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푸틴의 '잠복 간첩' 글로벌 수색작전

첩보 소설 매니아인 푸틴의 지원 하에 러시아 스파이들은 교외의 주부, 종군기자, 연구원으로 위장해 잠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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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뉴스1

2025.01.10 14:50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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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있어서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비단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정보는 중요합니다. 정보 하나를 아는지 모르는지에 개인과 기업의 성패가 달려 있기도 합니다. 잠도 안자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향후 유행이 무엇인지를 알고 어디에 길이 지나고 지하철 역이 생길 것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2024년 12월 20일자 기사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집권 이후 얼마나 대외 정보활동에 공을 들여왔는지, 그리고 서방에서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를 보여줍니다. 대략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공무원들의 부패가 심하고 내무행정이 허술한 나라들을 통해 신분을 장시간에 걸쳐 세탁하는 과정입니다. 이 기사는 러시아의 정보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정보활동을 펼치는 것은 미국, 중국, 이스라엘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들이며, 우리나라도 당연히 적극적으로 정보수집 활동을 해야 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처럼 수많은 아랍인들에 의해 둘러쌓여 있는 작은 나라는 정보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져야 합니다. 포탄을 한 발 쏘더라도 정확한 표적 정보를 확보한 후 쏴야 합니다. 정보수집과 함께 타국의 정보수집을 막는 것을 '방첩'이라고 하는데, 정보수집과 방첩을 얼마나 보이지 않게 진행하는지가 국력의 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정보수집, 방첩 역량은 어느 정도일까요? 더욱 강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국가 기관들 사이의 역할 재분배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이러한 능력이 혹여 약해지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영국 정보기관 MI6가 수집한 기밀 정보는 너무나 민감해서 슬로베니아의 정보부 수장이 런던으로 날아가 이를 대면으로 들어야 했다.


알프스 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슬로베니아 어딘가에 러시아의 정예 스파이 두 명이 깊은 위장을 하고 숨어있었다. 하지만 MI6는 그들의 이름을 알려줄 수 없거나 알려주지 않으려 했다. CIA는 며칠 전에야 이들에 대해 들었다.


슬로베니아 정보보안국(SOVA, '올빼미'라는 뜻) 국장 요스코 카디브니크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독립 후 30년 동안 슬로베니아는 이런 스파이를 체포한 적이 없었다.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몇 주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는 슬로베니아의 국경을 훨씬 넘어 신냉전의 핵심으로 이어지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의 소규모 정보기관이 러시아의 잠입 요원 두 명을 체포해야 했다.


이 임무의 중요성은 러시아에 잡혀 있는 사람들에 있었다. 러시아의 감옥에는 러시아 정치범들과 지정학적 게임의 포로교환용 인질로 잡아놓은 늘어나는 숫자의 미국인들이있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러시아 스파이 한 명을 잡을 때마다, 러시아에 수감된 이들 중 한 명을 교환해 석방시킬 수 있었다.



미 중앙정보국(CIA) 본부 내 '러시아하우스'라고 알려진 임무 센터의 분석가들은 이른바 '비합법요원'들의 네트워크를 추적하고 있었다. 이들은 서구 사회의 구조 속으로 수년간 조심스럽게 잠입한 스파이들이었다. 그 중에는 북극기지와 존스홉킨스대학교의 브라질인 연구원으로 위장한 러시아 정보 요원들과 우크라이나의 전선에서 일하는 스페인 언론사 기자도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 일선 요원들을 블라디미르 푸틴의 '보이지 않는 전선'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위조 여권과 제2외국어로 거짓 삶을 사는 요원이었다. 미국의 방첩요원들은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바늘 더미 속에서 특정한 바늘 하나를 찾는 것과 같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슬로베니아 정보보안국장 카디브니크가 잡아야 할 스파이만큼만큼 잘 은폐된 스파이는 없을 것이다.


서방이 이 잠입 요원들을 추적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다. 월스트리트저널 취재진은 3개 대륙에서 취재했으며, 이들이 활동했던 국가들인 슬로베니아, 아르헨티나, 노르웨이, 그리스, 폴란드, 우크라이나, 영국, 캐나다, 미국의 전·현직 관리 30명 이상과 대화를 나눴다. 수백 건의 법원 문서와 개인 기록은 위조된 멕시코 여권부터 조작된 그리스 출생증명서까지, 공들여 만들어진 거짓 신상정보를 드러냈다. 스파이들은 혼란에 빠진 친구들과 동료들, 연인들을 남겼고 이들 중 20명 이상이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해 상세히 증언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이 비밀스러운 추적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우연과 결단에 달려 있었다. 한 국가가 스파이를 발견할 때마다 똑같은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했다. 비합법요원들의 정체를 폭로하여 그들의 활동을 끝내야 할까, 아니면 그들의 네트워크와 푸틴이 이 신비로운 전통에 그토록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조용히 관찰해야 할까? 매일 표적이 상황을 눈치채고 도주할 위험이 있었다. 그리스 국가정보국이 위장 생활을 하는 러시아 여성을 조사하러 갔을 때, 그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크로폴리스의 그늘에 있던 그녀의 니트웨어 부티크는 비워져 있었고, 그녀의 오랜 연인은 갑작스런 이별을 당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카디브니크는 자신의 표적이 누구든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키가 크고 삭발을 한 이 정보국장은 조직범죄 보스들을 상대로 하는 작전을 오래 수행해서인지 동료들은 그가 두꺼운 은목걸이를 좋아하고 거친 언어를 쓰는 그들의 스타일을 따라한다고 농담했다. 이번 작전은 인구 210만의 작은 나라에서 상당수가 여전히 러시아에 동조적인 가운데 단 한 건의 누설도 없이 진행되어야 했다.


