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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은 민주주의에 흥미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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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전자결제 시스템 회사인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콘서트홀에서 연세대 경영대 설립 100주년 기념 특강을 하고 있다. 틸은 '더 나은 미래, 제로 투 원(ZERO to ONE)이 돼라'는 주제의 이날 강연에서 "성공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0(무)에서 1(유)을 만들어 새로운 독점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2.24/뉴스1

2024.01.19 13:42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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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는 아직도 개척시대인 것 같습니다. 무정부에 가까운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땅을 일구고 황금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엔 땅이었고 황금이었지만 지금은 첨단 기술입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지금은 실리콘밸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버드로 대표되는 동부 지식인들은 유럽적 질서를 바라보고 있지만, 스탠포드로 대표되는 서부 지식인들은 유럽의 숨막히는 질서를 거부합니다. 이런 서부개척 정신의 대표적 인물이 페이팔 창업자 중 한명인 피터 틸인 듯 합니다. 한때 트럼프를 지지했던 그가 이번에는 누구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애틀랜틱 2023년 11월 9일자 기사에서 공언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투자가이자 사상가인 피터 틸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미국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2024년은 미국 대선이 있는 해입니다.


애초에 피터 틸이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분명치 않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미디어 친화적이지 않다. 그러나 페이팔과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이자, 테크노 리버테리어니즘의 화신이며, 좌파들의 눈에 도깨비처럼 보이는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자택과 사무실에서 나와 여러 차례 인터뷰를 갖기로 했다. 그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개방적이었고, 할 말이 많았다.


그런데 이 대화를 이끌어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틸은 어떤 공약을 하려했고 내가 그것을 기사에 실어주기를 원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말을 주워담지 못하게 못을 박아두려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렇게 큰 소리로 해야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음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그 어떤 정치인에게도 기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는 트럼프의 진노를 산 바 있다. 틸은 한동안 트럼프의 전화를 피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지난 4월 말 전직 대통령은 틸을 전화로 불러내고야 말았다. 트럼프는 지난해 상원 의원 선거에서 본인이 틸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블레이크 매스터즈1Blake Masters와 JD 밴스Vance를 지지해주었던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틸은 그들 각각에 1000만 달러 이상을 주었다. 이제 트럼프는 틸이 본인에게도 마찬가지로 두둑하게 챙겨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틸은 거절에 대한 트럼프의 반응을 이렇게 기억했다. "트럼프는 그런 말을 듣게 되어 매우, 매우 슬프다고 하더군요. 제게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통화가 끝났습니다."


몇 달 후, 틸은 트럼프가 매스터즈에게 전화를 걸어 상원 출마를 또 한 번 만류하면서, 틸을 "빌어먹을 쓰레기"라고 불렀다는 뒷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틸은 이 기사가 나감으로써 "2024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도록 스스로를 묶어버리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자님과 대화하고 나면 제가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워지겠죠. 제 남편2은 제가 정치인들에게 더는 돈을 주지 않았으면 하고, 남편 생각이 맞아요. 그들은 제게 미칠듯이 졸라댈 게 뻔하죠. 그리고 이렇게 기자님과 이야기를 함으로써 저는 2024년 대선 싸이클에서 발을 빼게 되는 겁니다."


틸이 미국 정가의 생태계에서 가지고 있는 독특한 역할을 놓고 볼 때 이것은 중요한 일이다. 틸은 기술 전도사 중에서도 최고의 테크 광이며, 실리콘 밸리 정신을 순수하게 증류해놓은 인물이다. 그렇다보니 그는 점점 목소리를 키우고 늘려가는 테크 업계 창업자들의 사고방식을 구현하는 인물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왜 틸은 정치인들과의 관계를 끊고 싶어할까? 개별적으로 놓고 볼 때 별볼일 없는 존재일 뿐인 정치인들이, 피터 틸 같은 사람이 기대할법한 문명 차원의 변화를 가져오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이 아니다. 피터 틸의 실망감은 보다 깊은 곳까지 뻗어 있다. 정치인들은 틸이 기업가로서의 이력을 모두 바쳐온 세계관과 비전을 구현하는데 실패했고, 그 점에서 틸은 다음 선거에서 누가 이기고 지건 아무 상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피터 틸은 민주주의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기로 한 틸의 결정은 그의 가까운 친구 중 일부를 놀라게 했다. 그간 틸은 철학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쌓아 왔다3. 르네 지라르의 철학을 공부하고 레오 스트라우스의 책 초판본을 영어판과 독일어판으로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분명 트럼프는 이런 취미도, 혹은 틸의 자유지상주의적 원칙도, 공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경선 넉 달 전 틸은 계시를 접했다. 2016년 3월 18일, 배심원은 헐크 호건이 등장하는 섹스 비디오의 일부를 웹에 게시했던 거커 미디어Gawker Media를 상대로 헐크 호건이 제기한 사생활 침해 소송에서 1억1500만 달러라는 이례적인 손해배상 판결을 냈다. 틸은 거커가 그의 성정체성을 폭로하고 수년간 게이라는 사실을 조롱해온 터라, 거커를 상대로 한 소송에 은밀하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 판결로 인해 거커는 문을 닫게 되었다.


틸에게 이 소송 결과는 단순한 소송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일종의 신호였다. 법정으로 돌아온 배심원들을 보며 틸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점에 제 머리에 곧장 떠오르는 건, '와, 어쩌면 트럼프가 선거 이길지도 몰라'였어요." 틸이 볼 때 거커는 공화당 후보가 될 법한 그 인물을 향한 거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고, 헐크 호건은 친 트럼프 인사였다. 그런데 배심원, 즉 유권자들이 호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때까지 틸 본인이 공개적으로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한 바는 없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그는 휴렛 패커드의 CEO를 역임한 스탠포드 동문 칼리 피오리나를 지지하며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본인의 지지 후보가 패배했지만 틸은 공화당 경선에 대의원으로 참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전화가 왔다. 그 아버지도 아들도 만나본 적 없던 틸은 트럼프 대선 캠페인에 기부를 한 적도 없었지만, 트럼프 주니어가 틸의 이름을 대의원 명단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전당대회는 10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트럼프는 유명인사들의 지지가 궁한 입장이었다. "발언하시고 싶으세요?" 트럼프 주니어가 물었고, 틸은 재미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틸은 링크드인의 공동 창업자로 그의 오랜 친구인 리드 호프먼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 후로 그들은 정치적 앙숙이 되었다. 호프먼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가 대화를 하던 중에 틸이 말했죠. '나는 공화당 전당대회서 연설을 하게 될 것 같아, 할까 해.' 저는 웃음을 터뜨렸어요. 농담이라고 생각했죠. 진짜야? 그러자 '아니, 아니, 아니, 농담 아냐'라고 하더군요."



