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5 14:32
F-16 전투기의 굉음이 화롄(花蓮) 중심가의 일상을 정기적으로 방해한다.
대만의 산악지대 동부 해안에 위치한 화롄은 등산객들이 인근 타로코 국립공원의 장관을 이루는 절벽을 향해 출발하는 곳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대만의 가장 중요한 방어 시설 중 하나인 자산(佳山) 공군기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미국산 군용기인 F-16이 주기적으로 출격하는 모습은 중국과 대만 간의 긴장 고조 속에서 승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미국의 방산업체라는 걸 상기시킨다.
예를 들어 록히드마틴은 대만의 F-16 전투기를 보다 현대적인 F-16 바이퍼로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제트기를 공급하는 계약으로 수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편 중국의 해상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보잉의 방산부문은 17억 달러(2조3000억 원) 규모로 알려진 계약의 일환으로 대만군에 하푼 대함 미사일 수백 기를 판매했다. 매사추세츠 소재 방산기업 레이시온Raytheon은 4억1200만 달러(56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따내 대만의 군사 레이더 시스템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대만은 미국 기업 에어로바이로먼트AeroVironment로부터 6020만 달러(813억 원) 상당의 '스위치블레이드 300' 드론 700대 이상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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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만 비즈니스 협의회가 집계한 의회 보고에 따르면, 미국 방산업체들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대만에 총 210억 달러(약 28조3500억 원) 이상의 무기를 판매했다. 이전 5년 기간과 비교해 625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한편 중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중국 정부의 정치적 수사는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연례 업무보고에서 대만과의 "평화적 통일" 언급을 빼기도 했다. 그리고 대만 국방부는 해상과 공중에서 중국의 침범 횟수와 강도가 크게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2022년 8월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었던 낸시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한 후, 중국은 대만 주변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공중 및 해상 실탄 훈련, 미사일 시험 발사가 이루어졌고 그달에만 450대에 가까운 군용기가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했다. 이는 기록상 가장 많은 수치였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말썽꾼이자 분리주의자"로 보는 라이칭더 총통의 5월 취임식 이후, 중국군은 전면 침공에 대비한 전투 태세를 시험하기 위해 대규모 훈련을 실시해 다시 한번 대만을 포위했다.
전쟁의 북소리가 미국의 군산복합체에게는 큰 사업 기회를 의미하지만 대만을 둘러싼 군사대립은 세계 경제에 파괴적인 비용을 물릴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대만에 해상 봉쇄를 가한다면 보수적인 추정치로도 경제 활동의 즉각적인 손실이 2조 달러(2700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손실은 주로 대만의 반도체 제조 중단에서 발생한다. 가전, 자동차, 통신, 의료 및 첨단 기술에 의존하는 기타 산업의 공급망 붕괴로 인해 수조 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추가로 발생할 것이다.
"대기업들은 중국의 증가하는 위협과 대만 침공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이제서야 진짜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죠." 기업의 중국 노출도를 수치화하는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기업 스트래티지 리스크의 CEO 아이작 스톤 피시가 말했다. "현명한 기업들은 이러한 위험을 전략에 반영하고 있지만 반도체처럼 특히 민감한 부문의 경우 이는 사업 존립의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중국의 위협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대만을 떠나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미국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의 급격한 하락에서 회복한 후, 대만으로의 미국 투자 유입은 2021년 이후 13퍼센트 이상 꾸준히 증가했다. 미국 기업들은 작년에 15억5000만 달러(2조1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이는 2008년 이후 보고된 가장 높은 연간 수준이며 대만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와는 대조를 이룬다.