그가 쫓던 스파이들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5킬로미터도 안 되는 조용한 교외 거리에 사는 부부였다. 이 부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들을 아르헨티나에서 온 4인 가족으로 만들어왔고, 모두가 유창한 스페인어로 대화했다. 심지어 그들의 자녀들조차 부모의 진짜 정체를 알지 못했다.


방패와 검

1968년, 15세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그해 최고의 소련 TV 시리즈였던 '방패와 검'을 시청했다. 4부작 픽션 미니시리즈는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여 SS 장교 '요한 바이스'로 위장하고 독일 제3제국의 가장 깊은 비밀을 조심스럽게 캐내는 공산당 요원의 활약을 그렸다.


소련은 자본주의 서방에 뒤처져 있었지만, 영화와 소설, 심지어 우표에서조차 미국엔 없지만 소련은 갖고 있었던 인간 무기, 잠입 요원을 찬양했다. 소련의 신화에서 이 영웅들은 제임스 본드의 정반대였다. 그들은 마티니로 고양된 허세와 살인 면허가 아닌, 인내심과 지혜, 그리고 조국을 위해 희생하는 수도승과 같은 능력으로 적의 소굴에 스며들어 생존하는 카멜레온이었다.


수십 년 후, 푸틴은 이 TV 스릴러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회상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공부했고 이후 지역 KGB 사무소를 찾아가 자발적으로 비밀요원의 삶에 지원했다.


젊은 푸틴은 1917년 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에 매료되었다. 당시 새로운 볼셰비키 정부는 합법정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적대적인 이웃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해외 대사관에 외교관 신분으로 스파이를 배치할 수 없었다. 대신 볼셰비키 요원들은 새로운 여권을 획득했다. 그들은 적진 뒤에서 잠입 요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제2외국어를 연마했다. 이 스파이들은 독특한 강점(발각되지 않고 활동할 수 있음)과 약점(외교적 면책특권이 없어 간첩 활동으로 체포될 수 있음)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에서 그들의 전설은 루돌프 아벨Rudolf Abel과 같은 비합법요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빛났다. 아벨은 원자력 기밀을 훔치는 것을 도왔는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스파이 브리지'가 그의 활약을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비합법요원들은 종종 지루함과 우울감을 느꼈다. 지시 사이의 긴 공백기와 해외에서 만든 친구들, 연인, 배우자, 자녀에게 이중생활을 숨겨야 하는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일부는 단순히 임무를 포기하고 자신들을 의심하지 않는 서방의 번영을 만끽하면서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갔다.


KGB는 젊은 푸틴에게 비합법요원으로서 유럽 안으로 잠입해 생활할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그는 후에 1980년대 드레스덴에 주재했던 장교로서 여러 비합법요원들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1991년 그의 첫 TV 출연에서, 그는 베를린의 한 비합법요원에 대한 소련 스파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재연했다. 그해 소련이 붕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생 민주 정부가 KGB를 더 작고 약한 기관들로 분할하면서, 서방은 비합법요원 사업이 종료되리라 추정했다


실제로 소련의 붕괴로 잠입 요원들의 네트워크가 해외에 고립되어 있었고, 이들은 여전히 위장 생활을 하면서 사라진 제국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하자 푸틴이 대통령이 되었고, 그는 젊은 시절 우러러보았던 사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감독 하에 전문 학교들은 타깃 국가들의 언어와 역사, 문화적 습관을 새로운 요원들에게 교육했다. 젊은 요원들은 위장과 외로움 방지를 위해 동료 요원들과 결혼하도록 권장받았다. 많은 이들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공부하여 라틴아메리카에 배치되었는데 이곳에서 러시아는 불완전한 출생 기록과 부패한 관리들을 이용해 더 빠르게 새로운 신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은 푸틴의 명령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미국 교외에서는 FBI 요원들이 비밀요원들을 미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학교 행사에서 자녀들을 지켜보거나, 한밤중에 집에 몰래 침입하여 도청기를 설치하고 통신용 플로피 디스크를 복사했다. 2010년, FBI는 전격적으로 10명의 비밀요원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적어도 4명은 자녀가 있었고, 이 자녀들은 이제 부모의 정체성이 밝혀진 충격과 함께 진정한 내 나라가 어디인지에 대한 의문과 씨름해야 했다.


또 다른 스파이인 안나 채프먼은 전 연인들과 혼란에 빠진 전 남편을 남겼고, 이 이야기는 "러시아 미녀 스파이의 뜨거운 스캔들"과 같은 헤드라인으로 보도됐다. 체포된 지 2주 만에 모든 스파이들은 비엔나의 활주로에서 서방과 협력한 혐의로 모스크바가 투옥했던 4명의 러시아인들과 교환되었다. 여기에는 러시아 요원들의 이름을 MI6에 넘겼던 군 정보장교 세르게이 스크리팔도 포함되어 있었다.


