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7 14:22
11년 전, 스티븐 웨스트는 시애틀의 세이프웨이(미국의 슈퍼마켓 체인점) 창고에서 식료품을 진열하고 있었다. 그는 24세였고, 16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후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부양했다. 때때로 노숙자 생활을 했던 그는 9세 때 가족과 떨어진 후 주로 웨스트코스트 지역의 합숙소와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랐다. 그는 책에서 위안을 찾는 법을 배웠다. 그는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데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되뇌이곤 했다. "육체노동이죠. 하지만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일자리의 99.9%보다 낫죠."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쯤, 그는 "서양 철학의 주요 저작 전체"를 섭렵했다.
창고에서 하루 종일 상자를 포장하는 일의 주목할 만한 장점은 헤드폰을 끼고 반복적이고 고독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듣다가 멈추고 생각하고 내가 들은 내용을 최대한 맥락화하려고 했어요." 그가 내게 말했다. "하루에 8시간 일했는데 그 중 7시간을 철학을 읽고 듣는 데 썼어요. 몇 시간은 그것을 해석하고 그냥 생각하는 데 썼죠. 일과의 마지막 한 시간은 팟캐스트를 들었어요."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마음이 자유롭고 손이 바쁠 때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웨스트는 2013년 자신의 팟캐스트인 '필로소파이즈 디스Philosophize This!'를 시작했다. 그는 팟캐스트가 "진입 장벽이 없는 유일한 IT 매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냥 마이크를 켜고 말하기 시작했다." 몇 달 안에 그는 기부금으로 창고 노동을 그만두고 철학을 전업으로 할 수 있을 만큼 벌게 되었다. 현재 그는 스포티파이에서 월 청취자 200만 명, 유튜브에서 구독자 15만 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로소파이즈 디스'는 애플의 철학 팟캐스트 부문에서 미국 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편이 넘는 에피소드에서 그는 낙관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도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청취자들에게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철학자부터 슬라보예 지젝, 마사 누스바움 같은 현대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유럽, 중동, 중국의 철학자들을 소개했다. 그는 어떤 사상가의 철학적 주장이 아무리 구식이라도 그 시대의 의미 부여 맥락 안에서 다루며, 설명과 비평 사이를 능숙하게 오가면서—보기 드물게도—'현재'라는 특권에서 내려다보는 태도를 거부한다. 그는 한때 자신이 10세기 이슬람 학자 알파라비를 설명하면서 쓴 표현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중재하는 평화주의자"이다. 모든 에피소드는 웨스트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특징들을 보여준다. 꾸밈없는 박학다식, 소박한 전달 방식, 미묘한 재치, 그리고 잘 된 일에 대한 존중.
[PADO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 북콘서트가 11월 30일(토) 광화문에서 열립니다! (안내)]
그의 녹음 결과물이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웨스트는 온라인에서 흔적을 찾을 수가 없는 인물이다. 이것이 내가 그를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철학 박사 과정은 커녕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했다. 그는 진지한 사고에 대해 비전문가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때문에 그의 접근 방식은 종종 전문성에 따라붙는 자만심에 물들지 않았다. 팟캐스트의 초기 팬 중 한 명인 보수 논평가 벤 샤피로는 자신이 '필로소파이즈 디스'에 너무 매료되어 웨스트에게 연락해 조언을 해주고 광고 담당자를 소개해 주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는 학문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흥미로운 답을 찾는 사람의 관점에서 철학을 다루고 있어요." 샤피로가 말했다. "너무 많은 철학이 담장 안의 다른 철학자들을 향해 있어요. 그는 정반대로 하고 있죠."
정치적 성향은 샤피로의 반대편에 서 있는 반대로, 또 다른 고품질 철학 팟캐스트인 '더 그레이 에리어'의 진행자 숀 일링도 그의 팬이다. "아카데미의 철학은 폐쇄적이고 난해하지만 사실 철학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가 내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웨스트는 "뽐내거나 설교하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그는 그저 영리하고 호기심 많은 어른처럼 당신과 대화를 나누죠."
나 역시 웨스트에게 끌렸는데 그가 내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철학을 열정적으로 공부했던 철학도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 집에서 과외 사업을 운영했다. 하지만 "과외"라는 말로는 그걸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보다는 일종의 플라톤식 아카데미라고 해야 더 적절할 것이다. 내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가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거실이 되었을 공간이 일종의 도서관이 돼 모든 연령대의 학생들과 이웃들, 친구들이 몰려드는 걸 보았다. 아버지는 우리 모두를 플라톤, 에픽테토스, 마이모니데스, 그리고 아버지가 책장에서 꺼내 교감하곤 했던 수많은 "친구들"의 통찰 속으로 안내했다. 아버지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 가족을 부양했다. 걱정과 스트레스는 많았지만 여유는 매우 적었다. 하지만 바로 그 비좁은 방에서 나는 웨스트가 자주 자신의 사명이라고 묘사했던 "어제보다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 사회적 변혁의 힘을 처음 목격했다.
