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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프리드먼: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왜 하마스의 기습을 놓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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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리 AFP=뉴스1) 정지윤 기자 =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군인이 가자지구 국경 인근 비에리 키부츠(집단농장) 국경 철조망을 따라 순찰을 돌고 있다. 2023.10.26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2023.10.27 13:24

New State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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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킹스컬리지의 로렌스 프리드먼 명예교수는 전략연구, 전쟁연구 부문에서 가장 왕성한 연구를 해온 학자입니다. 포린어페어스에 전략이나 전쟁 부문 서평을 오랫동안 맡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전문가는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 원인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뉴스테이츠먼에 실린 그의 기고문은 이스라엘의 안이한 오만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오만을 조금씩 유도해온 하마스의 성공을 이야기합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감청능력을 정확히 알고 이를 역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부패 사건을 덮기 위해 사법부를 개악하려 했고 이를 위해 강경 우익들과 제휴를 하면서 이스라엘의 안보까지 정치적 논리로 왜곡시켰다고 지적합니다. 로렌스 프리드먼은 많은 역사적 사례와 비교해 가면서 이스라엘의 정보, 정책, 정치, 그리고 하마스와의 정보 게임을 이 기고문에 담아냈습니다. 한국의 국방 및 정보 정책에 대해 생각해 볼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정보실패는 포착했어야 할 정보 조각들이 포착되지 않았거나 포착되었더라도 잘못 해석되었을 때 발생한다. 해석은 정확히 되었는데 이에 맞춰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보실패라기 보다는 정책실패다. 이스라엘이 10월 7일 하마스에게 기습당했던 것은 정보와 정책 양쪽의 실패였다.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은 그 유명한 능력과 끈기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전사들의 임박한 공격 징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는 마찬가지로 유명한 안보 중시 성향에도 불구하고 가자 상황에 대해 너무나도 안이했다. 하지만 이렇게 이스라엘이 비슷한 이유로 기습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50년 전인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 군이 기습공격을 하면서 이스라엘 방어선을 돌파했고 이스라엘은 속수무책으로 기습당했다.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많은 연구가 이뤄진 기습공격은 아마도 1941년 12월 7일에 이뤄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일 것이다. 이날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다. 획기적인 연구를 통해 역사가 로버타 월스테터(Roberta M. Wohlstetter)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제시했는데, 미국이 기습을 당했던 것은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진주만 기습 직전 미국은 일본의 외교 및 군사 통신을 꼼꼼히 지켜보고 있었다), 기습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정보 조각들이 별로 쓸모도 없는 정보 '소음들'의 어마어마한 더미 속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보분석가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과제는 '점들 연결하기'다. 즉, 서로 무관해 보이는 정보 조각들 사이에 뭔가 패턴을 발견하게 되고 이 패턴을 통해 다가오는 위험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항상 어려운 작업이 되는데, 정보는 늘 불완전하고, 애매하고, 서로 모순되며 헷갈리는 종류의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 더미에서 뭔가 그림을 찾아내려면 '작업 가설'('컨스트럭트'(construct)라고도 한다)이 필요한데, 정보분석가들은 이 '작업가설'이라는 잠정적 가설을 세운 뒤 계속 들어오는 정보들을 가설에 맞춰보기도 하면서 그 신뢰성을 판단한다. 이 정보의 가설 즉 컨스트럭트가 들어오는 정보들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면, 우리가 이 작업가설에 맞는 정보만 주시하고 안 맞는 정보는 무시하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어빙 재니스(Irving Janis)의 "집단사고"(groupthink) 개념을 통해 본다면 1941년 당시 하와이의 미 해군 지휘부는 자기들끼리 확고한 믿음을 형성해가면서 일본이 그렇게 대담한 기습공격을 해올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로서는 일본이 훨씬 더 센 미국을 상대로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을 개시할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웠고, 전쟁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일본은 더 좋은 목표물이 있기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다른 기습은 1941년에 있었던 독일의 소련 침공이었는데, 당시의 '작업 가설'은 스탈린의 머리 속에 있었다. 그는 독일과의 불가침조약이 오래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당분간 불가침조약이 자신과 히틀러에게 도움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스탈린은 소련 육군의 힘을 믿었고, 히틀러가 서부전선에서 아직 영국을 굴복시키지 못한 채로 동부에 새로운 전선을 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의 소련 침공이 임박했다는 내용의 경고가 쏟아져 들어왔고 윈스턴 처칠도 경고를 전했지만, 스탈린은 이들이 뭔가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가짜 경고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1973년 10월, 이스라엘 군 정보기관은 다음과 같은 '작업 가설'을 가지고 있었다. 즉, 시리아는 홀로 전쟁을 시작하지 않으려 할 것이며, 이집트는 1967년 중동전에서 이집트 패배의 원인이었던 이스라엘의 우월한 공군력을 무력화시켜놓지 않고서는 섣불리 전쟁의 리스크를 감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방공 능력을 포함한 이집트의 전쟁능력을 과소평가했고,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기꺼이 전쟁 리스크를 감당하려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방어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강력한 '작업 가설'에 눈이 멀어 임박한 위험들을 무시하는 패턴이 속수무책으로 기습을 당했던 나라들 대부분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영국의 정보실패 사례도 두 가지 살펴보자. 1982년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섬을 침공할 가능성은 무시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영국이 아르헨티나의 공격 능력을 부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에게 있어서 국제적 비난을 덜 받는 최선의 선택지는 단순히 포클랜드 섬의 보급선을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영국과 가까운 칠레가 포클랜드 섬에 계속 물자 공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방안을 선택하지 않았다.)

