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10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J.D. 밴스 부통령과 함께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의 오찬 중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2025.12.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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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의 외교 노선인 '힘을 통한 평화'는 오랫동안 미국 공화당이 받아들여 온 원칙이다. 그러나 이 레이건의 횃불은 누가 계승하고 있는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신봉자들과 공화당 내 점점 세가 줄어들고 있는 국제주의자들 사이의 균열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는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에 있는 레이건 대통령 기념 도서관, 그 안에 전시된 푸른 도장을 한 레이건의 에어포스원 기체 아래에서 펼쳐진 장면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12월 6일, 미국의 전쟁장관인 피트 헤그세스는 시미밸리에 모인 국방·외교 정책 핵심 인사들에게 글로벌리스트들이 오직 재앙만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로벌 군사 패권'을 추구한 결과가 "중동에서 방향을 잃은 전쟁, 유럽의 지상전, 그리고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야말로 레이건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그는 주장했다. 레이건처럼 트럼프는 미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적들과도 대화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력 사용에 대해서도 그는 "집중적이고 결정적인 방식"으로만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그의 요약은 이랬다. "유토피아적 이상주의는 가라. 냉엄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헤그세스의 이 연설은 역사 인식 면에서 부실했다. 레이건은 관세를 선호하는 트럼프와 달리 확고한 자유무역주의자였고, 불법 이민자에 대해서는 대규모 추방이 아니라 사면을 지지했다. 무엇보다도 레이건은 자유의 힘이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그 아래 '억압된 국가들'을 옹호했다. 반면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구애하고 있다. 이 연례 토론회에 참석한 한 인사는 "로널드 레이건은 무덤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을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그세스의 연설과, 이보다 이틀 앞서 공개된 트럼프의 32쪽 분량 '국가안보전략'(NSS)은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을 지금까지 중 가장 분명하게 요약해 보여준다. 이 문서들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지저분한 거래와 강자의 지배로 대체되는, 세계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비전을 그려낸다. 이전 대통령들의 전략이 민주주의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트럼프의 버전은 오히려 비(非)자유주의를 안전하게 만드는 쪽에 더 기울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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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유럽과 관련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유럽에서는 동맹국들이 점점 '비유럽적'이 돼 가고 있으며, 대규모 이민을 통해 스스로를 '문명 소멸'로 몰아넣고 있다며 폄하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제 통합과 다자주의적 공동 규칙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과의 협력 확대보다도 더 큰 위협으로 묘사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러한 입장의 재조정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비전과 부합한다"고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들의 반응은 눈에 띄게 조용하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12월 9일 "일부는 이해할 수 있고, 일부는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많은 나라들은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를 애써 찾고 있다. 거친 수사 아래 미국의 핵심 우선순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미국은 나토를 탈퇴하지 않았고, 대만 방어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핵우산을 통해 동맹국을 보호하겠다는 입장도 언급하고 있다.
12월 4일에서 5일로 넘어가는 한밤중에 공개된 이 문서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내부 인사들 가운데서는 이를 정책이라기보다 논쟁적 선언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인사는 "2주 뒤면 잊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작성을 도왔던 레베카 리스너는 이 문서가 향후 행정부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관료들과 군 관계자들은 이를 집행하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전략은 이미 유럽 비판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12월 5일 EU가 디지털서비스법 위반을 이유로 X(구 트위터)에 1억2000만 유로(약 177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자,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이를 미국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X의 소유주 일론 머스크는 "EU는 해체돼야 하며 주권은 개별 국가들에 반환돼야 한다"고 글을 썼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사냥견'으로 불리는 전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정확히 그렇다"고 화답했다.
과거와의 단절
미 행정부의 실제 정책은 이런 문서 자체보다 트럼프의 '궁정' 내부에서 벌어지는 경쟁, 그리고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기분에 더 크게 좌우될 것이다. 과거 어느 행정부보다도 외교정책은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안보전략'은 트럼프의 측근들이 대통령의 속내를 읽어내려 한 최선의 시도이며, 서로 다른 파벌들이 어떻게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지를 드러낸다.
