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6 12:51
웨딩플래너들은 일요일 아침을 기도로 시작한다. 특별히 경건한 직업이기 때문이 아니다. 일요일은 토요일에 결혼한 고객들이 그들 스스로 행복한지 아닌지 알게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불행하다면, 일요일은 누구를 탓할지 결정하는 날이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이메일이 온다.
내가 "결정한다"고 표현한 이유는, 결혼식이 재미있고, 긴장되고, 비싸고, 감정이 복받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여러 번 재고된다. 커플에 의해, 가족에 의해, 청구서의 금액을 지불하는 사람에 의해. 결혼식은 부부의 새 출발을 알리는 것이지만 동시에 다른 것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령 가족 간의 불화, 깨진 우정, 오랜 재정적 후유증까지. 따라서 파티가 아무리 성공적이었다 하더라도, 웨딩플래너는 일요일에 기도하게 된다.
이메일이 기쁨과 찬사로 가득할까, 혹은 불만으로 가득할까? 예전에 내가 뉴욕에서 럭셔리 웨딩플래너로 일할 때, 사업 파트너와 나는 신부가 헬리콥터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며 쓴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신부는 자신의 결혼식이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뒤이어 신부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나를 따라 해봐요"하고 말했다. "'나는 일을 더럽게 못 한다.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 때때로 고객들은 단지 화낼 곳이 필요하다. 가끔은 나에게 소송을 걸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결혼식 플랜을 짜는 것은 럭셔리 웨딩플래너의 업무 중 일부일 뿐이다. 물론 웨딩플래너는 커플이 기대하는 근사한 이벤트 계획을 도울 것이다. 그러나 가장 주된 업무는 전문적인 '결혼식 친구'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리본 장식의 매듭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매여 있는지, 혹은 신부의 들러리가 더는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신부의 친구들에게 은근히 짜증 나게 굴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피는 사람이다. 가족들은 당신이 자신들만큼 신경 쓰기를 바라며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PADO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 북콘서트가 11월 30일(토) 광화문에서 열립니다! (안내)]
내가 웨딩플래너가 되었을 때, 내 가족들 누구도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를 길러주신 할머니는 소위 '미식축구 결혼식1football wedding'이라 불리는 결혼식을 올렸었다. 그들은 브루클린 레드 훅에 있는 해외참전용사Veterans of Foreign Wars 회관을 빌렸으며 탁자 위에는 은박 포장이 되어 있는 이탈리안 샌드위치 더미를 쌓아두었다. 사람들이 어떤 샌드위치를 원하는지 소리치면 다른 하객이 반대편까지 그것을 던져주었다. "결혼식이 복잡해 봐야 얼마나 복잡하겠어?" 그들은 웨딩플래너라는 직업에 의아해했다. 내가 만약 프로 진흙 레슬러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잘 이해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결혼식 행사가 결혼 잡지에 실릴 때마다 나는 그것을 가족 행사에 가져가 마치 다른 사람들이 자식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봐요." 나는 꿈결처럼 빛나는 세일클로스 텐트와 주문제작한 샹들리에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는 원래 허허벌판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지은 거예요."
안타깝게도 이것은 혼란을 가중시키기만 했다. "걔들은 그럴 돈으로 집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야?"
나는 내 고객들이 집을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야만 했다. 그들에게는 이미 집이 있었다. 아마도 여러 채가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몇 년이 지났을 때, 나는 롱아일랜드에서 호화로운 결혼식을 맡았다. 신부는 이미 값비싼 청첩장에 수천 달러의 추가 요금이 드는 주문제작 내지를 넣을지 말지 고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신랑 신부는 그들의 결혼식과 새 집을 구매하고 꾸밀 예산으로 일곱 자릿수의 금액(수백만 달러, 즉 수십억원)을 받았다. 게다가 신부는 미드센츄리풍2 가구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청첩장 내지가 바실리 의자보다 가치 있을까? 그는 계속 망설이며 고민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나 마침내 그의 어머니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우리는 부자야!" 어머니는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지 가져와요!"
수개월 후, 그때 그 어머니는 우리가 피로연을 위해 몇 날 며칠 동안 건설한 텐트를 감탄스럽게 바라보다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이곳이 하룻밤만 사용된다니 아쉽네요. 우리 행사가 끝나면 여기서 지낼만한 노숙자들을 찾아보면 좋겠어요."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한번은 몹시 난처해하는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딸이 몇 주 뒤에 결혼식을 올리는데, 나와 내 사업 파트너가 이 결혼식을 구제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전화에서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이 난관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시외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직접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화를 끊기 직전에 그는 속삭였다. "그건 그렇고 저는 아주, 아주 부자랍니다."