미국의 정보실패

적의 능력을 너무 과장해서 발생한 정보실패도 있었다. 2003년에 미국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는 굉장한 오류로 판명되었다. 이라크전쟁이 끝난 후 발표된 '칠코트 보고서'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파편적 정보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라크의 무기계획에 대한 잘못된 '작업 가설'을 계속 고집했기 때문에 정보실패가 발생했던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특히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하는데 전념하고 있다고 확신을 가졌던 것이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것을 보면 '작업 가설'이 얼마나 적의 실제 '능력'만큼이나 '의도'에 대한 판단에 근거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적의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던 두 가지 사례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1990년 7월 이라크가 쿠웨이트 국경 근처에 군대를 증강하고 있었을 때와 2022년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었을 때가 그 사례인데, 현장의 상황은 어느 누가 봐도 명확했다. 하지만 문제는 적 지도자가 협상을 위해 허세를 부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1990년, 이라크와 쿠웨이트 사이에 아직 협상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정보기관들은 후세인의 무력 증강을 허세에 불과하다고 잘못 결론지었다. 2022년에 미국과 영국, 그리고 한발 늦게 우크라이나 당국은 논란은 있었지만 정확한 판단을 보였다. 러시아의 위협은 허세가 아니라 진짜라는 결론이었다. 이후 전쟁 직전까지 이어진 치열한 논의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전략적 계산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작업 가설'이 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나라들은 대개의 경우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드물게 예외적인 경우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2001년 9월 11일에 알카에다가 감행한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및 워싱턴 펜타곤 공격처럼 가장 예외적인 경우들은 그것이 가능하기나 할까라고 상상조차 거부하는 경우다. 9/11 이전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테러리스트들이 뭔가 공격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대담하고 잔혹할 줄은 예상 못했다. 지금도 놀라운 것은 공격을 준비하던 측이 실제 행동에 옮기는 과정에서 상당히 허술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고, 이름이 알려진 테러리스트들을 접촉했다. 엄청난 양의 정보조각들이 이미 쌓였고 파일로 정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정보조각을 가지고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9/11 이후에 정보실패를 반성하면서 점들을 연결시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위해서는 여러 개로 흩어져 있는 정보기관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스라엘-가자 국경 AFP=뉴스1) 정지윤 기자 =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장갑차가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국경 인근을 지나고 있다. 2023.10.26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스라엘-가자 국경 AFP=뉴스1) 정지윤 기자 =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장갑차가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국경 인근을 지나고 있다. 2023.10.26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격을 획책하는 쪽이 의도를 감추고 비밀리에 준비를 하게 되면 정보기관들의 일은 더욱 힘들어진다. 공격 쪽은 계획을 아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고, 발각되지 않게 공격 위치로 이동하는 루트를 찾아내고, 공격 대상이 공격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또는 알더라도 재빨리 대응할 수 없도록 공격 일시를 조정하는 등의 준비를 할 것이다.