푸틴의 가장 소중한 요원들은 가십거리로 전락했고, 후에 6시즌짜리 드라마 '디 아메리칸스The Americans'의 영감이 되었다. 그들이 돌아온 후, 푸틴은 비합법요원들과 함께 라이브 밴드 앞에서 '방패와 검'의 주제가인 '조국은 어디서 시작되는가?'를 열정적으로 합창했다.


러시아와의 관계 '리셋'을 유지하고 싶어 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교외에 살고 있던 러시아 스파이들의 발견의 의미를 냉전 시대의 구시대적 유물로 축소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교환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세대의 비합법요원들이 작전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었고, 그들의 작전은 러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스파이 소설 팬인 푸틴에게 정기적으로 보고되었다.

'부츠' 요원들

파블로 곤잘레스는 눈앞에 숨어있는 스파이였다.


2014년 시위대가 총격을 무릅쓰고 친러시아 정부를 축출하기 위해 키이우의 거리를 메웠을 때, 수염을 기른 이 프리랜서 기자는 군중 속에 있었다. 그는 우렁찬 바리톤 목소리와 위험을 즐기는 성향으로 친서방 활동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초기에 함께 일한 사진기자들은 그가 몇 잔의 맥주를 마신 후에야 기사를 휘갈겨 썼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술집에서 노트북을 덮어두고 크렘린의 군사 전략이나 자신이 정복한 여성들에 대해 열띠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러시아어에 유창한 까닭을 다르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몇몇 친구들에게 대학에서 배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다른 숨겨진 이야기를 했다. 스페인내전 이후 할아버지가 도망간 러시아에서 어린 시절 일부를 보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파벨 룹초프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9살 때 어머니와 함께 러시아를 떠나 스페인 바스크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어머니의 성인 곤잘레스를 사용했다. 스페인 당국은 후에 그가 2010년경 아버지와 계모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 군사정보국 GRU에 의해 포섭되었다고 추정한다.


스페인인 아내와 러시아인 여자친구 사이에서 네 명의 자녀를 둔 곤잘레스는 매력적인 잠재적 첩보 자산이었다. 이중 언어를 구사하고 진정한 이중 문화인인 곤잘레스는 스페인 언론사의 프리랜서 기자 신분을 작전 위장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GRU는 그에게 돈과 비밀조직의 일원이 될 기회를 제공해 서구화되는 우크라이나 군대와 망명한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이라는 두 가지 주요 표적을 감시하도록 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1년 안에, 그는 매력과 술자리를 통해 새로운 우크라이나의 국회의원들, 언론 비서관들, 세관 공무원들의 모임에 들어갔다. 그는 "우크라이나 출장"과 같은 무해해 보이는 제목으로 노트북에 문서 파일을 만들어 자신의 성과를 기록했다. 그의 관리자들은 더 조심하라며 증거가 될 만한 문서들을 삭제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망명 중인 러시아인들과의 만남에 가져간 저렴한 와인값까지 포함해 사소한 경비까지 모두 청구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국방부 관리들은 이 대담하고 수다스러운 종군기자를 좋아하게 되어 그를 정기적으로 행사에 초대했다. 그는 2016년 폴란드 국경 근처 기지에도 방문했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나토식 군사 훈련을 목격하고 미국과 캐나다 교관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듬해, 곤잘레스는 자발적으로 푸틴이 가장 두려워하는 야당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나발니는 정체불명의 공격자들이 녹색 염료로 공격한 후 눈 치료를 위해 바르셀로나를 방문했던 차였다. 곤잘레스는 병원에 잠입해 나발니에게 통역과 바르셀로나 안내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한 뒤 그와 셀카를 찍었다. 그는 후에 GRU 담당자들에게 병원 주소와 상세한 설명, 심지어 나발니 지지자들이 모이는 카페의 와이파이 비밀번호까지 보냈다. 몇 달 후, 그는 저명한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하는 나발니의 술자리에 합류했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의 테이블에 GRU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곤잘레스는 GRU의 제5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푸틴이 해외 잠입 요원 배치를 위해 확장한 서로 경쟁하는 두 개의 부서 중 하나다. GRU는 '부츠Boots'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요원들에게 신속한 결과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도록 독려했다. 부츠 요원으로서 유창한 스페인어 구사자인 그는 특이한 자산이었다. 보통 GRU는 비합법요원들을 너무 빨리 훈련시키고 파견해서 그들의 억양에서 슬라브어 특유의 억양이 드러났다. 그들은 때때로 허술한 과거 이야기로 자신을 포장하려 했지만 약간의 검증에도 쉽게 무너졌다.


부츠의 경쟁자들은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의 '슬리퍼Slippers'들이었는데 이들은 발각되지 않고 활동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SVR 요원들은 자신들이 가장하는 고국의 세세한 부분들 - 시민들이 식사 도구를 쥐는 방식, 술집에서 서 있는 자세, 담배 피우는 방식 등 - 에 익숙해지는 데 수년을 보내서 가장 뛰어난 이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 들어간 타깃 국가의 네이티브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들은 인내심이 있었다. 파블로 곤잘레스가 우크라이나를 돌아다니기 시작할 무렵, 거북이같이 더딘 그들 중 두 명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 있었다.