오랜 세월 동안 틸은 어떤 대선이건 대체로 비관주의 성향이 큰 후보를 택해 왔다고 말해왔다. "누군가 너무도 낙관적이라면 그건 그냥 그 사람이 세상을 모른다는 뜻"이라는 이유에서다. 틸이 볼 때 미국을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로 묘사한 도널드 레이건은 그렇게 썩은 낙관주의를 대변하는 정치인이라 할 수 있었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을 포위된 나라, 망가진 나라로 보고 있었다.


틸이 원론적인 차원에서 정부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그의 친구인 오렌 호프먼(리드 호프먼과 친척 아님)은 지적한다. 호프먼은 이렇게 말했다. "1930년대, 40년대, 50년대, 정부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던 그 시절을 틸은 존경 어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정부가 효과적으로 일을 했다는 거죠. 우리는 후버 댐을 지었죠. 우리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해냈습니다. 우주 탐사 프로그램도 시작했고요."


하지만 훌륭한 사람들이 정부에서 일하며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던 시절은 끝났다는 것이 틸의 생각이다. 그는 규칙에 묶여 있고, 혁신을 옥죄며, "늙어빠진 중도 좌파들이 지배하는" 연방 정부의 현황을 경멸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에서 미국 정부를 비판하던 그는 갈수록 정부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허무주의적 충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틸은 말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지난 100년간 그 어떤 후보보다 비관적인 슬로건이었어요. 우리 미국이 더는 위대한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주요 대선 후보가 내걸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구호였죠."


틸은 사람들이 이 구호를 더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트럼프 캠프에 125만 달러를 기부했고, 인수위 기간 동안 트럼프 타워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차기 정부 인사 추천을 했다. (틸의 수제자인 마이클 크라치오스는 최고 테크 담당자가 되었지만 틸이 추천한 인사 중 일자리를 받은 사람은 소수에 그쳤다.)


"트럼프에 투표하는 건 몹시 알아듣기 힘든 말로 외치는 구조 신호 같은 것이었죠." 틸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을 일깨우는 어떤 신비로운 힘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품었다. 이 나라가 재건되려면 누군가는 규제를 철폐하고 관료화된 정부를 부숴버리는 식으로 그것을 때려부숴야 한다고 틸은 생각했다.


틸은 본인이 잘못된 패에 돈을 걸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제가 잘못한 일이 많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미친 짓이었습니다. 제 생각보다 훨씬 위험했어요. 트럼프 사람들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조차 제대로 돌아가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죠, 심지어 제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는데도 그 부분에서 그보다 훨씬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트럼프 지지를 도박이라고 할 때, 후회되는 것은 도박 그 자체가 아니었다.




대학 시절부터 틸을 봐왔던 리드 호프먼은 친구의 사고방식에 어떤 패턴이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떤 거대하고 유토피아적이며 현실에 구현되지 못할 이상을 품은 후, 그 시점에 그가 사로잡혀 있던 큰 그림에 따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말하자면 분노와 울분을" 품고 마는 일이 여러 차례 있어왔던 것이다. 호프먼에 따르면 "피터는 '물컵이 반이나 비었어'에서 멈추지 않고 '물컵이 텅 비었어'라고 비관해버리곤 해요."


환상이 깨졌다는 것은 틸과의 대화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주제였다. 틸의 재산은 40억 달러 내지 90억 달러에 달한다. 로스엔젤레스의 부촌 벨 에어의 침실 9개에 25미터 인피니티 풀을 갖춘 유리 소재의 궁궐같은 저택에서 남편과 두 자녀와 살아가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거물이며 보수 정치의 킹메이커다. 그런데도 그가 말하는 그의 인생은 좌절과 실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독일에서 광산 엔지니어의 아들로 태어난 틸은 (오늘날의 나미비아인) 남서아프리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주로 오하이오와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했다. 스탠포드대학과 스탠포드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실리콘 밸리로 돌아오기 전 잠시 미 동부에서 일했다.


1998년 틸은 탁월한 컴퓨터 과학자인 맥스 레브친과 한 팀이 되어 창업했고 그 회사는 이후 페이팔이 되었다. 정부 화폐에 대항하는 자유지상주의적 대안을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거대한 야심은 충족되지 못했지만 페이팔은 온라인 거래의 훌륭한 지불 수단이 되어주었고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2002년 이베이는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인수했다.


2004년 틸은 팔란티어 테크놀로지를 공동 창업했다. 미국과 해외의 고객을 위해 데이터 마이닝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정보 기업이었다. 팔란티어가 받은 최초의 외부 투자는 인큐텔(In-Q-Tel)이라는 회사가 제공했는데 그 회사는 CIA의 벤처 투자 기구였다.


2004년은 틸이 벤처 투자 역사상 가장 화려한 승부수를 두었던 해이기도 하다. 그는 마크 저커버그를 만났고 마음에 드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페이스북의 최초 외부 투자자가 되었다. 50만 달러로 페이스북 지분 10퍼센트를 인수했던 틸은 2012년 10억 달러로 그 지분을 현금화했다. 하지만 틸은 그 거래를 후회하고 있으니, 페이스북 주가가 정점에 올랐던 2021년 그가 가졌던 지분의 가치는 몇 배나 더 올랐기 때문이었다.


