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무부의 죽음

한때 미국 외교관들은 세계를 좌우했다. 이제는 자국 대통령에게 포위당한 신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7월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중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대동한 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대사의 정식 명칭인 '특명전권대사'란 국가원수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외교관을 의미합니다. 인편으로 본국에 전갈을 보내야 했던 근대 이전 세계에는 필요한 제도였지만 임지에서도 본국 행정부 수반과 실시간 통신이 가능해진 오늘날에 그런 '전권'을 행사하는 외교관은 극히 드뭅니다. 전통에 기반한 외교관 제도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개편해야 할 필요성은 모두들 공감하겠지만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 국무부는 그보다 훨씬 급진적인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 사안을 다룬 7월 14일자 기사의 헤드라인에 '명복을 빈다'(RIP)는 도발적인 문구를 단 까닭입니다.


직업 외교관들을 외면하고 대통령의 측근들을 대거 공관장에 임명하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미 국무부 전체 인원은 20%이상 줄었다고 합니다. 트럼프를 위시한 MAGA 세력은 기존의 직업 외교관들이 특정 이념에 편향되어 행정부에게 잘못된 조언을 일삼는, '딥스테이트'의 일원이라고 경멸합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외교의 성과를 살펴보면 새로운 접근법이 과연 효과적인지 의문이 듭니다.


미국은 원래부터 직업 공무원에 대해 의심을 품어 왔고, 가급적 선출직 공직자나 이러한 선출직이 지명한 정무직으로 행정을 이끌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선출직과 정무직만으로는 금융이나 기술, 외교 같은 분야의 복잡함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경험'을 통한 '전문성'이 관건입니다. 유럽과 미국, 일본, 중국 정치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경제는 어떤 상황인지, 그들 나라와 우리나라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는 오랫동안 지켜보고 관여한 사람들이 잘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세계 최강대국답지 않은 투박함을 보여주고 있긴 하나, 트럼프 2.0 시대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국제정세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트럼프의 시대가 저물고 나서도, 심지어 미국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하더라도 (FT도 기사 말미에서 주지하고 있듯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 없는 일입니다. 새로운 외교의 시대에서, 결국 각국의 외교관들은 자신들이 외교에 관심이 있는 정치가, 학자, 언론인들보다 더 '전문가'임을 증명해보여야 할 것입니다.

야심 있는 미국 외교관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새 자리를 노려볼 만한 때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그렇다. 6월 말 기준으로 미국 대사 자리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독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주요국 공관도 여기 포함된다. 아프리카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특히 기회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미국 대사관 가운데 80% 가까이가 대사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미 국무부 안에서 외교관들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월 백악관에 복귀한 이래 직업 외교관들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들을 두고 "아주 어리석은 외교정책 기득권층"이라고 부른 바 있다.


국무부는 세계 속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얼굴이자 때로는 기세등등한 집행자로서 해외에서 각별한 예우를 받는 데 익숙하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 대사와 특사들은 제국이 파견한 총독에 버금가는 권위로 주재국을 좌지우지하곤 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출범 18개월이 지난 지금 국무부는 뒷전으로 밀려난 정도가 아니라 포위당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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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0년간의 관행을 저버리고, 통상 전체 대사관의 3분의2 이상을 맡아온 직업 외교관들을 밀어냈다. 2기 들어 지명한 대사 후보 101명 가운데 직업 외교관은 9명에 그쳤다.


국무부에 대한 대대적인 감축 또한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래 국무부 인력은 3000명 넘게, 전체의 20% 이상 줄었다.


행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물갈이가 관료적이고 현실 감각을 잃은 정부 조직을 손보는, 진작 했어야 할 개혁이라고 설명한다. 국무부가 미국의 국가안보 목표 달성을 돕는다는 본연의 목적을 잊고 걸림돌 노릇을 해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외교관들은 지역 전문성을 업신여기는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 문화 속에서 노골적인 정치화와 전문가 숙청이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는 사이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들은 일상적인 국제 외교무대에서 국무부라는 무게중심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경험이 일천한 인사들이 만들어낸 합의는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102년 미국 외교관 조직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위기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미 외교관으로 31년간 일했고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까지 주중 대사를 지낸 닉 번스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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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지는 미국의 힘?

국무부 베테랑들은 경악하고 있다. 일자리와 위상을 잃었다는 것만이 아니다. 조직에 쌓인 지식이 사라지고 외교 자체에서 멀어지면서 미국의 권위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


"상황이 상당히 나쁩니다." 미 외교관으로 32년간 일하며 주러시아 대사와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고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았던 빌 번스(닉 번스와 친척이 아님)는 이렇게 말했다.


