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10일째 되는 날인 3월 9일,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마이애미 트럼프 내셔널 도럴 골프클럽에서 공화당 의원들에게 미국의 이란 군사개입을 "짧은 출격(a little excursion)"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이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것이 출격인지 전쟁인지 질문받자, 그는 둘 다라고 답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한 출격이다." 이어 그는 해당 작전이 "원래 일정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곧 끝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이 짧은 '출격'은 재앙으로 향하는 행군으로 드러났다. 그의 "주요 전투 작전"은 지난해 6월 "완전히 제거됐다"고 주장됐던 이란의 핵 능력 확보를 차단하는 데서,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고 작전 이전의 상황을 복원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하지만 어떤 목표가 되었든 전쟁 이전의 현상 유지는 되돌릴 수 없다. 군사력으로 서방 선박의 해협 통항을 재개하려 할 경우 미국 측에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며, 미군이 철수하는 즉시 해협은 다시 이란의 통제 아래로 돌아갈 것이다. 트럼프는 이 핵심 해상 운송로를 이란에 넘기지 않고서는 승리를 선언하고 물러날 수 없다. 설령 4월 6일 파키스탄에서 나왔다는 보도처럼 해협 재개방을 포함한 휴전안이 합의·이행된다 하더라도, 이란이 유리한 위치를 점했을 것이다. 비록 폭격은 당했지만 세계 경제를 교란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한 군사-신정 독재국 이란은 미국의 제국적 권력을 최종적으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란 의회의 국가안보위원회는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고, 우호국 및 비동맹국 선박에는 안전 통항을 허용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의회 국가안보위원장 에브라힘 아지지는 X에 올린 조롱 섞인 글에서 "트럼프는 마침내 '레짐 체인지(체제 변경)'라는 꿈을 이뤘다. 다만 그것은 이 지역 해상질서 체제의 변경이다!"라며 "호르무즈 해협은 분명 다시 열리겠지만, 당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란의 새로운 법을 따르는 이들을 위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47년간의 환대는 영원히 끝났다"고 덧붙였다. 이란은 거의 반세기 동안 개방된 국제수로였던 이 통로를 수익화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연결고리를 장악하게 됐다.
이란은 트럼프가 무모하게 끌어들인 분쟁에 잘 대비돼 있었음을 보여줬다. 3월 18일,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거점인 카타르 산업도시 라스라판에 대한 전례 없는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카타르 측 추산으로 복구에 3~5년이 걸릴 피해가 발생했다. 고가치 미국 자산을 타격할 수 있는 이란의 능력은 3월 27일 사우디아라비아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 공격으로도 확인됐으며, 이 과정에서 "하늘의 눈"으로 불리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가 파괴됐다. 이란 해안에서 약 2400마일 떨어진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영미 공동 기지에 대한 실패한 공격은 예상 밖의 탄도미사일 능력을 드러냈다. 4월 3일 미 전투기 격추 사건은 이란의 방공망이 "100% 파괴됐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무너뜨렸다. 치열한 교전 속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탈출 조종사는 이 전쟁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란에 대한 '장대한 분노' 작전의 위험성은 예측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미국과 영국 등 여러 나라의 냉정한 군사 전문가들은 수년간 수십 차례에 걸쳐 이란과의 충돌을 모의실험해왔다. 트럼프는 경고를 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기로 선택했다. 3월 30일이 되자 그는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조속히 합의가 이뤄지고" 호르무즈 해협이 "즉시 개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의도적으로 '건드리지 않은' 모든 발전소와 유전, 하르그섬(그리고 아마도 모든 담수화 시설까지)을 폭파하고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우리의 멋진 이란 '체류'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루 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가 측근들에게 해협이 폐쇄된 상태로 남더라도 전쟁을 끝내는 방안을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호르무즈는 전 세계 석유의 약 5분의 1이 수송되는 통로다. 이 통로를 위험하게 만드는 데 반드시 선박을 침몰시킬 필요는 없다. 이란은 세계 해운의 상당 부분을 보장하는 런던 로이즈 해상보험 시장을 무기화했다. 선박을 보험에 가입할 수 없게 만드는 신뢰할 만한 위협만 있으면 충분하다. 아라비아반도 반대편에서 후티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하는 이중봉쇄 상황이 형성될 경우, 전 세계 석유의 약 4분의 1이 차단될 것이다. 식량 공급, 반도체, 플라스틱에 필수적인 원재료는 급격히 부족해질 것이며, 경제성장은 정체되거나 후퇴하고 전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이 참사는 전략적 오류의 결과가 아니다. 미국 역사학자 바버라 터크먼은 저서 '어리석음의 행진(The March of Folly)'에서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고 그것이 알려져 있음에도 정부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신중함보다 과시를 택한 트로이인들은 그리스의 목마를 성 안으로 들였다. 르네상스 교황들의 과신과 방만한 지출은 종교개혁을 촉발했다. 조지 3세 정부의 완고한 오만은 반란을 불러일으켜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게 만들었다. 전쟁이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베트남에서의 굴욕적 패배를 낳았다. 오만, 자기기만, 부패는 필연적으로 파멸로 이어졌다.
