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9 13:59
홍콩 교외의 고층 아파트 11층, 86세 여성이 좁고 낡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딸은 마카오 남자와 결혼해서 두 자녀와 함께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아들은 수년 전 세상을 떠났고, 아들이 남긴 유일한 손자는 영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9월의 어느 저녁, 노파는 전구를 갈다 넘어져 골반이 부러졌다. 노파는 움직일 수 없었고, 도움을 요청하는 그의 외침을 누구도 듣지 못했다. 그후 이틀 동안 그는 탈수증상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이웃이 경찰 당국에 신고하기까지는 사흘이 더 걸렸다. 악취가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기까지 사흘이 걸린 것이다. 경찰은 시신을 치우고 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알렸으며 조촐한 장례식이 열렸다.
몇주 후, 집주인은 아파트 전체를 청소하고 다시 임대하려고 했다. 노파의 죽음이 살인이나 자살로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아파트는 홍콩의 온라인 흉가凶宅 목록1에 등재되지 않았다. 집주인은 새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월세를 약간 낮췄고, 이는 중국 본토에서 막 홍콩에 넘어온 대학생인 다이링을 유인하기에 충분했다.
아파트에서 처음 맞이한 밤, 다이링은 꿈에서 흐릿한 노파의 얼굴을 보았다. 다이링은 꿈에 대해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아파트의 지붕 덮인 발코니에 놓을 식물을 사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위쪽 발코니 바닥에 드릴로 박힌 고리에 베고니아 화분을 하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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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밤, 다이링은 그 노파를 다시 보았다. 매일 밤 꿈을 꿀 때마다 노파의 얼굴이 더 선명해졌다. 가끔 노파가 그에게 말을 걸어 자신을 찾아와 달라고 했다.
'왜 오지 않는 거니? 어디에 있니? 언제 또 올 거니?'
꿈이 계속될수록, 다이링은 잠들기가 힘들어졌다. 가끔은 뜬 눈으로 누워 있는 대신 발코니로 나가 화분에 물을 주거나 달을 보곤 했다.
유독 꿈이 생생했던 어느 날 밤, 다이링이 잠에서 깨어 발코니로 나간 후에도 노파의 목소리는 멈추질 않았다.
'나를 보러 와주렴. 어디에 있니?'
다이링이 발코니 가장자리에 있는 베고니아에 물을 주려고 작은 발판 사다리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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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 너는 한번 오지도 않고.'
다이링은 화분에 물을 부었다.
'어서 도와줘!'
'알았어요,' 다이링은 대답했다.
그는 발코니 난간 너머를 내다보고는 발판 사다리에서 뛰어내려 11층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경찰은 이 사망사건을 자살로 결론지었고, 아파트는 홍콩 온라인 흉가 기록부에 등재되었다. 집주인은 월세를 30% 깎고 귀신을 믿지 않는 세입자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중국어에서 번역하고 약간 수정한 이 이야기는 처음에 홍콩의 한 대학생이 내게 보내준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게 실화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이와 비슷한 귀신 출몰, 비정상적인 죽음에 대한 허구적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여럿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비록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의 경험과 불안을 반영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말년에 가족 없이 남겨진 노년층 부모, 타인을 해치는 (심지어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귀신, 엄습해 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강해지는 귀신에 대한 두려움과 부동산 시장의 관계가 그것이다.
이런 생각이 상식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귀신을 믿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고, 발전에 뒤처진 전통 농경사회의 흔적이라는 게 중국의 공식적인 관점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보다 '덜' 미신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귀신에 대한 믿음은 도시 생활과 급속한 도시화 경험에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귀신에 대한 공포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이것이 도시화를 거치면서 변모하고 심화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두려움은 망자에 대한 추모와 '억압'과 뒤얽히면서 사회 생활과 도시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귀신에 대한 믿음은 현대 중국의 도시에서 모호한 형태를 하고 있다. 모두가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인정하지는 않지만, 내가 난징, 상하이, 지난济南, 홍콩에서 수십 년 동안 민족지학民族誌學 연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귀신을 믿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들은 묘지나 장례식장을 방문할 때 각별히 주의했으며, 버려진 건물에 귀신이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내비쳤고, 죽음에 대해 말하거나 연상하기를 피했다. 그들의 표현으로 '귀신이 나오는' 아파트를 임대하거나 구입하지 않는 것도 그런 행동의 일환이었다.
