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MAGA, 문화전쟁에서 승기를 잡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수주의가 점차 부각되며 진보주의를 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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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뉴스1

2025.02.07 15:52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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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O는 2년 전부터 미국의 '문화전쟁'에서 우파의 반격이 눈에 띈다고 관측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최근에는 미국 사회 전반에 우파 문화의 확산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간 인종, 젠더, 환경 등 새로운 '정체성 정치' 어젠다를 내세운 신진보주의가 과거의 경제적 '계급' 중심의 구진보주의를 대체해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 진보의 방향전환은 가난한 기층 백인을 보수주의로 내미는 결과를 가져왔고 트럼프의 압도적인 재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엔터테인먼트, 웰니스, 스포츠 등에서도 새로운 'MAGA' 보수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류는 단지 미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글로벌 차원에서도 (미국에 비해 약하긴 하나) 유사한 트렌드가 관측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 같습니다. 인종 이슈가 미미한 한국에서는 젠더 이슈가 최전선인데 그외에도 다른 이슈들이 미국 내 논의에 영향을 받아 발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1월 19일자 기사가 전하는 미국의 문화전쟁의 현주소를 보면서 우리의 국내 상황을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교육, 직장 등 사회 전반에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이 단순히 백악관 탈환을 넘어 더 넓은 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NFL 선수들은 이제 경기장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사회 정의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터치다운을 기록한 뒤 '트럼프 춤'을 추며 세리머니를 한다. 컨트리 가수 캐리 언더우드와 래퍼 스눕 독을 비롯한 주류 연예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행사에 출연을 결정했다. 이는 8년 전 트럼프의 첫 취임 당시 음악계가 대거 출연을 거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트럼프 지지 성향의 신세대 코미디언과 웰니스wellness 인플루언서들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 트럼프의 아들과 아내인 배런과 멜라니아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 클립이 온라인 밈meme으로 유행하면서, 패리스 힐튼과 프런티어항공 등 유명 인사와 기업들이 이를 틱톡과 인스타그램 콘텐츠에 활용하고 있다.


애리조나주립대 4학년 학생인 카슨 카펜터(19)는 "캠퍼스를 걸을 때마다 MAGA 모자를 쓴 학생들을 본다, 예전에는 없던 현상"이라며 "보수주의가 대중문화와 깊이 결합하면서 이제는 보수적 성향이 '멋지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캠퍼스 밖에서도 트럼프 지지를 드러내기를 꺼리던 미국인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이를 표출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가이자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주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낸 트레버 트라이나는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의 부유한 진보 성향 지역인 퍼시픽하이츠에서 트럼프 후원 행사를 공동 주최하며 변화의 흐름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그는 예상했던 시위는 없었고, 오히려 "붉은 MAGA 모자를 쓴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퍼시픽하이츠를 활보했다"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과거에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그라우초 막스 안경1을 쓰고 머플러로 얼굴을 가린 채 몰래 다녔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진보주의적 가치 중 일부는 더 널리 받아들여졌다. 동성 결혼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절반 이상의 주에서 마리화나 관련 법이 완화됐다. 또한, 연방대법원이 낙태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폐지한 이후 월스트리트저널-NORC 여론조사에서는 낙태권에 대한 지지가 1970년대부터 해당 이슈를 추적해온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갤럽 조사에서는 자신을 '사회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힌 미국인의 비율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응답자의 약 38%가 보수적 성향을, 29%가 진보적 성향을 가진다고 답했다.


아울러, 사회보수주의자들은 헐리우드, 학계, 대기업의 채용 및 투자에서 자신들이 '진보주의자들의 장악'이라고 여겨온 흐름을 되돌리려는 오랜 싸움에서 점차 전과를 확대하고 있다.


기업들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인종 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강화했던 다양성 정책을 축소하고 있다. 대학들은 입학 심사에서 인종 고려를 금지하라는 연방대법원 판결에 맞춰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마이너리티 학생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은 역차별 논란에 휩싸이며 법적 도전에 직면했다. 일부 공화당 우세 주에서는 기독교적 가치가 반영된 교육과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보수층은 오랫동안 소셜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가 검열당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달 들어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는 특정 유형의 발언에 대한 팩트체크와 제한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디즈니 계열사인 픽사는 지난해 애니메이션 시리즈 '이기거나 지거나'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스토리라인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많은 부모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자녀들과 자신들 방식으로 논의하길 원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우리가 승기를 잡고 있으며, 이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통쾌한 일"이라고 헤리티지재단의 케빈 로버츠 회장은 말했다. 그는 다양성 프로그램의 축소와 종교의 공적 역할 확대를 언급하며 이같이 평가했다. 헤리티지 재단은 보수 진영이 트럼프 행정부에 정책 우선순위를 압박하는 '프로젝트 2025'를 주도했다.