주대만 미국상공회의소(AmCham Taiwan)가 2022년 펠로시의 방문이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음에도—그 직후에는 미국 기업의 3분의 2가 지정학적 위험이 새로운 투자를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불안감은 이듬해 빠르게 약해졌다. 현재 많은 미국 기업들은 반도체, 자동화, AI 응용 분야의 빠른 성장과 함께 대만 경제가 올해 3.9% 성장할 것이라는 공식 전망에 주목하고 있다. 심지어 코스트코는 최근 10억5000만 달러(1조4200억 원)를 들여 현지 합작 파트너의 소수 지분을 매입했다. 코스트코는 대만의 면 제품과 에그롤을 미국, 캐나다, 멕시코, 호주의 매장에 도입함으로써 대만을 활용해 글로벌 매출을 늘리고 있다.
"서구 투자자들이 집에서 뉴스만 읽는다면 대만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커먼웰스 매거진의 편집자이자 '타이완놀로지' 팟캐스트 진행자인 광인 리우Kwangyin Liu가 말했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쿠마 아카데미(**주석 필요**)에 소속되어 기관총 사용법을 배우고 생존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상상하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여기 거리에는 탱크가 없어요."
"대부분의 기업들은 전면적인 물리적 충돌이 그리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주중 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인 옌스 에스켈룬드Jens Eskelund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에스켈룬드는 기업들이 양안 관계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의지대로 대만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모두 믿게 되기만 한다면 만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면전의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중국은 봉쇄를 통해 대만을 장악하고 대만의 식량, 물, 석유, 가스 공급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보안 회사 글로벌가디언의 최고경영자 데일 버크너(예비역 미 육군대령)가 설명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압박은 계속 강화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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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첨단 기술 투자자들이 대만의 AI 붐에 대한 열광으로 인해 몰려들었지만 다른 많은 기업들은 복합적인 도전 과제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대만 미국상공회의소의 2024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41퍼센트가 이듬해에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답한 반면, 51퍼센트는 투자를 늘리거나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었다. 한편 2024년 첫 8개월 동안 외국인 투자는 2023년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30퍼센트 감소했다.
군사 훈련과 외교적 긴장이 계속해서 대만을 압박하여 최악의 시나리오가 더욱 가능성 있게 보인다면 대만에서 천천히 빠져나가던 투자가 봇물 터지듯 빠져나갈 수 있다.
"코로나1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 전쟁, 레바논과 이란의 고조되는 분쟁, 홍해에서의 후티 공격 이후, 기업들은 계속해서 실질적인 곤란을 겪고 있어요." 버크너가 말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이제는 가능한 일이 되었죠."
그렇다면 이제 대만이 앞으로도 그 매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된다. 전면전의 가능성이 과대 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지체된 탈탄소화와 미중 지경학적 경쟁을 비롯한 여러 이유들로 인해 대만에 대한 의존을 보완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대만의 많은 사람들은 서구 투자자들이 '차이나+1'(중국에 올인 하지 말자) 전략을 이야기할 때 이는 '중화권 +1'(중화권에 올인하지 말자)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리우가 말했다. "외국 기업들 사이에는 중국으로부터 다각화하고자 한다면 대만에서도 떠날 것이라는 정서가 있거든요."
따라서 대만이 기술 메카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중국의 공격으로 인한 파괴를 피하는 것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수도 있다.
실리콘 방패에서 AI 갑옷으로?
2024년 5월, 라이칭더 총통 취임식 이후 중국의 "징벌적" 군사 훈련이 있은 직후, 중국 J-20 스텔스 전투기가 남긴 제트 구름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이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AI 혁명의 중심에 있는 고성능 그래픽 처리 칩(GPU)을 설계하는 엔비디아는 제조 수요 전체를 TSMC에 의존하고 있으며, 작년에 TSMC에 약 80억 달러(10조8000억 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가 생산을 대만의 제조시설(fab)로부터 다각화하려는 계획에도 불구하고, 젠슨 황은 대만의 공급망에 의존하는 것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는 거의 30년 동안 대만에서 기술과 엔지니어링을 해왔고 사업을 진행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젠슨 황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만이 글로벌 AI 붐의 "중심"에 있다고 선언하며 말했다.