사실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자신의 집까지 곧장 연결될 정도로 크고 사치스러운 곳에 살고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메이드가 우리를 맞이했고, 예술 작품이 걸려 있는 긴 복도를 따라 서재까지 안내했다. 그곳에 신부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딜레마를 설명했다. 딸은 가족의 부를 부끄러워했으며, 오랫동안 부자임을 숨긴 채 살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부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신부는 어머니가 어떤 방식으로든 결혼식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만약 어머니가 개입하게 되면, 비밀이 모두 탄로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가 단지 가난을 코스프레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와 어머니의 수표책으로 무장한 어린 여성은 집을 떠나 자신이 생각하는 '평범한 결혼식'을 계획했다.
결혼식이 몇 주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는 딸의 주변을 캐보고는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딸은 단지 자신이 누리는 특권에 관련해 신념의 갈등을 겪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딸은 또한 나쁜 취향?혹은 '평범한' 신부가 원하는 결혼식에 대해 요상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와인잔 대신 재활용 유리병, 하객석에 놓은 접이식 의자, 협소한 바 같은 것들을 놓으려는 것이었다.
그는 원하는 만큼 가난한 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에 따르면, 친구들과 친척들 모두 이미 그들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실은 멋진 결혼식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 논쟁 끝에 그들은 타협했고, 웨딩플래너를 고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이 뉴욕에서 상호 동의했던 유일한 웨딩플래너가 바로 나였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화려함에 특화된 수많은 경쟁자 중에서 내가 "절제된 럭셔리"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신부가 다음날 우리에게 연락해 고용계약을 맺을 예정이므로, 그보다 먼저 자신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머니는 내가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분명하게 알기를 원했다. 나의 임무는 이 결혼식이 부끄럽지 않도록 확실히 해내는 것뿐 아니라 딸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만약 신부가 비용에 의문을 가지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야 했다. "이미 계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것이 얼마나 비싼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비밀리에 모두 지불할 것이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가? 물론이다. 내게 돈이 필요한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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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략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객분들에게 이 새끼 양고기 요리를 제공할 수도 있어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신부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게 소시지 크루아상보다 비싸지 않나요?" 그러면 나는 내 고용 목적대로, 모든 것이 이미 계약에 포함돼 있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는 결혼식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먹을 수 있는' 에스코트 카드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에스코트 카드란 손님들이 앉을 좌석을 알려주는, 접힌 카드 조각이다. 신부는 이쑤시개에 이름과 테이블 번호를 알려주는 작은 태그를 달고는 베이컨으로 감싼 대추야자에 찔러놓아둠으로써 전채요리와 에스코트 카드를 결합해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몹시 당황하여 그의 어머니에게 메일을 보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테이블 위에 똥덩어리들이 잔뜩 떠있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이시여, 왜 당신이 내 딸이 아닐까요?" 그는 답장을 보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이 나처럼 가난하게 자랐으나, 나와는 달리 결혼을 잘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부자와 결혼해요! 정말 재미있거든요." 아직 시도해 볼 기회가 없긴 했지만, 나는 아마 그가 옳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에 동의했다. 당신이 신보다 돈이 많다면, 다른 사람들이 사치스럽고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재산 일부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딨겠는가?
어찌 되었든, 별다른 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딸이 결혼 준비를 위해 시내에 머물던 중에 로그인된 어머니의 컴퓨터에서 나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게 되었다. 딸은 나를 즉시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와 사업 파트너가 웨딩플래너 일을 시작한 2003년도에, 미국은 결혼식 열풍이 불고 있었다. 이 열풍을 일으킨 것은 수많은 잡지였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브라이드Bride's', '모던 브라이드', '엘레강트 브라이드', '타운&컨트리 웨딩', '인사이드 웨딩', '인스타일 웨딩'. 2001년에는 영화 '웨딩플래너'가 히트했다. 그 후에는 '브라이드질라Bridezillas'나 '그나저나 누구의 결혼식이라고?Whose Wedding Is It Anyway?'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밤새도록 결혼 블로그를 검색해볼 수도 있었다. 당시 유명한 블로그는 '스타일 미 프리티'와 '웨딩비Weddingbee'그리고 '브라이덜 바Bridal Bar' 등이 있었다(그리고 그 당시 내 블로그였던 '올웨이즈 어 블로그메이드'도 있었다). 결혼식 전날 금요일이면 긴장을 풀기 위해 리얼리티 쇼 '내가 꿈꾸는 드레스Say Yes to the Dress'를 몰아 보곤 했는데, 거기 나오는 이들은 적어도 내 고객이 아니었다.