'슬리퍼'

2013년 6월 14일, 마리아 로사 마예르 무노스라고 자칭하는 작은 키에 내성적인 갈색 머리 여성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병원에 들어섰다. 출산이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비밀요원으로서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에 직면했다. 자신의 진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산부인과 의사 마리오 페레스는 이미 기록에 이 여성이 아르헨티나 수도 최고의 사립 병원 중 하나인 이곳의 직원들과 눈에 띄게 교류가 적었다고 적어두었다. 그는 임신 중기가 지나서야 첫 진료 예약을 했다. 그리고 "분만 직전의 상태로" 지하의 분만실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뛰어다녀야 했죠!"


의사는 '마리아'가 자신의 삶을 완벽한 거짓말로 변모시키는 수년간의 여정을 걸어온 안나 둘체바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소련 시절 고르키Gorky에서 태어난 그녀는 2004년 남편 아르템과 결혼한 후 그와 함께 SVR에 입대했다고 나중에 SVR 기관 소식지에 밝혔다. , 그녀는 3년간의 몰입형 훈련을 통해 자신을 완전히 사람으로 변모시켰는데, 월스트리트저널이 확인한 위조 신분 문서들도 그녀의 변화를 뒷받침했다. 먼저 2010년에 사망한 어느 아이의 그리스 출생증명서를 확보했고, 아테네 교외의 한 관료가 이를 위조하여 아이의 어머니가 멕시코인이라고 기재했다. 그런 다음 이를 이용해 멕시코 여권을 획득했다. 마침내 2012년 그녀는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루드비히 기시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던 남편 아르템과 합류했다. 그는 나미비아에서 아르헨티나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위조 서류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부에노아이레스의 중산층 동네 벨그라노에 있는 146세대 규모의 아파트에 살았지만 거의 주목받지 않았고 입주민회의에도 좀처럼 참석하지 않았다. 아파트 수위는 그들이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하는 것을 보았고, 아르템은 보통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2014년이 되자 그들은 모두 아르헨티나 시민권을 확보했고 안나는 임신한 상태였다

분만실에서 의료진은 그녀가 매우 차분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유창한 스페인어로 남편에게 몇 마디 조용히 속삭이는 것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여성은 통증에 대한 인내력이 매우 높았습니다." 페레스가 말했다. 부부는 새로 태어난 딸 소피를 안고 속삭였다. 그들을 방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나와 아르템은 여전히 위장 신분을 구축하고 있었다. 2015년 9월 14일, 그들은 가명인 마리아와 루드비히로 결혼식을 올렸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건물에서 열린 결혼식에는 콜롬비아 출신의 증인 두 명만이 참석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월스트리트저널과 대화를 나눴다. 같은 해에 아들 다니엘이 태어났고 누나처럼 출생과 동시에 진정한 아르헨티나 시민이 되었다. 가족은 생일을 다른 아이들을 초대하지 않고 가족끼리만 축하했으며 아이들은 학교 친구들의 파티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가 참석했던 작은 학부모 모임에서 아무도 안나의 억양이나 삶의 이야기에서 조용한 고독감 외에 특이한 점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르템의 스페인어에는 미세하게 이국적인 느낌이 배어 있었는데 그는 이를 아프리카에서 보낸 어린 시절 탓으로 돌렸다. TV 시청이 금지된 그들의 자녀들은 건강식을 먹고 수영 강습을 받았다.


2017년, 두 '슬리퍼' 요원은 담당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10년 넘게 위장 신분을 구축한 후, 이제 새로운 비자를 확보하고 다음 단계 임무를 위해 유럽의 중심부인 슬로베니아로 파견될 때가 된 것이다.


먼저, 위장이 발각되지 않도록 해결해야 할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둘의 결혼 기록이 보관된 아르헨티나 민사등기소에서 안나는 어머니의 국적을 오스트리아로 기재했는데, 이는 오스트리아의 이웃 국가인 슬로베니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거짓말이었다. 안나는 격식을 갖춘 완벽한 스페인어로 아르헨티나 등기소에 어머니의 출신을 오스트리아에서 멕시코로 정정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슬로베니아가 멕시코의 출생기록을 확인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슬로베니아 내무부에서 그들의 이민 서류를 처리하던 담당자가 이러한 변경사항을 발견했다. 경보를 울릴 만큼 의심스럽지는 않았지만 특이사항으로 기록할 만큼은 특이했다. 아르헨티나 가족의 비자는 승인되었고 곧 이 '슬리퍼' 요원들은 대서양을 건너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은행 계좌에는 단 21달러만을 남겨두었고 누군가 확인하더라도 충분히 믿을 만한 흔적을 남겼다.


'부츠' 요원인 파블로 곤잘레스는 이미 유럽에 있었고 우크라이나 전선을 따라 다니며 종군기자에서 반체제 인사들로 확대된 자신의 술친구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스파이 추적자

랭글리의 CIA 본부 안에서도 패스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러시아하우스의 요원들은 파블로 곤잘레스의 이중생활을 기록한 보고서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있었다.


공식 명칭이 '유럽·유라시아 미션 센터'인 이 유서 깊은 부서는 CIA가 테러와의 전쟁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에도 같은 공간에서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2017년이 되자 수십 명의 러시아 분석가들과 요원들, 그리고 '표적 추적자들'이 통신, 공식 문서, 사업 기록을 뒤지며 곤잘레스를 비롯, 점차 확장 중인 러시아 스파이 네트워크의 윤곽을 추적하고 있었다.