엔비디아와 다른 기술 기업들의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TSMC는 현재 AI 칩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고 있다. 현장에 더 가까이 있기 위해 엔비디아는 대만에 7억1500만 달러(9652억 원) 규모의 새로운 R&D 센터와 AI 연구용 슈퍼컴퓨터를 건설하고 있다(대만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 지원도 받는다).
그리고 엔비디아만이 아니다.
미국의 칩 제조업체 AMD는 2억7000만 달러(3645억 원)를 투자해 자체 R&D 시설 두 곳을 설립할 계획이며(역시 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았다), 구글은 최근 대만에 두 번째 하드웨어 R&D 허브를 열 계획이라고 발표하면서 "생태계 구축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부터 아마존은 대만의 새로운 데이터 센터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15년 약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AI 칩과 서버의 급격한 성장으로 2018년 이후 대만의 대미 수출이 3배 이상 증가했다. 2024년 1분기 미국 시장 수출액은 250억 달러(33조7500억 원)에 달하는데 오랫동안 대만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었던 중국에 대한 수출을 능가했다. 대만의 궈즈후이 경제부 장관은 AI 칩과 서버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중국의 공세를 막아냄으로써 향후 50년 동안 대만 경제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만의 '실리콘 방패'는 이제 'AI 갑옷'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가 지닌 순수한 흡인력이 AI와 양자 컴퓨팅 인프라와 결합되어, 대만에 대한 자본 투자는 불가피한 것이 되고 있어요." 미국-대만 비즈니스 협의회 회장인 루퍼트 해먼드-챔버스가 말했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 기술 산업의 기업들이 지정학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대만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앞으로 몇 년간 미국, 일본, 중국의 반도체 생산이 증가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대만은 여전히 세계 반도체 제조 능력의 약 절반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첨단인 7나노미터 이하급 제품의 생산량은 80퍼센트에 가깝다.
하지만 대만의 에너지 문제는 미국의 기술 선도 기업들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장기적 노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만의 전력 소비량 중 80퍼센트 이상이 여전히 화석 연료로 생산되고 있으며 그 중 상당 부분이 반도체 산업으로 흘러가고 있다. TSMC는 전력, 화학, 철강 회사들에 이어 대만에서 네 번째로 큰 탄소 배출 기업이다. 그리고 수요 증가로 인해 TSMC의 전력 사용량은 대만 전체 사용량의 6퍼센트에서 2025년이 되면 12퍼센트 이상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한편 TSMC의 최대 고객들은 공급망의 친환경화를 요구하고 있다. 작년 TSMC 매출의 4분의1을 차지한 애플은 2030년까지 제품과 공급망을 탄소 중립화할 계획이다. 현재의 AI 열풍이 미국의 기술 기업들로 하여금 이 문제를 잠시 간과하게 만들어 대만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불분명하다.
TSMC의 전 회장이었던 마크 리우가 2021년에 말했듯이 재생에너지 옵션이 없다면 TSMC는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소외"될 수 있다.
대만 경제부는 2016년 2025년까지 대만 전력 수요의 4분의1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로 녹색에너지 이니셔티브를 시작한 이래로 재생에너지 문제 해결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엄격한 현지화 요구가 많은 외국 투자자들을 좌절시켜 녹색에너지 도입이 지연됐다. 유럽연합(EU)은 심지어 대만의 현지 조달 기준을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기도 했다.
