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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극우 대통령 후보 칼린 제오르제스쿠의 지지자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2025.02.07 15:52
서리 얹은 소나무가 얼어붙은 호수를 에워싸고 있다. 눈이 내리고, 배경에는 은은한 음악이 흐른다. 호숫가에 인상 좋은 백발의 남성이 서 있다. 그가 옷을 벗기 시작한다.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고, 과학, 기술, 현대성에 맞서는 신념을 입증하기 위해 이 얼음물에서 수영을 하겠다고 그는 말한다. "난 페이스북도, 인터넷도, 어느 누구도 필요 없다. 단지 내 마음만 있으면 된다." 남성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호수를 가로지르며 말한다. "나는 내 면역 체계를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을 창조한 신을 완벽히 신뢰하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면역력은 내가 나라는 존재의 주인임을 의미한다."
이 사람은 칼린 제오르제스쿠Călin Georgescu이다. 그는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 조사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선거운동을 거의 전적으로 틱톡에만 의지했음에도, 11월 24일 대선 1차 투표에서 승리하면서 루마니아인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틱톡은 외견상 정치적 메시지를 제한하거나 규제하는 규칙을 가지고 있지만, 제오르제스쿠에게는 별다른 제약이 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그는 알고리즘의 특성을 활용해 많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사용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했다. 때로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음악을 배경으로 "영혼으로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팝업 자막, 강렬한 조명, 형광색, 전자음악을 사용하면서 "민족적 부흥"을 외치고 루마니아를 해치려는 비밀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세력을 비난했다. 그는 "우리의 일자리를 파괴하라는 명령이 외부에서 온다"라고 한 영상에서 말한다. 다른 영상에서는 꼭두각시 인형의 실을 조종하는 손 이미지를 배경으로 "무의식적 메시지"와 "사고의 통제"를 언급한다. 선거를 앞두고 수개월 동안 이 영상들은 백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편, 온화해 보이는 이 뉴에이지 신비주의자는 이온 안토네스쿠를 칭송해 왔다. 안토네스쿠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히틀러와 공모하였고 루마니아의 유태인학살에 가담한 전쟁 범죄로 처형된 전시 독재자였다. 제오르제스쿠는 안토네스쿠뿐 아니라 2차대전 전 반유대주의를 내세운 폭력적 운동인 철위대(鐵衛隊: Iron Guard)의 지도자도 국가의 영웅이라 불렀다. 그는 소셜미디어 X에 "루마니아는 러시아의 일부가 될 것이다"라고 올렸던(후에 삭제함) 러시아 파시스트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을 두 차례 만났다. 동시에 제오르제스쿠는 물의 영성을 찬미한다. 그는 "우리는 물에 대해 잘 모른다" "H2O라는 화학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 "물은 기억을 한다. 우리는 오염을 통해 물의 영혼을 파괴한다" 그리고 "물은 살아 있으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단지 우리가 듣는 법을 모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탄산음료에 "휴대용 컴퓨터처럼 우리 속으로 들어가 우리를 통제하는" 나노칩이 함유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의 아내 크리스텔라는 림프성 산증, 칼슘 대사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며 '힐링'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한다.
제오르제스쿠 부부는 "평화"를 촉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모호하다. 이는 루마니아가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국경을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방어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쟁은 전쟁으로 승리할 수 없다." 크리스텔라 제오르제스쿠는 투표 시작 수주 전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 "전쟁은 육체를 파괴시킬 뿐 아니라 마음을 파괴한다." 그녀도 그녀의 남편도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승리가 초래할 안보 위협, 경제적 비용, 난민 위기와 정치적 불안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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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 제오르제스쿠가 선거운동에 돈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루마니아 정부가 밝혔듯 누군가 틱톡 사용자들에게 제오르제스쿠를 홍보하는 대가로 수십만 달러를 불법적으로 지불했으며, 신분 미상의 외부세력이 국가 기관을 사칭한 계정을 포함해 그를 지지하는 수만 개의 가짜 계정 활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러시아인으로 의심되는 해커들이 루마니아 선거 기반시설에 대해 사이버공격을 8만5000건 이상 감행하기도 했다. 루마니아 정부는 러시아의 "공격적인" 행위와 루마니아 선거법 위반 사실을 밝혀냈고, 이에 따라 12월 6일 루마니아 헌법재판소는 선거를 취소하고 1차 투표 결과에 대해 무효를 선언했다.