틸은 몇몇 잘못된 투자를 했다. 주식시장이 아래에 처박혀 있던 2008년에는 주가 상승에 막대한 돈을 걸어서 손해를 봤고, 주가가 치솟던 2009년에는 숏에 배팅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틸은 예외적일 정도로 훌륭한 투자를 해왔다. 팔란티어의 공동 투자자인 알렉스 카프는 비즈니스를 제외하면 틸과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틸을 "세계 최고의 벤처 투자자"로 부른다.


틸은 내게 세계 최고의 벤처 투자자가 되는 것이 본인의 포부라고 말하면서, 어쩌면 그것을 이미 이루었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틸의 꿈은 언제나 그보다 훨씬, 훨씬 큰 것이었다.


틸은 위대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회에 자신들의 뜻을 펼 수 있는 세상을 희구한다. 정부나 규제가 그 위대한 사람들의 부 또는 힘을 해치는 "재분배 경제"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다른 인류에게 실로 그 어떤 의무도 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대부분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엄청난 규모의 혁신적인 새로운 기술과 과학을 갈망한다. 그는 이러한 유형의 진보가 사회 전반에 커다란 혜택을 줄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틸은 영원히 살고 싶어한다.


틸은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죽음을 자연법칙이라 부르는 것은 틸이 볼 때 포기해버린 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다. "그건 우리가 더 노력하지 못하게 주저앉히려고 하는 말입니다." 그는 본인의 마지막을 피하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쓰고 있지만, 인간 존재의 필멸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여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틸은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등, 수많은 SF와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톨킨이다. 본인 말로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최소한 10번은 읽었다. 틸의 세계관에 톨킨이 미친 영향은 분명하다. 가운데땅은 절대 권력을 두고 투쟁을 벌이는 전장으로, 대부분은 정부 따위 없는 곳이며, 위대한 개인들이 본인의 운명을 따라 일어서는 곳이다. 또한 톨킨의 소설에는 마술로 감춰진 계곡에 따로 떨어진 채 살아가는 불사의 엘프들이 등장한다.


영원한 삶에 대한 그의 꿈은 '반지의 제왕'을 따르는 것일까? 나는 궁금해졌다.


물론이죠. 틸은 으스대는 투로 말했다. 톨킨의 작품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오래 살려는 수많은 시도들은 결국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톨킨 작품에는 엘프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이런 질문들이 있죠. 톨킨 작품 속에서 엘프는 인간과 어떻게 다른가? 그런데 엘프는 기본적으로,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차이는 그냥 엘프는 죽지 않는 인간이라는 거에요."


나는 질문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엘프가 될 수 없을까요?"


틸은 겸허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과 원통함이 동시에 담긴 표정이었다.


틸은 말했다. "왜 우리가 엘프가 될 수 없을까요?"




틸은 트럼프 지지를 포기했는데, 틸이 정치에서 거리를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학부 시절 틸은 '스탠포드 리뷰'를 공동 창간했다. 즐거운 태도로 정체성 정치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다양성 중심의 커리큘럼 개편에 반대하는 잡지였다. 1995년에는 '다양성의 신화The Diversity Myth'라는 책을 공저했다. 좌파의 "광기와 어리석음과 바보같음과 사악함"에 맞서는 논문이었다.


회사를 차리고 부자가 되면서 틸은 정치 운동과 후보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자유선언Endorse Liberty' 같은 슈퍼팩4superPAC 뿐 아니라 오린 해치와 테드 크루즈 같은 공화당 보수파들을 폭넓게 후원하고, 조세 반대 운동을 하는 '성장클럽Club for Growth'의 슈퍼팩도 후원했다.


하지만 2009년, 정치의 추가 여러 차례 흔들리던 가운데, 틸은 어떤 변화를 겪었다. 그해 그는 '자유지상주의자의 교육The Education of a Libertarian'이라는 선언문을 작성했다. 선거 민주주의는 사회변화의 방편으로 적합치 않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대중은 중요한 사안의 결정에 있어서 신뢰할만한 존재가 못 된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다는 생각을 나는 더는 믿지 않는다."


충격적인 선언이다. 더 도드라지는 문구가 뒤따라 온다. "1920년 이래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지독하게 반대하는 두 유권자층인 저소득층과 여성을 향해 복지 혜택이 늘어나고 투표권이 주어지면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이율배반이 되고 말았다." (몇몇 반발을 접한 후 틸은 문자 그대로 여성참정권 운동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부연설명을 덧붙였지만, 여성참정권을 지지한다고 확언하지도 않았다.)


틸은 본인과 다른 이들을 위해 "모든 형태의 정치로부터 탈출할 방법을 찾는" 계획을 제시했다. 그는 탁월한 한 사람의 선택이 우뚝 설 수 있는 그런 곳을, 정부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개인적 자유의 공간을 창출하고자 했다. 틸은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세계의 운명은 자유의 기계를 만들어내거나 퍼뜨릴 수 있는 어떤 한 사람의 노력에 기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언문은 실리콘 밸리의 전설이 되었고, 그의 세계관은 다른 유력자(와 피터 틸이 되고 싶어하는 남자)들에게 공유되었다.


틸의 암호화폐 투자는 그가 페이팔을 창업할 때 품었던 비전과 마찬가지로, "일체의 정부 통제와 물타기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유형의 화폐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2008년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에서 세 차례의 로켓 발사 실패로 위기에 몰려 있었는데, 20만 달러의 투자로 회사의 목숨을 유지시키고 머스크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우주라는 프론티어를 개방하고 "세속의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머스크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답장으로 온 것은 '똥' 이모티콘 뿐이었다.)


틸의 거대한 자선단체가 인공 해상 도시로 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의 일이었다. 공해상에 자율적인 소국을 수립한다는 발상이었다. 이것은 우주 식민지 개척에 비해 단기간에 걸쳐 정상 작동하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를 수립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그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손자인 패트리 프리드먼에게 막대한 돈을 주고 비영리단체인 시스테딩 인스티튜트를 창립했다.


