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14:10
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은 4년간의 총리직을 마치고 다시 한번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었다. 2012년 대선 전 "푸틴 없는 러시아"라는 구호가 시위 집회에서 인기 있는 구호가 될 정도로 많은 러시아인들이 그의 무리한 복귀에 분개했다. 러시아인들의 불만은 푸틴 자신과도 관련이 있고 진행되고 있던 러시아의 정치 변화와도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헌법에는 푸틴을 제약할 수 있는 제도나 조항이 없었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초기 푸틴주의는 대중의 태평함과 무관심이 뒤섞여 있었다. 푸틴 대통령 임기 첫 8년인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러시아 경제가 확장되면서 러시아 중산층이 부상하자 무관심 속에 안주하는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크렘린궁이 어느 정도는 대중의 정치참여를 막음으로써 조성한 이 무관심은 정권의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푸틴을 사랑할 필요는 없이 그저 그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는지에 무관심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2022년 러시아는 이제 '전시(戰時) 푸틴주의'라는 새로운 상황을 만났다. 이 체제는 완전히 권위주의적이고 전쟁에 동원되기도 했지만, 태평함과 무관심의 공간은 어느 정도 남겨두었다.
3월 15일부터 3월 17일까지 러시아에서 다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이 기사는 선거 이전에 작성된 것인데, 대통령선거에서 예상대로 푸틴이 당선됐다 – 역자 주). 후보자, 선거운동, 투표함 등 절차적 형식은 크렘린궁의 이미 예정된 결과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집권 25년째를 맞이한 푸틴은 6년의 임기를 더 수행하게 될 것이며, 이 임기가 끝나면 그는 다시 출마하여 2036년까지 통치를 연장할 수도 있다.
크렘린궁은 철저한 관리를 통해 선거를 최대한 말썽없이 치르려고 노력했다. 푸틴이 2024년 선거가 공정하더라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푸틴 정권의 선거 관리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이번 선거가 크렘린이 오랫동안 금지해 온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촉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제대로 된 비판은 또 다른 가능성, 즉 푸틴의 명령이 러시아 국민의 집합적 의지와 일치하지 않고, 그가 러시아를 영원히 통치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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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집권 25년 동안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해 왔다. 첫 번째는 자신을 반대하거나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국내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방대한 억압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인 살해, 충성심이 부족한 올리가르히 체포, 푸틴의 정치적 대항마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사에 대한 억압이 수반되었다. 자유주의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는 2015년 크렘린궁 밖에서 살해당했다. 정치 활동가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수감되어 있다. 그리고 불굴의 정치적 용기를 보여준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북극 형무소에서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2020년에 독극물에 의한 암살 미수에서 살아 남았고, 1년 후 독일에서 치료를 받은 후 위험을 감수하고 러시아로 돌아왔다가 이번에 사망한 것이다.
푸틴의 또 다른 목표는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그가 없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오늘 그에게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일도 그에게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러시아인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의회나 헌법, 그리고 야당의 견제를 받지 않는 푸틴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 '영원한 푸틴주의'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고 이것이 많은 러시아인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 푸틴주의는 어쨌건 러시아인들이 가장 잘 아는 정치적 안정이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절망이나 분노를 유발한다.
영원한 푸틴주의에는 취약점이 있다. 영원히 살아남기로 한 정권은 실패한다는 인식을 조금이라도 대중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푸틴 정권이 지속되려면 이미 달성한 필연성(푸틴 정권의 성립은 필연이었다는 인식-역자 주)뿐만 아니라 영원히 달성할 수 없는 자신의 불멸성에 대한 환상을 유지해야 한다. 신화 안에 눈에 띄는 균열이 보이는 경우, 이는 신화 자체를 훼손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게 된다. 푸틴이 자신을 전능한 구세주, 즉 러시아의 운명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정권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무적이라는 신기루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은 영원한 푸틴주의 건설에 꼭 필요한 단계였다. 이 전쟁으로 러시아 지도자는 이미 막강한 크렘린궁의 권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시민사회의 영역을 급격히 축소시킴으로써 더욱 힘을 얻었다. 최근까지도 정치 엘리트들은 어느 정도는 나름의 의사결정권을 나눠 갖고 있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그들은 이제 푸틴의 의지를 단지 실행에 옮기는, 대원수의 부관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했다.