"현지화는 큰 문제예요." 미국-대만 비즈니스 협의회의 해먼드-챔버스가 주장했다. "대만 정부가 과도하게 강압적으로 나섰고, 그 결과 시장의 매력도가 떨어졌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기업들이 철수한 반면, 코펜하겐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CIP)는 대만 내에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업계를 괴롭혀 온—주로 현지 조달 요구사항으로 인한—공기 지연과 높은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려 했다. 이 덴마크 투자회사는 대만 서부 해안에 세 개의 풍력 발전 단지 프로젝트를 보유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규모인 600W 창팡-시다오 프로젝트는 최근 6년 만에(코로나로 인한 일부 지연 포함) 완료되었으며 총 30억 달러(4조500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당초 목표 용량의 약 절반만을 달성한 후, 대만 정부는 최근 녹색에너지 목표를 축소했다. 타이완놀로지의 리우에 따르면, 대만 경제부는 최근 더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외국 테크 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해 탈탄소화를 진전시키고자 현지 조달 요구에 대한 "산업 정책 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현재의 규제를 완화한다면 해상 풍력발전기 설치가 엄청나게 증가할 거예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녹색 전환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대만의 노력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에너지 수요에 대한 대만의 극단적인 대외 의존은 봉쇄와 (출입) 차단에 취약하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가 해킹과 물리적 방해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중국과의 긴장 고조는 가장 헌신적인 투자자들조차 이 섬을 떠나게 만들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미국-대만 비즈니스 협의회의 해먼드-챔버스는 대만이 중국의 위협에 대해 체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대만 사람들은 미사일이 자신들을 겨누고 있고 비행기와 군함이 섬을 포위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어요." 그가 덧붙였다. "이는 일종의 무감각을 가져오고 임박한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밀어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대만의 가장 노련한 전문가들조차 양안 긴장이 고조되는 것에 놀라곤 했다.
마리누스 반 게셀 전 주대만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1996년 3월 중국의 탄도미사일이 대만의 주요 항구에서 불과 20마일 떨어진 곳에 떨어졌을 때 "식은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제3차 대만해협 위기'로 불리게 된 이 사태는 미사일 발사 9개월 전 당시 대만 총통이었던 리덩후이가 코넬대학교 동창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외교적 무시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은 1995년 하반기와 1996년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만에 대해 실탄을 사용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대선을 앞둔 실탄 군사훈련은 대만 경제에 신속한 타격을 입혔다. 수출이 10퍼센트 감소했고 주식 시장은 4분의1이 하락했으며 호텔 객실은 텅텅 비고 수많은 비즈니스 미팅이 취소됐다.
항모 2대를 포함, 총 14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미 해군 제7함대가 그해 3월 중국군 훈련을 감시하기 위해 도착한 후에야 긴장이 완화됐다고 반 게셀은 말했다.
미국 사업가들은 미 해군이 대만 동부 해안 가까이에 머무는 것에 안심했을지 모르나 미군 분석가들은 미국 함대가 오래 우위를 점하지 못할 것이라고 신속히 판단했다. 중국의 미사일 전력이 꾸준히 성장하고 정교해면서 곧 미군 군함들이 심각한 위험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군사력은 서태평양에서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대만 위기 상황에서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워싱턴부터 호놀룰루에 이르기까지 미군 수뇌부의 워게임에서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위기가 임박했다는 게 중론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과 대만 전문가들의 과반수가 향후 10년 내에 침공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중국의 심각한 개입이 있을 가능성이 높거나 매우 높다고 답했다.
중국의 개입이 어떻게 시작될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는 다양하다. 중국의 대만 공격은 대만의 독립 요구, 미국의 과도한 개입, 해상이나 공중에서의 우발적 충돌, 또는 단순히 중국 정부의 완고한 통일 의지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뒤따르는데 이에 대한 시나리오도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대만을 폐허로 만들고 게릴라전을 촉발하는 전면적인 상륙 침공도 있고, 식량, 물, 에너지 공급을 마비시키는 대만 주요 기반시설에 대한 혼합 공격 또는 대만의 인구 부양 능력을 서서히 압박하는 해상 봉쇄나 출입 차단등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중국은 해경 병력을 동원하여 몇몇 주요 항구만 차단하는 방법을 쓸 수 있는데 이것으로도 대만의 중요 에너지 자원 공급을 마비시키는 게 가능하다. 대만 무역 물동량의 60%에 가까운 양이 남부 가오슝항 하나를 통해 이동한다. 한 미군 연구에 따르면 대만 석유 수입의 99.75%가 가오슝, 지룽, 마이랴오 세 항구를 통해 들어온다. 대만 경제부는 자국이 10~11일분의 천연가스와 39일분의 석탄 재고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대만이 짧은 정전만으로도 세계 반도체 공급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어떠한 식으로든 대만의 전력망을 교란하면 그 즉시 반도체 생산을 마비시킬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고려할 때, 전문가들은 군대가 워게임을 하는 것처럼 기업들도 대만 위기의 영향을 시뮬레이션해 볼 것을 권고한다.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것은 매우 유용합니다. 갑자기 현재의 자기 조직의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에스켈룬드가 말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보이는 부분을 살펴보게 된다는 게 주된 효과죠. 그렇게 되면 보통 그것을 고치려고 하게 되거든요."