2009년, 시스테딩 인스티튜트 회의에서 틸은 방 한가득 모인 추종자들을 향해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스테딩이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므로 우리를 막기에 너무 늦은 때가 올 때까지 방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내게 말했다. "시스테딩이 바람직한가 혹은 가능한가 등은 제가 볼 때 유의미하지 않은 질문입니다. 절대로 필요한 일이죠."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그의 친구인 맥스 레브친은 그 아이디어를 일축했다. 엔지니어적인 문제를 젖혀두더라도 틸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그 작은 구조물에 진짜 가서 살 리가 없다는 것이다. "틸이 바다로 이주할 가능성은 0이죠." 레브친은 틸이 안락한 삶을 너무도 좋아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틸은 개인용 제트기를 타고 전 세계의 별장을 오간다. 2017년 본인의 결혼식은 비엔나의 벨베데레 박물관에서 치렀다.)


2015년, 민간 영역에서의 활동으로 세계를 바꾸겠다고 선언한지 6년 후, 틸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몇 년째 실질적인 진전을 보이지 않는 시스테딩 인스티튜트의 투자를 끊었다. 그리고 다른 유형의 탈출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독일과 미국 시민권 보유자지만 뉴질랜드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2011년에 시민권을 획득했다. 인구가 희박한 뉴질랜드 남섬에 2제곱킬로미터 넓이의 전 목양지를 구입하고는, '반지의 제왕' 영화를 촬영한 그 나라에 종말의 때가 올 때를 대비한 시설물을 만들었다. 전직 벤처 투자자이며 현재 오픈AI의 CEO인 샘 올트먼이 2016년 밝힌 바에 따르면, 만약 세계 종말급의 재앙이 벌어지면 그는 틸과 함께 틸이 만든 뉴질랜드 은신처로 향할 것이라고 한다.


내가 그 시나리오를 언급하자 틸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질문을 피했다. 알트먼이 말한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틸은 말했다. "설령 그렇게 보더라도 그건 이상한 말이잖아요. 만약 정말 세계의 종말이 닥치면 도망칠 곳은 없죠."




20세기 중반 과학소설에 담겨 있던 거대한 꿈들은 오늘날 실현되지 않았다. 틸은 그런 현실에 대해 연거푸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는 달 식민지를 가졌어야 하고 로봇을 부렸어야 합니다.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하고 바다에 도시가 지어졌어야죠. 바닷속에." 시스테딩 인스티튜트 발표에서 틸이 한 이야기다. "친환경 농업이 이루어졌어야 하고 사막을 거주 가능한 땅으로 바꾸어냈어야 합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사람들은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할 거라고, 그래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 중 실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과학소설마저도 희망을 잃어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디스토피아 소설 뿐이다. 기술의 폭발적 발전은 아이폰과 우버와 소셜 미디어를 가져다 주었지만 이들 중 인간 조건의 근본적 개선을 가져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틸은 전자의 세계가 아니라 원자의 세계에서 큰 발전이 있기를 갈망하는 중이다.


한동안 틸은 자신이 이 문제를 바로잡을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2005년 그가 루크 노섹, 켄 하워리와 함께 창업한 벤처 투자회사인 파운더스 펀드는 선언문을 통해 불평을 토했다.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대신 140자 짜리 SNS5를 얻었다." 그러므로 파운더스 펀드는 "진정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어려운 문제의 해결에 도전하는 똑똑한 사람들에게 투자하리라는 것이었다.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화요일, 나는 최근 틸이 투자하고 있는 몇몇 스타트업과의 비디오 회의에 참여했다. 줌 화면의 작은 상자 안에 담긴 틸의 얼굴에는 지루함이 가득했다.


잔지바르에서 화상회의에 참석한 다니엘 유가 짧고 명료한 발표를 했다. 그가 창업한 회사 와소코는 아프리카의 동네 가게 점주들에게 쌀, 비누, 화장지, 그 외 여러 생필품을 공급하면서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와소코의 전체 이익은 작년 대비 두 배로 증가했다.


틸은 보고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는 와소코가 "아프리카의 알리바바"를 지향한다는 대목을, 다소 짜증난다는 투로 소리 내어 읽었다. "어딘가의 무언가가 되겠다는 회사들은 어디에서도 무엇도 안 돼." 다소 냉소적인 투였다.


다음은 보고타에 소재한 라이카 마스코타스Laika Mascotas라는 회사였다. 비디오 회의에 참석한 이는 자신의 회사를 라틴아메리카의 츄이6Chewy라고 설명했다. 틸은 눈쌀을 찌푸렸다. 애완동물 용품을 소비자의 가정에 직접 배송하는 회사였다. 지난 3년간 매년 수입이 네 배씩 늘었다. CEO인 카밀로 산체스 빌라마린은 숫자를 쭉 훑었다. 틸은 고맙다는 말을 한 후 로그아웃했다.


이것은 틸이 자기 시간을 써가며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분명 소매점과 개 사료가 그에게 돈을 벌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틸은 인류 문명의 단계를 끌어올려줄 혁신적 기술에 투자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틸이 시시하고 영감을 주지 못하는 투자만 하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파운더스 펀드는 인공지능, 바이오테크, 우주탐사, 그 외 첨단 분야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 틸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그가 투자한 회사들이 충분히 큰 문제에 대해 큰 것 한 방을 노리고는 충분히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스트라이크 아웃이 될 수도 있다.


틸은 말했다. "보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에요. 저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들, 우리 문명을 다음 단계로 올려줄 회사들에 제대로 관여하고 있지 못합니다."


나는 질문했다. "그런 회사들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인가요?"


그가 답했다. "찾을 수 없어요. 일할만한 회사가 별로 없습니다."