빌 번스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1950년대 조지프 매카시 시대보다 국무부에 더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시 매카시 상원의원이 벌인 공산주의자 색출 공세, 이른바 '적색공포'로 국무부는 중국 전문 인력을 잃었다.


"그건 비교적 특정한 사안 하나에 국한된 일이었어요. 그런데도 닉슨과 키신저가 중국과 돌파구를 열기까지 이후 15년쯤 미국은 상당한 대가를 치렀죠." 빌 번스는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전 영역에 걸쳐 있어요. 한 지역이나 한 분야의 전문성에만 관한 문제가 아니에요."


번스 전 CIA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무부와 직업 외교관들에게 가하는 '보복'뿐 아니라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전문 외교에 대한 경시"를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협상 중재를 맡겨왔다. 6월 이란과 맺은 양해각서(MOU)가 대표적인데 이 합의는 양국이 서로 공습을 주고받으면서 사실상 무너졌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들 상당수는 합의가 이토록 취약했던 이유, 그리고 일각에서 테헤란에 유리했다고 보는 조건이 나온 이유를 트럼프 대통령이 전문가를 배제한 데서 찾는다.


"이란 협상단과 겨루려면 그런 종류의 비정치적인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봐서 아는데 그들은 사안을 아주 깊이 꿰고 있습니다." 이란 협상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빌 번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무부에서 27년간 일하다 트럼프 2기 첫날 주요르단 대사직에서 해임된 야엘 렘퍼트는 더 직설적이다. "이란이 우릴 갖고 놀았죠." 렘퍼트는 말했다. "이란 측은 경험 많은 협상가들이고, 관련 사안을 속속들이 아는 전문가팀을 대동했어요. 미국은 그렇지 않았고, 그 결과 스스로 불리한 처지에 놓였어요."


토미 피고트 국무부 대변인은 전임 행정부 출신 인사들의 이런 비판이 직업 관료와 정무직 모두를 "부당하게 폄훼했다"고 반박했다. 피고트 대변인은 주요 결정이 경험 많은 전문가들의 "실질적인" 의견 없이 내려진다는 주장도 부인했다.


"국무부 전체에서 직업 관료와 정무직이 우리 공관들, 타 부처 파견관들과 함께 협력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피고트 대변인은 말했다.

'신중한 숙고를 거친' 개편

트럼프 행정부는 선출되지 않은 관료와 정보기관으로 이루어진 숨은 권력, 이른바 '딥스테이트'와 폭넓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당국자들은 국무부 감축을 미국 우선주의 기조에 맞춰 조직을 재정렬하려는 "신중한 숙고를 거친"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한 대변인은 이를 통해 국무부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무부의 기능이 뭡니까?"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이렇게 물었다. "국무부는 자신이 외교정책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국무부의 임무는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변하는 것입니다."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임명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부임하자마자 이렇게 선언했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군."


국무부 내부에서도 재검토가 필요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한 베테랑 외교관은 최근 몇 년간 업무 중복 같은 결함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조직이 정무직 상급자들에게 때때로 수동적인 방식으로 반항하곤 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외교관들은 이번 개혁이 국무부의 위상을 전면적으로 격하시키기 위한 구실이라고 우려한다. 변화의 속도도 걱정거리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세운 개발 원조 기관 국제개발처(USAID)가 지난해 갑작스럽게 문을 닫은 사례처럼, 그 속도가 때로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국무부가 통폐합과 현대화를 진작 했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어요." 프린스턴대 국제관계학 존 포스터 덜레스 석좌교수 제이콥 샤피로는 이렇게 말했다. 다만 샤피로 교수는 "미국 외교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따져보지도 않고 너무 빨리 해치웠다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에 우호적인 인사들은 국무부가 이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마주한 것은 약 80년 전 냉전이 시작될 때 이후 처음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이번 구조조정의 뿌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4년에 있다는 점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국무부가 자신의 뜻을 따르기를 주저하는 데 격노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제임스 카라파노는 트럼프 1기 후반 국무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가 민주·공화를 막론하고 역대 국무장관 대다수가 따랐던 방식, 즉 "내 일은 내가 하고 국무부는 자기들 일을 하는" 방식을 답습했다고 말했다.