10월 7일 하마스가 기습공격을 준비했던 방식이 바로 그러했다. 공격 계획은 오직 지도부의 소수만이 조심스럽게 공유하고 있었고, 계획 논의도 오직 밀실에서 그리고 말없이 종이를 이용한 필담으로만 진행해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의 감청을 피했다. 공격 직전 지명된 전사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되었고, 이들이 가지고 있던 전자기기들은 몸에서 떼어내 따로 보관해야 했고, 이들은 공격 개시 몇 시간전에서야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공격 일시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1973년 전쟁 50주년 기념일에 맞췄다. 이번에 이스라엘인들을 방심케했던 축제는 우울한 '욤키푸르'가 아니라 보통은 훨씬 즐거웠을 '심챗토라'였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번 작전이 성공했던 것은 부분적으로 하마스 지도부가 고의적이고 체계적으로 이스라엘 측으로 하여금 안이한 자만심과 이를 강화하는 '작업 가설'을 갖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쪽은 2021년 5월의 마지막 싸움 이후 하마스는 더 이상 가자 지구가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되었고 가자 지구의 경제적 회복에 더욱 초점을 맞추기를 원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믿음에 근거해 비록 충분한 액수는 아니지만 카타르로 하여금 가자 정부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고, 가자 사람들이 매일 이스라엘로 건너와 일할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매일 통근할 수 있는 허가서를 최대 18000명에게 발급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해 대다수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난했고 실업상태에 있었다.


금년 초 가자 지구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무장그룹 '이슬라믹 지하드'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공격을 가했을 때 하마스는 이 공격에 연루되고 싶어하지 않았고, 이러한 태도는 하마스가 온건한 노선으로 전환했다는 관점을 더욱 강화시켰다. 9월 가자-이스라엘 접경지역에서 폭동이 발생했을 때, 하마스는 중재자로 나선 카타르와 함께 상황을 수습하는데 기여했다. 하마스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자신들이 대화를 엿듣고 있다고 확신하는 경우 자신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다는 말을 일부러 흘렸다. 공격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만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접근법을 전환했다고 믿었다. 이들의 과격한 접근법이 과거 로켓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더욱 강경한 보복에 의해 억제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하마스가 원래의 공격방식으로 돌아가봤자 어차피 로켓 공격이나 더 할 것이고 이것은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방공시스템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의해 안이한 자만심을 강화시켰던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이스라엘 측에 경고했는데 이스라엘이 이 경고를 무시해버렸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보복전략에 의해 잘 억제되어 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이라고 해봤자 아이언돔 방어망에 좀 더 도전해보는 것일 뿐이라고 이스라엘은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실패에 정책실패가 덧붙여졌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가자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낙관적 '작업 가설'과 일치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요르단 서안 지구와 예루살렘에서 고조되는 긴장을 다루는데 병력을 총동원하고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유대 극단주의 정착민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고 군경(軍警)의 보호를 요청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군대와 경찰병력이 이 문제에 치중해 동원되자 군과 경찰 지도부는 가자 쪽의 문제가 소홀히 될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러한 문제는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을 위해 강경 우익 그룹들과 손을 잡고 이에 대해 국민들이 반발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고 네타냐후가 자신의 부정부패 관련 소송을 피하기 위해 사법부를 개악하면서 민주주의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 정치의 이런 혼란이 어쩌면 하마스로 하여금 지금이 공격할 때라고 판단하게된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배후에서 이란이 이러한 판단을 부추겼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란이 공격계획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마스는 레바논에 근거를 둔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함께 이란의 지역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란이 이번 공격을 배후에서 직접 지휘했고 이 공격을 통해 이스라엘에 최대의 고통을 안겨주려 했다면,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동시에 공격에 동원했을 것이다. 적어도 로켓으로라도 양쪽이 동시에 공격하도록 했을 것이다.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더 정확하고 더 많은 로켓을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이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져있고 이스라엘과 전쟁할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헤즈볼라도 잘 억제되어 있다고 믿었다. 또 이스라엘은 이란도 역시 미국과의 좀 더 큰 싸움을 대비해서 이스라엘과의 싸움에 엉켜들어가지 않도록 헤즈볼라를 억제시키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란은 가자의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면 두고만 보고 있지 않을거라고 경고해왔다. 이란의 경고는 이스라엘의 군 작전 계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서안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정착민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쪽에서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군 병력을 얼마나 보낼 수 있는가?