이 모든 어리석음의 징후는 트럼프의 이란전쟁에서도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은 지도부를 제거하면—그가 골프클럽 연설에서 말했듯 "몇몇 사람을 없애버리면"—이란 정권이 무력화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테헤란은 1월 3일 특수작전으로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와 그의 부인이 제거되고 델시 로드리게스에게 권력이 이양된 카라카스가 아니다. 이란정부는 다층적 구조를 갖고 있으며—서구식 삶을 갈망하는 수천만 명을 잔혹하게 억압하고 있음에도—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석유, 통신, 건설, 금융에 걸친 기업 제국을 운영한다. 국내 저항을 진압하는 데 사용되는 준군사 조직 바시즈 민병대는 국가 혜택과 혁명수비대 연계 기업의 일자리를 제공받는다. 종교 조직과 성직 엘리트는 반체제 인사와 소수 집단으로부터 빼앗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이들 집단에게 전쟁에서의 패배는 재산과 생계, 생명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일부는 전투에서의 죽음을 순교의 기회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순교는 시아파 이슬람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요소다. 백악관은 이러한 사실들과 더불어 이란이 저비용 비대칭 전쟁 기술에 정통하다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
부패도 한몫한다. 2월 28일 미·이스라엘 합동 공습으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기 몇 시간 전, 스포츠 경기 결과에서 미사일 공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의 결과에 베팅할 수 있는 암호화폐 기반의 부분적 역외 '베팅 시장'인 폴리마켓(Polymarket) 등 사이트에서 대규모 베팅이 이뤄졌다. 올해 3월에는 백악관의 전쟁 관련 발표 직전 수분 사이에 이뤄진 일련의 베팅으로 익명의 거래자들이 수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3월 23일에는 명목가치 약 15억 달러 규모의 원유 선물 계약 수천 건이 몇 분 사이에 거래됐는데, 이는 일평균의 약 16배에 달하는 물량이다. 이러한 거래에서 트럼프나 그의 측근, 가족이 이익을 얻고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내부자들이 특권적 정보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결론은 피할 수 없다.
트럼프의 전쟁은 바로 터크먼이 말한 '어리석음'이다. 정치적으로 그것은 그에게 해가 될 수밖에 없으며,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을 끌어올리고 11월 중간선거에서 그의 약화된 승산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는 더 이상 "끝없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대선 공약을 정면으로 위반하며, 분열된 마가(MAGA) 지지 기반 내 신(新)고립주의적 '아메리카 퍼스트' 진영과의 거리를 벌리고 경쟁자인 JD 밴스의 입지를 강화한다. 국제적으로도 트럼프의 군사 행동은 그를 주변화할 뿐이다. 유럽 극우세력—마린 르펜, 조르자 멜로니, 독일을 위한 대안(AfD)—조차 거리를 두고 있다.
중동에서 이 전쟁은 미국 패권의 재정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지출 부담 속에 달러를 글로벌 기축통화로 만들었던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하자, 미국이 군사적 보호를 보장한다는 약속이 페트로달러 체제의 기초가 됐다. 추락하는 달러를 지탱할 수단이 필요했던 닉슨 행정부는 헨리 키신저에게 사우디아라비아와 양국간 맞교환 조건을 협상하도록 맡겼다. 그 결과 사우디는 석유 수출 대금을 달러로만 받고, 그 달러를 미국 국채 매입에 재투자하는 페트로달러 체제가 구축됐다. 이 체제가 없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재정 적자는 점점 더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일부는 트럼프의 전쟁이 숨겨진 로드맵을 따른다고 본다. 목표는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의 '절대적 결심' 작전은 이 남미 국가로부터 중국으로 향하던 석유를 차단했고, 미국은 이 석유를 자국 멕시코만 연안 정유시설로 옮겨왔다. 향후 수개월 내 쿠바가 미국 영향권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면, 이는 중국 영향력에 또 다른 타격이 될 것이다. 중국은 사이버 보안과 감시 시설을 포함해 쿠바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이 같은 숨겨진 전략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엇갈린다. 주요 석유 수입국인 중국은 일정한 압박을 받고 있다. 