바이든 행정부 출신의 레베카 리스너는 이 '국가안보전략'을 "최초의 마가(MAGA) 국가안보전략"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2017년 1기 트럼프 행정부의 문서를 포함해 과거의 전략들과도 매우 다르다. 이 전략은 의도적으로 기존 이념들을 폐기하면서도 새로운 이념을 정의하는 데는 어려움을 보인다. 문서의 표현을 빌리면, 트럼프 행정부의 이념은 실용적이지만 '실용주의'는 아니고, 현실적이지만 '현실주의'는 아니며, 강경하지만 '매파'는 아니고, 절제돼 있지만 '비둘기파'는 아니다. 결국 붙인 이름은 "탄력적인 현실주의"다.
이 문서는 소수의 보좌진이 초안을 쓰고 다시 고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면서 뒤섞인 잡탕 같은 결과물이 됐다. 여러 정부 부처의 견해를 조율하고 통합하는 통상적인 관료적 협의 과정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트럼프 진영의 거의 모든 이들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부통령 J.D. 밴스 같은 강경한 마가(MAGA) 이데올로그들, 국무장관이자 국가안보보좌관인 마코 루비오 같은 전통적 공화당 인사들, 국토안보보좌관 스티븐 밀러 같은 반(反)이민 포퓰리스트, 전쟁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 같은 대중(對中) 강경파, 그리고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와 대통령의 개인·가족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 재러드 쿠슈너 등 거래에 능한 실무형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지하디스트들과의 소규모 전쟁에서 미국의 초점을 돌려,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강대국 경쟁"에 집중하도록 방향을 전환했다. 이는 2022년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트럼프 2기는 트럼프 1기가 만들어낸 그 컨센서스 자체와 결별하고 있다. 최신 '국가안보전략'은 훨씬 더 다원적인 세계를 상정한다. 미국은 이제 때로는 '세력권' 개념을 의미하는 듯한 "세력균형"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전략은 "크고 부유하며 강한 국가들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제관계의 영원한 진실"이라고 단언한다.
트럼프의 두 차례 '국가안보전략'과 바이든의 '국가안보전략', 이 세 문서를 분석한 결과, 최신 '국가안보전략'에서는 훨씬 더 감정적이고 내셔널리즘적인 언어가 두드러진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사용은 줄어든 반면, '경제'와 '경제적'이라는 표현은 훨씬 더 자주 등장한다. "동맹"과 협력하겠다는 언어는 미국의 '요구'로 대체됐다. '중국'이라는 단어는 이번 문서에서 더욱 많이 등장하지만, 지정학적 맥락이 아니라 경제적 맥락에서 등장한다.
2017년 문서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적대적인 세계를 형성하려는" "수정주의" 국가들로 규정됐다. 그러나 2025년 문서의 상당 부분에서 중국은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볼드모트처럼, 늘 존재하지만 언급되지는 않는 경쟁자에 가깝다. 러시아의 위협 역시 이제는 유럽인들의 왜곡된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묘사된다. 2017년에 강조됐던 "불량국가들"도 뒤로 물러났다. 2025년 문서에서 미국의 핵시설 타격 이후 이란의 위상은 축소됐고, 북한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미국의 안보 전략은 언제나 본토 방어의 필요성을 인정해 왔다. 이번 에디션은 본토 방어를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끌어올려, 강력한 국경 통제와 대규모 이민과의 싸움, 그리고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골든 돔'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국가안보전략'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미국을 보호한다는 개념을 서반구(미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확장하고, 이를 최우선 지역 과제로 삼는다. 말하자면 '미 대륙 우선' 전략이다.