아버지는 이메일조차 써본 적이 없었지만 웨스트를 보면서 나는 만약 아버지가 우리 세대에 태어나 마이크와 유튜브, 그리고 그가 공유하고 싶은 것에 관심 있는 모든 잠재적 청취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를 가졌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웨스트는 아내 알리나—카자흐스탄 출신의 양자 물리학자로 그의 팟캐스트를 듣고 링크드인으로 그에게 연락했다—와 갓 태어난 아들, 그리고 (파트 타임으로 돌보는) 이전 관계에서 낳은 7살 딸과 함께 시애틀에서 남쪽으로 45분 거리에 있는 "아무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도시" 퓨얼럽에 살고 있다. 그의 목소리 음색과 지적 성향의 조합, 그리고 내 자신의 상상 때문에, 나는 그를 헐렁한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중년의 교수로 상상했었다. 하지만 올해 35세인 웨스트는 붉은 수염을 가졌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운동복 차림이었다. 검은색 언더아머 맨투맨, 야구 모자, 그리고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의 집은 수십 채의 똑같이 쾌적한 주택들 사이에 있는 세심하게 정돈된 신규 개발 지역에 위치해 있다. 내부는 넓고 정돈되어 있어 거의 텅 빈 듯했다. 나는 책과 서류가 사방에 쌓여 있고, 주방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으며, 문과 옷장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웨스트는 내가 실망할 거라고 농담했다.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그의 사무실에는 믹싱 보드, 스피커, 마이크, 키보드, 그리고 듀얼 스크린 컴퓨터 모니터가 있었다. 액자에 든 그의 딸의 쪽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빠 팟캐스트 진짜 잘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벽에는 유튜브 구독자 10만 명 달성을 기념하는 명판, 니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그림,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놀랍게도 주황색 덤벨 한 쌍 옆 선반에는 책이 달랑 여섯 권만 있었다. '몽테뉴 수상록', 릭 루빈의 '창조적 행위', 리처드 할랜드의 '플라톤에서 바르트까지의 문학 이론', 페미니스트 이론 선집,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푸코의 '말과 사물'. 그의 나머지 독서 자료는 킨들 태블릿 속에 있었다. "제 컴퓨터 바탕화면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탭이 열려 있을 거예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기자님이 기대하는 어수선함은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거 같네요."
그때 나는 내가 자란 집과 비슷한 걸 상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이제 뉴저지의 노발리스마냥 "나는 항상 집으로 돌아가고, 항상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우리 가족의 기초가 되는 이야기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이해할 만큼 나이 들었다. 나를 키워준 사람을 제약하면서도 동기를 부여했던 20세기 미국을 내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1940년대 아버지가 텍사스 갤버스턴의 소년이었을 때, 이웃집 뒤를 배회하다가 버려진 책 상자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다른 책들과 함께 윌 듀란트의 1926년 고전 '철학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책을 넘기다 소크라테스의 사진에 매료되었다. 아버지는 그 남자가 누구이며 왜 그가 바다와 세기를 넘어 우리의 주목을 받는지 알고 싶었다. 이웃은 아버지에게 책을 가지라고 했다. 그 만남의 여파로 아버지는 가족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학 박사 과정까지 밟게 되었다.
이게 소설이었다면 편집자는 원고의 여백에 "너무 뻔한 스토리!"라고 적어놓을 것이다. 우연히 지혜 그 자체를 만난 고독한 아이, 탐구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통찰로 영원히 변화된 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추억은 아버지의 서재 중앙에 있는 거대한 오크 책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아 아버지의 과외 서비스를 광고하는 복사된 전단지를 수천 개의 봉투에 넣었다. 우리는 봉투를 붙이고 우리 집보다 더 부유한 동네의 가구들에 보냈다. 그 후 몇 주 동안 전화벨이 울렸고 어찌된 일인지 항상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의 새로운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SAT나 GRE 점수를 올리려는 작은 야망으로 등록했다가, 단순히 그와의 대화를 연장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재등록했다. 그는 가장 문제가 있고 산만한 아이조차도 열광적인 학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정신의 삶'이 그것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믿었다. 87세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믿고 있다.
나는 웨스트와 내 아버지처럼 사회적 또는 교육적 제약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매료되어 왔다. 웨스트에게 그런 욕구가 어디서 오는지 물었을 때, 그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환경의 희생자로 묘사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적어도 갈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리나는 그가 그저 "언제나 더 현명해지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가 더 어릴 적에는 구글에 가장 현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검색하기도 했다니까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소크라테스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철학에 빠져들게 된 거죠."