캐러파노는 이렇게 덧붙였다. "폼페이오는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했지만 국무부 내부를 건드리지는 않았어요. 폼페이오의 방식은 '대통령도 만족시키고 조직도 만족시키는 것'이었죠. 2기 행정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에 더 철저히 맞추기를 원했어요. 위에서 아래까지 권력을 행사해 대통령이 원하는 국무부를 만드는 것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2기 들어 국제위기의 중재자로 누구를 고르는지를 통해 자신의 외교정책 서열을 분명히 드러냈다. 스티브 위트코프, 톰 배럭 같은 사업가 친구와 후원자, 그리고 사위 재러드 쿠슈너처럼 트럼프 가문과 가까운 인물들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오랜 세월 측근을 특사로 임명했고, 런던이나 파리처럼 화려한 공관 자리는 정치적 우군과 후원자에게 맡겨왔다. 그중에는 유능한 외교관으로 평가받은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 대통령들은 이런 정실주의 인사를 노련한 외교관 기용으로 보완했다. 닉 번스는 1924년 5월 외교관 조직이 만들어진 취지 자체가 19세기의 "정실주의/엽관주의 시스템"을 실질적인 전문성으로 대체하는 데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의 방식이 되살아나면 세계를 읽는 미국의 안목도, 그 안에서 길을 찾는 능력도 약해진다는 것이 닉 번스의 지적이다.


"가장 경험 많은 외교관들 상당수가 즉결 해고됐어요." 닉 번스는 덧붙였다. "이제 중대한 결정이 내려지는 방 안에 직업 외교관은 한 명도 없어요... 자책골이죠."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비판 상당수가 오늘의 세계와 동떨어져 있다고 일축한다. 현지 분위기와 정치 상황을 워싱턴에 보고하는 외교 전문電文의 쓸모가 과거만 못하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와 24시간 뉴스, 정상 간 직접 소통이 일상이 된 시대에 미국 대사관이 현장에서 관찰한 내용은 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피고트 대변인은 베네수엘라 지진과 허리케인 멀리사 대응, 이라크, 아이티, 남미에서의 업무를 예로 들며 직업 외교관들이 정책 수립과 집행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사관의 역할은 물류 거점이 되는 것이죠." 앞서의 고위 당국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 외교관들은 일상적으로 무시당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만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제가 이야기해 본 직업 외교관들은 책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거나 어디로도 전달되지 않을 보고서를 붙들고 제자리에 앉아 있어요." 전직 미 고위 외교관의 말이다. 유럽과 중동에서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미국 우방국 외교관들은 전통적인 대화 상대였던 국무부 대신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과 특사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음을 인정한다.


이런 변화는 누가 영향력을 갖고 있느냐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외교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대해 외국 외교관들보다 딱히 더 아는 것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외교관들은 자기검열에 빠지기도 한다.


직업 외교관들은 여전히 외국 관리들을 만나지만 무슨 말을 할지에는 "아주 조심스럽다"고 이 전직 고위 외교관은 전했다. "공관 차석과 대사들은 사실상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고 있어요. 워싱턴에 무엇을 올려보낼지에 대해 무척 신중해요."


국무장관이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겸하는 루비오 장관은 국무부 청사가 있는 포기보텀Foggy Bottom보다 백악관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 관계자들은 결정이 내려지는 곳이 백악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은 국무부가 궁지에 몰렸다는, 나아가 사면초가에 놓였다는 인상을 안팎에서 짙게 만들고 있다.


국무부를 속 빈 껍데기로 만드는 과정은 중세의 공성전과 같다고 전직 고위 외교관은 말한다. "먼저 마을 안으로 포탄을 쏘아대고... 그 다음엔 땅에 소금을 뿌리죠."

바뀌는 조직문화

원로 외교관들과 MAGA 활동가들이 한목소리로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국무부가 전면적인 문화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 진영은 국무부를 진보 성향이고 적대적이며 언론에 정보를 흘리기 좋아하는 조직으로 보고, 미국 우선주의 구상을 빠르게 밀어붙였다. 혁명의 기운과 함께 보복의 기운도 감돈다.


"자기가 정책 결정자라고 생각해서 그저 따지고 반대만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앞서의 고위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을 추진하기가 매우 어려웠죠. 결국 두루뭉술한 말만 늘어놓은 보고서만 나오고요."


직업 외교관들은 스스로를 비정치적인 공직자로 여겨왔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주변 눈치를 살피며" MAGA 세계관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받고 있는 공포 분위기에 대해 경고한다.


닉 번스는 국무부가 사실상 진보 성향의 생각만 울려퍼지는 폐쇄적 공간이 됐다는 트럼프 측근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제가 수십 년간 국무부에서 일하는 동안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정책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번스 전 대사가 말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두고는 일단 결정이 내려진 뒤에는 거수경례하고 따라간다는 게 우리 논리였죠."


빌 번스는 국무부에서 "충성심"이 새로운 잣대가 됐다고 지적한다. 번스 전 국장은 이를 "채용 절차부터 승진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이 무엇인지" 시험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정말 대단히 해롭다고 봐요." 빌 번스는 덧붙였다.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겪은 국무부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정치적 견해는 제쳐놓고 일을 했어요.