2014년부터 스페인의 국가정보원Centro Nacional de Inteligencia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곤잘레스를 추적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MI6와 폴란드의 정보기관도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폴란드에서 그는 새로운 좌파 정당의 구성원들을 인터뷰하고 있었고 현지 프리랜서 기자와 사귀기 시작했다.


스파이 추적자들에게 이 부츠 요원은 횡재였다. 그가 (때로는 자발적으로) 임무에 뛰어들면 들수록, 스페인과 미국은 그의 담당자들과 접촉 인물들, 협력자들, 지휘 계통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서방 당국자들은 이 이중언어 구사 스파이의 타고난 재능과 위험한 일에 대한 열정을 감탄하면서 보았지만, 그의 스파이 기술 실수로 인해 그의 네트워크를 추적할 수 있었다. 한 정보기관은 클라우드 서비스에 업로드된 그의 문서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술고래 종군기자는 그를 감시하는 요원들에게 스파이 활동의 오랜 딜레마를 제기했다. 스파이를 발견했을 때, 그들의 임무를 중단시키기 위해 개입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 많은 비밀을 수집하기 위해 조용히 쫓아가야 하는가? 러시아하우스의 CIA 분석가들과 그들의 스페인 동료들은 계속 지켜보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최근 크렘린 인근에서 살해된 푸틴 비판자 보리스 넴초프의 딸 잔나 넴초바와 로맨틱한 관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망명 생활 중이던 그녀는 그에게 아버지의 옛 노트북을 빌려주었고 그는 그 기기의 이메일 보관함을 512GB USB 드라이브에 몰래 복사했다.


잔나 넴초바의 2015년 모습. /사진=로이터/뉴스1

잔나 넴초바의 2015년 모습. /사진=로이터/뉴스1


그러다가 2018년 3월 4일, 영국의 조용한 도시 솔즈베리를 방문한 두 명의 러시아 GRU 요원이 영국에 러시아 스파이들의 이름을 넘겼던, 현재는 영국에 망명한 전직 군 정보요원 스크리팔의 집 현관문에 신경작용제 노비촉(독가스 물질)을 발랐다. 스크리팔은 살아남았지만 그들이 이 화학 물질을 쓰레기통에 부주의하게 버린 것으로 인해 결국 세 자녀의 어머니인 현지 주민이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은 GRU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은 동맹국들에게 유럽과 북미의 150명이 넘는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하도록 압박했는데, 이들은 주로 대사관에서 일하는 정보요원들이었다. 앞으로 러시아는 잠입 스파이들에 더욱 의존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과거 정보기관들은 푸틴의 비합법요원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간과하곤 했었다. 이제 그들은 정보 공유를 늘렸고, 대사관의 연락관들과 정기적으로 대면 회의를 잡았으며, 나토가 전시 통신용으로 만든 '전장 정보 수집 및 활용 시스템'을 포함한 보안 채널을 통해 상황을 점검했다.


러시아하우스에 새로운 인원이 배치되어 비합법요원들의 자금, 인력, 물류 흐름을 추적하는 세밀한 수사 작업을 맡았다. 분석가들은 GRU가 냉전 시대에 쓰던 방식인 사망한 아기의 출생증명서를 악용해 여권을 획득하는 방식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곧 CIA는 부츠 요원들을 식별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인 세르게이 블라디미로비치 체르카소프는 브라질 대학원생 빅터 페레이라로 위장했다가 이력서의 실수로 발각되었다. CIA는 그가 GRU 요원이 운영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여행사에서 일했음을 발견했다. 2018년까지 그는 매일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워싱턴DC를 돌아다니며 존스홉킨스 고등국제학대학원(SAIS)에서 미국 외교정책과 국제경제학을 공부했다. 학생들은 그의 이상한 억양에 의아해했지만, 그는 자신의 제자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출신의 GRU 요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교수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들이 발견한 또 다른 부츠 요원은 미하일 미쿠신이었는데, 그는 캐나다 캘거리대학교 군사·안보·전략연구센터의 학생 호세 아시스 지아마리아로 위장했다. 그 또한 학우들에게 자신이 진짜 브라질 사람임을 납득시키려고 애를 썼다. 비자 갱신을 위해 고향에 다녀왔다고 주장한 후, 지아마리아는 반 친구들 모두에게 리우데자네이루 기념품 병따개 열쇠고리를 나눠주었다.


당시 서방의 추적자들이 몰랐고, 이후에도 수년간 알지 못했던 것은 (최소) 두 명의 스파이가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슬로베니아의 조용한 수도 류블랴나 교외의 2층집에 자리잡은 둘체프 부부는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들은 자녀들과 오직 스페인어로만 대화했고, 슬로베니아어로는 한 문장도 시도하지 않았다. 슬라브어 계통인 슬로베니아어는 러시아어와 너무 가까워서 그들의 모국어 억양이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들은 이 가족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다. 그들은 방문객을 일절 받지 않았고, 흰색 기아 시드1Ceed 세단부터 남편이 매일 시내로 타고 가는 자전거까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최대한 주목받지 않도록 의도된 듯했다.