결혼식은 언제나 사치품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치품이 그러하듯, 대중들은 이것을 갈망하고, 모방하고, 복제하였다. 심지어 흰 드레스도 빅토리아 여왕이 1840년 결혼식에서 입은 직후에야 유행하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대한 부러움은 결혼식 자체만큼 오래되었지만, 특히 90년대 중반에 '더 노트(TheKnot.com)'라는 웹사이트가 등장하며 증폭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식의 모습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그라데이션 꽃 장식과 주문 제작된 자수 베일, 그리고 폼폼으로 장식된 파티 마무리는 모두 '노티Knotties'라 불렸던 온라인 예비 신부 그룹으로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더 노트'에서는 'JuneJerseyBride33'같은 닉네임의 누군가가 화려하게 장식된 에스코트와 메뉴 카드의 사진을 게시하곤 했다.
그러면 'SomethingBlue305' 같은 닉네임이 묻는다. "메뉴 카드가 꼭 필요한가? 난 메뉴 카드가 없는데."
거기에 'FallForTedForever'은 이렇게 댓글을 단다. "만약 신랑을 설득할 수 있다면, 나는 준비하려고 해! 이 사진들을 인쇄하고 너네의 귀여운 아이디어를 따라 할 거야."
'더 노트'는 신부들에게 예산에 대한 조언과 구매 가능한 업체 목록을 제공했다. 그러나 사용자들을 계속 재방문하게 했던 것은 채팅방과 그곳에서 발전하는 동지애, 그리고 친목이었다. '더 노트'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그들은 '예비 신부'라는 정체성을 만들었으며, 결혼을 경쟁적인 스포츠로 변화시켰다.
특별히 아름다운 결혼식은 웹사이트에 소개되거나, '더 노트'의 매거진에 실릴 수 있었다. 곧 더욱더 많은 사람이 손님들에게 특별한 하루를 경험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라인의 불특정 다수에게 결혼식이 어떤 이미지로 비칠지까지 계획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 고객들은 우리의 홍보 전략을 문의하러 방문했다. 그들은 결혼식이 끝난 뒤 그 사진을 어디에 보내는지 궁금해했다.
그해에 인스타그램이 설립되어, 예비 부부들이 직접 자신들의 정보를 공유하기가 쉬워졌다. 13년이 지난 지금, 예비 부부들은 결혼식의 SNS 홍보 관련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홍보 자문 비용은 최대 3000달러(400만원)까지도 소요된다. '메이드 오브 소셜' 같은 회사는 결혼식을 위한 '전략'을 개발해준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사진을 찍은 다음, 당신의 스냅챗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에 다양한 해시태그와 함께 업로드한다. "당신이 14개월 동안이나 준비한 그 날을 전 세계가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한때 신부가 된다는 것은 하루 동안 공주님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은 유명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방식이건, 당신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관심을 끌며 돋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많은 돈을 쓰는 것뿐이다.
미국의 평균적인 결혼식 비용은 약 3만달러다. 역사적으로 결혼식 비용은 부모로부터 받은 적금과 선물들을 조금씩 모아 마련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기념행사는 빚잔치나 다름없다. 통계에 따르면 대략 30%~45%에 달하는 예비 부부들이 결혼식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신용카드나 다른 대출 상품을 이용한다고 한다. 약혼한 예비 부부들을 겨냥해 출시된 '결혼 자금 대출'은 이자율이 최대 30%까지 오르기도 한다.
동시에 한편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이들의 초호화 럭셔리 결혼식이 시장의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 '씽크 스플렌디드Think Splendid'에 따르면, 작년 미국에서는 100만달러(13억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결혼식이 대략 1만3000건이나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는 백만장자와 억만장자 가족들의 결혼식이 매주 250번 이상 있었고, 그것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유행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의미다.