2018년 다닐 비스링거Daniil Bisslinger라는 러시아인이 틸에게 명함을 건넸다. 외교직 공무원이라 적힌 명함이었다. 틸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비스링거가 구 소련 KGB의 후속 기관인 FSB의 정보관일 것이라고 보았다. (한 미국 정보관은 내게 틸이 옳았다고 가르쳐주었다. 비스링거가 근무했던 주베를린 러시아 대사관은 그의 신원에 대한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틸은 그날, 그리고 2022년 1월 다시 한 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만남을 제의받았다. 어떤 주제가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틸은 몇 년 전 다보스에서 푸틴이 차르같은 존재감을 뽐내는 모습을 보며 매료된 적이 있었다. "샴페인과 캐비어, 그리고 마치 마피아처럼 보이는 올리가르히들이 주변에 둘러싸고 있는, 뭐 그런 거요." 이렇게 회상했지만, 틸은 푸틴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대신 틸은 FBI에 연락하여 보고했다. FBI는 이미 틸에게 '철학자'라는 코드명을 부여했고 그는 비밀 정보원이 되어 있었다. 틸이 FBI 협조자로서 역할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이 '인사이더'에 처음 보도된 것은 202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술 분야 투자자이자 우파 성향의 트롤이며 틸에게 오래도록 협력해온 찰스 존슨은 자신 또한 예전에 FBI의 정보원이 되었다고 말했다. 존슨은 틸을 FBI 특수요원인 조너선 버마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 직접 알고 있는 제보자에 따르면 버마는 틸이 미국의 선출직 공무원이나 정치인들과 맺고 있는 접점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것은 FBI의 조사 범위 바깥이었다. 틸을 상대하면서 버마는 본인의 활동을 외국 정부를 대상으로 "역정보를 흘리고, 외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으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FBI와의 관계에 대한 나의 질문에 틸은 한마디로 "노코멘트"로 대답했다. 틸의 한 측근이 틸의 허락을 받아 말한 바는 이렇다. "틸이 그런 "세 글자 약칭" 쓰는 조직들을 비롯해 '딥 스테이트' 사람들과 접한 적이 전혀 없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죠. 특히 20년 전 팔란티르를 창업했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요."


존슨은 본인이 우익 선동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본인이 그런 악명을 갖게 된 것은 FBI와 다른 정보 기관을 위한 정보 수집용 활동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존슨의 말에 따르면 그는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자다.) "저는 제가 불완전한 메신저라는 것을 깨달았죠." 존슨은 말했다. 그는 틸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여럿 꺼내들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었지만, 이 사안을 알만한 이를 통해 존슨이 틸을 버마의 정보원으로 채용하는데 일정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존슨과 틸의 관계는 이후 멀어졌다. "우리는 서로 영원히 갈라서게 되는 것 같아. 지금부터 말이지." 약 1년 전 틸이 존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의 내용이다.


존슨이 버마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한 내용은 기록된 것만 해도 최소 20시간이 넘는다. 그 속에서 틸은 본인 생각에 대형 벤처 투자사를 접수하기 위한 중국의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거나, 러시아가 실리콘 밸리에 개입하고 있다거나, 본인도 여러 차례 만났던 제프리 엡스타인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요원이라고 본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틸은 내게 엡스타인이 "이스라엘 군 정보기관과 엮여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딥스테이트"와 더 얽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마의 보고서를 본 제보자에 따르면 버마는 어느날 틸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몇몇 슈퍼리치들이 외국 정부의 접촉에 그토록 열린 태도를 보이느냐는 것이었다. "틸은 슈퍼리치들이 지루해서라고 했어요." 제보자가 말했다. "'지루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분명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 그 사람들은 그냥 지루한 억만장자들일 뿐이에요."




= 세계 최대 전자결제 시스템 회사인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콘서트홀에서 연세대 경영대 설립 100주년 기념 특강을 하고 있다. 틸은 '더 나은 미래, 제로 투 원(ZERO to ONE)이 돼라'는 주제의 이날 강연에서 "성공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0(무)에서 1(유)을 만들어 새로운 독점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2.24/뉴스1

= 세계 최대 전자결제 시스템 회사인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콘서트홀에서 연세대 경영대 설립 100주년 기념 특강을 하고 있다. 틸은 '더 나은 미래, 제로 투 원(ZERO to ONE)이 돼라'는 주제의 이날 강연에서 "성공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0(무)에서 1(유)을 만들어 새로운 독점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2.24/뉴스1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틸의 사무실에는 3차원 보드게임판을 연상시키는 조각이 놓여 있다. 뉴질랜드 출신 예술가 시이먼 데니가 틸의 이념적 우주를 지도로 형상화해 만든 '상승: 국가를 넘어서 보드 게임 디스플레이 프로토타입'이 바로 그것이다. 게임판은 던전 앤 드래곤의 미감을 따라 괴물과 기사와 성으로 가득차 있다. 오우거가 포함되어 있는 몬스터들에는 '통화 정책'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중심부에는 주인공의 형상이 서 있는데 틸의 모습을 따서 만들었다는 걸 곧장 알 수 있다. 그가 사자와 드래곤과 맞서 방패와 긴 활을 들고 버티는 모습이다. 사자에는 '공정한 선거'라는 딱지가 붙어 있고, 용은 '민주주의'다. 틸의 캐릭터는 그들을 죽이려 하는 중이다.


틸은 오클랜드의 한 갤러리에서 2017년 12월 이 조각을 보았다. 그는 작품에 푹 빠졌고, 내게 말한 바 그 작품이 정치적 스펙트럼 속에서 "내가 가진 측면과 얼추 공명한다"고 받아들였다. (사실 작가의 의도는 이를 비판하려는 것이었다.) 그 전시에서 틸은 자신의 친구인 커티스 야빈의 초상화도 구입했는데, 야빈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무장한 지도자가 미국을 왕국으로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반민주주의 작가다. 틸은 그 그림을 야빈에게 선물로 주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시각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틸은 질문을 회피했다. "제가 언제나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 당신 같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쓰는 방식이에요. 결과가 마음에 들면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포퓰리즘이라고 하죠." 그는 내게 말했다. "만약 내가 엘리트들이 보는 이 잡지 '애틀랜틱' 보다 더 포퓰리즘에 경도된 인물로 여겨진다면, 그런 의미에서 저는 더 민주주의 친화적인 사람일 겁니다."


이건 진지한 대답이라기보다 토론을 위한 말장난에 더 가깝게 보인다. 그 전에는 좀 더 진지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틸은 내게 그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결함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 미국인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지도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국가에 살고 있지 않아요. 이건 공화정이죠." 틸은 말했다. "심지어 공화정도 아니에요. 입헌공화정이죠."


