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저우의 영은사(靈隱寺)는 곧 입장이 마감된다. 비는 내리고 있고, 번화한 상점과 식당들이 몰려 있는 거리에서 얼마 안 떨어진 사찰 입구에서는 무인 확성기가 한 문장을 끝없이 반복한다. "존경하는 방문객 여러분, 입장을 위해 예약 내역을 준비해 주십시오."
사찰에 들어가 모퉁이를 돌아서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수도원이나 주교 관저를 둘러싼 듯한 높은 노란 담장이 이미 그런 분위기를 예고한다. 석굴과 불상 암각을 지나, 새롭게 단장한 사찰의 전각과 마당으로 들어서자 방문객들은 특유의 기도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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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곳을 찾았다는 18세 린샹루이는 "이게 바로 우리 중국인들의 모습"이라며 "불교 사찰이든 도교 사원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가 기도를 드린다"고 말했다.
서기 4세기에 창건된 불교 사찰 영은사는 영어로는 "Temple of the Soul's Retreat(영혼의 안식처)"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 중 하나다. 현재 입장료는 무료지만, 몰려드는 방문객을 분산시키기 위해 사전 예약이 의무화돼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사찰을 찾는 열기는 비슷해, 중국 국내 관광업계에서는 "사찰경제(寺廟經濟)"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 표현만으로는 이러한 신앙 열풍의 실상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지정된 기도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향로 앞에서 절을 올린다. 또 어떤 이들은 벽면에 새겨진 글귀 가운데 특정 글자를 손으로 만지며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수행자들의 수호보살인 동진(童眞) 보살의 상 앞에는 중국의 팝스타 마자치(馬嘉祺)의 작은 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 한 젊은 여성은 "그에게 기도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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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성이 분출하는 현상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중국 역사의 미묘하고 불안한 전환점에서 나타나고 있다. 심대한 사회 변화와 전통의 파괴를 거쳐 수십 년간 이어진 경제적 변혁 이후, 중국의 미래는 갑자기 불확실해졌다.
중국은 1980년대 초부터 문화대혁명 기간 억압됐던 종교 활동의 제한적인 부활을 허용해 왔다. 그러나 공적이면서도 무엇보다 사적인 행위인 기도의 확산은 그 실태를 가늠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는 전통이 사회 전반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시사할 뿐 아니라, 숨 가쁘게 변화하는 현대 중국 사회에 맞게 전통이 새롭게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셜미디어에서조차 '탕핑(躺平·드러눕기)'을 언급하는 글들이 묘하게 성찰적인 분위기를 띠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붉게 염색한 머리의 20세 대학생이자 경영학 전공자인 마이크 리는 "오늘만 해도 여러 번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일까, 현재를 위해서일까, 아니면 미래를 위해서일까. 그는 "사실은 그 모든 것을 생각한다"며 "그것들은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다. 시간은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도록 돕는 하나의 편의적 개념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리는 자신이 불교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찰에서 만난 다른 이들의 반응과도 비슷했다. 다른 나라라면 이런 공개적인 예배 행위는 대개 뚜렷한 종교적 정체성과 연결되지만, 오랫동안 여러 신앙과 관습이 서로 뒤섞여 온 중국에서는 종교적 소속이 그처럼 명확하진 않다.
18세 린샹루이는 "지금의 나를 불교 신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오늘날의 신앙 태도는 "상당히 가벼운 편"이고 "시종일관한 불교도가 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중국의 오래된 표현을 인용했다. "믿으면 있는 것이고, 믿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1949년 중국 공산당 집권 이후 10년 동안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다섯 종교, 즉 도교·불교·이슬람교·가톨릭·개신교 가운데 사찰에서 기도가 이뤄지는 것은 도교와 불교뿐이다. 두 종교 모두 세 번에 걸친 일정한 동작으로 기도를 올리는 공통점이 있지만,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상하이의 백운관(白雲觀)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도교에서는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자세와 달리 왼손이 오른손 바깥을 감싸는 형태를 취한다고 설명했다. '포권(抱拳)'이다. 이는 한 손으로 다른 손의 주먹을 감싸며 인사하는 중국의 전통 예법을 뜻한다. 그는 "중국에는 원래부터 이런 문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신앙이 뒤섞이는 모습은 중국 종교 지형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유럽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엄격하게 구분된 교파 체계와는 대조적이다. 중국에서 기원한 도교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았던 시기와 비슷한 한나라 때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오랫동안 민간 신앙 및 전통 제의(祭儀)와 경쟁하며 공존해 왔다.