1월 20일에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그에 우호적인 기업 경영진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 중 일부는 기후변화 대응 및 다양성 정책을 철회하기 시작한 기업인들로, 이는 MAGA 운동이 집중적으로 비판해온 분야다. 수백만 명의 고객을 보유한 기업들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만, 이들 기업인들이 트럼프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가 대중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서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취임식에서 주요 좌석을 배정받은 기업인으로는 애플의 팀 쿡,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가 포함됐다.


/사진=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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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폭넓은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코카콜라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기념해 특별 제작한 '도널드 트럼프 다이어트 코크' 병을 공개했다. 코카콜라 측은 지난 다섯 차례의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비슷한 기념병을 제작했지만, 최고경영자가 직접 신임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한 사례는 올해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기념병은 판매용이 아니지만,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2021년 1월 6일 발생한 미 국회의사당 폭동을 "미국 민주주의 이상에 대한 모독"이라고 규정했던 코카콜라의 과거 입장을 고려할 때 주목할 만한 행보다.


많은 정치 분석가들은 미국인들이 보수적 가치에 보다 마음을 열고 있는 이유로 '캔슬 컬처'(cancel culture: '정치적 올바름'을 위반한 기업이나 개인을 집단적으로 비판하고 배척하는 현상)에 대한 피로감을 꼽는다. 일부는 이를 지나치게 경직되고 젠더 및 인종 정체성에 과민 반응하는 문화로 인식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부상도 중요한 요인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 제작자들은 기존 주류 미디어의 검열을 피하고,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청중을 직접 모을 수 있다.


예일대 3학년생 마누 안팔라간(20)은 뉴욕주 버펄로에 있는 고등학교 시절, 보수 논객 벤 샤피로가 학생들과 토론하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며 학교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벤 샤피로가 진보 논리를 박살내다'라는 제목의 영상에 매료됐죠." 그는 또한 트럼프를 팟캐스트에 초대한 인기 코미디언 테오 본이나 넬크 보이즈 같은 웰니스 인플루언서들도 보수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수주의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훨씬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안팔라간은 예일대에서 오랫동안 활동이 없었던 학내 공화당 동아리를 다시 시작했다. 그는 대체로 진보 성향이 강한 예일대에서 MAGA 모자를 쓰고 다니는 학생은 여전히 드물지만, 동아리 홍보 행사일에 공화당 동아리 가입을 고려하는 신입생이 40명이나 모였다는 점을 보면 변화의 조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개인의 인기도 영향을 미쳤다. 즉흥적이고 두서없는 연설 방식은 지지자들에게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매력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어색하지만 유쾌한 춤 동작은 온라인에서 널리 따라 하는 유행이 됐다. 중도 성향 민주당 정치인들을 후원하는 '웰컴 PAC' 공동 창립자인 리암 커는 "트럼프가 웃긴 인물이고 사람들이 그를 재미있게 여긴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이 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찾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유명 투자 리얼리티쇼 '샤크 탱크'에서 투자자로 활약중인 케빈 오리어리는 팬데믹 이후 직접 소비자와 소통하는 마케팅 방식이 확산되면서 자신을 포함한 일부 사업가들이 트럼프의 익살스러운 춤 동작이나 그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바이럴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리어리는 "트럼프는 우연히—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자신을 '힙'한 인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미식축구(NFL) 경기장 역시 분위기 변화의 무대가 되고 있다. 과거 '사회적 정의' 시위의 상징이었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은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한쪽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펼쳤으나, 2016시즌 이후 계약하지 못한 채 NFL을 떠났다.


현재 NFL 경기장 시위를 대표하는 인물은 같은 포티나이너스 소속의 닉 보사다. 그는 지난해 11월 선거를 앞두고 다른 사람의 생방송 인터뷰 중에 갑자기 등장해 자신의 MAGA 모자를 과시했다.


보사는 이후 NFL의 경기장 내 정치적 메시지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받았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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