철위대에 대한 향수, 러시아의 허위 정보 활동, 그리고 귀네스 팰트로Gwyneth Paltrow 식의 '웰니스' 운운 '아무말 대잔치1', 이 기묘한 조합에 기반한 제오르제스쿠 부부는 대체 어떤 인물들일까? 그들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일견 "극우"로 분류하기 쉽지만, 이러한 구시대적 용어로는 그들이 대표하는 세력을 충분히 포착해 내기 어렵다. 우(右)니 좌(左)니 하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에서 유래했다. 현상 유지를 원했던 귀족 세력은 의회의 오른편에 앉았고 민주적 변화를 원했던 혁명가들은 왼쪽에 앉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의는 십 년 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일부 우파가 기존 민주제도에 대해 신중하고 보수적인 태도 대신 파괴적 태도를 보이면서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형태의 극우는 과거 극좌와 닮아가기 시작했고, 때로 두 세력은 융합하기도 했다.
2017년 나는 새로운 정치 용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정의하려 했지만, 적합한 용어를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 대중적인 정치 운동의 윤곽이 더 뚜렷해졌다. 이 움직임은 우리가 아는 우파나 좌파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법에 기반한 민주 국가의 가능성을 믿었고, 그들의 신념으로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근간을 제공했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어둠, 혼미, 비합리성을 반계몽주의obscurantism라고 규정하며 그들에 맞섰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새로운 반계몽주의'라 부를 수 있는 세력은 정확히 과거와 같은 요소들, 즉 마법같은 해결책, 영적인 기운, 미신, 공포심을 조장하며 나타났다. 예컨대 정치적 야망을 키워온 사이비 건강 전도사들과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큐어넌QAnon 운동과 피자게이트2Pizzagate 부류의 파생 음모론, 그리고 친러시아, 반反 백신, 그리고 때로는 신비주의적 민족주의 신봉자 등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정당의 지지자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기이하게도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교차점들이 보인다. 독일 좌파 정치인 자라 바겐크네히트와 우파 독일대안당(AfD) 모두 백신 및 기후 변화 회의론을 펼치고, 혈통과 토지에 기반한 민족주의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철회를 주장한다. 중유럽 전역에서 룬rune 문자와 민속 주술에 대한 관심이 우파의 외국인 혐오 및 좌파의 이교주의異敎主義와 연계되어 있다. 영적 지도자들이 정치에 개입하고 있고, 정치 행위자들이 신비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전 폭스뉴스 진행자이며 러시아 침공을 지지하는 터커 칼슨은 자신이 악마에게 공격을 받아 몸에 "발톱 자국"이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반계몽주의'는 이제 미국 정치 최고위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국내와 해외를 불문하고 도널드 트럼프의 초기 내각 지명자 일부가 대변하는 이념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으며, 이 의문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로서 재선에서 승리했지만, 국가정보국장으로 털시 개버드를 제안한 것은 기존 "공화당의 철학"과 전혀 무관하다. 개버드는 한때 진보성향의 민주당원이었으며, 힌두교에서 유래한 하레 크리슈나 운동과 관련된 정체성과학재단(SIF)과 평생 인연을 맺어왔다. 칼슨과 마찬가지로 개버드도 폭압적인 러시아 독재자 블라다미르 푸틴과 최근 축출된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를 지지하면서, 그들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거듭 옹호했다. 트럼프가 연방수사국(FBI) 국장 후보로 지명한 캐시 파텔도 '보수'와는 무관한 인물이다. 그는 트럼프 1기 내각 인사들을 포함하여 많은 전현직 정부관료들을 조사할 뜻을 밝혔다. 파텔은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이른바 '해독제'를 판매하는 업체인 워리어에센셜을 홍보하며, 새로운 반계몽주의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해왔다. 더구나 에드먼드 버크나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의 철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와 같은 또 다른 푸틴 지지자이며 전 민주당원 (실제로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민주당 가문 출신이다)이며, 백신뿐만 아니라 불소까지 반대하는 인물을 미국 보건 정책 책임자로 결코 임명하지 않을 것이다. 또, 전통적인 가정의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라면 매춘부를 보내 누이의 남편을 함정에 빠뜨려 유죄 판결을 받은 범법자, 특히 대통령의 사위의 아버지인 그 범법자를, 프랑스 대사로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부 장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사진=로이터/뉴스1](https://menu.mt.co.kr/pado/article/20250207/2025020710468883984/image_3638_20250207112157_202502071121.jpg)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부 장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사진=로이터/뉴스1