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인류학 연구를 하고 있다. 내가 산둥성의 농촌 지역에 살던 당시에 중국인 마을에서 외국인이 살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나는 시골 가문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조사하러 산둥성으로 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시골의 장례 관습을 보게 되었는데, 중국 전역에서 형태가 비교적 비슷했다. 누군가 사망하면, 보통 시신은 사망 후부터 장례식이 치러질 때까지 며칠간 집에서 관에 보관된다. 삼나무 관을 쓸 때도 있는데, 지금은 냉동 처리하는 편이다. 조문객들이 찾아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선물을 주고, 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장례식은 가족 중 연장자가 주관하고 진행한다. 장례식이 끝나면 시신을 그대로 마을이 소유한 땅에 매장하거나 화장한 후 매장한다. 그러나 내가 중국의 농촌 지역에 사는 동안 이웃이 시신을 집에 둔 것을 두고 불평하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일하는 들판, 그리고 친척들이 묻힌 곳에 '귀신이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장례식과 망자에 대한 믿음이 도시에서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도시의 장례 관습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산둥성에 산 지 몇 년 후, 도시에서 친구와 친척을 위한 추도식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다(내 아내는 난징시 출신이다). 내가 중국 도시 지역의 장례식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게 달라졌다.
2013년에는 난징과 홍콩을 중심으로 중국 도시의 장례 분야 종사자들의 인터뷰를 시작했고 중국 여러 도시의 장례식장과 묘지를 방문했다. 그 결과 중국 도시 지역의 장례 관습은 지방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죽음과 시체, 매장 장소를 덜 무서워하는 듯했다.
난징과 상하이, 홍콩에서는 시신이 발견되는 즉시 집이나 병실에서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으로 옮겨진다. 장례식은 가족 대신 업계 전문가가 주관하고 진행한다. 장례식이 끝나면 시신을 화장하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묘지나 납골당에 안치한다. 상하이에서는 유명 묘지인 푸서우위안福寿园까지 가려면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이상이 걸렸다.
중국 대도시에서 만난 아파트 거주자들에게 시골의 장례 관습에 대해 설명해주면 대부분이 그런 관습을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특히 난징에서 인터뷰한 한 남성은 냉동 처리한 관에 보관해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해도, 시신을 아파트에 보관한다는 발상 자체에 혐오감을 느꼈다. 그는 이런 관습이 같은 건물의 거주자에게 액운과 오명을 동시에 안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신을 아파트 건물에 보관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난징과 홍콩의 공무원에게 이 법에 대해 문의했을 때 이들은 가정에서 시신을 발견한 자는 누구든 지방 정부에 즉시 신고해야 하고 정부는 가능한 빨리 시신 처리를 준비할 것이라고 확답했다.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공공연히 죽음을 알리는 일조차도 법으로 금지되었다. 홍콩중문대학에서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중 화중華中지방 소도시 출신인 학생들에 따르면 그들의 고향에서는 아파트 건물 밖에 조문객용 천막이 세워진다고 한다. 그러나 상하이나 톈진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런 천막이 더는 용납되지 않는다.
난징에서는 시신을 집에 두는 대신 가족의 아파트에 가정용 제단과 영정사진을 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 친구와 친척들이 이 가정용 제단을 찾아와 조의를 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이 꾸준히 오가는데다 아파트 현관에 죽음과 관련된 상징이 눈에 띄는 곳에 배치되기 때문에 다른 거주자들이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난징에서 어떤 사람들은 가정용 제단을 세웠지만, 이 관습을 불쾌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터뷰 도중 한 여성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불길한 일을 가족이 대놓고 알리고 다니다니, 정말 무례하네요!'