높은 유가로 이익을 보는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수출 중심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석유 공급이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이란의 최대 석유 구매국인 중국은 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된 국가 가운데 하나이며, 위안화로 통행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는 페트로달러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일부 측면에서 걸프 국가들은 1975년 레바논 내전 발발 이후 붕괴 직전의 베이루트보다 더 취약하다. 미사일이 방공망을 계속 뚫고 들어오고 안전 프리미엄이 사라지면서,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 등 도시는 텅 빈 호텔과 물 빠진 수영장, 모래에 덮인채 버려진 자동차가 늘어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소설류의 풍경으로 변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모두 취약한 해수 담수화 시설에 의존해 생존한다. 대규모 탈출과 인구 이동, 거대한 난민 위기가 벌어지는 종말론적 시나리오는 그리 비현실적이지 않다.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그 결과는 이란의 주요 강대국으로서의 재부상일 것이다. 사담 후세인과 바트당 세속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테헤란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시아파 다수 국가인 이라크에서 지배적 세력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에 이란이 보일 힘의 증대는 그보다 훨씬 크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좌우하는 존재로서 이란은 글로벌 석유 경제의 결정적 행위자가 됐다. 운송과 산업까지 포함하면 재생에너지는 인류 에너지 수요의 일부만을 충족한다. 세계화는 탄화수소의 산물이다. 배터리와 자석에 필요한 광물을 대규모로 채굴해야 하는 재생에너지 역시 화석연료의 도움으로 나온 것이다. 이러한 공급망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으며, 종종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고 석탄 생산도 확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녹색 전환은 아직 먼 미래다. 그 사이 이란은 에너지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행위자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짧은 "출격"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그가 중동에서 철수할 경우, 미국의 보호 아래 있던 국가들은 여러 형태의 중립과 부활한 이란에 맞선 연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것이다. 전쟁 이전보다 더 위험해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오만은 복수의 위협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반대로 "일을 마무리 짓겠다"며 지상 작전에 나선다면 미국은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수렁에 빠질 것이다.
4월 1일 대통령 연설에서 트럼프는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고 위협했다. 이 표현은 1965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북베트남을 "석기시대로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커티스 르메이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르메이는 공장과 항구, 교량을 목표로 삼았고, 트럼프는 4월 6일 교량과 전력 시설, 그리고 아마도 수자원 시설까지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역시 회복 불가능한 전략적 패배라는 대가를 치르고 실패할 것이다.
이 전쟁의 핵심적 결과는 '미국 제국'이라는 관념의 종언이 될 것이다. 유럽의 제국들과 결별한 '언덕 위의 도시'라는 상상 속에서 출발한 미국 건국 세대는 구대륙의 제국적 권력을 전면 거부하는 듯 보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이미 전통적 유럽식 식민지로 기능하는 여러 영토를 확보했다. 카리브해와 태평양의 다수 섬들(1856), 알래스카(1867), 하와이(1898), 필리핀(1898), 파나마 운하 지대(1903) 등이다. 트럼프가 먼로독트린을 부활시키며 서반구에서 미국의 종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세계적 제국 질서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20세기에는 1919년 베르사유 평화회의에서 우드로 윌슨이 "민족 자결"을 열정적으로 주장하면서 제국의 개념이 변형됐다. 미국식 정부 모델의 확산은 반(反)제국적 프로젝트로 제시되었고, 모든 민족의 권리와 열망을 증진하는 것으로 선전됐다. 역사적으로 쌓여온 우연적 요소들이 각국의 정체성을 만들지만, 그 이른바 정체성 아래에는 모든 인간에게 잠재된 '이상적 미국인'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관념이었다. 즉, 모든 인간은 제대로된 환경 속에서 미국인처럼 될 것이라는 관념이었다.
