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9 15:00
2024년 10월 1일의 맑은 하늘 아래, 중국 동북부 톈진시에서 첫 무인 공공 버스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 버스의 노선은 20킬로미터에 걸쳐 주거 지역, 학교, 관공서, 관광 명소를 잇는 10개의 정류장을 연결한다.
그러나 운행되는 버스 차량들은 현지 업체가 개발한 게 아니다. 싱가포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스타트업 무비타Moovita가 개발했다. 무비타는 싱가포르의 유명한 공공연구기관 과학기술연구청(A*STAR)에서 스핀오프한 스타트업으로 외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중국에서 운행 면허를 획득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자율주행차 제공업체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큰 시장이에요." CEO 데릭 로가 말했다. 다만 그는 바이두, 포니AI, 위라이드WeRide와 같은 메이저 테크 기업들이 여러 도시에서 차량을 시험하고 배치하면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덧붙였다.
무비타는 최근 2년간 스타트업 투자 업계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싱가포르의 기술집약적 기업 중 하나다. 종종 '딥테크'로 불리는 이들 스타트업은 자율주행차, 반도체, 로봇, 제약 등 큰 사회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 영역의 과학연구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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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스트리트아시아DealStreetAsia와 엔터프라이즈 싱가포르Enterprise Singapore의 데이터에 따르면 장기화된 자금 경색으로 2023년 싱가포르의 전체 투자 규모는 20%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딥테크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딥테크는 전체 거래 가치의 25%를 차지했는데 이는 2022년의 17%에서 상승한 것이며 전 세계 평균인 20%보다 높은 수준이다.
투자자 대부분은 현지 또는 미국 출신이었지만 일부는 대만, 일본, 프랑스,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왔다.
최근 딥테크 투자의 증가로 싱가포르는 미국 소재 연구기업 스타트업지놈Startup Genome이 작성한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에서 2022년 18위에서 2024년 7위로 도약했는데 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다.
투자자들은 더 복잡한 기술과 전문성으로 인해 주목을 덜 받는 경향이 있는 딥테크 산업이 미중 무역 전쟁과 공급망 변화 속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각국 정부는 이 분야의 잠재력을 포착하고 있는데 이를 가장 명확히 입증한 사례는 바로 코로나19에 대해 높은 효과를 보인 mRNA 백신의 개발이었다.
"싱가포르는 또한 국가 안보 차원에서 칩 제조와 같은 특정 분야에서 더 자급자족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어요." 싱가포르 소재 리브라이트파트너스Rebright Partners의 창립 제너럴 파트너인 다케시 에비하라가 말했다. "중립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싱가포르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고 있죠."
스타트업지놈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싱가포르는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클러스터 중 하나로 성장했다. 약 4500개의 신생 기업과 400개 이상의 벤처캐피털(VC) 기업, 그리고 약 4만 명의 연구원, 과학자, 엔지니어로 구성된 과학 연구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부상은 강력한 인재 기반, 편리한 위치, 정부 지원 및 유리한 세금 정책 덕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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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장을 견인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최근 열린 싱가포르 혁신기술 주간(SWITCH)과 같은 행사들인데 작년에는 1만5000명이 참가했다. 2024년 10월 29일 열리는 세션에는 연구혁신기업(RIE) 딥테크 데이가 포함되어 있으며 연구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딥테크 생태계를 발전시킬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우리는 싱가포르의 생태계를 환승 센터로 보고 있어요." 아이글로브 파트너스의 파트너인 에드먼드 웡이 싱가포르가 항공과 해운의 허브로 성장한 것을 상기하며 말했다.
동남아시아는 전자상거래, 차량 공유, 결제 같은 소비자 기술로 유명한데 이 분야 전반이 자금 조달 감소의 영향을 받았다. 딜스트리트아시아에 따르면 2024년 1~6월 동남아 지역 주식 자금 조달은 총 22억9000만 달러(3조 원)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6% 감소한 것이며 5년 이상 중 최저 수준이다.
이는 소프트뱅크 그룹의 비전 펀드부터 타이거 글로벌 매니지먼트까지 글로벌 투자자들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던 팬데믹 버블이 절정이었던 2021년 하반기의 최고치 138억5000만 달러(18조 원)에서 83% 감소한 수준이다.
하지만 딥테크 스타트업들의 경우, 전반적인 시장이 활황이었을 때조차도 자금 조달이 어려웠다. "우리 회사 초기에는 자금 조달 상황이 아주 안 좋았어요." 싱가포르 최고 국립대학 중 하나인 난양공과대학교(NTU)에서의 연구를 바탕으로 2018년 스핀오프한 유레카로보틱스의 CEO 팜 꽝 쿠옹Pham Quang Cuong이 말했다.
팜은 100명이 넘는 현지 투자자들과 대화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이 딥테크 쪽에서의 성공 사례나 엑시트가 전혀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부분의 VC에게 딥테크는 매우 낯선 것이었죠." 팜이 말했다. 결국 그는 일본의 주요 딥테크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도쿄대학교엣지캐피털(UTEC)과 같은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았다. 현재 유레카로보틱스는 도요타자동차와 같은 일본의 대형 제조업체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UTEC의 수석 심사역 키란 마이소어는 전통적인 벤처캐피털들이 진입하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딥테크 기업들은 영원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금리 변동이나 경기 침체가 있더라도 딥테크 기업들이 다루는 큰 사회적 문제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겁니다."