상하이나 베이징을 비롯해 내가 가본 대도시에서는 아무도 가정용 제단을 두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인구 1500만의 도시 톈진天津의 관공서 게시판에서는 아파트에 가정용 제단을 세우는 것이 불법이라고 설명하는 안내문을 본 적도 있다. 거주자가 제단을 세웠다고 이웃이 정부에 신고하면 막대한 벌금이 부과되었다.
도시 규모가 클수록 이웃 거주자들이 아파트 건물에서 사망 사건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고, 죽음을 알리는 행위가 불법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더 높다.
나는 2010년대에 장례 전문가들과 인터뷰하면서 죽음을 알리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죽음과 관련된 장소를 방문할 때 경계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시의 장례 전문가들은 장례식장이나 묘지 같은 곳에 깃든 귀신의 음陰한 기운을 물리치는 법을 유가족에게 종종 알려주곤 했다. 이 음의 기운은 따뜻하고 설탕이 든 음료를 마시거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가거나, 불 넘기 의식을 하는 양陽의 활동으로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상하이를 비롯한 도시에서는 장례식 출구에 불 위를 넘어가는 장소가 마련된다.
나는 난징에서 장례식을 관찰하다가 장례 전문가가 주차장에 설치해 둔 금속 발판에 잔디를 약간 태워 불을 지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조문객들은 양의 기운을 흡수하고 망자 주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생기는 음의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 모두 불 위를 넘어갔다. 시골 장례식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의식이었다.
중국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보다 망자의 시신과 묘지를 더 두려워하는 듯하다. 이들은 이웃의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만 떠올라도 불안해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화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심화'시키는 듯하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도시 구역에서 죽음과 관련된 기반 시설을 없애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중국 전역에서 묘지와 장례식장은 도심으로부터 끊임없이 밀려나고 있다. 도시와 그 경계가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국가가 운영하는 장례식장과 화장장 이전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다수의 묘지를 파내야 했다. 난징의 어느 공무원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은 아직 귀신을 무서워합니다. 묘지와 장례식장 인근 부동산의 가치는 항상 중심 지역보다 낮습니다. 그래서 시 정부는 부동산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장례식장을 도심으로부터 먼 곳에 두려고 합니다."
한번은 난징의 장의관리처殡葬管理处 공무원에게 나의 미국인 친척의 유골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공원에 뿌려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부모님의 유골을 공원에 유기하도록 허용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해요.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난징의 공원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기에,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고 흙에 섞이면 구별이 안된다 할지라도 화장한 유해를 뿌리는 것은 불법입니다."
홍콩에서는 망자에 대한 두려움이 본토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이 두려움은 장례식장(장례 의식을 치르는 장소) 운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2년 기준으로 홍콩에서 정식 허가된 장례식장은 단 일곱 곳, 정식 면허를 취득해서 장례 준비를 도울 수 있지만 장례식을 치를 시설은 보유하지 않은 장의사는 약 120명이다. 2000년대에 현행 규제 제도가 시행되기 전 사업을 시작한 장의사에 한하여 공개적으로 사업의 특성을 홍보하고, 매장에 관을 전시하고, 화장한 유골을 보관할 수 있다. 이 업체들은 A형 장의사업 면허를 가지고 있다. B형 면허를 가진 업체는 근방의 다른 업체나 주택 보유자가 반대할 경우 화장한 유해를 매장에 보관하거나 관을 전시할 수 없다. C형 면허를 가진 업체는 제약이 더 많아서 매장 앞에 공개적으로 게시되는 간판에 '장례'라는 문구를 사용할 수 없다.