부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범죄 때문에 이주했다는 것 외에는 과거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웃들은 둘체프 부부의 아이들이 정원에서 스페인어로 재잘거리며 노는 소리를 들었지만, 부모들은 거의 밖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사진에 찍히지 않았는데 드문 예외가 있었다. 2019년 11월 말의 어느 수요일, 그녀는 딸의 유치원 교실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장식 파티에 참여했고 "진정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는 캡션 아래에서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직업으로 주로 현대 미술을 사고파는 온라인 회사인 아트 갤러리 5'14를 설립했다. 슬로베니아의 작은 예술가 커뮤니티에서 EU 가스·에너지 규제기관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사무실을 둔 이 수수한 두 아이의 어머니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갤러리는 전 세계 예술가 90명과 작업한다고 주장했고 SNS 계정에 거의 매일 여러 장의 사진를 올렸다. 놀랍게도 그녀의 얼굴이 나온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함정

파블로 곤잘레스는 태양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스페인 언론계의 동료들은 그가 가진 최고급 카메라들과 비싼 드론들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미국의소리Voice of America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시에 유튜브에서는 러시아에 동조적인 견해를 방송했다. 심지어 러시아하우스의 분석가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속도로 러시아 스파이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오픈소스 조사 기관 벨링캣Bellingcat이 주최한 교육에도 참석했다. 그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던 저명한 푸틴 비판자인 넴초바는 작은 스페인 신문사의 기자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에 수주일간 값비싼 여행을 다니는 곤잘레스에 대한 의심을 다른 망명자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2021년 11월의 어느 날 밤, 폴란드 동부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는 소수의 외국 특파원 동료들에게 대담한 예측을 했다. 푸틴이 곧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고.


그의 위장은 3개월 후에 벗겨졌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을 따라 방어 진지를 장시간 촬영하다가 임박한 침공에 긴장하고 있던 군인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즉시 그를 키이우 본부로 소환했고, 그곳에서 수 시간 동안 그의 재정 상태와 경력, 정확한 출생지에 대해 심문했다.


"당신과 같은 곳이죠." 곤잘레스가 쏘아붙였다. "소련이요."


그날 밤 곤잘레스는 호전적인 분위기였다. 다른 종군기자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술을 마시며 자신의 휴대폰을 조사하고 출국을 권고한 우크라이나 장교들을 비웃었다. 그는 스페인 대사관에 전화를 걸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대사관은 그 조언을 따르라고 권했다. 그는 이스탄불로 가서 자신의 GRU 담당자들을 만났고, 스페인에서 아내와 잠시 머문 뒤 바르샤바로 돌아와 폴란드 여자친구와 재회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스페인 신분증이 곧 만료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떠났다고 말했다. 이 모든 시간 동안 그는 영국 정보기관의 추적을 받고 있었다.


푸틴의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영국은 폴란드의 고위 안보 관계자에게 정보를 보냈다. 파블로 곤잘레스가 폴란드에 돌아왔다는 걸 아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국가간 무기 이전이 폴란드의 작은 공항에서 진행 중이었고, 우크라이나행 장비를 실은 거대한 군용 화물기들이 매시간 착륙하고 있었다. 그들은 곤잘레스가 이 공항을 방문하여 새 노트북에 공항의 배치도와 물류에 대한 상세한 메모를 작성했음을 알아챘다.


폴란드 요원들은 2022년 2월 27일 늦은 밤 곤잘레스와 그의 폴란드인 여자친구가 국경 근처의 임시 학생 기숙사로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둘은 곤잘레스와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자정 직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요원들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들은 둘 다 몸수색을 한 뒤 곤잘레스를 따로 불러냈다. 그는 연행되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스페인은 계속 관찰하려고 했던 스파이가 갑자기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폴란드가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을 다룬 한 관계자에 따르면 심문을 받을 때 곤잘레스는 자신이 러시아에 매우 가치 있는 존재라며 러시아의 가장 저명한 반체제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와 자신을 교환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그의 변호사와 지지자들이 그가 언론 활동 외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곤잘레스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스파이라는 것을 절대 인정한 바 없다. 그는 취재 요청 이메일에 응답하지 않았다.


크렘린과 러시아의 대외정보국(SVR), 군사정보국(GRU) 모두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유럽 다른 곳에서 CIA는 네덜란드 국가안보국과 국방정보국 요원들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존스홉킨스대학교를 졸업한 브라질인 빅터 페레이라—GRU의 위장요원 체르카소프—가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인턴십을 위해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


CIA의 러시아하우스는 네덜란드가 계속 그를 감시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네덜란드 당국자들은 지켜만 보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러시아 스파이가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러시아 전쟁범죄 사건을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의 건물과 이메일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판단했다.


키가 크고 잘 다듬어진 금발머리를 가진 체르카소프는 4월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들어왔다가 네덜란드 당국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국자들은 그를 옆으로 데려가 그의 기기들을 조사했다. 곤잘레스처럼 그도 부주의했다. 노트북에 숨겨진 그의 위장 신분 설명서는 큰 글씨로 된 4페이지에 불과했는데, 대부분이 그의 특이한 억양과 대부분의 브라질인들과 달리 생선을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었다.