웨딩플래너 마시 블럼Marcy Blum이 기획한 최근의 결혼식들은 플로리다의 팜 비치에 있는 사유지에서 진행되었는데, 그는 고객을 위해 그곳에 미니어처 골프 코스를 지었다. 10만 명 넘게 팔로우하고 있는 블럼의 인스타그램에는 검은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손님들이 골프를 즐기는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웨딩플래너로서 블럼의 경력은 30년이 넘는다. 그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나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와 같은 거물들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 산업에 종사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태어날 때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그는 브롱크스에서 세일즈맨과 학교 교사의 딸로 자랐다. 그러나 그는 쉽게 위축되지 않는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빌 게이츠와 대화 중이라고 해봅시다. 그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일 테지만, 조명이나 테이블 세팅에 대해서는 뭘 알겠어요?" 블럼은 내 멘토였다. 내가 그의 소파에서 울었던 밤은 셀 수조차 없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그는 내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그 골프 코스는 단지 잔디밭에 구멍 몇 개가 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와 디자이너는 음료와 음식을 제공하는 가판대를 만들었으며 주문 제작된 연필과 ('버디라고 말해줘'라고 새겨진)점수 기록표를 제공했다. 또한 스태프들은 캐디로 분장하고 퍼팅 팁을 알려주었다.
블럼은 미니 골프장을 만드는 것에 얼마의 예산이 들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어떤 고객들은 결혼식에 200~300만달러 이상의 비용을 들이기도 한다. 이것은 하객 한 명당 8000달러(1000만원)가 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이들은 그 이상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더 이상 자세히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걸기도 전에 벌써 비싸다고 생각하는 건 원치 않거든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돈이 다 어디에 쓰이는 걸까? 가장 많은 부분은 시설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가장 섹시하지 않은 것들이 가장 비싸다. 땅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한 조경, 그곳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배선 작업, 300명의 인원을 수용할 경간徑間 구조물이나 천막 텐트를 세우는 업체 비용, 그리고 냉난방 시설. 조명 작업, 원목 바닥재, 화장실 트레일러, 트레일러를 우아한 파우더 룸으로 꾸미기 위한 장식들, 요리사를 위한 별도의 텐트, 음식을 신선하게 하기 위한 냉장 트럭과 데우기 위한 가스 스토브. 심지어는 공급 업체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도록 멀리 떨어진 공터의 수평을 맞추는 조경 작업까지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은 수많은, 정말 수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블럼이 기획하는 결혼식에는 최대 40개 이상의 업체가 고용되며, 각각 업체들은 자체 스태프들을 데리고 있다. 수백 명의 노동자 대부분 블루칼라 계급이며, 대체로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일주일 이상 밤낮으로 일한다. 마치 순회하며 일하는 서커스단원들처럼.
결혼식 당일이 되면, 그의 고객은 주로 스타일리스트 줄리 사바티노Julie Sabatino의 회사 '더 스타일리쉬 브라이드'에서 일하는 전문 드레서가 비행기를 타고 출장 오게끔 한다. 사바티노의 웹사이트에서는 이 전문 드레서들을 고상하게 '대기 중인 숙녀들ladies in waiting'이라고 칭하며 그들이 하얀 장갑과 작은 앞치마를 착용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 명의 드레서를 부르는 비용은 2450달러(340만원)부터 시작하는데 럭셔리 결혼식의 경우 10명까지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바느질이나 다림질을 하고 "리본 넥타이를 메주기도 한다." 블럼의 말이다. 그들은 핀으로 옷을 고정시키고, 빨대 꽂은 물병을 들고 신부를 따라다니며 그가 립스틱을 망치지 않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돕는다.
일반적으로 이 시간 동안 블럼은 보안 경비원과 사이버 보안 회사를 고용하여 해커가 손님 명단을 빼가는 걸 막는다. 그곳에는 스태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요리사도 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손님들의 좌석 배치 변경을 대비해 글씨 쓰기를 전담하는 캘리그라퍼도 대기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컨시어지 이벤트 기상학자'인 '아이러닉 리포트'의 앤드류 리빗Andrew Leavitt까지 고용하는데, 그는 "비가 올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을 도와준다. 신부에게 그가 꿈꾸었던 야외 행사를 실내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 이것은 플래너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리빗은 15분마다 전화를 걸어 폭풍이 올 가능성을 알려준다. "폭풍은 이리로 갔습니다. 아니, 저리로 갔습니다."
결국에는 날씨야말로, 마시 블럼이 통제할 수 없는 단 하나였다.
내가 웨딩플래너 일을 막 시작했던 때, 나는 TV 리얼리티 쇼 '그나저나 누구의 결혼식이라고?'에 출연하기로 계약했다. 유명해지는 데는 관심없었지만 더 많은 고객이 필요했다. 만약 TV 리얼리티 쇼에도 에미Emmy상이 있다면, 분명 내가 수상했을 것이다. 나는 열정적이었으며, 낭만적이었고, 또 모든 것이 정확히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기만을 바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고객들이 리셉션에 몰려들었을 때, 나는 클립보드와 체크리스트를 쥔 채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내가 사는 이유지." 나는 케이크를 보기 위해 베이커리에 20번 이상 방문할 수 있었는데,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황홀하고도 긴급했다.