그걸 강제로 없애기 시작하면, 직업 공무원을 윽박질러 결국 나쁜 결정을 내리고 마는 수많은 권위주의 체제를 흉내 내는 꼴이 됩니다."


20세기와 21세기 첫 10년 동안 공화당과 민주당 국무장관 사이의 인수인계는 대체로 매끄러웠다. 무엇보다 미국의 세계적 역할을 두고 양당이 대개 같은 중도적 입장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 진영이 공화당을 장악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변화를 둘러싼 내부 논쟁의 중심에는 벤 프랭클린 펠로십(BFF)이 있다. 보수 성향의 전·현직 외교관 단체인 BFF는 보수적 사상과 인사, 신규 채용 후보를 장려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2년 전 설립됐다.


창립자 세 명 가운데 한 명인 맷 보이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0년대에 국무부에 들어왔다.


보이시는 지난 30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국무부는 갈수록 더 왼쪽으로 기울었어요. 클린턴 대통령 때 시작됐고 바이든 대통령 시절에는 극단적으로 심해졌어요." 보이시는 진보 편향의 사례로 버락 오바마·바이든 행정부에서 강화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인사, 그리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은" USAID 프로그램의 확대를 꼽았다.


"국무부에서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났지만 분위기와 정책은 왼쪽으로 옮겨가고 있었죠." 보이시는 덧붙였다. "진보주의자라면 이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그게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개혁이라면 돈 더 쓰고 노동자 더 뽑고 프로그램 더 늘리면 된다고 생각하고요... 진보나 좌파가 아닌 나머지 미국인 50%에 속하는 사람들은 '잠깐, 이건 방향이 잘못됐는데'라고 말하게 되는 거예요."


보이시는 BFF가 MAGA 세력만의 단체가 아니라 폭넓은 보수 진영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라고 강조한다. "레이건주의자부터 자유지상주의자,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 지지자, 존 매케인을 좋아했던 사람까지 섞여 있어요." 보이시는 이렇게 말했다. 매케인은 개입주의 성향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인물이다. "공통분모는 이들이 진보가 아니라는 점이죠." 보이시는 회원 상당수가 이번 감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반면 직업 외교관들은 BFF가 구성원의 정치 성향을 감시하는 새로운 국무부 문화의 한복판에 있다며 불안해한다. 앞서의 전직 미 고위 외교관은 일부 대사가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건에 대한 견해를 질문받고 있다고 전했다.


"주변에 정치적 감시자들이 있다는 느낌이 분명히 들어요." 바이든 행정부에서 주요르단 미국대사를 지낸 렘퍼트 전 대사가 말했다. "비판이나 대안적 정책 접근법을 제시하면 불충으로 받아들여져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전례 없는 공포가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죠."


보이시는 외교관들이 말하는 싸늘한 정치적 분위기에 거의 공감하지 않는다. "일부 외교관은 자기 유산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고, 나머지는 근거도 없이 차별받는다고 우는소리를 하는 거예요." 보이시는 말했다.


"수십 년간 우위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뻔뻔합니다. BFF는 국가라는 배를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놓으려는 행정부를 강력히 지지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길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편은 국무부를 어디까지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야 할까? 2028년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는다면 마주하게 될 큰 질문 가운데 하나다.


민주당 성향의 외교정책 전문가 일부는 오늘날 미국에서 트럼프 이전의 세계 패권국 역할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본다.


이들은 미국 외교를 새롭게 구상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미국이 세계에서 발을 빼는 흐름을 되돌리기 어려워 보이는 만큼, 아무리 중국이 신흥·개발도상국을 통칭하는 '글로벌 사우스'의 마음을 얻으려 공을 들이는 상황이라 해도 재외공관을 전부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정당화하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전략가는 민주당 행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동기가 아주 불순한" 개혁을 오히려 활용해, 정상들이 일상적으로 왓츠앱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시대에 맞게 국무부를 다시 설계하고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테랑 외교관들도 전환점을 지났다는 데 동의한다. 빌 번스 전 CIA 국장은 과거의 국무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 1기 때는 정권이 교체되고 시각이 바뀌면 4년안에 피해를 상당 부분 회복하고 복구할 수 있다고들 봤어요. 이번엔 30년은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빌 번스는 이렇게 말했다.


게다가 낡은 모델을 되살리려 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빌 번스는 덧붙였다. "2029년 초에 다른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결정적인 실수 하나는, 이게 그저 시계를 예전으로 되돌리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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