틸은 미국의 정부 형태에 그 어떤 변화도 바라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는 스스로 말을 바로잡았다. "아니면, 뭐랄까, 정부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건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양자는 절대 같은 주장이 아니다.


야빈의 독재 회귀 주장에 대해 무슨 생각인지 묻자 틸은 반론을 폈지만 그것은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현실적인 측면에서의 반론처럼 들렸다.


"저는 그게 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중국의 시진핑이나 러시아의 푸틴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악성 독재자 같은 거라고 틸은 말했다. "그런 독재는 궁극적으로 제 생각에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서 긍정적인 가속을 붙여주지 않을거라 보는데, 개인의 권리나 시민적 자유 같은 것들은 말할 것도 없겠고요."


그럼에도 틸은 야빈을 "재미있고 역량 있는" 역사가로 보고 있다. "야빈이 늘 이야기하는 큰 주제 중 하나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뉴딜과 루즈벨트죠." 틸은 말했다. "이단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건 미국에서 발생했던 가벼운 파시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역사책을 읽어보면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행정부가 지배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는 시각을 지니고 있었고, 의회는 그에게 순종했으며, 대법원과는 밀착해 있었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틸의 말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본질에 아주, 아주 극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틸에 따르면 야빈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이런 가벼운 유형의 파시즘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우리는 루즈벨트 같은 대통령을 또 누릴 수 있다."


파시즘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고, 그것을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서 누렸던 힘과 결부시키는 강단 역사학자를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부분에 흥미를 느꼈다. 파시즘이 바람직한 정부 형태라는 야빈의 주장에 틸은 동의하고 있을까? 다시 한 번, 틸은 대답을 회피했다.


"그건 현실적인 정치 프로그램이 아니죠." 이렇게 말하며 그 주제에 더 끌려가기를 거부했다.




트럼프 집권기를 돌이켜보는 틸은 신중한 태도를 고수했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환상은 깨졌다. 트럼프는 틸이 희구하고 있었던 혁명가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 여럿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고 실행되었다. 실수도 벌어졌다. 하지만 틸은 회고적인 태도로 스스로를 안티 트럼프의 일원으로 재단장하려 들지 않았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4일(현지시간)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과 함께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래리 페이지 알파벳 CEO ,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를 만나고 있다.  © AFP=뉴스1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4일(현지시간)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과 함께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래리 페이지 알파벳 CEO ,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를 만나고 있다. © AFP=뉴스1


틸과 처음 대화를 나누었을 때 나는 그가 느끼는 실망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중에 틸은 꼭 해야 할 것처럼 느낀다는 듯 그 질문으로 돌아와 대답했다. "어떤 식으로건 정확한 답을 드려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건 마치, '그래, 나의 어떤 환상이 깨졌어' 같은 거에요." 틸은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를 완전히 매도해버린다? 그건 마치, 아시겠지만, 그러면 트럼프가 내게 소리를 질러대겠죠. 그리고 만약 제가 트럼프를 매도해버리지 않는다면, 그래도, 아무튼 저는 정확한 수위의 발언을 해야겠고요."


트럼프의 실적에 실망한 틸은 2020년 선거 국면에서 조용히 발을 뺐다. 그는 트럼프 선거 운동에 후원금 수표를 써주지 않았고, 공적인 발언도 매우 적었거나 없는 수준이었다. 발을 빼겠다고 거창한 선언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정치에 끼어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쓴 지난 기사들을 읽은 덕분에 틸은 트럼프에 대한 내 관점을 알고 있었다. 나는 선거 결과를 뒤엎으려 했던던 트럼프가 미국이라는 공화국에 아주 심대한 공격을 가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 생각에 대한 틸의 입장이 궁금했다.


"일단 저는 선거 결과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틸은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잘못된 결정이 내려졌다고 여겨지는 과거 선거에 대한 논의로 화제를 돌렸다. 가령 부시와 고어가 맞붙었던 2000년 선거. 틸은 어쩌면 고어가 적법한 승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시와 고어를 이야기하기 전에는 케네디와 닉슨이 붙었던 선거에 대해 한참 떠들었던 터였다.


틸은 정권 인계를 거부하던 트럼프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선거에 대한 트럼프의 거짓말은 지난해 중간 선거에서 중요한 주제였다. 틸은 오하이오에서 상원 의원이 된 JD 밴스와 애리조나에서 패배한 블레이크 마스터즈의 주요 자금줄이었다. 틸이 지난해 자금을 대준 여러 상하원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그 둘은 모두 대선 결과 불복론자였다. 틸은 그들이 선거 부정론에 매달려 있는 것에 대해 근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024년 대선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틸은 다시 한 번 정치에서 물러나 있다. 트럼프에 대해 실망한 것 말고도 다른 이야기거리가 있었는데, 틸은 마지못해 그 주제에 대해서도 논의하기로 했다. 지난 7월 '퍽Puck'에 보도된 바, 민주당의 공작원들은 틸의 뒷조사를 하고 개인사의 구린 부분을 캐서, 2022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틸이 정치에 관심을 끊게 하려 했다. (해당 보도에서 언급된 선거운동 지도부는 이 사안에 대한 나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 다른 그 무엇보다 컸던 사안은 공작원들이 제프 토머스라는 젊은 모델과 인터뷰한 것이었다. 토머스는 본인이 틸과 관계를 가졌다고 말했고, 공작원들은 토머스에게 그 사실을 '인터셉트' 기자인 라이언 그림에게 이야기하도록 종용했다. 공작원들의 바람과 달리 그림은 선거 기간동안 그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고, 대신 3월이 되어서야 틸의 사생활에 대해 보도했다. 토머스가 자살로 생을 마친 후였다.


유족이 사생활의 보호를 원한다는 이유로 틸은 토머스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틸은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미국 정치에 대한 비관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사생활 뒤지기 공작에 대해 통탄했다.