네덜란드는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정부가 러시아 스파이 활동에 대항하는 협력 파트너가 되기를 바라며 그를 브라질로 추방했다. 브라질은 여권 사기 혐의로 그를 구금할 예정이었다. 그는 네덜란드인들이 장난으로 붙인 메모가 가방에 테이프로 붙어 있는 채로 도착했다. 상파울루 국제공항 코드를 이용한 말장난이었다. '행선지: GRU2'


그 다음은 호세 아시스 지아마리아—GRU 요원 미하일 미쿠신—였다. 캘거리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제 노르웨이의 북극권 도시 트롬쇠에서 안보학 연구원이 되어 있었는데, 경찰이 그가 출근하는 길에 체포했다. 이렇게 서방은 연이어 세 명의 비합법요원을 검거했다.


하지만 추적하기가 훨씬 더 어려운 또 다른 한 쌍을 가리키는 증거의 흔적이 있었다. 추적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슬로베니아 정보국의 국장 요스코 카디브니크가 런던으로 초청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가족

MI6로부터 받은 모호한 정보를 가지고, 카디브니크는 천천히 수사팀을 구성했다. 올빼미 형상의 금속 모자이크로 장식된 그의 사무실에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부하들만 불러들였다.


대부분의 요원들은 임무의 전체 범위에 대해 알지 못했고 수개월간의 더딘 수사 작업 동안 자주 교체되었다. 진실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 대해, 카디브니크는 충성도를 확인했다. 선별된 요원들에게는 올빼미가 새겨진 금화가 주어졌는데 이는 소수정예의 상징이었다. 만약 그가 그들이 금화를 소지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 그들은 동료들에게 술을 사야 했다.


수많은 외국 출신 거주자들 중에서 요원들이 어떻게 수도 외곽의 조용한 교외 거리인 프리모지체바가 35번지에 사는 아르헨티나 가족에 주목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마리아 로사 마예르 무노스는 런던과 에든버러의 아트페어에 다녀왔고, 자금 세탁과 사기가 상류 사회와 뒤섞인 미술 업계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진짜 미술가였을까? 이탈리아 주재 전 대사로 미술에 조예가 깊은 슬로베니아 국가안보보좌관 보이코 볼크는 그녀의 그림들을 살펴봤고, 그것들이 모두 미술에 문외한인 관광객들에게 싸게 파는 뉴에이지풍 미술처럼 형편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수사관들은 가족의 은행 계좌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자녀들의 영국 교과과정 사립학교 등록금이 그들의 재정 능력 범위 안에 있는지 의문을 품었다. 남편 루드비히 기시는 도메인 이름과 클라우드 호스팅을 판매하는 온라인 IT 사업을 시작했지만 X(트위터)에서 팔로워는 아내의 사업체 계정을 포함해 4명뿐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는 2021년 세금 신고에서 자신의 수입을 4만 유로(6000만 원), 아내의 수입을 2만3000유로(3500만 원)로 신고했다.


부부 모두 주차위반 딱지 한 장 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작전 보안은 한 가지 실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해 보였다. 이민 기록 깊숙한 곳에서, 카디브니크는 내무부가 왜 그녀가 어머니의 국적을 오스트리아에서 멕시코로 변경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던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이상한 정정사항은 이 아르헨티나 가족의 신분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더해주었다.


슬로베니아 정보보안국은 이 갤러리스트를 감시하기 시작했는데, 때로는 근접 감시를 하고 때로는 그녀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물러나기도 했다. 수사관들은 그들의 우편물을 열어보고, 전화기를 해킹하고, 류블랴나의 자갈길과 강변 카페를 지나는 그들의 흰색 기아 시드를 은밀히 미행했다. 정보국은 인터폴과 CIA와 정보를 대조했고, 마침내 안나와 아르템 둘체프라는 그들의 진짜 이름을 밝혀냈다.

서서히 부부의 임무도 드러났다.


그들은 슬로베니아에 있는 유럽연합 에너지규제기관의 국장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이 기관은 유럽 대륙이 러시아 가스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우크라이나가 정전을 피하도록 돕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미술 전시회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솅겐 지역과 런던으로의 여행에서 안나는 정보원들을 만났다. 돌아와서는 냉전 시대의 해킹 불가능한 기술로 수기 메시지를 전달했다. 해안가 근처 숲 속의 정해진 바위 아래에 메시지를 놓는 것이었다.


정보보안국은 그녀가 하는 일의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2022년 12월 5일, 이들을 체포할 준비를 마쳤다.


체포는 부부의 친구나 이웃, 또는 어떤 러시아 동조자에게도 소식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진행되어야 했다. 현지 CIA 지부장이 체포를 기획하는 소수의 슬로베니아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심지어 미국 대사에게도 필요한 것 이상의 정보는 전달되지 않았다.


차가운 안개가 류블랴나에 내려앉고 크리스마스 시장들이 막 문을 열기 시작할 때, 아무런 표식 없는 차량들이 줄지어 프리모지체바 35번지로 향했다. 둘체프 부부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카디브니크 국장은 자신의 요원들이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는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부부를 체포하기 전에 한 가지 배려를 베풀었다. 딸 소피와 아들 다니엘이 부모가 연행되는 모습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9시3분, 그가 명령을 내리자 특수부대가 창문을 통해 진입했고, 노트북 쪽으로 몸을 숙이고 있던 아르템은 놀라 나자빠졌다. 그는 화면의 탭들을 닫거나 아직 실행 중이던 러시아 SVR과의 보안통신을 차단할 시간이 없었다. 요원들이 위층으로 쿵쾅거리며 올라가 "엎드려!"라고 소리치고 안나를 바닥으로 밀어붙이는 동안 집안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부상을 호소하며 울기 시작했다가 다시 일어나 조용히 서 있었다. 체포는 단 몇 분 만에 끝났다. 부부는 수갑을 찬 채 주방 테이블 위에 먹지 않은 아침 식사를 남긴 채 떠났다.