이제 러시아의 그 어떤 공식 기관도 푸틴에 의해 채택된 정책에 의문을 일체 제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전쟁노력에 대한 헌신만 보여 주어야 하며, 전쟁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범죄로 간주된다. 이제 많은 러시아인들은 다음의 명제를 교리로 받아들인다. 즉 '푸틴은 이 불가피했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것이다.' 이 명제에 따르면, 푸틴만이 러시아를 이끌 수 있으며, 푸틴만이 러시아의 정치적 미래를 맡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전쟁은 러시아 정치와 사회를 크게 군사화했다. 전국 곳곳의 광고판과 포스터가 군대를 미화하고 있다. 관영 미디어는 우크라이나를 꼭두각시로 만든 '서방'을 악마화하며 온 러시아가 방어전쟁에 나서도록 촉구하고 있다. 크렘린궁이 말하는 푸틴은 대체할 수 없는 최고 통수권자이자 국가를 이끌 전략가이자 외교관이며 국가를 승리로 이끌 평화의 수호자이다. 평화를 갈망하는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푸틴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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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회의 군사화는 선택적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전쟁을 열정적으로 지지하거나 참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묵종을 요구할 뿐 크렘린은 전쟁노력에 대해 모른 체하거나 무관심해도 그다지 괘념치 않는다. 이러한 부분적인 군사화는 전시 푸틴주의의 특징이며, 억압적이지만 부분적으로만 오웰적일 뿐이다.
크렘린궁은 미디어 인프라를 통해 같은 이야기를 매일 반복한다. 러시아가 전장에서 우세에 있고,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권 외에는 세계여론이 러시아의 입장에 더 동조적이며, 낮은 실업률과 임금 상승으로 러시아 경제가 양호한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은 아니다. 러시아 국민들 눈에 푸틴은 서방의 비판과 제재,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무력화시키며 서방에 굳게 맞서는 중요한 시험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렇게 러시아가 힘이 세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실제 전장에서 승리를 반드시 거둬야 한다. 만약 푸틴의 군대가 패배하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노출된다면 푸틴의 국내 통치 능력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초의 전쟁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영원한 푸틴주의는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제국의 역사, 소련의 역사, 소련붕괴 이후의 역사, 정복당한 적이 없는 위대한 나라의 긴 역사를 종합한 유일한 인물이자 러시아와 '러시아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한 대통령, 퇴폐에 맞선 전통 가치의 수호자, 러시아에 사악한 서방에 (힘겹게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 정치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방을 시샘의 대상이 아닌 적대감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2024년의 푸틴 러시아가 1980년대의 소련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고 인식되고 있다.
푸틴이 하는 일은 모두 러시아에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지며, 그가 말을 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내용을 결정한다. 즉 이데올로기가 그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국익수호자로서의 푸틴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이 전쟁은 러시아 국가가 후원하는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로 가공되고 있으며, 영원한 푸틴주의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된다.
표면의 균열
권력자에게 반기를 든 전력이 없는 보리스 나데즈딘 같은 소심한 야권 인사조차도 '영원한 푸틴주의' 미학에 대한 모욕으로 여겨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나데즈딘은 푸틴에 대항하는 야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나데즈딘의 선거운동으로 예상치 못하게 수만 명이 후보 지지 서명을 하고 반전 정서가 나데즈딘을 중심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하자 나데즈딘은 경쟁에서 배제되어야 했고, 억압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독재정권의 딜레마를 드러냈다. 독재정권은 억압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느슨해짐으로써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린다.
나데즈딘의 단명했던 캠페인과는 달리 나발니의 죽음은 영원한 푸틴주의의 표면에 진정한 파문을 일으켰고, 정권이 이를 무마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2024년까지 나발니는 오랫동안 공직 출마가 금지되어 있었고, 대중과의 접촉이 극히 제한되는 등 설 자리가 전혀 없었는데, 이제 목숨까지 잃었다. 크렘린궁은 나발니의 죽음을 별일 아닌 일로 치부했지만, 모스크바와 다른 도시에서 수만 명이 탄압의 공포를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슬픔을 표현하며 나발니의 이름을 불렀다. 사흘 연속 수많은 애도객들이 모스크바에 있는 그의 무덤을 찾아 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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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국가체제 앞에서 나발니는 배패했고, 이로써 그의 고귀한 일생은 세속의 성인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에 대한 기억은 푸틴주의에 영원히 대항할 두 가지 원칙, 즉 무관심을 거부하겠다는 것과 러시아 정치가 전적으로 하향식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담고 있다.
나발니의 죽음은 크렘린이 영원한 푸틴주의가 자신을 숨기거나 가면을 쓰지 않고, 민주적인 척하거나 외부의 영향을 받는 척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다. 크렘린궁은 면책특권을 가지고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러시아 내부의 많은 사람들은 푸틴이 필멸의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가 없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올해 대선은 단순히 푸틴의 6년 집권을 확인하는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다. 영원한 푸틴주의의 도래를 방해해왔던 과거의 정치적 흔적에 대한 마지막 작별 인사로 해석해야 한다. 이제 황제가 왕좌에 오르게 될테니 "황제폐하 만세!"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미래는 미정
칼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영원한 푸틴주의는 그 내부에 파멸의 씨앗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코 반성하지 않는 독재 체제에서는 많은 일이 잘못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측 전쟁노력은 몇 달에 한 번씩 흔들리고 있으며 그곳에서 러시아의 운이 다할 수도 있다. 전시(戰時) 사회는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만 진실이 드러나는 경향이 강한데, 푸틴의 전쟁은 이미 러시아에 엄청난 수준의 인명 손실을 가져왔다.