상하이의 옥불사(玉佛寺)에서도 방문객들은 향을 손에 들고 기도를 세 번 올리거나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성(姓)만 허라고 밝혀 달라고 요청한 23세 IT업계 종사자는 "오늘 이곳을 찾은 것은 내가 바라던 일과 기도했던 소원이 실제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라며 "서원(誓願)을 갚으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산둥성 출신인데, 그곳에서는 "무릎 꿇는 것이 흔한 방식"이라고 한다. 그는 "보고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익히게 된다"며 "누군가 정확히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억지로 시킨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상하이로 이주한 뒤 인터넷에서 우연히 옥불사를 알게 됐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80대의 한 불교 신자를 만났는데, 그 여성은 이 절이 "영험하다"고 말하며 그에게 채식 위주인 식사를 대접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인연(因緣)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인연은 영어로는 'destiny'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인연에 대해 "나는 이것을 그렇게 종교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여러 종교적 믿음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중국 문화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1975년생으로 현재 옥불사에서 일하고 있는 주이화는 "젊은 방문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에는 할머니가 불교 신자여서 집에 불상이 있었다"며 "우리 세대는 그 중간에 끼어 있는 세대"라고 말했다. 이어 "연세가 많은 세대, 특히 가장 윗세대는 상당히 미신적인 편인 반면, 오늘날 신앙을 갖게 되는 젊은 사람들은 매우 이성적이며 철학, 변증법 같은 것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교 신자가 되려면 '귀의(歸依)'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불교 신자인지를 물으면 대부분 아니라고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은사의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은 깨달음을 얻은 나한 500위(位)를 모신 전각으로, 각각의 나한상이 서로 다른 표정을 하고 있어 똑같은 얼굴을 찾을 수 없다.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나한전이다. 이 전각은 1999년 다시 지어졌는데, 이는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와 1982년 종교 부흥을 허용한 개혁 조치 이후 전국적으로 진행된 사찰 복원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문화대혁명 당시 이른바 '4구(四舊: 낡은 사상·문화·풍속·습관)'를 타파하려는 운동은 한때 영은사를 파괴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후 수십 년 동안 정부가 국가공인 종교단체를 통해 종교를 통제하는 체제를 구축한 데 이어, 국가가 '전통, 문화, 종교를 무형문화유산의 한 형태'로 포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고 <중국인의 영혼(The Souls of China: The Return of Religion After Mao)>의 저자 이언 존슨은 설명한다.
여러 차례 중건된 영은사에는 이러한 문화유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사찰에는 이곳에서 수행했던 12세기 승려 제공(濟公)의 벽화도 전시돼 있다. 40세 관광객 몰리 훙은 젊은 동료와 함께 불상 사이를 둘러보며 "이곳은 제공의 집이었고, 그가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며 "그래서 이 절은 매우 영험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불교의 역사나 교리도 중요하지만, 기도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다. 익명을 요구한 상하이의 한 금융업 종사자는 자신이 기독교와 불교의 영향을 모두 받은 가정에서 자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왜 그렇게 미신을 믿느냐, 절에 가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이제 사찰은 "불안과 불확실성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그는 "절은 유일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며 "같은 소원을 놓고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기도는 철학적인 행위라기보다 "실용적이면서도 감정적인 행위"이며, "엄격한 종교적 규율"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도 내가 보는 세계 너머에 부처님의 자비가 존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빈도가 증가했다는 것이 이미 큰 의미가 있을테지만, 이를 특히 연령대별로 명확하게 통계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영적인 성향이 강한 집단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진지한 신앙심은 청년층이 직면한 여러 압박, 즉 높은 실업률과 기술 변화, 급격한 혼인율 하락, 그리고 도시 생활의 권태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실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일부 젊은 방문객들의 말에서는 다른 곳이었다면 이상하게 들릴 법한 신비주의적 분위기도 감지된다. 마치 그들은 먼 과거와 교감하거나 역사의 숨겨진 순환을 발견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노년을 이미 겪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18세 린샹루이는 "어렸을 때는 가족을 따라 이런 곳에 자주 왔다"며 "하지만 자란 뒤로는 한 번도 이런 곳을 찾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절을 찾은 경험을 "오랜 이별 끝의 재회"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안에 향이 있다"며 "향을 집어 불을 붙인 뒤 기도를 드리면 된다"고 말했다.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 중국에게 '종교'라는 주제는 매우 정치적 의미를 갖습니다. 19세기 말에 발생했던 태평천국의 난도 종교와 민란이 결합한 형태였고 청조(淸朝)를 위협했습니다. 중국 역사상 종교 운동이 민란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파이낸셜타임스 7월 11일자 기사는 중국 청년층에 새롭게 불고 있는 불교, 도교 열풍을 매우 조심스럽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중간중간 기사 내용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시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종교를 통치의 파트너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불교나 도교가 무소유(無所有), 무심(無心), 무욕(無欲)을 강조하는 것은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의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와 도교가 기존 질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조장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어떻게든 차단하려 할 것입니다. 중국으로서는 대만 문제만큼이나 종교 문제가 난제일 것입니다. 비록 짧지만 이 기사를 통해 중국에 불고 있는 중국 사회 저변의 변화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