유대 근본주의 정착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서안지구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할 필요 때문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대책에 소홀했다. 그리고 밀접히 연결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가자 지구 접경지대에 대해서 정밀한 첨단기술의 감시 시스템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것도 문제였다. 가자 지구는 원격 카메라가 설치된 감시탑과 원격으로 조종되는 기관총으로 안전통제하려 했던 것이다. 또 지상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세운 장벽과 함께 지하 침투를 막기 위한 지하 장벽이 촘촘히 설치되었다. 과거에 하마스가 이 장벽 아래로 지하터널을 뚫어 침투했던 것을 감안한 대비책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것들은 원격조정 방어책이기 때문에 원격조정 공격에는 취약하다. 하마스는 이 원격조정 감시 및 통신 체계를 공격하기 위해 (원격조종) 드론을 사용했다. 하마스가 만든 새 터널들은 이스라엘측 장벽 바로 앞에서 멈췄고, 그 속에서 전사들이 튀어나와 폭약과 불도저로 장벽을 부수고는 이스라엘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들은 자신들을 포착할 센서를 보이는대로 모두 파괴해버렸다.



하마스 기습공격 직전에 뭔가 큰 것이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보였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감지하고 있었다. 10월 6일까지 이것은 또 한 차례의 로켓 공격일 것이라는 가설이 강했다. 하지만 공격 바로 전 날, 하마스 요원들에게서 이상한 활동들이 감지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것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들도 같은 징후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논의를 거친후 정보기관들은 '경계' 수준을 올리기에는 아직 정보가 충분치 않다고 결론지었다. 좀 더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내용의 메시지는 가자 지구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치로 이어지진 않았다.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전달되어도 제대로 읽지 않았던 것이다. 현지 이스라엘 지휘부는 눈이 가려진채 공격을 받았고 휘하 병사들은 경보를 울릴 기회도 없이 살해당하고 말았다. 가자 지구에서 떨어진 곳에서는 이스라엘 안보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하마스의 통신망에 뭔가 활동이 분주해지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체계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 군이 공격받은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몇 시간이 지난 뒤였다.


너무 기습적으로 당했던 일이라 이스라엘의 대응은 즉흥적이었고 성급했다. 들끓는 대중의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약속만 난무할 뿐이었다. 가자 지구의 인도주의 기관들도 갑작스러운 확전에 놀랐고(그들은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이 지역이 다시 전장(戰場)이 될 가능성을 감수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마스는 공중과 지상에서 이스라엘 군의 공격에 맞서 싸울 자신들의 계획을 착착 따를 것이다. 10월 7일 전에 하마스가 무엇을 하려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다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지상전 개시 이후 도대체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지에 대한 지식도 역시 없을 거라는 의심이 든다.


이번 사태에서는 고전적 정보실패의 모든 요소가 다 보였다. 즉, 성공적인 기만, 엉성한 정보수집, 자만심, 그리고 상상력의 부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적대적인 상대방에 대한 관점, 즉 '작업 가설'이 이렇게 틀리게 만든 다른 요소도 있었다. 기습공격은 공격자에게 있어서 매우 나쁜 선택지이기 때문에 방어자가 예상 못했을 수 있다. 기습공격은 위대한 전술적 성취이면서 동시에 심각한 전략적 실패일 수 있다. 1945년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일본과 독일 모두 항복했고 점령되었다. 1973년에 이스라엘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이집트와 시리아의 군대를 격파했다. 1982년에 영국은 기습공격을 감행한 아르헨티나로부터 포클랜드를 해방시켰고 1991년에 다른 많은 나라들과 함께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 푸틴은 2022년 2월에 선제공격을 했지만 기대와 달리 신속한 승리는 이뤄지지 않았고 그의 군대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늪에 빠져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강력한 보복을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마스가 군사력이 강한 이스라엘에 이 정도의 충격과 상처를 가한 것을 보면 이 무장단체는 이미 상당한 군사능력을 상실했을 것이고, 그러한 상태로 가자 지구를 통제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로렌스 프리드먼은 런던 킹스컬리지의 전쟁연구 명예교수로 전략연구, 전쟁연구 부문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다. 오랫동안 포린어페어스의 전쟁연구 부문 서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의 저작으로 '우크라이나와 전략술Ukraine and the Art of Strategy'(옥스포드대 출판부, 2019)과 '지휘 또는 군사작전의 정치: 한국전쟁부터 우크라이나전쟁까지Command: The Politics of Military Operations from Korea to Ukraine'(옥스포드대 출판부, 2022)가 있다.


1913년 창간돼 케인스, 버트런드 러셀, 조지 오웰, 버지니아 울프 등이 기고했던 전통 있는 영국 진보 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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