이번 '국가안보전략'은 지금까지 안 쓰던 표현 하나를 즐겨 쓴다. 바로 (먼로 독트린에 대한) "트럼프 보충원칙"(Trump Corollary)이다. 1823년 제임스 먼로는 유럽 열강이 미주 대륙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우리의 평화와 안전에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1904년 "보충원칙"은, 통치가 부실하거나 불안정한 이웃 국가들에 대해 미국이 "국제적 경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 대륙 우선
트럼프의 보충원칙은 서반구(미 대륙)에서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회복"하고, 미국의 "핵심 지정학적 요충지에 대한 접근"을 보호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국가안보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비(非)서반구 경쟁국들이 병력이나 기타 위협적 역량을 배치하거나 중대한 전략 자산을 소유·통제하는 능력을 차단할 것"이다. 또한 인프라 건설에 관여하는 외국 기업을 미국의 영향력을 활용해 몰아내고, 미국 기업들에 '단독 공급 계약'을 부여하겠다는 방침도 담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강권 통치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축출하려는 압박과, 마약 밀수에 연루됐다고 주장되는 선박들에 대한 폭격은 이 새로운 교리의 가장 드라마틱한 결과다. 많은 이들은 이 정책을 마코 루비오의 작품으로 본다. 그는 '포함(砲艦) 외교'가 마두로 정권의 붕괴를 촉발해, 니카라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부모의 고향인 쿠바를 포함한 다른 좌파 정권들을 약화시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남부 플로리다에서는 이미 베네수엘라계 주민들이 마두로가 축출되는 날을 기념할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루비오를 넘어, 서반구에서의 패권을 둘러싸고 마가 지도부 대다수는 거의 격렬할 정도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밴스와 밀러는 이를 미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와 마약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전쟁터로 본다. 헤그세스는 전쟁부가 "핵심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상업적 접근"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히며, 파나마 운하와 카리브해, 멕시코만(그들은 "아메리카만"이라 부른다), 북극, 그린란드를 거론했다. 이웃 국가들은 이런 사안에서 미국과 협력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전쟁부는 "언제든 행동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중국에 강경한 인사들은 미국이 배치된 함대의 약 5분의 1을 카리브해에 무기한 묶어두는 데 대해 경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영향력 있는 마가 팟캐스터인 로라 루머 같은 고립주의자들은 미국이 또 하나의 정권 교체 전쟁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식 참사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트럼프의 입장도 분명치 않다. 그는 베네수엘라를 향해 무력을 과시해 왔지만, 아직 칼을 뽑지는 않았다.
해야 할 거래들
아시아를 둘러싼 트럼프 진영의 분열은 더욱 깊다. 베선트가 이끄는 거래파는 4월로 예정된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규모 무역 합의에 대한 기대 속에서, 대중 관계를 해칠 수 있는 어떤 일도 원치 않는다. 반면 루비오 같은 전통적 공화당 인사들과, 콜비가 이끄는 일부 전쟁부 전략가들은 중국을 미국의 힘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보고, 대만 방어를 이를 제약하는 핵심 수단으로 여긴다.
이 같은 분열은 '국가안보전략' 전반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 문서의 공개가 상당히 지연된 것도, 베선트 재무장관이 중국에 대한 적대적 표현을 누그러뜨리거나 아예 삭제할 것을 고집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그는 결국 뜻을 관철한 것으로 보인다. 지식재산권 절취, 국가 보조금, 외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 희토류 통제 등 중국을 연상시키는 대목들은 많지만, 정작 그 나라의 이름은 피하고 있다.
대만 방어와 "군사적 압도", 즉 우위 확보에 대한 공약을 이야기할 때도 중화인민공화국을 지칭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이 문서는 대만의 중요성을 다룰 때도 압박받는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관점이 아니라, 경제와 지정학의 문제로 설명한다. 미국은 대만의 첨단 반도체 산업을 보전해야 할 뿐 아니라, 일본에서 말레이시아로 이어지는 제1도련선을 유지함으로써 괌의 주요 미군 기지를 포함한 제2도련선을 방어하고 남중국해의 해상 항로를 열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는 대만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트럼프의 기존 인식보다는 한발 나아간 접근이다.
이 문서에서 중국은 주로 무역과 관련해 언급되며, "중국과 진정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 관계"에 대한 기대가 표현돼 있다. 더 큰 양보는 트럼프가 12월 8일 엔비디아의 첨단 H200 칩을 중국에 수출하는 금지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안보 강경파들은 이 해제 조치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트럼프는 수익의 25%가 정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트럼프가 거래파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모양새다.
유럽 문제에 있어서 '국가안보전략'은 친(親)러시아 진영에 상당한 힘을 실어준다. 이 문서는 유럽인들이 러시아를 '존립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라 유럽의 "자기 확신 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핵심 이익"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적대 행위를 신속히 종식시키는 협상"이라고 밝히며, 나토(NATO) 확대 중단도 요구한다.