이 무리를 비롯하여, 국제적으로 유사한 목소리를 내는 동조자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보수주의라기보다는 점진적으로 형성된 여러 흐름이 융합된 결과다. 지금 비타민 보충제와 입증되지 않은 코로나19 치료제 장사꾼들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게도, 푸틴의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들, 특히 푸틴이 "백인 기독교 국가"를 이끌고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과 어울리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순수 백인 국가가 아니라 다문화 다인종 국가이고, 무신론자가 대다수이며, 러시아쪽 정보기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거짓 정보를 확산시키고, 백신 회의론을 부추기고 있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가족과 측근들의 부를 축적시키면서, 나라를 유럽 최빈국으로 전락시킨 소小 독재자인데, 그의 지지자들은 법을 어기고, 감옥에 수감되고, 운영하던 자선 재단으로부터 횡령을 하거나 여성을 성추행한 미국인들과 한 편에 선다. 당연한 귀결이다. 음모론과 비상식적인 치료법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세계에서는 증거에 기반한 죄책 및 범죄 개념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정치 운동의 추종자들 중에는 일부 미국 최빈층이 있다. 또 그 후원자들 중에는 최상위 부유층도 일부 있다. 록펠러 가문 상속인이며 '아메리칸 컨서버티브The American Conservative'매거진의 이사회 멤버인 조지 오닐 주니어는 대선 후 트럼프의 마러라고 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닐은 2019년 추방된 러시아 첩보원 마리아 부티나와 긴밀한 사이였으며, 최소한 2017년부터 개버드를 지지해 왔다. 2020년 개버드의 대선 캠페인과 2024년 케네디 캠페인에도 기부했다. 억만장자 발명가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X를 통해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고의로 가짜정보 확산을 방조함으로써 정부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보했다. 오닐, 머스크, 그리고 암호 화폐 딜러들은 돈을 목적으로 트럼프 진영으로 모여들었을까? 아니면 그들은 자신들이 전파하는 음모론과 반미국적 사고들을 실제로 믿는 것일까? 돈 때문일 수도 있고 신념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양자 모두일 수도 있다. 그들의 동기가 냉소적이건 진지하건 간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그들이 미치는 영향이다.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따르는 본보기가 된다. 단지 케네디 주니어를 내각에 지명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만으로도 트럼프는 어린이 백신 회의론을 전 세계에 확산시킬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그 결과 질병을 확산시킬 수도 있게 되었다. 우리가 최근 알게 되었듯이 전염병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마법적 해결책을 더 쉽게 수용하게 만든다.
역사상 다른 문명들도 비슷한 시기를 겪었다. 베네치아인들은 16세기 제국이 기울기 시작하자 마법에 눈을 돌리고 빠르게 부를 얻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러시아 제국 말기에도 신비주의와 오컬티즘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반물질주의, 자학 심지어 자기 거세 같은 기이한 믿음과 관행을 추구하는 종파宗派들이 퍼졌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들은 세계의 종교들을 뒤섞은 신지학theosophy에 매혹되었다. 러시아 태생 헬레나 블라바츠키가 힌두교, 불교, 기독교, 신플라톤주의를 혼합하여 창시한 신지학은, 훗날 미국에도 도입되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열기와 감정적 분위기 속에서 배태되었고, 같은 분위기에서 마법적 치유능력을 주장한 농부 출신 성직자 라스푸틴이 결국 황실로 진출하게 되었다. 라스푸틴은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아들의 혈우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설득했고, 마침내 차르의 정치적 조언자가 되었다.
라스푸틴의 영향은 결과적으로 광범위한 불안과 광기를 불러일으켰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많은 러시아인들은 '어둠의 세력тёмные силы'이 비밀스럽게 나라를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다. 라스푸틴 전기작가 더글라스 스미스가 썼듯이 "어둠의 세력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마다 달랐다. 유대인이 되기도 했고, 독일인, 프리메이슨, 알렉산드라, 라스푸틴, 그리고 궁정 내 측근 세력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의 한 신지학자는 "러시아를 부정적인 기운으로 독살시키려는 적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라고 표현했다.