이웃들은 늦은 밤까지 블라인드 사이로 형사들이 집과 마당을 수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형사들은 냉장고의 비밀 칸막이에서 발견된 돈뭉치들, 안나의 위조된 그리스 출생증명서를 포함한 서류들, 경찰이 한번도 보지 못한 기술이 장착된 수십 개의 USB 장치들, 그리고 분석을 위해 워싱턴으로 보내질 아르템의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카디브니크는 CIA에 작전이 완료되었다고 전달했다. 9개월간의 긴장된 수사 끝에 슬로베니아는 자국 역사상 처음으로 잠복 스파이들을 체포했다.

교환

3개월 후인 2023년 3월, 카디브니크는 중립 지역인 세르비아의 한 정부 건물에 살그머니 들어가 크렘린의 최고 포로 교환 협상가를 만났다. 권력의 불균형이 뚜렷했다.


세르게이 베세다 상장은 맞춤 양복과 아바나에서 KGB 요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가 피우는 습관 때문에 러시아하우스의 요원들 사이에서 '남작'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축출되기 전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에게 시위대를 진압하도록 부추긴 혐의로 우크라이나에서 수배 중이었다.


이제 그는 카디브니크 맞은편에 앉아 1990년대 공산주의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작은 국가 슬로베니아에 질문을 던졌다. 왜 미국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그는 러시아 대통령의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푸틴은 자신의 스파이들을 돌려받기를 원했다.


CIA 국장 빌 번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디브니크는 두 명의 정예 러시아 요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긴장하고 있었다. 푸틴의 오랜 동맹이자 매파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가 전화를 걸어 러시아 감옥에 있는 슬로베니아인들과 교환을 제안했다. 그러나 슬로베니아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에는 수감된 슬로베니아인이 없다고 주장하자 파트루셰프는 잠시 멈췄다가 위협적으로 물었다. "확실합니까?"


슬로베니아는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 2023년 내내 그리고 2024년까지 러시아와 미국은 어떤 포로들을 교환할지 흥정했다. 폴란드는 곤잘레스의 재판을 미뤘는데, 공개재판이 시작되면 그를 교환에 써먹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둘체프의 자녀들은 여전히 부모가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카디브니크가 임명한 여성 요원의 감독 하에 위탁 가정에서 생활했다. 안나와 아르템은 매일 자녀들과 통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녀들이 면회 왔을 때 교도관들에게 여전히 자신들을 마리아와 루드비히로 불러달라고 간청했다. 스파이 부부를 지켜보면서 정보국 국장은 아내가 더 고위 장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2024년 7월이 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당의 대선 후보직에서 물러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달, 카디브니크는 슬로베니아 총리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거래가 성사되어 가고 있었다. FSB와 CIA가 리야드에서 열린 비밀 회동에서 합의서에 서명했다. 교환은 8월 1일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러시아에서 풀려난 미국인들이 2024년 8월 2일 미국 텍사스의 공항에서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모습. 에반 거시코비치 WSJ 기자, 폴 웰런 등이다. /사진=로이터/뉴스1

러시아에서 풀려난 미국인들이 2024년 8월 2일 미국 텍사스의 공항에서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모습. 에반 거시코비치 WSJ 기자, 폴 웰런 등이다. /사진=로이터/뉴스1


러시아는 반체제 인사들과 독일인 수감자들, 그리고 세 명의 미국인을 석방할 예정이었다. 전직 해병대원 폴 웰런과 기자 알수 쿠르마셰바, 그리고 월스트리트저널의 에반 거시코비치로, 이들은 자신들과 미국 정부가 부인하는 국가안보 관련 혐의로 총 40년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러시아인 8명을 석방하기로 했는데, 여기에는 탄약 밀수 혐의로 구금된 1명, 유죄 판결을 받은 사이버 범죄자 2명, 베를린 공원에서 푸틴의 적을 살해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살인청부업자 포함되어 있었다. 나머지는 부츠와 슬리퍼 요원들이었다.


7월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바이든의 국가안보보좌관은 슬로베니아인들에게 미국이 슬로베니아에 어떻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지 물었다. 슬로베니아는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를 원했다. 미국이 도울 수 있을까? 몇 주 후 바이든은 웨스팅하우스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하기 위해 슬로베니아인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류블랴나에서 둘체프 부부를 태우러 온 비행기는 미국 정부의 제트기였다. 카디브니크와 CIA 요원은 둘체프 가족을 터키의 교환 지점까지 호송할 예정이었고, 스파이들을 넘긴 후에는 귀국길에 축하주로 버번 위스키 한 병을 따기로 했다.


11살의 소피는 여행 내내 태블릿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바라보았다.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 중 어느 시점에 그녀는 자녀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했다. 자신의 이름이 안나 둘체바이고 러시아 국민이며, 거의 반평생을 잠복 스파이로 조용히 조국에 복무해 왔었다는 사실을.


1889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지. USA투데이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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