이 쇼에 출연하기로 했던 우리의 고객들은 억만장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약간의 유명세를 맛보기는 했지만, 어쨌든 대체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꽃과 조명의 업그레이드였다. 카메라 앞에서 멋진 결혼식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진은 다른 것을 원했다. 멋진 결혼식은 멋진 결혼식일 뿐이지만, 엉망진창인 결혼식은 훌륭한 TV 프로그램이 된다.
리얼리티 쇼에서 선보이는 첫 결혼식에서 나는 뉴저지 깊숙한 곳의 연회장에서 볼품없는 파란 벨벳 재킷을 걸친 채로 등장해, 나타나지 않은 플로리스트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걸면서도 침착해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몇 시간 후에 그는 결국 나타났지만,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중앙 장식을 빼먹었다. 당연히 제작진은 우리를 다시 섭외했다.
우리는 이 쇼에 몇 차례 더 출연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과장하고 불안감에 떠는 척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우리의 마지막 TV 출연은 2014년이었다. '익스트림 결혼식' 컨셉을 보여주는 새로운 기획이었다. 우리는 하와이에 있는 휴화산 지대에서 70명의 손님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도록 배정받았다. 신부가 헬리콥터를 타고 입장하는 것을 포함해 6시간 동안 화장실도 없는 검은 용암 위,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준비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모든 것이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리얼리티 TV쇼는 이런 전문성을 좋아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이 이 쇼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나는 TV 밖에서의 결혼식들에서 더 드라마틱한 일을 겪었다.
한번은 모든 결혼 선물을 우리 사무실로 배송받길 원하는 신부와 일한 적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 그것이 신부가 계속 사무실에 방문하기 위한 핑계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 약혼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그것에 대해 대화하길 바랐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결혼식을 올렸으며, 화려한 웨딩 브런치를 먹었다(나는 웨딩 브런치를 무척 좋아한다).
또 다른 신부는 디자인 노선을 정하지 못해서 점점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핑크색이 싫어요. 핑크색은 절대 보여주지 마세요!" 그리고 그는 내게 선호하는 이미지들 수십 개를 보내주었는데, 죄다 핑크색 계열의 이미지들이었다. 그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핑크색을 입고 있었고 심지어 전화기도 핑크였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신부님은 사실 핑크색을 좋아하고 계세요." 결국, 그는 핑크빛 결혼식을 열었다.
한 예비 부부와의 마지막 미팅에서, 그들은 바 위에 '에디블3edibles'을 올리고 싶다고 계속 얘기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아주 멋진 결혼식을 디자인했다. 주문 제작한 후파4chuppah와 어울리는 샹들리에는 브루클린의 예술가가 손수 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 위에 한 무더기의 에디블이 올라가면 분위기를 완전히 망칠 것 같았다. 나는 이 점을 공손하게 표현하려고 최대한 애썼다. "사람들은 에디블에 대해 호불호가 강해요." 이는 초콜릿을 입힌 파인애플 조각들에 대해서도 사실이었고, 대마초 젤리에 대해서도 사실이었다.
또 다른 예비 부부는 거대한 부지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신부의 아버지는 자신의 더 나은 판단을 굽히고, 신부의 선택에 모두 따르며 딸이 꿈꾸던 결혼식을 만들어주고자 했다. 그는 이 결혼식을 통해 딸이 살아가면서 원했던 온갖 터무니없는 선물을 다 해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며칠 동안 조랑말을 숨겨 두어야만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많은 부부는 우리에게 뒤풀이를 열어주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때때로 이 밤이 무척 재밌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한 뒤풀이 직전에 나는 이혼을 했고, 전채요리를 먹으며 신부는 내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냥 내면이 죽은 것 같아요." 나는 말했다. 잠시 후 그는 나를 따라 여자 화장실에 왔다. 볼일을 보고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그가 내게 말했다. "나도 내면이 죽은 것 같아요."
'혼산복합체5婚産複合體'라는 용어는 2007년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레베카 미드Rebecca Mead가 결혼 산업을 비판한 책 '완벽한 하루One Perfect Day'를 출간한 즈음이다.