'어둠의 세력들'을 '딥스테이트'라는 말로 바꾸어 보자. 러시아 말기의 분위기는 우리의 현재와 무엇이 다른가? 1917년의 러시아인들처럼, 우리는 경제적, 정치적, 인구학적, 교육적, 사회적, 그리고 무엇보다 정보적인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고, 이 변화는 때로는 제대로 인정되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도 영원한 불협화음 속에 살고 있다. 좌파와 우파, 진실과 허위가 늘 충돌하며 TV 화면을 장식한다. 전통적인 종교는 계속해서 쇠퇴하고 있다. 신뢰를 받아 온 제도들이 실패하고 있다. 이제 기술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통제할 것이라는 공포 속에 기술 낙관주의는 기술 비관주의에 밀려나고 있다. 질병의 공포, 핵전쟁의 공포, 죽음의 공포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새로운 반계몽주의자들에게 두려움과 염려는 강력한 무기다.
미국인들에게 사이비 영성과 정치의 결합은 미국의 가장 뿌리깊은 원칙들로부터 이탈을 뜻한다. 즉 논리와 이성이 좋은 정부를 이끈다는 신념, 사실에 기반한 논쟁이 좋은 정책으로 이어진다는 신념, 통치는 투명성 속에서 번영한다는 신념, 그리고 정치 질서는 신비주의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법과 질서와 과정에 내재한다는 신념이다. 새로운 반계몽주의의 지지자들은 미국 건국의 이상과 결별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두 계몽주의자들이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정치 사상가였을 뿐 아니라 과학자였고, 천연두 예방접종을 용감하게 지지했다. 조지 워싱턴은 군주제를 거부하고 행정부의 권력을 제한하고 법치를 확립하는 데 열정적으로 힘썼다. 이후 링컨, 루스벨트, 킹과 같은 미국 지도자들은 연방 헌법과 헌법 제정자들의 사상을 인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을 웅변했다.
반대로 지금 부상하는 국제적 엘리트는 무언가 아주 다른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미신이 이성과 논리를 압도하고, 투명성이 사라지며, 정치 지도자들의 악행이 비상식과 혼란의 구름 뒤로 가려지는 사회이다. 카리스마만이 중요한 세상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존재하지 않으며,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세계에서는 법치가 설 자리를 잃는다. 그저 자극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채울 수 있는 공백만 있을 뿐이다.
앤 애플바움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로, 주로 소련과 동유럽의 역사, 공산주의, 그리고 현대의 권위주의에 대한 연구로 알려져 있다. 미국 태생으로 미국과 폴란드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예일대에서 역사학과 문학으로 학사, 런던정경대(LSE)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옥스포드대 박사과정에서 수학한 후, 이코노미스트 폴란드 특파원을 역임했다. 이후 워싱턴포스트, 애틀랜틱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오고 있으며, 존스홉킨스대 SAIS 선임펠로우로 재직중이다. 그녀는 2004년 '굴락Gulag: A History'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역자 음해린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후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앤 애플바움은 '굴락'(Gulag)이라는 저작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이자 러시아 및 동유럽 역사 전문가입니다. 그가 2025년 장문의 1월 7일자 애틀랜틱 기사를 통해 반계몽주의의 유령이 미국과 유럽을 배회하고 있고 이것이 독재자들의 등장을 돕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도 객관적 증거에 기반한 차분하고 합리적 논의가 드물어지고 수많은 음모론이 한국인들의 정치적 상상을 이끌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에 따라 기존 언론 및 출판이라는 사회적 논의의 '필터'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 역시 반계몽주의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이 더 위태로운 것은 근대 계몽주의 전통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위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 기사는 상당히 긴 기사입니다만, 퓰리처상 수상자인 필자가 유려한 문체로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계몽주의(영어 원문은 obscurantism이었는데, 이 단어의 어원인 라틴어 obscurare는 '어둡게 만들다'라는 뜻입니다)가 어떻게 암약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좌우의 반계몽주의 움직임과 비교해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구가 수백년에 걸쳐 이성의 빛으로 세상을 이끌겠다는 계몽주의 운동을 펼쳐왔는데, 현재 역풍을 만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