러시아 경제 역시 언제든 요동칠 가능성이 있으며 서방의 제재에 취약한 상태다. 영원한 푸틴주의가 도를 넘을 수 있다. 독재 정권은 현명하지 못하게 스스로를 살찌울 수 있다. 그리고 통치의 기반이 되는 강압과 억압을 노골적으로 일삼으면서 국민의 마음을 잃을 수 있다.
전쟁, 시장, 정치의 변덕스러움을 감안하면 영원한 푸틴주의의 깊이와 범위는 놀랍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주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만약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승리에 가까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면 푸틴주의 체제는 국내외에서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푸틴이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지더라도 그가 심어놓은 강압의 도구는 크렘린궁, 보안기관, 군대 등 그가 설치한 곳에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푸틴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러한 도구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푸틴이 있든 없든 이러한 도구는 많은 기득권과 많은 관례를 품고 있다. 푸틴 체제가 아닌 다른 체제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이런 기득권들이 평화롭게 넘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수십 년간의 폭정 끝에 1953년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은 혼란스럽고 피비린내가 났다. 스탈린의 최종 후계자인 흐루쇼프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베리아를 처형했다. 흐루쇼프는 나중에 자신의 엘리트들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 뒤를 이어 집단적 리더십의 원칙을 받아들인 브레즈네프가 등장했다. 리더십이 바뀌더라도 바뀌지 않는 것은 소련의 기둥인 공산당이었다. 소련 이념, 소련 군대, 그리고 소련 정부 내에 존재했던 많은 행정 기관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소련은 내전으로 치닫지 않았다. 냉전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지도에서 사라지지도 않았다.
이는 영원한 푸틴주의가 답습할지도 모를 패턴이다. 푸틴이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푸틴이 무대에서 사라진 후 권력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유혈사태까지 가지 않는다면 이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기존 체제를 지속시키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은 군과 보안기관에 있는 권력을 계속 장악하려 할 것이다. 내부 싸움으로 러시아의 지정학적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며, 푸틴이 구축한 이념적 구축물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는 현재 푸틴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푸틴주의가 푸틴 자신의 임기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제기한다. 푸틴은 자신 이후에 올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제대로 승계하도록 많은 준비를 해왔다.
마이클 키미지는 미국 가톨릭대학교의 역사교수이며 워싱턴 소재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선임연구원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과 새로운 글로벌 불안정성Collisions: The Origins of the War in Ukraine and the New Global Instability'의 저자다.
마리아 리프먼은 조지워싱턴대학교의 유럽러시아유라시아연구소의 방문연구원이며, 동 연구소의 웹사이트(russia.post)의 공동에디터이다.
최근 실시된 대선에서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스탈린보다 더 오래 집권하는 러시아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다음 임기에도 연임에 성공할 경우 심지어 예카테리나 2세보다도 더 오래 집권하게 됩니다. 현재 71세에 건강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푸틴의 재집권이 시작됨에 따라 '푸틴 이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포린어페어스의 3월 13일자 기사는 '푸틴 이후' 논의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데, '영원한 푸틴주의'라는 표현을 쓰면서 푸틴이 구축해온 권위주의 체제가 푸틴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저자들이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지만 행간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푸틴이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심하게 된 것이 이번에 실시된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나라는 점입니다. 저자들은 이를 '전시(戰時) 푸틴주의'라고 부릅니다. 이 전시 푸틴주의가 '푸틴 이후'에도 살아남을 '영원한 푸틴주의' 즉 '영원히 지속될 푸틴 정치체제'를 만드는데 있어서 핵심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통령선거에서 무난히 승리하기 위한 해법이기도 합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남부 영토 일부를 점령한 채 전쟁이 마무리된다면 푸틴은 '승전의 개선장군'이 될 것입니다. 푸틴 체제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지금의 군수산업의 활황에 따른 전시 호경기가 휴전 이후 급격히 냉각되면서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것이 푸틴에게 부담이 되겠지만, 영토의 확장이라는 전쟁성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경기침체도 무난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금년 11월에 재집권 가능성이 있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에서 러시아가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북한의 대외정책에서도 러시아가 더욱 중요한 위치를 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푸틴과 러시아의 행보에 대해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PADO의 러시아 관련 후속 기사들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