' 등 국제문제에 대해 스무 권 이상의 책을 쓴 작가로, 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의 Robert Strausz-Hup? 석좌이며 30년 넘게 애틀랜틱에 국제문제에 대해 기고했다.
현장을 중시하는 저자 로버트 캐플런은 저개발국가들을 단순한 '민주화'라는 이상만으로 상황을 재단하고 정책을 추진하려는 미국과 유럽의 정책결정자 및 전문가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이들 나라는 민주주의는 차치하고 기본적인 거버넌스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민지의 경험, 식민당국의 무책임성, 짧은 근대화 역사 등이 이러한 '무정부상태'의 원인인데, 기온상승, 사막화, 물부족을 가져온 기후변화는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정치경제적 압박에 자연적 압박이 더해져 안 그래도 취약한 국가운영 능력에 과도한 부담이 됩니다. 캐플런은 이러한 자연의 압박은 현재로서는 안전해 보이는 나라들도 훗날 거버넌스가 약해졌을 때 치명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연속해서 쿠데타가 발생하고 있는 서부 아프리카 '사헬' 지역 국가들은 대부분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들입니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실제 주민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강력한 관료들이 위로부터 명령을 내리는 국정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통치의 편의라는 관점에서 국경을 설정하고 거버넌스 방식을 정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 식민지였던 사헬 국가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거버넌스에서 약한 부분이 없는지, 미래에 새로운 국제무대 플레이어로 등장할 거대 대륙 아프리카는 이러한 거버넌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캐플런의 보고를 읽으며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