이 논리는 내가 난징에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펼친 것과 동일하다. 이웃이 죽음이나 시신을 두려워할 경우, 또는 타인의 공포가 자신의 사업이나 자산 가치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할 경우, 이들은 장의사의 활동을 제한할 권리를 가진다. 이는 사실상 B형, C형 면허 소지자 모두의 사업 활동이 영향을 받음을 뜻한다.
현재 A형 면허를 소지한 장의사 대부분이 홍콩의 훙함紅磡 주거지구에 모여 있으며 이 지역 아파트 다수의 창가에서 장의사의 가게(그리고 가게 표지판)를 볼 수 있다. 이런 아파트들은 장의사 가게가 보이지 않는 집보다 임대료가 낮다. 다이링의 자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홍콩에는 비정상적으로 사람이 죽어 나간 '흉가'를 찾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자료가 있다. 여기에 실린 아파트들도 할인된 매매가와 임대가로 거래된다.
현대 중국의 도시인들은 왜 이렇게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일까? 도시에서 삶과 죽음의 분리, '타인' 사회와 경제의 부상, 가족의 이상화와 축소의 동시 발생, 버려지거나 방치된 건물의 증가의 네 가지가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 네 가지 모두가 도시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도시화가 귀신을 만든다. 이 네 가지 요인과 구별되지만 여전히 현대 중국의 괴담을 악화시키는 다섯 번째 요인, 억압의 정치도 한몫한다.
첫 번째 요인은 삶과 죽음의 분리가 심화되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집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는다. 대신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병원에서는 직원이 최선을 다해 시신을 숨긴다. 병원에서 사망하지 않는 경우에도 시신은 재빠르게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보관된다. 그 결과 중국 주요 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시신을 본 적이 없다. 묘지와 장례식장이 도심에서 점점 먼 곳으로 밀려나면서 이러한 분리가 심화된다. 사람들이 죽음을 적게 경험할수록, 죽음은 더 무서워진다. 죽음을 언급하기만 해도 많은 이들이 불길해한다.
내 생각에 더 중요한 요인은 두 번째인 '타인' 사회와 경제의 부상이다. 시골 마을에서는 친척들이 같은 곳에 합장되었지만 도시의 묘지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나란히 묻힌다. 이런 상황은 이웃이 서로를 모를 수도 있는 대형 아파트 건물과 유사하다. 적어도 중국의 도시에서 귀신의 개념(중국어에서 '귀鬼'는 악의를 가진 각종 혼령을 지칭하는 동시에 은유적으로 악한 사람이나 동물까지 가리킨다)은 '타인'의 개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친족이 죽으면 조상이 되고, 타인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 귀신은 악한 짓을 할 수 있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 처음 소개한 이야기에서도 다이링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것은 노파의 귀신이었다. 난징의 도시 묘지에서 안장식을 치를 때는 장례지도사가 옆집의 영혼이 귀신처럼 행동하지 않기를 바라며 새로 매장되는 이를 '이웃'에게 소개하곤 한다.
도시경제는 타인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는 도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이 낯선 사람들이 우리를 정당하게 대우해주길 바란다. 더욱 결정적인 사실은 중국 도시에서 행하는 장례식을 타인이 준비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낯선 이들은 장례식장과 화장장에서 시신을 처리하고 병원 영안실과 묘지에서 일한다(또는 실외 가판대에서 꽃과 장례 용품을 팔기도 한다).
전 세계 여러 곳과 마찬가지로, 이 분야의 노동자들에게는 낙인이 찍힌다. 이들은 배우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고객과 악수하는 일도 피하려 한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직업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자녀들에게도 부모의 직업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똑같이 하라고 가르친다.