난양공대의 혁신기업부서인 NTUitive에 따르면 이 대학은 지난 10년간 7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스핀오프했다. 마지막 라운드 투자 기준으로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총 가치는 2024년 3월 기준 12억7000만 싱가포르달러(1조2000억 원)로 성장했는데 이는 2013년의 1350만 싱가포르 달러에서 94배 증가한 수준이다. 매년 약 10개의 스타트업을 배출해온 난양공대는 향후 몇 년 안에 그 수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터넷 스타트업들은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고,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죠." NTUitive의 CEO 데이비드 토가 말했다. "반면 딥테크는 기초 과학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있어요. 그것이 딥테크의 약속이죠."
싱가포르는 금융 허브로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제조업도 결코 약하지 않아 국내총생산의 약 20%를 제조업이 차지한다. 특히 싱가포르는 수십 년간 반도체 공급망의 필수적인 요소로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반도체 칩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스타트업들에게는 연구 허브로서의 싱가포르의 명성도 도움이 된다.
작년 싱가포르 최대 딥테크 투자 거래는 현지 반도체 기업 실리콘박스가 2억 달러(2600억 원) 규모의 투자 라운드의 일환으로 조달한 1억3900만 달러(1800억 원)였다. 첨단 패키징에 초점을 맞춘 실리콘박스는 작년 싱가포르에 20억 달러(2조6000억 원) 규모의 파운드리를 개설한 후, 2024년 3월 이탈리아에 32억 유로(4조5000억 원) 규모의 칩 플랜트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후기 단계 투자자들도 딥테크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조기에 움직이고 있다. 2023년 9월,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인 테마섹홀딩스는 난양공대 및 싱가포르국립대학교와 협력하여 총 7500만 싱가포르 달러(750억 원)를 공동 투자해 기업들의 연구 프로젝트 스핀오프를 지원하기로 했다.
2024년 10월 21일, 총리실 산하 국가연구재단 의장인 헹 스위 킷 부총리는 A*STAR가 딥테크의 상용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협력에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파트너십은 싱가포르 정부의 역대 최대 규모 연구개발 예산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2025년까지 GDP의 1%를 투자하여 총 250억 싱가포르 달러(25조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딥테크는 산업을 변화시키고 기후변화와 공중보건과 같은 공동의 글로벌 과제들을 해결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헹 부총리는 2019년 설립된 테마섹의 딥테크 부문인 조라이노베이션Xora Innovation의 새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한 후 SNS에 썼다.
"하지만 이는 연구, 혁신, 기업 생태계 전반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협력해야 하는 어려운 틈새 시장입니다." 헹 부총리가 덧붙였다.
조라의 12개 포트폴리오 기업 중에는 전직 A*STAR 연구원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생 두 명이 설립한 싱가포르 스타트업 코스모스이노베이션Cosmos Innovation이 있다. 전 구글 CEO 에릭 슈미트의 VC 기업인 이노베이션인데버스Innovation Endeavors도 투자자로 참여한 이 회사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가장 효율적인 태양전지와 반도체의 이상적인 설계를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코스모스의 CEO 비제이 찬드라세카는 이러한 글로벌 경쟁을 싱가포르가 칩 허브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현지 혁신을 육성할 기회로 보고 있다.
"싱가포르의 초기 성공 사례들은 글로벌파운드리스GlobalFoundries, 마이크론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와 같은 대기업들을 유치한 것이었죠." 찬드라세카가 말했다. "이제는 자국 기업들을 육성할 기회예요."
A*STAR 혁신기업부문의 부대표 아이린 청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부는 대기업과 그들의 연구 기반을 유치하는 것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을 새롭게 하고 있다. "조금 달라진 건 벤처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거예요." 그가 말했다.
2024년 10월 3일, A*STAR는 코로나19 백신 제조사 모더나에 투자한 미국의 바이오테크 투자사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Flagship Pioneering과 제휴를 맺었다. 5년간 최대 1억 싱가포르 달러(1000억 원)를 공동 투자한다는 목표로, A*STAR의 연구소들은 플래그십의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세포 및 유전자 치료와 같은 최신 생명공학 기술을 국가적 차원에서 공동 개발하는 걸 지원할 예정이다.
"요즘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더 많은 베테랑 바이오테크 경영자들이 싱가포르에서 아시아와 세계를 위한 차세대 기업들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청이 덧붙였다.
싱가포르에 진출해 있는 일본의 딥테크 벤처캐피털인 언트로디UntroD의 대표이사 마루 유키히로는 싱가포르가 하이테크 스타트업 클러스터로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성공적인 글로벌 금융과 IT 허브가 되었어요. 하지만 하이테크 제조 기반이 없다면 실리콘밸리 같은 생태계로 성장하지 못할 거예요." 그가 말했다. "금융만으로는 이것을 이룰 수 없어요."
인구 600만의 작은 도시국가이지만 1인당 GDP가 2024년 추정치로 9만 달러에 육박하는 싱가포르의 경제에 대해 우린 흔히 중계무역과 금융만 떠오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제조업과 IT도 세계적 수준이죠.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자매지인 닛케이아시아의 10월 29일자 기사는 첨단 과학기술 연구와 제조업/IT가 결합하는 '딥테크' 스타트업 분야를 주목합니다. 세계 대학 평가에서 늘 아시아 최선두를 기록하는 싱가포르국립대학(NUS)와 난양공대(NTU) 같은 우수한 학술연구기관의 성과를 실질적인 가치 창출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부문인지라 테마섹 같은 국부펀드와 유관 정부 에이전시들의 역할이 두드러지는데 기사를 읽다보면 한국의 정부와 학계에는 이러한 리더십이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한국의 우수한 이공과대학과 연구기관들도 '딥테크' 스타트업 창업에 나설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비전과 리더십이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