그는 그가 좌파들에게 불러일으킨 감정에 대해서도 몹시 당혹스러워하는 듯했다. "저를 이렇게까지 미워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4월의 마지막 목요일, 틸은 뉴욕에서 가장 멋진 도금시대 건물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클럽의 연회장에 서 있었다. 버건디와 금색으로 섬세하게 강조된 대리석 장식 판넬로 장식된 벽난로가 르네상스 스타일 천장 벽화 아래 온기를 뿜었다. 틸은 보수주의 문예 정치 잡지인 '뉴 크라이테리언'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고 300명 남짓 되는 그의 팬들의 시선을 쬐기 위해 그곳에 왔다.


이들은 틸의 사람들이었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행사에서 틸은 나와 인터뷰를 할 때보다 훨씬 명료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연설에서는 곧잘 박수가 쏟아져 나왔고 틸은 좌파를 향한 그들만의 농담을 던져댔다. 의미없는 다양성의 추구에 집착하면서 대학은 지적 황무지가 되었다고 틸은 군중을 향해 말했다. 이 한 때의 철학 전공자는 인문학 저작물이란 대개가 "명백하게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매우 의심스러운 교조주의를 강화"하는 일에 빨려들어가버린 과학에는 "진정한 과학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틸은 오래도록 그가 비판해온 "다양성의 신화"를 거듭 설파했다. 그가 이른바 'DEI 산업7'의 이념적 문화적 단일성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에는 그럴듯한 부분이 있었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다양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뼈 있는 농담을던졌다.


"다양성, 그건 '스타워즈'의 우주 선술집 장면에 다양한 인종의 엑스트라를 고용한다고 될 일이 아니죠." 그의 말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진정한 다양성이 무엇일지 틸 스스로가 이야기한 것도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사악하고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사악하다는 건, 틸이 설명하는 바, 가령 중국 공산당이 야기하고 있는 미국의 이익에 대한 침해처럼 "매우 중요한 일에 우리가 그런 어리석은 집착으로 인해 집중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를 동원하는 그의 마무리 발언은 기립박수를 불러왔다.


틸은 군중을 향해 외쳤다. "누군가 'DEI'라고 말할 때면 그냥 'CCP'(중국 공산당)라고 생각하세요!"


그날 저녁의 질의응답 시간에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틸은 '워우크 좌파woke left'들이 의도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고 생각할까? 답변하는 틸은 또 다른 억만장자에게 예고 없이 잽을 날렸다.


틸은 말했다. "요원agent과 자원asset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죠. 요원은 완전한 고의로 적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자원은 그냥 유용한 바보일 뿐이죠. 그러니 질문자께서 '빌 게이츠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의 고위 요원일까요, 아니면 자원일까요?'(이 말을 할 때 청중들 틈에서는 큰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라고 하셨지만, 그게 그렇게 차이가 있을까요?"




틸은 종종 공개 발언에서 빌 게이츠를 악역으로 써먹곤 한다. 그래서 나는 틸에게 빌과 그의 전처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 그리고 워렌 버핏이 2010년 창설한 기부 운동인 '기빙플레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억만장자들에게 자선 목적으로 그들의 재산 중 절반 이상을 기부하라고 설득하는 활동을 어찌 보느냐고 물은 것이다. (일러두기: 내 아들 중 한 명은 빌 앤 메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틸은 내게 약 10년 전 동료 벤처 투자자가 같은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의 공동 창업자인 비노드 코슬라는 몇 년 전 기빙플레지에 동참했다. 틸이 같은 목적으로 게이츠와 대화할 날이 있을까?


틸은 답했다. "저는 빌 게이츠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지닌 수십억 달러를 남에게 주는 것은 그것을 얻기 위해 뭔가 잘못된 일을 했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틸의 생각이다. "자선사업이란 사악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유럽에 만연해 있고 미국에서도 점점 더 퍼져나가는 중이다. 자선사업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불러온다고 그는 말했다. "대체 무엇을 속죄하고 있는 걸까요?"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지닌 자원을 필요한 이들에게 퍼뜨리고자 하는 충동에 대해서도 그는 별 공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에 만연한 끔찍한 가난과 불평등에 대해 내가 언급하자 틸은 말했다. "그 일을 할 사람이 세상에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훨씬 더 끌어당기는 것은 또 다른 대의大義다.




1999년, 혹은 2000년일 수도 있는 어느날 밤, 틸은 막스 레브친과 함께 팔로 알토의 어느 파티에 참석했다.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이라는 조직의 출범을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자리였다.


알코어는 갓 사망한 이를 냉동한 후 언젠가 사망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날 다시 깨우는 이른바 바이오스태시스biostasis라 불리는 의료 기법 시험을 선구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파티에서 만난 이들은 늙고 쇠약해진 시신을 되살리는 모습을 떠올리지 말라고 했다. 레브친의 말은 이렇다. "그 아이디어란 당연하게도 이런 거였죠. 우리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법을 알게 된다면, 그보다 훨씬 전에 우리는 세포 조직을 재생하는 법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러니 젊고 활기차고 아름답고 근육질의 모습으로 부활시켜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레브친의 귀에는 그 모든 이야기가 으스스하게 들렸고 어서 빨리 나갈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틸은 알코어의 고객이 되기로 서명했다.

그가 기울이고 있는 온갖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틸도 언젠가는 죽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알코어는 계약에 따라 인체 냉동 보존술 제공자들을 대기시켜 놓을 것이다. 틸이 법적으로 사망했다고 선언되는 순간 의료진은 그의 호흡기와 혈액순환을 복구할 수 있는 기계에 틸의 시신을 연결한다. 이 과정은 그의 두뇌를 보호하고 "사망 과정"을 느리게 하기 위한 임시 조치일 뿐이다.


알코어에서 사망한 고객을 부르는 용어에 따르면, "환자는 얼음 욕조에 냉각되고 환자의 혈액은 체내 장기 보존 용액으로 대체"된다. 그 다음, 이상적인 경우라면 한 시간 내에 틸의 유해는 애리조나 주 스코츠데일에 있는 수술실로 이송된다. 극도의 추위가 야기할 조직 손상을 줄이기 위해 의료진은 그의 혈관에 동결방지제를 주입한다. 그리고 그의 몸은 액체 질소의 온도인 영하 196도로 냉각되는 것이다. 그 후 진공 처리된 두 겹의 금속제 관에 들어가 222명 혹은 그보다 많을 또 다른 냉동인간들과 함께 "환자는 이제 이론적으로 수천년을 버틸 수 있는 보존 상태"에 들어간다고, 알코어 측에서 발행한 논문은 설명하고 있다.