몇몇 기업들은 이러한 불편한 발견들을 시정하기 위한 준비 단계를 이미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22년 닛케이가 대만 내 미국, 일본, 유럽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은 비상시 주재원과 그 가족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상업 항공편의 좌석을 지속적으로 예약해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은 대만의 통신망이 손상될 경우에 대비해 본사와의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위성전화를 배포했다고 보고했다.
대만 내 외국 기업들은 또한 위기 상황에서 기술 문서와 기타 민감한 기록들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 내부 데이터를 대만 서버에서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리소그래피(노광) 장비 제조 분야의 세계적 선도 기업인 네덜란드의 ASML은 중국의 공격이 발생할 경우 TSMC 공장의 첨단 반도체 제조 기계를 원격으로 비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TSMC의 전 회장 리우에 따르면 TSMC는 외부 공급업체들과 단절되는 어떠한 시나리오에서도 "운영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다음으로는 중국의 군사 개입 시 기업 자산에 발생할 수 있는 가치 손실과 물리적 파괴가 있다. 실제로 CIP(코펜하겐 인프라스트럭쳐 파트너스)의 수십억 달러 규모 해상 풍력 발전 프로젝트는 민감한 해역에 100개 이상의 풍력 터빈을 설치했다. 연구자들은 대만해협 건너편 푸젠성에서는 중국 정부가 군사 이동을 위해 해역을 비워두고자 의도적으로 풍력 발전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보험사들은 최근 대만 관련 위험에 대한 보험료를 인상하고 보장 범위를 축소했다.
대기업들은 또한 중국의 대만 공격 가능성으로 인한 새로운 위협들을 인식하고 있다.
인력, 기술, 자산 보호에 대한 고려를 넘어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다. 엔비디아, 아마존, 구글과 같이 대만과 가장 크게 연관된 테크 대기업들은 또한 시가총액이 합계 약 7조 달러(9450조 원)에 달하는 상장 기업들이기도 하다.
애플이 2024년 3월 중국 시장에서의 아이폰 판매 급감에 대해 투자자들을 오도했다는 이유로 제기된 집단소송에 5억 달러(6750억 원)의 합의금을 제공하면서 깨닫게 되었듯, 주주들은 중국과 대만 간의 긴장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로 주식 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지 않을 수 있다.
"많은 기업 이사회들이 중국과 대만 사이의 현상 유지가 깨질 경우,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이러한 지정학적 위험들을 적절히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 주주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스톤 피시가 말했다. "기업들은 이러한 중대한 위험들에 대해 주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해요."
중국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외국 경영진들은 오래전부터 대만의 사실상의 독립에 대해 실수로라도 언급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운신의 폭은훨씬 좁아질 것이다. 대만과 중국 양쪽에서 경영하는 기업들은 결국 중국에서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제재 또는 소비자들의 보이콧에 직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올해 중국에서 120억 달러(16조20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한다. 하지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조차도 최근 타이베이 방문 중 대만을 나라(country)라고 칭하는 실수를 했다. 중국에서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황은 신속히 자신이 "지정학적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양안에서 큰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면 그런 미묘한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에너지, 경제, 안보 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이자 디렉터인 에밀리 킬크리스Emily Kilcrease는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이 차단 실시하거나 대만의 외곽 도서를 점령하는 '회색 지대 시나리오'에 대응하기가 특히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업들은 아마도 중국 내에서, 그리고 중국과의 사업을 계속할 법적, 운영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곧 언제, 어떻게 축소할지 결정해야 할 거예요."