이 공상적 관념의 일부가 오늘 진행 중인 참사를 설명한다. 무차별적인 공중 폭격은 상상의 '내면의 미국인'을 해방시키거나 억압적 정부에 맞서 인구를 단결시키지 않았다. 특히 민간 인프라가 표적이 될 경우, 그것은 오히려 외부 침략자에 맞서 그들을 결집시킨다. 트럼프가 "그들 위에 지옥을 퍼붓겠다"고 말할 때, 그는 1965년 베트남 도시를 두고 "그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는 파괴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 미군 지휘관과 같은 생각을 드러낸다. 이후의 전개 역시 이란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역사의 교훈이 무시된 사례가 아니다. 트럼프의 전쟁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 강박'—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과정—의 사례에 가깝다. 순간의 충동에 움직이는 인물일지라도, 트럼프는 과거를 재현하고 미국과 자신의 위대함을 재확인하려는 충동에 이끌리는 듯하다. 아직 건설 여부도 불확실한 거대한 연회장을 짓기 위해 백악관 이스트윙을 철거하면서, 그는 자신이 재구성하지 못한 세계 질서를 파괴하려는 듯 보인다. 전능감에 대한 유아적 환상이 냉혹한 현실과 충돌할 때, 그 반응은 무형의 분노다. 이 점에서는 지정학보다 정신병리학이 더 많은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토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와 같은 '트럼프 측근'들은 말을 통해 트럼프의 판단에 약간의 이성을 주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트럼프의 논리는 합리적이 아니라 본능적이다.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 사례에서 보듯,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제정치와 과두체제 혼합해놓은 것에 본능적 공감을 갖고 있다. 러시아와의 데탕트는 많은 수익성 높은 사업 기회를 창출할 것이다. 나토는 명목상 존속할 수 있으나, 대서양 동맹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미국은 1914년 이전처럼 유럽과 분리된 문명으로 회귀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미국에 이성이 돌아올 때까지 상황을 버틴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푸틴이나 시진핑이 같은 인내를 보일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보다 행동하기에 더 좋은 시기가 있을까. 방어가 취약한 유럽에서 하이브리드 전쟁을 강화하면 푸틴은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에서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다. 트럼프가 아시아태평양에서 중동으로 군사 자산을 이동시키고 탄약을 소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진핑은 무력 사용 없이 대만을 흡수할 수도 있다. 영국이 자국과 유럽 동맹에 더욱 의존하는 '영국식 드골주의'에 대한 논의도 있다. 이는 명백히 더 높은 국방비 지출을 전제로 하며, 그것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영국의 방위 역량을 재건하려면 경제의 재산업화가 필요하며, 이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 과제다. 실행가능한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영국식 드골주의는 공허한 꿈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짧은 '출격'은 미국이 글로벌 패권국 위치에서 후퇴하는 데 있어 되돌릴 수 없는 분기점이다. 이런 기이한 인물이 어떻게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 어쨌건 이것이 우리의 지도자들이 만든 세계, 그리고 그를 일시적 일탈로만 치부하며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세계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손대는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지만, 세계사적 인물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이란이 아닌) 미국을 또 다른 '레짐 체인지(체제 변화)'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독설가 사기꾼 터커 칼슨과 뺀질이 좌파 포퓰리스트 조란 맘다니로 예고된 체제 변화 말이다. 이들 역시 우리 세계의 일부다.
존 그레이(John Gray)는 영국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로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박사를 취득한 후 서섹스대, 옥스퍼드대, 런던정경대(LSE)에서 연구하고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는 특히 자유주의 전통에 대한 저서가 많고 이사야 벌린 사상에 대해서도 정통하다. 그는 현재 가디언, 뉴스테이츠먼, TLS 등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 지성 중 한명인 철학자 존 그레이는 4월 8일자 뉴스테이츠먼 기고문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이란전쟁을 통해 미국이라는 "제국(empire)"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레이가 말하는 '제국'은 무력으로 팽창하는 제국주의와 달리 정치경제, 문화적 힘으로 세상을 이끄는 나라에 좀 더 가깝습니다. 물론 그레이는 제국주의와 제국을 그리 분명히 구별해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존 그레이는 미국의 '제국' 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를 '페트로달러'로 보고 있습니다. 즉,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의해 석유 거래를 달러로 하게 만든 것이 달러패권을 유지하는데 기여했고, 이 달러패권이 미국 '제국'을 떠받쳐왔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이 페트로달러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또 흥미로운 관찰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직전에 공격 정보를 알고 있는 미국의 '내부자들'이 석유 선물(先物) 투자를 하거나 해외 '베팅' 사이트에서 공격에 베팅하는 모습이 급증하더라는 것입니다. 석유 선물 투자는 몇 분만에 평소보다 16배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존 그레이의 비판은 영국과 유럽 지식인들이 트럼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4억 인구의 중국이 치고올라오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빠지고 있는 늙은 '제국' 미국이 세계 질서를 어떻게든 재편해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 트럼프 행정부라 할 수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기존 질서에 작은 땜질을 했을 뿐입니다. 트럼프의 그런 노력이 무리로 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 무리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시선에서는 팔짱끼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 유럽이 못마땅합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전보장을 무료로 만끽할 뿐입니다. 중국이 커오니 어떤 유럽국가들은 중국에 접근하기도 합니다. 영국의 대표적 지성 존 그레이의 이 에세이는 미국 '제국'의 몰락만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그 대안에 대해서는 원론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오만함에서 오는 어리석음을 피하라는 정도의 원론으로 미중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이기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어떻게해서라도 승리하려 할 것입니다. 과거 압도적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미국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는 미국은 그렇게 태연하게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미국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초조해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흉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패권경쟁 승리를 위해 분주해질 것이고 우리는 그런 모습을 선악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담담히 관찰하고 우리의 국익에 일치하는지 불일치하는지 여부만 판단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제 이상과 국제법을 이야기하던 시대에서 다시 힘과 힘이 격돌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