그 저장소에 누워서 틸이 할 일은 그를 부활시킬 능력과 의지를 가진 어떤 미래 사회가 발흥하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 경우 그가 가진 기술과 교육, 그리고 막대한 자산은 어쩌면 아무 가치가 없는 상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냉동보존술이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틸도 알고 있다. 신체를 냉동하면 신경과 세포 구조가 파괴된다. 하지만 냉동보존술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보다, 즉 "다른 선택지보다 낫다"는 것이 틸의 생각이다.


2000년대에 그는 영국 출신 생의학 노년학자인 오브리 드 그레이의 연구에 매료되었다. 드 그레이는 과학의 힘으로 누군가가 천년을 살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고 보는 사람이다. 그런 시기가 끝날 때쯤의 미래 과학자들은 삶을 그보다 더 연장시킬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그리하여 곧 불멸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풍성한 턱수염과 케임브리지 학위를 가진 카리스마적 인물인 드 그레이는 마치 예복을 차려입은 그리스 정교회 사제를 연상시킨다. 그는 틸에게 몇 시간에 걸쳐서 노화 재생의 과학에 대해 설교했다. 드 그레이는 본인의 연구 프로그램을 SENS라 부르는데, 이는 '생물학적 노화 상쇄를 위한 전략적 엔지니어링strategies for engineered negligible senescence'의 약자다.


틸은 드 그레이의 므두셀라 재단과 SENS 연구재단에 수백만 달러를 제공하며, 쥐의 생명을 비자연적인 수준까지 연장하는데 성공한 과학자에게 막대한 상금을 제공하는 펀드를 돕고 있다. 그 상은 지금까지 네 번 시상되었지만 그 성과의 인간에 대한 적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명이 극단적으로 늘어난 사회가 지니는 함의에 대해 틸이 얼마나 고민해봤는지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자원은 그렇지 못하다. 다들 어디서 살게 될까?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무엇을 먹고 마실까? 혹은, 피하지 말고 질문해보자면, 오직 극히 부유한 이들만이 그런 천년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어쩌면 요점을 이해한 듯한 말투로 틸은 말했다. "글쎼요, 저는 아마 자족하겠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불평등보다 경기 침체가 더 큰 걱정거리 같습니다."


불멸에 집착하는 실리콘 밸리의 분위기라면 틸은 외톨이가 아니다.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은 죽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은 "죽음의 치료"를 갈망한다. 러시아 기술 업계의 선도자 중 한 명인 드미트리 이츠코프는 1만 살까지 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 바 있다.


죽음에 대해 그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책망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틸이다. 그는 내게 말했다. "저는 이 일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스코츠데일의 냉동 죽음 창고에 대해 불편한 진실을 인정했다. 고개를 떨구고 난감한 미소를 반쯤 머금은 틸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정말 될지 저는 모르겠어요. 계약서가 어디 있는지, 기록이 어디 있는지 등등도 마찬가지로 모르죠. 게다가 당연하게도 어디서 냉동이 이루어질지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은 적절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껏 널리 알리지도 않았는데요."


남편에게 말하지도 않았다고? 본인과 함께 서명하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뜻일까?


"제 말은, 생각해 본다는 거죠."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틸이 말했다. "생각해 봐야죠. 거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만, 가족 이야기는 이쯤 해두자는 제스쳐였다.


틸은 생명 연장을 위해 이미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구석기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며 트레이너를 고용하여 운동을 한다. 니코틴이 "지능지수를 10포인트 올려주는 아주 좋은 인지능력 향상 약물"이라고 보고 있는 그는 니코틴 패치를 통해 니코틴을 섭취할까 고민하고 있다. 근육량을 늘리고자 성장호르몬 알약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최근까지도 그는 오젬픽에서 나온 세마글루타이드(2형 당뇨병 치료제)를 사용해 왔고, 얼마 전 매주 체중감량에 흔히 쓰이는 비만치료제 마운자로Mounjaro 주사를 맞는 것으로 대체했다. 틸은 또 다른 비만치료제인 메트포르민도 복용한다. 그 약이 "암 발생 위험을 확연히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HBO의 드라마 '실리콘 밸리'의 한 캐릭터는 "블러드 보이"를 고용해 주기적으로 젊은 혈청을 수혈받는다(하지만 이 캐릭터는 틸을 모델로 삼았다고 여겨지고 있지 않다). 나는 이 드라마를 언급하면 틸이 웃을 줄 알았지만, 틸은 웃지 않았다.


"저는 온갖 종류의, 뭐, 아무튼 이단적인 것들을 들여다 봤었죠." 틸은 그런 시술이 병체결합parabiosis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것이 쥐의 노화를 느리게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과학이 더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갈망이 얼마나 뜨겁건 틸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자원으로도 그는 본인을 평범한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줄 "엄청나고 굉장한 의학적 치료술"을 아직은 구입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틸이 맞닥뜨린 궁극적 실망일지도 모른다.


"제가 돈으로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는 거죠." 틸은 말했다.



바턴 겔먼은 애틀랜틱의 객원 필자로 워싱턴포스트에서 21년간 기자로 일하며 퓰리처상을 세 차례 받았다.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에미상, 탐사보도로 하버드 골드스미스상 등을 수상했으며 저서로 '다크 미러', '앵글러'가 있다.


옮긴이 노정태는 자유기고가·번역가로,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칸트 철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시사·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프리랜서』, 『탄탈로스의 신화』, 『논객시대』 등이 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실전 격투』, 『정념과 이해관계』, 『밀레니얼 선언』,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아웃라이어』,『칩 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1857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문예 매거진. 진보적 성향으로 롱리드 피처, 인터뷰 기사로 유명합니다. 본래 월간지였으나 현재는 1년에 10회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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