'국가안보전략'은 보다 마가(MAGA)적인 유럽을 지향한다. "건강한" 유럽 국가들과 "애국적" 정당을 지원하고, 이민 정책을 포함한 현행 정책들에 맞서는 "저항을 키워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유럽의 민족 구성에 이토록 집착하는가? 한 행정부 관계자는 트럼프가 유럽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며, 이민이 유럽 국가들의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고,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루비오 같은 전통적 공화당 인사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리한 평화 합의가 또 다른 러시아의 공격을 부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평화 합의에서 경제적 기회를 보는 행정부 내 거래파, 특히 위트코프와 쿠슈너와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2028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후계자를 노리는 경쟁자라는 점에서, J.D. 밴스와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편 의회 내 공화당원들은 트럼프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트럼프와 가까운 매파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 등이 발의한 초당적 법안 여러 건은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하는 국가들에 관세를 부과하고,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위협을 담고 있다. 곧 승인될 예정인 국방수권법 초안은 연간 4억 달러 규모의 상징적인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유지하고, 우크라이나와의 정보 공유를 중단할 계획이 있을 경우 의회에 사전 보고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나토와 한국에 주둔한 미군 병력을 일정 수준 이하로 감축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연 '합리적인' 공화당원들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최근 트럼프는 유럽 때리기에 가세하며 이 '늙은 대륙'(유럽)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안 러시아가 휴전을 거부한다고 비판하던 그는, 이제는 평화 제안들을 거부하면서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무모하게 이어간다며 우크라이나를 질책한다. 러시아가 더 큰 나라라는 점에서 우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폴리티코에 "어느 순간에는 크기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누가 최종 결정권자인가
트럼프 진영에서 단 한 명의 승자가 나오기보다는, 경쟁하는 파벌들 사이의 끊임없는 다툼과 잦은 인적 교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루비오는 트럼프에 대한 철저한 충성을 유지하며 예상보다 오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정책적 이견이나 2028년 대선을 준비하기 위해, 특히 11월 중간선거 이후 임기 종료 전 물러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마약 밀수 선박에 대한 공격의 불법 여부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헤그세스는 더 일찍 떠날 수도 있다.
트럼프 측근들의 구성은 정책에 주변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칠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맨 위에서 나온다"고 한 백악관 관계자는 말한다. "이제 얼굴 없는 관료들이 외교정책을 좌우하던 시대는 지났다."
여론은 더 큰 제약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레이건연구소가 국방 포럼을 앞두고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경한 글로벌리즘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미국인의 64%는 자국이 국제 문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했고, 68%는 나토(NATO)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는데, 이는 조사가 시작된 2018년 이후 최고치다. 또 62%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기를 원했으며, 60%는 대만 방어를 위해 미군을 투입하는 데 찬성했다.
이처럼 레이건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에서 열린 회의의 막바지에서 레이건연구소의 로저 자크하임 소장은 마가주의자들에게 '힘을 통한 평화'가 단순한 지배를 넘어서는 더 높은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레이건은 1986년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힘은 다시 한번 위험한 세계에서 자유를 보호하는 품이 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상당히 긴 12월 11일자 기사를 통해 12월 초에 나온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NSS)을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조야에서도 이 문건에 대해 수많은 분석이 쏟아져나왔습니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어차피 최종 결정권자는 트럼프이고 트럼프는 문건같은 것에 얽매일 인물이 아니기때문에 "2주일 뒤면 잊혀질 문서"에 불과하다는 뉘앙스로 분석을 시작합니다. 다만, 이 문건은 트럼프 진영의 각 계파의 입장이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최종결정권자인 트럼프의 외교전략은 아니더라도 그 밑에서 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애쓰는 각 계파의 입장 정도는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기사는 매우 균형 잡히고 조목조목 잘 정리했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들이 한줄 한줄 읽어보시면 미국 외교의 현황 및 미래를 가늠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 기사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마가(MAGA) 주류를 대변하는 J.D. 밴스 부통령과 전통적인 공화당 주류를 대변하는 마코 루비오가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라는 점입니다. 밴스 부통령은 '힐빌리'로 불리는 애팔라치아 빈민층 출신으로 명문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로 피터 틸과 실리콘밸리에서 일했습니다. 글도 잘 쓰고 언변도 좋습니다. 루비오는 언변은 약하지만 쿠바계로 스윙스테이트 중 하나인 플로리다주를 대변하는 연방상원의원입니다. 쿠바계이기 때문에 인구가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히스패닉계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루비오는 외교에 있어서 국무장관으로 밴스에 비해서는 온건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외교정책이 인기가 있으면 밴스에게 유리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트럼프 및 마가 진영과 미묘하게 궤를 달리하는 루비오가 선거 스펙트럼에서 중도를 차지하며 유리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밴스 대 루비오'라는 차기 대선 구도를 염두에 두고 미국 외교 정책의 내부 논쟁을 지켜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외교와 국내정치가 연동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더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