장례 종사자에게 씌워지는 이러한 오명은 묘지의 귀신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이 있으며 중국에서 성매매를 바라보는 시각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남편과 성관계를 하는 여성은 고결한 시민이지만, 모르는 사람과 돈 때문에 관계를 맺는 여성은 오염되어 있고, 남을 오염시키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시골 마을에서 친족의 장례식을 도와주는 사람은 도덕적이지만 도시에서 돈을 벌기 위해 남의 장례식을 돕는 사람은 기피 대상이다. 조상을 묻는 일은 자식의 도리를 행하는 것이지만 낯선 이를 묻어주고 이들의 귀신 같은 음의 기운을 처리하는 사람은 영적 오염에 노출된다. 이들에게 낙인이 찍히기에 성매매와 장례 사업이 비교적 수입이 괜찮은 고용 형태가 될 수 있다. 두 가지 직업 모두 가족과 타인의 화폐 경제 영역 사이에 그어진 불편한 선을 넘나든다.
이런 발상과 관련된 세 번째 요인, 즉 가족의 이상화는 중국 도시의 귀신을 향한 공포를 조장한다. 중국이 도시화되고 현대화되면서 낯선 이들과의 접촉이 더욱 보편화되는 동시에 가족과 가구의 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한 사람의 전체적인 사회적 세계는 서로 다른 동네에 사는 친척들로 구성되지 않는다. 도시인의 사회적 경험 세계는 소수의 가까운 친척 및 그보다 수적으로 많은 타인과 지인의 사회로 구성된다. 가족이 축소되면서 친족 관계와 친족이 아닌 관계의 대비는 더욱 중대해진다. 가족은 도덕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이상화된 현장이지만 타인의 세계는 착취, 강도, 배신을 겪을지 모를 곳이다. 그러나 가족 규모가 너무 작아지면 도입부 이야기 속 노파처럼 개인이 완전히 고립되어 결국 귀신이 될지도 모른다.
중국이 도시화되면서 귀신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있다. 중국의 도시 지역과 도시화가 진행 중인 곳에서만 귀신은 타인과 동일시된다. 한편 중국의 전통적인 농촌 사회에서는 귀신이 생전에 학대당했거나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친족으로 여겨지곤 했다. 장례식의 목적은 전적으로 세상을 떠난 친척이 귀신 대신 조상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사회적 경험세계가 거의 가족으로만 구성된다면, 선善과 악惡이 가족 안에 혼재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 환경에서는 선과 악이 분리될 수 있어서 가족은 순수한 선으로 상상되고, 악은 타인들에게만 존재한다.
1세기 전의 중국 농촌 지역에서는 영유아가 죽으면 장례식을 전혀 치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신은 도랑에 버려져 동물의 먹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죽은 아이들이 여성의 자궁에 침입한 악령이라 생각해서 제대로 장례를 치뤄주면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대 중국의 도시에서는 아이를 잃는 것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 중 하나다. 그래서 죽은 아이들에 대한 장례가 정성껏 치러지며 아이의 무덤은 가장 화려하게 장식되는 경우가 많다. 죽은 아이들이 상징하는 것은 오직 가족의 사랑이며, 악한 것과 연상시키는 일은 절대 없다. 가족은 신성하고, 타인(그리고 그들의 귀신)은 위험하다.
중국 도시 괴담과 연결되는 네 번째 요인은 버려진 건물과 동네, 공장의 존재이다. 이런 장소들은 한때 활력이 넘쳤지만 도시 재개발 대상지로 지정되었고, 그 결과 거주자와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쫓겨났다. 비어 있고 종종 방치되는 이런 곳은 공동체나 삶의 방식을 잃고 남겨진 이들(또는 근처에 사는 이들)을 연상시킨다. 재개발 대상 지역에는 농촌 지역을 비롯하여 이전에 도시화된 지역, 특히 개발 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곳도 포함된다. 재개발이 끝나면 이 지역은 한층 발전하여 인구 밀도도 높아진다. 이 사업의 영향을 받는 공동체는 반발을 했거나, 반발하려고 시도했겠지만, 중국에서는 보통 이러한 저항이 빠르게 진압된다.