[새로운 PADO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카톡으로 알려드립니다 (무료)]
2500년 전, 플라톤의 '국가'는 주민들이 자신의 욕망이나 변덕이 아닌 타고난 재능과 집단의 선(善)을 위한 필요에 따라 노동하는 유토피아를 상상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사회에 크게 이롭지 않을까요?" 웨스트는 '필로소파이즈 디스'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이렇게 물었다. "세상의 병폐를 치유할 수도 있었을 천재들이 얼마나 많이 타코벨에서 접시닦기나 하게 됐을지생각해 보게 된단 말이죠."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관찰했듯이, 우리 모두는 불가피하게 우리가 타고난 독특한 자아와 우리가 처한 환경의 조합이다. "나는 나와 나의 환경이다Yo soy yo y mi circunstancia." (또는 카말라 해리스의 어머니가 말했듯이: "너는 그냥 코코넛 나무에서 떨어져서 세상에 나왔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혁신의 바람에 의해 예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또 그만큼 우리 시대의 경제적, 인종적, 기술적 한계에 구속돼 있기도 하다.
웨스트가 팟캐스트를 시작하도록 영감을 준 사람 중 한 명은 '4시간' 시리즈 자기계발서의 저자인 팀 페리스였다. 페리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상적인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인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역사를 보면 그 실현 가능성이 다른 때보다 높아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오늘날이 바로 그 중 하나다. 십수년 정도 더 일찍 태어났다면 웨스트는 나의 아버지처럼 매우 책을 좋아하는—동네에서만 알려진—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얻은 것과 같은 빠르고 전국적인 주목은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내게 자신이 "이걸로 돈을 벌지 않았더라도, 그저 여가 시간에"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것을 직업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그는 "운이 좋았죠"라고 말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삶이든 설계할 수 있다. "지금 남태평양 보라보라 섬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가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는 가족과 함께 퓨얼럽에 있기를 원하며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곳에 있기를 원한다.
나는 그에게 내가 하는 일이 이리저리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고,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했다. 웨스트는 민감하고 진지한 청취자이며, 일상적인 대화에도 자연스럽게 윤리적 질문을 주입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일정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 삶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의 수가 그러한 도덕적 선택들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결정합니다. 삶에서 선택권이 없다면, 당신은 실제로 많은 선택을 내리고 있지 않은 거죠."
내 생각에 그가 내게 해준 말은, 번영의 일부는 후회라는 것을 말하는 정교하면서도 친절한 방식이었다. 나는 그가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철학이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매우 실제적인 세계의 실존적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삶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고 느꼈다.
토머스 체터튼 윌리엄스는 애틀랜틱의 기자이자 바드칼리지의 인문학 방문 교수,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비상근 연구위원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 하퍼스, 뉴요커, 런던리뷰오브북스, 르몽드 등에 글을 썼다.
지식이 아무리 전문화, 분업화되더라도 세상 '전체'에 대한 물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이 애틀랜틱 8월 20일자 기사는 스티븐 웨스트(Stephen West)라는 철학 팟캐스트 운영자를 조명하는데, 그는 창고에서 매일 8시간 박스를 싸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이 박스 싸기가 단순 노동이어서 일하는 중 헤드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듣기 좋다는 것입니다. 노동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거죠. 그리고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팟캐스트라는 매체를 활용해 자신의 생각을 마치 대화하듯 세상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사람들의 호응이 좋아 이제 스포티파이에서는 200만명 이상이 그의 말을 듣고, 유튜브에서는 15만명이 구독자입니다. 그의 애플 팟캐스트는 미국내 철학 부문 3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제 그는 육체노동을 그만 두고 전업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독일계 유태인으로 미국으로 망명 가 이른바 시카고대 정치철학파를 세운 레오 스트라우스는 어렸을 적 꿈이 우편 집배원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집배원이 시골 동네를 도보로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업무의 대부분이 걷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한가하게 걸으며 생각도 하고 틈 나면 책의 문구도 읽으면서 생계도 해결하고 싶었다는거죠. 분업과 전문화가 존재하고, '전체'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철학에 대한 요구는 늘 존재하게 됩니다. 여기서 철학은 또 하나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철학하기'라고 해야겠군요. 인간은 앎에 대한 선천적 욕구를 타고 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첫 구절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성상 앎을 좋아한다. 시각, 청각 등 다섯 개 감각으로 세상을 감지하는 것을 즐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즐거움은 시각의 즐거움이다. 시각은 세상의 다채로움을 가장 잘 전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렇게 앎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돈을 들여 해외관광을 합니다. 좋은 음식 먹고 좋은 호텔에서 쉬고 싶은 것도 있지만, 못봤던 세상을 보고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세상의 못봤던 것을 보고싶어 합니다. '철학하기'는 바로 분업과 전문화에 눈이 가려 평소 못 보던 세상을 비춰 보여줍니다. 이 기사의 주인공 스티븐 웨스트가 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주말에 플라톤의 '국가'(천병희 역 추천합니다)라도 한 권 사 찬찬히 읽으면서 세상에 대해 '철학하기'를 시도해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