미드는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에 냉소적이었다. 그가 보기에, 분별 있는 예비 부부라면 그저 법원에 다녀온 후 그들의 삶을 살 것이다. 반면 경박한 약혼자들은 결혼 전문가들에게 현혹당해 열심히 번 돈을 가져다 바칠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들이 정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드는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필요를 조장하고 욕망을 추동해요. 그리고 그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은, 업계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몹시 영리한 마케팅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맥맨션6McMansion과 대형 TV, 명품 핸드백의 시대였다. 과도한 소비 욕망은 결혼식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었고, 웨딩플래너들에 의해 조장된 것도 아니었다. 조디 캔터Jodi Kantor는 그것을 지적한 리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 지금 우리는 모두 신흥 졸부다." 그러나 곧이어 (그런 주장을 반박하는)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미드의 견해는 대중의 상상 속에 굳어졌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결혼식 "세금"이나 "프리미엄"에 대해 경고하며 "결혼 산업에 속지 않는 방법"을 소개하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결혼식이 값비싸다는 게 결혼 전문가들의 잘못은 아니다. 사실 결혼식이란 사치품이지 필수품이 아니다. 무엇인가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 때는 항상 비용이 든다. 모든 손님에게 편안함과 풍족한 음식, 그리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에는 더욱 큰 비용이 든다. 결혼식은 단지 '결혼사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좋은 결혼식이란 몰입시키는 연극이며, 살아 숨 쉬는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미드가 결혼 전문가들이 몹시 영리한 마케팅 전문가이기도 하다고 평했던 것은 맞는 얘기다. 소수의 사람이 시장 최첨단의 럭셔리를 주도한다. 언제나 그들이 선도하는 유행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줄리 사바티노는 2000년대 초 결혼식 스타일링의 기반을 다진 사람이다. 그전에는 그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면 모두 그가 그저 헤어스타일리스트인 줄로만 여겼다고 한다. 지금은 전국에 결혼식 스타일리스트가 있는데, 대부분은 사바티노에 훨씬 못 미치는 비용을 받는다.
마이클 와이저Michale Waiser는 가장 유명한 출장 요리사 중 한 명이다. 나는 사람들이 그를 '터무니없이 비싼 요리사'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그의 음식들은 메추라기 알과 저민 검은 송로 버섯 아래 야생 버섯을 깔고 그 위에는 '레체 데 티그레' 소스와 플렌테인의 얇은 실 조각을 올린 종류의 것들이다. 모두 코셔7kosher 요리이고 인당 550달러(74만원)부터 시작한다. 그는 코셔 요리법이 그다지 선호되지 않았던 시기부터 뉴욕에서 코셔 케이터링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와이저는 곧 부유한 유대인 미식가들이 자신들의 부자 친구들처럼 특별한 것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앨런 제페다Allen Zepeda는 세 살 때 브루클린으로 이민했다. 그는 펜테코스탈 교회의 청년부를 위해 사진 촬영을 시작하였으며 사진을 독학하였다. "라틴 꼬마를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내가 연락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와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의 결혼식을 촬영했다. 그의 출장 웨딩 촬영 비용은 5만달러(6700만원)부터 시작한다.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그의 성취 중 일부일 뿐이다. 연인들은 그가 자신들을 보그 모델인 것처럼 대우하기 때문에 그를 좋아한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알아야 한다. "억만장자는 경험을 사지, 물건을 사지 않아요."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럭셔리 웨딩 디자이너 리쉬 파텔Rishi Patel이 말한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경험은, 그들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가짜 가난뱅이 신부의 어머니는 끝내 나를 해고할 마음을 먹지 못했다. 우리는 신부의 예산을 의식한, 귀여운 보석 상자 같은 이벤트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했다. 우리는 그만둘 수 없었다. 대신 우리는 결혼식을 지켜내기 위해 처음 고안했던 것보다 더 공들인 계략을 세웠다.
나는 내 직원 한 명을 케이터링 기획자 중 한 명인 것처럼 위장했다. 그리고?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이 여성과 신부를 서로 소개해주며 내가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시켰다. 물론 사실은 정반대였다. 그리고 이 여성과 신부가 나눈 대화들은 거의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실제로는 나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가 실질적인 것이었다. 대단히 많은 것들이 고려됐다. 우리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가구를 주문제작했다. 냉방 시스템을 향상시켰으며, 누구도 넘어지지 않도록 바닥을 재정비했다.