대만을 둘러싼 심각한 대립이 발생하면 세계 경제에 장기적이고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 보고서는 미국과 G7 동맹국들이 강경책으로 중국의 은행 시스템과 주요 무역 및 금융 흐름에 제재를 가할 경우 3조 달러(4050조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심각한 결과가 중국을 자제시킬 수도 있다. 랜드연구소 유럽지소의 연구 책임자인 프란체사 기레티Francesa Ghiretti가 설명하듯이, 중국 정부에게 "기본 원칙은 항상 대상(대만)의 취약점을 파악하되 중국 경제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경제 협력이 약화됨에 따라 중국의 운신의 폭은 더 넓어진다. 작년, 미국이 대만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부상한 바로 그때, 중국과의 무역은 19퍼센트 급감하여 1660억 달러(224조1000억 원)를 기록했다. 대만은 여전히 중국의 최대 외국인 투자자 중 하나이지만 대만의 전체 해외 투자가 극적으로 증가한 반면 대중 투자 수준은 작년에 40퍼센트 급감하여 겨우 30억 달러(4조500억 원)를 기록했다. 이는 22년 만의 최저치다.
대만 국립정치대학교의 정치학 교수인 랭쩌강冷則剛은 경제적 유대가 느슨해지고 대만과 중국 간의 공식 소통 채널이 없는 상황에서 "양안 관계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향후 10년은 미국과 외국 경영진들이 대만에 대한—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한—노출을 더욱 제한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인지 아닌지를 결과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기업 세계에서 이는 꽤 긴 준비 기간이지만 외국 기업들의 중국 사업을 지원하는 해리스 슬리워스키의 변호사 댄 해리스는 미국 기업들로부터 여전히 주로 두 가지 반응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일부 기업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문제를 합리화하려고 해요. 다른 기업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초래할 결과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완전히 빠져나가기로 결정하고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맞아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에요. 당장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대만 전쟁은 지정학적 위험 중에서도 핵폭탄 같은 거라 할 수 있죠."
루크 퍼테이는 덴마크 국제관계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자 옥스퍼드대학교 에너지연구소의 수석 선임연구원이다. 저서로 '중국은 어떻게 패배하는가: 중국의 세계적 야망에 대한 반발'이 있으며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힌두, 포린어페어스, 포린폴리시 등에 기고했다.
한반도 위기론이 제기될 때마다 외신들이 다루는 단골 메뉴 중 하나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태평한 한국 사람들'인데 대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외부에서는 중국이 곧 무력 통일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잊을만 하면 등장하지만 대만 내부를 보면 태평해 보입니다. 다국적 기업들도 대만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기업들도 내부적으로 대만의 급격한 위기 발생 가능성을 그리 높게 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도 나름 근거가 있긴 합니다만 국제정세란 늘 변화하는 것이고 이제 트럼프 2.0 시대를 앞두고 더 급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미중 '디커플링'의 추세가 깊어진다면 중국도 경제 제재로 잃을 것이 적어지기 때문에 좀 더 모험주의적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게다가 우리가 종종 간과하곤 하는 대만 내부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중국 전문 매체 '더와이어차이나' 9월 29일자 기사에서는 그 중에서도 특히 대만의 고질적인 전기 수급 문제 심화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 부족 문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닌만큼 대만이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만큼 대만 경제, 특히 대만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많은 위험요소에 대해서도 분석과 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PADO는 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해 계속해서 독자들께 상세한 정보를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