타인인 동시에 기억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나 대상이 귀신이다. 적어도 권력자가 보기에는 그렇다. 이들에 대한 기억이 억압되기 때문에 그 혼령들이 인정받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들 앞에 적극적으로 출몰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 두드러지는 기억의 정치적 억압은 이들을 더욱 귀신처럼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가 도달한 최종 지점은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기억과 공포를 다루는 광범위한 정치 체제에 연결되는 방식이다. 도시 재개발 사업은 잠재적으로 반정부 시위를 유발할 수 있는 여러 상황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정부의 시각에서 이런 저항은 모두 억눌러야 한다. 현재 중국 공산당 정권은 공산당 정신은 영원히 살아 숨쉬고, 그 외의 정신은 모두 귀신 같은 적이자 타인으로, 제거해야 할 존재라 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산당이 현재 절연해버린 과거—대약진운동大跃进运动,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톈안먼 사건天安门事件—의 귀신은 다시는 언급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공산당이 아닌 모든 정신을 추방하려는 공산당 정권의 전체주의적 충동은 중국의 도시 괴담을 늘리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귀신을 억누르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중국의 도시에서 귀신에 대한 공포는 빠르게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농촌의 과거가 남긴 흔적이 아니라, 도시화 그 자체의 과정에서 생산되어 정치적으로 증폭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분리, 타인 사회의 부상, 가족의 이상화 및 외부 사회의 분리,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끊임없이 붕괴되고 생산되는 양태, 그리고 그들의 기억을 억압하는 것, 이 모두가 중국 도시를 떠도는 귀신 이야기에 일조한다. 가족의 방치, 도시 재개발 과정에 수반되는 도시 지역의 붕괴, 다이링과 노파처럼 타인에 의한 잘못된 죽음으로 귀신이 된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종류의 괴담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대가족과 공동체의 쇠퇴로 우리가 홀로 죽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 우리가 삶의 모든 면에서 낯선 이들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위해(危害)에 더 취약해진다는 점을 동시에 시사한다.
중국의 도시에서 묘지와 장례식장은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곳이고 시신을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죽음은 여전히 우리의 사적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다. 갑작스럽고 달갑지 않은 죽음의 출현은 죽음을 더욱 괴기하게 만든다. 도시인의 삶에서 타인, 오고 가는 곳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 또는 존재와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도시에 나타나는 귀신도 늘고 있다. 도시 지역의 완전한 파괴와 재개발이 반복되고, 도시경제의 개편과 붕괴가 되풀이되고, 사회적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정치적 억압이 계속될수록, 우리를 시달리게 하는 기억은 불어날 따름이다.
앤드류 킵니스는 홍콩중문대학香港中文大學 인류학과 교수다. 최근 'The Funeral of Mr. Wang: Life, Death, and Ghosts in Urbanizing China'(2021)를 출간했다.
'가까운 사람은 죽으면 조상이 되지만, 낯선 사람은 죽으면 귀신이 된다.' 낯선 사람은 살아 있을 때도 잠재적 범죄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친밀한 공동체가 무너진 삭막한 도시의 풍경입니다. 농촌 공동체, 씨족 공동체가 강한 중국인들이 급속한 도시화를 겪으면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생활을 경험하고 있고,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 속 풍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온Aeon의 2023년 11월 10일자 기사입니다. 공동체를 떠난 낯선 삶과 함께 중국 공산당의 감시와 억압이 도시민들을 더욱 위축시키면서 이러한 위축과 공포가 죽음과 귀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귀신에 대한 도시괴담을 퍼뜨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파트에서 누군가 죽으면 아파트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어떤 도시는 법으로 주민의 죽음을 공공연히 알리는 것을 금지하기도 합니다. 일본 도쿄에는 우리의 강남 청담동에 해당할만한 지역인 노기자카-오모테산도 구역에 아오야마 영원靈園이라는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번화한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이 묘지에는 아침이면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 사람들은 전혀 두려움 없이 산책하기도 합니다. 도쿄시민들은 어떤 이유로 낯선 이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걸까요? 사람들이 가지는 죽음에 대한 태도는 그 나라의 정치적 성격, 운영방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이 차이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