이벤트 당일, 모든 포크를 똑바로 정렬하고 자수가 새겨진 린넨 냅킨을 접어 둔 후, 나는 보이지 않도록 숨었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몇몇 스태프에게 나머지 모든 것을 맡겨두었다. 그들은 웨이터로 위장했다. 나는 몇 블록이 떨어진 식당에서 대기하다가 그 어머니로부터 신경질적인 문자를 받았다. "딸이 다 알아챌 거예요!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챌 거라고요!"
나는 그에게 이 비밀이 지켜질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가 딸이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 확신했던 까닭은, 그 자신이 술에 취해 모든 것을 말할 작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파티 중간에 그는 한쪽으로 신부를 불러 모든 계획을 고백해 버렸다. 신부의 얼굴이 붉어졌다. 신부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내내 배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뒤에 숨어서 웨딩플래너와 부정한 모녀 관계를 맺고 있던 것이다!
그날 밤이 끝날 무렵, 내 핸드폰이 마지막으로 울렸다. "딸이 모든 것을 알아버렸어. 이제 정말 안녕이군요!"
"우리는 언제나 도움을 주죠." 마이클 와이저가 내게 말했다. "나는 아마도 그곳에서 가장 값비싼 도움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어쨌든 도움이 되죠. 그리고 난 당신이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5년, 나는 번아웃을 겪었다. 결혼식 자체 때문은 아니고, 내가 연기해야 했던 역할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직후, 반멕시코적인 정서가 팽배한 성명을 발표했다. 멕시코계 미국인 혼혈의 웨딩플래너였던 나는, 금요일 밤 시식회에서 신부와 신랑의 가족들이 공연장과 밴드, 음식들 그리고 미래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얼마나 흥분해 대화하는지 듣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들의 진정한 친구였다면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었겠지만, 결혼식 친구들, 그러니까 고용된 친구들은 쇼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진행 중인 결혼식을 그만두는 것보다 이혼하기가 더 쉽다. 나는 후자를 성공적으로 해냈지만, 전자는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나는 관계를 끊고 싶었던 어떤 신부들보다 내 전남편을 더 좋아했다. 신부와의 갈등은 거의 언제나 예산 문제였다다. 신부는 자신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를 원했으며, 자신이 비용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내가 무능하다고 여겼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고객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한계를 넘어 빚을 내면서까지 세상에 보여주기식 결혼식을 여는 이들이다. 그렇지만 보석이나 가방과는 다르게, 멋진 결혼식은 절대 가격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상황이 점차 나빠지다가 결국 우리는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결혼식은 즐거운 경험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갈라서야 했고 그들에게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러면 신부는 입술을 떨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잘못했어요. 제발 떠나지 말아줘요."
내가 주로 상대하는 부유한 고객들은 대체로 자신의 의지대로 현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그들에게 이용당했던 적은 단 한 번이다. 한 신부가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여동생이 같은 해 같은 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확실해 보이는 연유로, 그는 자신의 여동생과 같은 플래너를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비용을 알려주었고,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에 따르면 여동생의 플래너가 1만2000달러 정도 더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여동생은 좋겠네요!"
그럼에도 우리는 만나는 것에 동의했다. 함께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눈 끝에, 그가 내가 자기 결혼식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길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결혼식에서 그의 여동생이 어떻게 결혼 준비를 하는지 전혀 개의치 않은 유일한 사람이면서, 그의 여동생이 결혼한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들은 나를 좋아했으나, 문제는 다른 플래너의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재차 말했다: 잘됐군요, 한 플래너를 두 결혼식에 모두 고용하면 되겠네요. 그러나 결국 그들은 나를 원했다. 우리는 계약을 체결했고, 그들은 내게 첫 번째 예치금을 보내왔다.
결혼 2주일 전, 우리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지불해야 할 만 달러가 결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연락했다. 그들은 우편으로 수표를 보냈다고 말했다. 당일 행사 준비를 시작하기 이틀 전, 우리는 그들이 제출했던 서류의 카드 정보로 결제를 시도했지만, 그 카드는 더 이상 유효한 카드가 아니었다. 우리가 전화를 걸 때마다 그들은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면 수표를 주겠다고 대답했다. 텐트 설치가 시작된 지 사흘째 되던 날, 우리가 그들에게 결제를 요청하자, 신부의 어머니나 아버지는 곧장 집에서 수표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번 다른 일이 있다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혼식 당일, 우리는 여전히 돈을 받지 못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했다. 그들에게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우리는 다시 찾아갔다. 그의 아버지에게 수표를 요청했을 때 그는 우리에게 어떻게 딸의 결혼식 날 자신을 괴롭힐 수 있느냐며 빽 소리를 질렀다.
그다음 날 우리가 파티의 뒷정리를 하러 도착했을 때, 가족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수표도, 신용카드 번호도 없었다. 우리는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뉴욕에 돌아와야 했다. 13년 동안 이 사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백만장자에게 놀아난 것이었다.
그 일요일에 우리는 특히 더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나 월요일에 되었을 때 신부의 아버지가 연락을 해왔다. 그는 그가 우리에게 최종 지불을 보류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계약상의 사소한 위반 사항을 목록화해 보내왔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다 잊어버렸지만 분명 다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냅킨이 기준 미달이라거나, 화장실 트레일러의 조명이 깜빡거렸다거나.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건 순전히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고용된 그대로 일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여동생의 플래너가 돈을 더 적게 받는다면 나 역시 계약과 무관하게 더 적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한번 싸워보자고, 그가 말했다. "당신과 소송하는데 돈을 쓰는 것은 무척 재미있을 거야."
최근 가장 이슈였던 결혼식은 스파이스걸스 멤버와 스타 축구선수의 아들 브루클린 베컴Brooklyn Beckham과 억만장자의 딸 니콜라 펠츠Nicola Peltz의 결혼식이었다. 타블로이드에 따르면 이 결혼식에는 300만에서 500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들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결말은 소송과 스캔들이었다. 신부의 아버지는 그에게 고용되어 짧게 일했던 웨딩플래너 두 명을 고소했으며, 그들 역시 맞고소했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매번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냈던 수백 명의 노동자를 떠올리곤 한다.
비평가들이 결혼식의 과도한 낭비를 비판할 때마다 그들은 이 낭비가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사실을 잊는 듯 보인다. 결혼식 뒤의 무수한 노동들은 보이지 않으나 실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결혼 산업이 침체되면 이들은 고통받는다. 웨딩플래너와 디자이너들, 그리고 플로리스트, 출장 요리사들은 경기 불황에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팬데믹 시기에도 역시 그랬다. 그 두 시기 모두 가장 먼저 돌아오는 건 부자들이었다. 마치 봄이 찾아오듯.
리쉬 파텔은 앞서 언급한 펠츠 결혼식의 디자이너였다. 그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 자주 고객들에게 그들의 결혼식을 위해 그렸던 캐노피와 테이블 셋팅, 서약을 나눈 무대의 스케치들을 책으로 묶어 주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책의 맨 앞에 이런 메모를 남긴다. "저는 여러분께서 2주일 동안 200명을 고용했던 것에 저만큼이나 자랑스러워하시길 바랍니다." 그와 마시 블럼은 행사에 소요되는 엄청난 노동을 인간화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비하인드 장면들을 비디오로 업로드하기 시작했던 수많은 결혼식 전문가 중 하나다.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블럼은 말했다. 비평가들은 항상 "세계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노숙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결혼식 비용으로 이들 800만 명을 먹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고객들은 이미 수백만 달러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은 야외 피크닉 정도로 해야 할까요 당신 자녀의 결혼식 비용으로 '적-절-한' 금액은 얼마인데요?"
여러분은 아마도, 가짜 가난뱅이 신부의 어머니가 내게 영원한 작별인사를 했음에도 실은 연락을 완전히 끊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몇 통의 이메일과 가끔 오는 문자를 받았다. 이 일에서 이상한 부분은, 내가 분명히 신부가 화내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추측컨대 아마 그의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의 유대 관계는 그가 그의 딸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모두 그가 자신의 돈을 어떻게 여겼는지와 관련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는 돈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 만큼이나 쓰는 것에도 아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칠 곤잘레스는 애틀랜틱의 스탭 필자로 소설 'Olga Dies Dreaming'을 썼고 2023년 퓰리처상 논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더 인상적이고 더 멋진 결혼식에 대한 열망은 강렬해서 심지어 결혼식을 준비하다가 파혼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죠.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나마 식장이나 드레스 선택으로 갈등하는 한국은, 아예 하객을 위한 골프 코스를 조경해서 만들기도 하는 미국에 비해서는 소박(?)한 듯 보입니다. 럭셔리 웨딩플래너로 오래 일했던 애틀랜틱의 기자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2023년 7·8월호에 기고한 이 글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무겁고, 사회비판적이면서도 현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흥미로운 에세이입니다. 미국 슈퍼리치의 별난 결혼식 문화에 대해 알 수 있으면서도, 미국의 빈부격차를 지적하며 이를 무작정 비난하기보다는 부유층이 이렇게라도 돈을 쓰면서 고용이 창출되는 점을 지적하는 독특한 시선이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